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선군영도역사는 혁명전사들에 대한 동지적 사랑과 믿음의 위대한 서사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의  지휘성원들로부터  병사들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를   생사운명을   같이하는   혁명동지로   여기시고  친어버이사랑을 베푸시었다.

혁명의 수령이 베푸는 전사들에 대한 사랑은 혁명적 동지애의 최고정화이다. 그것은 전사들을 참된 혁명의 길로 힘있게 떠밀어주고 이끌어 주는 위대한 추동력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렇듯 숭고한 혁명적 동지애로 인민군군인들을 보살피시며 뜨거운 믿음과 사랑을 베푸시었다.

그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동지에게 베푸신 믿음과 사랑에서 찾아본다.

언제인가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하였던 김책동지를 추억하시다가 『수령님과 김책동지와의 관계는 나와 오진우인민무력부장과의 관계와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수령님과 김책』, 『나와 오진우』

이 표현만으로도 장군님께서 오진우동지를 얼마나 믿고 사랑하셨는가를 느낄 수 있다.

믿음과 사랑이 크고 뜨거우면 숭배와 보답이 따르는 법이다.

김책동지가 위대한 수령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음에도  항상  전사의   자세로  수령님을  받들어  모시고  따른  충신이었듯이  오진우동지  역시 경애하는 장군님을 절대숭배하며 받들어 모시었다.

오진우동지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백두산시절부터 조국의 미래로, 미래의 태양으로 받들어 모셔온 항일의 충신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때를 회억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이나 최광 총참모장은 백두산시절부터 나를 백두광명성으로 내세우고 받들어준 우리 혁명의 원로입니다.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은 내가 백두산에서 태어났을 때 나무를 해다가 방을 덥혀준 나의 은인입니다. 나는 그들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며 그들에 대한 의리를 끝까지 지킬 것입니다.』

이렇게 뿌리 내린 장군님과 오진우동지사이의 동지적 우정은 반세기에 걸치는 장구한 혁명의 노정과 더불어 더욱 두터워지고 공고화되었다. 장군님곁에는 언제나 총을 멘 오진우동지가 있었다.

오진우동지가 한평생 변함없는 한 모습으로 그분을 받들어올 수 있은 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동지적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체72(1983)년 3월 8일에 있은 일이다.

당시 어느 한 요양소에서 병치료를 받던 오진우동지는 한 일꾼으로부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신 편지와 함께 포장한 자그마한 곽을 하나 받았다.

편지에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축하서한이 적혀 있었다.

『존경하는 오진우동지!

수령님의 훌륭한 혁명전우이며 우리 당이 존경하는 동지이신 오진우동지의 생신날에 즈음하여 소박한 나의 성의로 이 시계를 보내드립니다.

아무쪼록 존경하는 동지의 건강에 유의하시어 우리 당과 인민무력건설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와 생활에서 행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당신의 젊은 동지인 김정일올립니다.』

축하서한의 자자구구에는 오랫동안 생사운명을 함께 해온 혁명동지에 대한 장군님의 한없이 숭고한 사랑과 믿음이 그대로 맥박치고 있었다.

건강관리를 잘 하지 못하여 장군님께 심려만 끼쳐드리고도 분에 넘치는 생일선물을 받아 안은 그는 너무나 감격이 북받쳐올라 그분께 감사의 편지, 영원히 당을 따라 혁명의 천만리길을 꿋꿋이 걸어갈 맹세의 편지를 올리었다.

오진우동지는 편지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병치료를 하고 있은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뜨거운 배려에 감사를 드리고 나서 그분의 곁을 잠시나마 떠나있으려니  자나깨나  못견디게  그리워지는  심정을  토로한  다음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항일의  수십만리길을  헤쳐온  자기는  이제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기어이 조국을 통일할 일념으로 살아간다고 하면서 부디 혁명의 종국적 승리를 위하여, 후손만대의 행복을 위하여 사업에 무리하시지 말고 건강을 돌보아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한다고 자기의 충정의 마음을 담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가 올린 소박한 편지를 읽으시고 일꾼들에게 동무들, 모두 이 편지를 읽어보시오,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이 요양지에서 이 편지를 자필로 써 보내왔다고 하시며 편지를 넘겨주시었다.

편지를 읽고 감동을 금치 못해하는 일꾼들을 둘러보시며 장군님께서는 그는 왕청에서부터 수령님을 모시고 오늘까지 혁명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온 우리  혁명의 원로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그는 수령님의 전사라기보다 오랜 전우이다, 그런데 그가 오늘은 나를 받들어 혁명을 끝까지 완성할 것을 맹세하고 나와 함께 다니고 있다, 그는 지금 나의 가장 친근한 동지이다, 말하자면 그는 두 세대에 걸쳐 조선혁명에 충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노투사를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오진우동지는  수령님을 받들어 온 것처럼 경애하는 장군님을 민족의 어버이로, 혁명의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 모시었으며 장군님의 안녕과 건강을 보장해 드리기 위한 한가지 생각으로 가슴을 불태운 그분의 친근한 동지였다.

어느 해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도 그는 어느 한 온천지대에서 요양치료를 받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강가에 나와 소풍을 하다가 강물에서 꼬리치며 헤엄치는 산천어를 보게 되었다.

산천어를 보는 순간 그는 장군님생각이 간절해져 함께 있는 군인들과 같이 산천어잡이에 나섰다.

아침식사도 점심식사도 잊고 그는 펄펄 뛰는 팔뚝만한 산천어를 수백마리나 잡게 되었다. 그 기쁨으로 그는 그리운 장군님께 전화로 산천어가 생겨 그분께서 계시는 곳으로 이제 비행기로 떠나겠다고 말씀올렸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몸도 불편한데 거기서 여기가 어디이기에 오겠는가고, 성의는 이해할만 한데 오지 말라고 거듭 만류하시었다.

그러나 오진우동지는 장군님을 뵙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어 무작정 그분께서 계시는 곳으로 향하였다.

이제 얼마 후이면 장군님을 만나 뵈옵게 된다는 생각으로 그의 마음은 한없이 기뻤다.

오진우동지가 도착하자 장군님께서는 무더운 날씨에 먼길을 오느라고 수고하였다고 하시면서 건강은 어떤가, 그 곳의 물이 몸에 맞는가 등 하나하나 다정히 물으시었다. 그러시고는 물통안에서 서로 엉키어 꼬리를 치며 빙빙 돌아가는 산천어를 보시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시면서 그 먼데서 민물고기를 산채로 가지고 오느라고 얼마나 수고가 많았겠는가, 무슨 말로 감사를 드렸으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거듭 치하해 주시었다.

그는 별치 않은 것을 두고 치하의 말씀을 하시는 그분 앞에서 송구한 생각이 들어 군인들이 산천어를 잡아주어 그것을 가져왔다고 말씀올리었다.

장군님께서는 고맙다고 하시면서 군인들이 잡은 산천어가 명태만큼 크다고, 산천어를 그곳 인민군군인들이 잡은 것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성의가 대단하다고, 나는 인민군군인들의 성의를 잊지 않겠다고, 찬물 속에 들어가 고기를 잡느라 감기에 걸린 군인동무들은 없는가고 다정히 물으시며 그들에게 자신의 인사를 꼭 전해 달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날 일꾼들에게 『나는 오늘 인민무력부장동무가 산천어를 가지고 온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노투사들의 뜨거운 동지애를 본받아야 합니다. 말이 쉽지 불편한 몸으로 수천리길을 찾아온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라고 하시며 자신께서는 오늘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오늘이 매우 뜻이 깊고 기쁜 날이라고 말씀하시었다.

이처럼 오진우동지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진짜배기 충신이었다.

오진우동지에게는 늘 가장 마음 쓰는 일이 있었다.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혁명과 건설을 영도하시느라 밤낮이 따로 없이 일에만 전념하시면서 건강관리를 하시지 않는 것이 걱정스러워 늘 그분을 잘 받들지 못하고 있은 자신에 대하여 반성하군 하였다.

어떻게 하면 그분의 사업부담을 덜어드릴 수 있을까, 그분께 언제면 마음 편히 휴식하실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 드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는 가슴을 조이었다. 그래서 그는 장군님께 휴식의 한때를 보장해 드리려고 일꾼들과 진지하게 의논도 하고 일정한 계획에 따라 미리 정해놓은 휴식장소로 그분을 모시고 가군 하였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그때마다 수포로 돌아갔다. 장군님께서 그의 소원대로 휴식장소에 가시긴 하였지만 거기에 가시어서도 매번 긴장한 사업으로 시간을 보내군 하시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기어이 장군님께 휴식을 보장해 드릴 간절한 생각으로 그분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그는 장군님께 어느 한 인민군부대로 가시자고 말씀드리었다.

장군님께서 무슨 이유로 그 부대로 가자는가고 물으시자 그는 짐짓 정색한 표정으로 그 곳에 긴요한 문제가 있으니 오늘만은 제가 하자는 대로 하시자고 간절히 말씀올렸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요청이 너무도 간절하여 거절하실 수 없어 정 그렇다면 가긴 가자고 하시며 차에 오르시었다.

오진우동지는 기뻐하며 교외에 있는 어느 한 부대에로 그분을 모시고 차를 몰아갔다. 그 부대안에 오붓하게 꾸려놓은 낚시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수도 아닌 작은 늪에 고기가 있으면 얼마나 있으련만 그는 쌓이고 쌓인 그분의 피로를 잠시나마 덜어드리기 위하여 이런 곳을 택했던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곳에 와서야 그의 의도를 이해하신 듯 산들바람에 잔잔히 일렁이는 고요한 늪이며 둘쑹날쑹한 산발들을 둘러보시고 휴식하기는 좋은 곳이라고, 오늘은 인민무력부장의 수에 홀딱 넘어갔다고, 나를 위해주는 마음에 감사할 뿐이라고 하시며 만족해 하시었다.

오늘에야 휴식의 한때를 마련해 드리자던 자기의 소원이 성취되었다는 행복감으로 하여 그는 참으로 기뻤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낚싯대를 드리우시고 그에게 그러지 않아도 할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런 기회에 그런 문제를 토론하자고 하시면서 인민군대안의 당정치사업문제를 비롯하여 무력건설사업 등 폭넓은 문제들을 화제에 올리시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그분께 오붓한 휴식의 한때를 마련해 드린다는 것이 무력건설과 관련한 중요한 문제에 대한 가르치심을 이름없는 늪가에서 받아 안는 것으로 되었다.

그는 이 날 장군님의 말씀을 새기면서 선군태양, 군사의 영재로서의 그분의 위대성에 다시금 매혹되어 뜨거운 것을 삼키었다.

원래 그는 장군님의 위대한 풍모에 남달리 매혹된 혁명전사였다.

그래서 그는 늘 일꾼들에게 장군님을 잘 받들어 모셔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가 그분을 몹시 존경하는 것은 전당, 전국, 전군을 한 손에 틀어쥐시는 그분의 장악력과 영도력이며 세상만물의 이치를 환히 꿰뚫어 보시는 그분의 비범한 예지,  혁명전사들과 인민들을  너그럽고 소탈하게 한 품에 안아주시는 그분의 포옹력 때문이라고, 그것으로 하여 자기는 장군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른다고 말해주군 하였다.

정녕 오진우동지는 언제나 경애하는 장군님께 조국과 민족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신념을 안고 그분을 민족의 태양, 선군영장으로 숭배하고 높이 받들어 모신 장군님의 가장 가까운 전사였다.

이러한 오진우동지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아끼고 사랑하시며 가장 친근한 혁명동지로 내세워 주시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뜻밖의 사고로 생명이 위험하게 되었을 때에는 죽음의 문턱에서 소생시켜 주시었다.

주체75(1986)년 9월 어느 날이었다.

이 날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심려하시는 문제를 놓고 어떻게 하면 그분을 잘 받들어 드릴까 하는 생각으로 잠 못 이루던 그는 깊은 밤에 어느 한 주요건설장을 찾아 떠났다. 그는 당과 수령의 뜻을 받들어 낮과 밤이 따로 없이 힘찬 건설전투를 벌이고 있은 군인건설자들을 만나 고무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며 그들과 같이 일도 하였다.

그러던 그가 건설장에서 돌아오던 길에 뜻밖의 차 사고로 생명이 위급하게 되었다. 그는 병원에 실려갔지만 살 가망이 없었다. 부상도 엄중하거니와 출혈을 많이 한 탓으로 맥박이 영상태나 다름없었다. 살리자면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환자의 나이와 일반상태로 보아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의사협의회의 결론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병원을 찾으시었을 때 환자의 상태는 이러하였다.

며칠어간에도 여러 차례 만나 사업을 의논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던 그가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것을 보게 되신 장군님께서는 몹시 상심하신 표정으로 맥박도 세어보시고 가슴도 만져보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동안 현대의학과학기술기재들을 통하여 검사하고 진찰한 정형을 구체적으로 요해하시고 온몸이 부어 본래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된 환자의 손과 얼굴을 어루만지시면서 순간을 놓치면 자신께서 제일로 사랑하고 믿으시는 전사를 잃게 될 수 있다는 비감에 잠기시었다.

이름있는 의학자들도 애꿎은 가슴만 쥐어뜯을 뿐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하였다. 환자를 둘러싼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이윽토록 그들을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무엇인가 단호하게 결심하신 듯 말씀하시었다.

『동무들, 이 환자는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환자를 죽은 사람으로 여기고 마음대로 칼을 대시오.

그래도 결심이 서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은 그를 살려내느냐 죽이느냐 하는 결심을 내려야 할 엄숙한 시각이었다.

『좋습니다.

비록 일이 잘못된다 하여도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대담하게 치료전을 벌여야 하겠습니다.』

그처럼 사랑하는 전사를 앞에 놓고 주저하는 의료일꾼들에게 담을 주시며 칼을 대라고 하셨으니 진정 그 말씀 속에는 끝까지 전사를 살리려는 뜨거운 사랑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되어 미증유의 모험수술이 시작되었다.

그분께서 안겨주신 담력의 힘이라고 할까, 열렬한 동지애가 낳은 기적이라고 할까, 아차하면 돌이킬 수 없는 아슬아슬한 대수술에서 의사들은 끝내 성공하고야 말았다.

수술결과를 보고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즉시 병원에 달려오시어 환자상태를 알아보시고는 의료일꾼들에게 고맙다고, 치료에 동원된 의료일꾼들이 기적을 창조했다고, 이제는 죽었던 생명만은 건진 것 같다고 못내 기뻐하시며 그들에게 거듭 감사를 표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때부터 환자가 완쾌될 때까지 줄곧 치료에 관심하시며 필요한 대책을 다 취해주시었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동지적 사랑에 의하여 죽음의 문턱에 한발을 들여놓았던 오진우동지는 기적적으로 소생되었다.

그의 소생을 제일 기뻐하신 분은 장군님이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가 올리는 감사의 인사를 받으시며 의식없이 실려갈 때는 앞이 다 보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회복되어 살아왔으니 이젠 됐다고 하시면서 그의 손을 꼭 잡아주시었다.

『…건강한 몸으로 돌아온 것을 보니 대단히 기쁩니다.

수령님께서 이제는 한시름 놓으시게 되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인민무력부장의 건강상태가 걱정되어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시었습니다.』

그러시고는 죽었던 사람이 살아서 돌아와 더없이 기쁘다고 하시고는 병원에서 완쾌될 때까지 치료를 좀 더 받을 대책을 취해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오진우동지를 어버이수령님앞에 내세워 주시었다.

『수령님, 이 세상에 두 번 다시 태어난 오진우… 삼가 인사를 올립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례를 붙인 그의 손을 내려주시고 한 팔을 껴안으시며 서있기가 힘들텐데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고 하시면서 정말 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단 말이지, 다시 못 볼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나 경례까지 붙이는 것을 보니 정말 기쁘다고 하시며 선뜻 믿어지지 않으시는 듯 그의 아래위를 살펴보고 또 살펴보시었다.

『자, 어디 똑똑히 보기요.… 정말 오진우동무가 분명하긴 분명하구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시며  이번에 동무를 살려낸 것은 당중앙위원회 김정일동지이라고, 김정일동지가 귀중한 전우 한명을 내 곁에 다시 세워주었다고,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염라대왕도 동무를 데려가려다가 하늘에 닿은 김정일동지의 지성에 하도 감동되어 이렇게 돌려보냈다고 하시며 동무야말로 죽음의 문턱에 넘어섰던 것을 김정일동지가 살려낸 이생의 복을 지닌 사나이라고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었다.

오진우동지는 끝내 참고 참던 눈물을 쏟으며 그 자리에 엎드려 수령님께 큰절을 드리려고 하였다.

이때 수령님께서는 이러지 말라고, 절을 하겠으면 나에게 할 것이 아니라 김정일동지에게 해야 한다고, 김정일동지에게 두 귀를 쥐고 절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은 이렇듯 오진우동지에게 재생의 숨결을 부어주시고 이생의 복을 안겨주신 영원한 삶의 은인이시었다.

정녕 경애하는 장군님과 오진우동지사이에 맺어진 동지적 사랑과 믿음은 가장 진실하고도 열렬한 것이었다.

『나와 오진우』, 가장 친근한 동지로 내세워주시고 건강과 생활에 대하여 그토록 극진히 보살펴주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이 있음으로 하여 저 멀리 백두산에서 맺어진 장군님과 오진우동지사이의 동지적 사랑과 의리는 이처럼 뜨거운 것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지난날 위대한 수령님을 받들어 건군위업에 큰 공헌을 한 전쟁노병들을 적극 내세워 주시고 그들이 군력강화에서 계속 꽃을 피워 나갈 수 있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 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인가 김정일동지는 항일혁명투쟁에 참가한 노혁명가들 뿐 아니라 해방 후부터 자신과 함께 일해온 오랜 일꾼들도 진심으로 아끼며 그들의 생활을 잘 돌봐주고 있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이에 대하여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쟁노병들을 당의 핵심으로, 귀중한 혁명전우로 여기시며 그들이 전쟁시기에 발휘한 불굴의 정신으로 새 세대군인들을 교양해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군건설영도업적을 빛내이는 사업에 이바지하도록 적극 내세워 주시었다.

그러한 사람들 속에는 전쟁노병 이활도 있다.

주체77(1988)년 2월 5일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무력부의 책임일꾼과 담화를 나누시며 고령의 전쟁노병인 그의 사업과 생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요해하시었다.

이활로 말하면 지난 기간 전쟁노병으로서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을 그 누구보다도 뜨겁게 받아 안으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 그가 비록 자산계급출신이지만 성근히 손을 잡아주시고 열혈청년의 애국적 소원대로 그가 인민군대 공군무력창설에서 한몫 단단히 하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 주시었다.

하여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각별한  신임 속에서  인민군대의  공군무력의  지휘일꾼으로  되었고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공군부사령관으로서 수령님의 전투명령을 받들고 미제와의 싸움에서 영웅적 위훈을 세웠다.

그러던 그는 전후시기 일부 편협한 사람들에 의해 군적에서 제명되었다.

이 사실을 아시게 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잘 아는 동무이니 복당시켜 당생활을 계속하게 하라고, 그처럼 성실한 사람에게 종파모자를 씌웠다고 격분을 금치 못하시면서 본인을 불러 그 허위문건을 보여주고 그 앞에서 불살라버리도록 하시었다. 그러시고는 한때 그가 아니할 마음고생을 많이 하였다고 하시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온갖 믿음과 사랑을 다 베풀어 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혁명무력건설에서 세운 그의 공로를 귀중히 여기시어 그를 회복시켜 주시고 어느 한 지방공장의 지도일꾼으로 사업하도록 해주시었다.

그 후에도 장군님께서는 그를 잊지 않으시고 수령님 탄생 70돌을 맞이할 때에는 중앙경축대표로 선출해 주시었고 그의 두 아들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비행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향이라는 것을 아시고는 아들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비행사가 되겠다고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그들을 공부시켜 소원대로 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며 자식들까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충성 다하도록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 주시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주체72(1983)년 11월 어느 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총정치국의 한 일꾼에게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관리운영상태에 대하여 물으시고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은 우리 인민들, 특히는 새 세대청년들을 전쟁경험으로 무장시키는 데서 매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관리운영사업을 잘 해야 하며 그러자면 강사와 관리원들을 잘 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강사와 관리원들을 전쟁참가자들로 꾸려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고는 이활을 소환하여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공로해설원으로 사업하도록 크나큰 배려를 돌려주시었던 것이다.

이처럼 그는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배려에 의하여 온갖 사랑을 다 받으며 생을 아무 여한이 없이 살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그러한 그에게 또다시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시었다.

인민무력부의 책임일꾼으로부터 이활의 사업과 생활에 대하여 요해하신 장군님께서는 그가 해방 후 인민군대를 정규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키던 시기부터 인민군대에 복무하면서 군건설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공로해설원을 인민군대에 복대시키고 그에게 중장의 군사칭호를 주어야 하겠습니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공로해설원을 인민군대에 복대시키고 중장의 군사칭호를 주면 비행사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순간 일꾼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의 나이가 70이 다 되었기 때문이었다.

동서고금의 어느 나라 역사에 70나이의 노인을 군대에 복대시킨 사실이 있는가.

일꾼은 장군님의 사랑 속에 전쟁노병들이 꿈에도 생각지 못한 영광과 행복의 절정위에 올라서게 되었다는 이 놀라운 현실을 의식하며 뜨거운 것을 삼키었다.

그 다음 날이었다.

인민무력부의 어느 한 방에서는 장군님의 은정으로 전쟁노병인 이활을 인민군대에 복대시키고 중장의 군사칭호를 수여하는 모임이 진행되었다.

사실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도 놀라운 현실 앞에서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뜨거운 눈물만 쏟았다.

군복을 벗은 몸이지만 지난 수십 년세월 그에게 있어서 혁명의 군복을 다시 입고 수령결사옹위의 복무의 길을 걷고 싶은 것이 어느 하루도 잊은 적 없는 간절한 소망이었다. 하지만 그는 세월이 흘러 환갑이 지나고 70고령을 눈앞에 두면서 그것을 더는 바랄 수 없는 일로만 여기였었다.

장군님께서 자기를 새 삶의 보람찬 길에 내세워주신 것만 하여도 너무도 분에 넘치고 고마운 일이었는데 혁명의 군복을 다시 입혀주시고 그렇듯 높은 군사칭호까지 안겨주시었으니 어찌 터지는 감격을 금할 수 있겠는가.

그분의 은정속에 다시 군복을 입은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심장의 맹세를 다지었다.

『경애하는 장군님!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군복을 입고 있던 그 날처럼 오늘은 이 이활이가 장군님의 은정으로 다시 군복을 입고 새로운 복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제 언제나 장군님의 은덕에 대를 이어 가며 기어이 보답할 일념으로 수령결사옹위의 복무의 길을 참되게 빛내어 나가겠습니다.』

그 후 그는 새 세대군인들을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룩하신 군건설업적으로 교양하는 사업에 모든 지혜와 열정을 바쳐 하루하루를 충성으로 수놓아갔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은 그에게만 베풀어진 것이 아니었다.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으로 많은 전쟁노병들과 공화국영웅들이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해설강사로 배치되어 인생말년에도 총쥔 병사의 보람찬 삶을 빛내일 수 있게 되었다.

전쟁노병들을 그처럼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장군님께서는 지난 날 조국해방전쟁사에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여러 작전과 전투들에 참가하여 영웅적 위훈을 세운 공화국영웅들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로 배치해 주시었다.

그들 속에는 비행기사냥군조운동에 참가하여 중기관총으로 적기를 수많이 격추하는 위훈을 세운 김기우 2중영웅과 불뿜는 적화구를 몸으로 막아 부대의 돌격로를 열어 놓은 김성진영웅, 이수복영웅의 소대장이었던 권혁창영웅 등 수많은 금별의 수훈자들이 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십 여년전 조국해방전쟁에서 위훈을 세운 그들을 잊지 않으시고 그들 모두가 비록 나이가 들어 육체적으로는 노쇠했으나 계속 군복을 입고 새 세대군인들을 전투위훈으로 교양하는 혁명초소에서 충성의 꽃을 계속 피워 나가도록 다함 없는 믿음과 은정을 안겨주시었다.

장군님께서 전쟁노병들에게 베푸시는 사랑은 끝이 없었다.

그분께서는 전쟁노병들에게 은정어린 생일상도 보내주시었고 전국영웅대회를 소집하시고는 전화의 영웅들을 다 불러주시어 그들의 위훈을 널리 자랑하게 하시었다.

주체77(1988)년 9월 2일, 수도 평양에서는 전국영웅대회가 성대히 열리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대회주석단에 나오시는 순간 장내에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 올랐다. 열광적으로  만세를 외치는 영웅들의  얼굴마다에는 두 분의 위대한 영도자를 대회주석단에 모신 크나큰 영광과 행복이 넘쳐 났다.

서른다섯해전 강산에 전쟁승리의 감격이 차 넘치던 역사의 날 소집되었던 전국전투영웅대회때 포연에 그슬린 군복을 입고 앞가슴에 영웅메달을 단 영웅들이 주석단에 오르신 강철의 영장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 목청껏 만세를  외치던  모습이런  듯 위대한 수령님과  함께  주석단에 오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우러러 격동된 감정을 터치는 만세의 환호는 온 대회장을 진감하였다.

혈전만리를 헤치며 조국해방을 안아온 영웅의 첫 세대들인 항일혁명투사들과 조국수호의 전쟁노병들이 어젯날의 위훈이 깃든 혁명의 군복을 입고 자랑스럽게 영광의 대회에 참가하여 그분을 우러러 목청껏 환호를 터치고 있었다.

진정  전쟁노병들  모두가  언제나  불타는  낙동강을  건느던  전화의  그  정신으로  복무의  길을  영원히  빛내어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은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군건설업적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완성하기 위한 불패의 힘의 원천이었다.

    

 

믿음이 클수록 사랑은 뜨겁고 열렬하다. 인민군군인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신념으로 간직하고 계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들을 제일로 아끼고 사랑하시며 친어버이심정으로 극진히 보살펴주고 계신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인민군장령이었던 송억만에게 베푸신 사랑이 그 한 실례이다.

송억만장령은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의하여 조국보위와 나라의 대자연개조를 위한 벅찬 투쟁 속에서 2중노력영웅으로, 조선인민군 중장으로 자라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시기 부대기농사꾼으로, 품팔이꾼으로 지내던 그를 해방 후 조선인민군대에 입대시켜 주시고 그에게 조선노동당원의 영예를 안겨주시었다.

수령님의 품속에서 조선인민군 중대장으로 자라난 그는 조국해방전쟁시기 수령님의 전투명령을 높이 받들고 미제와의 판가리싸움에서 영웅적으로 잘 싸웠다. 그후 그는 인민군대의 전투력강화에서 모범을 보였으며 평양-원산사이 도로건설에 참가하여 노력적 위훈을 세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군인들의 앞장에서 석수를 맞으며 굴을 뚫고 벼랑턱에 매단 발판위에서 메질도 하며 희생적인 투쟁을 벌인다는 것을 요해하시고 자신의 존함이 모셔진 시계를 표창으로 안겨주시었다. 그리고 공사가 끝났을 때에는 그에게 공민의 최고영예인 노력영웅칭호를 수여해 주시었다.

어느 한 부대의 지휘관으로 자라난 그는 나라의 대자연개조사업의 하나인 서해갑문건설을 책임지기도 했으며 그 후에는 금성간석지건설도 맡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한 그를 더없이 아끼고 사랑하시며 그의 가슴에 영웅의 담력과 불굴의 의지를 심어주시어 맡겨진 대상건설에서 세기적인 기적과 혁신을 창조하도록 걸음걸음 이끌어 주시었다. 그러시고는 세계적인 서해갑문건설에서 세운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시어 2중노력영웅칭호를 수여해 주시는 크나큰 영광을 안겨주시었다.

장군님의 사랑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가 금성간석지건설을 책임지고 공사장에서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일하고 있을 때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희생적으로 일하고 있은 그의 건강이 염려되시어 각별한 관심을 돌리시었다.

주체76(1987)년 9월 어느 날이었다.

인민무력부의 한 책임일꾼을 만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금성간석지건설을 책임진 송억만장령의 치료대책을 세워야 하겠다고 하시며 외국에서 치료를 받게 하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순간 일꾼은 가슴이 뜨거웠다. 그는 장군님께서 늘 송억만장령의 건강에 깊은 관심을 돌려오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이제는 나이도 적지 않은 그가 나라의 큰 건설공사를 맡아 하느라 몸을 돌볼 새가 없을 것이라고 하시며 공사진행정형에 대한 보고와 함께 그의 건강상태에 대한 보고를 정상적으로 받군 하시었다. 그러시고는 건강검진도 자주 하게 하시고 그의 혈압수치가 높아진 것을 아시고는 전문일꾼들을 붙여 치료하도록 해주시었던 것이다.

한 전사의 건강을 위하여 이렇게 깊은 관심을 돌려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오늘은 또 그를 외국에 보내어 오랫동안 휴식하면서 병도 고칠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일꾼을 통하여 장군님의 말씀을 전달받은 그는 그분의 친어버이사랑에 목이 메였다.

(경애하는 장군님!… 제가 뭐 길래 이런 걱정까지 하신단 말입니까!…)

장군님께서는 그가 여러 달 동안 치료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에는 경치좋은 곳에 보내어 휴식도 시키고 치료를 더 받게 하라고 이르시었다. 그 후 인민무력부의 한 일꾼을 만나신 장군님께서는 그의 몸이 어떤가고 물으시고 건강관리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게 해야 하겠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불편한 몸인데도 자기 초소를 끝까지 지켜내려고 애쓰는 그를 위하여 제1대리인제를 새로 내오게 하시고 승용차도 새 것으로 바꾸어 주시는 한량없는 사랑을 돌려주시었다.

실로 그에 대한 장군님의 보살피심은 끝이 없었다.

그가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였다.

이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말없이 많은 일을 해온 충실한 전사를 잃은 애석함으로 하여 가슴이 쓰리고 아프시었다.

해방 후 새 조국건설의 첫 시기부터 혁명무력의 강화발전에 기여하였을 뿐 아니라 군사지휘관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주의건설투쟁에서도 공로를 세운 전사, 세계적인 서해갑문건설에 이어 금성간석지건설에서도 조건타발없이 온갖 지혜와 정력을 다 바쳐 일해온 충신전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생전의 모습이 떠올라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다가 부고를 신문에 내고 그의 영전에 화환을 보내며 영구는 애국열사들이 잠들고 있은 애국열사릉에 안치해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그때로부터 얼마 후였다.

살아  생전에  사랑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안겨주시었지만  더  큰  것을  주지  못하신  듯  아쉬워하시던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활동을 수록한 영화문헌에 그의 모습을 싣게 하시었다.

그리하여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혜로운 사랑의 품이 있어 죽어서도 영생하는 모습으로 군인들과 인민들의 마음속에 안겨 살게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사들에게 영생의 삶을 주실 뿐 아니라 그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다 돌려주시었다.

주체71(1982)년 여름 아프리카의 어느 한 나라에 나가 사업하고 있던 인민군대표단 성원들 속에서 무서운 전염병이 발생하였을 때였다.

당시 그 나라를 휩쓸고 있던 전염병은 우리 대표단 성원들의 생명을 각일각 위협하였다.

인민무력부의 한 일꾼으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못내 걱정되시어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가 그들이 지금 무서운 전염병에 걸려 심하게 앓고 있으면 인민무력부에서 유능한 군의 한명을 빨리 보내어 치료해 주도록 하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의 생명을 먼저 생각하시며 머나먼 그곳으로 군의일꾼을 속히 보내기 위한 온갖 대책을 다 세워주시었다. 현지에 보낼 유능한 군의일꾼도 손수 선발하여 주시고 귀중한 약재들도 충분히 가지고 갈수 있도록 해주시었다.

마침내 그분의 뜨거운 사랑과 보살피심은 대양과 대륙을 넘어 지구의 머나먼 한끝에까지 가닿게 되었다.

이국땅에서 병마에 신음하던 대표단성원들은 그분의 사랑에 목이 메여 뜨거운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그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그 나라 사람들도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 숭고한 인간애, 위대한 사랑을 지니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높이 칭송하였다.

장군님의 한없이 뜨거운 사랑은 무서운 병마도 거꾸러뜨리고 전사들을 구원한 크나큰 소생의 힘으로 되었다.

생사기로에서 헤매이던 환자들은 모두 10여일만에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회복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군의일꾼을 현지에 떠나보내시고도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하시며 환자들의 치료정형을 다시금 요해하시고 환자들이 많이 회복되었다는 보고를 받으신 그분께서는 못내 기뻐하시며 『환자들을 빨리 다 치료해 주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의 이렇듯 뜨거운 사랑과 보살피심 속에서 대표단성원들은 빠른 기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으며 드디어 그립고 그립던 조국으로 전원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다.

전사들의 생명을 제일로 귀중히 여기시며 아낌없는 배려를 다 돌려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생명이 경각에 이른 최전연초소의 한 전사를 소생시키기 위하여 사랑의 직승기도 보내주시었고 인민군군인들이 그분의 건강을 위해 삼가 올린 귀중한 약재도 병사들에게 다 돌려주시었다. 그뿐 아니라 인민군군인들의 건강증진을 위하여 군대안의 병원설비들을 최신식으로 꾸려주시고 최신식치료차도 군대에 먼저 보내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늘 일꾼들에게 우리는 모든 문제를 군인대중을 중심에 놓고 그들의 이익에 맞게 처리하여야 한다고,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인민군전사들이 있으며 그들의 기쁨 속에 나의 행복이 있다고 하시며 언제나 병사들을 찾고 찾으신다. 병사들을 찾으시어서는 병실과 식당부터 들리시어 침실의 온도와 간장맛까지 가늠해 보시고 그들이 입은 솜동복의 두께도 헤아려 보시며 생활을 친어버이심정으로 따뜻이 보살펴 주신다.

이렇듯 위대한 사랑을 지니고 계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계시어 총쥔 모든 병사들이 군인의 자각을 안고 초소를 철옹성으로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