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이 땅에 세세연년 수없이 오고 갔다. 그러나 그 2월들은 세월 따라 범상하게 만 흘러오고 흘러간 자연의 한 달일 뿐이었다.

이러하던 2월이 지나간 민족사의 그 어느 시대에도 있어보지 못한 역사의 2월로 된 것은 주체31(1942)년부터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서 탄생하신 2월 16일, 이 날은 조선의 2월을 가장 역사적인 영광의 달, 민족최대의 경사의 달로 떠올린 뜻깊은 날이었다.

그 역사의 날로부터 서른두번째의 연륜이 새겨지던 주체63(1974)년 2월, 이 달에 우리 인민은 또 한 차례의 뜻깊은 경사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2월 13일이었다.

이 날 역사적인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는 전당, 전군, 전민의 한결같은 염원과 의사에 따라 경애하는 장군님을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높이 추대하였다.

이것은 유구한 우리 민족사에서 경애하는 수령님과 함께 또 한 분의 위대한 영도자를 받들어 올린 특대사변이었다.

이 사변이 있음으로 하여 2월은 더더욱 빛나는 역사의 2월, 장군님의 2월로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 땅에 후계자추대 열풍이 얼마나 뜨겁게 끓어 번졌던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나라에서는 수령의 위업계승문제가 중대한 정치적 문제로 제기되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시고 승리에로 이끌어오신 주체혁명위업은 새로운 높은 단계에 올라섰다.

우리 당과 인민앞에는 주체사상의 혁명적 기치를 높이 들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더욱 힘있게 추진시키고 조국통일위업을 다그치며 인류의 자주위업을 적극 밀고 나가야 할 과업이 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어렵고도 방대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투쟁을   진두에서  영도하시면서  불면불휴의  노고를  다  바치고  계시었다. 수령님께서는 탄생 60돌을 맞으시는 주체61(1972)년 한해에만도 120여일간이나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었다. 그리고 북남고위급정치회담을 마련하여 조국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놓으시는 한편 세계 50여개 나라와 국제기구들에서 온 100여개의 대표단을 만나시어 정력적인 대외활동을 벌이시었다.

우리 당과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의 이러한 노고와 과중한 사업부담을 덜어드리고 그분의 안녕과 건강을 보장해드리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돌리지 않을수 없었다.

한편 이 시기 우리 당과 혁명대오안에서는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었다. 수령님을 모시고 주체혁명위업을 개척한 혁명의 1세대들과 해방 후 새 조국건설과 조국해방전쟁, 전후복구건설에서 영웅적 위훈을 세운 혁명의 2세대들에 이어 새 세대들이 혁명과 건설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계승완성하여야 할 영예롭고도 책임적인 임무가 새 세대들에게 지워지게 되었다.

수령의 위업계승문제를 올바로 해결하는 것은 혁명의 운명과 관련되는 근본문제였다. 수령이 개척한 혁명위업은 여러 세대를 거쳐 대를 이어 수행되므로 후계자문제해결이 혁명의 명맥을 잇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었다.

국제혁명운동의 역사적 경험과 교훈은 이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지 못하면 혁명위업이 중도반단되며 그 명맥이 끊어지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수령의 사상과 영도에 끝없이 충실하고 온 사회에 대한 정치적 영도를 실현할 수 있는 품격과 자질을 갖춘 걸출한 지도자를 후계자로 내세우면 혁명위업은 고수되고 계승완성되는 것이다.

40여년의 연륜을 새겨온 우리 혁명은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혁명위업의 계승자문제를 당면한 중대사로 상정시켰다.

전당, 전군,  전민은  새  세대  영도자로서의   뛰어난   자질과   풍모를   지니시고  당과   혁명앞에   특출한   업적을  쌓아   올리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수령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모실 것을 한결같이 열망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은 당년 30대  초의 젊으신 정치가, 비범하신 영장이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적극 보좌하여 오신 학창의 나날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10년간 지도원으로부터 과장, 부부장, 부장, 비서의 중책을 지니고 혁명활동을 벌이시는 과정에 뛰어난 품격과 자질로 당과 혁명발전에 불멸의 혁명업적을 쌓아올리시어 전당과 전군, 전체 인민의 다함 없는 존경과 흠모를 받고 계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은 수령과 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과 숭고한 도덕의리를 지니신 위대한 혁명가의 귀감이시며 사상이론가로서의 예지와 정치가로서의 특출한 영도력, 군사전략가로서의 비범한 지략을 겸비하고 숭고한 인덕을 체현하신 혁명의 세련된 지도자이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완벽하게 체득하시고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사상이론활동으로 그것을 견결히 옹호하고 심화발전시킨 수많은 독창적인 사상이론들을 내놓으시었다. 그리고 수령님의 영도를 보좌하는 정력적인 실천활동을 통하여 수령님의 노숙하고 세련된 영도예술을 숭고한 높이에서 체득하시고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사업방법과 작풍을 구현하는데서 빛나는 모범을 창조하시었으며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지니시고 한평생을   오로지  인민을 위하여  바쳐가시는   어버이수령님의  한없이   고매한     덕성을   그대로   체현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지니신 비범한 사상이론적 예지, 탁월하고 세련된 영도예술, 숭고한 덕성은 군대와 인민들 속에서 인민의 영도자가 지녀야 할 가장 훌륭한 품격과 자질의 전형으로 높이 칭송되고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하는 것을 필생의 사명으로 삼으시고 주체혁명을 줄기차게 전진시키기 위한 정력적인 투쟁을 벌이시어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신 것으로 하여 인민들 속에서 절대적인 권위와 위신을 지니고 계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수령의 사상과 영도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무기로서의 당의 본질을 새롭게 밝히시고 조선노동당이 자기의 사명에 맞게 당건설과 당활동을 전개해 나가도록 이끄시었으며 정력적인 사상이론활동으로 수령님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을 우리 당의 지도사상으로 빛내이시었다.

그리고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기 위한 투쟁을 강력히 벌이시어 전당에 수령님의 사상과 영도의 유일성을 보장하는데서 결정적 전환을 이룩하시었다. 특히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와 그후에 진행된 인민군당위원회 제4기 제4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계기로 당과 군대안에 기어들었던 반당수정주의자들, 군벌관료주의자들의 정체를 밝혀내고 그자들이 뿌려놓은 해독적  훗과를  청산하기  위한  투쟁을  통하여 수령을 중심으로 하는 당의 통일단결을 강화하는데 불멸의 공헌을 하시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무력건설과 경제건설에 대한 당적 지도를 개선강화하여 나라의 군사경제적 위력을 백방으로 다지시었으며 문학예술혁명을 조직지도하시어 주체예술의 대전성기를 열어 놓으시었다.

또한 위대한 주체사상의 기치밑에 조국통일을 앞당기고 우리 혁명의 국제적 연대성을 강화하는데 커다란 공적을 이룩하시었다.

이러한 업적들은 장군님의 특출한 정치실력, 영군실력의 고귀한 산물이었다. 장군님께서는 비범한 위인적 풍모, 불멸의 혁명업적으로 하여 당과 군대, 인민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으시었다.

그리하여 인민들과 인민군대는 그분을 오래 전부터  『경모하는 지도자』, 『영명한 지도자』, 『친애하는 지도자』로 경칭하며 따랐다. 한없이 겸허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신에 대한 존칭수식사를 쓰는 것을 엄격히 만류하시고 불허하시었으나 심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군민의 뜨거운 흠모심은 막을 수 없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들은 모임을 가지고 시대와 역사의 요구, 우리 인민들과 군대의 한결같은 의사에 따라 장군님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로 경칭할 데 대해 합의하였다. 이것은 장군님의 위대성에 대한 매혹과 주체혁명위업계승에 대한 투철한 신념과 의지의 표시었다.

군대와 인민이 경애하는 장군님을 얼마나 열렬히 우러러 모시고 따랐는가 하는 것은 그분의 혁명활동을 수록한 기록영화가 나오게 된 과정을 놓고 보아도 알 수 있다.

1970년대초의 어느 날 내각 제1부수상으로 사업하고 있던 김일동지와 민족보위상 최현동지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더 잘 모실 데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각사무국 영화부장을 급히 불렀다.

영화부장이 들어서자 김일동지는 그에게 이제부터 장군님의 혁명활동을 기록영화로 수록하여 인민들에게도 알리고 영구보관하여 후세에 길이 전하도록 할 데 대한 과업을 주었다.

그러자 영화부장은 자기들도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지도과정을 찍으려고 여러 번 시도해 보았으나 그분께서 아예 촬영기를 들이대지도 못하게 하시는 바람에 매번 쫓겨나군 했다며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순간 최현동지가 책상을 치며 크게 추궁하였다.

『그러신다고 못 찍을게 있는가. 찍으란 말이요. 설마 촬영기를 빼앗기야 하시겠는가. 왜 그 멀리서 찍는 기계가 있지 않는가. 그걸 가지고 멀리서 찍으란 말이요!』

무섭기로 소문 난 최현동지가 호통치는 바람에 영화부장은 더는 입을 열지 못하였다.

옆에서 김일동지가 먼저 사진촬영부터 잘 해보자고 방도를 내놓고는 그러자면 무엇이 필요되는가고 물었다.

영화부장은 장군님의 영상을 밝고 정중하게 모실 수 있는 훌륭한 사진제작설비를 미처 갖추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것이 최현동지의 노여움을 또다시 폭발시켰다.

『동무, 무슨 소릴 하오. 여보, 김일동무, 이 동무 영화부장 자격이 없소.』

두 눈을 지릅뜬 채 쏘아보는 최현동지의 범의 나룻같은 눈섭이 꿈틀거렸다.

앞에 서있는 사람이 만약 군인이라면 그 자리에서 별을 잡아떼고도 남을 기상이었다.

김일동지가 대신 나서서 자기가 미처 관심을 돌리지 못하였다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반성하여 나섰다.

최현동지의 노여움은 김일동지가 직접 사진설비들을 구해준다는 약속으로 풀리게 되었다.

며칠 후 김일동지는 훌륭한 사진설비를 일식으로 넘겨주었다. 그 날 김일동지는 다음과 같은 참으로 뜨거운 심중의 호소를 터쳐 놓았다.

…우리 항일빨치산들은 40여년 전에 수령님을 따라 혁명을 시작했지만 아직 그것을 완수하지 못하였다. 무엇 때문인가.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기본은 우리가 수령님을 잘 받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나이 60이 넘은 지금에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당사업을 지도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래 전에 그분과 같은 분이 우리 혁명의 수뇌부에 계시면서 수령님을 보좌해 드렸다면 만사가 다 풀렸으리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오르군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친애하는 김정일동지를 위대한 수령님의 후계자로 모시자고 여러모로 애쓰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우리의 이 심정을 동무는 알아야 한다.…

항일투사들과 군대와 인민의 지향과 요구를 대변하여 하는 노투사의 간곡한 당부를 들으며 영화부장은 뜨거운 것을 삼켰다.

위대한 장군님을 후계자로 모시고저 하는 항일의 노투사들과 전당, 전군, 전민의 절절한 마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을 우리 당 수뇌부에 높이 추대하는 간곡한 염원과 드팀 없는 의사를 담은 청원서와 편지들이 당중앙위원회에 매일과 같이 올라왔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을 위대한 수령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추대하는데서 선구자의 역할을 한 것은 역시 항일혁명투사들이었다.

김일동지는 주체62(1973)년 9월 어느 날 수령님을 찾아 뵈웠다.

행정경제사업에서 제기되는 문제와는 달리 조선혁명의 전도와  운명과   관련되는  문제  때문에  찾아왔다는  김일동지의  이야기를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기쁜 일중의 기쁜 일이라고 하시면서 그럼 그 내용을 들어보자고 하시었다. 김일동지는 조선혁명을 영도할 후계자문제를 빨리 낙착 지었으면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의 심중을 헤아리신 수령님께서는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혁명을 영도할 후계자문제를 옳게 해결하는 것은 혁명의 전도와 나라와 민족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대하고 절박한 문제라고, 국제공산주의운동의 교훈과 현 실태를 보아도 더는 미룰 수 없는 요구이라고 하시었다.

김일동지는 장군님을 조선혁명을 영도할 수령의 후계자로 내세울 수 있다고 하면서 그분을 추대하는 사업을 이번에 열리게 되는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7차 전원회의에서 낙착지을 것을 수령님께 정중히 제의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제기가 옳다고 보며 그에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지금 조선혁명의 1세대들이 전당, 전체 인민의 한결같은 의사라고 하면서 김정일동지를 조선혁명을 영도할 후계자로 추대할 것을 제기하고 있는 것은  역사발전의  흐름으로  되고  있다고  하시었다.  수령님께서는 김정일동지는 문무를 겸비한 백두산의 아들이라고, 김정일동지는 젊지만 자기의 실력으로 높은 사업권위를 획득하였다고, 그의 사상이론적 예지와 통솔력에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그는 조직적 수완이 있고 전개력이 있으며 통솔력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인민들이 그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라고 부르며 더욱 따르고 존경한다고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일동지에게 하지만 혁명을 영도할 후계자추대문제는 심중한 문제이므로 좀 더 연구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고 인민의 염원은 역사의 필연이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수령님의 후계자로 모시려는 것은 비단 김일동지 혼자만의 심정이 아니었다. 일찍부터 장군님의 걸출한 위인상을 몸   가까이에서  깊이  체험하면서   그분께  매혹되어  온  항일혁명투사들은  한결같이  장군님을   끝없이   흠모하면서 그분을  존경하며  위대한 수령님의 후계자로 내세웠다. 항일혁명투사 임춘추동지는 장군님처럼 혁명선배들을 존대하고 혁명전통을 열렬히 옹호하는 사람은 없고 장군님과 같은 사상의 대가, 영도의 대가는  없다고  하였다.   오진우동지는   장군님처럼   무비의   담력과   뛰어난  지략을  소유한   영도자는  없다고,  자기는  장군님의 비범한 영도력, 천재적 예지, 인자하고 너그러우신  포옹력에  깊이  매혹되었다고  하면서  그래서  자기는 장군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일의  백전노장  최현동지는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완성해야  할  장군님께서 건강을 돌보지 않으시는데 대하여 몹시 걱정하면서 우리는 장군님께 조국과 민족의 운명도 미래도 다 맡긴다고 절절히 말하군 하였다. 항일혁명투사들은 다 이렇게 말하였다.

항일혁명투사들이 경애하는 장군님을 수령님의 후계자로 열렬히 추대한 것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일을 자신의 회고록에서 감회깊이 회고하시었다.

『항일혁명투사들이 김정일동무를 수령의 유일한 후계자로 내세운 것은 그가 당과 국가, 군대를 영도해야 민족의 장래가 담보되고 백두산에서 개척한 주체의 혁명위업이 한 치의 편차도 없이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발전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항일혁명투사들이 그를 수령의 후계자로 추대했다는 것은 곧 군대가 그를 민족의 영수로 내세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뜻이 깊은 말씀이었다. 사실 항일혁명투사들은 군복을 입었건 입지 않았건 영원한 혁명군인들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수령님의 후계자로 모시려는 항일혁명투사들의 자세는 날과 달이 흐를수록 더욱 투철하고 확고했다. 그러던 주체63(1974)년초 어느 날 김일동지는 수령님을 모신 자리에서 그분께 또다시 간절한 소망을 말씀드렸다. 그는 수령님의 뜻을 100% 체현하시고 영도자의 풍모를 완전히 갖추신 장군님을 우리 당의 수뇌에 높이 추대할 것을 제의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절절하게 말씀드렸다.

『수령님께서는 10대에 혁명의 길에 나서시었고 20대에 항일유격대를 창건하시었으며 30대에 조국을 해방하시고 우리 당과 인민을 현명하게 이끄시었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나이가 그때의 위대한 수령님과 같이 30대입니다. 제기는 김일이 하지만 우리 항일혁명투사들과 인민들의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한편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들과 비서들은 그들대로 오래 전부터 수령님께 자기들이 총비서동지를 받들고 일을 잘 해 나가겠는데 그래도 비서들끼리 사업을 협의하는데 중심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면서 장군님께서 당사업전반을 책임지도록 하고 그분을 중심으로 하여 사업을 협의하도록 하여 달라는 의견을 말씀드렸다.

이렇듯 장군님을 후계자로 추대하는 것은 전당, 전군, 전민의 한결같은 의사이고 더는 미룰 수 없는 절박한 요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누구보다 이것을 잘 알고 계시었다.

장군님을 혁명의 후계자로 높이 모시려는 항일혁명투사들과 군인들, 전체 인민들의 한결같은 심정을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문제를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 상정시켜 전당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기로 하시었다.

그리하여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 전원회의가 열리었다.

전원회의에서는 사회주의경제건설의 10대전망목표를 점령하기 위한 문제를 토의결정한데 이어 2월 13일 조선노동당의 수뇌부를 강화할 데 대한 의안이 상정되었다. 전례없이 심중한 의제였던 것만큼 토의에 앞서 수령님께서 중대교시를 하시었다. 수령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맞다 든 적이 결코 만만치 않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간악한 원수들과 싸워 승리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것은 우리 당중앙위원회가 튼튼히 꾸려지고 잘 단결되어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데 많이 달려있다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우리는 당중앙위원회를 우리와 한마음한뜻을 가지고 같은 숨을 쉬며 죽어도 같이 죽고 싸워도 같이 싸워 승리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가진 사람들로 꾸려야 한다고 강조하시었다.

수령님께서 말씀하신 후 오진우동지를 비롯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들과 비서들이 우리 당의 위업을 계승완성하기 위하여 당의 수뇌부에 김정일동지를 높이 추대할 것을 정중히 제의하였다. 그들은 우리 당앞에 나선 방대한 과업은 혁명과 건설에 대한 당의 영도를 더욱 강화할 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하면서 김정일동지를 당의 수뇌부에 높이 모셔야 이 문제들이 빛나게 해결될 수 있다고 일치하게 강조하였다.

전원회의는 전당과 전체 인민의 한결같은 의사와 염원을 반영하여 경애하는 장군님을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우리 당 수뇌부에 모시고 그분의 영도밑에 모든 당사업과 당활동을 전개해 나가는 사업체계와 질서를 세울 것을 결정하였다. 순간 회의장에서는 감격의 환호와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올랐다. 지심을 뒤흔드는 듯 한 환호성과 박수갈채는 오래도록 멈출 줄 몰랐다.

이렇게 되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전원회의를 계기로  명실공히 조선노동당의 영도자, 대표자로서, 수령님의 후계자로서 당과 혁명을 영도하시게 되었다.

참으로 우리 조국과 민족의 앞길에 수령복을 대를 이어 누려갈 영원무궁한 영광과 행운이 기약되는 가장 숭엄한 시각이었다.

위대한 장군님을 수령님의 후계자로 높이 추대함으로써 우리 나라에서는 혁명위업계승문제가 훌륭히 해결되었으며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할 수 있는 확고한 담보가 마련되었다. 이것은 수령의 후계자문제해결의 가장 빛나는 모범으로, 자주성을 위하여 투쟁하는 세계혁명적 당들과 인민들에게 커다란 고무로 되었다.

온 조국땅은 격정과 환희의 파도속에 휩싸였다. 수령님을 개선광장에 모시던 해방년의 그 나날이 이 땅에 그대로 재현되는 듯 했다.

정녕 2월의 그 날은 주체혁명위업계승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새긴 가장 뜻깊은 역사의 날이었다.

    




온 나라에 감격의 파도가 일렁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수령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추대하였다는 소식이 일으킨 격랑이었다.

전국각지 당 및 근로단체조직들과 인민군부대들에서 경축모임들이  열렸다.   모임들에서는  오직  한마음   경애하는  장군님께  충성 다하며 장군님의 영도를 받들어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계승완성해 나갈 결의를 담은 맹세문들을 채택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대와 인민들의 충정에 큰 충동을 받으시었다. 충동이 클수록 그분께서는 어깨가 무거우시었다. 자신을 수령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주체위업의 계승자로 내세우는 것만큼 그 기대에 보답하여 더 많은 일을 하실 것을 마음 다지시었다.

후계자로 추대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끝나자 조용히 집무실로 돌아오시어 여느 때와 같이 사업에 몸을 잠그시었다.

어느덧 밤이 깊어 일꾼들이 장군님께 축하의 인사를 드리려고 찾아왔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을 따뜻히 맞아주시었다. 그들은 장군님을 당의 수뇌부에 모신 오늘의 영광이 있어 우리 혁명과 조국의 미래가 찬란하다고 하면서 장군님의 영도따라 주체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몸 바쳐 투쟁할 충성의 결의들을 다지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의 열렬한 축원과 기대에 사의를 표하시고 나서 동무들이 방금 오늘의 영광이 있어 우리의 미래가 찬란하다고 하였는데 수령님을 떠나서 어떻게 오늘의 행복과 찬란한 내일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 누구도 수령님께서 우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쌓아올리신 그 업적을 대신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받들어 나가는 전사의 한 사람입니다.

우리모두 수령님을 충성으로 받들어 모시고 더 많은 일을 합시다. 수령님을 받들어 모시는 데서는 영원히 변심을 모르는 충성심을 간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수령님께서 계시어 우리 전사들의 영예와 보람이 있습니다. 우리모두 어떤 역경속에서도 변치 않는 충성심을 가지고 영원히 혁명의 한길을 갑시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동지가 없이는, 충실한 전우들이 없이는 그 어떤 지도자도 큰 위업을 이룩할 수 없다고, 나는 동무들이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수령님과 당을 받들어 영원히 충성다하리라고 믿는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었다.

당의 영도자로 추대되시고도 자신을 전사의 한 사람으로 낮추시는 한없는 겸허성,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혁명위업에 끝까지 충실하시려는 확고한 의지, 혁명동지들에 대한  크나큰 믿음과 사랑,  그 위인적 풍모에 일꾼들은 끝없이 탄복하였다. 일꾼들은 장군님을 받들어 혁명의 길에서 생사운명을 같이할 피끓는 맹세를 다지며 그분을 모시고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자신께서 지니신 사명감에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인민들은 나를 수령님의 유일한 후계자, 주체위업의 계승자라고 하고 있다, 그런 것만큼 내가 할 일이 많다, 내가 할 일 가운데서 중요한 것은 첫째로, 당의 기초를 튼튼히 쌓는 것이며 둘째로, 우리 당과 혁명의 뿌리인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계승발전시키는 것이며 셋째로, 주체사상의 세계사적 승리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밝히시었다.

진정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 앞에 다지는 엄숙한 맹세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주체혁명의 계승자로 높이 모신 영광과 긍지는 인민군군인들에게 있어서 남달리 컸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수령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추대한 소식에 접한 인민군군인들은 감격과 기쁨으로 들끓었다. 그들은 총을 굳게 틀어 잡고 경애하는 장군님을 충성으로 옹위할 결의를 다지고 또 다졌다.

그런 가운데 장군님의 탄생일인 2월 16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하여도 장군님께서 굳이 막으시어 2월 16일을 국가적 명절로 쇠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을 당의 영도자로, 주체위업의 계승자로 높이 모신 때에 와서까지 2월 16일을 그냥 스쳐 보낼 수 없었다.

인민군지휘성원들은 이 날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그분께 축하의   인사를  드리는  것이  전사의  도리라고  생각되어  자기들의  의향을 장군님께 건의하였다.

장군님께서는 하루일정이 긴장한데 참 딱하다고 하시며 선뜻 답변을 주지 못하시었다.

그러나 그들은 군대답게 일단 청을 드린 바에는 끝을 보아야 한다는 뱃심으로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거동에서 모든 것을 헤아려보신 장군님께서는 정 그렇다면 시간을 내보겠다고, 그런데 근기있게 기다릴 각오는 단단히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고는 동무들과 만날 시간이 밤이 되겠는지 새벽이 되겠는지는 이 자리에서 약속할 수 없으니 그리 알아 달라고, 그런 결심이 섰다면 자신께서는 다른 의견이 없다고 하시었다.

마침내 승낙을 받아낸 기쁨으로 희열에 넘쳐있는 인민군지휘성원들을 보시며 그분께서는 군복입은 사람들이 무엇을 제기할 때 거절해 본적이 없어 그런지 동무들의 청을 도무지 막아내기가 힘들다고 하시면서 그럼 저녁에 한자리에 앉아 이야기나 간단히 나누자고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새벽 3시가 지나서야 마침내 시간을 내어 그들과 자리를 같이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열렬한 축하와 축원의 인사를 올리며 충성을 맹세하는 항일의 노투사들과 군지휘관들을 향해 참으로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이 자리에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혈전만리를 헤쳐온 노투사들도 있고 새 세대 일꾼들도 있는데 항일혁명투사들이 만주광야와 백두밀림을 주름 잡으며 왜놈들에게 죽음의 불벼락을 안기던 그때의 그 기백, 그 열정으로 수령님을 옹위하여야 한다고, 그리하여 혁명의 붉은 기발을 영원히 휘날려가야 한다고, 나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백두산에서 높이 치켜든 붉은 기발을 영원히 지키기 위하여 밤과 낮이 따로 없이 더 정열적으로 일할 결심이라고, 우리의 붉은 기발은 온 세상에 붉은 빛발을 뿌리며 만민에게 혁명의 넋을 깊이 심어줄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고는 시간이 모자라 더 많은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시며 여기 모인 일꾼들이 일을 잘 하여 우리 인민군대를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키운다면 자신의 일감을 크게 덜어주는 것으로 된다고, 뭐니뭐니 해도 우리 인민군대가 강해야 다른 이여의 모든 일들이 제대로 풀려 나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그 말씀은 인민군대가 강해야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해 나가는 역사적 대업이 원만히 실현되어 나갈 수 있다는 것과 인민군대를 기둥으로 믿고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해 나가시겠다는 후계자의 위대한 선언이었다.

항일의 노투사들도 새 세대 젊은 지휘관들도 하늘과 같은 믿음을 받아 안는 심정으로 자기들의 결의들을 피력하였다.

『고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거듭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인민군대 지휘관들의 신심에 넘친 씩씩한 모습을 보니 힘이 난다고 못내 기뻐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인민군대를 주체혁명위업계승완성의 주력의 위치에 세워주시었다.

그분께서는 수령님을 받드는 전사의 자세로 인민군대사업을 지도해 나가시었다.

이때 인민군대에서는 장군님의 영도체계가 철저히 세워져 있었다. 군대 내 책임일꾼들은 장군님의 영도체계를 세우는 문제가 혁명무력건설의 운명과 관련되는 근본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장군님을 수령님과 꼭 같이 혁명무력의 위대한 영도자로 진심으로 높이 받들어 모시었던 것이다.

그러던 주체64(1975)년 10월 어느 날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새로 건설한 4.25문화회관(당시 2.8문화회관)에 수령님을 모시기 위한 행사준비상태를 알아보시려고 나가시었다. 장군님께서 승용차에서 내리시는 순간 『차렷!』 하는 구령소리가 울렸다. 최현 인민무력부장이 거수경례를 하고 장군님께로 정보로 걸어왔다.

장군님께서는 급히 그를 향해 마주 가시며 그만하라고 손을 내저으시었다. 하지만 고령의 백전노장은 백발이 성성한 귀밑머리에 손을 붙이고 장군님께 영접보고를 하였다. 그리고는 인민군군인들의 한결같은 심정을 담아 장군님께서는 우리 당과 혁명무력의 영명한 영도자이시기 때문에 영접보고를 받으셔야 한다고 말씀 드리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굳이 사양하시었다.

수령님만을 높이 받들어 모시도록 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겸허한 충신의 자세는 인민군대 책임일꾼들과 장병들을 당과 혁명에 끝없이 충직한 총대대오로 키우는데 불씨가 되고 원동력이 되었다.

4.25문화회관건설이 마감단계에서 진척되고 있을 때였다.

이때 인민군당위원회에서는 4.25문화회관의 중앙홀과 1,100석극장 홀에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을 함께 형상한 그림을 모시기로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아시게 된 장군님께서는 인민군 총정치국 책임일꾼에게 그림도안을 가지고 빨리 오라고 하시었다. 책임일꾼이 장군님께 급히 달려와서 그림도안을 펼쳐놓았다.

『누가 이렇게 하라고 했습니까?』

장군님께서는 그 일꾼이 대답할 사이도 없이 동무인가고 하시며 다그쳐 물으시었다.

『동무가 그랬으면 책벌을 받아야 하겠소!』

『…』

너무도 엄한 추궁에 일꾼은 한동안 대답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이것은 자기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전체 인민군군인들의 한결같은 심정이라고 말씀 올리려고 하였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형상한 부분을 삭제하라고 단호히 말씀하시었다.

일꾼은 장군님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몸둘바를 모르는 일꾼에게 빨리 돌아가서  그림도안을  고치라고  하시었다.  오직 한 분 수령님만 높이 모시려는 그 충성의 세계에 머리가 숙어졌다.

그림도안을 그대로 안고 돌아온 총정치국 책임일꾼은 창작가들에게 장군님의 말씀을 전달했다. 그러나 그것이 통할 리 없었다. 몇 번이고 반복하여 해설했으나 창작가들은 눈물을 흘리며 절대로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군대와 인민을 위한 길에 언제나 함께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함께 우러러 높이 모시는 것은 역사와 시대의 요구였고 전체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의 절절한 염원이었다.  그래서  4.25문화회관  중앙홀과  1,100석  극장  홀에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함께 모시기로 했던 것이다.

일꾼은 끝내 창작가들을 설복하지 못한 채 그 날 저녁 또다시 그림도안을 가지고 장군님을 찾아 뵈웠다. 사연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창작가동무들의 심정은 이해된다고 하시면서 그럴수록 그들을 잘 설복시켜야 한다고 타이르시었다. 장군님의 다정하신 타이름에 용기를 얻은 일꾼은 사실 이 문제는 창작가들만이 아니라 전체 군대와 인민의 소원이므로 중앙홀이나 1,100석 극장홀 중 어느 한 곳에라도 모시게 해 달라는 청을 드렸다.

그러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끝끝내 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동무는 나와 같이 한두 해만 일하지 않았는데 수령님만을 더 잘 모시려는 나의 심정을 그렇게도 모른단 말입니까.』

가슴을 절절히 울리는 말씀이었다. 추궁이라기보다 섭섭함이 어린 그분의 말씀에 그는 더는 청을 드릴 수가 없었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말없이 방안을 거니시던 장군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었다.

『동무들은 우리 당이 있어 영광찬 오늘이 있고 조국의 미래가 찬란하다고 하면서 나를 자꾸 내세우려고 하는데 수령님을 받드는 데서는 나도 전사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러시면서 수령님께 충성 다한 김정숙어머님에 대해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어머님은 늘 자신에게 수령님을 잘 받들어 모시고 충성 다해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시었다고, 자신께서는 어머님의 말씀을 조국과 인민이 자신에게 주는 조언으로, 필생의 좌우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시었다. 그러면서 오직 한 분 위대한 수령님만을 높이 모시고 따르며 수령님께 충성 다해야 한다고 하시었다.

그리하여 창작가들은 종시 그림을 고쳐 그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그림이 바로 수령님 한 분만을 형상한  조선화대화폭 「인민군군인들과 예술인들 속에 계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원수님」이다.

주체64(1975)년 10월초 어느 날, 준공을 앞둔 4.25문화회관을 돌아보시기 위해 현지에 나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드넓은 중앙홀의 조선화대화폭앞에서 오래도록 걸음을 멈추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림이 아주 잘 되었다고, 훌륭하다고 거듭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더없이 기뻐하시었다.

이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충성심을 보여주는 이야기들 가운데서 한 토막에 지나지 않는다.

장군님께서 지니신 충신의 세계는 그대로 인민군장병들의 심장에서 심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나날에 우리의 인민군대는 수령님을 더욱 높이 받들며 싸워 나가는 수령님의 군대로, 당의 군대로 튼튼히 준비되어 갔다.

    



 
역사적 사변을 안은 2월은 연일 충성의 열풍으로 뜨거웠다. 인민군대는 그 충성의 억센 강철기둥이 되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수령님의 주체위업, 선군혁명위업을 믿음직하게 떠받들고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후계자로 높이 추대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하셔야 할 일들이 참으로 많고 많으셨지만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과학적으로 정식화하고 그에 기초하여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강령을 선포하는 것을 가장 중대한 역사적 사명으로 삼으시고 실현하시었다.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계승완성해 나가자면 무엇보다도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과학적으로 정식화하는 사업부터 하여야 했다. 그래야 혁명의 대가 바뀌고 아무리 복잡한 정세가 조성되어도 혁명의 길을 처음으로 개척하신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발전하는 혁명실천의 요구에 맞게 끊임없이 심화발전시켜 나갈 수 있으며 그에 기초하여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순결하게 계승발전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령님의 혁명사상은 자주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새롭고 독창적인 사상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수령님의 혁명사상의 본질과 그 역사적 지위를 마르크스-레닌주의틀안에서 해석하면서 「우리 시대의 마르크스-레닌주의」라고 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가슴 아파하시며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수령님의 존함과 결부시켜 과학적으로 정식화하여 선포하는 것을 자신의 숭고한 사명으로 내세우시고 일찍부터 그 실현을 위한 사상이론활동을 정력적으로 벌여오시었다.

학창시절에 이미 수령님의 혁명사상에 완전히 정통하시고 그 위대성과 독창성에 대한 연구를 깊이하여 오신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초기에 수령님의 혁명사상의 본질적 특징과 세계사적 지위를 명백히 밝히고 그것을 우리 시대의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빛내이기 위하여 3년나마 품을 들여 선행한 노동자계급의 혁명사상을 전면적으로 다시 연구하고 분석총화하는 사업을 진행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이 과정에 수령님의 혁명사상의 독창성과 위대성, 인류사상사에서 차지하는 그 역사적 지위에 대하여 과학이론적으로 확증하신데 기초하여 1960년대말 1970년대 초부터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과학적으로 정식화하기 위한 사상이론활동을 정력적으로 벌여 나가시었다.

바로 1970년대에 이르러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사상이론적 준비를 완료하시었다.

주체63(1974)년 2월 19일이었다.

이 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국당선전일꾼강습회장에 나가시어 역사적인 연설을 하시었다.

세찬 격정에 휩싸인 장내를 굽어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에 대한 고전적인 정식화를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그분의 존함과 결부시켜 주체의 사상, 이론 및 방법의 체계이라고 정식화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다시말하여 주체사상과 그에 의하여 밝혀진 혁명과 건설에 관한 이론과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입니다.』라고 천명하시었다. 그리고 수령님의 혁명사상이야말로 『우리 시대, 주체시대의 혁명의 참다운 지도사상, 지도이론, 지도방법입니다.』라고 선언하시었다.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그분의 존함과 결부시켜 정식화하신것은 강습회참가자들속에 커다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는 새로운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여 전일적인 체계를 갖춘 우리 시대 지도사상으로서의 수령님의 혁명사상의 본질적 내용과 선행한 노동자계급의 혁명이론과 구별되는 특징이 심오히 밝혀져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고전적 정식화에 의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은 선행한 노동자계급의 혁명사상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철학사상인 주체사상을 진수로 하고 그에 기초하고 있는 독창적인 혁명사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다시말하여 철학, 정치경제학, 과학적 사회주의학설을 구성체계로 하고 있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달리 수령님의 혁명사상은 주체의 사상, 이론,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로 구성된 위대한 혁명학설이라는 것, 노동자계급의 혁명투쟁의 준비시기와 사회주의혁명시기의 혁명이론과 전략전술을 밝히는데 머물렀던 선행한 노동자계급의 혁명사상과는 달리 주체시대가 새롭게 제기하는 모든 문제들에 가장 과학적인 해답을 주는 혁명의 참다운 지도사상, 지도이론, 지도방법이라는 것이 명백히 해명되었던 것이다.

수령님의 혁명사상에 대한 정식화는 곧 자주시대를 대표하는 지도사상의 완벽한 해명, 정식화를 의미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역사적인 연설에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과학적으로 정식화하신데 기초하여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조선노동당의 최고강령으로 선포하시고 그 본질적 내용을 밝히시었다.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한다는 것은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하여 우리 혁명을 전진시키며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이 완전히 실현된 사회를 건설하고 완성해 나간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말하여 모든 사회성원들을 다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인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고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참다운 주체형의 혁명가로 만들며 경제와 문화 등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를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철저히 개조하여 인류이상사회건설의 사상적 요새와 물질적 요새를 점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군님께서는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가 우리 당의 최고강령으로 되는 것은 이 구호에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이 완전히 실현된 사회를 건설할 데 대한 우리 당의 최종목적과 그 실현을 위한 근본방도가 뚜렷이 밝혀져 있기 때문이라고 하시었다.

조선노동당의 최고강령인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 그것은 시대와 역사가 제기하는 이론실천적 문제에 대한 총적 해답이었다.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강령이 제시됨으로써 주체사상의 기치밑에 가장 뚜렷한 목표와 휘황한 설계도를 가지고 주체위업, 사회주의위업의 완성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여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발표하신 역사적인 결론 2월 19일 문헌은 일찍이 1930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노작『조선혁명의 진로』가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으로 우리 인민의 앞길을 밝게 비쳐준 횃불이었듯이 오늘 새로운 높은 단계에 오른 우리 혁명의 앞길을 밝혀준 찬란한 빛발이었고 투쟁과 승리의 기치였다.

장군님의 2월 19일 문헌은 말 그대로 위대한 수령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추대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총대로 개척되고 승이해 온 선군혁명위업을 빛나게 계승완성해 나가시려는 철의 의지를 천명하신 주체혁명위업계승의 역사적 선언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의 충성심을 굳게 믿으시고 투쟁과 승리의 기치인 위대한 2월 19일 문헌을 발표하시었다.

이 역사적인 문헌을 발표하기 전날인 2월 18일 저녁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날 인민군대의 몇몇 일꾼들을 부르시었다.

일꾼들이 도착하자 장군님께서는 좌석을 둘러보시며 어쩐지 오늘 밤은 무력으로 우리 당을 받들어가는 동무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 찾았다고 하시었다.

그러시고는 그 즈음 진행되고 있던 전국당선전일꾼강습회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이번 강습은 당선전일꾼들이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 문제에 대하여 명백한 이해를 가지고 그에 맞게 당사상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게 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조직한 것이라고 하시면서 강습회에서 제기된 자료를 종합해보면 우리가 이미 전부터  당안에서는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과 결부하여 부르고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기 위한 사업을 벌여왔으며 또 이번에는 전례없는 보름동안의 대강습을 주었는데도 아직 당선전일꾼들 자체부터 그 심원한 내용과 뜻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어 내일 강습에 나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수령님의 존함과 결부시켜 정식화하고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우리 당의 최고강령으로 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자고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었다.

장군님의 말씀은 일꾼들을 무한히 격동시켰다. 총정치국의 책임일꾼은 저도 모르게 아, 그 날이 왔구나 하고 속으로 외치며 북받치는 흥분을 금치 못하였다. 그에게는 지난해 12월 중순 어느 날의 일이 떠올랐다. 그 날 그는 장군님께 새해에 어떤 사업을 구상하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청을 드리었다.

장군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거니시다가 나는 새해에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우리 당의 최고강령으로 한다는 것을 정식으로 선포하자고 한다고 하시었다.

그분의 말씀을 받아 안는 순간 일꾼의 가슴속에서는 세찬 격랑이 일었다.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 우리 당의 최고강령의 제시는 두말할 것없이 우리 당건설에서 뿐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당건설역사에서 거대한 의의를 가지는 역사적 사변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 당의 최고강령이야말로 노동자계급의 당들이 일반적으로 규정해오는 공산주의건설이라는 최고강령과는 달리 자기의 명확한 지도사상과 뚜렷한 목표를 제시한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완성된 최고강령이기 때문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었다.

『수령님께서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의 기치를 높이 치켜드시고 수십 년동안 우리 혁명과 세계혁명을 승리적으로 이끌어 오셨는데 주체사상보다 더 위대한 지도사상이 이 세상 또 어디에 있습니까. 노동자계급의 혁명위업이 마르크스-레닌주의기치밑에 개척되고 전진해온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시기 노동자계급의 혁명위업은 사람위주의 철학사상인 주체사상에 의하여 지도되고 전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가 공인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우리 혁명이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의 기치밑에 전진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 기정사실인 것만큼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수령님의 존함과 결부시켜 정식화하고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우리 당의 최고강령으로 들고 나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말씀하시었다.

그 날의 장군님의 말씀이 생생히 떠올라 총정치국의 책임일꾼은 더욱 가슴이 벅차 올랐다. 그는 좌중의 심정을 담아 경애하는 장군님께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강령이 세상에 선포되면 내외에서 커다란 반향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드리었다.

하지만 인민군대의 책임일꾼들은 뜻깊은 시각을 앞두고 자기들을 부르신 장군님의 의도를 미처 다는 모르고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한 일꾼들에게 우리 당이 창건된지 수십년이 되는 오늘에야 비로소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구호를 드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라고 하시면서 시인 조기천에 대하여 회고하시었다.

조기천이로 말하면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한 투사도 아니었고 해방 후 수령님을 몸 가까이 모시고 사업하면서 성장한 일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항일의 전설적 영웅이신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여 마지 않았고 해방 직후 형형색색의 「공산주의자」들이 저마다 제노라고 머리를 쳐들 때에 장편서사시 「백두산」에서 수령님을 『백두산의 호랑이』로, 『나의 양심, 나의 의지, 나의 신념, 나의 희망 김대장』으로 높이 칭송한 열혈시인이었다. 자기 수령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긍지와 자부심, 자기 수령에 대한 열화같은 숭배의 마음이 없었다면 그가 결코 그러한 감정을 터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래서 자신께서는 그를 혁명시인으로 부르도록 하였다고 하시면서 수령님을 받들어 모시고 따르는 데서는 모든 일꾼들이 김책이 되고 조기천이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었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의 역사적인 위업을 세상에 선포하기 전에 왜 동무들을 불러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그것은 당이 아무리 새로운 노선을 내놓아도 무장대오가 당에 충실하지 못하면 그 어떤 성과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늘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당의 최고강령으로 선포하는 것은 온 사회를 하나의 사상으로 일색화할 수 있는 주객관적 조건과 요구가 다 성숙되었기 때문이며 더욱이는 당의 위업에 충실한 인민군대와 같은 혁명대오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열정에 넘쳐 나는 수령님께서 동지를 규합하고 무장대오를 결속하시는 것으로 혁명활동을 시작하신 것처럼 조국통일도,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위업도 인민군대를 믿고 하려고 한다고, 나는 당의 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지난날에 그러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수령님의 군대, 당의 군대인 인민군대가 앞장서리라고 믿는다고 말씀하시었다.

온 우주를 통채로 떠맡기는 듯 한 크나큰 믿음의 말씀이 일꾼들의 심장을 뜨겁게 파고들었다.

일꾼들은 어찌하여 장군님께서 뜻깊은 이 밤을 자기들과 함께 계시고 싶어 하시는지 그리고 인민군대에 대한 그분의 믿음과 기대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다시금 깊이 깨달았다.

모두가 조수처럼 밀려드는 격정과 흥분속에 몸둘바를 몰라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그들을 한없는 믿음과 정에 넘치신 눈길로 바라보시며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우리의 의도, 우리의 결심, 우리의 기치를 높이 치켜들고 새 세계를 향하여 힘찬 진군을 다그칠 때는 왔습니다.

동무들, 바야흐로 새로운 높은 단계의 장엄한 진군이 시작되는 역사의 이 밤을 잊지 맙시다.』

열정과 의지에 넘친 장군님의 호소는 인민군대 책임일꾼들의 심장속에 충성의 붉은 피를 끓게 하였다. 일꾼들은 장군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고 당의 성스러운 위업을 총대로 억세게 받들어갈 것을 굳게 맹세했다. 한사람한사람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높이 치켜들며 장군님께 불같은 충성의 맹세를 다지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일꾼들 모두를 한품에 안으시며 오늘의 맹세를 잊지 말고 우리 함께 당의 위업,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위업에 끝까지 충실하자고 절절히 말씀하시었다.

일꾼들은 어깨겯고 장군님을 옹위하는 친위대, 결사대가 될 결의를 다지고 충성의 노래도 목청껏 불렀다.

장군님과 전사들사이에 믿음과 충성의 마음이 뜨겁게 교차되는 잊을 수 없는 시각이었다.

그 시각을 영원히 기억하려는가 밤하늘의 뭇별들도 야광주를 뿌려놓은 듯 유난히 반짝이며 굽어보고 있었다.

뜻깊은 사연을 우주만리에 전하며 한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역사적인 2월 19일 문헌이 발표되기 전날 밤에 있었던 이 감동적인 사실, 그것은 우리 장군님과 총대전사들사이에서만 있을 수 있는 선군혁명역사의 빛나는 한 페이지였다.

    




주체63(1974)년의 하루하루는 격동속에 밝아오고 저물었다. 역사의 2월이 가고 3월에 이어 4월이 왔다.

온 나라가 혁명과 건설로 들끓고 선군열기로 벅찼다.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62돌이 되는 경사로운 날을 하루 앞둔 4월 14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중앙당 및 국가, 경제기관, 근로단체, 인민무력, 사회안전, 과학, 교육, 문화예술, 출판보도부문 일꾼들앞에서 『전당과 온 사회에 유일사상체계를 더욱 튼튼히 세우자』라는 역사적 연설을 하시었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끝없는 충실성의 빛나는 결정체, 충실성의 대 전서였다.

장군님께서는 연설에서 올해부터 해마다 수령님의 탄생일을 명실공히 가장 큰 민족적 명절로, 경사로 기념하는 것을 전통화할 데 대해 밝히시었다. 이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정령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일인 4월 15일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제정함에 대하여』가 공포되었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을 사회주의조선의 시조로 천세만세 높이 모시고 따르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사상정신생활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역사적 사변이었다.

뜻깊은 4월의 봄날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펼쳐놓으신 충성의 거세찬 대하속에서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은 그분을 주체위업의 위대한 계승자로 높이 모신 크나큰 영예와 감격에 휩싸였다.

특히 항일혁명투사들인 인민군대의 책임일꾼들은 장군님을 우러르며 항일의 여성영웅이신 김정숙여사를 못견디게 그리워하였다.

주체혁명위업계승의 시원을 열어놓고 그 이정표를 마련하는데서 가장 큰 공적을 세운 분은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이시었다.

돌이켜보면 여사께서는 백두의 정기를 안으시고 탄생하신 어리신 자제분을 「백두광명성」으로, 「대장 계승인」으로 추앙하며 주체혁명의 밝은 앞날을 기대하는 항일빨치산들의 숭고한 정신세계에 접하면서 꼭 자제분이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해 나가도록 훌륭히 키우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당과 군대, 인민의 열렬한 지향과 염원에 받들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로 추대되신 것은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의 염원이 현실로 꽃펴난 역사적 사변이었다.

그러기에 항일혁명투사들은 이 위대한 현실을 김정숙여사께서 보신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는 절절한 심정에 휩싸였었다.

그러한 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의 유훈을 더더욱 가슴속에 되새기시며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해 나갈 결심과 의지를 새롭게 다지시었다.

이해 봄의 어느 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집무실에서 한 일꾼을 기다리고 계시었다.

공업부문을 담당하여 지도하는 그 일꾼이 방에 들어섰을 때 장군님께서는 방안을 거니시며 사색에 잠겨 계시었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
  우리 어머님은 언제나 자신을 수령님의 혁명전사라고 하시며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수령님께 충성 다하셨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며칠 전 일인데 그 날 어머님께서는  저녁노을이   비쳐  드는  창가에  앉으신  채  나의  두  손목을  꼭  잡으시더니 아버님께서 건강하셔야 조국이 부강해지고 인민이 잘 살 수 있다.

너는 아버님을 높이 모시고 아버님의 신변을 철저히 보위하며 꼭 아버님의 뒤를 이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꾼이 애절한 마음을 묵새기고 있는데 장군님께서 문득 화제를 바꾸시며 낡은 총을 주면 새 것처럼 손질해 올 수 있는가고 물으시었다.

오래 되었거나 파손된 무기를 재생하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하고 있는 일꾼은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를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시더니 자그마한 함 안에서 붉은 천에 정히 싸여 있는 한 자루의 권총을 갑채로 꺼내시었다.

그러시고는 그것을 일꾼에게 넘겨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이 권총은 어머님께서 나에게 물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어머님의 유물입니다.』

그분께서는 이어 이 권총은 어머님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사용하신 총이다, 어머님께서는 이 권총으로 수천수만발의 탄알을 쏘았을 것이고 그 탄알에 맞아 거꾸러진 왜놈도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나는 이 권총을 수십 년동안 간수해오고 있는데 오늘 동무에게 처음 보인다, 세월이 오래 지나다보니 권총이 낡아지고 총지갑도 헐었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어머님생각이 날 때마다 어머님께서 쓰시던 이 권총을 꺼내보군 합니다.

나는 어머님의 숭고한 뜻이 어려 있는 이 총을 원상대로 손질할 수 없을까 해서 동무를 불렀습니다.』

항일무장투쟁시기로부터 해방 후 새 조국건설시기에 이르는 기간 김정숙어머님께서 애용하시던 권총,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을 목숨으로 옹호보위하며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수행에 한생을 고스란히 바치신 김정숙어머님의 고결한 생애와 혁명활동이 그대로 어려 있는 귀중한 혁명유산이었다.

일꾼은 그때로부터 사흘동안 병기공장에 나가 말 그대로 옥을 다듬듯 있는 정성을 다하여 권총을 새 것처럼 재생시켰고 헌 권총지갑도 새 것 때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나도록 하였다.

그리고 수예사들을 찾아가 보관함도 정성껏 만들었다.

원상대로 손질된 권총이 든 목란꽃장식함을 받아드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기쁨을 금치 못하시었다.

『이제야 어머님께서 쓰시던 권총이 제 모양대로 되었습니다.  내 어릴적 일이지만 우리 어머님은 언제나 이 총을 반질반질하게 닦으시었고 이 총으로 나에게 총쏘는 법을 가르쳐주시었습니다.』

본 모양이 생생한 권총을 드시어 겨냥도 해보시고 격철도 떨궈보시던 그분께서는 어머님에 대하여 회고하시다가 더 말을 잇기 힘드신 듯 『어머님의 하나밖에 없는 유물인데 잘 보관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그 말씀은 어버이수령님을 잘 받들어 모시고 수령님께서 피어린 투쟁으로 열어놓으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기어이 완성해야 한다는 어머님의 유훈에 끝까지 충실하시겠다는 엄숙한 맹약이었다.

이렇게 장군님께서는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로 추대되신 역사의 시점에서 항일혁명이 물려준  유산,  주체위업계승의  시원을  열어  놓으신 위대한 혁명의 어머니 김정숙여사의 유훈이 담겨진 위대한 총대를 틀어쥐시었다.

그리고 그 총대를 마음의 기둥으로 삼아 주체위업계승완성의 중임을 감당해가실 역사적 사명감을 되새기시었다.

그 무렵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왕재산혁명사적지건설을 지도하기 위하여 온성땅도 찾으시고 선봉지구도 현지지도하시었다. 그분께서 열차로 온성이나 선봉으로 가시자면 어머님의 고향인 회령을 지나게 된다.

그때 수행일꾼들과 회령인민들은 장군님을 회령에 모시려고 하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온성에서 청년건설자들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수령님의 심려를 덜어드리지 못했는데 어떻게 어머님의 고향집부터 찾겠는가고 하시며 열차를 회령에 세우지 못하게 하시었다.

그러던 5월 중순 어느 날에도 장군님께서는 회령에 들리지 않으시고 선봉으로 가시었다.

열차는 밤 1시가 지나 항구도시 선봉에 도착하였다.

마중 나온 지방일꾼들이 장군님을 숙소로 모시려고 하였으나 그분께서는 굳이 마다하시고 열차에서 휴식하겠다시며 수행일꾼중에서 인민군 총정치국 책임일꾼만 열차에 남아있게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밤이 하염없이 깊어가는데도 집무를 계속 보시었다.

총정치국 책임일꾼이 이제는 늦었는데 좀 쉬셔야겠다고 말씀드리자 장군님께서는 왜서인지 선봉에 오니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시며 저 파도소리가 수령님을 잘 모시며 인민의 충복이 되기를 바라시는 어머님의 당부를 전해주는 것만 같다고 말씀하시었다.

파도소리라니?!

총정치국 책임일꾼은 저으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는 열차의 기적소리나 무쇠차바퀴가 레루를 타고 굴러가는 소리만이 요란히 들릴 뿐이었다.

한참이나 귀를 강구어서야 역구내의 요란한 소음속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철썩, 처절썩… 기슭을 치는 파도소리를 가려들을 수 있었다.

그분께서는 총정치국 책임일꾼을 데리고 부두가로 나가시었다.

새날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바닷바람에 옷자락을 날리시며 추억에 잠겨 바다를 바라보시었다.

해방된 해 11월 하순 어머님을 군함에 모시고 이 항구로 해서 조국땅에 개선의 첫 자국을 찍으시던 때의 일이 생각되시었다.

「쏴-」 하며 집채같은 파도가 밀려와 방파제에 부딪치고는 산산이 부서졌다.

장군님께서는 오래도록 아무런 말씀도 없이 거연히 서 계시었다.

총정치국 책임일꾼은 그 순간 이름 못할 흥분에 휩싸였다.

주체혁명의 항로를 틀어 잡으신 위대한 정치가, 강철의 영장의 거인적 영상을 본 것이다!

그로부터 몇해 후에 인민군창작사에서 이 역사의 순간을 화폭에 옮긴 한편의 미술작품을 창작하였다.

조선화 「선봉항의 메아리」였다.

노한 파도가  갈기를  날리며 쏴-  밀려와  부둣가에  부딪쳐서는  천만  구슬로  휘뿌려진다.   달려올 때는  그렇게도  기세차던  파도가 경애하는 장군님의 발밑에 와서는 마치도 위압당해 물러가는 듯 우로 휘말려 올라간다.

외투자락을 뒤로 젖히시고 두 손을 허리에 얹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사색깊은 안광으로 저 멀리 파도 사나운 검푸른 조국의 바다를 굽어보고 계신다.

그 조선화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게 되시었다.

그분께서는 인민군창작사 동무들의 회화수준을 한번 보자고 하시며 그림을 주의깊게 보시었다.

그러시고는 조선화기법으로 잘 그렸다고 치하하시고 나서 조선화 「선봉항의 메아리」 창작가가 장소를 선봉항으로 설정한 것을 보면 사색을 깊이 하였다는 것이 알린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선봉땅은 우리 어머님이 해방 후 처음으로 찾으신 곳입니다. 그때 우리 어머님은 해방된 조국의 현실을 잘 모르고서야 어떻게 장군님의 사업을 도울 수 있겠는가고 하시며 선봉에서 정력적인 활동을 벌이시었습니다.

그때 나는 어린 나이었지만 어머님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이어 지금도 밤낮이 따로 없이 인민들을 찾아 인민들을 위해 아낌없이 노고를 바치시며 활동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선하다고 말씀하시었다.

선봉, 장군님께 있어서 선봉은 어머님의 체취를 느끼고 어머님에 대한 하 많은 회고를 불러일으키는 유서깊은 곳이었다.

김정숙어머님과 함께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바로 여기 선봉에서 조국인민들과 상봉하시었으며 그리도 그립고 그립던 인민들과 함께 해방의 기쁨을 나누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선화 「선봉항의 메아리」에서 눈길을 떼지 않으시고 그림의 제목을 뜻이 깊게 잘 달았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이 작품에서는 파도를 잘 형상한 것이 특징입니다. 마치도 우리 혁명의 간고성과 장기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시면서 볼수록 위대한 수령님을 잘 모시며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고 늘 당부하시던 어머님의 목소리가 파도에 실려 들려오는 듯 하다고 말씀하시었다.

주체혁명의 간고성과 장기성을 보여주는 것만 같고  주체혁명의  계승완성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하라고  오늘도  당부하시는  것만  같은 김정숙어머님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선봉항의 파도소리…

장군님께서는 유정한 한 폭의 그림앞에서 주체혁명의 계승자로서의 성스러운 사명감을 자각하시며 어머님의 염원대로 주체혁명을 승승장구의 한길로 이끌어가실 철석의 의지를 더욱 굳게 다지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