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후반기 조선반도정세는 나날이 긴장해 갔다. 미제에 의해 전쟁의 검은 구름이 무겁게 드리워졌다. 미제는 남조선당국을 부추겨 「두개 조선」 조작을 공공연히 떠들게 했다. 한편 7.4북남공동성명발표로 힘들게 연 통일의 문에 빗장을 지르며 날마다 대결을 고취하였다. 미제는 제30차 유엔총회결정을 무시하고 남조선으로부터의 미군철수, 정전의 공고한 평화에로의 전환, 자주적 평화통일의 환경조성을 반대하고 힘에 의한 공화국압살을 꾀하였다.

구름이 자주 끼면 비가 오는 법이다.

1976년 8월 18일, 미제는 판문점에서 엄중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였다.

오전 10시 45분 경 갑자기 미군경비장교를 비롯한 14명의 인원들이 대형화물차와 지프차로 판문교부근에 와서 제놈들의 감시에 지장이 있다는 터무니없는 구실밑에 우리측 지역에 있는 백양나무를 무작정 찍기 시작했다. 때마침 순찰근무중이던 인민군경무원들이 다가가 그 나무는 우리측이 관리하는 것이므로 찍으려면 우리측과 사전협의를 하든지 군사정전위원회 해당 기구에 통지를 하고 행동해야지 그렇게 협의도 없이 찍어서는 안된다고 경종을 울리었다. 이 정당한 요구에 말문이 막힌 적들은 몇 개의 아지만 자르려 한다고 하였다. 경무원들은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자리를 떴다.

그런데 놈들은 나무밑동을 찍기 시작하였다. 경무원들은 되돌아 가서 나무를 찍어서는 안된다고 다시금 경고하였다. 그러자 미군경비병들은 오히려 오만무례하게 행동하면서 욕설까지 퍼붓는 것이었다. 경무원들은 자제력을 발휘하여 놈들에게 무례하게 행동하지 말 것을 경고하면서 즉시 도발적인 행동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였다.

양키놈들은 도발을 중지할 대신 도리여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싸움을 걸어왔다. 미군경비장교가 나무를 찍던 도끼를 휘두르며 우리 경무원에게 다가 들었고 졸병들도 지프차안에 있던 도끼와 몽둥이를 들고 일제히 달려들어 집단적 폭행을 감행했다.

불의의 정황에서 우리측 경무원들은 단호히 자위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깜박할 사이에 여러 명의 미군병사들이 나자빠졌다. 이때 미리 대기해있던 30여명의 미군경비병들이 또 달려들었다.

4명 뿐인 우리 경무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적들이 휘두르는 도끼를 빼앗아 던지며 40여명의 적들과 육박전을 벌였다. 이 싸움에서 미군장교 2명이 죽고 여러 명의 부상자가 났다. 겁에 질린 양키놈들은 도망치고 말았다.

이것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판문점사건」이다.

「판문점사건」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미제의 계획적인 도발행위였다.

미제는 이 사건이 터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미리 대기시켜 놓았던 수백명의 병력과 숱한 중무기들을 판문점공동경비구역안에 끌어들이었다. 그리고 미국본토와 오끼나와로부터 각각 1개 대대의 비행대와 1,800여명의 오끼나와주둔 해병대를 남조선에 끌어 들이고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를 비롯한 미제7함대의 「기동타격함대」를 우리 나라 해역에 기동전개하였다. 미제는 이 「사건」을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상정시키고 지어 군사정전위원회 본부구역 상공에 3대의 「B-52」전략폭격기와 26대의 직승비행기, 전투기들을 띄워놓고 중무장한 수백명의 무장인원들을 공동경비구역안에 내몰아 문제의 나무를 찍어 버리고 우리측 초소들을 위협하는 엄중한 도발까지 감행하였다. 미제는 미군과 남조선군에 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갈 것을 명령했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를 일촉즉발의 험악한 정세가 조성되었다.

세계의 이목이 조선반도에 쏠렸다. 세계는 이 「사건」을 두고 조선전쟁이후 조미군사대결 제3회전이라고 하였다. 1회전은 「푸에블로」호 사건이고 2회전은 미제정찰기 「EC-121」사건이었다. 1회전과 2회전에서 패한 미제는 제3회전에서 우리를 기어이 굴복시키려고 덤벼 들었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바로 이런 때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태연자약하시었다.

「사건」당일 밤에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의 한 책임일꾼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적들의 있을 수 있는 책동에 대해서는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어야 하지만 절대로 피동에 빠져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이번 사건은 미국놈들의 계획적이며 의도적인 도발입니다. 결코 우발적인 충돌이 아닙니다.

최고사령부 보도와 조선중앙통신사 성명을 내도록 하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놈들이 덤벼 들면 한번 본때있게 싸워보자고 힘을 주어 말씀하시었다. 그이께서는 판문점경무원들의 슬기롭고 용맹스러운 싸움정형을 상세히 들으시고는 적들의 도발을 짓부수고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의 본때를 보여준 판문점경비성원들을 높이 평가하시었다.

이것이 「판문점사건」이 일어나 전쟁의 검은 구름이 밀려오던 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취하신 첫 조치였다. 포드, 키신져 등 미국의 전쟁광신자들이 비상회의들을 연이어 벌이고 그 무슨 「군사행동」과 「보복조치」를 뇌까리며 「비상대기령」과 출동명령을 내리며 법석 고아대고 있을 때 장군님께서는 병사들을 표창하고 계시었다.

이것이 장군님의 배짱이고 담력의 모습이었다.

「판문점사건」으로 하여 정세가 몹시 긴장할 때 조선인민군 전체 부대들과 노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의 전체 대원들에게 전투태세에 들어갈 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의 보도가 발표되었다. 미국에 대고 해볼 테면 해보자는 우리의 폭탄선언이었다. 전당, 전군, 전민은 결사항전태세를 갖추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놈들의 발광상을 강자가 아니라 약자의 허장성세로밖에 보지 않으시었다.

「판문점사건」이 터진지 며칠 안된 어느 날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급히 의논할 문제가 있다고 당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이었던 항일혁명투사 오진우동지를 부르시었다. 그는 이 날도 작전대곁에서 적들의 움직임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긴장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긴급한 군사과업을 받을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그는 한달음에 그이께서 계시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그는 전혀 뜻밖의 일에 부닥쳤다.

장군님께서 오늘은 호숫가에 나가서 바람을 쏘이면서 낚시질을 하자고 하시는 것이었다.

『예?!』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 후 교외의 조용한 호숫가에 이르신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맞춤한 자리를 잡아주시고 준비해가지고 가신 낚싯대를 쥐여주신 다음 그의 곁에 나란히 앉아 호수에 낚싯대를 드리우시었다.

물고기는 연방 물려 나왔다. 오진우동지는 낚시질을 하면서도 초조한 마음으로 줄곧 장군님의 말씀을 기다렸다.

그의 심중을 헤아리신 장군님께서는 이윽고 그에게 시선을 돌리시며 오늘 의논하자고 하는 것은 다른게 아니라 건설문제이라고, 지금 평양시에서는 수도의 면모를 일신시키기 위한 건설사업이 벌어지고 있은 데 노력이 모자라 제대로 추진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그래서 인민군군인들을 좀 동원했으면 하는 데 얼마만 한 역량을 돌려줄 수 있겠는가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건설역량말입니까?』

오진우동지의 머릿속에서는 그만 혼란이 일어났다. 그는 그때 인민군지휘성원들과 함께 긴장한 정세에 대처하여 무력보충방안을 논의하던 중이었고 방안이 서면 곧 장군님께 보고드려 결론을 받자던 참이었다.

그런데 전투준비에 진입시켜야 할 무력을 뚝 떼어 사회주의건설에 돌린다니 놀랍기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순간의 생각이었다. 그는 자세를 바로하며 명령만 하신다면 몇 개 사단이라도 수도건설에 돌리겠다고 말씀드렸다.

『역시 백두산에서 싸운 사람이 다릅니다.』

장군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었다.

오진우동지는 당장 전쟁이 터질 수 있는 긴박한 정황속에서도 태연히 낚시질을 하시며 수도건설에 대하여 생각하시는 장군님의 그 여유작작하신 모습을 우러르며 이번의 조미군사대결에서도 우리는 이미 이겼다는 확신에 넘쳐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군인휴양문제에 화제를 돌리시었다.

『요즘 군인휴양소들이 텅 비였다고 하는 데 그게 사실입니까?』

장군님께서는 긴장한 정세와 관련하여 군인휴양생들을 모두 자기 초소로 돌려보냈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시고 그렇게 한 것은 잘한 일같지 않다고, 그까짓 적들이 뭐가 무서워서 휴양소까지 문을 닫겠는가고, 설사 전쟁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휴양소들에서는 군인들의 노랫소리가 울려야 한다고 하시었다.

오진우동지는 이번에도 역시 장군님의 그 자신 만만한 배짱에 감동을 금치 못하며 군인들의 휴양을 계속하도록 명령을 떨구겠다고 말씀 드렸다.

바로 이 무렵 어느 날 제5차 블럭불가담국가수뇌자회의에 참가하고 귀국한 외교부장(당시) 허담동지가 전쟁접경에 이른 정세가 근심되어 여장을 풀기 바쁘게 장군님을 찾아 뵈웠다.

장군님의 집무실에 들어서던 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적들과의 대결전으로 긴장해 계실 것으로만 생각했던 장군님께서 뜻밖에도 서정적인 음악을 감상하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장군님께서는 놀라운 기색으로 굳어진 그에게 반가운 미소를 보내시며 먼길에 수고가 많았다고, 서있지 말고 가까이 와서 음악을 함께 감상하자고 하시었다.

이윽하여 노래가 끝나자 허담동지는 조국으로 돌아오면서 전쟁전야의 긴장한 정세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는 심중의 말씀을 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마음이 이해되시는 듯 고개를 끄덕이시며 지금 어느 순간에 전쟁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첨예한 정세가 조성된 것은 사실이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시었다.

미국놈들이 소리나 크게 치지 사실은 우리와 싸우는 것을 피하려고 합니다. 「판문점사건」으로 떠는 것은 우리 인민이 아니라 미국놈들입니다. 나는 미국놈들의 발광을 하나의 시대착오적인 정신착란으로 밖에 보지 않습니다. 미국놈들의 발광은 어디까지나 서푼짜리 몸부림입니다.…

미국놈들은 우리 인민의 머리칼 하나 다치지 못할 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미국놈들의 발광상에서 강자가 아니라 약자의 몰골을 내다보고 계시는 것이었다.

적들을 하찮게 눈 아래로 굽어보시며 하시는 장군님의 말씀에 허담동지의 가슴은 후련히 열리고 마음은 산악을 안은 듯 든든해졌다. 준엄한 정세를 앞에 놓고도 배심있게 음악을 감상하시는 장군님의 저 담력을 감히 그 누가 당하랴, 이렇게 생각하니 백배해지는 용기가 온몸에 솟구쳐 오름을 금할 길 없었다.

바로 이처럼 담대한 분이시기에 장군님께서는 비록 준전시상태에 들어간 조건에서도 나라의 모든 일이 편향없이 진척되도록 이끄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준전시상태라고 하여 만수대예술극장건설을 당분간 중단시켰을 때에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지금 정세가 긴장하지만 공사를 계획대로 내밀어야 한다고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각 도당의 책임일꾼들을 전화로 찾아 농사문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경제사업과 관련한 문제들을 요해하시고 당면하게 해결하여야 할 과업들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었다. 그리하여 분계연선지대로부터 압록강, 두만강연안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 전 지역에서 모든 것이 정상적인 생활궤도를 따라 흐르게 되었다.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10일째 되는 날인 8월 27일 미국이 우리에 대한 「군사적 대응조치」를 위한 작전을 최종적으로 확정하고 대통령의 명령이 있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을 공포했을 때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으시고 바로 그 날 밤 평양대극장에 나가 음악무용이야기 「낙원의 노래」 시연회를 가지시고 작품완성작업을 지도하시었다.

시연회가 있기 몇 시간 전에 일꾼들은 장군님께 정세가 긴장한 데 시간을 내실 수 있겠는지 몰라 시연회를 예정대로 조직해야겠는지 아니면 미루어야 하겠는지 결심을 못하고 있다고 조심히 말씀드렸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놈들이 아무리 최후통첩을 보내어도 자신께서는 그것을 코흘리개들의 으름장만큼도 여기지 않는다고 하시며 시연회를 예정대로 조직하라고 이르시었다.

이렇게 되어 조직된 시연회였다.

불밝은 대극장무대에서는 음악무용이야기 「낙원의 노래」의 명랑하고 씩씩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름다워라 이 강산 은혜론 해빛 넘치고

행복하여라 사람들 수령님 한 품에 사네

수 천년 오랜 세월 바라 오던 그 소원

인민의 낙원이 이 땅위에 꽃폈네

노랫소리는 그대로 미제의 전쟁위협에도 끄떡없는 담대무쌍한 우리 인민의 대답이었다.

미제는 제놈들의 최후통첩마저 이렇게 무시당하자 다음날인 8월 28일 북조선은 군사적 방법으로는 굴복시킬 수 없는 나라라고 비명을 지르며 마침내 전쟁작전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리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은 미제와의 군사적 대결 「제3회전」에서도 통쾌한 승리를 이룩하였다.

그것은 전적으로 탁월한 영군술과 비범한 예지를 지니신 백두산의 아들 김정일장군님의 무비의 담력과 지략이 안아온 위대한 결실이었다. 이로써 주체조선의 존엄과 영예는 다시한번 빛내어졌다.

    

 

군사분계선을 따라 전개되어있는 조국의 최전연초소는 말 그대로 군사적 대결의 극치지점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적들과 직접 총구를 맞대고 있는 최전연초소들을 수없이 찾으시어 초병들에게 조국통일의 숭고한 사명감을 깊이 심어주시고 싸움준비완성에서 나서는 과업들을 밝혀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주체63(1974)년의 어느 여름날에도 몸소 한 최전연초소를 찾으시었다.

그때로 말하면 북남공동성명이 발표된지 두 해가 되었으나 미제와 남조선당국의 영구분열책동으로 조국통일의 앞길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가던 시기였다.

한여름의 무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군인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장군님께서는 이곳 지휘관들로부터 적들의 음흉한 도발책동에 대하여 보고 받으시고 인민군대는 한 순간도 안일해이함이 없이 적들과 한번 본때있게 싸워 결판을 낼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었다.

이어 감시소에 오르시어 지척에 보이는 황폐화된 남녘땅을 가슴 아프게 살펴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초소군인들에게 미제의 남조선강점으로 하여 남반부인민들은 물론 온 민족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우리는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순간 군인들은 높뛰는 가슴을 들먹이며 조국과 인민앞에 지닌 성스러운 임무를 더욱 뜨겁게 되새겼다.

장군님께서는 초소군인들의 그 불같은 마음을 헤아려보신 듯 힘주어 말씀하시었다.

『우리 단단히 준비했다가 한번 본때있게 싸워봅시다.』

『알았습니다.』

군인들의 힘찬 목소리가 하늘가에 울려 퍼졌다.

군인들은 모두가 그 날에 주신 장군님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심장에 새기고 최전연초소를 철벽으로 지켜나갔다.

그후 주체66(1977)년 7월 어느 날이었다.

이 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위험을 무릅쓰시고 판문점초소를 찾아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마중 나온 초소지휘관들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며 그간 잘 있었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었다.

초소지휘관들은 조국통일과 인민군대의 싸움준비완성을 위하여 그 위험한 길을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나 찾아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노고에 가슴이 뜨거워 났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눈앞에 적들이 욱실거리는 판문각 노대에 나가시었다.

그러시고는 초소의 한 지휘관에게 요즘 적들의 동태에 대해 물으시었다.

초소지휘관은 「판문점사건」이후 공동경비구역을 분리선으로 갈라놓고 쌍방경비인원들이 자기측 지역에서만 경계근무를 서고 경비초소도 자기 지역에만 설치하도록 한 것 등 공동경비구역의 근무질서가 달라졌지만 적들이 군사분계선표식물에 발을 올려 놓거나 우리측 초소에 돌을 던지기도 하고 우리 경비인원들에게 주먹을 흔들어 보이는 등 정전협정에 위반되는 적대행위들을 계속 감행하고 있는 데 대하여 말씀 올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대답을 주의깊게 들으시고 나서 적들이 공동경비구역안의 군사분계선표식물에 발을 올려놓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한다는 데 그것은 우리 경무원들의 약을 올려 우리가 제놈들의 도발에 걸려 들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적들은 교활하고 음흉하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적들의 모든 행동을 구체적으로 장악하고 연구하면서 경각성있게 행동하여야 하며 적들의 도발에 걸릴 조그마한 구실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적들의 행동에 대하여 더욱 경각성을 높이며 만약 적들이 또다시 덤벼 든다면 제때에 단호한 징벌을 안겨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조성된 정세와 새로운 환경에 맞게 판문점공동경비구역안의 전투경계근무를 일층 강화하며 초소군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시켜야 한다고 힘 주어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적들의 음흉한 기도를 꿰뚫어보시고 그에 대처하기 위한 명확한 방도를 밝혀주시고 초소군인들 속에서 당정책교양을 강화하고 계급교양을 짜고 들어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었다.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사건」때 영활하고 기민하게 행동하며 잘 싸운 것은 일상시에 훈련을 잘 한데 있다고 하시면서 초소군인들은 실정에 맞게 훈련을 강화하여 일단 적들과 맞서 싸우게 되면 일당백의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힘 주어 말씀하시었다.

이 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초소군인들에게 단 한두 수로 적들을 피동에 몰아넣는 탁월한 군사적 지략도 가르쳐 주시었다.

장군님께서 판문각 노대에서 적정을 요해하실 때였다.

부대의 지휘관들은 장군님의 신변안전을 위하여 초소의 경비인원을 두 배로 증강하였다. 우리측 초소에서 이런 움직임을 보이자 적측에서는 영문도 모르고 즉시 무장인원을 두 배로 증가시키고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이렇게 되어 판문점공동경비구역안의 쌍방간에는 매우 긴장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수행일꾼들은 불의의 정황에 긴장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태연자약하신 모습으로 적들의 움직임을 살피시다가 초소지휘관에게 우리의 무장인원을 본래대로 절반을 철수하라고 이르시었다.

우리측의 무장인원들이 절반으로 줄어들자 적측에서도 증원했던 저들의 무장인원을 철수시켰다.

얼마 후 우리의 무장인원이 다시 늘어났다. 그러나 적들은 우리에게 농락당하는 것 같은 수치감을 느꼈던지 다시는 무장인원을 증가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어 초소의 긴장한 분위기는 완화되었다. 영문도 모르고 무장인원을 증가시키면서 정세를 긴장시키던 적들은 결국 수세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장군님께서 친히 대적현장에서 초소군인들에게 적들을 타승할 수 있는 전술과 지략을 키워주신 하나의 뜻깊은 일화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렇듯 장군님의 정력적인 지도가 있어 최전연초소의 인민군장병들은 미제의 전쟁도발책동을 단매에 짓부숴 버릴  수 있도록 싸움준비를 더욱 빈틈없이 갖추고 방선을 철벽으로 지켜갈 수 있었다.

    

 

치열한 조미대결전속에 70년대가 흘러 가고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어느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었다. 미제는 「판문점사건」후 정세를 계속 긴장시켰다.

미제는 남조선당국자들을 부추겨 1976년부터 동서 600여리나 되는 군사분계선 남측지역에 콘크리트장벽을 높이 쌓기 시작했다. 이 콘크리트장벽은 언제든지 허물어 버릴  수 있게 만든 「베를린장벽」과는 달리 영구분열장벽이었다. 그것은 많은 양의 철근과 시멘트, 골재를 들여 밑너비 10∼12m, 윗너비 2∼3m, 높이 5∼6m 되게 만든 요새화된 군사구조물로서 하나의 강토를 두동강내는 저주로운 분열의 상징이었다.

미제는 이렇듯 거대한 콘크리트장벽쌓기에 열을 올리는 한편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과 같은 대규모전쟁연습을 해마다 벌여 놓고 남조선에 현대적인 군사장비들을 대대적으로 끌어 들여 하늘과 땅, 바다에서 공화국을 반대하는 도발책동을 끊임없이 감행하였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제격이고 불은 불로 다스려야 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미제와 남조선반동들이 엄중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할 때마다 강력한 대응으로 무자비하게 짓뭉개 버리도록 하시었다.

주체66(1977)년 7월 어느 날이었다.

조국의 하늘을 믿음직하게 지키고 있던 동해안의 어느 한 부대 고사포병들은 우리측 상공깊이 침입하여 정탐행위를 감행하는 미제의 군용직승기 한대를 발견하였다. 적기는 인민군대의 경계를 교묘하게 피해가며 저공비행으로 그늘진 산허리를 살살 에돌아 날아들고 있었다.

「판문점사건」에서 당한 참패의 교훈을 망각하고 또다시 무모한 도발행위를 감행한 것이었다.

인민군군인들은 침략과 도발을 일삼는 미제에 대한 우리의 경고가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한번 똑똑히 보여주리라 결심하고 적기를 조준경의 십자선에 잡아넣었다.

적기는 오만하게도 우리측 지역으로 더 깊숙이 날아들었다.

인민군고사포병들의 야무진 포소리가 산발을 뒤흔들었다. 경고사격이었다. 적기의 앞뒤로 예광탄이 선명한 줄을 그으며 날아 올랐다.

이것을 본 적들은 질겁하였다. 그들은 고도를 낮추며 착륙하는 척 하더니 교활하게 초저공비행으로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놈들의 교활한 행동에 고사포병들의 분노심은 더욱 끓었다. 그들은 철천지 원수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는 멸적의 구호를 외치면서 적기를 향해 복수의 명중탄을 날려보냈다.

드디어 적기는 삼단같은 불길에 휩싸여 강물속에 처박히고 말았다. 비행기에 탔던 미제침략군 세 놈은 즉사하고 한 놈은 포로되었다.

공화국의 영공에 기어들었다가 추한 몰골로 강물속에 처박힌 적기의 검은 동체는 침략과 도발에 미쳐날뛰는자들의 말로가 어떻게 끝나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이것은 공화국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침략자들에 대해서는 무자비하다는 인민군대의 경고가 결코 빈말이 아니며 한다면 하는 인민군대의 단호한 입장을 다시금 명백히 보여주었다.

이에 대하여 보고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군사적 도발행위를 감행한 적기를 쏴 떨군 군인들을 높이 평가하시었다.

장군님의 분에 넘친 치하를 받아 안은 군인들은 적들이 도발행위를 계속 감행해온다면 보다 더 무서운 징벌을 안길 결의로 가슴 불태웠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듯 인민군군인들로 하여금 적들의 그 어떤 사소한 도발행위도 용서치 말고 무자비하게 징벌하도록 이끌어 주시는 한편 군사적 예지와 지략으로 적들의 무모한 전쟁도발책동에 단호한 타격을 가하여 그것을 걸음마다 짓부숴 버리게 하시었다.

1980년 3월 미제와 남조선군이 벌인 「팀 스피리트 80」합동군사연습 때에 있은 일이다.

해마다 벌이는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은 원래 미제가 1969년에 벌인 「망막의 초점」이라는 「포키스레티어」작전과 1971년에 벌인 「자유의 도약」이라는 「프리덤블트」작전에 이어 1976년부터 시작한 것이다.

종전의 전쟁연습들이 군종별 일부 병력이 투입된 국지적 전쟁연습이었다면 「팀 스피리트」전쟁연습은 남조선강점 미군병력과 남조선군, 미 본토의 병력까지 가담한 전면전쟁연습이었다. 또 전쟁연습의 목적이나 양상을 보아도 그것이 공화국을 침공하기 위한 도발적인 전쟁연습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알 수 있었다.

미제는 이 전쟁연습을 조선반도에서의 핵전쟁도발까지 계획한 침략적이며 범죄적인 「핵시험전쟁」, 「예비전쟁」으로서 해마다 벌이었다.

미제는 1980년 합동군사연습에 저들의 지상 및 공중부대들과 대규모함선집단들까지 남조선에 대대적으로 끌어들였다.

미제가 공식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이 전쟁연습에 16만명의 병력이 참가하였는 데 그중 미군은 무려 5만 4,000여명에 달하였고 훈련기간도 전해에 비해 32일이나 더 늘어난 50일간에 달하였다.

세계전쟁역사와 경험은 제국주의자들이 「군사연습」이요, 「훈련」이요 하는 명목으로 군대를 동원시켰다가 그대로 전쟁을 일으킨 전례가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도발하여 인류를 전쟁의 참화속에 몰아넣었던 히틀러나 중일전쟁을 도발하였던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바로 그러한 방법으로 대병력을 집결시켰다가 선전포고도 없이 불의에 침공을 개시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미 적들이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계획을 발표한 초기에 벌써 이러한 침략적인 성격과 위험성을 환히 꿰뚫어보시고 인민군대가 고도의 혁명적 경각성을 가지고 대처하도록 이끌어주시었다.

주체64(1975)년 겨울 어느 날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만나주신 자리에서 미제와 남조선집권자들이 내년부터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을 벌이겠다고 하는 데 총정치국에서는 어떤 교양대책을 세우고 있는가고 물으시었다.

총정치국장은 따로 교양대책을 세운 것은 없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사실 그때 군대에서는 정전 후 언제 한번 화약내를 풍기지 않은 해가 없는 적들인지라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을 벌이겠다고 하는 데 대하여 별로 크게 관심을 돌리지 않고 혁명적 경각성을 높일 데 대하여 강조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요해하신 장군님께서는 적들이 벌이려고 하는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에 대하여 절대로 무심히 대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적들은 대규모의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을 연례화하겠다고 하는 데 앞으로 합동군사연습이 조선반도의 군사정치정세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시면서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은 단순한 군사연습이 아니라고 힘 주어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미제가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을 벌이기 전에 벌써 선견지명의 안목으로 적들의 음흉한 계략을 환히 꿰뚫어보신 것이었다.

총정치국장은 장군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놈들이 벌이려고 하는 군사연습에 대하여 경각성을 더욱 높이겠다고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적들은 연습이라고 하지만 언제 실전으로 넘어갈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적들은 해마다 이 군사연습을 계단식으로 확대하면서 작전전술적 기도를 검증하는 한편 실전으로 넘어갈 기회를 엿보자는 것입니다.』

군사연습의 계단식확대,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군사연습을 연례화하며 계단식으로 그 규모를 확대하여 기회만 조성되면 전쟁에로 넘어가자는 것이 바로 적들의 의도였던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해당 일꾼들에게 과업을 주어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과 관련한 적들의 기도를 더 알아내며 인민군군인들에게 그 군사연습의 위험성에 대하여 똑똑히 인식 시켜주어 경각성을 바싹 높이고 각종 경계근무를 긴장하게 서도록 할 데 대하여 일일이 가르쳐주시었다.

총정치국장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인민군대의 싸움준비를 잘 갖추며 특히 전연지대 군인들이 긴장하고 동원된 태세를 견지하도록 교양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적들이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을 연례화하겠다고 하는 것과 관련하여 대응책을 연구해보아야 하겠다고 하시며 「팀 스피리트」는 미제의 대조선정책의 직접적 반영이라고, 앞으로 미국놈들이 「팀 스피리트」와 같은 대규모합동군사연습을 가지고 우리의 자주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총정치국장은 이해에 있은 유엔총회 제30차 회의에서 미제의 남조선강점을 끝장 내며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할 데 대한 결의안이 채택되고 세계적 범위에서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의 철거와 조선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지하는 연대성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은 데 역행하여 조선반도정세를 고의적으로 긴장시키며 전쟁접경에로 이끌어가는 미제의 대규모적인 합동군사연습의 엄중성과 위험성에 대해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그를 보시며 그렇다고 놀랄 것은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나라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데 대하여 절대로 용서할 수 없으며 도발자들에게는 단호한 징벌을 가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체조선의 불굴의 기상이며 본때입니다, 우리가 주동적으로 놈들을 쥐고 흔들어야 합니다라고 선언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인민군대에서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과  관련한  첫  논평을  신문에  내게  되었는 데  그때에도 그이께서는 논평에서 군사연습을 벌이는 놈들의 검은 속심을 발가 놓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에 대한 우리 당의 입장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하시면서 만약 놈들이 덤벼 든다면 침략자들을 마지막 한 놈까지 소멸해버릴 것이며 놈들이 달려들기를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주권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도발자들에 대하여서는 단호한 징벌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당의 입장이라고 밝혀주시었다. 그러시면서 군사논평에서는 강한 논조로 분별없이 날뛰는 놈들을 되게 후려쳐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우리의 논조는 더욱 강경해졌고 폭탄선언과 같은 이러한 논조는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그후의 정세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 번져갔다.

놈들은 범죄적인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을 해마다 계단식으로 확대하였다.

첫해인 1976년에 참가병력수 4만 6,000명(그중 미군 6,000명), 훈련기간 10일, 1977년에 참가병력수 8만 7,000명(그중 미군 1만 3,000명), 훈련기간 15일, 1978년에 참가병력수 11만 8,000명(그중 미군 4만 5,000명), 훈련기간 17일, 1979년에 참가병력수 14만여명(그중 미군 5만 6,000명), 훈련기간 18일, 1980년에 참가병력수 16만명(그중 미군 5만 4,000명), 훈련기간 50일이었다.

적들은 초기에는 상용무기에 의한 훈련에 기본을 두었지만 점차 체계적으로 증강하여 전술핵무기와 대량살륙무기들을 비롯하여 저들이 가지고 있은 각종 기술장비들을 다 동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름있는 군사가들의 슬기를 다 합쳐도 따를 수 없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임기응변의 신묘한 지략앞에 적들의 무모한 군사적 도발책동은 걸음마다 짓부숴졌다.

「팀 스피리트 80」전쟁연습이 고조에 이르렀을 때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적의 대병력이 총 포탄을 쏘면서 군사분계선지대를 향하여 급속도로 북상해오고 있은 것과 때를 같이하여 인민군부대들을 일시에 적들을 맞받아 기동시키도록 하시었다. 불은 불로 다스리려는 탁월한 영장의 대담무쌍한 작전이었다.

장군님의 영활한 작전방침을 받아 안은 인민군지휘성원들은 벌써 이겼다는 신심 드높이 지정된 지점에로의 군부대들의 전략적 기동을 단행하였다.

군사분계선에로 몰려오던 적들은 인민군부대들의 기동에 혼비백산하였다. 도발적인 전쟁연습으로 위협하려던 적들은 인민군대의 만만치 않은 기동에 기겁하여 부랴부랴 훈련비상으로부터 전투비상으로 이전하는 일대 소동을 피웠다. 순간에 전쟁연습의 모든 계획들이 헝클어져 뒤죽박죽이 되었고 전쟁연습은 제일 중요한 대목에 이르러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인민무력부의 책임일꾼들로부터 이런 사태를 보고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적들이 훈련비상으로부터 「텦콘-4」전투비상으로 넘어간 것은 우리가 진행한 기동연습을 공격집단편성을 위한 부대기동으로 판정하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라고 하시면서 통쾌하게 웃으시었다.

실지 적들은 인민군대가 전방 가까이로 잘 무장된 부대들을 움직이자 그것을 대뜸 공격을 위한 배비변경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놈들은 인민군대가 당장 쳐나온다고까지 떠들며 소란을 피웠다.

결국 놈들이 그토록 요란하게 준비하고 벌여 놓았던 합동군사연습은 소득없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반면에 미제와의 군사적대결전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은 연전연승의 개가를 높이 올렸다.

이것은 불은 불로써, 부정의는 정의의 무쇠주먹으로 다스리는 장군님의 무비의 담력과 배짱, 영활한 군사적지략이 안아온 빛나는 승리였다.

위대한 선군영장 김정일장군님을 모시어 인민군대는 무적의 대오로 더욱 강화발전되고 우리 나라는 반제보루로 거연히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