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마지막 연대인 90년대는 사회주의의 생명력을 검증하는 격변의 연대였다.

제국주의자들의 끈질긴 반사회주의책동과 사회주의배신자들의 「개혁」, 「개방」바람에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이 연이어 붕괴되었지만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는 끄떡없이 주체의 항로따라 전진했다.

우리 식 사회주의의 이러한 생명력은 한마디로 말하여 사회주의에 대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에 있었다.

정세는 날이 갈수록 긴장해지고 주변환경은 복잡하였지만 군대와 인민의 마음 속에는 우리 식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과 어떤 경우에도 그것을 지켜 나갈 애국의 투지와 정신이 꽉 차있었던 것이다.

군대와 인민의 이러한 높은 정신세계를 반영하여 『당신만 있으면 우리는 이긴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시대어가 태어났으며 『내 나라 제일로 좋아』라는 민족적 존엄의 송가가 높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절절한 애국심의 발현인 동시에 가장 어려운 시련의 도래를 예감하여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사회주의와 인민의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하는 절대적 신뢰심의 폭발이었다.

우리의 생활이며 생명인 우리 식 사회주의를 절대로 내놓지 않겠다는 것, 목숨을 바쳐서라도 끝까지 지키겠다는 것, 이것이 군대와 인민의 결심이고 의지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대와 인민들 속에서 우러나오는 이러한 결심과 의지가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복무로 이어지도록 이끌어 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것이 곧 시대의 역풍을 제압하고 우리 식 사회주의를 지키며 온 사회를 혼연일체의 혁명보루로 튼튼히 다지는 중요한 고리로 보시었다.

그리하여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79(1990)년 새해의 첫날아침에 당과 정부의 책임일꾼들을 만나주신 자리에서 모든 일꾼들이 인민의 충복이 되어 인민대중에게 헌신적으로 복무할 데 대한 역사적인 담화를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조성된 정세하에서 혁명과 건설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면 지휘성원인 일꾼들 속에서 혁명적 군중관점을 확고히 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인민에게 충실히 복무하고 인민들로부터 지지와 신뢰를 받는 일꾼이라야 참다운 주체형의 당일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군대에는 『조국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구호가 있는데 우리 당일꾼들의 구호는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으로 되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우리 당은 인민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인민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지고 사회주의위업을 기어이 완성해 나갈 것이라는데 대한 역사적 선언이었다.

이렇게 되어 군대와 인민 앞에는 『조국을 위하여 복무함!』,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두개의 구호가 나란히 내세워지게 되었다.

『조국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인민군대의 구호는 이미 전부터 제시된 것이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90년대의 사회주의수호전에 대비하여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구호와 그 지위를 나란히 세워주신 것으로 하여 인민군대가 반제반미대결전에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시대의 구호로서의 의미가 새롭게 부각되게 되었다.

『조국을 위하여 복무함!』, 그것은 본질에 있어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 『수령을 위하여, 최고사령관을 위하여 복무함!』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구상과 의도를 받들어 전군이 이 뜻깊은 구호를 심장에 새기고 훈련을 하나 하고 전투근무를 하룻밤 선다 해도 사회주의수호의 전초선에 선 전위투사로서의 사명감을 가다듬으며 결사옹위의 사상정신으로 대하였다.

누구나 조국을 위하여, 수령을 위하여, 최고사령관 김정일장군님을 위하여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 투쟁할 혁명적 열의에 불탔다.

조국앞에 시련이 닥쳐왔을 때 그것을 헤치는 길에 남 먼저 뛰어드는 것이야말로 오늘의 시대에 총잡은 군인의 자세이고 본분이다.

누구나 그러한 영웅적 위훈의 삶에 뜻을 두었다.

그래서 전군에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청춘도 생명도 다 바치는 것보다 더 고귀하고 긍지 높은 삶은 없다는 이수복영웅의 시가 애송되고 전시가요들이 애창되는 바람이 일어 번졌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한 군풍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전군에 영웅적 위훈에 대한 지향, 혁명적 열의가 뜨겁게 끓어 번지는 속에 90년대의 첫 영웅이 배출되었다.

주체79(1990)년 1월 23일이었다.

이 날 어느 한 전연구분대에서는 훈련도중 「적」참호를 향해 던졌던 수류탄이 나뭇가지에 튕겨 대원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굴러오는 불의의 정황이 조성되었다.

『딱-』 공기의 흐름도 가려낼 듯 귓전에 울리는 수류탄의 격침이 뇌관을 때리는 소리, 폭발직전까지 불과 1초를 앞둔 너무나도 긴박하고 불의적인 정황으로 하여 대원들은 온몸이 굳어져 있었다.

그 순간 김광철소대장이 『소대 엎드려!』 구령을 치며 폭발직전의 수류탄을 자기 몸으로 덮어 10여명의 대원들을 구원하고 최후를 마치었다.

이 사실은 곧 경애하는 장군님께 보고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평범한 소대장의 경력과 군사복무정형을 요해하시었다.

김광철,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부대에 배치된지 얼마 안되는 25살의 애젊은 소대장.

그가 어찌 몇몇 자기의 소대원들만을 구원하고저 터지는 수류탄에 몸을 던졌다고 할 수 있으랴.

평소에 아마도 그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대로 조국과 인민으로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 그렇듯 젊디 젊은 심장 속에 준엄한 시련이 닥쳐올 때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 싸우려는 강인한 정신세계, 싸움마당을 안고 살았을 것이다.

그렇듯 큰 심장, 고귀한 인생관의 뿌리가 없이 어찌 순간의 영웅적 위훈이 창조될 수 있으랴.

장군님께서는 그가 세운 위훈이 단순히 그 한 사람에 한한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되지 않으시었다.

그의 영웅적 행동은 전체 인민군장병들의 높은 사상정신세계의 반영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수류탄이 터지는 순간 그 자리에 김광철소대장이 없었다면 어느 누구든 그 자리를 메웠을 것이다.

이런 높은 정신세계를 지닌 인민군장병들이 조국의 초소를 지켜서 있는 한 원수들이 아무리 우리의 사회주의를 허물어 보려고 칼을 빼어 들고 덤벼 들어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김광철소대장의 영웅적 위훈을 모든 인민군장병들의 심장 속에 사회주의수호의 불길을 지펴 올릴 불씨로 되게 하시었다.

그를 90년대의 첫 영웅으로 내세워 전군에 영웅적 위훈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자, 이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뜻이었다.

장군님께서는 보고문건위에 활달한 필체로 『높이 평가할 것…』이라는 천만근의 무게를 담은 친필을 남기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믿음에 받들려 김광철소대장의 위훈은 금별로 빛났다. 그를 90년대의 첫 공화국영웅으로 내세워주신 것이다.

90년대의 첫 영웅!

얼마나 뜻깊은 칭호이며 부름인가.

김광철소대장은 몸은 비록 죽었어도 조국 앞에 세운 위훈으로 하여 인민군장병들을 영웅적 위훈에로 추동하는 90년대의 영웅선구자로 된 것이다.

김광철소대장에게 공화국영웅칭호가 수여된 때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주체79(1990)년 3월초 어느 날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김광철영웅에 대하여 다시금 말씀하시면서 그의 고결한 투쟁정신은 모든 당원들과 군인들이 따라 배워야 할 숭고한 모범이라고 또다시 높이 평가하여 주시었다.

그러시고는 일꾼들에게 90년대의 첫 영웅인 그를 따라 배우기 위한 사업을 활발히 벌일 데 대하여 가르쳐주시면서 『김광철영웅처럼 살며 투쟁하자!』, 『김광철영웅처럼 90년대의 청년영웅이 되자!』라는 구호를 들고 나가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김광철영웅의 모범을 따라 배우기 위한 사업을 항일무장투쟁시기와 조국해방전쟁시기 영웅전사들의 높은 정신세계와 밀접히 결부하여 진행할 데 대한 방향과 방도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군이 김광철영웅이 지니었던 당과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 혁명적 동지애, 군사복무에 대한 영예와 긍지, 직책상 임무수행에서의 높은 책임성과 헌신성을 본받는데 기본을 두고 그의 모범을 따라 배우기 위한 사업을 더욱 심화시킬 데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었다. 그리고 김광철영웅을 따라 배우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를 강하게 세우도록 하기 위해 신문에 지상토론을 조직하고 거기에 많은 군관들과 군인들이 참가하도록 해주시었다. 한편 그가 있던 중대를 「김광철중대」로, 그가 다니던 군관학교의 소대를 「김광철소대」로 부르게 하시었으며 영웅이 사용하던 책들을 전시물로 중대에서 보관하며 여러 학교들에서 영웅을 명예학생으로 등록하고 따라 배우게 하는 등 수많은 조치들을 취해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김광철영웅을 따라 배우기 위한 불길이 군대에서만이 아니라 온 나라에 세차게 타 번지도록 하기 위하여 그를 원형으로 하는 예술영화도 만들게 하시고 그를 키운 부모들과 교원들을 사회적으로 크게 내세우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영웅이 있던 부대의 제대군인들이 「김광철영웅소대」를 뭇고 석탄전선에서 혁신의 앞장에 서도록 해주시었다.

그리하여 영웅을 따라 배워 그처럼 살며 싸우려는 목소리들이 전군에서는 물론 온 나라 어디에서나 연이어 울려 나왔다.

그러던 주체79(1990)년 5월 어느 날이었다.

이름없던 한 소대장을 전군, 전민이 알고 본받아야 할 90년대의 전형으로 내세워 주시고도 그에게 아직 못다 주신 사랑이 있으신 듯 김광철영웅의 동상을 세워주자고 뜨겁게 말씀하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영웅의 동상형성도안이 완성되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또다시 바쁘신 시간을 내시어 그것을 보아주시었다.

영웅의 동상형성도안을 차려놓은 곳으로 가신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이 영웅의 모습을 살펴보시었다.

군복입은 그의 모습을 형상한 도안에서 이윽하여 눈길을 떼신 장군님께서는 도안을 아주 잘 만들었다고 만족한 미소를 지으시었다.

그러시고는 영웅이 공부하던 구장군 용문중학교에 영웅의 동상을 빨리 세우도록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이렇게 되어 영웅의 동상이 그의 모교에 세워지게 되었다.

그는 항일의 혈전만리, 백두의 설한풍을 헤쳐온 노투사도 아니었다. 전쟁의 불길 속에서 목숨을 바친 화선영웅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영장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군대가 되어 혁명의 총대를 틀어 잡았기에 그렇듯 값높은 영생의 언덕에 오르게 된 것이다.

훗날 선군영도의 길에서 김광철중대를 찾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형의 뒤를 이어 군관으로 전연초소를 지켜가고 있는 영웅의 동생을 만나주시고 그 소행이 정말 기특하다고 하시면서 김광철소대장의 영웅적 소행에 대하여 다시금 높이 평가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김광철영웅은 터지는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혁명동지들을 구원한 90년대의 첫 영웅입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이수복영웅은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청춘을 바치었다면 김광철영웅은 귀중한 혁명동지들을 위하여 고귀한 생명을 서슴없이 바쳤습니다.』

이수복영웅의 위훈에 김광철영웅의 위훈을 따라 세워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렇듯 크나큰 믿음이 있어 인민군대에서는 수많은 영웅들이 연이어 배출되었다.

주체82(1993)년 2월 24일 아침 인민군대의 한 책임일꾼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비준하여 주신 한 건의 친필문건을 받아 안았다.

이때로 말하면 미제의 핵사찰소동으로 하여 우리 나라에 긴박한 정세가 조성되었던 때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긴급한 정황보고와 산처럼 쌓이는 문건들로 분초의 여가도 없으시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시간을 다투는 작전전투조직이나 적정과 관련한 자료도 아닌 평범한 한 인민군전사의 아름다운 소행에 대한 보고자료를 먼저 보아주시었다.

문건에는 어느 한 구분대의 문정환분대장이 뜻하지 않게 폭발하는 지뢰를 한 몸으로 막아 지휘관과 동지들을 위험 속에서 구원한 소행이 적혀 있었다.

어느 날 공병소대 군인들은 전투임무를 수행하다가 폭발위험이 있는 파편지뢰를 발견하게 되었다.

지형조건으로 보아 지뢰를 폭파해 버릴  수 없음을 판단한 소대장은 손으로 해체할 결심을 하고 위험한 일을 자신이 맡아하기로 하였다.

그때 문정환분대장이 선뜻 소대장을 막아 나서며 『위험합니다. 제가 해체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누가 말릴 사이없이 그곳에 다가가서 지뢰해제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만약경우 지뢰가 폭발한다 해도 동지들 쪽으로 향하는 파편을 막을 수 있게 돌아앉아 지뢰해제에 착수하였다.

그가 침착하게 지뢰에 안전통을 맞추고 인발못을 끼우려고 하는 순간 『딱-』 하고 격침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 찰나 그는 『모두 비키라!』고 소리치며 터지는 지뢰를 자기 몸으로 덮었다. 요란한 폭음과 함께 그는 희생되었으나 소대장을 비롯한 소대전우들은 구원되었다.

그는 평소에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맡겨진 군사임무를 성실히 수행한 참된 병사였다.

그의 병사수첩에는 이런 글발이 씌어 있었다.

『보답에는 높은 목표가 있어도 받드는 데서는 자그마한 사심도 있어서는 안된다. 비록 남들이 표창을 타고 훈장을 받을 때 칭찬 한마디 못 받아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사상과 영도를 받드는 혁명동지로서 자기 맡은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사람이 진짜 충신이고 효자이다.』

이런 깨끗한 양심을 지닌 그였기에 위급한 순간 자기 한몸을 서슴없이 내댔던 것이다.

장군님께서는 혁명의 총대병사답게 열혈의 삶을 산 한 병사의 위훈을 빛내어 주시려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문정환분대장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고 그가 소속된 부대의 전체 장병들에게 당중앙군사위원회와 최고사령관의 인사와 감사를 전달하며 그의 부모들을 군지휘일꾼들이 찾아가 위문하고 가족들에게 표창으로 선물을 보낼 데 대한 친필문건을 보내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친필문건을 보내신 시간은 새벽 3시 7분.

인민군장병들을 혁명의 귀중한 보배로, 동지로 여기시며 그들의 아름다운 삶과  영웅적 위훈을  조국과  인민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게 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심려와 노고는 이렇듯 웅심깊은 것이다.

영웅적 소행의 주인공들은 이들 몇몇 군인들 뿐이 아니었다.

전군이 영웅, 충신의 대오로 자라나고 있었다. 하여 「김광철중대」의 숲은 무성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곧 총대의 위력이고 사회주의수호의 힘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90년대의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인민군대를 수령결사옹위군으로 키워 나가시었다.

그것은 이전 소련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의 붕괴의 교훈과 관련된다.

수백만의 대병력과 세계 1등급의 현대적인 무장장비를 자랑하던 이전 소련군대는 전쟁도 아닌 평화시기에 당도 사회주의도 지켜내지 못하였고 자기 존재마저 유지하지 못하였다.

무장력의 주체인 군인대중이 개인이기주의와 자유주의, 염전사상에 오염되다보니 군대오는 자기의 고유한 사명을 상실한 무맥한 존재로 사분오열되고 요란하던 무장장비는 유명무실한 것으로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군건설위업에 대한 올바른 영도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사상교양사업을 홀시한 탓이었다.

현대사회민주주의자들은 군대 안에 있는 총정치국을 당조직과 정치사업을 지도하는 당정치기관이 아니라 군인들이 문화오락사업이나 조직하고 정치군사소식이나 알려주는 일반문화행정기구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하여 이 나라들의 군대는 사상적으로 와해되어 나무막대기나 다름 없는 처지에서 사회주의의 붕괴를 구경이나 했던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교훈에 기초하여 군대가 당의 위업, 수령의 위업에 충실하도록 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여 모든 인민군장병들을 수령결사옹위의 총폭탄전사로 준비시키는 것을 군력강화의 기본고리로 틀어쥐고 나가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담화하시는 자리에서 그리고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지도과정에 인민군대안에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그 어느 때보다 강화할 데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방도들을 밝혀주시었다.

주체81(1992)년 1월 1일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하신 담화에서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더욱 빛내이기 위한 방도를 밝혀주시면서 인민군군인들 속에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높일 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모든 군인들을 참다운 충신이 되도록 할 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모든 군인들을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한 진짜배기 혁명가로 준비시키는데 첫 째가는 주목을 돌려야 합니다. 인민군대는 총을 쥐고 있는 대오인 것만큼 어느 대오보다도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야 합니다. 혁명군대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제일생명으로 간직할 때에만 자기의 사명과 임무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습니다. 혁명군대는 수령에 의하여 창건되고 당과 수령의 영도 밑에 강화발전됩니다. 인민군대는 오직 당과 수령의 영도 밑에서만 존재하고 활동할 수 있습니다.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떠나서는 혁명군대의 존재와 그 운명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민군대의 존재와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근본요인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입니다. 우리는 인민군군인들에게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 제일생명이라는 것을 똑똑히 인식시켜 그들이 혁명적 수령관을 튼튼히 세우고 당과 수령을 진심으로 높이 받들며 어떤 역경 속에서도 정치사상적으로, 목숨으로 옹호보위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1(1992)년 2월 4일에도 인민군대를 강화하며 군사를 중시하는 사회적 기풍을 세울 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이 문제와 관련하여 또다시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이 날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서 나서는 과업들을 밝혀주시면서 『내가 오래 전부터 강조하여 오지만 정권은 무력에 의하여 보위됩니다. 이것은 오랜 역사적 과정에 확증된 진리입니다. 당도 군대가 있어야 보위되고 강화발전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그분께서는 『인민군대를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 인민의 군대로 만들자면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를 강화하여 모든 군인들을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한 주체형의 혁명전사로 키워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격변하는 정세하에서 총대의 사명이 어디에 있는가를 명확히 밝혀주는 귀중한 가르치심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령결사옹위의 전형들을 내세워 전군이 따라 배우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었다.

주체81(1992)년 12월 23일이었다. 비행훈련을 성과적으로 마치고 기지로 돌아오던 한 비행기에서 뜻하지 않은 불길이 일어났다. 길영조비행중대장의 비행기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비상정황이었다. 비행기가 그대로 떨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었다.

그곳은 도시주택구역인데다가 한가운데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이 모셔져 있었다. 사람들은 불타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가슴을 조이고있었다.

그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시내 한복판으로 불덩어리가 되어 거침없이 떨어지던 비행기의 기수가 어느새 산기슭쪽으로 향해지더니 또다시 바닷가로 꺾어 들었던 것이다.

비행기는 바다로 육박하였다.

요란한 폭음, 그 메아리…

길영조비행중대장은 비행지휘관으로부터 탈출명령을 받았지만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0.5초의 시간도 다 바쳐 혁명의 수뇌부의 안전을 지키고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이 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현지지도의 길에서 길영조비행중대장의 영웅적 소행을 지켜보신 줄은 누구도 몰랐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훗날 이런 가슴 뜨거운 말씀을 하시었다.

『길영조영웅은 예상치 않은 사고로 불이 달린 비행기에서 탈출하면 얼마든지 살수 있었지만 최고사령부의 안전을 위하여 피끓는 청춘을 서슴없이 바쳤습니다. 길영조영웅이 불이 달린 비행기와 같이 최후를 마친 순간은 비록 몇초밖에 되지 않지만 그는 그 짧은 순간에 보통 사람들이 몇십년이 걸려도 오를 수 없는 영생의 언덕에 올라섰습니다. 길영조영웅은 수령의 전사들이 혁명의 수뇌부를 어떻게 보위하여야 하는가를 실천적 모범으로 보여준 진짜영웅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령의 전사들이 혁명의 수뇌부를 어떻게 보위하여야 하는가를 실천적 행동으로 보여준 길영조비행중대장의 영웅적 위훈을 평가하시고 그를 영웅으로 영생의 언덕에 높이 세워주시었다.

길영조비행중대장에게 공화국영웅칭호가 수여되었으며 그가 속해있던 비행대대가「길영조비행대대」로, 그가 다니던 학교는 길영조중학교로 명명되었으며 학교에 그의 반신상이 세워졌다.

그의 자녀들은 혁명학원에 보내어 당에서 전적으로 맡아 키우도록 하였으며 그의 아내는 소원대로 군복을 입고 남편의 뒤를 이어 혁명의 총대를 틀어 잡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에 그치지 않으시고 언제나 길영조영웅을 잊지 못해하시며 그의 영웅적 위훈을 전군이 따라 배우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영도의 그 바쁘신 길에서도 길영조영웅비행사가 복무하던 비행부대를 찾아주시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환호하는 비행사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시며 부대에 도착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먼저 길영조영웅비행대대에 들리시어 영웅의 사업과 생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요해하시었다.

영웅이 쓰던 학습장들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번져가시던 장군님께서는 길영조가 학습한 책들을 보니 그가 평소에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키우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였다는 것이 알린다고, 그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신념으로 간직하였기 때문에 생사를 판가리하는 위험한 순간에 자신의 생명보다 최고사령부의 안녕을 먼저 생각하고 영웅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다고 말씀하시었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그가 군무생활의 짬시간에 쓴 시들을 보아주시었다.

대대장이 영웅의 자작시 「가장 빛나는 별이 되리」를 읊어드리었을 때였다.

깊은 생각에 잠기시어 영웅이 심혈을 쏟아 쓴 시의 구절구절을 음미하시며 듣고 나신 장군님께서는 길영조가 쓴 자작시에는 그의 숭고한 정신세계가 그대로 담겨져 있다, 그가 쓴 시를 인민군신문에 내보내어 군인교양에 널리 이용하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었다.

『길영조와 같은 수많은 충신들이 있음으로 하여 우리 당이 강하고 우리 조국이 굳건하며 우리 혁명이 백전백승하는 것입니다.

길영조비행대대 비행사들이 길영조영웅의 모범을 따라 배워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이 되겠다고 하는데 동무들의 결의가 반드시 실천되리라고 믿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을 받아 안은 길영조영웅비행대대 비행사들의 가슴마다에는 거세찬 충성의 열풍이 활화산처럼 타 번졌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부대를 떠나시기에 앞서 지휘관들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모든 비행사들을 길영조영웅처럼 준비시켜야 하겠습니다.

부대의 싸움준비를 잘 하여야 하겠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처럼 평범한 비행사를 영웅으로 내세워 주시고도 전군이 그를 본받도록 하기 위하여 깊이 마음을 쓰시었다.

길영조영웅의 비행부대를 현지지도하신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혁명무력강화에서 지침으로 되는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길영조영웅에 대하여 참으로 만 사람의 가슴을 울려주는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그분께서는 길영조동무는 우리 당의 충실하고 훌륭한 비행사라고, 모든 군인들이 혁명적이며 애국적인 길영조동무가 당과 수령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바친 정신도덕을 따라 배우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길영조영웅은 혁명의 수뇌부를 수호하고 전사하였다, 그는 견결한 조선의 영웅이다, 길영조영웅이 발휘한 견결성, 희생성, 영웅성은 모든 군인들과 일꾼들이 따라 배워야 할 정신도덕의 귀감이다라고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말씀에는 길영조영웅을 시대의 전형으로 내세워 전군이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는 총폭탄대오로 되게 하시려는 높은 뜻이 담겨져 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에 받들려 길영조영웅만이 아닌 전체 인민군장병들이 수령결사옹위의 투사들로 자라났다.

주체83(1994)년 1월 조선인민경비대의 두 병사(김철진 23살, 김경철 20살)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에 풍랑을 만나게 되었다. 사나운 파도와 싸우던 그들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표류하다가 남조선 해군경비정에 끌려가게 되었다.

병원에서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하였을 때 그들이 찾은 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휘장이 모셔져 있는 자기들의 군복이었다.

그들은 당장 군복을 가져오라고 강하게 요구하였다.

준엄한 대결장에 나서려면 군복부터 떨쳐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남조선의 정보요원들에게는 이것부터가 첫 타격으로 되었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보요원들이 할 수없이 군복을 가져오자 초상휘장을 모신 상태부터 확인한 그들은 버젓이 군복을 차려 입고 대결에 나섰다.

그들이 추호의 양보없이 투쟁한 것은 수령권위옹호였다.

정보요원들이   감히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존함을   존칭수식사없이    부르려   하자    그들은    어디라고  함부로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의 존함을 부르는가, 정 부르겠으면 존칭수식사를 붙여 정중히 부르라, 그렇지 않을 때는 당신들과 말도 하지 않겠다, 그리고 우리 입에서 더는 한마디도 듣지 못할 것이다라고 큰 소리쳤다.

정보요원들이 저들의 노래를 아는 것이 있는가고 물었을 때에는 그들은 우리에게는 가장 훌륭한 노래가 있다고 하면서 노래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를 불러 아연 실색케 했다.

생활형편이 어떻소, 금시계요, 자가용차요 하며 마음을 흔들어 놓으려 들 때에는  다  걷어치우라,  우리는  부모의  슬하를  떠나서는  살수 있지만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을 떠나서는 살수 없는 병사들이다, 우리는 기어이 장군님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며 비열한 잔꾀를 일축해 버렸다.

유혹으로 통하지 않자 외딴 곳으로 끌고가 사정없이 차고 때리며  당장  쏘아  죽일  듯이  위협해  나서자  오히려  더욱  기상이  도고하여 우리는 김정일장군님의 전사다, 살아서 못 가면 죽어서라도 기어이 장군님의 품으로 돌아가고야 말 것이라고 폭탄선언으로 대답해 나섰다.

「하느님」밖에는 믿을 데가 없다며 성경책을 내놓았을 때는 우리에게는 김정일장군님이 곧 하늘이시다, 우리는 장군님만을 믿는다, 우리는 이긴다, 천출명장이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명령만 내리신다면 우리 인민군대는 총폭탄이 되어 싸운다, 그 힘을 당할 자는 이 세상에 없다고 당당히 외쳤다.

그들은 이렇게 자기의 최고사령관의 권위를 옹위하여 일당백이 아니라 일당천, 일당만이 되어 맹수와도  같이  싸워  신념의  대결에서  승리자가 되어 장군님의 품으로 끝내 돌아왔다.

그들이 절해고도와도 같은 형편에서도 그토록 당당하고 단호하게 행동할 수 있은 것은 바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권위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옹위해야 한다는 투철한 수령결사옹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기에 남조선의 신문, 방송들은 인민군전사들이 고문과 기만에 실수라도 할가보아 『혀를 끊으려고 이발로 깨물었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의식을 차릴 수 없었다.』고 하면서 『김정일최고사령관에 대한 노래를 부른 것은 탄복할만 한 일』(『한국일보』 1994년 1월 30일)이라고 전하였고 그들의 정치사상상태를 일등급의 군인기질을 보여준 것으로 평하였다.

선발된 군인도 아닌 보통 병사들의 이러한 행동을 통해서도 세상사람들은 인민군장병들의 심장 속에 간직된 수령결사옹위정신이 얼마나 투철하고 열렬한 것인가를 잘 알 수 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들의 견결한 투쟁정형을 높이 평가하시며 그들이 온갖 위협공갈과 회유기만책동에도 끄떡하지 않고 조선인민군병사의 일당백기상을 과시하며 용감하게 맞받아 싸워 우리 당의 품, 사회주의조국의 품으로 당당히 돌아온 것은 우리 청년들이 지닌 혁명적 신념과 불굴의 투지를 뚜렷이 보여준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위훈을 높이 평가하시어 각각 공화국영웅칭호와 「김일성청년영예상」을 수여하도록 해주시고 성대한 평양시환영군중집회까지 마련해 주시었다. 그리고 그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조선노동당원의 영예도 지니도록 해주시었다.

특히 그들이 경애하는 장군님께 삼가 감사의 편지를 올리었을 때에는 다음과 같은 친필서한까지 보내주시었다.

조국은 동무들과 같은 훌륭한 아들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나는 동무들이 적구에서 체험한 귀중한 마음을 간직하고 당과 조국을 보위하는 성스러운 위업에 한생을 빛내어 가리라는 것을 굳게 믿습니다.

                                                                                         김 정 일

수령결사옹위의 산 모범을 창조한 병사들의 신념에 대한 값 높은 표창이었다.

전군이 이렇게 수령결사옹위의 전초병대오로 준비되었다.

혁명무력의 최고사령관 김정일장군님의 손길아래서 조선인민군은 사상의 강군, 신념의 강군으로서 위용을 떨쳐갔다.

    

 

신념으로 존엄을 지키고 신념으로 승리와 위훈을 떨쳐가는 격변의 90년대었다.

신념의 강자만이 살아남고 신념의 강자만이 자기의 위업을 확신하며 자기가 선택한 길을 따라 곧바로 나아가는 투쟁과 전진의 90년대.

총포성이 울리지 않는 속에 반미대결전이 최절정을 장식하고 있던 주체82(1993)년 3월 19일 분열의 상징 판문점은 분단이래 최대의 인산인해를 이룬 채 뜨거운 열기로 끓어 번지고 있었다.

남조선의    감옥에서    34년간이나    옥중투쟁을    한    비전향장기수    이인모노인이     이    날    판문점을    넘어    조국의 품,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으로 돌아왔다.

한때 사람들은 남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가 27년간 감옥생활을 한데 대하여 「세계최장기수」라고 격찬했는데 이인모노인의 감옥생활은 그보다 훨씬 더 긴 것이다.

인생의 절반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나 긴 세월, 그것도 인생의 황금기라고 하는 청장년시절을 철쇄에 묶여 감옥에서 보내면서도 조선노동당원으로서, 조선인민군 종군기자로서의 지조를 지켜 원수들과 굴함 없이 싸운 그가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받들리우며 은혜로운 사랑의 꽃수레에 올라 말 그대로 금의환향하는 것이었다.

신념과 의지의 화신이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이인모노인의 혁명가적 특질과 이루어 놓은 공적을 높이 평가하시어 불러주신 고귀한 칭호였으며 귀환 역시 그분께서 숭고한 혁명적 의리와 사랑으로 마련해주신 길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 북과 남사이에 대화의 문이 다시 열리고 민족사적인 중요문제들이 논의되는 때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인모노인의 귀환을 북남고위급회담의 중요의제로 상정시키도록 해주시었다. 그리고 1년나마 그것을 목표로 적극적인 투쟁을 벌여 나가도록 하시었다.

이러한 혁명적 의리와 사랑이 너무도 크고 고마워 이인모노인이 전쟁시기 남진의  길에  오를  때  기여  다니던  딸이  감사의  편지를  올리었을 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신념과 의지의 화신 이인모동지를 우리 당은 잊지 않고 있다는 크나큰 믿음이 담긴 회답서한을 보내주시었다.

신념과 의지의 화신!

그것은 혁명의 길에 나선 사람에게 있어서 최상최대의 영예이고 표창이 아닐 수 없다.

혁명의 길은 험난하고 시련에 찬 길이다.

필요하다면 단두대에도 서슴없이 올라서고 혁명만세를 외치며 빗발치듯 쏟아지는 탄우 속을 달려야 하는 혁명의 길, 쓰러지면 기여서라도 가고 자기 대에 못다 가면 자식들 대에도 가야 하는 것이 혁명의 길이다.

마음이 약하고 심장이 약하여 고난과 시련 앞에서 용기를 잃고 주저앉는 사람, 죽음을 두려워하는 의지박약자들, 제 한목숨 건지기 위해 다른 것을 다 희생시키려 드는 배신자, 변절자들, 신념이 없는 자들은 똑바로 걸을 수도 끝까지 갈수도 없는 것이 혁명의 길이다.

신념은 혁명위업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이며 그 승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나갈 억센 각오이고 의지이다.

신념이 없이는 한치도 전진할 수 없는 준엄한 이때에 비전향장기수 이인모노인이 발휘한 역경 속에서 검증된 신념과 의지야말로 치열한 반미대결전에서의 승리를 안아올 투쟁의 무기로 될 것이었다.

이인모와 같이 그렇듯 간고한 시련과 역경을 이겨낸 신념을 지닌 군대와 인민을 당할 자 과연 이 세상 그 어디에 있으랴.

이인모의 귀환 그 자체가 사회주의의 승리, 주체혁명위업의 정당성을 과시할 것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인모노인의 귀환문제를 이렇게 반미대결전의 승리를 안아올 돌파구로 보시고 그렇듯 큰 의의를 부여하시어 마침내 목적을 이루어 내도록 하신 것이다.

준전시상태가 선포되어 각일각 정세가 긴박하여 가고 있던 3월 19일 오전 11시 4분, 드디어 판문점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 이인모노인이 들어섰다.

그의 모습은 그가 감옥에서 쓴 시 그대로였다.

 

움푹하게 패인 두 눈에선

그렇게도 아름답던

지난 날 젊은 빛을 찾을 길 없고

튀어나온 광대뼈밑 기여든 볼

거칠게 금이 간 주름살 속에선

불타 오르던 청춘의 정열

찾을 길 없나니

이제 청춘은 갔다

그러나 그 청춘을 너는

헛되이 보내진 않았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 싸움 속에

그것을 바친 것이다
 …

 

그가 육체적으로 잃을 것은 다 잃으면서도 오로지 굳세게 간직하여 온 신념, 그것은 과연 어디에 뿌리를 둔 것인가.

해방 전 고향인 풍산땅에서 조국광복회 회원으로 활동, 해방 후 다년간 당일꾼으로 사업, 전시 조선인민군 종군기자로 전쟁참가, 일시적 후퇴의 길에 오르지 못하고 지리산에 입산하여 빨치산투쟁 전개, 전투에서 부상, 포로…

이러한 경력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인생의 출발점을 위대한 수령님을 따르는 길에 세웠고 감옥 안에서든 감옥 밖에서든 오로지 그 한길만을 걸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이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책임진 유일하게 정당한 정의의 길이라는 대쪽같은 혁명관,  수령관을 세웠던 것이다.  그는 또한 감옥생활도중 주체혁명위업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에  의해   대를  이어  확고히  계승되어   나간다는  소식에 접하여 그분을 운명의 태양, 정신적 지주로 모시었다.

이인모 그는 군인이었다. 군인이었기에 총대와 같이 변심을 모르고 오로지 신념을 지켜 수십년세월 독감방에서 다른 사람과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는 고독도 이겨냈으며 원수들의 전향공작도, 살점을 뜯기고 뼈를 부수는 고문도 총대정신으로 다 이겨냈던 것이다.

이렇게 되어 경애하는 장군님과 이인모는 비록 한번 만나보지도, 손목 한번 잡아보지도 못하였지만 그 어떤 물리적 힘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는 유대를 갖게 된 것이며 위대하고 고귀한 선군혁명동지로 맺어진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당과 국가의 지도간부들이 판문점에까지 나가 그를 맞아들이고 30여만에 달하는 평양시민들과 지방의 인민들이 개성-평양사이의 연도에 떨쳐나 환영의 꽃바다를 펼치며 맞이한 이인모는 자기의 의사를 말로써도, 손동작으로써도 표현 못하는 폐인이었다.

극도로 쇠약한 심장기능상태와 열악한 영양상태, 영에 가까운 전신운동기능과 심한 언어장애 및 호흡장애, 그야말로 그는 살아있는 「화석」, 「죽은자」였다. 그를 검진한 조국의 유능한 의료집단도 회복불능한 상태의 그를 놓고 난감해 하였다. 남조선당국자들은 2주일이상 더 살지 못한다는 의사들의 의견을 쫓아 그를 붙잡고 있다가 송장을 치르게 되면 남조선 안에서 사회적 비난을 받고 우리의 강력한 규탄에 직면하게 되겠는데 차라리 그를 돌려보내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우리의 귀환요구에 응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 꺼질지 모를 그의 생명의 빛은 오로지 오매에도 그리던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 조국의 품에 안긴 환희와 영광, 그것에 의지해 유지될 뿐이었다.

이인모노인의 몸상태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꺼져가던 그의 생명을 소생시키기 위한 치료작전을 지체없이 펴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의료일꾼들에게 의학은 이인모동지에게 너무도 명백한 종말을 선고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주체적인 인간학이 있지 않는가, 지금 형편에서 그를 구원할 수 있는 출로는 무조건 살려내야 한다는 인간애에 기초한 결단성이다, 이인모동지를 살려내는 것은 공산주의자들의 절대적인 의무이며 그를 사회주의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진지하게 성원해준 해내외의 모든 동포들에 대한 응당한 도리이다, 이인모동지를 위해서는 그 어떤 타산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면서 전문의료일꾼만 하여도 20여명을 더 보내주시어 각 장기별로 전문치료를 들이대게 하시고 의약품을 비롯한 치료물자들도 최우선적으로 보장해 주시었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위에도 꽃을 피우는 법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극진한 사랑은 그대로 불사약이 되어 이인모노인은 점차 감각기능을 회복해갔다.

그는 입원실벽에 모셔진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초상화를 의식하는 순간 조국의 품에서 되찾은 생의 희열로 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국

 

남진의 길에서도 부르고 지리산에서도 불렀으며 철창 속에서 전향을 강요하는 원수들과의 투쟁 속에서도 부르며 힘과 용기를 가다듬던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그는 생을 준 은인에게 드리는 감사의 터침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이인모노인을  소생시키기  위한   모든  치료대책을   세워주시고도   그가   병상에   누워있는   긴   나날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가   노래를   불렀다는   보고를   받으시는   순간   너무나   기쁘시어   이제는   됐다고,   이인모동지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그에게 소생의 원천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그분께서는 이것은 그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며 옥중고초를 이겨냈듯이 병을 털고 일어날 수 있다고 조국 앞에 다지는 신념의 맹세라고, 그에게 녹음기와 녹음테이프들을 보내주어 해방직후와 전시에 부르던 노래들을 들으며 의식을 되살리고 용기를 얻게 하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미 그의 생존과 투쟁소식이 알려진 주체79(1990)년에 그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하시었는데  그가  돌아온 후 「김일성훈장」을 수여하게 하시고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여러 부들에서 그의 영웅적 투쟁을 잘 형상하도록 하시었다. 희귀한 남방과일이 생겨도, 백두산일대에서 잡은 산천어 몇  마리를  놓고도  옥중에서    고생한  그를  생각하여  보내주시었고   해외동포들이  그분의 건강을 축원하여 지성껏 지어 올린 귀한 이불과 포단도 수십년세월 차디찬 감방에서 얼었던 몸을 녹여주자고 하시며 그에게 보내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인모노인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에는 정녕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이인모동지가 조국에 돌아와 처음으로 맞는 어버이수령님의 탄생기념일을 중환자실에 누워서 맞게 해서야 되겠는가고 하시면서 치료를 다그쳐 그가 하루속히 농흉을 가시고 점적기도 뗀 상태에서 어버이수령님의 탄생기념일을 맞도록 해야 하겠다고 간곡히 이르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배려에 의하여  이인모노인은  병상에서   일어나   앉게   되어    4월 15일에는   남녘땅에서   꿈결에도   그리워하던 어버이수령님을 만나 뵙는 최상최대의 영광을 지니게 되었다.

이 날 수령님께서는 그의 두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고 자신의 넓은 품에 꽉 껴안아 주시었다. 그리고 그간의 치료정형이며 건강상태도 일일이 알아보시고 동무와 같은 신념과 의지의 화신, 훌륭한 공산주의자를 가진 것은 조선노동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커다란 자랑이라고 하시며 입당당시의  당원증번호에   자신께서   수표하신   당증도   안겨주시고   그의   팔목에는   존함을   모신   고급손목시계를   채워주시었다. 수령님께서는 이 날 그와 함께 역사에 길이 남을 기념사진도 찍으시었다.

건강이 회복되어 감에 따라 이인모노인은 운명의 태양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 뵙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인모노인이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하여 처음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초엽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주소성명도 알지 못할   생면부지의   사람으로부터   차입물을   받았는데    그    속에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위업을   계승해 나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해 쓴 글쪽지가 들어있었다.   그런   일은   옥중에서   맞은   장군님의   탄생일 때에도   거듭되었다.  이인모노인은 김정일장군님을 어버이수령님과 꼭 같으신 혁명의 태양, 민족의 태양으로 마음속에 모시었고 그 정신력에 의지하여 원수들의 온갖 유혹과 육신을 부시는 모진 고문도 이겨냈다.

주체82(1993)년 7월 23일 이인모노인을 전국노병대회에 불러주신 장군님께서는 대회가 개막되기 전에 그를 만나주시었다. 이인모노인은 감격과 격정에 휩싸여 그분께 가슴 속에 간직하고 또 간직해온 감사의 인사를 드리었다.

장군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감사하다고, 건강이 다 회복되었다니 정말 기쁘다고 하시며 그가 노병대회에 참석하게 된 것을 축하해 주시었다.

남녘의 철창 속에 갇혀있을 때에는 신념과 의지의 기둥으로 마음속에 계셨고 조국에 돌아와서는 다 죽어가던 고목같은 육체를 싱싱한 청송으로 소생시켜 주신 운명의 태양을 우러르는 이인모노인의 눈가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버림받고 천대받던 자신을 당원으로, 종군기자로 키워 참된 삶의 보람을 누리게 해주신 고마운 당과 수령님의 은덕에 의리로 보답하고저 지조를 지켜온 그였다. 전향문 한 장이면 그토록 끔찍스러운 감옥생활을 면할 수도 있었던 순간들에 그 모든 유혹들을 물리치고 지조를 지켜낼 때 자기 생애에 이런 영광의 날이 있을지 상상도 못해본 이인모영웅이었다.

의리를 지키는 것이 인간의 응당한 도리일진대 꺼져가던 육체에 재생의 활력을 부어주시고 죽음의 감옥과 단두대에서 지켜낸 정치적 생명을 온 세상에 빛내어 주시는 운명의 태양, 위대한 영장을 우러르는 그의 주름깊은 두 볼로는 감격의 눈물, 행복의 눈물이 줄줄이 흘러내렸다.

그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배려는 참으로 다심하였다.

아늑한 정원이 곁달린 궁궐같은 훌륭한 집, 최상급의 가구들과 녹화기와 녹음기, 텔레비전과 피아노를 보내주시고 영양섭생을 잘 하도록 요리사를 붙여주시었으며 불편한 몸을 생각하여 고급승용차도 보내주시었다. 그리고 조국에 돌아와 맞게 된 76돌 생일에는 생일상을 보내주시었고 여든돌 생일상도 보내주시었다.

이인모노인은 장군님의 자애로운 어버이손길에서 자기의 생일날을 되찾게 되었다. 원래 그는 생일을 잊고 지내온 사람이었다. 혁명가의 신념으로 살아온 그는 적들에게 체포되었을 때 자기의 육체적생명을 받아 안은 생일날은 잊어도 정치적 생명을 준 조선노동당의 창건일만은 잊어서는 안된다는 신조를 안고 이미 체포되어 조사를 받을 때 당창건일인 10월 10일을 자기 생일날이라고 대답한 이후 감옥에서 이 날이 오면 자기스스로 당생활을 총화하며 정치적 생명을 이어왔다. 그러던 그에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가 출생한 날에 생일상을 보내주시었던 것이다.

이인모노인은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대궐같은 집에서 처자와 손자손녀들을 거느리고 매일같이 경사 속에 살면서 그분께서 배려해주신 승용차와 버스로 만경대를 비롯한 평양시내도 돌아보았고 주체82(1993)년 8월에는 혁명의 성산 백두산을 답사하고 고향인 풍산에도 다녀왔다.

그는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자욱이 어려있는 백두산에도 오르고 삼지연을 비롯한 항일혁명전적지들과 장군님께서 탄생하신 백두산밀영도 돌아보았다. 백두산은 그에게 심원한 혁명정신을 안겨주었고 힘과 용기를 용솟음치게 했다. 그는 거기서 주체혁명위업의 억년 드놀지 않는 만년초석을 보 았고 우리   식   사회주의가   제국주의연합세력의   도전을   짓뭉개며   전진하는   그   필승의   원천을    보았다.   그  초석,  그  원천은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마련하시고 그분들에 의해 빛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이 더욱 든든해졌고 신념과 의지를 더 굳게 다졌다.

그는 고향방문에서도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가 다니던 학교를 이인모소학교라고 명명해 주시고

 

신념과 의지의 화신

이인모동지를 우리 당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김 정 일

                   1993. 2. 24.

 

라고 새긴 친필비까지 세워주도록 하시었던 것이다.

그 친필비 앞에서 그는 마음 속으로 신념과 의지의 최고화신은 바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라고 외쳤다.

혁명적 신념과 의지로 더욱 장약된 주체혁명은 반미대결전의 역사적 승리를 향해 도도히 전진해 갔다.

    

 

주체82(1993)년 7월 27일 저녁 대동강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능라도의 5월1일경기장에서는 15만명의 관객이 꽉 들어 찬 가운데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돌 경축야회가 성대히 개막되었다.

경기장 봉화대에서는 전승을 상징하는 봉화가 활활 타올랐다.

야회장상공에 전승의 축포가 연이어 터져올라 수도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속에 마침내 장중한 선율의 음악이 장내에 울리면서 야회장의 대형배경대에 「우리는 승리하였다」라는 글이 새겨졌다.

순간 우뢰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올라 천지를 진감하였다.

8만여명의 청년학생들과 인민군군인들, 체육인, 예술인들이 배경대의 변화무쌍한 화폭들에 보조를 맞추어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시고 이 땅위에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제도를 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과 군대와 인민의 불굴의 기상을 시와 노래, 무용과 곡예, 예술체조 등에 담아 대서사시적 화폭으로 펼쳐 보였다.

객석에서는 「우리는 승리하였다」는 글자가 새겨진 그 순간부터 공연 전 과정 환호성과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 격정과 눈물의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정녕 무엇을 말해주는가.

1950년대의 반미대결전에서 승리한 것처럼 오늘의 사회주의수호전에서도 우리는 승리하고 있다는 당당한 긍지와 자부였다.

어제와 오늘뿐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7.27은 승리의 날이 될 것이라는 확신의 분출이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반미대결전에서 승리한 것처럼 우리 군대와 인민은 오늘의 반미대결전에서도 그리고 앞으로 그 어떤 원수와 맞서 싸워도 승리한다는 확신과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 이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구상이고 의도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82(1993)년 2월 17일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돌을 성대히 기념할 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이러한 자신의 의지를 구체적으로 피력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올해 7월 27일은 우리 인민군대와 인민이 조국해방전쟁에서 승리한지 40돌이 되는 매우 뜻깊은 날이라고, 우리 군대와 인민은 조국해방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미제의「강대성」에 대한 신화를 깨뜨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미제가 내리막길에 들어서는 시초를 열어 놓았다고, 조국해방전쟁에서의 우리 인민군대와 인민의 승리는 세상사람들에게 제국주의자들이 제 마음대로 국제문제를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영원히 지나갔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었으며 비록 작은 나라라 하더라도 전체 인민이 수령의 두리에 굳게 뭉쳐 제국주의자들과 맞서 싸운다면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다는 신심을 안겨주었다고, 조국해방전쟁에서 미제와 그 앞잡이들을 때려 부수고 승리한 것은 우리의 크나큰 자랑이라고, 그래서 당에서는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돌을 성대히 기념하기로 하였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우리 당이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돌을 성대하게 기념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 인민에게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미제와 그 앞잡이들을 때려 부수고 승리한 것처럼 앞으로 그 어떤 원수와 싸워도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심을 북돋아 주자는 데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 인민군대와 인민은 역사상 처음으로 미제의 거만한 콧대를 꺾어놓고 민족적 존엄과 슬기를 만천하에 떨친 존엄 높은 영웅적 군대이며 인민입니다.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돌을 성대히 기념하게 되면 우리 인민군대와 인민은 제국주의자들이 제아무리 새 전쟁도발책동에 미쳐 날뛰어도 만만한 투지와 신심을 가지고 더욱 억세게 싸워 나갈 것이며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악랄한 반사회주의책동을 걸음마다 저지파탄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돌을 의의있고 성대하게 기념함으로써 우리 인민과 인민군군인들은 물론, 세계 혁명적 인민들이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책동을 짓부수고 사회주의위업의 완성을 위한 투쟁에 한결같이 떨쳐 나서도록 하여야 합니다.』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돌의 주제는 이렇게 명백히 오늘의 반미대결전에서의 승리에 대한 신념이고 지향이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전승 40돌을 맞으며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을 건설하고 전국노병대회를 소집하며 전승절에는 열병식과 대군중시위를 할 데 대한 결정을 채택하였으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는 전승 40돌에 즈음한 당중앙위원회구호를 발표했다.

전승 40돌을 사회주의승리자의 대축전으로 빛내이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구상과 의도를 받들고 전군, 전민이 떨쳐 일어났다.

총 15만㎡의 부지면적을 정리하고 중심주제 조각상과 10개의 부주제군상들을 앉힐 기념탑건설장은 건설자들뿐 아니라 전국의 지원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채 낮과 밤이 따로 없이 부글부글 끓었다.

전군, 전민은 7.27을 승리의 날로 빛내이기 위해 미제의 「핵의혹」소동과 새 전쟁도발책동을 단호히 짓부수며 새로운 승리를 마련해 갔으며 인민군대의 정치사상적, 군사기술적 위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 모든 군인들은 훈련에서 더 많은 땀을 흘렸다.

온 나라에 군사를 중시하는 기풍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기념경축행사에서 큰 관심을 돌리신 것은 전국노병대회였다.

주체81(1992)년 어느 날 일꾼들에게 인민군대의  강화발전에서 나서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랜 기간의 혁명투쟁에서 단련되고 준비된 미더운 노병들이 있기에 우리 당이 강하고 우리 조국이 위력하다고 하시면서 전승 40돌을 맞으면서 전국노병대회를 진행하자고 말씀하시었다.

총대로 개척되고 총대로 승리해가는  주체혁명위업을  계승완성해  나가는   데서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될   전국노병대회를 발기하신 장군님께서는 전국의 노병들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가 참석하도록 중앙대회와 함께 전국의 도, 시, 군들에서 같은 시간에 동시에 대회를 열도록 하시었다. 이것은 대회라고 하면 선발된 대표들이 모여 중앙대회를 하는 것으로 되어 온 전례를 깨뜨린 것으로서 전쟁노병들에게 베풀어진 또 하나의 특전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회의 형식과 방법, 규모뿐 아니라 대회참가자들의 견학조직사업문제와 대회장소 및 대회참가자들의 숙식문제, 대회에 참가하는 대표들의 나이가 많은 것만큼 강력한 의료집단을 꾸려 사고를 내지 않도록 할 데 대해서 까지도 따뜻이 보살펴 주시었다. 또한 준전시상태의 복잡다단한 정국을 예리하게 주시하시면서 전국, 전군, 전민을 진두지휘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전승 40돌을 성대히 기념하기 위하여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돌 기념훈장을 제정함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을 발표하도록 하시었다.

마침내 승리의 7.27을 맞이하는 뜻깊은 7월이 왔다.

수도 평양에서는 통일거리에 새로 일어서는 3만세대의 살림집건설이 완공되었고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이 건설되었다. 그밖에도 3대혁명전시관을 비롯하여 30여개의 대상건설이 끝났다. 청소년학생들은 전승 40돌을 맞으며 소년호 비행기와 함선, 포들을 인민군대에 증정하였다.

이렇게 온 나라에 경축분위기가 짙어가는 속에 전승절 기념행사들이 진행되었다.

7월 23일 4.25문화회관에서 전승 40돌을 기념하는 첫 행사로서 전국노병대회가 성대히 개막되었고 같은 때에 지방마다에서도 노병대회가 열리었다.

환영곡이 울리는 가운데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 김일성주석을 모시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대회주석단에 나오시었다.

순간 전쟁노병들이 터치는 『만세!』의 환호성은 온 대회장을 진감하였다.  그 환호성은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대회를 진행하게 되는 전쟁노병들의 무한한 영광과 행복의 분출이었다.

대회에 참석한 전체 노병들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휘장과 대표증, 전승 40돌 기념훈장과 귀중한 선물들이 수여되었다. 대회보고와 대회에서 한 노병들의 토론이 빠짐없이 신문과 방송으로 널리 보도되었으며  온   나라의   관심   속에  대회가   성과적으로  치르어졌다.  대회참가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영광의 기념사진도 찍었고 124명의 노병들이 환갑상과 생일상까지 받아 안았다.

대회에 참석한 노병들은 자신들이 받아 안은 하나하나의 배려가 곧 경애하는 장군님의 혁명적 의리와 사랑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돌기념훈장」을 수여받을 때 잊을 수 없는 전화의 나날을 돌이켜보게 하는 금빛훈장을 쓸고 또 쓸어보며 노병들은 대회장홀의 미술작품전시회장에서 본 「버림받은 노병들」이라는 그림을 생각했다.

그림은 사회주의가 붕괴된 어느 한 나라의 장마당에서 장령의 군복과 훈장들을 펴놓고 팔리기를 기다리는 노병부부를 형상하고 있었다. 궁색한 살림이 엿보이는 초췌한 옷주제며 만년의 비운을 말해주는 굽은 등허리, 주름살투성이의 기름빠진 얼굴모습은 흥이 나서 싸구려를 외치는 장사꾼들과 판이한 대조를 이루면서 먹고 살기 위해 조국을 지켜 싸운 영웅전사의 존엄과 명예마저 팔지 않으면 안되는 기막힌 처지를 통절히 호소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대조적인가!

온 나라가 축복하는 영광의 단상에 올라 빛나는 훈장을 받아 안은 노병들의 가슴은 끝없는 격정으로 차고 넘쳤다.

7월 26일에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제막식이 성대히 진행되었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역시 경애하는 장군님의 발기와 정력적인 지도밑에 건립된 대기념비적 창조물이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벌써 주체81(1992)년 4월에 전승 40돌을 의의있게 경축할 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이 날을 맞으며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식의 독특한 기념탑을 세울 구상을 펼치시었다.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쳐 관계부문의 일꾼들에게 기념탑을 세울 위치와 기념탑의 성격과 형성안 등 오랫동안 무르익혀오신 기념탑건설구상을 일일이 알려주시었다.

특히 그 해 5월 어느 날 그분께서는 기념탑건립과 관련하여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돌을 계기로 기념탑을 세우고 전승기념일을 뜻깊게 쇠는 것은 정치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 세계 제국주의우두머리인 미제를 때려 부수고 승리한 나라도 우리 나라밖에 없으며 전후 40년동안 사회주의기치를 높이 치켜들고 승승 장구해온 나라도 우리 나라밖에 없다, 그런 것만큼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을 세우고 전승 40돌을 크게 기념하는 것은 조국해방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것과 함께 우리가 지난 40년동안 사회주의를 고수하여 오면서 이룩한 승리를 기념하는 것으로 되며 동방일각에서 우리 식 사회주의가 굳건히 고수되고 승리적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것을 온 세상에 과시하는 것으로 된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을 세우는 것은 단순한 탑을 하나 세우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세대에 세우는 기념비로서 시대적 의의를 가지는 커다란 정치적 문제이라고 가르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준전시상태의 긴박한 정세가 조성되었던 주체82(1993)년 3월 중순에도 전승기념탑은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이자 40여년의 사회주의의 승리기념탑이라고 지적하시면서 사상예술적으로 손색없이 잘 건립해야 한다고 당부하시며 전승기념탑건설을 중단없이 계속 내밀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쳐 기념탑건설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일일이 알아보시고 다 풀어주도록 하시었다. 7월 중순 어느 날에는 준공을 앞둔 기념탑을 몸소 돌아보시고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이 아주 잘 되었습니다. 만점짜리입니다.』라고 만족을 표시하시었다.

일꾼들은 전승 40돌의 연륜이 안고 있는 깊은 의미를 높은 정치적 안목과 비범한 예지로 밝히시며 총대로 사회주의위업의 종국적 승리를 마련해 나가시려는 장군님의 확고한 의지를 가슴속깊이 뜨겁게 느끼었다.

그 사랑에 떠받들려 지구위에 사나운 역풍이 몰아치고 도처에서 승리자들의 위훈이 어려있는 탑들이 사라져가던 때에 평양에서는 강대한 제국주의침략자들을 타승하고 전후 40년동안 사회주의를 승리적으로 고수하고 빛내어온 우리 인민의 역사적 승리를 온 세상에 자랑 떨치게 될 불멸의 기념비가 솟아올랐다.

제막식에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김정일장군님께서 전국노병대회참가자들과 함께 참석하시었다.

풍치수려한 보통강반의 넓은 부지에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과 다리를 사이로 잇닿아 있는 전승기념탑은 교양적 의의가 클 뿐 아니라 그 사상주제적 내용과 형식에서도 세계 그 어느 나라의 기념탑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념비적 걸작이다.

기념탑의 대문을 들어서서 양옆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와 전쟁영웅들의 위훈을 노래한 헌시비가 세워져 있다.

당기와 군기앞에 총을 멘 인민군군인의 조각상이 형상된 문주를 지나 더 들어가면 대문과 마주한 중심축 끝에 전쟁에서 미제를 타승한 긍지와 자부심에 넘쳐 공화국깃발을 힘차게 휘날리며 만세를 부르는 인민군병사의 중심주제 「승리」조각상이 27m의 높이로 솟아있다. 그리고 문주에서 「승리」조각상에 이르는 넓은 기념비구역 양켠에는 「낙동강도하전투」, 「조국의 바다를 지켜」, 「적후인민유격대원들의 투쟁」, 「직사포를 고지에로」, 「월미도의 영웅들」, 「대전해방전투」, 「조국의 하늘을 지켜」, 「해방된 남녘땅에서」, 「후방인민들의 전선원호」, 「1211고지전투」라고 이름지은 10개의 부주제 조각군상들이 자리잡고 있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은 단순히 전승을 상징하거나 열사들을  추모하는 탑이 아니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군사사상과 전략전술, 주체전법의 위대한 생활력, 인민군대와 인민의 영웅적 기백과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을 생동하게 담았을 뿐 아니라 경애하는 장군님을 높이 모시고 사회주의조국을 무장으로 지켜갈 혁명의 3세, 4세들의 굳은 의지와 신념도 담고 있는 시대의 영웅기념비이다. 또한 사회주의가 붕괴된 나라들에서는 전승기념비들이 여지없이 부서지고 훼손모독당하고 있는데 비한 우리 식 사회주의의 우월성과 불패의 위력의 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승절 경축행사에서 절정을 이룰 열병식도 성대히 거행되도록 이끄시었다.

주체81(1992)년 11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이 날 장군님께서는 인민무력부의 책임일꾼들에게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돌을 맞으며 기념탑이나 하나 건립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돌을 뜻깊게 기념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돌경축 열병식을 성대히 조직할 데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승 40돌을 맞으며 열병식을 하는 목적은 간부화된 인민군대의 위력을 시위함으로써 인민들에게는 승리의 신심을 주고 적들에게는 공포를 주자는 데 있다고 가르쳐주시었다.

전승 40돌을 맞는 뜻깊은 이해의 2월 어느 날에는 열병식에 참가하는 여러 단위의 책임일꾼들을 부르시어 열병종대의 편성과 열병훈련조직진행을 위한 방식상학도 조직하여 주시고 열병훈련의 단계와 그에 따르는 구체적인 과업들을 제시해 주시었다.

주체82(1993)년 7월 27일 드디어 전승 40돌을 경축하는 열병식이 거행되었다. 김일성광장과 그와 잇닿은 시내도로들에는 열병대오가 눈뿌리가 모자라게 정렬해 있었다.

오전 10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열병식주석단에 높이 오르시었다.

순간 『만세!』의 환호성이 하늘땅을 진감하고 장쾌한 축포와 오색영롱한 고무풍선들이 하늘을 메우며 날아 올랐다.

이 날의 열병식주석단에는 장군님의 사랑과 은정에 떠받들려 신념과 의지의 화신 이인모영웅도 올랐다.

김일성대원수 만만세」의 노래선율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장엄한 열병행진이 시작되었다.

열병종대의 맨 앞장에는 서울과 대전, 낙동강과 1211고지를 비롯한 피의 결전장들에서 자랑 떨친 군기들이 주석단앞으로 물결쳐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열병대오에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시었다.

그 숭엄한 화폭을 바라보는 전쟁노병들은 40년전 영웅도시 평양의 하늘가에 승리의 환호성을 높이 울리던 전승열병식장의 장엄한 화폭을 생각하였다.

한세기전 나라를 지킬 군대가 없어, 총 한 자루 변변히 없어 외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망국노의 처지에 빠졌던 우리 민족이었다. 그러했던 우리 민족이 어버이수령님을 모시었기에 강도 일제를 타승하고 조국해방과 자주독립국가건설의 새 역사의 장을 펼쳤고 세계제국주의두목 미제의 침략을 짓부수고 위대한 전승의 축포를 높이 터쳐올렸다. 오늘은 희세의 선군영장을 혁명군대의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시었기에 「푸에블로」호사건, 「EC-121」기사건, 「판문점사건」, 「핵사찰」소동 등 미제의 새 전쟁도발책동을 걸음마다 짓부수고 승리의 열병식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총대로 개척되고 총대로 주체혁명위업을 보위해온 자랑찬 역사를 되새기며 전쟁노병들은 인민군대를 오늘과 같은 필승불패의 무적의 강군으로 키우신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경건한 마음으로 우러렀다.

그러는 가운데 열병행진은 계속되었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과 김일성정치대학, 김책공군대학을 비롯한 군사대학종대들과 각급 군사학교종대들이 지축을 울리며 주석단 앞을 보무 당당히 행진해 갔다. 연이어 노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종대들이 위풍 당당히 나아갔다.

열병대오가 시내 중심거리에 들어서자 연도에 늘어선 수십만 군중이 그들을 환호하여 군민일치의 이채로운 모습을 보이었다.

이 날의 열병식을 본 외국대표들은 한결같이 『세계1등급의 열병식』, 『수령, 당, 대중이 하나의 전일체를 이루고 있는 조선의 참모습』이라고 하면서 격동과 찬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전 캄보디아국왕 노로돔 시아누크는 미국놈들이 열병식만 보아도 벌벌 떨 것이라고 하였으며 쿠바공산당의 한 정치국위원은 저런 일심단결된 인민이 있고 인민을 보위하는 무적의 군대가 있는 한 조선의 사회주의는 필승불패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기니군사대표단 단장을 비롯한 여러 나라 군사대표단 단장들은 한결같이 『오늘 진행한 열병식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의 두리에 굳게 뭉친 조선인민과 인민군대의 위력을 온 세상에 과시했다.』고 하면서 경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참으로 전승 40돌 경축행사는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불멸의 업적과 군대와 인민의 빛나는 위훈 그리고 희세의 영장이신 최고사령관 김정일장군님의 두리에 일심단결하여 그분의 영도따라 영원히 승리의 한길로 달려나갈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의 혁명적 신념과 의지를 힘있게 과시한 승리자의 대축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