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는 주체혁명위업이 큰 걸음을 내디딘 영광스러운 연대였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영도를 높이 받들어 1970년대에 혁명과 건설을 주체의 궤도따라 힘차게 전진시켜 빛나는 승리를 이룩하고 새로운 높은 도약을 안아올 새 연대를 희망찬 가슴으로 맞이하였다.

주체69(1980)년 10월 영광스러운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가 개최되고 여기에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으로, 당중앙위원회 비서로,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높이 추대되시었다. 이로써 주체혁명위업은 경애하는 장군님에 의한 전면적 계승이라는 새로운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환경은 인민군대를 위대한 장군님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나가는 필승불패의 당군으로 강화발전시키는 것을 미룰 수 없는 절박한 요구로 제기하고 있었다.

특히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제와 남조선군사파쇼도당이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을 미친듯이 벌이면서 정세를 전쟁접경에로 이끌어가고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반사회주의, 반공화국책동이 날을 따라 더욱 악랄해지고 있는 조건에서 인민군대를 불패의 당군, 주체의 당군으로 더욱 강화하여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하고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위업을 힘있게 다그쳐 나갈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여 조선노동당은 제6차대회 이후 전군에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영도체계를 전면적으로 확립하기 위한 새로운 조치를 취하였다.

주체의 건군역사에서 또 하나의 빛나는 장으로 된 이 역사적 조치는 혁명의 성지 백두산에서 이루어졌다.

주체71(1982)년 6월 12일이었다.

이날 혁명의 성산 백두산기슭의 유서깊은 삼지연땅에 조선인민군지휘성원들이 모여왔다. 여기서 당중앙군사위원회가 소집된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회의장에 나오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뵈옵는 순간 인민군지휘성원들은 감격의 눈물을 머금으며 목청껏 『만세!』의 환호를 터치였다. 그들가운데는 항일의 불바다를 헤쳐온 1세대 혁명투사들과 전쟁의 불구름속에서 단련된 2세대 전쟁노병들도 있었고 전후에 당의 품속에서 자라난 새 세대 군정간부들도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세대와 세대를 이어오며 총대로 당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인민군지휘성원 한사람, 한사람을 깊은 감회속에 눈여겨보시며 연설을 하시었다.

인민무력부의 책임일꾼들, 군종, 병종사령관들과 정치위원들, 각급 부대지휘성원들이 참가한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를 정치군사적으로 더욱 강화하기 위한 과업과 방도를 전면적으로 밝혀주신 다음 중요하게 인민군대에 대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영도체계를 더욱 철저히 확립할 데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앞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과업은 전군에 김정일동지의 영군체계를 튼튼히 세우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지금 김정일동지가 인민군대를 당적으로만 지도하고 있는데 군사적으로도 직접 지도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한나라의 지도자가 군대를 직접 지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시었다.

인민군대는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인 것 만큼 당이 장악하여야 하며 당정치사업과 군사사업에 이르기까지 당의 영도자이며 대표자인 김정일장군님께서 직접 지도하여야 한다는 것이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의도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군대의 당정치사업과 함께 군사행정사업전반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직접 장악지도하도록 하신 것은 인민군대의 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하며 인민군대가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옹호보위해 갈 자기의 역사적 사명을 다할 수 있게 한 현명한 조치였다.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김정일동지가 인민군대를 직접 영도하는 것은 혁명무력건설의 합법칙적 과정이며 시대발전의 요구라고 하시면서 오늘의 시대는 항일무장투쟁을 하던 1930년대나 미제와 싸우던 1950년대와는 달리 군사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시대인 것만큼 현시대의 발전추세와 군사사업에 정통하고 무비의 담력과 천재적 예지, 세련된 영군술을 겸비한 김정일동지의 영군체계를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세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로 된다고 강조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역사적 교시는 백두산이 터친 장엄한 뇌성이었다.

거기에는 인민군대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군체계를 전면적으로 세워 최고사령관의 후계자문제를 바로 해결함으로써 백두산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가며 총대로 끝까지 완성하시려는 철석의 의지가 담겨져 있었다.

이 역사적 위업은 오랜 세월속에서 수령님께서 몸소 구상하시고 무르익히시고 실현시켜 오신 것이었다.

1940년대에 항일대전의 불길속에서 탄생하신 장군님을 김정숙녀사와 함께 백두산을 닮도록 키우시던 나날들, 1950년대에 최고사령부작전대곁에서 어리신 장군님께 영장의 슬기를 키워주시고 사연깊은 권총을 혁명의 계주봉으로 넘겨주시던 나날들, 1960년대에 선군영도의 길을 장군님과 함께 걸으시며 일당백의 강군건설을 펼치시던 나날들, 1970년대에 장군님을 주체혁명위업의 유일한 계승자로 내세우시고 군대에 대한 그분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세우도록 하시어 자위적인 국방력강화에서 일대 비약을 이룩하시던 나날들…

총대중시사상, 군사선행원리로 승리하여 온 그 역사의 나날들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장 빛나는 선견지명으로 주체의 건군위업계승의 확고한 담보를 마련하시었다. 수령님께서는 회의를 앞둔 어느날에는 한 일꾼을 몸가까이 부르시어 이번 당중앙군사위원회를 삼지연에서 하게 된다는것을 알려주시었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지금까지 인민군대사업을 지도하여 오신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아직 내가 최고사령관으로 있다나니 그가 군대사업을 지도하고 있는데 대하여 세상에 선포하지 않았다고, 그러나 이제는 김정일동지가 인민군대를 직접 지도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선포하고 그의 영도체계를 군대안에 튼튼히 세울 데 대하여 강조할 때가 되었다고 교시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중앙군사위원회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 인민군대안의 모든 군사사업을 집중시키고 그분의 유일적 결론에 따라 움직이는 혁명적 사업체계와 질서를 세우도록 조치를 취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취하신 이 역사적인 조치는 인민군대가 억년 드놀지 않는 백두산처럼 당의 영도체계를 전면적으로 확립하여 주체혁명의 명맥을 꿋꿋이 이어 나가며 경애하는 장군님을 중심으로 하여 전군이 굳게 뭉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떠메고 나가야 한다는 간곡한 당부였다.

인민군지휘성원들은 사품치는 격정과 흥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김정일장군님을 혁명무력의 수위에 높이 모시고 인민군대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당적, 군사적 영도체계를 전면적으로 확립하기 위한 투쟁의 앞장에 서서 당의 새로운 건군강령을 더욱 빛나게 실현해 나갈 굳은 결의들을 다지었다.

백두산의 아들이신 김정일장군님께서 혁명무력의 창건자이신 어버이수령님으로부터 백두산에서 군영도의 지휘봉을 넘겨 받으신 것은 주체의 건군사에 금문자로 아로새겨질 특기할 역사적인 사변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당중앙군사위원회가 끝난후 회의에 참가했던 인민군지휘성원들과 함께 유서깊은 삼지연못가로 나오시어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기념촬영을 하게 될 장소를 돌아보시었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시어 장엄한 백두산의 모습을 바라보고계시던 그분께서는 수행한 일꾼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오늘 수령님께서 하신 교시는 대를 이어 인민군대를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투쟁강령입니다. 우리는 수령님의 교시를 집행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끝까지 투쟁하여야 합니다.』

마디마디에 깊은 뜻을 담으시는 그분의 말씀을 천만근의 무게로 새기는 일꾼들의 가슴은 방금전 회의장에서 받아 안은 격정에 덧 쌓여 더욱 진정할 수 없었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기념사진촬영장으로 나오시었다.

조선의 상징이며 혁명의 성산인 백두산을 배경으로 두분의 위대한 백두영장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경사였다.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기념촬영을 하게 된 인민군지휘성원들의 가슴은 감격에 젖어들었다. 문득 그들은 10년전 봄날에 만경대에서 수령님과 장군님을 함께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후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백두산에 올랐을 때 그분께서 만경대에서 기념사진을 찍던 일을 감회깊이 회고하시면서 우리 서로 다진 맹세를 잊지 맙시다, 비록 혁명의 길에 우여곡절이 있고 뜻하지 않은 사변들이 생긴다 해도 우리 혁명의 시원이 열린 만경대와 백두산에서 다진 맹세를 끝까지 지킵시다라고 하시던 말씀이 우렷이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 났다.

인민군지휘성원들의 심정을 헤아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혁명위업계승의 진리를 그들에게 다시금 깊이 새겨주고 싶으시어 기념사진촬영이 끝난 후 이렇게 당부하시었다.

『동무들은 수령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굳은 결의를 다지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에도 오늘 수령님을 모시고 혁명전적지에서 역사적인 회의를 하고 기념사진까지 찍은 것이 더 의의가 깊습니다. 

동무들은 인민군대의 장래가 새 세대들인 우리들의 어깨에 지워져 있다는 것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민군대의 장래가 새 세대들의 어깨에 지워져 있다는 장군님의 간곡한 말씀에서 일꾼들은 이번 회의를 백두산에서 진행하도록 하시고 기념사진에 백두산이 잘 나타나도록 촬영장소를 정해주시느라고 그토록 마음쓰신 그분의 깊은 의도를 더욱 똑똑히 깨닫게 되었다.

삼지연에서 진행된 당중앙군사위원회는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시며 강철의 영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영군체계를 전면적으로 확립하는데서 참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역사적인 회의였다. 조선인민군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영도따라 나아감으로써 주체의 건군위업의 참다운 계승의 역사를 굳건히 이어 나가며 자기 발전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김정일군대의 역사적 진군의 닻이 올랐다.

인민군대는 백두산의 뇌성처럼 울리는 장군님의 구령에 발걸음을 맞추며 그분을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시고 그분의 영도따라 나아가는 긍지드높이 선군혁명의 길을 더욱 힘차게 다그쳤다.

주체72(1983)년 4월 20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느 한 인민군부대 공사장을 찾으시었다. 그분께서 질척질척한 감탕을 밟으시며 병사들이 일하고 있는 현장에 도착하시었을 때 오매에도 그리던 그분을 몸가까이 뵈옵게 된 감격을 안고 한달음에 달려온 구분대장은 힘찬 목소리로 영접보고를 하였다.

『친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공병련대 3대대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대대장 소좌 ○○○.』

『감사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답례하시고 나서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시었다.

그때 장군님을 모시고 왔던 항일의 노투사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최고사령관동지』라고 부른 대대장의 영접보고가 마음에 들고 감동이 커서 젊은 대대장을 조용히 불러 어떻게 되여 그런 영접보고를 드릴 수 있었는 가고 물었다. 그러자 대대장은 자기는 그저 늘 마음속으로 품고 있던 대로 보고 했을 뿐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노투사는 그의 대답이 너무도 만족스럽고 대견하여 정말 보고를 잘했다고, 아주 잘했다고 거듭거듭 치하해주었다.

한방울의 물에 우주가 비낀다고 위대한 장군님을 우러러 『최고사령관동지』라고 소리높이 외친 젊은 대대장의 그 한마디의 말속에는 장군님을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위업을 계승한 혁명무력의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시고 있는 혁명의 새 세대들의 한결같은 염원과 의지가 뜨겁게 어려있었다.

세상을 둘러보면 어느 나라, 어느 군대치고 아직 최고사령관의 공식직무를 지니지 않은 분을 『우리의 최고사령관』이라고 부르면서 군인들과 인민들이 진심으로 우러러 따른 그런 실례는 일찍이 없었다.

오직 우리 나라에서만 그런 감동적인 화폭이 예사롭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 천하제일의 사상강군, 무적강군으로 장성강화된 위대한 김정일군대의 빛나는 역사는 이렇게 백두산과 더불어 큰 걸음을 내디디었다.

백두산은 주체의 선군위업완성의 새로운 이정표가 마련된 역사의 그 날을 영원히 잊지 않고 길이길이 전해 갈 것이다.

    

 

주체의 건군사에 금문자로 아로새겨진 경이적인 사변의 체험자들인 인민군지휘성원들의 가슴은 마냥 뜨거웠다.

『백두산의 아들이신 김정일동지께서 조선인민군의 창건자이신 수령님으로부터 백두산에서 군영도의 지휘봉을 넘겨받으신 것은 참으로 의의가 큰 세기적 사변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을 최고사령관으로 모시고 그분의 명령일하에 끝까지 충성다할 결의를 다졌다.

인민군지휘성원들의 심장의 맹세가 담긴 이러한 반영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당 군지휘일꾼들에게 인민군대의 모든 간부들이 김정일동지를 잘 모시고 끝까지 받들어나가겠다고 한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오늘 회의에서 김정일동지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지만 나의 연설내용에는 그가 최고사령관의 사업을 하게 된다는 것이 다 밝혀져 있다고, 인민군대지휘간부들이 김정일동지를 혁명무력의 수위에 높이 모시겠다고 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김정일동지를 받드는 데서는 나도 동무들과 같은 심정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군권을 틀어쥐시고 인민군대전반사업을 이끌어 나가도록 취한 조치는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를 더욱 튼튼히 다지게 한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었다.

조선노동당의 영도자로서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당과 함께 총대를 장악하신 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갈 수 있는 확고한 담보가 마련된 역사적 사변인 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찍이 주체혁명위업계승완성의 사명감을 지니신 경애하는 장군님께 혁명투쟁에서 승리하자면 군대에 발을 붙이고 당을 틀어쥐어야 한다고 간곡히 교시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이 가르치심을 좌우명으로 삼고 당과 군대를 틀어쥐고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실 것을 굳게 결심하시었다.

당과 군대를 틀어쥐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성하는 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불변의 신조이고 의지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70(1981)년 4월 어느날 인민무력부장을 비롯하여 군지휘일꾼들을 접견하시고 인민군대는 당의 영도에 충실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는 인민군대의 모든 승리의 기본담보입니다.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가 확고히 보장되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정권은 총대에서 나오며 총대는 당이 장악하여야 합니다. 총대를 장악하지 못한 당은 사실상 혁명을 영도하는 당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많은 나라들에서 당과 군대가 밀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로 되고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당과 군대가 밀착되어 있습니다. 우리 나라처럼 당과 군대가 밀착되어 있는 나라는 없으며 인민군대처럼 당에 끝없이 충실한 혁명적 무장력은 없습니다.』

이무렵 당과 군대의 밀착관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일화가 있다.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때었다.

그때 외국의 당과 국가수반들을 비롯하여 많은 외국손님들이 왔는데 어느 한 행사때 주석단에 오른 짐바브웨총리 무가베는 자주 김정일장군님과 오진우인민무력부장쪽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후계자이시며 조선노동당의 영도자이신 김정일장군님께서 옆에 앉은 나이많은 간부와 아주 친밀한 것이 특별히 주목되어 서였다.

그래서 무가베총리는 참지 못하고 위대한 수령님께 저분들사이는 무슨 관계인가고 문의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당과 군대와의 관계이라고 대답해주시었다.

무가베총리는 머리를 치는 생각이 들어 『아 그렇습니까.』라고 감탄하였다.

외국의 국가수반까지도 경탄과 부러움을 금치 못해할 정도로 친밀감을 보여주는 경애하는 장군님과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의 관계가 곧 우리 나라에서 당과 군대의 호상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화폭이었다.

무가베만이 아니었다.

우리 나라를 찾은 여러 나라의 지도간부들이 이러한 밀착관계를 부러워하였다.

주체70(1981)년 4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지휘일꾼들을 접견하신 자리에서 그무렵 우리 나라를 방문한 어느 한 나라 지도간부들이 하던 이야기를 들려주시었다.

그때 그 나라 지도간부들은 조선노동당이 노간부들과 청년간부들사이의 결합문제를 원만히 해결한데 대하여 매우 부러워하면서 자기 나라에서는 여러가지 복잡한 당내부사정으로 하여 10년이 지나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청년간부들을 올려놓으면 노간부들과 충돌하게 된다고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나라 사람들이 우리 당을 부러워하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우리 당은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빛나게 계승할 수 있는 위대하고 강력한 당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우리 당은 수령님을 모시고 있으며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빛나게 계승해 나갈 지도체계가 튼튼히 선 당이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그분께서는 이렇게 강조하시었다.

『우리는 당을 백방으로 강화하여 어떤 역경에 부닥치더라도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완성해 나가야 합니다.』

인민군지휘일꾼들의 가슴마다에 당의 위업을 총대로 받들어 나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다시금 깊이 새겨주시는 가르치심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과 군대의 관계를 주체혁명위업계승완성의 견지에서 풀어 나가시면서 당이 총대, 군대를 철저히 장악하고 군대가 당의 영도에 충실하도록 현명하게 이끄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당과 함께 군대를 틀어쥐심으로써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한 투쟁은 확고한 군사적 담보를 가지고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전개될 수 있게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부대들을 연일 시찰하시었다. 인민무력부의 책임일꾼인 노투사가 현지시찰을 보좌해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주체71(1982)년 8월 23일 단 하루동안에만 하여도 여러 단위의 부대들과 군수공장들을 돌아보시었다. 노항일혁명투사는 장군님의 건강이 걱정되어 하루라도 쉬실 것을 말씀드렸으나 그분께서는 인민군대를 지도하자면 군대간부들부터 잘 알아야 하고 늘 병사들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현지시찰의 길을 걷고 또 걸으시었다.

이 시기 장군님께서 각별히 관심하신 것은 전군에 당의 영도체계,영군체계를 전면적으로 확립하는 문제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미 1980년대에 들어와 전당에 당의 영도체계를 세우기 위한 사업을 더욱 힘있게 밀고 나가시면서 수령의 군대,당의 군대인 인민군대안에 당의 영도체계,당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전면적으로 확립하는 것을 군건설의 합법칙적 요구로,인민군대당정치사업의 총적 방향으로 밝히시고 이에 큰 힘을 넣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69(1980)년 새해 첫날에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의 한 책임일꾼에게 당의 영도에 대한 충실성이 빈 구호로 되게 하지 말고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이 심어진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되게 할 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당에 대한 충실성은 총정치국일꾼들부터 확고해야 한다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하자면 수령님께서 의도하시는대로 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체계를 철저히 세워야 한다, 정권은 총대에서 나온다, 수령님의 혁명역사가 바로 그것을 증명하여 준다, 우리는 이 진리를 깊이 인식하고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를 철저히 실현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었다.

그리고 2월 어느날에도 총정치국일꾼들에게 당정치사업을 잘하는데서 놓치지 말아야 할 문제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었다.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밑에 인민군대안에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세우는 사업이 지난 시기에 비할 바 없이 새로운 질적수준에서 줄기차게 벌어졌다.

이런 성과에 기초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이후 인민군대안에서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확립하는 사업을 직선적으로,진공적으로 밀고 나갈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여러차례에 걸쳐 그 관철방도를 가르쳐주시고 이끌어주시었다.

주체71(1982)년 1월 2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의 한 책임일꾼을 만나주시었다.

뜻깊은 석상에서 장군님께서는 우리 당은 인민군대에 대한 영도를 확고히 보장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세계에는 나라마다 군대가 다 있지만 당의 사상과 의도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며 어떤 역경속에서도 추호의 동요도 없이 당을 정치사상적으로,목숨으로 옹호보위하며 당의 결정지시에 절대복종하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하여 물과 불속에라도 서슴없이 뛰어드는 군대는 오직 우리 인민군대밖에 없다고,이것은 세상에 내놓고 당당하게 자랑할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서는 이미 이룩한 성과에 조금도 자만하지 말고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세우기 위한 사업을 더욱 심화시켜 나가야 한다고,인민군대는 당에 모든 것을 의탁하고 당밖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당의 참된 혁명군대가 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인민군대는 수령님께서 창건하시고 이끄시는 수령님의 군대이며 우리 당의 영도를 받는 당의 군대입니다. 당의 영도를 떠나서는 인민군대가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당의 영도는 인민군대의 생명이며 모든 승리의 기본담보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서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세우기 위한 사업을 잘하고 있는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고 이 사업을 계속 강화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었다.

이때 장군님의 가르치심에 시종 흥분과 격동된 심정을 금치 못하고 있던 책임일꾼은 그분께 경애하는 장군님의 초상화를 구분대들에 모시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전체 인민군장병들의 한결같은 소망을 담은 제의였다. 그것은 그분께 운명도 미래도 다 맡기고 그분의 영도를 받들어 주체혁명위업,선군위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억세게 싸워 나가려는 인민군대의 신념과 의지의 표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천만전사들의 심중에 새겨져있는 간절한 소망을 읽으시는듯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다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시었다. 그것은 인민군대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으로서 인민군대가 받아 안은 특전이고 영예였다.  

장군님의 하늘같은 믿음과 사랑에 다함 없는 감사를 드리며 그 책임일꾼은 전체 군인들의 뜨거운 심정을 담아 충성의 맹세를 다졌다.

인민군대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높은 신임에 보답하기 위해 더욱 분발하였다. 군대안의 사상교양사업을 장군님의 가르치심에 따라 전군에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철저히 세우는데로 확고히 지향시키고 이 사업이 인민군대의 특성에 맞게 직선적으로, 진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장군님께서는 삼지연에서 열렸던 역사적인 회의이후 당의 영도체계를 튼튼히 세울 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인민군대안에 당의 영도체계를 전면적으로 확립하기 위한 혁명적인 조치를 취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인민군대안에 당의 영도체계를 철저히 세우는 것은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이 우리 당에 의하여 계승되고 있는 현 단계에서 군건설의 기본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의 영도체계를 철저히 세우는 것을 군건설의 기본핵으로 내세우신 장군님께서는 전군에 정연한 장악보고체계와 명령지휘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 나가시었다.

주체71(1982)년 여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양강도지구를 현지지도하고 계시었다.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한 군사일꾼에게 인민군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물으시었다.

일꾼은 선뜻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사실 그 시기 군대안에서는 장군님의 영군체계를 보다 높은 수준에서 전면적으로 확립하자면 군대안의 모든 분야에서 일신시켜야 할 문제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장군님께서 새롭게 제기하시는 방침들을 관철하기 위한 대책들을 어떻게 세우고 그 집행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그분께 어떤 방법으로 장악보고하여 결론을 받아 처리하겠는가 하는 문제부터 선을 세워야 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올바른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실정을 헤아리시고 인민군대의 군사사업,당사업,후방사업 할 것없이 모든 부문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원만히 풀자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를 백방으로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인민군대안의 모든 군사사업을 틀어쥐고 지도할 수 있게 해당한 부서를 내올 데 대한 발기를 하시었다.

순간 일꾼은 막혔던 물목이 터지는 듯 눈앞이 확 트임을 느꼈다. 참으로 그것은 인민군대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유일적이며 통일적인 영도체계를 심화시키게 하는 가장 현실적이며 과학적인 방도였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안의 사업체계도 당의 유일적 영도를 실현할 수 있게 새롭게 규정해주시었다.

인민군대안의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은 자기의 기능과 역할을 결정적으로 높이고 지휘관들과 군인들속에서 조직사상생활을 강화하도록 하였으며 장군님의 말씀과 지시를 무조건 접수하고 끝까지 관철하는 혁명적 기풍을 세워 나갔다. 그리고 지휘관들과 정치일꾼들이 협의를 강화하며 군사사업과 정치사업을 밀접히 결합시켜 진행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당의 군사노선과 정책들이 인민군대의 모든 단위들에서 철저히 관철되고 부대들의 싸움준비와 전투력강화에서 성과들이 이룩되었다.

특히 인민군대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치군사적 지도의 통일성과 유일성을 확고히 보장하여 인민군대를 철두철미 당의 혁명적 무장력으로 강화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당의 영도체계를 전면적으로 확립하는데서 인민군대지휘간부들의 역할을 높이도록 하며 그들을 내세워주고 그들이 핵심적으로 사업하도록 이끌어주시었다.

주체73(1984)년 3월 15일 장군님께서는 한 일꾼을 군부대의 책임일꾼으로 임명하시면서 친히 높은 군사칭호를 수여하시고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당과 수령의 믿음과 사랑을 받으면서 살며 싸우는 것보다 더 큰 영예와 행복은 없다는 것, 사업과 생활에서 영예와 행복이 차례질 때마다 지난날의 처지를 잊지 말고 당과 수령의 높은 정치적 신임과 배려에 대하여 먼저 생각하여야 하며 그에 충성으로 보답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주체73(1984)년 4월 25일 영웅적 조선인민군창건 52돌 경축연회에서 하신 연설에서도 인민군대를 강화하며 인민군대의 숭고한 사명을 수행하는데서 핵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시며 이렇게 강조하시었다.

『당은 앞으로도 인민군대의 핵심들인 동지들에 의거하여 모든 군사문제들을 풀어나갈것이며 인민군대의 여러 지휘성원들을 믿고 인민군대에 중요한 전투임무를 맡길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이 당의 높은 신임과 기대를 깊이 간직하고 변함없이 자기의 초소를 충직하게 지키며 당과 혁명을 옹호보위하는 숭고한 사명을 빛나게 수행해나가리라는 기대를 표시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주체74(1985)년 4월 13일 조선인민군 지휘간부들에 대한 군사칭호 및 훈장수여식에서도 인민군대의 핵심들인 인민군지휘간부들은 당이 맡겨준 혁명초소를 책임적 으로 지켜나감으로써 인민군대가 당과 혁명의 옹호보위자로서의 사명을 훌륭히 수행하여야 한다고 다시금 강조하시었다.

비범한 조직적 수완과 실천력을 지니신 장군님의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체계를 세우는 사업이 더욱더 높은 단계에서 심화되게 되었다.

이것은 인민군대를 철두철미 강유력한 주체의 당군, 불패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키는데서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되었다.

    

 

삼지연에서 역사적인 회의가 있은 이후 인민군대안에서는 김혁, 오중흡동지를 따라배우는 운동이 더욱 활발히 벌어졌다.

전군에 80년대의 김혁, 오중흡이 되자는 구호가 나래쳤다.

인민군대의 장령, 군관으로부터 병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군인들이 김혁, 오중흡동지의 투쟁자료들을 열심히 학습하고 그들처럼 살며 생활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였다. 누구나 그들의 충성심에 자기를 비추어보고 그들의 조직성과 규율성에 자신의 준비정도를 돌이켜보며 실천투쟁속에서 부족점을 하나하나 고쳐 나갔다.

김혁, 오중흡동지를 따라배우는 운동을 통하여 인민군대는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더욱 튼튼히 다져졌다.

이 운동의 본질은 인민군대를 당과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이 꽉 찬 혁명무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혁명군대가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되자면 모든 장병들이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하여야 한다.

혁명군대가 당과 수령에 대한 절대적 충실성을 지니면 승리하고 그렇지 못하면 패한다. 이것은 혁명의 근본원리이고 이치인 동시에 역사가 남긴 피의 교훈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를 영도하여 오시는 전 기간 언제나 군인들을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제일생명으로 간직한 혁명전사로 키우기 위한 정치사상교양사업에 선차적인 힘을 돌리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식의 당정치사업체계를 내오시었으며 그에 따라 인민군대안에서 충실성교양을 기본으로 하는 여러가지 형태의 교양사업을 진공적으로 벌이도록 이끌어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1980년대에 들어와 인민군대안의 충실성교양에서 큰 관심을 돌리신것이 항일혁명투사 김혁, 오중흡동지를 따라배우는 운동을 힘있게 벌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주체70(1981)년 4월 어느날이었다.

인민무력부의 일꾼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께서 계시는 곳으로 갔다.

그때로 말하면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를 계기로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갈 인민군장병들의 불타는 신념과 맹세가 전군에 더욱 세차게 끓어 번지고 있던 때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역사적 환경에 맞게 백두의 총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문제, 건군위업계승에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려고 그들을 부르시었던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당에 의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한 사업이 빛나게 해결되어 나가고 있는데 대하여 말씀하시고 이렇게 강조하시었다.

『우리는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이 말씀에는 혁명의 총대와 더불어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시려는 그분의 확고한 의지가 어려있었다.

그분께서는 인민군대에서 위대한 수령님과 당에 대한 충실성교양과 혁명전통교양을 계속 강화하여야 한다고 하시었다.

사람의 사상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우리 당은 사상론을 주장한다. 군인대중의 사상의식과 혁명적 열의를 높이는 것이 강유력한 당군건설의 관건이다. 어떤 투쟁구호, 어떤 투쟁방침을 내놓아도 군인대중의 사상의식과 전투적 열의를 높여주는 것을 첫째 원칙으로 내세워야 한다. 여기에 장군님의 영군체계를 튼튼히 세울 수 있게 하는 원천이 있고 80년대 당군건설의 원동력이 있었다.

그래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속에서 충실성의 산 모범을 통한 교양을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강화하도록 하시었으며 특히 항일혁명투사 김혁, 오중흡동지를 따라배우는 운동을 더욱 힘있게 벌이도록 하신 것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체70(1981)년 새해 경축공연에 내놓을 조선인민군협주단의 음악무용종합공연을 지도하여 주신 날에 있은 일이다.

공연이 끝나자 일꾼들을 가까이 부르신 장군님께서는 새해 경축공연을 불멸의 혁명송가 「조선의 별」합창으로 시작할 데 대하여 가르쳐주시고 총정치국의 한 일꾼에게 혁명영화 「조선의 별」을 인민무력부 군관들과 직속기관 일꾼들에게도 보여주고 모든 군인들이 다 보도록 조직사업을 잘할 데 대해 가르치심을 주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인민군대에서는 오중흡동지를 따라배우기 위한 운동과 함께 김혁동지를 따라배우기 위한 운동을 벌여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오중흡동지를 따라배우기 위한 운동을 벌렸는데 이제는 오중흡동지와 김혁동지를 따라배우기 위한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오중흡동지와 김혁동지가 수령님께 어떻게 충실하였는가 하는 산 모범을 따라배워야 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혁명영화 「조선의 별」을 통하여 조선혁명의 여명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전사들에게 돌려주신 고귀한 혁명적 의리와 뜨거운 동지적 사랑 그리고 김혁동지를 비롯한 1920년대 청년공산주의자들이 지녔던 수령님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과 혁명적 동지애를 인민군군인들의 심장속에 깊이 심어주어야 한다고 하시었다.

일꾼들은 불멸의 혁명송가 「조선의 별」의 창작가이며 청년공산주의자인 김혁동지가 티없이 맑고 깨끗한 혁명적 수령관을 지니고 수령님을 위하여 자기 한목숨을 서슴없이 바친데 대해 돌이켜보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혁명송가 「조선의 별」을 발굴해주시고 혁명영화까지 만들도록 하여 주신 그 크나큰 노고에 대하여 뜨겁게 되새겼다.

주체56(1967)년 8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 일꾼을 부르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당의 유일사상교양에서는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수령님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으로 교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역사와 관련된 노래들을 발굴하는 사업을 시작할 데 대한 중요한 과업을 주시었다.

그래서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역사와 더불어 길이 빛날 혁명의 재보, 수령님의 혁명역사와 관련한 혁명적인 노래들을 발굴하는 사업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게 되였으며 혁명송가 「조선의 별」도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 전야에 발굴되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흘러간 반세기의 세월에 대한 깊은 회억속에 혁명송가 「조선의 별」을 다시 듣게 되시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가슴가득히 차오르는 감회를 금치 못해하시면서 이 노래를 들으니 꼭 김혁이 살아서 돌아온 것만 같다고 하시며 손수건을 눈가로 가져가시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김혁, 차광수와 같은 불굴의 혁명전사들이 있었기에 헤아릴 수 없는 시련과 난관이 앞을 막아 나서는 혁명의 길을 끝까지 꿋꿋이 걸어 나갈 수 있었다, 바로 이들과 같은 진정한 혁명동지들이 5∼6명만 있으면 그 어떤 강적도 무서울 것이 없으며 그 어떤 어려운 투쟁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뜻깊은 이날의 사연을 일꾼들에게 말씀해주시면서 우리는 정말 귀중한 보물, 역사의 재부, 혁명의 재보를 찾아내었다고 감개무량해 하시었다.

우리 겨레가 수천년역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어버이수령님을 위대한 한별로,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 모시면서 조선의 청년공산주의자들이 심장으로 지어 부른 불멸의 혁명송가 「조선의 별」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

3천리강산을 밝게도 비치네

짓밟힌 조선에 동은 트리라

2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캄캄한 밤하늘 바라다보니

신음하는 조국산천 어리여오네

변치 말자 혁명에 다진 그 마음

2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간악한 강도 일제 쳐물리치고

3천리에 새별이 더욱 빛날제

조선아 자유의 노래 부르자

2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짙은 어둠속에서 인민의 잠을 깨우는 여명의 종소리처럼 캄캄하던 밤하늘에 높이 울려 퍼진 노래, 우리 인민들이 세기를 두고 갈망하던 위대한 수령의 출현으로 하여 마침내 이 땅우에 찬란한 혁명의 새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온 누리에 알린 「조선의 별」.

조선혁명의 위대한 개척의 역사를 아로새겨놓은 이 노래를 떠나서 가장 위대하고 성스러운 주체혁명위업의 시원에 대하여 말할 수 없다.

혁명의 길을 처음으로 개척하는 역사는 그 어느 혁명이나 다 장엄한 것이지만 불멸의 노래로 자기의 수령을 높이 받들어 모시고 그 노래와 더불어 단결하면서 시원을 열어 나간 조선혁명은 참으로 성스럽고 순결하며 낭만적인 혁명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깊은 관심과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혁명송가 「조선의 별」을 가지고 주체혁명사에 충실성전통의 첫 자국을 새긴 청년공산주의자들을 따라배우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이 힘차게 벌어졌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모든 사업을 작전하시고 정력적으로 이끌어 나가시면서 주체69(1980)년 2월 중순 어느날에는 일꾼들을 부르시어 혁명송가 「조선의 별」을 종자로 한 영화를 당 제6차대회를 계기로 내놓을 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10부작으로 된 혁명영화 「조선의 별」은 이렇게 되여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 모두를 언제 어디서나 수령을 진심으로 받들어 모시고 수령께 충성다해 나가는 80년대의 김혁으로 키우시기 위하여 혁명영화 「조선의 별」에 대한 교육제강을 만들어 내려 보내도록 하시었으며 실효투쟁을 잘 조직해 나가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학습과 실효투쟁을 통하여 모든 인민군지휘성원들과 병사대중의 사상정신적 풍모를 주체형의 혁명가의 전형인 김혁동지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전군을 당의 영도에 끝없이 충실한 충성의 대오로 만들어 나가게 하시었다. 총을 잡고 혁명대오에 선 사람이라면 그가 머리에 흰서리내린 장령이건 나어린 병사이건 모두가 당과 수령께 끝없이 충직한 혁명전사가 되여야 한다는 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이었다.  

혁명송가 「조선의 별」과 혁명영화 「조선의 별」을 가지고 충실성교양을 힘있게 벌림으로써 인민군대안의 정치사상교양사업에서는 일대 전변이 일어났으며 전체 인민군장병들의 사상정신적 풍모에서는 수령숭배의 열도, 충실성의 열도가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전체 장병들이 마음합쳐 부르는 혁명송가의 우렁찬 노래소리가 강산을 진감하고 모든 군인들의 마음속에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러 따르는 흠모의 열풍, 충성의 대하가 굽이쳤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몸소 발기하시고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신 김혁, 오중흡동지를 따라배우는 운동이 힘있게 벌어짐으로써 우리 혁명의 시원이 열린 때로부터 형성되고 꽃피워온 충실성의 고귀한 전통을 견결히 고수하고 대를 이어 확고히 계승발전시켜 나갈 수 있게 되었으며 인민군대의 정치사상적 풍모가 전군주체사상화의 요구에 맞게 일신되어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충성의 대중운동은 오직 비범한 예지와 조직적 수완을 지니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만이 펼치실 수 있는 불멸의 화폭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인민군대의 충성심은 그 순결성에 있어서나 그 높은 열도에 있어서 역사상 그 어느 나라 군대에서도 있어본 적이 없는 가장 숭고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혁명송가 「조선의 별」을 노래하던 청년공산주의자들로부터 시작된 충성의 대오가 전군에 거창한 대하를 이루고 도도히 굽이쳤다. 조선인민군은 혁명송가를 높이 부르며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서의 자기의 자랑스러운 면모를 더욱 뚜렷이 갖추어 나갔다.

    

 

주체71(1982)년은 선군역사에 특기할 경사로운 해로 되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70돌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탄생 40돌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조선인민군창건 50돌을 뜻깊은 혁명적 대경사로 성대히 기념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 경사로운 나날들이 어버이수령님께 커다란 기쁨과 만족을 드리며 우리 군대와 인민이 수령님을 더 잘 받들어 모시는 중요한 계기가 되게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탄생 40돌이 되는 날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찬회참석자들에게 당과 혁명앞에 이룩하신 장군님의 업적을 지적하시고 우리는 김정일동지를 받들고 굳게 단결하여야 하며 김정일동지의 사업을 적극 도와서 당을 튼튼히 꾸리고 진정한 인민의 낙원을 이 땅위에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말씀을 크나큰 기대와 고무의 가르치심으로 뜨겁게 받아들이시고 이날 밤에 군대지휘성원을 비롯한 일꾼들에게 오늘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보니 나의 두 어깨에 지워져 있는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가를 다시금 깊이 느끼게 된다고,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완성하는 것은 우리모두의 신성한 의무라고, 우리모두 사상과 힘과 지혜를 합쳐 수령님을 충성으로 받들며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완성해 나가자고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과 세계 혁명적 인민들이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70돌을 민족최대의 경사로, 인류공동의 명절로 성대히 경축하도록 커다란 심혈과 노고를 바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수령님탄생 70돌을 맞으며 혁명의 수도 평양에 주체사상탑과 개선문, 인민대학습당, 창광원, 산원, 빙상관, 청류관을 비롯한 대기념비적 건축물들을 일떠세우게 하시고 김일성경기장을 개건확장하도록 하시어 수령님께서 시대와 혁명앞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혁명업적과 절세의 위인상을 후손만대에 길이 빛내여나갈수 있는 만년재보를 마련하시었다. 그리고 「김일성저작집」 20권까지 편찬발행, 수령님의 풍모와 업적을 담은 도서 출판, 수령님의 혁명활동을 수록한 영화문헌들과 혁명영화 제작상영 등 방대한 사업을 벌이도록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수령님탄생 70돌기념 전국주체사상토론회가 성황리에 진행되도록 하시고 주체71(1982)년 3월 31일 불후의 고전적 노작인 역사적 논문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토론회앞으로 보내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수령님탄생 70돌을 맞으며 인민생활을 한계단 높이게 하시고 온 나라 어린이들과 학생들, 모든 주민세대들에 수령님의 은정어린 선물이 안겨지도록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세계 수많은 나라 축하단을 초청하게 하시어 기네, 잠비아, 모잠비끄, 모리따니, 짐바브웨 등 국가수반들과 정부수반들, 당수들을 비롯하여 세계 5대륙의 118개 나라에서 220여개 대표단과 대표들, 저명한 각계 인사 1,000여명이 참가하여 경축행사들이 국제적인 대정치축전으로 성대히 진행되도록 하시었다.

이러한 경축행사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커다란 기쁨과 만족을 드렸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언제인가 장군님의 충성의 노고와 심려를 헤아리시어 김정일동지는 언제나 나에게 기쁨을 주기 위하여 애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도 언제인가 인민군지휘성원들과 일꾼들에게 수령님께서 기쁨과 만족의 미소를 지으실 때가 제일 기쁘다고 하시면서 수령님의 기쁨은 자신의 가장 큰 보람이고 행복이며 기쁨이라고 하시었다.

참으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렇듯 뜨거운 충성심을 안으시고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70돌 경축행사들을 대정치축전으로, 만방에 수령님 모신 주체조국의 영광과 위용을 자랑차게 떨치는 국제적인 대경사로 되게 하시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이를 계기로 김일성민족의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더 뜨겁게 지니게 되였으며 수령님 모신 조국을 더욱 빛내일 결의에 충만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군대와 인민이 위대한 수령님을 더 잘 모시고 조국의 영예와 존엄을 더 힘있게 떨쳐 나가도록 이끌어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특히 인민군장병들에게 조국은 곧 수령님이시기에 조국보위가 곧 수령보위로 된다는 심오한 조국수호철학을 안겨주시고 인민군대가 백두의 혈통을 꿋꿋이 이어가는 혁명군대, 인민의 군대로서의 자기의 본분을 다하도록 하시었다.

김정일강군건설의 새 역사가 장엄하게 펼쳐지던 때에 있은 일이다.

언제나 인민무력부의 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인민군대의 강화발전을 위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1980년대초의 어느날 밤이 퍽 깊어 인민무력부의 일꾼들을 부르시었다. 그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장군님께서는 일꾼들로부터 인민군대안의 정치사업실태를 요해하시고 노래를 하나 같이 들어보자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 노래는 예술영화 「월미도」의 주제가였다.

예술영화 「월미도」는 장군님께서 친히 종자를 주시고 여러차례 지도해주시어 명작으로 완성시켜주신 추억에 남는 영화였다.

일꾼들의 머리속에는 장군님께서 이 영화가 나온 직후인 주체72(1983)년 1월 1일에 인민무력부의 한 일꾼을 부르시어 예술영화 「월미도」가 잘되었다고 하시면서 군인들속에서 이 영화를 가지고 교양사업을 잘할 데 대하여 가르쳐주신 일이 떠올랐다.

월미도는 인천시가와 방파제로 잇닿아 있는 작은 섬이다. 피라미드형으로 된 이 작은 섬은 인천항구로 통하는 뱃길을 형성하면서 길게 누운 모양이 마치 달의 꼬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월미도라고 불렀다.          

미제는 지난 조선전쟁시기 군사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는 이 섬을 점령하기 위하여 3일동안 190여개의 나팜탄을 비롯한 폭탄들과 함포탄들을 미친듯이 퍼붓고 이어서 1,000여대의 비행기와 300여척의 함선으로 장비된 5만여명의 대병력을 들이밀었다.

온통 불바다가 되어버린 섬에는 이대훈해안포병중대와 1개 보병중대밖에 없었다. 평범한 전사들인 그들은 최고사령부의 명령대로 인민군대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보장하기 위하여 마지막 한사람까지 결사적으로 싸웠다. 그래서 적구축함 3척을 포함하여 각종 함선 13척을 격침, 격파하고 적의 상륙을 3일동안이나 지연시키는 영웅적 위훈을 세웠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날의 영웅전사들 한사람 한사람을 눈앞에 그려보시는 듯 잠시 창밖을 내다보시다가 말씀하시었다.

『영화에서는 조국은 곧 우리 수령님이시라는 것을 깊이있게 형상함으로써 조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훌륭한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조국은 곧 수령님이시다.

장군님께서는 바로 이 위대한 진리, 위대한 종자를 예술영화 「월미도」에 그대로 심고 훌륭하게 형상하도록 지도하여 주시었다.

이런 생각을 더듬으며 일꾼들은 노래를 감상했다.

살아도 그 품속에 죽어도 그 품속에

언제나 사무치게 불러보는 곳

아 어머니라 부르는 나의 조국이

장군님의 그 품인줄 나는 나는 알았네

노래를 감상하는 일꾼들은 장군님께서 예술영화 「월미도」의 주제가를 들려주시는 그 숭고한 뜻을 깊이 새겼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리신 시절에 벌써 가요 「조국의 품」에서 노을처럼 아름다운 조국의 품은 내가 자란 정든 집 고향이라고, 봄날처럼 따사로운 조국의 품은 나를 안아 키워준 어머니라고, 해빛처럼 밝고 밝은 조국의 품은 아버지장군님 품이라고 조국과 수령사이의 불가분리의 관계를 감동적인 서정으로 노래하시었다.

수령이 없이 인민의 참된 삶과 행복, 후손만대의 번영을 담보해주는 진정한 조국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은 장군님께서 이미 어리신 시절에 깨달으시고 인생전반에 관통시켜 오신 조국관이었다.

역사상 모든 사회적 범주와 마찬가지로 조국에 대한 견해도 시대에 따라, 계급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었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철학자, 문인들이 자기 류로, 자기 수준에서 조국에 대한 견해를 내놓았다.

그들은 조국을 지리적, 지역적 개념으로 보았는가 하면 역사적 생활영역의 개념으로 보기도 했다.

우리 장군님께서 지니고 계신 조국에 대한 이해와 관점은 수령중심론에 기초한 가장 과학적인 주체의 조국관이다.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조국은 수령님이시며 수령님은 곧 조국입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이 고전적 명제에는 이 세상 그 어느 위인, 정치가도 발견할 수 없었던 조국에 대한 주체철학, 주체조국관의 정수가 있다.

우리 인민이 이 땅에서 받아 안은 존엄과 자유, 행복과 번영, 그 모든 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의 피바다, 불바다를 헤치시며 잃었던 조국을 찾아주신 그날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정녕 사회주의조국의 존재와 융성번영, 겨레의 진정한 삶은 위대한 수령님의 품을 떠나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조국은 곧 수령님이시기에 조국보위는 곧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보위하는 것으로 된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조국수호철학은 결코 아무나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모든 활동의 목표로, 생활신조로 삼고 계시는 경애하는 장군님, 일찍이 전화의 나날 전선에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그리시며 축복의 편지를 올리시었으며 전후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이 당에 노골적으로  도전해 나섰던 시기에 우리 인민군장병들의 가슴에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할데 대한 수령결사옹위의 구호가 나오도록 해주신 장군님께서만이 내놓으실 수 있은 위대한 진리였다.

감격도 새로운 주체73(1984)년 4월 25일이었다.

영광스러운 조선인민군창건 기념일을 쉰두번째로 맞이하는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몸소 경축연회에 참석하시어 「인민군대는 자기의 수령과 당, 자기의 제도와 조국을 목숨으로 사수하여야 한다」라는 역사적인 연설을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연설에서 먼저 조선인민군창건절을 맞으며 인민군장병들에게 축하를 보내시고 나서 지난 기간 우리 인민군대는 당과 수령을 보위하며 조국과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하기 위하여 영웅적인 투쟁을 벌여왔으며 당과 혁명앞에 커다란 업적을 쌓아올렸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그분께서는 인민군대는 우리 당의 혁명적 무장력이며 인민군대의 사명은 당의 혁명위업을 무력으로 보장하는데 있다고 하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혁명위업에 대한 계급적 원수들의 도전이 강화되면 될수록 우리는 혁명적 무장력을 더욱 튼튼히 꾸려야 하며 싸움준비를 더 잘하여야 합니다. 

인민군대는 자기 대열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더욱 튼튼히 꾸리고 당과 수령을 견결히 옹호보위하며 당이 맡겨주는 모든 과업을 철저히 수행해 나가야 합니다.』

이 말씀에는 인민군대가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더욱 튼튼히 준비되고 싸움준비를 잘해야 당과 수령을 보위하는 자기의 성스러운 임무를 다할 수 있다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었다.

계속하여 그분께서는 인민군대는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서 자기의 수령, 자기의 당, 자기의 제도, 자기의 조국을 목숨으로 사수하며 우리 당과 인민군대의 통일단결을 대를 이어 튼튼히 수호하고 반석같이 다져 나가야 한다고 하시었다.

앞으로도 인민군대가 조국보위,  수령보위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 나가도록 할 데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은 인민군대로 하여금 경애하는 장군님의 군대로서의 자기의 사명을 다할 수 있게 하는 강령적 지침이었으며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무장으로 끝까지 담보해 나갈 수 있게 하는 불멸의 기치였다.

정녕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국보위는 곧 수령보위라는 불변의 진리, 인민군대가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군건설에서 틀어쥐고 나가야 할 투쟁의 본령을 인민군대의 모든 장병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주시었다.

조국보위는 곧 수령보위, 이것은 오직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의 최고화신이시며 군사의 영재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만이 이룩하실 수 있는 위대한 발견이며 불멸의 대공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