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바야흐로 마지막년대, 90년대에 들어섰다. 대정치지진의 폭풍우를 안고 시작된 격변의 연대였다.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이 해체된데 이어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냉전의 한 축이었던 소련이 해체될 위험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것은 미제국주의의 「힘의 정책」, 「평화적 이행전략」에 투항변절한 현대수정주의자들, 현대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저지른 범죄의 산물이었다.

제국주의자들과 사회주의배신자들이 일으킨 반사회주의광풍은 세계정치정세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의 운명에 대한 불안과 좌절감에 포로되어 절망의 심연 속에 깊숙이 빠져들어갔다. 국제공산주의운동안에서 회의와 동요의 파도가 일었다. 제국주의자들과 그 사상적 대변자들은 이런 정치적 혼란을 놓고 기고만장하여 마치 자본주의가 「승리」하고 사회주의가 「종말」을 고하는 것처럼 요란스럽게 떠들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반사회주의광풍이 휩쓰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1990년대를 맞이하였다.

개는 짖어도 행렬은 나간다는 격언과 같이 조선의 사회주의는 제국주의자들과 사회주의배신자들의 궤변과 방해책동을 짓뭉개며 힘차게 전진하고 있었다.

이 도도한 행렬의 진두에 강철의 영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서 계시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성된 정세를 예리하게 통찰하시며 사회주의기치를 더욱 높이 드시고 반사회주의광풍을 맞받아 1990년대의 진군길에 군대와 인민을 불러주시었다.

주체79(1990)년 1월 21일 당중앙위원회 한 책임일꾼을 부르신 장군님께서는 동유럽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된 데서 얻게 된 교훈은 심각하다시며 자기 나라의 혁명과 건설을 성공적으로 하자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우고 혁명적 기치를 높이 드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올해는 1990년대가 시작되는 첫 해이라고 하시면서 뜻깊은 90년대의 첫 출발선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함께 주체의 사회주의신념을 굳게 가지고 역사의 역풍을 맞받아 나가자는 것이다, 물론 90년대의 진군길에는 고난과 시련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90년대의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 날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주체사상의 기치높이 우리 식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더욱 빛내어 나가자』라는 역사적인 담화를 하시면서도 이러한 신념과 의지를 피력하시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는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우리 인민이 자기의 의사에 따라 선택하고 자체의 힘으로 세운 우리 식의 사회주의라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는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우리 식 사회주의를 훌륭히 건설하여 놓았기 때문에 오늘 격변하는 국제정세속에서도 끄떡없이 사회주의길을 따라 힘차게 전진하고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오늘 우리는 온 인류의 운명을 안고 있으며 제국주의연합세력과 맞서 싸우고 있다고 하시면서 세계적인 정치파동속에서 우리가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고 사회주의위업을 힘있게 전진시키자면 난관과 시련을 뚫고 나갈 억센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역사의 역풍을 맞받아 나가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고난의 언덕과 시련의 고비를 넘고 넘어 승리봉에 오르는 것이 우리 혁명가들의 보람찬 삶이다, 쓴맛을 보아야 단맛을 안다고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쟁취한 승리가 혁명가들에게 있어서는 더 값있고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강조하시었다.

『필승의 신념, 필승의 의지, 필승의 대가 있는 사람만이 혁명의 길에서 우리 당과 동행할 수 있으며 당을 따라 90년대의 장엄한 진군길에 나설 수 있습니다. 우리모두 필승의 신념과 강의한 혁명적 의지를 가지고 온갖 난관과 시련을 용감하게 뚫고 나감으로써 우리의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고 더욱 강화발전시켜 90년대의 빛나는 새 역사를 창조하여야 합니다.』

장군님의 이 말씀은 비겁한자들은 혁명의 깃발을 버리지만 우리는 혁명의 붉은기를 끝까지 지킬 것이라는 위대한 역사적 선언이었으며 추호의 동요도 없이 주체의 기치,   사회주의기치높이   원수들의   반혁명적   공세에    혁명적   공세로   맞서   적들의   책동을  저지파탄시키려는  위대한 선군영장의 드팀 없는 신념과 의지의 천명이었다.

사회주의는 인류의 이상이며 사회주의가 승리하는 것은 역사발전의 법칙이다, 인민대중의 심장속에 생명으로, 생활로 깊이 뿌리 내린 우리 식 사회주의는 그 어떤 원수도 해치지 못한다. 이것이 그분의 드팀 없는 신조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런 단호한 결심, 불굴의 신념과 의지로 사회주의앞길을 힘차게 열어 나가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책동을 걸음마다 짓부수고 사회주의배신자들의 온갖 궤변의 허황성을 밝혀내시며 사회주의옹호고수의 기치를 더욱 높이 치켜드시었다.

이러한 때인 주체80(1991)년 12월 24일이었다.

이 날   역사적인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6기   제19차     전원회의가    소집되었다.      회의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제의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실 데 대한 결정을 채택하였다.

김정일장군님을 수령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추대하던 그 날에 이어 장군님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이 날은 선군혁명위업계승의 대업이 공식적으로 이룩된 역사의 날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앞에서 인민군대를 영원히 수령님을 위하여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 싸우는 군대로 만들며 무적필승의 대군으로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그것은 수령님의 주체적인 군사사상과 노선을 받들고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군건설위업을 끝까지 계승하고 빛나게 완성해 나가시려는 신념과 의지의 맹세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시대적,  역사적 의미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다.

『우리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19차 전원회의에서는 김정일동지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하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자질과 그가 이룩한 혁명업적에 대한 높은 평가인 동시에 그의 영도밑에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가려는 우리 당과 인민의 확고한 의지의 표시로 됩니다.』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한 탁월한 군사의 영재를 혁명무력의 수위에 모시는 것은 수령의 혁명위업, 건군위업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끝까지 완성하기 위한 결정적 담보이다. 그것은 혁명의 대가 바뀌고 제국주의자들과 혁명의 배신자들의 반사회주의책동이 악랄하게 감행되는 조건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혁명무력의 최고수위에 높이 모시려는 것은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이 오래 전부터 심장 속에 간직하여 온 한결같은 의사이고 염원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은 일찍부터 남달리 뛰어난 군사적 풍모와 자질을 지니시고 주체의 군건설위업에 불멸의 공헌을 하신 탁월한 군사의 영재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이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비범한 군사적 예지와 지략, 무비의 담력과 강철의 의지, 영활하고 세련된 영군술을 지니시고 그것을 혁명과 건설, 군건설을 영도해 오시는 과정에 남김없이 보여주시었다. 그분께서 지니신 비범한 군사적 풍모와 자질은 혁명무력의 끊임없는 강화발전을 위한 확고한 담보로 되었으며 미제침략자들과의 첨예한 군사적 대결전에서 언제나 승리만을 떨칠 수 있게 한 근본요인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혁명무력을 영도하여 오시는 전 과정에 인민군대를 정치사상적으로 강화하는데 선차적 힘을 넣으심으로써 전군을 수령결사옹위의 총폭탄대오로,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직한 충성의 대오로 꾸리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이와 함께 인민군대를 군사기술적으로 강화하는데 큰 힘을 넣으시어 조선인민군을 모든 군인들이 일당백의 펄펄 나는 싸움꾼으로 준비되고 강력한 공격수단과 방어수단을 다 갖춘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키우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자위적 무장력의 핵심부대인 인민군대를 정치군사적으로 튼튼히 꾸리시었을 뿐 아니라 전민무장화와 전국요새화방침을 철저히 관철하도록 이끄심으로써 인민군대를 핵심으로 하는 전인민적 방위체계를 튼튼히 세워놓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러한 불멸의 업적으로 하여 조선노동당과 군대와 인민은 세계반동의 원흉인 미제와 직접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속에서도 사회주의제도와 혁명의 전취물을 믿음직하게 보위하면서 사회주의건설을 확신성있게 밀고 나갈 수 있었다.

전체 인민들과 인민군군인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지니신 걸출한 영장으로서의 군사적 자질과 풍모에 완전히 매혹되고 혁명무력건설에서 쌓아올리신 그분의 불멸의 업적에 깊이 탄복하여 이미 오래 전부터 그분을「걸출한 군사의 영재」,「탁월한 군사전략가」,「강철의 영장」으로 높이 칭송하면서 혁명무력의 수위에 높이 받들어 모실 것을 절절히 염원하여 왔다.

당과 인민, 인민군군인들의   이러한   한결같은   염원을   반영하여   경애하는 장군님을   주체69(1980)년   10월   조선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주체79(1990)년 5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1차   회의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으로 추대하는 결정을 채택하였다. 이것은 혁명무력건설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사변이었다. 이때부터 혁명무력강화와 나라의 방위력강화를 위한 사업에서는 새로운 전환이 일어났다.

1990년대초의 준엄한 혁명정세는 조선인민군을 정치군사적으로 더욱 강화할 것을 절박한 요구로 제기하였다.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악랄한 공격으로부터 피로써 쟁취한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끝까지 고수하고 주체혁명위업을 힘있게 추진시켜 나가자면 혁명의 총대를 더욱 강화하여 막강한 군력으로 제국주의와 전면대결전을 벌여 나가야 하였다.

그것은 혁명의 총대에 의하여 개척되고 전진하여 온 주체혁명발전의 필수적 요구였다. 동시에 군력을 허무는 것으로 사회주의붉은기를 내리 운 소련과 동유럽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좌절이 남긴 역사적 교훈으로부터 나서는 사회주의위업수행의 합법칙적 요구였다.

현실은 사회주의수호전이 역사의 온갖 반동들과의 사상과 신념의 대결인 동시에 격렬한 군력의 대결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격렬한 반미대결전에서의 승리의 결정적 요인은 무적의 강군으로 자라난 인민군대를 필승불패의 대군으로 이끌어 갈 군영도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는데 있다고 보시었다. 인민군대에 대한 지휘권, 영도권을 공식적으로 김정일장군님께 넘겨야 할 시기가 도래하였다고 보신 것이다.

기름진 용마도 그것을 다룰 줄 아는 능숙한 기마수를 만나야 천리준마의 기질을 발휘할 수 있듯이 필승불패의 강군으로 자라난 인민군대의 위력을 최상의 높이에서 떨치자면 김정일장군님과 같이 위대한 영장을 군수뇌부에 모셔야 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직책을 넘겨주시려는 수령님의 결심은 이러한 역사적 요구에 대한 대답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 오진우인민무력부장에게 자신께서는 김정일동지처럼 신념이 강하고 영웅남아다운 뱃짱과 큰 통, 멸적의 의지를 지닌 지도자를 일찍이 보지 못하였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자신께서는 앞으로 김정일동지께 최고사령관직무부터 넘겨주려고 한다고 말씀하신바 있었다.

그때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은 수령님의 말씀에 전적인 동감을 표시하며 위대한 수령님, 우리 인민군장병들은 친애하는 김정일동지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 모시고 삽니다, 백두산시절부터 그분을 천출명장으로 모셔온 우리 항일의 전사들은 물론 전체 인민군장병들도 그분을 최고사령관으로 모시고 있기에 언제나 마음의 기둥이 든든하고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라고 힘차게 말씀드렸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옳은 말이라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도 이제는 마음을 푹 놓는다고 말씀하시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최고사령관의  중임을  맡기시기  전인  주체80(1991)년   8월과    9월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의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 오산덕과 불멸의 항일혁명투쟁사적이 깃들어 있는 양강도 김정숙군에 있는 신파혁명사적지를 연이어 찾으시었다.

회령 오산덕과 신파는 수령님께서 조국에 개선하신 이후 근 반세기가 되도록 한번도 다녀가시지 못한 곳이었다.

8월 어느 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령 오산덕에 자리잡고 있은 김정숙여사의 고향집을 찾으시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수수한 농가의 마당에 들어서신 수령님께서는 뜨락에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시다가 토방에 올라서시어 방안을 유심히 살펴보시었다. 4∼5㎡ 되나 마나 한 작은 곁방에는 변변한 가장집물이란 하나도 없었다. 가난의 흔적이 너무도 짙게 서린 그 작은 방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시던 수령님께서는 다시 뜨락에 내려서시어 추연한 안색으로 추녀낮은 초가집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시었다.

『오산덕에 있는 김정숙동무의 생가에 와보니 그의 일가가 곁방살이를 하면서 어렵게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수령님께서는 유서깊은 여사의 생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시었다.

회억의 빛이 역력한 그분의 안색을 우러르는 일꾼들의 가슴속에 문득 이곳에 아직 한번도 와보지 못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이 자리에 함께 계셨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생각이 솟구쳐 올랐다.

수령님께서도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 아무 말씀도 없이 깊은 회억에 잠겨 조용히 뜨락을 거니시었다.

백두산밀영 통나무귀틀집 마당가를 늘 가득 채우며 김정숙여사께서 부르시던 『사향가』의 선율이 금방 울려 나올 것만 같은 유정한 분위기가 고향집뜨락에 넘쳐 났다.

수령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김정숙여사와 끝없는 대화를 나누시는 것이었다.

이 날 수령님께서는 오산덕에 모셔진 김정숙여사의 동상도 돌아보시었다. 그리고 이튿날 오후에는 여사의 혁명활동사적이 깃든 함경북도 경성군에 있는 집삼과 염분진혁명사적지를 찾으시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9월 어느 날 수령님께서는 내륙의 험준한 산발을 넘고 넘으시며 압록강가에 있는 양강도 김정숙군 신파혁명사적지를 찾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줄우줄 끝없이 뻗어나간 험한 산발들이며 김정숙여사의 혁명활동자욱이 어리어있는 읍거리의 전경을 감회깊이 더듬어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이번에 김정숙군에 처음 왔습니다. 내가 김정숙군에 처음 오기는 하였지만 이 일대는 나에게 전혀 생소한 곳은 아닙니다. 이 일대는 내가 항일혁명투쟁시기부터 깊은 관심을 가지고 큰 힘을 넣어온 곳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이어  역으로부터  읍거리를  거쳐  김정숙중학교까지의  20여리  구간을  한 바퀴  돌아보신데  이어  남산기슭에  정중히  모셔진  김정숙여사의 동상을 찾으시었다.

동상앞에는 수령님께서 보내신 화환이 정히 놓여있었다. 여사께서 평소 사랑하시던 향기 그윽한 꽃들로 만든 화환에 수령님의 존함이 금빛으로 빛나는 붉은 댕기가 드리워져 있었다.

한 손에 군모를 쥐시고 항일의 군복차림으로  서계시는  김정숙여사,  여사께서는  백두산밀영의  소백수가에  나오시어  원정가셨다가  돌아오시는 수령님을 맞이하시던 그때처럼 금방 가벼운 걸음으로 댓돌에서 내려서시어 반가이 인사를 드릴 것만 같았다.

수령님께서는 동상을 군복을 입은 모습으로 잘 형상했다고 말씀하시고 그동안 쌓이고 쌓인 회포를 나누시려는 듯 여사의 동상앞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점토록 서 계시었다.

이윽고 수령님께서는 일꾼들을 둘러보시며 오늘은 동무들과 같이 동상앞에서 사진을 찍자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고는 동행한 군의 책임일꾼을 옆자리에 세우시었다.

댓돌에서 한발자국만 내려서시면 수령님의 곁에 나란히 서시어 항일전의 그 시절 타향에서 봄을 맞으시던 잊지 못할 그 날처럼 사진을 찍으실 수 있으련만 군모를 손에 꼭 쥐신 채 움직일 줄 모르시는 여사의 모습을 우러르는 일꾼들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이렇게 차례로 일꾼들과 사진을 찍으신 수령님께서는 걸음을 이으시어 사적지들을 다 돌아보시며 항일혁명투쟁시기를 회고하시는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시간이 퍼그나 흘러 그분께서 떠나실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신 채 열차에 선뜻 오르지 못하시었다.

한 일꾼이 조용히 떠날 시간이 지났다고 아뢰었지만 그분의 시선은 이윽토록 김정숙여사의 동상이 모셔진 남산기슭에 향해져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렇듯 고령의 몸으로 회령 오산덕과  신파혁명사적지를  찾으시어 백두산의 여장군이신 김정숙여사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걸으신 심중의 사연에 대해서는 아직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해 12월 24일 그 날이 와서야 그것이 헤아려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19차  전원회의에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최고사령관의   중임을  맡겨주신  바로  이 날이  항일의 여성영웅이신 김정숙여사의 탄생일이었던 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두의 혁명위업을 계승해 나가기를 그토록 열렬히 바라신 김정숙여사의 염원을 실현시키는 의미에서 여사의 탄생일을 택하시어 최고사령관의 중임을 장군님께 넘겨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12월 24일은 백두산밀영의 소백수가에서 자제분을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로 훌륭히 키우자고 다지시었던 수령님과 김정숙여사의 위대한 약속이 현실로 꽃펴난 뜻깊은 날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의 건군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해 나가며 인민군대를 필승불패의 혁명무력으로 더욱 강화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확고한 담보가 마련된 중대한 역사적 사변이었다. 그것은 또한 미제와 그 주구들의 온갖 도전을 짓부수고 우리 식 사회주의를 믿음직하게 수호하며 주체혁명위업을 승리의 한길로 확고히 전진시켜 나가는 데서 불멸의 이정표로 되었다.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19차 전원회의 결정소식을 제일 먼저 전달받은 것은 조선인민군 중대정치지도원대회 참가자들이었다.

조선인민군 중대정치지도원대회는 장군님께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중임을 맡으신 다음날인 12월 25일에 개막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회장에 몸소 나오시어 인민군대의 당정치사업과 관련한 역사적인 연설을 하시었다.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먼저 하루 전에 있은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19차 전원회의에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중임을 맡기기로 결정한 소식을 알려주시었다.

순간 대회장에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 올랐다.

수령님께서는 대회참가자들의 격정에 넘친 모습을 바라보시며 말씀을 계속하시었다.

『나는 전체 인민군장병들이 김정일최고사령관의 명령을 나의 명령과 같이 여기고 그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최고사령관의 영도를 충성으로 높이 받들어 나갈 것을 기대합니다.

나는 앞으로 전군이 김정일최고사령관의 명령을 철저히 집행하며 최고사령관에게 충성을 다하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대회장에 우렁찬 만세의 환호가 또다시 터져 오르며 충성의 열기가 일렁이었다.

만세소리가 계속 고조되는 가운데 이번에는 힘찬 대합창이 시작되었다.

김일성!』

김정일!』

『일심단결!』

대회참가자들은 희세의 선군영장 김정일장군님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한없는 영광과 긍지로 하여 감격의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항일대전과 조국해방전쟁에 참가하여 영웅적 위훈을 세운 머리 희슥한 백전노장으로부터 씩씩하고 열정에 넘친 젊은 정치일꾼들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경애하는 장군님을 충성으로 높이 모시고 받들어 나갈 굳은 결의에 넘쳐있었다.

김정일장군님을 혁명무력의 최고수위에 높이 모신 소식은 일시에 전군과 온 나라에 전해졌다.

전체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이  흥성거렸고   온   나라가   경축분위기에   휩싸였다.   각  도, 직할시들과  모든  인민군부대, 구분대들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것을 열렬히 축하하는 경축대회들이 진행되었다.

항일전의 용맹한 기품이 아직도 역력히 안겨오는 한 노투사는 북받치는 격정을 누를 길 없어 펜을 들어 경애하는 장군님께 축하편지를 올리었다.

그는 편지에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는 조선인민군의 심장이고 뇌수이며 필승불패의 기치입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는 우리 혁명의 운명이시며 우리 혁명무력의 생명이십니다, 저는 언제나 그 거대한 심장의 피방울이 되고 숨결이 되어 최고사령관동지를 받드는 충성의 길에 자신의 생을 바치겠습니다라고 절절한 심정을 피력하였다.

그것은 전체 군대와 인민의 심정이기도 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최고사령관의 중임을 맡으신 다음날인 12월 25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하신 담화에서 인민군대는 조선노동당의 군대인 것만큼 당의 영도에 충실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19차  전원회의에서  나에게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중책을  맡겨주시었습니다.  나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서 우리의 혁명무력을 백방으로  강화하여  우리  식  사회주의를  무력으로  믿음직하게  옹호보위하고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완성할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독불장군이라고 동무들이 나를 잘 도와주어야 한다, 나는 지금 그 어떤 명예가 아니라 수령님의 명령을 어떻게 관철하겠는가, 혁명 앞에 지닌 임무를 어떻게 수행하겠는가 하는 생각뿐이다,  나는  수령님의  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해  나갈 것이며 수령님께 끝까지 충성 다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혁명무력을 당과 수령의 영도를 생명선으로 하는 당의 군대, 수령의 군대로 강화발전시켜 사회주의를 지키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시려는 것, 이것이 최고사령관의 직무를 맡으시면서 다지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확고한 결심이고 철의 의지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직무를 맡으시었다는 소식은 세계를 격동시키었다.

세계   70여개    나라의    당,   국가수반들과    국방상들,    사회단체들,    정계,    사회계의    저명한    인사들과    국제기구들에서  최고사령관 김정일장군님께 열렬한   축하와   축원이   담긴   축하편지들을   보내어  왔다.    또한   수많은   나라   신문, 통신, 방송이  경애하는 장군님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소식을 앞을 다투어 광범히 보도하였다.

조선인민군은 김정일최고사령관기를 높이 치켜들고 선군혁명의 항로에 새로운 역사의 닻을 올렸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직책을 맡으신 것은 조국과 혁명, 군대와 인민의 운명과 전도에 새로운 대영광, 대행운을 안겨준 특기할 역사적 사변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정세가 복잡하고 준엄할 수록 혁명의 총대를 더욱 튼튼히 틀어 잡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인민군대의 싸움준비와 전투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전투정치훈련에 힘을 넣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인민군대가 싸움준비를 잘 하여야 적들이 어느 때 쳐들어와도 단매에 때려 부실 수 있으며 당의 혁명적 무장력으로서의 자기의 본분을 다할 수 있습니다.

인민군대의 싸움준비를 강화하자면 전투정치훈련을 힘있게 벌여야 합니다. 인민군대 앞에 여러가지 복잡한 과업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 가운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투정치훈련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민군대에서는 전투정치훈련을 기본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79(1990)년 5월 조선인민군 훈련일꾼강습참가자들에게 보내신 역사적인 서한에서 인민군대의 훈련실태를 구체적으로 분석총화하신데 기초하여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전투정치훈련을 강화하는 데서 나서는 이론실천적 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밝혀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먼저 조성된 정세하에서 전투정치훈련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렇게 지적하시었다.

『인민군군인들을 참다운 혁명전사로 키우고 군건설과 군사활동을 수령의 사상과 당의 방침대로 하는 문제는 끊임없는 훈련을 떠나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민군대에서는 훈련을 언제나 중심과업으로 틀어쥐고 힘있게 벌여 나가야 합니다.

전투정치훈련을 힘있게 벌이는 것은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인민군대의 싸움준비를 더욱 완성하기 위하여 나서는 절박한 요구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음으로 인민군대 앞에 나서는 훈련과업들을 구체적으로 밝히시고 주체성의 원칙, 정치사상성의 원칙, 전투성의 원칙, 과학성의 원칙을 전투정치훈련에서 일관하게 틀어쥐고 나가야 할 기본원칙으로 제시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또한 전군에 혁명적 훈련기풍을 세우기 위하여 주체의 훈련관을 확립할 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전군에 혁명적 훈련기풍을 세우자면 군인들이 주체의 훈련관을 가져야 합니다.

주체의 훈련관은 혁명무력의 주인이며 혁명전쟁의 직접적 담당자인 군인대중을 중심에 놓고 훈련에 대하는 관점과 태도입니다. 주체의 훈련관을 세운다는 것은 훈련을 혁명전쟁승리를 위한 중요한 담보로 보며 훈련에 전심전력하는 것을 군인의 참된 삶의 보람으로 여긴다는 것을 말합니다.

군인대중은 무장력구성의 기본요소이며 혁명전쟁의 주체입니다. 군인대중을 어떻게 준비시키는가 하는데 따라 군대의 전투력과 전쟁의 승패가 좌우됩니다.』

장군님께서는 훈련은 군인들을 높은 자주적 사상의식과 창조적 능력을 가진 힘있는 존재로 키우는 사업이며 훈련의 본질적 특성은 군인들을 일당백의 싸움꾼으로 키워 무장력의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게 하는 사업이라는데 있다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훈련이 전쟁승리의 결정적 요인을 마련하는 사업인 것만큼 인민군대에서는 훈련문제를 전쟁의 승패와 혁명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로 보는 주체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서한에서 전군에 혁명적 훈련기풍을 세우기 위해 당의 훈련제일주의방침을 철저히 관철할 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당이 인민군대앞에 맡겨준 기본혁명과업은 훈련을 잘 하여 싸움준비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총포소리가 나지 않는 평시에는 훈련을 잘 하는 군인이 당과 수령에게 충실한 군인이며 훈련과제를 어김없이 질적으로 수행하는 부대가 일을 잘 하는 부대입니다. 인민군대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훈련을 기본으로 틀어쥐고 훈련제일주의로 나가야 합니다.』

훈련제일주의!

이것은 장군님께서 혁명무력을 영도해오시던 첫 시기에 내놓으신 구호로서 훈련을 대하는 군인들의 입장과 관점, 혁명적 훈련기풍의 특징과 요구에 관한 사상을 집대성하신 것이다. 여기에는 인민군대안의 모든 군인들이 훈련을 첫째가는 임무로 여기고 훈련에 전심전력하여 그것을 생활화, 습성화함으로써 전군을 전투정치훈련으로 들끓게 하시려는 그분의 확고부동한 결심과 의지가 깃들어있었다.

전체 인민군장병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역사적 서한을 무한한 감격 속에 받아 안았다. 그들은 장군님께서 새롭게 내놓으신 주체의 훈련관과 훈련원칙, 훈련과업과 훈련기풍, 훈련방식과 훈련지도 등에 관한 심오한 명제와 과학적 정식화로 일관되어 있는 사상이론을 심장으로 받아 안았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역사적 서한은 인민군대를 백전백승의 무적의 전투대오로 강화하기 위한 불멸의 혁명총서이며 인민군대가 항구적으로 튼튼히 틀어쥐고 나가야 할 강령적인 지침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서한을 받아 안은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은 자기의 격동된 심정을 이렇게 피력하였다.

『참으로 장군님의 가르치심은 일찍이 그 누구도 제기한적이 없는 군건설과 군사활동에서 훈련에 대한 전일적인 사상을 밝히고 완벽한 대답을 준 것으로서 현대의 모든 전쟁에 대처할 수 있는 강군육성의 길을 과학적으로 명시한 위대한 대강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은 인민군대의 전투력강화에서 커다란 생활력을 나타냈다.

전군에 훈련제일주의선풍이 일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훈련도 전투다!』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전군이 훈련을 실전의 분위기 속에서 진행하며 그것이 전반적 혁명무력강화에 크게 작용하도록 이끌어 나가시었다.

주체83(1994)년에 진행된 비행대출동훈련이 그러한 실례의 하나였다.

어느 날, 공군사령부에 총참모부로부터 최고사령부의 훈련명령이 떨어졌다.

명령에는 전투직일을 제외한 모든 비행대들을 출동시키라고 밝혀져 있었고 출동준비시간도 불과 몇 시간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 시간에 모든 비행대들이 준비를 완료하고 동시에 출동한다는 것은 전례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비행대출동은 최고사령부의 명령으로서 무조건 집행해야만 했다.

비행대출동훈련명령을 받아 안은 지휘성원들은 몹시 긴장해있었다.

이런 때에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공군사령관을 전화로 찾으시었다.

『비행대출동명령을 받았습니까?』

『예, 방금 전에 받았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훈련에 동원될 수 있는 비행기대수, 연유의 소비량 등을 상세히 알아보고 나시어 훈련준비부터 잘  해야 한다고, 비행사와 비행기준비를 짧은 시간 안에 끝내고 훈련에 진입해야 한다고 이르시었다.

장군님의 말씀에 공군사령관의 긴장했던 마음은 다소 풀렸다.

그런데 뜻밖에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어 마음을 조이게 했다. 기상통보에 의하면 비행대가 출동해야 할 날에 전국적으로 날씨가 심하게 흐리고 어떤 지방에서는 때아닌 진눈깨비가 내릴 것이 예견된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런 날씨에 그 숱한 비행기들을 하늘에 띄워 제대로 훈련할 수 있겠는가.

훈련진입시간이 박두할 수록 하늘을 더 자주 쳐다보는 공군사령관의 가슴은 옥죄어 들었다.

이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다시 전화로 그를 찾으시었다.

훈련준비정형에 대하여 알아보신 그분께서는 비행대출동개시시간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시었다.

그때 공군사령관은 종시 불안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불리한 기상조건에 대해 보고 드렸다.

그러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시었다.

『그러나 내일 기상조건이 불리하여도 비행기들을 무조건 출동시켜야 하겠습니다. 이번에 진행하는 비행대출동훈련은 내가 직접 공군부대들의 싸움준비상태를 총검열하는 것입니다.』

그러시고는 공군사령부를 비롯한 모든 비행부대들은 실전의 분위기 속에서 훈련하여야겠다고 강조하시면서 『나는 이미 이런 훈련을 한번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라고 깊은 의미를 담아 말씀하시었다. 단호하고도 여유있고 결연한 어조의 말씀이었다.

순간 공군사령관은 새로운 각성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무적필승의 영장이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장군님께서 지휘하시는 훈련이다, 장군님께서 결심하시고 내리신 명령이거늘 무조건 한다는 담력과  뱃짱이 우러나왔다.  그는 장군님께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의도하시는대로 비행대출동훈련을 본때있게 해보겠습니다.』라고 힘차게 보고 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확신에 넘친 보고가 마음에 드시는 듯 호탕하게 웃으시며 그런 신심을 가지면 못해낼 일이 없다, 전쟁시기에 날씨를 골라가며 적들과 싸울 수야 없지 않는가, 대담하게 비행훈련을 하라고 고무하여 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훈련명령을 내리신 때로부터 여러 차례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최고사령부 작전실에서 밤을 지새우시었다.

공군사령관으로부터 비행사들에 이르기까지 온 비행부대들이 기세충천하여 훈련준비로 들끓었다.

깊은 한밤중에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전화로 공군사령관을 찾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비행사들의 사기는 어떠하며 일기상태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에 대하여 알아보시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날씨가 예보 때보다 더 나빠지고 있으나 그것을 보고 하는 공군사령관의 억양에서는 힘이 솟구치고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불리한 정황속에서 훈련을 해보아야 싸움준비를 더 잘 할 수 있다고 하시며 이번 훈련을 본때있게 하여야 한다고 다시금 신심을 안겨주시었다.

마침내 모든 비행대들에 출동신호가 하달되었다. 일순간에 조국땅 방방곡곡에서 비행기들이 땅을 차고 떠올라 하늘을 뒤덮었다.

불리한 기상조건에서도 모든 비행대들이 훈련과제를 성과적으로 수행하였다. 기적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훈련이 있은 다음날 공군사령관을 비롯하여 군지휘일꾼들에게 훈련정형을 높이 평가하시면서 우리 비행사들의 준비상태는 좋다, 경험은 날씨가 좋고 나쁜 것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군인들의 사상적 각오에 의하여 훈련의 성과가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그리고 모든  비행사들이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결사보위할   결의에  넘쳐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는  크게  만족을 표시하시며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 최고사령관을 위하여 한목숨바쳐 싸우겠다는 그들의 충성의 결의는 전체 비행사들의 결의일 뿐 아니라 조선인민군 전체 지휘성원들과 군인들의 결의라고 생각한다고, 당에 충실한 공군병사들에게 영광이 있으라는 축복을 안겨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축하의 인사에 모두가 열광의 박수로 화답하였다.

이 날의 비행대출동훈련과 관련하여 세계 군사전문가들은 『규모와 진행방식은 물론 그 시도자체부터가 전례를 깨뜨린 대담하고 통이 큰 훈련』이었다고 격찬했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훈련 !

경애하는 장군님의 훈련제일주의방침관철을 위해 전체 인민군군인들은 전투정치훈련에 한 사람같이 떨쳐 나섰다.

그들은 훈련을 통하여 멸적의 투지를 굳게 가다듬었고 펄펄 나는 만능의 싸움꾼으로 튼튼히 준비되었다.

인민군대는 무서울 것이 없는 강군으로 강화되었다.

이 강군이 나라를 믿음직하게 지키고 있었기에 인민들은 사회주의경제건설을 힘있게 벌여 새로운 경제적 앙양을 이룩할 수 있었다. 아울러 제국주의자들의 반공화국, 반통일책동도 짓부수고 역사상 처음으로 북과 남, 해외동포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범민족대회를 성과적으로 진행하는 경이적인 사변도 있었다.

이것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펼치신 선군혁명영도의 위대한 승리였다.

    



이전 소련과 동유럽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좌절에서 쾌재를 부른 것은 미국이었다. 미제는 총 한방 쏘지 않고 수십 년동안 줄 당기기를 해온 냉전에서 이전 소련과 동유럽사회주의를 좌절시켰던 것이다.

미제국주의는 마침내 자본주의 1극세계를 꿈꾸면서 「새로운 세계질서」확립에 나섰다. 미국대통령 부시는 미국회에서 한 일반서신연설에서 『오랫동안 바라오던 새로운 세계질서를 수립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떠벌였다. 그리고 미국의 세계군사전략의 키를 고강도전쟁전략으로부터 제3세계의 「국지강국」들을 군사적으로 압살하기 위한 중강도전쟁전략으로 방향전환시켰다.

미국이 지목한 「국지강국」이란 사회주의기치를 변함없이 들고 반제자주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은 우리 나라를 비롯한 혁명적인 나라들, 저들의 이권상 주요 전략적 요충지역이거나 주요 자원지대에 자리잡은 나라들이었다.

공화국은 미국의 「국지강국」명단의 앞자리에 올라있었다. 이미 1990년 8월에 부시는 『소련의 위협이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해에 심각한 위협으로 되는 것은 국지적 강국들의 군사력』이라고 하면서 우리 나라를 반대하는 핵전쟁도발기도를 드러내놓았다.

그래서 군산미공군기지에 명령만 떨어지면 15분안에 핵폭탄을 탑재하고 출격할 수 있는 긴급비상핵전투기들의 24시간 활주로 비상대기상태를 더욱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였는가 하면 남조선군부는 공화국의 전략적 종심에 대한 폭격에 사용할 저공공격용최신예전투기 「토네이도」 수개 비행편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책동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더욱이 엄중하게 1991년 1월 중순 패권주의적인 만전쟁도발과 때를 같이하여 미제는 이미 짜놓은 조선반도에서의 「120일전쟁시나리오」에 기초하여 남조선에서 사상최대규모의 「팀 스피리트 91」합동군사연습을 벌여놓고 군사분계선일대에 방대한 침략무력을 내밀었다. 이것은 「북침」전쟁의 전주곡과 같은 것이었다.

세계전쟁사에는 관례적인 훈련으로부터 불의에 다른 나라를 쳐들어간 실례가 적지 않았다. 「팀 스피리트 91」합동군사연습에는 그것이 불의에 「북침」공격으로 이전할 수 있는 위험성이 다분히 내포되어 있었다.

세계는 만전쟁에 이어 조선반도에서 또 한 차례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하는 불안과 우려의 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양의 모습은 태연하였다.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배심 든든한 상태였다. 그 배심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세상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었다.

나라의 정세가 전쟁접경에로 치닫고 있던 어느 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몇몇 군사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시었다. 긴박한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문제가 협의되었다.

군사일꾼들은 만약 적들이 우리 조국의 풀 한 포기라도 건드린다면 이번에는 용약 떨쳐나 맞받아 치겠다고 하면서 윽윽 하였다.

일꾼들의 의견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맞받아 치면 미국과 전쟁을 하게 되는데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고 물으시었다.

군사일꾼들은 한결같이 이길 수 있다고 하였다. 신심에 넘친 대답이었다.

수령님께서는 그러는 일꾼들에게 믿음 어린 시선을 보내시며 만약 우리가 전쟁에서 지게 되면 어떻게 하겠는가고 다시 물으시었다.

뜻밖의 질문을 받은 인민군지휘성원들은 누구도 선뜻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이때 『수령님, 제가 대답하겠습니다.』라고 하시며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자리에서 일어서시었다.

『수령님, 우리는 반드시 이깁니다.…』

필승불패의 신심과 용기에 넘치신 장군님의 뇌성같은 선언이 방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분의 서리찬 안광에서는 금시 불길이 펄펄 이는 듯 싶었다.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이것이 바로 강철의 영장이신 김정일장군님의 철의 신념이고 배짱이며 결심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천금같은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책상을 『탕!』 하고 내리치시며 『과시 장군중의 장군이요!』라고 말씀하시고는 호탕하게 웃으시었다. 그리고 군사일꾼들을 둘러보시며 적들이 우리의 풀 한 포기라도 건드린다면 아예 짓뭉개 버리라고 힘주어 명령하시었다.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담찬 선언은 격변하는 군사정치정세에 대한 정확한 통찰과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모든 요인들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에 기초한 가장 과학적인 멸적의 선언이었다. 그것은 특히 인민군대의 정치사상적, 군사기술적 위력과 당과 군대, 인민의 일심단결된 힘에 대한 확신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사생결단의 조미군사대결전을 선포하시었다.

조선인민군,  조선인민경비대  전체  부대들과  노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  전체  대원들이  고도의  전투태세를 갖출  데  대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명령이 하달되었다.

조선인민군은 최고사령관 명령을 곧 김정일장군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이었다.

드디어 전반적 혁명무력이 전투동원태세에 들어갔다.

미제침략자들과의 판가리싸움에서 주체조선, 영웅조선의 명예를 걸고 본때있게 싸워 단연 결판을 내고야 말 열기로 전군이 부글부글 끓었다.

여러 군부대들에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자기들의 결의를 담은 편지들을 올리었다.

편지들은 하나같이 혁명무력의 영도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옹위하여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 싸울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맹세였고 선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조선인민군 어느 한 군부대 장병들도 삼가 맹세문을 올리었다.

맹세문은   조성된   정세와   관련하여   내리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명령은   그   어떤   사나운   폭풍이   불어와도   오직 한마음   수령님과 장군님을   목숨으로   옹호보위하고    사회주의조국을  수호하려는  인민군장병들의  심장을  무한히   격동시키고  있으며 경애하는 장군님의 반미대결전구상을 총대로 실현시켜 나갈 불타는 각오로 끓어  번지게  하고  있다고  쓰고  언제나  결사전의  최선두에서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 만세!』를 높이 부르며 장군님을 옹위해갈 신념의 맹세를 굳게 다지었다.

맹세문의 자자구구에는 혁명무력의 위대한 영도자의 명령일하에 산악같이 일떠선 서릿발총대대오의 무한대한 위력이 담겨져 있었고 앞으로 이 땅에 그 어떤 천지풍파가 들이닥친다 하여도 당과 수령과 운명을 끝까지 같이할 인민군장병들의 충성의 모습이 그대로 어리어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당과 수령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한목숨바쳐 싸우려는 전체 인민군장병들의 철석같은 의지와 신념을 뜨겁게 확인하시며 맹세문의 표지에 다음과 같은 글발을 쓰시었다.

우리 당에 충실한 혁명무장력에 영광이 있으라!

김 정 일

             1991. 2. 11.

활달한 필치의 친필, 그것은 인민군대에 대한 그분의 확고한 믿음과 기대의 표시였다.

인민군대가 미제국주의의 그 어떤 강권과 오만성도 발밑으로 내려다보며 인민의 생명이며 생활인 주체의 사회주의를 끝까지 수호해 갈 것이라는 확신, 이런 훌륭한 장병들이 있는 한 반미대결전에서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신심이 친필의 글발마다에 넘쳐 나고 있었다.

그것은 그대로 주체의 혁명무력의 승리와 영광에 대한 위대한 선군영장의 축복이고 약속이기도 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친필은 그 군부대 장병들만이 아닌 전체 인민군장병들에게 보내시는 그분의 믿음이고 격려였다.

장군님의 친필은 전투동원태세에 들어갈 데 대한 명령을 받은 전군을 반미결사전에로 더욱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조선인민군은 미제침략자들의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에 대처하여 강력한 반타격훈련을 맞받아 진행하였다.

완전전투태세를 갖춘 인민군장병들이 빠른 속도로 기동하여 자기 위치들을 차지했고 어마어마한 타격수단들이 적의 숨통을 겨냥하며 머리를 쳐들었다. 적의 역량을 때려 부실 수 있는 우리의 기동력들이 놈들을 맞받아 대응훈련을 진행했다.

그러자 겁에 질린 미제침략군부대들과 병사들 속에서는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결국 적들의 군사연습은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미제는 할 수없이 군사연습기간을 단축하고 출동무력을 부랴부랴 철수시키는 비상조치까지 취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미제는 조선인민군의 위력앞에 혼비백산하였다.

미국 군부와 정계에서는 『북조선은 무력으로는 굴복시킬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승산없는 전쟁이 다음해에 있게 될 대통령선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미국은 군사행동을 미루는 길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리는 반드시 이깁니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하신 것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준 쾌거였다. 생사를 판가리하는 반미결사전에서 우리의 혁명적 무장력이 어떻게 승리와 영광만을 떨쳐가는가를 실천으로 보여준 역사적 화폭이었다.

    



이전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사회주의나라 집권당들의 최대의 과오는 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를 약화시키고 당과 군대, 정치와 군사를 분리시킨 것이었다.

현대수정주의의 두목인 흐루쵸프에 의하여 군건설에서 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가 급격히 약화된 엄중한 사태는 1980년대 후반기 현대사회민주주의자들에 의하여 군대의 「비사상화」, 「비정치화」의 정책화로 이어졌으며 제국주의앞에 사회주의를 무장해제시키고 붕괴시키는 결과까지 가져왔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사태추이를 놓고 이미 소련군대는 조만간에 노동계급의 혁명군대로서의 자기 존재를 끝마치게 될 것이며 그것은 불피코 이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파멸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시었다.

그 이후의 사태는 장군님께서 예언하신대로 번져갔다. 소련군대안에서 총정치국이 해산되고 사상적으로 완전히 변질와해되어 군대가 제국주의자들과 배신자들의 반사회주의책동으로부터 자기 당과 사회주의정권을 지켜내지 못하였으며 마침내 1991년 12월 25일 소련은 붕괴되고 말았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군건설에서 현대수정주의, 현대사회민주주의의 위험성을 예리하게 간파하시고 노동계급의 혁명무력의 기본사명은 당과 수령을 옹위하고 수령이 개척한 혁명위업을 사수하는데 있으며 따라서 인민군대를 명실공히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만드는 것을 군건설의 기본노선으로 내세우고 일관하게 관철해오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특히 더욱 심각하고 복잡하게 번져가는 1990년대초의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당의 영도를 군력강화의 생명선으로 굳건히 틀어 잡으시었으며 당과 군대, 정치와 군사의 관계를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공동체로 다루어 나가시었다.

세상사람들은 주체80(1991)년 10월부터 12월 사이에 역사상 처음으로 당중앙군사위원회 명의로 되는 전군적인 규모의 조선인민군 중대장대회와 중대정치지도원대회, 사관장대회가 성대히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당과 군대, 정치와 군사의 밀착관계의 생활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체80(1991)년에 이르러 정세는 매우 첨예하고 복잡하였다.

만전쟁을 통하여 극도로 교만해진 미제침략자들은 다음 번 전쟁대상지는 조선이라고 하면서 사회주의기치를 변함없이 고수해 나가고 있은 공화국을 감히 위협공갈해 나섰다.

조성된 정세는 혁명무력을 그 어느 때보다도 강화발전시킬 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이해의 5월 어느 날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안의 책임적인 지휘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인민군대를 강화하자면 인민군대의 기층조직이며 기본전투단위인 중대를 정치군사적으로 강화하여야 하며 여기에서 중대장, 중대정치지도원, 사관장들의 역할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인민군대에서는 올해 안으로 조선인민군 사관장대회, 중대장대회, 중대정치지도원대회를 진행할 수 있도록 조직사업을 빈틈없이 하여야 하겠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어 조선인민군 중대장대회와 조선인민군 중대정치지도원대회, 조선인민군 사관장대회를 당중앙군사위원회의 명의로 소집할 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시었다.

대회들을 인민군대의 범위를 벗어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가 관심하고 떠밀어주는 전당적인 대회로 할 데 대한 가르치심 이었다.

이 가르치심에는 인민군대가 당과 수령에게 무한히 충실한 당의 군대, 수령의 군대이며 조선노동당이 틀어쥔 혁명의 총대이라는 혁명적 성격을 내외에 널리 시위할 데 대한 깊은 의도가 담겨져 있었다.

현대사회민주주의자들의 「개혁」, 「개편」정책으로 말미암아 노동계급의 군대가 타격목표와 과녁을 잃고 나무막대기와 같은 무골충집단으로, 심지어 반혁명의 도구로 전락되어 당과 국가를 전복하는데 앞장서는 것과 같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빚어지고 있은 때에 조선노동당이 당중앙군사위원회의 명의로 혁명무력강화를 위한 대회들을 연이어 소집하는 것은 그 자체가 당과 군대의 혼연일체, 정치와 군사의 혈연적인 밀착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제국주의반동들에게 가하는 가장 심대한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혁명무력의 위력을 떨치게 될 전군적인 대회들을 준비하는 데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일일이 요해하시고 다 풀어주시었다.

그런데 이 무렵 미제와 남조선군은 대규모적인 「독수리 91」합동군사연습을 벌여놓고 정세를 극도로 긴장시키고 있었다. 정세는 이전 소련에서 벌어진 「8월사변」을 계기로 미제와 반동들의 반사회주의, 반공화국책동이 더욱 악랄하게 감행되고 있은 것으로 하여 더욱 엄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군의 전투단위인 중대를 책임진 지휘일꾼들이 자기 위치를 비운다는 것은 심중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인민무력부 일꾼들은 예견했던 대회를 계획된 날짜대로 하겠는가 아니면 미루겠는가, 대회규모를 축소할 것인가 그대로 하겠는가 등의 문제를 놓고 심각한 논의를 벌이였다.

이러한 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런 문제를 더 논의하지도 말며 대회들을 예정했던 대로 조금도 드팀 없이 내밀 데 대한 지시를 하달하시었다.

그리하여 적들이 정세를 극도로 긴장시키며 전쟁의 검은 구름을 몰아오고 있을 때 최전연을 비롯한 전군의 모든 초소들에서 대회참가자들이 평양에 모여왔다.

사관장대회참가자들이 평양시내 여러 곳을 참관하고 있었는데 그들 속에서 대회시작에 앞서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기념사진부터 찍었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이 제기되었다.

원래 기념촬영은 대회가 끝난 다음에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대회참가자들은 기념촬영부터 할 것을 열렬히 소원하여 나섰던 것이다.

해당 일꾼들로부터 이러한 문제를 보고 받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인민군대안의 사관장들은 지난 시기 인민군대의 중대를 강화할 데 대한 당의 방침을 관철하기 위하여 온갖 지혜와 정력을 다 바쳐온 중대의 초급일꾼들이며 핵심들입니다.

사관장대회에 올라온 사관장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면  그들의  소원이  성취되도록  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오시면 사관장대회 참가자들의 소망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다음날 외국방문을 마치고 조국에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께 사관장들의 소망을 말씀드려 마침내 승낙을 받으시었다.

이렇게 되어 대회참가자들은 대회전에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기념촬영을 하는 영광을 지니게 되었다.

기념촬영장은 흥분과 감격의 세찬 파도로 설레었다.

대회참가자들은 하늘이 떠나갈 듯 한 만세의 환호로  촬영장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장군님의 안색에 격정의 빛이 역연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동행한 군지휘일꾼에게 사관장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다고 하시며 만족을 금치 못해하시었다.

일꾼이 후더워오르는  심정을 눅잦히지 못하며  우리 군인들은 오매에도 그리던 어버이수령님과 장군님을 만나 뵈옵고 기념사진까지 찍은 크나큰 영예를 안고 지금 당이 바란다면 산도 떠 옮길 충성의 결의에 충만되어 있다고 말씀드리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말을 긍정해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관장대회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러 대회장에 나오실 때 대회참가자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 폭풍같은 환호성을 터쳤는데 그것은 인민군대를  친어버이사랑으로  극진히  보살펴주시는  수령님께  자기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하고 수령님을 위하여서는 목숨도 초개와 같이 바치려는 인민군군인들의 숭고한 사상감정의 폭발입니다.

우리 당의 혁명적 무장력인 인민군대의 가장 고상한 사상감정은 위대한 수령님께 자기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하고 수령님을 위하여 한목숨바쳐 싸우려는 철석같은 신념이며 이러한 신념은 위대한 수령님과 혈연적으로 연결된 우리 인민군대의 필승불패의 힘의 원천입니다.

나는 수령님께서 마련하여 주신 수령과 군대사이의 혈연적 연계를 더욱 활짝 꽃피워 나가려고 합니다.』

사관장들의   환호성과    그들의    열렬한    환영에    답례를    보내시고    그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신    혁명무력의   위대하고 영명한 지도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영상에서 세계는 영웅적 조선인민군의 위력을 보았으며 그 밝은 전도를 내다보았다.

이렇듯 10월에 사관장대회가 있은데 이어 11월, 12월에 중대장대회, 중대정치지도원대회들이 진행되었다.

전군적인 성대한 대회들은 미제와 남조선반동들에게는 커다란 타격으로 되었다.

미제가 그 누구를 「타격」하겠다고 하며 화약내를 풍기고 있을 때 인민군대는 하늘땅을 진감하는 수령결사옹위의 외침으로 그들을 타격하였다. 동유럽의 수정주의, 개량주의자들이 사회주의붉은기를 집어 던지고 제국주의자들에게 굴복하고 있을 때에 인민군 대회참가자들은 온 대회장을 붉은기숲으로 만들어 적들을 아연실색케 하였다.

대회들이 높은 정치적 열의속에 진행되고 있던 11월 어느 날이었다.

대외사업부문에서는 적들의  새   전쟁도발책동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것만큼   인민무력부   대변인성명을   내보내면  좋겠다는  제의를  장군님께 보고 드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인민군대에서 성명을 발표하지 않아도 조선인민군 사관장대회, 중대장대회를 한 자체가 벌써 큰소리를 친 것보다 적들에게는 커다란 타격으로 됩니다.』

참으로 대회들은 단순한 정치행사인 것이 아니라 적들의 무모한 불장난에 대하여 인민군군인들의 멸적의 투지와 용맹을 보여준 것으로서 적들에게는 무자비한 타격으로 되었다.

남조선과 세계 여러 나라 신문, 통신, 방송은 조선은 이번에 미제와 그 앞잡이들, 수정주의, 개량주의자들에게 주체사상과 붉은기로 일색화된 『군대대회로 완전강타』를 먹였다고 하면서 대회들에 대하여 일일이 대서특필하였다.

참으로 세계를 경탄시킨 전군적인 대회들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서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위상을 만방에 떨치고 필승불패의 사상강군으로서의 조선인민군의 위력을 힘있게 과시한 하나의 거대한 정치군사작전이었다.

    

 

단결은 곧 힘이다. 총대의 최대위력도 무장력의 기본요소인 군인대중의 단결에 있다. 단결은 사상의지적이고 도덕의리적인 것이어야 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동서대결구도가 조미대결구도로 바뀌고 혁명무력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시되고 있던 이 시기에 열화와 같은 사랑과 믿음으로 인민군대를 일심단결된 무적강군으로 키워 나가시었다.

인민군장병들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기본영군방식이고 군건설과 군사활동에서 견지하시는 기본원리이다.

그분께서는 혁명적 동지애와 의리에 기초하여 인민군장병들을 혁명의 길에서 생사운명을 같이하는 선군혁명동지로 여기시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특히 항일전의 그 날부터 주체의 건군위업에 모든 것을 다 바쳐온 혁명투사들을 혁명의 원로로 내세워주시며 그들이 인민군대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끝까지 일을 잘 해 나가도록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돌려주시었다.

주체81(1992)년 2월 어느 날이었다.

이 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탄생 80돌을 맞으시는 자신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었으면 하는 항일혁명투사들의 절절한 소망을 실현시켜 주시었다.

그런데 어느 한 군부대를 책임진 항일혁명투사가 병환으로 이 영광의 자리에 참가하지 못하였다.

그는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치료해 본적이 없는 보기 드문 질환을 앓고 있었다.

투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기념촬영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는 더욱 괴로워하였다.

(다시는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모시고 영광의 기념사진도 못 찍고 군복을 아예 벗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문득 그의 뇌리에는 1938년 정초 수령님의 지휘밑에 임강현 바위산전투를 빛나는 승리로 끝낸 날 밤의 일이 떠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밀영지의 우등불가에 빙 둘러앉은 경위대원들을 둘러보시며 동무들은 장차 조국을 해방하고 자주독립국가를 세운 다음 무엇을 하겠는가고 물으시었다.

어린 경위대원들은 저저마다 일어나 자기의 희망과 포부를 말씀드리었다.

차례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나라를 해방하고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를 일떠 세운 다음에도 이 땅에 제국주의가 남아있는 한 손에서 총을 놓지 않고 장군님과 조국을 무장으로 보위하겠다고 씩씩하게 말씀드렸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손을 꼭 잡아주시며 동무의 그 맹세는 나에게 언제나 힘을 주게 될 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이렇게 그는 열아홉살 홍안의 시절에 위대한 수령님앞에서 총대전사의 맹세를 다지는 것으로 인생의 좌표를 세웠다.

그는 칠순이 넘도록 오로지 그 맹세대로 살려고 애써왔다. 그런데 인생말년에 와서 몸이 허락치 않아 군복을 벗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 들고 눈굽이 젖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군복을 벗는 마지막 날까지 부대책임일꾼으로서의 본분만은 다해야 하겠다고 자각하고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의 이러한 심중의 고충을 두고 본인보다도 더 가슴 아파하시며 마음 쓰신 분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가 기념촬영에 빠진 것을 아시고 병이 심상치 않은 것 같다고 하시며 빨리 병원에 입원시켜 종합검진을 하고 철저한 치료대책을 세우도록 하라고 지시하시었다.

이리하여 그는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1차 진단때와 꼭 같은 소견이 나왔다.

비장한 각오를 품은 투사는 입원도 마다하고 부대로 돌아와 사업에 몰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해당 일꾼이 담당의사와 함께 찾아와 당장 외국으로 치료받으러 떠날 차비를 해야겠다고 하였다.

그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의   종합검진결과를   상세히   요해하시고   크게   걱정하시며   그   동무는    일생을   군복을   벗지  않고  위대한 수령님을 무장으로 보위하겠다고 맹세한 동무인데 어떻게 하든지 자기 초소에서 그대로 일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병이다보니 우리 의사들의 치료체험이 많지 못하다고 하시면서 이 분야의 치료에 경험이 있는 어느 한 나라 병원의 이름을 지적하시면서 지체하지 말고 빨리 떠날 준비를 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해주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병을 고쳐주어 수령님앞에 다진 맹세대로 살수 있게, 자기 직무에서 그대로 일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장군님의 하늘같은 믿음과 사랑의 말씀을 받아 안는 순간 노투사는 뜨거운 격정의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장군님께서는 친히 그의 치료와 관련한 실무적인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주시었다. 외국에 가서 치료를 받을 때 혹시 통역의 착오로 오진할 수도 있으니 통역원은 따로 데리고 가지 말고 그의 치료를 담당한 병원에서 그 나라 말을 잘 아는 의사를 보내도록 하며 인민무력부에서 그 나라에 파악이 있는 외교일꾼이 함께 가서 실무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들을 잘 교섭하여 치료를 받도록 해주시었다. 그리고 환자가 불편해할 수 있는 점까지 예견하여 그의 안해를 함께 보내도록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었다.

또한 그 나라는 우리 나라와 같은 무상치료제가 아니므로 치료비와 약값을 넉넉히 가지고 가라고 하시면서 사람이 중하지 돈이 중한 것이 아니니 병치료에 돈을 아끼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기까지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처럼 은정담아 마련해주신 외국치료길이었건만 비행기에 몸을 실은 노투사는 이 길로 다시 살아 돌아오지 못할까봐 고민에 잠겨있었다.

이러한 고민은 현지에 도착하여 종합검진을 받고 수술을 받아야 하는 때에도 지속되었다.

불안한 환자의 심리상태로 하여 병원에서는 수술날짜를 정하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나라 주재 공화국대사관의 한 일꾼이 병원으로 급히 달려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투사의 치료가 걱정되시어 수만리 떨어진 이국땅에 전화를 걸어주셨던 것이다.

장군님께서는 환자의 기분상태는 어떠하며 기상기후조건이 몸에 맞는가, 식사는 어떻게 하고 잠은 제대로 자는가, 조국을 떠날 때 미열이 있었는데 열은 내렸는가를 자상히 물어주시고 검진결과와 협의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먼 이국땅에 가서 어려운 수술을 받자니 환자의 생각이 무거워질 수 있겠는데 자신께서 치료결과를 기다리고 있겠으니 마음을 놓고 치료를 받도록 하라고 하시면서 일꾼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그 나라에서는 그 병에 대한 치료체험이 많으므로 대사관동무들이 교섭을 적극 벌여 수술도 하고 내복약도 충분히 써서 치료를 잘  받고 오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어 치료가 끝나면 그곳 산수좋은 곳에서 요양까지 하고 오도록 하라고 당부하시었다고 하였다.

장군님의 그렇듯 다심하고도 자애로운 손길이 타향만리에 있는 자신의 몸에까지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니 투사는 줄줄이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금할 수 없었다.

수술예정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는 것이 두렵기만 했던 그는 어서 빨리 수술을 받고 장군님께 기쁨의 보고를 드리고 싶은 심정이 간절해졌다. 그래서 그는 담당의사를 찾아 당장 수술을 하자고 제기하였다.

병원측도 환자의 결심을 쾌히 접수하여 다음날로 앞당겨 수술을 하기로 했다.

수술에 앞서 환자측 입회인이 지정되었는데 물론 함께 간 그의 안해였다.

그러나 투사는 자기의 수술입회자는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만리 떨어진 조국땅  당중앙위원회의  집무실에서  자기의  수술결과를  기다리고 계실 경애하는 장군님이시라고 믿고 있었다. 그는 설사 마취로 모든 것을 다 망각한다 하더라도 이 한가지만은 절대로 망각하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 먹으며 수술대우에 누웠다.

이곳 병원에서 한 생을 일해온다는 이 나라의 권위있는 집도의사는 그와 같은 중환자를 수많이 대상해봤지만 수술을 앞두고 이처럼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는 환자는 처음이라고 탄복하면서 환자의 기분상태가 좋으니 자기의 기분도 좋다고, 있는 지혜와 정성을 다 기울이겠으니 마음을 놓으라고 위로하였다.

수술은 성과적으로 끝났다.

그가 아직 정신을 차리기 전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화로 수술결과를 알아보시고 경과가 좋다니 마음이 놓인다고 못내 기뻐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극진한 보살피심은 그대로 사랑의 불사약이 되어 투사의 건강은 전문의사들도 신기로워  할 정도로 빨리 회복되어 갔다.

주변사람들은 장군님께서 일러주신대로 요양치료까지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환자는 회복이 빠를수록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곁으로 한시 바삐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이즈음 또다시 그의 건강과 치료정형을 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조국에 빨리 돌아오고 싶어하는 그의 심정을 이해하여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4월 15일 명절을 조국에 와서 보내게끔 퇴원시키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시고는 돌아올 때 약값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먼저 몇 개월 분의 약을 넉넉히 장만해가지고 오라고 당부하시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항일의 노전사에 대한 이토록 지극한 사랑에 탄복한 그 나라 의료일꾼들은 치료주기를 앞당기기 위해 심혈을 쏟아부었다.

이 나라 군부의 관심 또한 컸다. 군부의 책임적 직책에 있는 사람들은 입원기간 여러 차례 병문안을 하였으며 퇴원하여 그 나라를 떠나게 되었을 때는 환자의 입원치료기간의 치료비와 약값을 포함하여 일체 비용을 자기네 군부에서 부담하여 나섰다.

조국에 돌아온 그에게 보다 큰 사랑과 행복이 덧 쌓여졌다. 그는 수령님탄생 80돌경축행사에 참가하여 어버이수령님께 만수축원의 인사를 올리는 영광을 지녔다. 그리고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극진한 보살피심 속에서 치료를 계속 받게 되었다.

장군님께서는 병이 완쾌될 때까지 필요한 대책을 다 취해주시었다. 녹용, 산삼을 비롯한 귀중한 보약재까지 보내주셨는가 하면 매달, 매 분기 정기적으로 검진하여 외국의 의료집단과 협의하도록 하는 조치도 취해주시었다.

그리고 수술한지 꼭 1년이 되는 때에는 그를 다시 수술받은 나라에 보내어 종합검진과 경과관찰을 받도록 해주시었다.

그 나날에 투사는 자기 직무에 복귀하여 정상사업을 하게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인간애, 동지애가 현대의학으로써는 담보할 수 없었던 인간소생의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건강을 회복한 그에게 간절히 소망했던 일도 성취되었다.

주체81(1992)년 4월 20일이었다.

위대한 수령님탄생 80돌과 조선인민군창건 60돌에 즈음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항일혁명투사 군사간부들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 차수 군사칭호를 수여하시었다.

행사장에 나오신 장군님을 뵙는 순간 투사의 가슴은 형언할 수 없는 격정으로 들먹였다.

어느새 그를 띄어보신 장군님께서는 『그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 몸은 어떻습니까.』라고 하시며 투사의 두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었다.

한참만에야 그는 인제는 다 나았다고, 너무 걱정하시지 말아 달라고 젖은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군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쁘다고 하시며 다시금 그의 손을 꼭 잡아주시었다. 그러시면서 건강관리를 잘 하여야 한다고, 몸이 건강해야 수령님을 모시고 오래 혁명을 할 수 있다고, 년세도 높고 병원에서 갓 퇴원하였는데 일을 하느라고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이제부터는 오전에만 부대에 나가 일하고 오후에는 쉬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이윽고 행사가 시작되자 장군님께서는 항일혁명참가자 군사일꾼들에게 원수, 차수의 군사칭호를 수여하시었다. 투사는 차수의 군사칭호를 수여받는 영광을 지녔다.

「노환은 무책」이라며 주저앉았던 자기를 일으켜 세워주시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하라고 더 높은 급의 군사칭호를 주시었으니 하늘땅에도 비길 수 없는 그 고마움에 노투사는 종시 눈시울을 붉혔다.

그때로부터 몇 달이 지난 10월말 어느 날 그가 품어온 또 하나의 큰 소망이 풀렸다.

이 날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조선인민군  제2차  포병대회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게   되었는데   그는 바로 위대한 수령님의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녔던 것이다. 투사는 이 영광의 자리가 지난 2월의 뜻깊은 기념촬영에 참가하지 못한 자신의 원을 풀어 주시고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자리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기념촬영이 끝나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를 휴계실에 부르시어 위대한 수령님앞에 세워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두 팔을 벌이시고 『어디 보자, 앓는다더니 몸은 좀 어떤가.』라고 하시며 그를 넓은 품에 껴안아주시었다.

마치도 경위대시절로 돌아간 듯 싶은 분위기가 떠올려지는 속에 노투사는 수령님의 품에 온몸을 맡긴 채 어린애처럼 흐느꼈다.

한참만에야 격정을 애써 누르며 그는 몸가짐을 정중히 한채 이렇게 말씀 올렸다.

『위대한 수령님,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극진히 보살펴주시고 치료대책까지 다 세워주셔서 인제는 병이 다 나았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보살펴주시지 않았더라면 다시는 군복을 입어보지 못할 번 하였습니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온 방안이 쩌렁쩌렁 울리게 말씀하시었다.

『이젠 됐소.

몸이 더 좋아진 것 같아.

앞으로 부대장노릇을 얼마든지 할 수 있소.

내 마음이 다 놓이오.

건강에 주의하시오.』

그러시고는 장군님께 감사하다고 말씀하시었다.

순간 방안은 감격과 흥분의 파도로 설레었다.

이것이 어찌 한 전사를 소생시켜 다시 자기 초소에 세워주신데 대한 감사의 표시만이랴. 김정일장군님께서 전체 인민군장병들을 그렇듯 따사로운 한 품에 안아 운명을 지켜주고 책임져주시며 일심단결의 대오, 혼연일체의 강군으로 키워가시는데 대한 가장 숭고한 경의이고 감사의 표시였다.

그것은 정녕 절세의 위인에 대한 시대와 역사의 숭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