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엽, 대동강하구의 조선서해 20리 난바다위에 세계적인 초대형갑문인 서해갑문(건설당시는 남포갑문이라고 했다.)이 솟아올랐다. 거대한 갑실들과 무넘이언제, 아득히 연이은 언제로 이루어진 서해갑문의 웅장한 모습은 자못 장관이다. 그래서 서해갑문을 돌아본 외국인들은 하늘의 은하수가 내려앉았는가, 고대그리스신화의 바다신 포세이돈이 백마가 끄는 마차에 해령들을 거느리고 바다위를 달리다가 조선의 기상에 반해서 보금자리를 틀고 앉았는 가고 감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거대한 서해갑문은 세계에 주체사회주의의 무궁무진한 힘을 과시한 노동당시대의 기상이며 「80년대속도」창조의 기적이었다. 오랜 세월 서해로 흘러가던 대동강물을 잡아두고 곡창지대인 황해남도와 평안남도의 농경지들과 새로 개간할 간석지들에 물을 충분히 대주어 알곡생산을 늘이며 대동강하류지대의 공업용수와 음료수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고 교통운수를 크게 발전시키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이 서해갑문건설을 조선인민군 군인들이 맡아 수행하였다.

밀물과 썰물이 심하게 오르내리고 깊이가 수십m나 되는 20리 난바다를 가로질러 막아 언제를 쌓고 거기에 5만t급까지의 각종 배들이 통과할 수 있는 여러 개의 갑실과 수십개의 수문을 건설하며 무넘이언제와 보조무넘이언제, 수십리 언제위에 자동차길과 철길을 놓아야 하는 서해갑문건설은 그 규모에서나 공사조건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그 어느 언제공사나 갑문공사에도 비길 수 없는 매우 어렵고 거창한 대자연개조사업이었다. 언제의 길이만 해도 서해갑문은 세계적으로 이름 난 프랑스의 란스조수력발전소의 4배나 되었다.

오래 전부터 나라의 동서를 운하로 연결할 데 대한 대자연개조구상을 무르익혀 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70(1981)년 5월 22일 몸소 배를 타고 현지에 나가시어 서해갑문의 위치를 잡아주시면서 인민군대를 굳게 믿으시고 갑문건설공사를 맡겨 주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서해갑문건설을 진두지휘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몇해 안에 서해갑문을 건설하기 위한 대담하고 통이 큰 작전을 펴시고 공사를 입체적으로 벌이기 위한 방도를 뚜렷이 밝혀주시었으며 인민군대를 기본으로 강력한 건설역량을 편성하여 주시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70(1981)년 5월말 어느 날, 인민무력부의 한 책임일꾼을 부르시어 우리 식 공법으로 공사를 내밀어 갑문건설을 빨리 끝낼 데 대한 과업을 주시면서 남들은 조사단계가 끝난 다음 시험단계에 들어가고 시험단계가 끝난 다음 설계단계로 들어가는 식으로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설계도 기반조사도 언제공사도 동시에 밀고 나가며 지상과 해상, 수중에서 필요하다면 하늘에서까지 일제히 공격을 들이대는 대입체전, 대전면전을 벌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그러시고는 적들은 지금 매일같이 화약내를 풍기며 전쟁준비에 미쳐 날뛰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놈들의 새 전쟁도발책동에 총포소리 없는 전쟁으로 대답하자는 것이다, 다시말하여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대건설전으로 맞서자는 것이라고 힘 주어 말씀하시었다.

그리하여 거창한 서해갑문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은 처음부터 강력한 건설역량에 의해 지상과 해상, 수중에서 입체전, 전면전으로 힘차게 벌어지게 되었다.

그 후 장군님께서는 서해갑문건설장을 몸소 여러 차례 찾으시어 비범한 예지로 건설공사를 현명하게 이끌어 주시었다.

공사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던 주체72(1983)년 4월 20일 남포에서 배를 타시고 갑문건설장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난바다 한복판으로 뻗어나가고 있은 가물막이뚝위에 오르시어 가물막이공사장이며 기본언제건설장, 멀리 부재생산장을 살펴보시며 인민군군인들이 많은 일을 하였다고 치하해 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현대적 기계를 믿고 언제공사를 하지만 우리는 인민군군인들의 높은 정치적 열의와 창조적 적극성을 믿고 방대한 갑문건설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어 갑문건설과 관련한 작전도를 마주하시고 중요공사대상별 역량배치정형과 앞으로 진행할 공사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었다.

공사는 중심고리가 없이 인적, 기술적 역량을 모든 부문에 골고루 편성해 놓고 동시에 전진시키고 있었다.

한동안 설명을 들으시던 장군님께서는 심중한 안색으로 갑문건설을 위한 전투조직에서 주공목표가 없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남포갑문건설에서는 가물막이공사와 물 빼기, 갑실, 무넘이언제공사가 기본입니다.』

그러시면서 그분께서는 그중에서도 당면하게는 가물막이공사가 기본이라고, 가물막이가 끝나야 갑실공사도, 무넘이언제공사도 할 수 있지 않겠는 가고, 그러므로 가물막이공사를 주타격목표로 설정하고 여기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하시며 그래야 입체전, 전면전을 들이댈 데 대한 당의 요구를 더 잘 실현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전 전선에 역량을 배치해 놓고 갈팡질팡하던 일꾼들은 그분의 가르치심을 받아 안고 환성을 올렸다.

주공목표를 옳게 설정하고 역량을 집중하는 것, 이것은 속도전의 기본요구이며 갑문건설의 돌파구를 열어 나가기 위한 기본열쇠였다.

장군님께서는 이어 가물막이공사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새로운 공법을 대담하게 받아들여 공사속도를 높일 데 대해서도 가르쳐 주시었다.

당시 일부 일꾼들은 새 공법대로 가물막이뚝을 쌓고 그 안의 물까지 퍼내면 난바다의 거대한 압력에 못이겨 가물막이뚝이 안쪽으로 기울어질 것이라고 또 아무리 물을 퍼내도 바닷물이 슴새어 들기 때문에 바닥이 완전히 드러나기는 곤난하다는 기성관념에 사로잡혀 새 공법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을 둘러보시며 우리는 어디까지나 과학을 믿어야 한다, 수리공학시험도 하고 작은 규모에서이기는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 가물막이를 해본 경험도 있다면야 무엇 때문에 주저하겠는 가고 하시며 가물막이뚝은 넘어지지 않는다고, 자신께서는 새 공법을 지지한다고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었다.

그러시고는 겁이 많은 사람들은 가물막이뚝이 터질까봐 무서워하고 있지만 우리는 가물막이가 끝나면 바다안에서 보란 듯이 인민군군인들의 축구경기를 한번 크게 벌이자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었다.

그분의 말씀에 고무된 군인건설자들은 가물막이공사에로 총돌격하였다. 그리하여 파도세찬 난바다위에 하나의 도시를 둘러싼 성벽을 방불케 하는 가물막이뚝이 거연히 솟아오르고 가물막이뚝안의 드러난 바닥에서 뜻깊은 축구경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바다밑에서 축구경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에 희한한 일도 다 있다고, 꿈같은 일이라고 하며 놀라와 하였다.

그 후 또다시 서해갑문건설장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군인건설자들이 질통으로 감탕을 져나르는 모습을 보시고 안색을 흐리시며 갑문건설을 빨리 끝내기 위하여서는 윤전기재들을 대주어 작업을 기계화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일꾼들이 제기한 수자보다 엄청나게 많은 대형자동차와 불도저, 굴착기들을 건설장에 보내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후에도 갑문건설장에 자재와 설비를 보장해주는 것은 전쟁시기 1211고지에 대포와 포탄을 보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시면서 필요한 자재들을 제때에 생산보장하게 하는 혁명적인 조치도 취해주시었다.

일꾼들은 장군님께서 하라는 대로만 하면 이 세상에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가지였다.

갑문건설이 완공단계에 들어섰을 때였다. 공사장에서는 여러가지 난문제들이 제기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제일 걸린 문제가 언제마감막이공사를 어떤 방법으로 해야 안전하면서도 잘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언제마감막이공사는 양쪽으로부터 쌓아오던 언제를 연결하여 남포 앞바다로 흘러 드는 바다물의 세찬 흐름을 완전히 막아버리기 위한 공사였다.

그런데 언제의 마감막이구간이 좁아짐에 따라 물살이 얼마나 세졌는지 굉장히 큰 돌들을 물속에 넣어도 바닥에 닿기 전에 떠내려가군 하였다.

인민군대의 공사지휘일꾼들과 과학자, 기술자들이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신통한 방도를 찾지 못해 모두 속을 태우고 있었다.

그러던 주체74(1985)년 9월 19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세 번째로 갑문건설장을 찾아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먼저 마감단계에 이른 갑실과 무넘이언제를 비롯한 건설장의 전경을 굽어보시며 그동안 군인건설자들이 일을 많이 하였다고 치하해주시면서 한없는 믿음이 담겨진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남포갑문과 같은 거창한 건설공사는 당의 영도에 충실하며 조직력과 전투력이 강한 우리 인민군대만이 할 수 있지 다른 나라의 군대는 할 수 없습니다.』

찾아오실 때마다 군인건설자들의 노력적 성과부터 뜨겁게 헤아려주시는 그분이시었다.

지휘일꾼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신 장군님을 우러르며 마감막이공사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보고드리었다.

들의 설명을 들으시며 마감막이구간의 초당 물살의 세기와 수심 그리고 갑실과 무넘이언제공사의 완공예정기일을 구체적으로 요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들에게 과학자들이 아직까지 마감막이공법을 완성하지 못하였을뿐아니라 설사 마감막이공법이 완성되었다 해도 갑실공사가 끝나지 못한 조건에서 마감막이공사를 하면 송림항과 남포항으로 드나드는 수많은 배들의 뱃길이 막히게 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 먼저 갑실과 무넘이언제공사에 힘을 집중하여 그 공사를 끝낸 다음에 물을 갑실쪽으로 돌리고 언제마감막이공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물을 갑실쪽으로 돌리고 언제마감막이공사를 하여야 헐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하면 우선 갑실과 무넘이언제공사에 힘을 더 집중할 수 있으니 좋고 마감막이를 헐하게 할 수 있으니 또 좋고 게다가 남포항으로 드나드는 배들에도 지장을 주지 않게 될 것이니 더욱 좋다고 하시면서 바로 이런것을 두고 꿩 먹고 알 먹기라고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수많은 공사지휘성원들과 과학자, 전문가들이 그처럼 논의를 거듭하면서도 끝내 찾아내지 못한 마감막이공사의 해결방도를 그분께서는 이처럼 순간에 환히 밝혀주시는 것이었다.

받아 안은 충격이 너무 컸던 한 일꾼은 훗날 어느 한 기회에 장군님께 어떻게 되어 그때 서해갑문공사에서 제기되었던 난문제를 그리도 쉽게 푸실 수 있었는지 말씀해 달라고 외람된 청을 드린 적이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크게 웃으시며 개울에서 고기잡이를 할 때 물살이 빨라서 동막이가 힘들면 옆으로 물을 돌리는 방법이 있지 않는 가고 하시며 생동하게 비유하여 말씀해주시었다.

그분께서는 군대가 전투에서 대집단의 우세한 적유생역량을 분산약화시켜 소멸하는 것도 이치는 마찬가지라고 하시면서 마감막이구간으로 쏠리는 방대한 물량을 적의 대집단으로 가상하고 그를 어떻게 소멸하겠는가 이렇게 군사학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보았는 가고 하시었다.

범상하게 하시는 말씀이었으나 그 말씀에는 위대한 영장의 빛발치는 듯 한 비범한 예지가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빛나는 예지와 과학적인 통찰력으로 그 날 마감막이공사의 선후차를 명백히 밝혀주시고 그 단계에서의 갑문건설의 주공목표를 현명하게 규정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르는 일꾼들의 가슴에는 경탄과 숭앙의 감정이 꽉 찼었다.

일꾼들과 군인건설자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마감막이공사의 마지막 총돌격전에 한 사람같이 떨쳐 나섰다.

주체75(1986)년 4월 드디어 군인건설자들의 영웅적 투쟁에 의하여 수수천년 바다로 흐르던 대동강이 흐름을 멈추고 대인공호수로 전변되었으며 아득한 옛날부터 난바다를 사이에 두고 갈라져있던 남포시와 은률군이 대언제로 연결되는 극적인 사변이 일어났다.

남들은 몇 십년 걸려도 못한다는 거대한 갑문공사를 단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훌륭하게 일떠 세운 경이적인 위훈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비범한 예지와 현명한 영도, 고매한 덕망을 떠나서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주체75(1986)년 6월 24일 완공된 서해갑문준공식이 성대히 진행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당과 정부의 일꾼들, 외국손님들과 함께 갑문에 도착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인건설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며 수고했다고, 정말 수고했다고 치하해 주시면서 인민군군인들이 만년대계의 위대한 창조물인 서해갑문을 짧은 기간에 현대적으로 훌륭히 건설한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었다. 수령님께서는 이어 갑문기념비들과 시설물들을 돌아보시고 전망대에 오르시어 갑문전경을 부감하시었다.

검푸른 물결을 가로질러 아득히 뻗어간 언제며 현대적인 갑실이며 무넘이언제며 그리고 갑문기념비와 유래비…

난바다를 제압하고 거연히 일떠선 위대한 창조물이 저멀리로 펼쳐져 있었다.

『대단하오, 대단해. 이것을 우리의 힘으로 건설했단 말이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거듭 대견해 하시며 당의 결정지시에 대한 절대성, 무조건성의 정신을 가지고 무비의 용감성과 헌신성, 불굴의 투지를 남김없이 발휘함으로써 20리 난바다위에 노동당시대의 대기념비적 창조물인 서해갑문을 불과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훌륭히 일떠 세우는 세기적기적을 창조한 군인건설자들을 다시금 높이 평가해주시면서 그들에게 답례를 보내시었다.

축포가 터져 올랐다.

격동적인 광경을 목격한 외국의 손님들도 갑문건설자들에게 열렬한 축하를 보내면서 세계적인 대갑문이 일떠선데 대하여 감동을 금치 못해하였다.

어느 한 나라의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미국과 남조선당국자들은 공화국의 군대가 <남침>할 준비에 총동원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서해갑문참관을 통하여 인민군대가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얼마나 거창하고 세계적인 대건설전투를 벌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똑똑히 깨달았습니다.

정말 김정일동지의 영도를 받는 인민군대의 힘은 대단합니다.』

세인을 놀래운 서해갑문!

그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대자연개조구상을 높이 받들고 총포성없 는 전쟁, 거창한 대건설전투를 승리에로 이끌어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위대한 영도가 낳은 불멸의 기념비이다.

    

 

인민군대를 사회주의대건설장으로 불러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명령을 높이 받들고 영웅적 군인건설자들이 건설한 80년대의 대기념비적 창조물들 중에는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도 있다.

굳은 고회암과 회바위로 펼쳐진 황주천기슭이며 다락땅으로 굳어져 곡괭이 날을 용수철처럼 튕겨올린다는 예성강기슭의 높낮은 언덕들, 차돌질회바위들이 억센 뿌리를 박고 정방산줄기와 손을 잡으며 서남단으로 줄기차게 뻗어 내린 멸악산줄기…

이렇듯 파도처럼 첩첩 막아서는 수십수백의 험산준령을 헤가르고 굽이치는 강과 아스라한 계곡을 가로지르며 수백리 구간에 곧게 닦아야 하는 것이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공사였다.

평양시 남쪽교외로부터 10개의 시, 군, 구역을 거쳐 개성까지에 이르는 고속도도로가 개통되면 국토의 면모와 나라의 교통망이 현저히 개선되게 되며 날로 늘어나는 인민경제의 수송수요를 보다 원만히 풀고 지역간의 연계를 더욱 강화하여 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들의 생활상편의를 적극 도모하는데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북과 남의 연계를 강화하고 조국통일을 실현하는데 큰 의의를 갖는 것이었다.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를 건설할 원대한 뜻을 지니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76(1987)년 11월 어느 날 인민무력부의 한 책임일꾼을 부르시어 인민군대설계집단이 새로 완성한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형성안과 관련하여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건설문제가 제기되자 일부 일꾼들은 평양-개성사이의 기성도로를 확장시키는 방법으로 고속도도로를 건설하자고 하였고 또 다른 일꾼들은 험한 산줄기와 깊은 계곡을 에돌면서 될 수록이면 힘든 다리공사나 굴뚫는 공사들을 적게 하는 방법으로 고속도도로를 건설하자고 하였다.

그 의견들은 다 고속도도로를 빨리 건설하자면 어려운 공사조건들을 피해야 한다는 데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런 의도를 담아 만든 형성안들을 일일이 요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고속도도로를 직선으로 뽑을 데 대한 방침을 주시고 그 형성안작성에 인민군대의 강력한 설계집단을 동원시키시었다. 그리고 그들이 현지를 요해할 수 있도록 헬기까지 동원시켜 주시었다.

이렇게 되어 그들에 의하여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형성안이 완성되게 되자 장군님께서는 이 날 그 책임일꾼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이야기를 나누시게 된 것이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일꾼에게 형성안이 세가지로 제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거리가 제일 짧고 곧게 설계한 이 형성안이 좋다고 하시면서 믿음과 기대가 어린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 노반공사는 아무래도 인민군대가 맡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민군군인들에 대한 크나큰 믿음과 기대가 어린 말씀에 그의 가슴은 한없이 부풀어 올랐다.

『알았습니다.』

그는 인민군군인들의 결의를 담아 힘있게 대답하였다.

그러는 일꾼을 보시며 장군님께서는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를 짧은 기간에 현대적으로 건설한다는 것이 간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도로노반공사가 힘들겠지만 인민군군인들은 평양-원산사이 도로를 건설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공사과제를 본때있게 해제낄 수 있다고, 다음 해 상반년까지 노반공사를 하려면 노력과 수송수단이 얼마나 들겠는가 하는 것을 타산해놓고 있다가 명령이 내리면 힘있게 내밀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때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무력부의 책임일꾼을 만나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이 날 도로건설방향과 방도를 밝혀주시기 위하여 그를 부르신 것이었다.

장군님께서는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를 인민군대가 맡아 짧은 기간에 끝낼 데 대한 영예로운 전투임무를 주시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인민군대에서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를 현대적으로 건설하여야 하겠습니다.』

이 말씀에는 당에서 바라는 일이라면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울 충천한 기세로 그동안 사회주의대건설의 여러 전선마다에서 승리의 돌파구를 열어온 인민군대가 자기의 위력을 다시한번 떨쳐 고속도도로건설을 짧은 기간에 해제끼면서도 현대적미감에 맞게 그리고 먼 훗날에 가서도 손색이 없게 그 질을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할 데 대한 높은 요구가 담겨져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어 도로건설을 최단기간내에 다그쳐 끝내기 위한 공사방법에 대하여서도 밝혀주시면서 고속도도로 전 구간을 5등분하고 매 구간에서 공사를 동시에 시작하면 짧은 기간에 건설할 수 있다고 가르치시었다.

적의 전투대열을 토막쳐서 동시에 각개격파하는 군사전법을 사회주의대건설에 구현한 가장 합리적인 공사방법이었다.

그분께서는 계속하여 시멘트를 비롯한 여러가지 자재보장대책까지 세워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안은 일꾼은 벌써부터 신심에 넘쳐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격동된 심정에 넘쳐있는 일꾼을 대견하게 바라보시면서 장군님께서는 뜨거운 어조로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건설에 동원되는 군인들의 생활을 보장해주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었다.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건설에 동원되는 부대들은 겨울나이준비도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인민군 총참모부에서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건설에 동원되는 군인들의 생활보장을 위한 안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일꾼의 가슴속에는 형언할 수 없이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지휘관인 자신은 오직 이제 수행해야 할 공사과제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 장군님께서는 공사에 동원되는 군인들의 생활에 대하여 깊이 마음 쓰고 계시었던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어버이사랑과 보살피심은 겨울을 눈앞에 두고 공사에 진입하게 되는 인민군군인들의 가슴속에 깃든 따사로운 봄의 훈향이었으며 미구하여 끊임없이 솟음칠 자랑찬 위훈과 대중적 영웅주의의 마를 줄 모르는 샘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듯 고속도도로건설을 최단기간안에 끝내기 위한 사업을 친히 조직하여 주시고 11월 28일에는 해당 부문 일꾼들과 함께 사리원지구에 몸소 나가시어 건설현지를 돌아보시었다.

그분께서는 이 날 흙먼지 날리는 현지를 돌아보시면서 고속도도로건설을 본때있게 내밀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다시금 밝혀주시었다.

여러차례에 걸치는 장군님의 강령적인 가르치심과 한없이 뜨거운 어버이사랑, 공사현장에 대한 현지지도는 인민군군인들을 무비의 대중적 영웅주의와 새로운 노력적 위훈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11월 30일 개성시에서는 장군님의 뜻에 따라 군인건설자들과 개성시인민들이 모여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건설을 다그치기 위한 연합착공모임을 진행하였다.

그에 이어 12월 1일에는 수백리에 달하는 전반적 도로건설구간에서 한몸이 그대로 노반으로 굳어져서라도 장군님의 명령을 철저히 관철할 충성심으로 불타는 군인건설자들의 총돌격전이 개시되었다.

공사가 시작되자 장군님께서는 공사진행정형을 자주 요해하시고는 공사용폭약, 로라틀 차도 보내주시고 고속도불도저의 수리와 부속품보장대책도 세워주시었다.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와 보살피심속에서 노반공사는 그야말로 빠른 속도로 진척되었다.

어떤 부대에서는 공사를 시작한지 한 달도 못되어 맡은 공사량을 전부 끝낸 승리의 함성이 터져 올랐다. 그에 화답하듯 완공의 돌파구를 열어 제끼는 장엄한 폭음이 하늘땅을 진감하며 연이어 터져 올랐다.

주체77(1988)년 2월 어느 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비등된 열의를 조금도 떨굼이 없이 공사를 더 힘있게 내밀어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기념일을 맞으며 노반공사과제를 끝낼 데 대한 전투적인 과업을 제시하시었다.

그분께서는 고속도도로 노반공사를 더욱 다그치기 위한 부대호상간 사회주의경쟁을 진행할 데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전체 군인건설자들을 충성의 「60일 강행군전투」에로 힘있게 불러주시었다.

장군님께서 밝혀주신 화선선전, 화선선동의 북소리높이 군인들의 창발성과 혁명적 열정을 최대한으로 높여 전투적으로 진행된 「60일 강행군전투」, 이 전투야말로 부대 및 구분대호상간 사회주의경쟁운동의 불길속에서 벌린 총소리없는 격전이었다.

공사가 시작된 때로부터 이 치열한 격전에로 이어온 몇 달 사이에 인민군군인들은 175개의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을 허물어 내리고 여러 개의 골짜기들을 메워 흙노반공사과제의 대부분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수십개의 다리기초공사와 다리기둥공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수십개의 소구조물공사를 완공하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밑에 인민군군인들은 계속 공사를 다그쳐 나갔다.

그리하여 남들이 10년이 걸려도 힘들다던 수백리 노반과 예성강다리, 청계다리를 비롯한 수많은 다리공사를 불과 1년반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성하는 기적의 기적을 창조하였다.

주체78(1989)년 4월 30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의 헌신적인 투쟁에 의하여 노반공사가 끝난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를 몸소 돌아보시었다.

아득히 뻗어간 노반을 돌아보시던 장군님께서는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를 건설해 놓고 보니 아주 멋있다고, 고속도도로가 마음에 든다고 못내 만족해하시면서 말씀하시었다.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는 그저 스쳐지나 다닐 수 없는 도로입니다.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는 군인들이 맨손으로 건설하였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기계설비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였지만 당과 수령에 대한 높은 충성심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투쟁하여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 노반을 훌륭하게 건설해놓았습니다.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건설에 동원된 군인들이 정말 수고를 많이 하였습니다.』

인민군군인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 크나큰 믿음이 어린 뜨거운 감사였다. 인민군군인들이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건설에서 기적을 창조할 수 있은 것은 군인들을 조국의 수호자, 행복의 창조자로 내세워주시고 사회주의건설의 장엄한 투쟁속에서 창조의 영웅, 건설의 영웅으로 키워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정력적인 영도와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민군군인들이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를 비롯한 사회주의대건설전투에서 세인을 놀래 우는 기적을 창조하고 있을 때 주체77(1988)년 8월 25일 우리 나라의 북변 혜산과 만포에서는 북부철길 1계단공사인 혜산-만포청년선개통을 알리는 개통식이 성대히 진행되었다.

나들이를 가자면 수백리를 걸어 나와서야 열차를 탈수 있었던 북부내륙지대 인민들, 제 고향에서 기차의 기적소리를 한번 들어보는 것이 평생소원이라던 이 고장 사람들은 첫 개통열차가 달리는 철도연선에 달려나와 눈물을 흘리며 만세의 환호를 올리고 또 올리었다.

잊을수 없는 개통의 그 날로부터 험준한 산악과 계곡을 가로질러 오늘도 기적소리 높이 열차가 달리는 여기 북부철길에도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정력적인 영도밑에 영웅적기개를 남김없이 떨친 인민군군인들의 빛나는 위훈이 깃들어있다.

서해갑문건설이 힘있게 벌어지고 있던 어느 날 장군님께서는 인민군 총참모부의 한 일꾼을 부르시어 인민군대가 북부철길건설을 도와줄 데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북부철길건설은 북부내륙지대를 개척하여 풍부한 자원을 개발하고 수송의 긴장성을 풀어 사회주의경제건설을 다그치며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거창한 대자연개조사업이었다.

북부철길건설은 북부내륙지대의 동서부를 연결하는 규모가 매우 크고 어려운 공사였는데 그것을 사회에서 청년들이 맡아 몇해째 건설하고 있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러한 철길건설을 인민군대에서 도와주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인민군대에서는 북부철길건설에서 김정숙군을 중심으로 하여 50여킬로미터의 구간을 완전히 떼 맡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장군님의 말씀은 명령이기에 앞서 믿음이었다. 인민군대의 끝없는 충성심과 전투력에 대한 크나큰 믿음과 기대가 말씀의 마디마디에 어려있었다.

일꾼은 장군님의 명령대로 하겠다고 힘차게 대답 올렸다.

그리하여 장군님의 믿음과 기대에 반드시 보답할 충성의 일념을 안고 피끓는 청년군인들이 건설전투장으로 달려와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들이 맡은 운봉-혜산사이의 백수십리구간은 수십개의 기차굴을 뚫고 수십개의 철다리를 놓아야 하며 백수십개의 구조물을 만들어야 하는 가장 어렵고 힘든 구간이었다.

철길 1km당 수백m의 차굴을 뚫어야 했다는 하나의 사실만을 통해서도 작업조건이 얼마나 어려웠고 공사량이 얼마나 방대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청년군인들은 인민군대에 북부철길건설에서 가장 어려운 공사구간을 맡겨주신 장군님의 믿음과 기대에 충성으로 보답할 오직 한마음으로 용기백배하여 공사에 착수하였으며 어렵고 힘든 전투장마다에서 기적과 혁신을 창조해 나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북부철길건설에서 영웅적 위훈을 떨치고 있는 청년군인들을 한시도 잊지 않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자주 시간을 내시어 철길공사정형을 알아보시고 지침으로 삼아야 할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끊임없이 주시었으며 걸린 문제들이 제기될 때마다 선참으로 풀어주시었다.

어느 해 가을에는 인민군대가 맡은 구간에서 뜻밖에도 붕락지대가 나타났다. 지각의 변동으로 붕락이 진 곳으로 뚫고 나간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하거니와 위험천만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실을 보고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금 뚫고 있은 기차굴구간에 붕락된 곳이 있기 때문에 공사를 빨리 추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붕락된 곳에 기차굴을 뚫기도 힘들겠지만 뚫어도 쓰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철길을 군 소재지로 돌려 건설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었다.

이뿐이 아니었다.

장군님께서는 북부철길군인건설자들의 가슴마다에 꺼질 줄 모르는 충성의 불길, 위훈의 불길을 지펴주시었을 뿐 아니라 끝없는 사랑과 배려로 그들을 따뜻이 보살펴주시었다. 명절 때면 누구보다도 북부철길건설자들의 수고부터 헤아리시고 은정깊은 선물을 보내주시었다. 지어 한 평범한 전사의 생명을 위해 유능한 의사와 약재를 보내주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어 사랑의 헬기까지 띄워주시었다. 그리고 어렵고 힘든 건설전투장에서 위훈을 떨쳐가고 있은 청년군인들에게 자신의 명의로 된 감사를 보내주시고 그들 속에서 발휘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묶은 북부철길미담집도 만들도록 해주시었다.

장군님께서 베풀어주신 크나큰 믿음과 뜨거운 사랑은 젊음이 넘치는 청년군인들의 가슴마다에 무한대의 용맹과 불굴의 의지, 무비의 헌신성을 지펴주었다.

그들은 모진 강추위와 한여름의 찌는 듯 한 무더위 등 변덕스러운 자연의 횡포와 맞서 싸우면서 수백㎥의 암반을 까내고 골짜기를 메우며 노반을 닦고 차굴과 철다리, 흙막이벽건설을 비롯한 철길공사를 기한 전에 끝내기 위한 돌격전을 힘차게 벌였다.

그리하여 영웅적 조선인민군창건 55돌을 맞으며 김정숙군을 중심으로 한 수십km 구간의 철길공사를 완전히 끝내고 운봉-혜산사이의 수백리 철길위에 승리의 환호성을 높이 올린 것이었다.

인민군대가 맡겨진 북부철길건설과제를 끝냈다는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못내 기뻐하시며 그들이 어렵고 힘든 일을 많이 하였다고 거듭 치하해주시었다.

참으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밑에 우리 인민군건설자들이 북부철길건설에서 이룩한 성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자료에 의하면 일제는 해방 전 평원선철도부설공사를 1926년에 시작하여 1941년에야 끝냈다. 처음 서포에서 놓기 시작한 철길을 1927년에 오늘의 평성까지, 1936년에는 양덕까지, 1941년에 가서 겨우 고원까지 부설하였다. 15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려서야 평원선을 건설했던 것이다.

이런 속도로 운봉-혜산사이 철길을 건설하자면 150년이라는 엄청난 기간이 필요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군인건설자들은 이 방대한 공사과제를 불과 4년동안에 해제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인민군군인들을 사회주의대건설전투에로 불러주시어 그들모두를 시대의 영웅으로 키워주시고 내세워주시며 그들의 영웅적 위훈을 온 나라, 온 세계가 다 알도록 하여 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와 뜨거운 사랑이 있어 마련될 수 있었다.

    

 

인민군대가 떨치고 있는 필승불패의 위력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영도의 비범성과 함께 전사들에 대한 태양열과도 같이 뜨거운 사랑에 마를 줄 모르는 원천을 두고 있다.

자그마한 공로나 알려지지 않은 투쟁위훈도 찾아서 높이 내세워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이 있어 인민군군인들은 사회주의대건설장마다에서 온 나라가 다 알고 세계가 아는 금별의 위훈자로 자라날 수 있었다.

사회주의대건설장들에서 군인건설자들이 발휘한 영웅적 위훈도 컸지만 그것을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시며 그들을 금별의 위훈자로 내세워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이 더욱 가슴 뜨겁다.

서해갑문준공을 얼마 앞둔 주체75(1986)년 봄 어느 날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무력부의 한 일꾼을 부르시어 서해갑문건설자들에 대한 노력영웅칭호 내신문제에 대하여 물으시었다.

일꾼은 선뜻 대답을 드릴 수 없었다.

그때 인민무력부에서는 서해갑문 준공식을 앞두고 군인건설자들에 대한 표창사업을 준비하면서 노력영웅칭호 수여문제를 놓고 논의가 분분하였다.

논점의 기본은 노력영웅칭호 수여대상자를 크게 잡아 60명으로 하였는데 전쟁시기도 아닌 평화시기에 너무 영웅칭호대상자가 많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일꾼으로부터 이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파도세찬 서해의 난바다위에서 희생성을 발휘한 군인건설자들의 영웅적 투쟁모습을 그려보시는 듯 잠시 말씀이 없으시다가 영웅을 100명을 내도 좋고 200명을 내도 좋다고 하시면서 영웅적으로 투쟁한 공로가 있으면 다 영웅으로 내신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순간 일꾼은 크나큰 감동에 휩싸였다.

영웅은 흔히 전쟁과 같이 준엄하고 격동적인 시기에 많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동서고금의 어느 역사를 살펴보아도 평화적인 시기에 군대에서 그렇게 단꺼번에 많은 영웅이 배출된 예는 없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하나의 건설장에서 그렇게 많은 영웅을 내세우려고 하시니 이처럼 통이 큰 사랑, 대틀의 영웅서사시가 또 어디 있으랴!

큰 충격을 받은 일꾼은 군인건설자들이 발휘한 대중적 영웅주의의 위대한 원천이 다름 아닌 장군님의 하해같은 믿음과 사랑이라는 강렬한 생각으로 하여 감회가 컸다.

주체73(1984)년 9월 어느 날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무력부의 한 책임일꾼을 만나시어 갑문이 완공될 날도 멀지 않았는데 갑문건설자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겠는가 생각하는 것이 없는 가고 물으시었다.

일꾼은 한참 생각하다가 갑문준공식을 계기로 표창사업을 크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 올리었다.

일꾼의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웃으시면서 표창을 말입니까, 그거야 응당 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표창사업이라면야 그때에 가선 들 못하겠습니까라고 하시면서 아직 완공의 날까지는 오래동안 있어야지만 자신께서 구상하는 일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라고, 갑문건설자들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는 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갑문건설자들을 위한 기념비!

참으로 희한하기도 하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 일이어서 일꾼은 감탄만 할뿐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한 일꾼을 보시며 전쟁시기 잘 싸운 영웅들의 위훈을 기념비로 세워 후세에 전하는 것처럼 서해갑문건설자들의 위훈도 기념비를 세워 길이 전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었다.

군인건설자들의 위훈을 그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시며 모든 것을 통이 크게 구상하시고 실천해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인건설자들에게 표창이나 훈장을 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투쟁업적이 후세에 길이 전해지도록 기념비를 세울 구상을 하신 것이다.

장군님의 이 숭고한 사랑이 있어 서해갑문준공과 더불어 「바다를 막는 영웅들」기념비가 솟아올라 영남리쪽입구와 은률쪽입구에 세워졌다.

오늘날 이곳 갑문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역사의 기념비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이 기념비들에는 인민군지휘관과 병사, 착암공, 설계가 등 군인건설자들이 화강석조각군상으로 형상되어있다.

어디서나 쉬이 만날 수 있는 평범한 군인들을 대자연개조전투장으로 불러주시고 사회주의건설을 위한 보람찬 투쟁속에서 불굴의 심장을 지닌 영웅으로 키워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들을 80년대 대자연개조정복자의 자랑찬 모습으로 영원히 빛내어주신 것이다.

주체74(1985)년 어느 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이 날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갑문건설현장을 돌아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동안 군인건설자들이 이룩한 노력적 성과를 높이 평가하시면서 갑문건설에서 위훈을 세운 인민군군인들에게 수령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도록 크나큰 영광을 베풀어주시었다.

끝없는 영광과 행복에 어쩔 줄 몰라하던 군인건설자들이 사진촬영장에 모였을 때었다.

사진촬영에 참가해야 할 두 명의 군인이 먼 곳에서 일하기 때문에 빠졌다는 사실을 아시게 된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곧 배를 보내어 그 두 군인을 데려오라고 말씀하시었다.

시간이 퍼그나 걸려 두 명의 군인이 촬영장에 오고 다른 혁신자들이 더 오고 보니 촬영자리수보다 실제인원수가 더 많아서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장군님께서는 촬영자리표를 살펴보시며 잠시 생각에 잠겨 계시다가 단호한 어조로 여기에서 나도 뽑고 다른 간부들도 다 뽑아야 하겠습니다, 그 자리에는 갑문건설자들을 앉혀야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는 국장을 앉히고 저 자리에는 정치부장을 앉혀야 하겠습니다라고 하시며 친히 자리까지 정해주시었다.

일꾼들은 그분께서만은 꼭 기념촬영에 참가해주실 것을 간절히 말씀드렸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며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군인건설자들이 한명이라도 더 찍도록 하자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앉으시기로 되어있던 그 자리에 한 군인건설자를 떠밀어 앉혀주시는 것이었다.

인민군군인들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의 숭고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사에 길이 전할 감동적인 화폭이었다.

바로 이 위대한 믿음과 사랑이 군인건설자들의 심장에 불을 달아 기적과 위훈을 낳게 했고 어려운 공사의 돌파구를 과감히 뚫고 나가게 했다.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집행하는데서 한 치의 드팀도 없어야 하고 순간도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군인건설자들의 가슴속에 간직된 혁명적 의지이고 신념이었다.

진정 인민군군인들을 굳게 믿으시고 갑문건설의 어엿한 담당자로 내세워주시며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이 없었던들 어찌 그들이 영웅적 위훈을 발휘할 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장군님께서는 갑문건설의 위훈을 고스란히 군인건설자들에게 돌려주시고 그들에게 크나큰 영예를 안겨주시었다.

주체75(1986)년 6월 서해갑문준공을 맞으며 갑문건설에서 영웅적 위훈을 세운 수많은 군인건설자들에게 노력영웅칭호와 훈장과 메달이 수여되었다.

100여명의 노력영웅을 비롯하여 수만 명의 국가수훈자가 배출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장군님께서는 군인건설자들에게 수령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도 안겨주시고 축하연회와 축하공연도 마련해주시었다. 그야말로 주실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다 안겨주시었던 것이다.

오늘 온 세상에 소리높이 자랑하며 일떠선 서해갑문은 우리 인민군군인들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 그에 보답하려는 인민군군인들의 영웅적 투쟁에 의하여 창조된 사랑과 충성의 결정체인 것이다.

군인건설자들을 빛나는 위훈의 창조자로 키워주시고 내세워주신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은 비단 서해갑문건설전투장에만 깃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건설, 북부철길건설을 비롯한 수많은 사회주의건설에 동원된 군인건설자들에게도 크나큰 영광을 안겨주시었다.

평양-개성사이 고속도도로건설만 하여도 인민군건설자들의 영웅적 위훈의 건설전투였다. 도로를 직선으로 뽑아야 하기에 많은 굴을 뚫어야 하고 산을 허물어버려야 했다.

어느 한 작업장에서 산을 허물고 도로를 내야 할 큰 작업이 제기되었을 때였다. 많은 발파준비굴진을 하자면 압축기를 설치해놓아야 했는데 압축기를 산비탈밑에다 설치하면 산마루까지 6km나 되는 관을 늘여야 하고 송전선을 끌어와야 했다. 큰 난관이었다.

그때였다. 지휘관이 앞에 나서며 외쳤다.

『자, 이렇게 합시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고지에 직사포를 끌어올려놓고 미제침략자들을 족쳐대던 식으로 압축기도 발전기도 모두 고지로 끌어 올립시다.』

지휘관이 앞장에 서자 모두가 떨쳐 나섰다. 그들은 직사포를 고지에 끌어올리던 그 투쟁정신으로 경사도가 45°∼70°나 되는 산고지로 육중한 압축기와 발전기를 끌어올렸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산마루에 끌어올려다 놓고 발파준비굴진을 전개하는 그들의 모습은 전쟁시기 1211고지 영웅전사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갑자기 내리미는 홍수로 하여 다리공사장에서 기둥기초를 위해 막은 가물막이구조물이 터져 나갈 위험에 처했을 때 흙과 모래를 넣은 가마니를 메고 사납게 사품치는 강물에 뛰어들어 가물막이구조물을 몸으로 막아낸 군인건설자들의 모습은 적화구를 육탄으로 막은 영웅전사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영웅적투쟁은 북부철길건설장에도 있었고 군인건설자들이 참가한 사회주의대건설장 어디에서나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사회주의대건설장에 동원되어 영웅적 위훈을 세운 군인건설자들에게 노력영웅칭호를 수여해주시었으며 군인들의 자그마한 소행도 크게 여기시어 친히 감사까지 보내주시었다.

이렇듯 크나큰 영광을 안겨주시는 장군님의 은정깊은 사랑에 의하여 인민군군인들의 가슴마다에는 금메달을 비롯한 훈장과 메달들이 찬란히 빛을 뿌리게 되었다.

참으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사회주의대건설전투에 동원된 군인건설자들에게 안겨주신 사랑과 은정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