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증오, 이것은 상반되면서도 연관되어  있는 인간본연의 감정이다. 조국에 대한 사랑은 원수에 대한 증오를 동반한다. 인민군장병들은 원수들 앞에서는 무적의 펄펄 나는 싸움꾼, 증오의 화신들이지만 조국과 인민앞에서는 가장 어질고 미더운 사랑의 충신들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인민군군인들을 이렇게 키워주시었던 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가 사랑과 증오의 감정을 가지고 조국보위뿐 아니라 인민들의 생명, 재산을 지키는 데서도 언제나 앞장서도록 이끄시었다.

그 길에서 세상을 놀래우는 전설같은 사랑의 기적들이 수놓아졌다.

주체64(1975)년 2월 중순 어느 날 저녁이었다.

집무실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시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개잡이를 하려고 바다에 나갔던 서해의 한 수산협동조합 어로공 처녀가 조난당했다는 뜻밖의 보고를 받으시었다.

이 날 어로공 처녀는 조개잡이에 여념이 없던 나머지 뭍에서 멀리 떨어져 나온 것도 미처 모르고 있다가 날이 어둡기 시작해서야 일손을 멈추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에 부닥쳤다. 이미 곬을 따라 들어온 밀물이 그가 돌아가는 길을 다 막아버린 것이었다. 밀물은 시각을 다투며 불어나 어느새 허리를 쳤다. 바다 한가운데 홀로 서게 된 처녀, 그때 그가 무엇을 생각했으랴. 그는 가까이에 있는 얼음장위에 간신히 올랐다.

그런데 밀물시간이 지나고 썰물때가 되자 바다위에 떠있던 얼음장들이 일시에 먼 바다로 밀려나가기 시작하였다.

처녀가 오른 얼음장도 그 틈에 끼여서 걷잡을 수없이 망망대해로 밀려나갔던 것이다.

조개잡이에 나갔던 처녀가 실종되었다는 급보에 접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보시던 일을 뒤로 미루시고 즉시 해당 일꾼들을 현지에 파견하시는 한편 인민군대를 구조작업에 동원시키시었다.

그분께서는 전화로 인민군대의 한 책임일꾼을 찾으시어 인민군대에서 직승기를 동원하여 그를 구원하여야 하겠다고 하시었다.

그리하여 주변의 인민군부대들과 경비대군인들, 해군함정들과 직승기들까지 동원되는 비상조치가 취해졌다.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유례없는 규모의 구조작업이 펼쳐졌다.

탐조등의 불빛들이 바다의 어둠을 헤 가르고 직승기들이 수면을 스칠 듯이 저공비행을 했으며 경비정들이 바다를 누비었다.

바다기슭 여기저기에서는 수백수천개의 횃불들이 타올라 밤하늘을 대낮처럼 밝혔다. 해상정황을 알리는 전파가 끊임없이 날았다.

하늘과 땅과 바다위에서 입체적인 구조작업이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그러나 얼음에 뒤덮인 망망한 바다에서 처녀를 찾아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처녀가 구원되리라는 희망은 점점 잦아들었다.

뭍에 있는 사람들도, 구조에 동원된 군인들도 신심을 잃었다.

이러한 정황을 헤아리신 듯 장군님께서는 온밤 전화기곁에서 떠나지 않으시고 일꾼들에게 신심을 잃지 말라고, 우리가 신심을 잃으면 바다에 떠있는 그 처녀가 어떻게 되겠는가고, 그 처녀는 마지막순간까지 조국을 믿고 조국을 쳐다보고 있을 것이라고 하시며 고무해주시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한밤이 지새고 날이 훤히 밝아올 때까지도 처녀의 소식을 기다리시었다.

하건만 사고현장에서는 검푸른 파도가 얼음장들을 집어삼킬 듯 출렁일 뿐 처녀의 행적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 처녀를 찾지 못하였다는 인민군대 책임일꾼의 보고가 올라왔다.

전화기를 드신 장군님의 안색은 몹시 흐리시었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격하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었다.

『기어이 구원하여야 합니다.

구원하지 못하면 차라리 보고하지 마시오.』

가슴 아픈 괴로움과 사랑의 정이 한데 어울려 울리는 말씀이었다.

일꾼은 뜨거운 것을 삼키며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처녀를 기어이 찾아내겠다고 말씀 올리었다.

이것은 구조작업에 동원된 모든 인민군군인들의 한결같은 결의이기도 하였다.

또다시 긴장한 구조전투가 전개되었다.

시간이 퍼그나 지났다.

어느덧 망망대해를 수십, 수백 번 오가며 훑어가던 직승기가 파도에 이리저리 밀리는 한 얼음장위에서 자그마한 점을 발견하였다.

가까이에서 살펴보니 그것은 분명 조개구럭을 안고 쓰러진 어로공 처녀였다.

그리하여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무려 20시간 나마 헤매던 처녀는 마침내 구원되었다.

전설과도 같은 서해바다의 기적은 바로 이렇게 일어났다.

그가 비행기를 타고 마을에 돌아왔을   때였다. 자기 딸은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하던 처녀의   어머니는  물론   온  마을  사람들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대해 같은 사랑에 의해 살아 돌아온 처녀를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한동안 꿈같은 현실에 격정을 금할 수 없었던 마을사람들 속에서 일시에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 올랐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만세!』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 만세!』

『조선노동당 만세!』

그것은 하늘과 땅, 바다를  메우는 구조전투로  이름없는 한 어로공 처녀를 사경에서 구원해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다함 없는 감사의 외침이었다.

사경에 처했던 어로공 처녀를 구원했다는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더없이 기쁘시었다. 송수화기를 드신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의 책임일꾼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조난당했던 어로공처녀를 구원했습니까? 수고했습니다. 정말 수고했습니다. 이제는 마음이 놓입니다.』

만 시름이 풀리시는 듯 만족하신 장군님의 흥분된 목소리에 일꾼은 격정을 금할 수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비행기를 타고 바다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 헐치 않다고, 모래불에서 바늘 찾기보다 힘들었을 것이라고   하시며  군인들의 수고를 헤아려주시었다.

그러시면서 구체적인 구조전투정형을 요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당에서 준 과업을 무조건 수행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 직승기승조원들의 정신세계가 아주 좋습니다.

인민의 군대답게 정말 잘 하였습니다. 그들을 높이 평가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자신께서 바치신 심혈과 노고보다도 인민의 생명과 행복을 지키는 군대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전사들을 그토록 내세우시며 높이 평가해주시는 그분의 말씀에 일꾼은 눈굽을 적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인민의 생명재산을 지키기 위해 인민군대를 불러주신 이야기는 이뿐이 아니다.

주체66(1977)년 10월 9일이었다.

이 날 서해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우리의 한 어선이 뜻밖의 기관고장으로 표류하게 되었다.

그런데 배는 공교롭게도 동남풍을 따라 점점 38°선 가까이로 밀려가고 있었다.

정황은 매우 위급하였다.

당시 남조선집권자는 장기집권야욕을 실현하고 날을 따라 격화되는 심각한 위기로부터의 출로를 찾기 위해 반공화국모략책동과 군사적 도발을 강화하였다.

그러므로 분계연선 가까이로 떠내려간 고깃배가 적들의 눈에 띄우는 경우 선원들의 생명이 엄중히 위협당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인민군대의 한 책임일꾼이 곧 경애하는 장군님께 보고 올리었다.

『고깃배에 몇 명이나 탔습니까?』

그분께서는 몹시 놀라워 하시며 이렇게 물으시었다.

일꾼은 어로공들의 인원수와 함께 배의 크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렸다.

『그러면 적지 않은 인원입니다. 고속경비정을 빨리 출동시켜 그들을 구원하여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은정 어린 구조임무를 인민군군인들에게 맡겨주시었다.

그런데 이 날 이 수역의 해군부대들에서는 적들의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여 해상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일꾼은 이러한 사실을 장군님께 말씀드렸다.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겨 계시던 장군님께서는 훈련중에 있는 경비정이라도 대담하게 떼서 어로공들을 구원하기 위한 전투에 내보내자고 힘 주어 말씀하시었다.

순간 일꾼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해상에서의 군사훈련은 하늘과 땅에서와 마찬가지로 함선, 함정들과의 긴밀한 협동하에 진행된다. 그러므로 훈련중에 있는 함선, 함정중 어느 한척이라도 떼어낸다는 것은 사실상 훈련에 적지 않는 지장을 주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민의 생명재산을 그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사훈련에 지장을 주는 일이 있더라도 어로공들의 생명부터 구원할 대담한 결심을 내리시었던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뒤로 미루시고 구조전투를 몸소 지휘하시었다.

시간이 퍼그나 흘러 어느덧 깊은 밤, 경애하는 장군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고깃배를 구원하러 나가던 경비정이 모래불 때문에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인민군대 지휘관의 보고였다.

그분께서는 걱정 어린 음성으로 비행기를 띄우는 것과 함께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인차 자그마한 배를 가지고 나가서라도 고깃배를 구원해야 하겠다고 지시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우리의 해병들을 믿고 있기 때문에 자신께서는 마음을 놓는다고 군인들을 고무해주시었다. 그리고 비행기를 띄웠다고 하여 순간도 마음을 놓지 말고 뜻밖의 정황이 생길 수 있다는 타산밑에 엄호대책을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고 세심히 가르쳐주시었다.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얼마 후 또다시 구조배가 출동하고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날았다.

그분의 예견대로 우리의 어선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는 적구축함이 포문을 우리쪽으로 돌리고 금시라도 달려들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격전전야에 있는 전장을 방불케 하였다.

그런 속에서 구조배가 현지에 도착하여 구조작업에 착수했다.

그런데 파도가 심하고 배가 작기 때문에 어선에 대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자칫 잘 못하면 어선에 부딪쳐 배가 침몰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민군해병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토록 아끼시는 인민들을 무조건 구원해야 한다는 결사의 각오로 긴장한 구조작업을 벌여 나갔다.

배를 견인하는 데만도 몇 시간이 걸렸다.

치열한 구조작업끝에 드디어 어선은 구원되어 북상의 길에 올랐다.

퍼그나 시간이 지나 경애하는 장군님께 현지에 파견된 인민군대의 한 지휘관으로부터 보고가 올라왔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고깃배에 탄 선원들을 모두 구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말씀이 없으셨다.

일꾼은 또다시 우리의 해병들이 고깃배를 구원하였다고 기쁨에 넘쳐 말씀드렸다.

그제서야 경애하는 장군님의 갈리신 음성이 전류를 타고 울려왔다.

『너무 기뻐 그럽니다.』

장군님께서는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었다. 순간 그분의 눈가에 뜨거운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동안이 지나서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젠 만 시름이 놓인다고, 군인동무들이 정말 수고가 많았다고 하시면서 사경에 처했던 어로공들을 구원하였으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고 못내 기쁨을 금치 못하시었다. 그리고 어로공들을 구원하는데 성공했으니 동무들도 마음 놓고 푹 쉬라고, 비록 명절의 하루가 거의다 흘러갔지만 즐겁게 쇠라고 다정히 말씀하시었다.

이 날은 바로 조선노동당창건 기념일인 10월 10일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이 명절의 하루마저 순간도 쉬지 못하시고 어로공들과 고깃배를 위험에서 구출하기 위한 긴장한 시간을 보내시었던 것이다.

우리의 인민군대를 인민의 생명재산의 철저한 보위자로, 애국애민의 선봉투사로 내세워 전설같은 사랑의 기적을 창조하신 장군님의 은정에 대한 이야기는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전해질 것이다.

   



인민군대는 말 그대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인민의 군대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가 자기의 본분을 지켜나가려면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지녀야 한다고 늘 강조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조국산천의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 아름다운 경개, 그 모든 것이 조국의 참모습이라는 진정한 조국관, 열렬한 조국애를 심어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시었다.

주체64(1975)년 10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과 함께 금강산을 찾으시었다.

이 날 따라 금강산은 천하절경을 펼쳐 보이며 절세의 애국자, 위대한 선군영장을 맞이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행을 이끄시고 금강산의 여러 탐승구역들을 돌아보시었다.

장군님께서 구룡연구역으로 가실 때였다.

옥류동골안은 골짜기마다에 펼쳐진 단풍으로 하여 하늘 땅이 온통 불타는 것만 같았다.

볼수록 신비로운 절경에 취한 한 일꾼이 여기서 천연색사진을 찍으면 아마 저 못도 붉게 나올 것이라고 하였다. 천진스러운 그 말에 웃음꽃이 피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군지휘일꾼들을 바라보시며 오늘은 기분이 참 좋다고, 경치도 날씨도 마음도 쾌청, 쾌재라고 하시며 두 손을 허리에 얹으신 채 주위를 둘러보시었다.

이때 누군가 절벽에 새긴 금강산의 노래가사를 읽다 말고 노래로 옮겨 불렀다.

장군님께서는 금강산에 와서 그 노래를 들으니 명곡이라는 것이 더 잘 알린다고 하시며 이번에는 누가 시를 읊어보라고 하시었다.

지금까지 자연의 황홀경에 취하여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부르던 일꾼들이 모두 입을 딱 봉하였다.

시험장에 들어선 학생처럼 자기가 짚이면 어쩌랴 하여 저마다 눈짓으로 남들보고 앞에 나서라고 부추겼다.

그러한 모습을 미소 어린 눈길로 바라보시다가 장군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사람은 노래도 부르고 악기도 다루며 춤도 추고 시도 읊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시고는 이 좋은 금강산에 와서 그저 야, 야 하면서 감탄만 하지 말고 천하의 아름다움이 여기에 다 모였구나 하고 즉흥시라도 읊어야 할게 아닌가, 목석이 아니고서야 이 경치를 두고 어찌 시가 나오지 않고 노래가 나오지 않겠는가, 옛날 갓 쓰고 하늘소 타고 다니던 선조들도 금강산에 와서는 시 한수씩 읊군 하였다고 하시며 16세기 후반기의 시인 정철이 쓴 「관동별곡」에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에 대하여 그토록 긍지높이 노래한 것을 보면 정철이도 산천경개를 무척 사랑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고 하시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산천에 대한 예찬이 곧  애국심은   아니라고  하시면서  예로부터  금수강산이라  일러오는 내 나라이지만 수령님의 은덕, 당의 햇빛아래 비로소 수려한 절경이 인민의 낙원으로 만방에 자랑 떨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 나라의 사회주의경치이며 이러한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이 참다운 애국심이다라고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금강산에 대한 예찬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군지휘성원들에게 사회주의조국에 대한 숭고한 넋과 참다운 조국애를 심어주시는 뜻깊은 말씀을 하시며 이렇게 계속하시었다.

『보시오. 산은 산마다 단풍으로 물들고 골은 골마다 옥계수가 구슬같이 흘러내리는 계곡을 보나 구룡연과 삼일포를 보나 나도 즉흥시를 읊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치밀어 오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내 나라를 더욱 빛내이며 만방에 자랑 떨치리라는 결심이 더욱 확고해집니다.』

일꾼들 모두는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사회주의조국의 번영에 대한 숭고한 넋과 고결한 사상감정을 지니시고 내 나라, 내 조국의 부강발전을 위하여 불면 불휴의 고귀한 심혈과 노고를 바쳐가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높은 뜻을 숭엄한 감정으로 받아 안았다.

총정치국의 책임일꾼은 북받치는 격정을 금치 못하며 군대안의 창작가들이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담은 좋은 작품을 많이 써내도록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결심을 지지해주시며 그러자면 우선 창작가들이 열렬한 조국애로 불타야 한다고, 그들이 참다운 조국애를 가지고 현실을 뜨겁게 감수하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우리는 자기 조국에 대한 좋은 작품들을 많이 써내어 우리 인민들과 인민군군인들이 조국애를 더욱 키워 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자기 조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열렬한 사랑의 감정이 없이는 조국을 위한 영웅적인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이수복 영웅이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둘도 없는   목숨이지만  자기의  청춘을  서슴없이   바치겠다고 한 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사회주의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며 아름다운 희망, 내일의 행복을 위해 꽃다운 청춘을 바친 것은 참다운 조국애의 발현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이어 그분께서는 이수복 영웅이야말로 노동당시대가 낳은 진정한 애국자라고 하시며 앞으로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을 비롯하여 명승지들에 대한 참관사업도 자주 조직하여 인민들과 인민군군인들이 자기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며 결전의 시각이 오면 목숨도 서슴없이 바칠 그러한 참다운 조국애를 키워 나가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간곡히 이르시었다.

장군님의 말씀을 가슴에 뜨겁게 새기던 총정치국의 책임일꾼은 문득 지난해에 있은 일이 떠올랐다.

그 날은 주체63(1974)년 6월 중순 어느 일요일이었다.

인민군지휘성원들을 몸 가까이 부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황해금강에 가보자고 하시었다.

「황해금강」이란 재령벌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장수산이다. 장수산은 예로부터 산천경개가 아름다우며 공기 좋고 물 맑고 약초 또한 많아 오래 산 장수자들이 많은 곳으로 널리 전해왔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신 일행은 서해의 곡창지대인 재령벌에 들어섰다.

푸른 벼바다가 설레이는 한끝에 장수산의 웅자가 한눈에 안겨왔다. 해발 747m의 장수산은 벌방지대에 우뚝 솟아있는 것으로 하여 자못 웅장해 보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깎아 세운 듯 한 묘한 바위들이 바라보이는 산 입구에 차를 세우게 하시었다.

차에서 내리신 장군님께서는 두 손을 허리에 얹으시고 만족하신 듯 주위를 둘러보시며 지도를 가져오라고 하시었다.

지도를 살펴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손을 드시어 여기가 보적봉이라고 하시면서 저것이 앞천길바위이고 저것이 뒷천길바위라고 하시었다.

그 가까이에 천길이나 되는 이 바위산을 받쳐주고 있는 듯 앞뒤로 큰 바위들이 마주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장수산의 천연돌문인 관봉석문과 채진암석문이었다.

장수산의 최고봉은 보적봉이다.

산발은 동서로 뻗어있으며 여기에는 보장봉, 관음봉 등 해발 700m안팎의 봉우리가 잇달아있다.

장수산에는 소나무, 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등 수많은 종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계곡에는 그 물을 맞으면 어지럽던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진다는 세심폭포, 만가지 병이 낫는다는 약수폭포, 솟아오르는 높이가 수십m에 이른다는 샘폭포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폭포들이 많다.

물이 모여 넓은 못을 이루었다가 수십m의 높이에서 물갈기를 날리며 떨어지는 폭포수의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다.

일꾼들은 자연이 만들어놓은 이 아름다운 광경에 취한 듯 저마다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는 일꾼들을 정겹게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예로부터 금강산을 동부산악지대에 군림한 산악미의 왕자라 한다면 「황해금강」인 장수산은 서부벌방지대에 솟은 계곡미의 여왕이라고 하였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장수산골짜기가 깊고 좋습니다. 옛날부터 장수산은 경치가 좋은 곳으로 이름 났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산세를 바라보시며 앞장에 서시어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시었다.

장수산의 아름다움에서 첫째가는 것은 골짜기의 풍경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장수산의 서부에 이루어진 장수산열두굽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일꾼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시었다.

옛날 금강산을 보는 것이 평생소원이던 이웃나라 사람들이 금강산구경을 떠났다.

뱃길로 우리 나라에 와 닿은 그들은 장수산의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석동12곡에 들어서자 그들의 감탄은 극적이었다. 석동12곡은 10여리에 걸쳐 열두폭의 병풍을 친 것처럼 50∼150m 너비의 겹쌓인 돌벼랑이 열두번 굽이쳐 늘어선 골짜기인데 한 굽이를 지나면 또 한 굽이의 돌담이 앞길을 막아 나서고 앞이 막힌 것 같다가는 또 시원히 열리군 하였다.

게다가 골을 따라 굽이쳐 흐르는 수정같이 맑은 물과 줄기찬 폭포와 푸른 못을 이루고 벼랑따라 날카로운 봉우리와 기묘한 바위가 푸른 소나무사이에 드문드문 끼어있어 석동12곡은 그야말로 뛰어난 경치였다.

여기가 듣던 바 그대로인 듯 금강산의 만물상으로 생각한 이웃나라 사람들은 『평생소원이었던 금강산구경은 끝났다.』고 하면서 이곳에서 돌아서고 말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장수산을 「황해금강」으로 불리워 왔다는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나서 서부벌방지대에 계곡미를 자랑하는 이런 명산이 있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씀하시었다.

이때 책임일꾼이 그 분 앞에 나서며 여기에 인민군대에 필요한 집을 지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와 한 생각인 듯 곁에 있던 일꾼들 모두가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 올렸다.

그러는 그들을 둘러보시며 잠시 말씀이 없으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장수산에는 건물을 짓지 말아야 하겠다고 나직하나 힘있는 어조로 말씀하시었다.

장수산을 다 돌아보고 돌아올 때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장수산을 돌아보신 인상에 대하여 이야기하시며 일꾼들이 경치 좋은 장수산에 집터를 잡지 못해 아수해 하는 것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도 인민들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인민들이 조국의 아름다움을 심장으로 느끼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는 과정이 곧 수령님의 은덕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조국의 부강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칠 참다운 애국심을 키우는 과정으로 되게 되는 것입니다.』

장군님의 말씀은 마디마디가 심장을 두드렸다.

애국심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조국의 일목일초를 사랑하는 데로부터 자라나 그것이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한 목숨 서슴없이 바칠 각오와 신념으로 굳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 자기 수령, 자기 당이 마련해주고 가꾸어준 내 나라, 내 조국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참다운 애국관으로 공고화되고 종당에는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는 투사로 자라나는 것이다.

진정 조국산천에 대한 사랑과 자기 조국, 자기 인민에 대한 헌신적 복무정신을 하나로 결합시킨 뜻이 깊은 말씀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라를 찾아주시고 세상에 으뜸가는 사회주의제도를 세워주셨기에 장수산도 나라의 자랑으로, 인민의 기쁨으로 되고 있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었다.

『인민군대는 인민의 기쁨과 행복이 더욱 활짝 꽃펴 나도록 하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인민의 참된 복무자가 되어야 하며 인민들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인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그 어떤 사소한 일도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일꾼들은 장수산에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신 그분의 숭고한 뜻을 잘 알게 되었다.

장수산을 돌아보시면서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되새긴 책임일꾼은 금강산에 올라 다시금 일깨워주시는 그 말씀의 심오한 뜻을 뜨겁게 간직하며 모든 장병들을 열렬한 조국애로 튼튼히 무장시킬 결의를 다졌다.

그후 인민군대에서는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장병들을 무장시키기 위한 여러가지 사업을 짜고 들어 진행하여 모두가 인민의 이익과 행복, 조국의 부강번영을 지켜가는 참다운 인민의 군대가 되게 하였다.

인민의 기쁨과 행복이 커가고 조국이 부강번영하는 여기에 인민군장병들의 보람과 행복도 있었다.

    



1970년대 하반기에 이르러 온 나라는 사회주의대건설로 들끓었다. 새로운 대중운동인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의 불길이 세차게 타올랐다. 기본건설, 공업, 농업, 수송, 수산 등 5대 전선에서 속도전의 불바람이 일었다.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의 봉화, 속도전의 불바람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몸소 지피시고 활활 타오르게 하시어 우리 식 사회주의조국을 융성번영에로 이끌어 나가기 위한 혁명투쟁이고 건설투쟁이었다. 거기에 인민의 행복이 약속되어 있고 인민군대의 기쁨과 염원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다가오는 공화국창건 30돌을 계기로 한결같이 떨쳐 나  위훈의 탑을 쌓고 있었다.

이때 인민군군인들은 평양-원산사이 새 도로를 공화국창건 30돌 전으로 완공하기 위한 대건설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평양-원산사이 새 도로건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버이수령님의 뜻을 받드시어 도로혁명의 새로운 장을 펼치신 거창한 건설작전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평양-원산사이 새 도로건설을 비롯하여 나라의 도로건설의 중요성과 의의에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심려의 말씀을 무겁게 받아 안으시고 인민군대를 믿고 이 문제를 푸실 결심을 품으시었다.

어느 해 가을 밤 장군님께서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책임일꾼을 비롯한 여러 명의 일꾼들에게 오늘 우리 함께 강원도를 거쳐 뜻이 있는 먼길을 다녀오자고 하시었다.

다음날이 일요일이라 일꾼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짧은 생각이었다.

그들을 둘러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이번 길은 휴식이 아니라 강행군길이라고, 오늘 밤중에 평양에서 강원도의 분계선까지 갔다가 내일 밤 다시 서해지구의 어느 한 곳까지 강행군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23시를 출발시간으로 찍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영문을 몰라하는 일꾼들에게 동서사이의 도로가 제한되어 있고 수송이 긴장되어 있는데 이것을 풀자면 도로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그래서 동서사이의 도로상태를 알아보려고 한다고 하시었다.

사실 그때까지 동서사이에는 평양-성천-양덕-원산사이의 도로밖에 없었다. 그것마저도 험준한 아호비령과 마식령, 단풍령과 상마너머령, 하마너머령이 가로질러있고 회골을 비롯하여 깊은 골짜기와 층암절벽이 많이 있어 경사가 급한데다가 길이 좁고 길바닥도 좋지 못하였다.

그래서 총정치국의 책임일꾼이 차로 밤중에 달리는 것은 위험하기에 날이 밝은 다음에 떠나는 것이 어떤가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그럴 시간이 없다고, 수령님께서 심려하시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어떻게 편히 발편잠을 자면서 일하겠는가고 하시며 몸소 행군제대를 편성해주시고 선두차에 오르시었다.

밤 11시, 우리 나라의 서쪽에서 동쪽으로의 역사적인 강행군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승용차강행군대렬은 어둠을 헤가르며 달리고 달렸다.

장군님께서는 오를수록 더 험준해지고 끝이 있을 상 싶지 않는  령길에서  눈길을  떼지  않으신  채  아호비령도  넘고  마식령도  넘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차창으로 안겨오는 우중충한 산발을 보시며 경제건설을 잘 하여 우리 인민들에게 보다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는 결정적으로 도로를 현대적으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도로혁명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과제이라고 간곡히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아호비령과 마식령을 넘는 데만도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리므로 가장 짧은 구간으로 연결하여 도로를 내면 시간을 절반은 단축할 수 있음을 헤아리시었다. 그리고 통행의 편리와 안전성을 최대로 담보하면서도 자연경치에 어울리게 특색있는 우리 식 도로를 건설할 구상도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일행과 함께 아침 7시에 목적지에 도착하시었다. 그러니 8시간을 줄곧  달려오신  것이었다.  그  날  밤  다시  귀로에  오르신 장군님께서 서해지구의 목적지에 들어서시었을 때는 새날이 잡힌 새벽 3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일행을 둘러보시며 우리는 역사적인 강행군을 하였다고, 이렇게 강행군을 하여 보니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도로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로 나서고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얼마 전에도 나라의 도로망상태를 요해 하시면서 동부와 서부사이의 도로문제를 몹시 심려하시었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심려를 덜어드리기 위해 이 밤을 지새며 행군을 하였는데 조금도 피곤한 줄을 모르겠습니다.

정말 위대한 수령님의 심려를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크나큰 노고와 심혈을 바치시며 2천리 밤길을 달리시어 무르익히신 도로건설구상은 바로 위대한 수령님의 심려를 덜어드리고 수령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한 가장 뜨거운 충성심의 무게가 실린 것이었다.

역사적인 강행군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오신 장군님께서는 함께 동행하였던 총정치국의 책임일꾼을 전화로 찾으시었다.

그분께서는 앞으로 평양-원산사이 도로를 새로 건설하자면 어느 방향으로 도로를 뽑겠는가 하는 것을 연구해보라고 과업을 주시면서 우리가 이번에 갔다 온 양덕방향보다도 상원쪽으로 수안, 곡산을 거쳐 도로를 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자신의 생각을 말씀하시었다.

일꾼은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양덕방향의 도로를 그대로 쓰면서 또 하나의 동서횡단도로를 내는 것, 이것은 참으로 나라의 도로망을 여러 갈래로 펼쳐가실 원대한 구상이었다.

그 일꾼은 흥분된 마음을 안고 실무일꾼들에게 과업을 주겠다고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결심이 선 이상 인차 동서횡단 새 도로를 건설하자고 하시며 『도로혁명을 합시다.』라고 힘 주어 말씀하시었다.

그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영예로운 과업을 인민군대에 맡겨주시었다.

평양-원산사이 새 도로건설은 그 규모와 공사조건, 자연환경에 있어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간고하고 방대한 대공사였다.

연 길이 500여리, 뚫어야 할 굴만 해도 수십여개, 날려보낼 산들과 깎아 없애야 할 천연바위, 처리해야 할 토량은 실로 헤아릴 수없이 많았다.

공사량이 방대하고 어려운데다가 이처럼 규모가 큰 도로를 건설한 경험도 없는 인민군군인들이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의 충성심을 믿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이 시간을 앞당기고 세월을 주름 잡으며 훌륭한 도로를 완성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었다.

인민군군부대들에서는 끌끌한 장병들로 건설역량을 편성하여 공사현장에 파견하였다. 그런데 막상 공사에 달라붙고 보니 무엇부터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바로 이런 때인 주체62(1973)년 11월 장군님께서는 공사를 책임진 군부대지휘성원들을 부르시었다.

장군님께서는 평양-원산사이 도로건설에서 기본은 굴을 파고 암벽을 따는 공사와 다리기둥을 세우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때문에 이 작업에 힘을 넣어야 하며 이 작업부터 먼저 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었다. 이것은 작업의 주타격방향의 제시였다.

굴길, 다리기둥공사와 암벽따기작업을 먼저 할 데 대한 주타격방향이 제시됨으로써 공사를 계획적으로 내밀 수 있는 길이 열려졌다.

지휘성원들은 금시 눈앞이 확 트이고 신심이 생겼다. 그들은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통이 큰 작전을 폈다. 큰 산은 허리를 끊어 길을 내고 험한 절벽에는 굴을 뚫고 외나무다리가 있던 곳에는 억년 드놀지 않을 다리를 놓았다.

어느 군부대 공사장이나 불도가니마냥 부글부글 들끓었다. 공사지휘관인 항일혁명투사 장령도 병사들과 함께 질통을 메고 함마를 잡았다. 한 사관은 제대명령을 세 번이나 받고도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제대되지 않겠다고 하며 연장거리가 10리가 넘는 발파구멍을 뚫었고 불치의 병으로 입원해있던 한 지휘관은 마지막발파를 하여 굴관통의 보고를 경애하는 장군님께 올리겠다고 막장에 달려나와 착암기를 잡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들의 위훈자료를 보고 받으시고는 『참으로 훌륭한 전사입니다.』, 『군인건설자들은 우리 당의 보배들입니다.』라고 고무와 믿음을 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건설기간 수십차례의 지도를 주시어 새 도로가 훌륭히 완공되도록 이끌어주시었다.

어느 한 군부대 굴뚫기공사장에서 2만㎥나 되는 돌과 흙이 내려앉는 큰 붕락이 있었다.

굴길을 살려 공사를 계속하자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붕락구간을 돌파해야 하였고 안전하게 일하자면 1년의 시간을 바쳐 새로 산기슭을 따라 우회로를 내야 하였다.

군부대 공사지휘관인 항일혁명투사 장령은 돌파의 길을 서슴없이 택하고 이 결심을 상부에 보고 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보고 된 이 자료를 요해하시고 이런 결심은 노투사들 만이 할 수 있다고, 이것은 당의 부름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뚫고 나가는 백절불굴의 혁명정신, 당과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의 발현이라고 하시면서 붕락을 돌파하는데서 나서는 일련의 원칙적문제들과 수행방도를 명철하게 가르쳐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군군인들은 모두가 다 당의 보배들이다, 아무리 공사가 중요하다고 해도 그들과는 바꿀 수 없다고 하시며 군인들의 생명을 철저히 담보하는 조건에서만 공사를 할 수 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힘을 주고 믿음과 사랑을 안겨주는 가슴 뜨거운 말씀이었다.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 안은 건설장에서는 당원돌격조가 무어지고 돌파작업이 즉시에 벌어졌다. 항일혁명투사 장령은 작업현장을 뜨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기를 그 몇 번인지 모른다. 돌격조 지휘관과 대원들 서로서로가 아끼고 위급한 순간순간을 어깨성을 쌓으며 막아 나섰다. 그야말로 돌격로를 여는 결사적인 싸움이었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오로지 시간을 앞당겨 붕락구간을 돌파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 승리의 보고를 드리겠다는 일념만이 차 넘쳤다.

그들은 기어이 해내고야 말았다. 그들의 투쟁자료가 종합보고되었다. 거기에는 한명의 인명피해도 없다는 것이 첨부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사실을 보고 받으시고 이 군부대군인들이 일을 제낀다는 치하의 말씀을 주시고 은정 어린 사랑과 배려를 베푸시었다.

이런 속에서 공화국창건 30돌 기념일이 다가왔다.

평양-원산사이 새 도로공사도 마감단계에 들어섰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바쁘신 속에서도 공사현장에 나오시어 새 도로가 하나의 손색도 없이 훌륭하게 완공되도록 이끄시었다.

주체67(1978)년 7월, 8월에도 두 차례나 공사장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도로입구에 잘 건설된 네갈림다리를 보시고는 멋쟁이라고 높이 평가해 주시고 새 도로의 포장도 잘 되었다고 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도로굴길의 조명문제에 대해서는 형광등과 백열등을 엇바꾸어 달아야 한다고 하시고 연장길이가 제일 긴 무지개동굴을 돌아보시고는 통풍설비와 조명기재를 빨리 준비하며 굴길을 멋있게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평양-원산사이 새 도로는 창조와 건설의 영재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정력적인 현명한 영도밑에 공화국창건 30돌을 맞으며 훌륭히 완공되었다.

착공의 첫 발파가 울린 때로부터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인민군군인들은 도로를 훌륭히 완공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 충성의 보고를 올리었다.

주체67(1978)년 9월 2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준공식장에 나오시어 붉은 천을 끊으시었다. 그러시고는 새 도로를 돌아보시면서 거듭 만족을 표시하시었다.

평양-원산사이 새 도로는 이렇듯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나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밑에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인 인민군대의 군인들이 충성심을 바쳐 건설한 불멸의 창조물이었다.

나라의 험준한 산발들을 누비며 동서로 연연히 뻗어간 평양-원산사이 새 도로!…

역사와 더불어 빛날 이 도로는 인민을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뜨거운 심장을 바친 우리 인민군장병들의 위훈을 대를 이어 길이 전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