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3) 중에서


 

   

 행복의 노래소리 높던 이 강산에 비애의 곡성이 터져 올랐다.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 김일성주석께서 위대한 심장의 고동을 멈추시었다.

처음으로 민족의 대국상을 당한 가장 큰 슬픔의 날이었다.

조국의 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나라의 통일과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그처럼 정력적으로 활동하시던 수령님, 오래동안 적대관계에 있던 조선과 미국사이에 관계개선의 길을 터놓으시고 북과 남사이에 최고위급회담을 마련하시어 조국통일과 국제관계의 새 국면을 열어놓으시려고 그처럼 심혈을 쏟으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 그렇게도 뜻밖에 급서하시니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청천벽력같은 비보를 도저히 믿을 수 없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급히 수령님 계시는 곳으로 가시었다. 차창밖에서는 대줄기같은 폭우가 쏟아졌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시었다. 그이의 뇌리에는 수령님의  최근 혁명활동이 떠오르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80고령의 몸으로 매일같이 외국인사들과 대표단을 접견하시고 지방과 평양시안의 협동농장들을 현지지도하시었다. 그래서 수령님의 건강이 걱정되시어 조용한 곳에서 안정하며 휴식하시도록 하시였는데 수령님께서는 오히려 더 긴장한 시간을 보내신 것이 아닌가.

7월 5일과 6일에는 정무원총리가 주재하기로 된 경제부문 책임일꾼협의회를 친히 지도하시었다. 7일에는 아침산책시간마저 바치시며 조국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놓을 역사적인 문건을 검토하시고 비준하여 주시었다. 이어 큰물방지대책과 관련한 사업, 국제문제와 관련한 사업, 중유발전소건설과 관련한 사업을 지도하시었다. 그 날 저녁에도 집무실에서 문건을 보시며 계속 사업하시었다.

어버이수령님의 쉬임없는 헌신의 나날을 헤아리시는 장군님의 귓전에는 7월 6일에 하신 수령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것만 같으시었다. 그 날 수령님께서는 전화로 당의 의견을 받자고 한다고 하시면서 북남관계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버이수령님께서 결심하시면 당에서는 그대로 할 것이라고 말씀드리시자 수령님께서는 그러면 당에서 승인한 것으로 보고 활동하겠다고 하시었던 것이다. 어버이수령님과 나누신 그 날의 전화가 마지막말씀으로 되셨으니 장군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었겠는가.

수령님 계시는 곳에 도착하신 장군님의 심중은 천갈래만갈래로 찢어지는 듯 하시었다. 한 생의 피로를 푸시는 듯 조용히 누워 계시는 수령님을 보시는 순간 장군님께서는 억이 막히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손목을 잡으시고 목메어 부르시었다.

여느때 같으면 그리도 반겨 맞으실 수령님께서 일어나시지조차 못하시니 이런 통한이 어디에 있으랴. 원통하여라, 하늘이 낸 위인도 가신단 말인가. 밤하늘에서는 무시로 번개가 암흑을 쩍 가르며 번쩍이고 우뢰가 지구를 쪼개듯 꽈르릉 지동쳤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산천초목도 울며 태질을 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피눈물을 삼키시었다. 장군님께 있어서 수령님은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었을 뿐 아니라 위대한 스승이시고 혁명의 영도자이시며 친근한 동지이시었다. 삶의 기쁨도 미래도 오직 그 품에 있는 운명의 태양이시고 마음의 기둥이시었다. 그 태양, 그 기둥을 졸지에 여의시였으니 땅이 꺼져 내리는 듯 눈앞이 캄캄하시었다.

참을 수 없는 상실의 아픔을 안으시고 수령님의 영전을 지켜 밤을 지새우신 장군님께서는 아침에 금수산의사당에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회의를 소집하시었다. 회의에서 장군님께서는 이제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문제에 대하여 토의하겠다고 하시고는 차마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고 주치의사에게 일임하시었다.

주치의사는 눈물을 삼키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간밤에 급병으로 갑자기 우리곁을 떠나시었다고 통보하였다. 회의참가자들은 놀라움을 터뜨리며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장군님을 따라 수령님을 모신 방에 가서야 절통한 현실앞에서 모두가 가슴을 치며 대성통곡하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계속된 비상회의에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령구를 모시고 조의식을 거행할 장소문제, 수령님서거에 대한 비보발표문제, 국가장의위원회조직과 조의식, 영결식, 추도대회진행문제 등이 토의되었다. 회의는 정오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그때까지 장군님께서는 지난밤을 꼬박 새우시고 아침식사도 건느시었다. 한 일꾼이 과자 한접시에 샘물 한고뿌를 가져다 드리었다. 그이께서는 고맙다고, 인민들에게 수령님께서 돌아가신 비보를 알릴 생각을 하니 가슴이 미여진다고 하시며 샘물 한고뿌로 타는 가슴을 식히시었다.

7월 9일 낮 12시,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비보를 알리는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이 공포되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와 중앙인민위원회, 정무원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1994년 7월 8일 2시에 급병으로 서거하시었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온 나라 전체 인민들에게 알린다.』

사람들은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 엊그제에도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소년단원들의 대회장에 나오시어 아이들과 기념사진도 찍으시었고 온천벌과 대성벌의 논두렁길도 정정히 걸으시던 수령님께서 가시다니  … 세상에 이런 변도 있단 말인가. 눈물에 젖고 비분에 떠는 방송원의 목소리가 자주 끊어지는 가운데 위대한 장군님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장의위원회구성과 국가장의위원회공보가 발표되었다.

뜻밖의 비보에 전국은 삽시에 비애의 바다에 잠겼다. 호곡속에 실신한 사람들, 심장마비를 일으킨 사람들, 온 나라는 그야말로 혼미상태에 빠졌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수령님은 우리 민족이 수천년역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시고 이 땅에 세상에서 으뜸가는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를 세워주신 은혜로운 위인이시고 온 나라 가정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었다. 수령님을 모셨기에 우리 인민은 식민지노예의 운명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삶의 주인으로 되었다. 수령님이 안계시는 우리 조국의 오늘이나 내일에 대해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우리 인민이고 우리 군대였다.

평양시민들은 앞을 다투어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이 모셔져 있는 만수대언덕에 올랐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조직하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동상대돌을 부여잡고 눈물을 뿌리며 몸부림쳤다. 그 수는 분초를 다투며 늘어나 오후 2시경에는 동상앞 층계와 대통로를 꽉 메웠다. 다음날 첫새벽까지는 30여만명에 달하였다.

평양시민뿐 아니라 온 나라 전체 인민이 도처에 모셔져 있는 수령님의 동상과 초상화, 수령님의 현지지도사적비앞에서 어버이수령님을 부르고 또 부르며 목놓아 울었다. 일시에 전국이 조의장으로 변하고 전민이 상제가 되었다.

남조선인민들은 폭압속에서도 서울을 비롯한 곳곳에 분향소를 차려놓고 추모모임과 애도행사를 진행하였다. 대전교도소의 비전향장기수들은 무기한 애도단식투쟁에 들어갔다. 남조선「국회」안에서까지 북에 조문단을 파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평양을 향해 떠난 5명의 범민련 남측본부결성준비위원회 조문대표단은 경기도 고양시에서 당국에 의해 제지당하자 『북에 조문 간다. 길 비켜라』라고 쓴 구호를 앞에 추켜들고 맞서 싸웠다.

해외동포들은 민족의 어버이를 잃은 비분으로 가슴을 치며 조의방문을 위해 평양행 길에 올랐다. 조전, 조문도 보내왔다. 조국에 오지 못하는 동포들은 주재국에 있는 우리 나라 대사관, 영사관, 대표부를 찾아 조의를 표시했으며 자체로 조직한 추도준비위원회 주관하에 조의장을 도처에 설치하고 조문객들을 받아들였다.

세계는 20세기의 대성인, 인류의 태양을 잃은 비애와 슬픔에 잠겼다. 애도기간에 60여명의 국가 및 정부수반들과 170여명의 정당지도자들을 비롯하여 2,000여명의 외교대표들이 우리 나라 대표부를 조의방문하였다. 166개 나라에서 3,480여건의 조전과 3,300여개의 화환을 보내왔다. 그리고 120여개 나라 700여개의 출판보도물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추모하여 특집을 하였다. 160여개 나라들에서 조의행사가 진행되었고 수십억의 각계각층 사람들이 조의를 표시하였다. 세계 여러 나라 국가수반들과 영도자들, 저명한 인사들은 『김일성동지의 서거는 태양이 꺼지고 지구가 깨진 것과 같은 것이다.』, 『파란많은 역사의 흐름속에서 거성이 떨어졌다.』, 『국제혁명운동은 위대한 보루를 잃었다.』, 『우리 행성을 자기의 궤도를 따라 돌게 하던 구심점을 잃었다.』라고 하면서 통탄해하였다. 유엔은 청사에 조기를   게양하였고 유엔사무총장은김일성주석은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라고 하면서 조의를 표시하였다. 유엔총회의장을 비롯한 유엔관리들과 회의의장들, 세계 여러 나라 대표들이 유엔주재 우리 나라 대표부를 찾아 애도의 뜻을 표시하였다.

인류역사는 수백만년을 헤아리지만 정견과 신앙, 국적이 다른 세인이 한 나라 영도자의 서거에 이렇게 많이, 이렇듯 진정에 넘쳐 슬퍼하며 조의를 표시한적은 일찍이 없었다. 세계가 흘린 이 눈물에 대하여 각국 수뇌자들과 세계명인들의 서거와 관련한 일화수집에 한생을 바친 한 기자는 『지금까지 인류는 거인을 잃을 때마다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김일성주석님을 잃었을 때처럼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지는 못하였다. 50여억이 김일성주석님을 추모하여 흘리는 비애의 눈물소나기로 하여 지구는 흠뻑 젖었다.』라고 썼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 모든 슬픔과 눈물을 한 몸에 안으시었다. 그 눈물의 의미를 누구보다 깊이 헤아리시는 장군님이시었다. 행성의 무게가 한 몸에 실리는 듯  어깨가 더욱 무거우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