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에서 패전한 이후 보통의 군사력으로는 공화국을 제압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부터 남조선에 막대한 현대적 무장장비를 끌어들여다 놓고 군사연습소동을 끊임없이 벌이면서 군사적 도발의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만약 공화국의 군력이 약하면 미제는 아무 때건 침략의 도화선에 불을 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삼천리조국강토가 전쟁의 참화속에 빠져들게 될 것이었다.

인민군대가 군력강화에 힘을 넣고 싸움준비완성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미제의 전쟁도발기도를 꺾어버리며 만약 놈들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침략자들을 격멸소탕하고 조선반도에서 전쟁의 근원을 완전히 없애버리기 위해서 였다.

미제침략군만 내쫓으면 우리 민족은 자체의 단합된 힘으로 얼마든지 통일위업을 이룩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군력강화에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며 분열의 장본인인 미제를 내쫓고 통일을 이룩하는 길이 있는 것이다.

모든 인민군장병들은 혁명의 총대가 강해야 미국놈들이 함부로 덤벼 들지 못하며 설사 덤벼 든다 하여도 일격에 요정 낼 결심을 가슴깊이 새기고 민족을 위한 총대를 더 억세게 틀어 잡아야 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장병들의 심장마다에 이 역사의 진리, 시대의 사명감을 깊이 새겨주기 위한 사업을 일관하게 틀어쥐고 나가시었다.

주체61(1972)년 7월 19일, 이른 새벽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나라의 중서부 군사분계선상에 자리잡고 있는 판문점초소를 찾으시었다.

판문점은 인민군군인들이 적들과 총부리를 맞대고 대결하여 있는 최전연중의 최전방초소이며 하나의 분리선을 경계로 하여 민족의 분열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분열의 상징이다.

판문점은 옛적부터 개성과 서울을 오가는 길손들이 쉬어가는 널리 알려진 일이 없는 무명촌이었는데 1953년 7월 27일 이곳에서 조국해방전쟁에서의 미제의 패전과 공화국의 승리를 세상에 선포하는 역사적인 조선정전협정조인식이 엄숙히 거행된 이후 세계가 아는 유명촌이 되었다.

당시 판문점구역안에는 직경 750∼850m의 타원형으로 된 조선인민군과 미군이 공동으로 관할하는 공동경비구역이 설정되어있었다. 불과 0.52 ㎢밖에 안되는 판문점공동경비구역안에는 쌍방이 각기 이용하는 덩지 큰 건물들과 공동으로 이용하는 단층건물들 그리고 쌍방의 경비초소들이 있었다.

판문점공동경비구역에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나 북남대화와 접촉이 있을 때를 내놓고는 겉으로는 대체로 고요한 정적이 깃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고요한 정적속에 준엄한 대결의 순간순간이 꿈틀거리고 있어 언제 불과 불이 오가고 철과 철이 맞부딪칠지 모를 경계와 긴장이 고도로 첨예한 곳이 판문점이다.

정전협정에 의하면 공동경비구역에는 쌍방에서 각기 35명을 넘지 않는 경비인원들만 들어갈 수 있다. 그들의 경우 보신용단발무기밖에 휴대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군측은 이러한 정전협정사항을 무시하고 판문점공동경비구역과 그 주변에 숱한 침략무력을 집결시키고 경비초소들마다에 수많은 기관총과 각종 포들까지 끌어들여 사소한 시비도 무장충돌로 이어질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총격전이 벌어져 사상자를 낸 사건들도 있었다.

당시 행성에는 적대쌍방이 대치하고 있는 접점지대들이 적지 않았다. 독일의 동부와 서부가 대치되어있는 베를린장벽지대가 그러했고 쿠바영토에 있는 미군의 관타나모기지지대가 그러하였다.

그러나 판문점공동경비구역은 그 긴장도에 있어서 이러한 접점지대에 비할 수없이 첨예하고 살벌한 열점지대이다.

미제침략군과 한마당안에서 직접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하여 적아의 계선이 없는 판문점에서의 정적이란 정치군사적 대결의 순간순간이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의 한초한초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이렇게 조미대결의 최전연인 판문점초소를 찾으신 것이다.

『동무들, 건강합니까. 전연에서 수고를 많이 합니다.』

그분께서는 만면에 밝은 미소를 담으시고 마중 나온 군사정전위원회 몇몇 일꾼들의 손을 뜨겁게 잡아 주시었다.

오매에도 그립던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 뵈옵고 그 다정한 음성을 가까이에서 듣는 순간 일꾼들은 북받치는 감격을 금치 못하였다.

날에 날마다 그분께서 인민군초소들을 다녀가신 소식이 날개라도 돋친 듯 날아와 전해질 때면 그분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깊어만 가고 가까이 모셨으면 하는 열망은 부풀기만 했었는데 그분께서 정작 여기 판문점에까지 오실 줄은 상상도 못하던 그들이었다.

사실 장군님의 판문점행은 일꾼들의 거듭되는 만류로 하여 매우 힘들게 이루어졌다.

당시 북남적십자예비회담이 자주 진행되는 판문점은 대화와 어울리지 않게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한 분위기가 떠돌고 있었다.

주체61(1972)년 7월 4일 조국통일3대원칙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북남공동성명이 발표되고 북과 남사이에 대화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었지만 미제침략자들과 남조선집권층은 그 막뒤에서 「대화있는 대결」을 부르짖으면서 판문점구역과 비무장지대에 매일과 같이 수많은 전투인원들과 중무기, 자동무기들을 끌어들이고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는 군사적 도발행위를 감행하고 있었다.

놈들은 북남적십자예비회담이 진행되는 하루동안에만도 10여차례에 걸쳐 20정의 경기관총을 끌어들임으로써 대화와는 어울리지 않게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꾼들은 다른 초소들에는 다 가시어도 판문점에만은 나가실 수 없다고 완강히 막아 나섰던 것이다.

마중 나온 일꾼들과 인사를 나누신 장군님께서는 곧바로 차에 오르시어 회의장구역에 나가려고 하시었다.

이때 군사정전위원회 우리측 성원들이 앞을 막아 섰다.

회의장구역은 물론이고 그곳으로 나가는 길만 해도 위험하기 그지없어 만류해 나선 것이다.

더구나 이 날은 북남적십자단체들의 예비회담이 진행되는 날이어서 적들이 여느 때없이 더 살벌하게 돌아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그들을 안심시키며 설복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오늘이 북남적십자예비회담을 하는 날이어서 적들이 더욱 욱실거려 회의장구역에 들어가는 것이 위험하다고 하는데 오늘같이 복잡한 때에 가보아야 현실을 잘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고는 여기까지 왔다가 미국놈들과 직접 맞서 싸우고 있는 전사들을 만나보지 않고 그냥 돌아갈 수 없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판문점초병들이 보고싶습니다.』

순간 일꾼들의 가슴은 쩡- 하고 울리었다.

마치도 가장 어렵고 위험한 곳에 자식을 세운 부모의 그 어떤 긍지감이나 걱정과도 같은 애틋한 정이 순간적으로 전류처럼 닿아왔던 것이다.

그분께서는 판문점의 그 어떤 분위기나 적정을 요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구나 다름없는 위험한 곳에서 수고하는 귀중한 전사들을 만나주시기 위해 굳이 그곳에 나가시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랑하는 자식에게로 향한 부모의 발걸음과도 같은 것이다.

자식을 위한 부모의 희생과 헌신은 그 무엇으로써도 돌려 세울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것이니 장군님께서는 바로 그런 큰 마음, 불같은 사랑을 안으시고 이 길을 걸으시는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벌써 차에 오르시어 조향륜을 잡으시었다. 직접 차를 몰아 회의장구역으로 들어가시려는 것이었다.

일꾼들과 지휘관들은 그분의 신변안전을 한목숨바쳐서라도 지켜드리려는 비장한 각오를 안고 그분을 따라 나섰다.

비무장지대가 시작되는 북경계선 차단소에 이르자 차에서 내리신 장군님께서는 근무수행중인 전투원들을 친히 만나주시었다.

전연초병들은 너무도 가슴 벅찬 감격으로 하여 거수경례를 올리고는 좀처럼 손을 내릴 줄을 몰랐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하나하나 내리워 따뜻이 잡아주시며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동무들, 수고합니다. 적과 직접 맞서서 싸우고 있는 동무들은 누구보다도 수고가 많습니다.

동무들이 그리워 찾아왔습니다.』

전연초병들은 그분의 고무의 말씀에 그만 목이 꽉 메어올라 인사의 말씀도 변변히 드리지 못하였다.

그분께서는 초병들에게 전투근무를 잘 수행할 데 대하여 이르시고 나서 다시 차에 오르시었다.

이윽하여 장군님께서 타신 승용차는 우리측 비무장지대를 지나 군사분계선이 흘러간 사천강기슭 판문교를 가까이 하고 있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한 한초한초가 흘러갔다.

키높이 자란 갈대숲이 바람에 설레이고 강기슭에 겹겹이 늘어진 가시철조망이 눈앞에 다가왔다.

군사분계선, 하나의 지맥으로 잇닿은 3천리강토를 두동강내며 뻗어간 분열의 장벽이었다.

판문교 남쪽끝 미제침략군 헌병초소에 도사리고 있는 적들의 몰골이 보였다.

판문교위로 차를 몰아가시며 그 모든 것을 여겨보시는 장군님의 안광에서는 서릿발이 이는 듯 싶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모습은 전화의 그 날 우박치는 듯 하는 불빗속을 뚫고 가열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1211고지의 인민군용사들을 찾아가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 그대로였다.

어느덧 적헌병초소를 지나 최전연인 회의장구역에 이르신 장군님께서는 감시소가 있는 곳에 차를 세우시었다.

이때 판문점초병들이 그분께서 오신 것을 알고 숨가삐 달려왔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먼길을 오시느라 얼마나 …』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 뵈옵는 기쁨이 너무도 커서 인사조차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그들의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때로는 눈물이 천만마디의  말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하늘 땅이 울리게  웨치고  싶은  만세의  환호성이  눈물로  터쳐져 그토록 원했던 장군님과의 상봉을 감격의 눈물의 장으로 펼쳐놓은 것이다.

장군님께서도 격정을 금치 못하시며 감격으로 흐느끼는 한 전사에게로 다가가시어 그의 쩍 벌어진 어깨를 말없이 어루만지시었다. 한참만에야 언제 입대하였는가, 고향은 어디인가, 부모들은 다 있는가, 집에서 편지는 오는가고 다정하게 물으시었다.

그러시면서 회의장구역에서 적들과 맞다 들어본 일이 있는가고 물으시었다.

처음에는 목이 메여 대답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던 그 전사는 어느덧 마음을 진정하고 백주에 우리 초소에 달려든 미제침략자들을 무리로 족치던 이야기를 신이 나서 말씀 올렸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다 들어주시고 못내 만족해하시며 잘 싸웠다고,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주었다고 치하하시었다. 그러시고는 지휘관들을 향해 전사들에게 훈련을 잘 시켜 맨주먹으로도 적들을 때려 눕힐 수 있는 일당백의 전투원으로 준비시킬 데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판문각노대에 서시어 북남적십자예비회담과 관련하여 쓸어 든 남측요원들과 여기저기 삼엄하게 늘어선 미제침략군들로 하여 붐비는 회의장구역을 내려다보시며 판문점초소를 튼튼히 지키는데서 나서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그분께서는 문득 한 곳에 시선을 멈추시었다.

거기에서는 사정없이 내리쪼이는 7월의 폭양속에서 한 전사가 땀을 흘리며 전투근무를 서고 있었다.

예리한 시선으로 주위를 감시하고 있는 전사의 모습을 지켜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누구에게라 없이 초병들이 오늘처럼 무더운 여름날에 적들과 직접 맞서서 몇시간씩 긴장한 전투근무를 수행하자니 정신적으로도 몹시 피로할 것이라며 귀중한 보배들인 초병들을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잠시 후 판문점초병들이 생활하는 건물들을 돌아보신 그분께서는 또다시 전투근무를 수행하는 전사의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시었다.

그리고 그들이 무더운 날씨에 모직으로 만든 옷을 입고 땀흘리는 것을 심려하시어 여름에는 흰천으로 상의를 해 입히든지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고 하시었다. 또한 초병들이 방에 들어와서는 시원하게 지내도록 냉풍설비도 놓아줄 데 대해 가르치시었다.

이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초소들을 돌아보시며 전연초병들의 싸움준비와 생활에 대하여 세심히 보살펴주시었다.

그러시고는 좀처럼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초병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시며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시고 귀로에 오르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판문점현지시찰은 그 이후 계속되었다.

두해후의 7월 어느날 그분께서는 판문점초병들과의 약속을 지켜 판문점을 또다시 찾으시었다.

이날 그분께서는 적들이 무시로 발길을 뻗치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장구역으로 들어가시었다.

그런데 이날 따라 여느 때없이 많은 미군측 「헌병」들이 쓸어 나와 눈에 살기를 띠고 회의장주변을 돌아 치고 있었다.

이런 형편에서 장군님께서 회의장구역을 돌아보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유유히 회의장안에 들어가시어 적정도 요해하시고 일꾼들에게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수행원들은 처음에는 초조감과 불안감으로 긴장할 대로 긴장해 있었으나 너무도 담대하고 태연자약하신 장군님의 담력과 위풍을 보면서 긴장감과 초조감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장군님의 거인적 위풍에 위압당한 듯 적들은 경계심을 잃고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하여 더욱 움츠러들고 말았다. 적들은 문밖에 얼씬거리지도 못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적들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저놈들의 몰골을 보시오. 집안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커튼짬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적들을 방안에 몰아넣고 족쇄를 채우신 듯 발아래로 굽어보며 하시는 말씀이었다.

그것은 정녕 사상과 사상의 대결장에서 내리시는 위대한 영장의 신념과 담력, 배짱의 개가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거듭되는 판문점현지시찰은 인민군장병들의 가슴마다에 멸적의 투지를 안겨 주었다.

그분께서 적진의 코앞에까지 들어 가시어 인민군초병들을 고무하여 주시고 반미대결전을 이끌어 주시니 힘이 솟구치고 피가 끓어오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와의 첨예한 대결의 최전연초소에까지 나오시어 적진을 굽어보시며 분단의 원흉 미제에 철추를 내리시는 장군님의 담력과 의지는 그대로 조국통일의 앞날을 여는 무적의 힘이 되었다.

 

   



조국통일, 그것은 겨레의 염원이고 민족이 가야 할 앞날이다. 그래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통일을 자신의 역사적 사명감으로 내세우신다.

조국과 민족에 대한 가장 열렬한  사랑이, 그 운명에 대한 절대적 책임감이 그분으로 하여금 조국통일이라는 민족사의 가장 중대한 과제를 스스로 맡아 안으시게 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통일을 위해 나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조국의 절반땅을 강점하고 통일을 반대하여 온갖 책동을 다 감행하고 있는 미제를 남조선에서 몰아 내는 것이라고 보신다.

미제국주의자들은 남조선에 방대한 군사력을 밀집시켜 놓고 통일을 한사코 방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인민의 조국통일투쟁은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군사적 강점과 공화국에 대한 놈들의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투쟁으로 되어야 한다.

조국통일투쟁은 결국 혁명의 총대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혁명군대를 무적의 강군으로 키워 공화국에 대한 미제의 군사적 위협과 군사적 도발을 물리치며 나아가서 남조선에서 침략자 미제를 몰아내고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이룩하자는 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신념이고 의지이다.

장군님의 인민군구분대들에 대한 현지지도, 현지시찰은 곧 이러한 신념과 의지의 발현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두번째로 판문점을 찾으시었을 때였다.

북남대화가 시작되어 2년도 못되었는데 남조선당국자들은 미제의 사촉밑에 대화의 막뒤에서 음모적 방법으로 「유신」체제를 조작하고 「두개 조선」으로의 영구분열을 정책화하여 공표하였다. 남조선당국자들은 그때 「국력우위론」을 떠들면서 전쟁준비를 더욱 본격적으로 다그치고 있었다.

정세는 나날이 악화되고 북남관계는 극도로 첨예화되었다. 적아가 직접 대치하고 있는 판문점의 분위기는 다치면 터질듯 팽팽하였다. 이러한 긴장한 때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판문점에 나오신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곧바로 판문각 2층 노대로 오르시었다.

그분께서는 허리에 두손을 짚으시고 회의장마당과 판문점주변을 둘러보시었다.

북과 남의 판이한 현실이 그분의 시야에 안겨 들었다.

해마다 덧쌓이는 분열의 연륜과 더불어 해묵은 쑥대와 갈대만이 무성해진 남쪽산야가 가슴저리게 안겨왔다.

불행과 고통이 비낀 황량한 산천에서 통일을 갈망하는 남녘겨레들의 피타는 절규가 바람결에 실려오는 듯 하였다.

한동안 남녘의 산야를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누구에게라 없이 나직이 뇌이시었다.

『삼각산!』

그분의 음성은 비분에 젖어있었다. 민족분열의 아픔이 서려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삼각산!』 하고 다시금 조용히 되 뇌이시며 남쪽하늘가에서 점토록 눈길을 떼지 못하시었다.

삼각산은 백운대, 국망봉, 인수봉의 세 봉우리가 나란히 솟아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로 그 삼각산밑에 서울이 자리잡고 있다.

이윽하여 그분께서는 갈리신 목소리로 물으시었다.

『여기서 서울까지 몇리나 됩니까?』

『140리가량 됩니다.』

그분께서는 서울까지의 거리를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니었다.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에 처음으로 나오시었을 때에도 이렇게 물어보시었다.

그때 판문각노대에 오르신 장군님께서는 여기서 서울까지는 지척이라시며 쌍안경을 드시고 남녘땅을 바라보시고 나서 조국을 빨리 통일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었던 것이다.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에서 서울까지의 거리가 자동차로는 불과 1시간, 걸어서는 하룻길도 안되는 지척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었다.

하루내에 오갈 수 있는 내 나라 지경을 가로막은 군사분계선을 더이상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의분을 삭일 수 없어 묻고 또 물으시는 것이었다.

군사분계선은 서해바다가 임진강북쪽 하구 정동리앞 개울가로부터 동해바다가 남강하류 강정마을의 백사장에 이르는 동서 600여리에 뻗어있다. 여기에는 높이 1.5m의 네모말뚝에 「군사분계선」이라고 쓴 가로 1m, 세로 0.5m의 판대기가 붙은 1,292개의 푯말이 꽂혀있다.

바로 이 군사분계선으로 하여 122개의 마을과 8개의 군이 북과 남으로 갈라졌고 지금 비무장지대로 되어 있는 지역에 있던 514개의 부락이 그 종적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북과 남을 잇던 세 줄기의 넓은 도로와 24개의 작은 도로, 197개의 달구지길이 끊어졌고 북에서 남으로 생명수를 보내주던 관개수로도 끊어졌다.

북남으로 뻗은 산줄기들과 철길들, 임진강, 북한강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강줄기들과 시내들도 군사분계선에 의하여 116군데나 토막나 나루터도 다리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북남을 이어주던 모든 것이 미제의 남조선강점으로 동강나고 만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분열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끼시며 조국통일위업의 완수를 자신의 사명감으로 감수하시는 것이다.

점도록 남녘땅을 굽어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천만근의 무게가 실린 어조로 조국을 빨리 통일해야 하겠다고, 조국을 통일하자면 인민군군인들이 적들이 전쟁을 도발하면 본때 있게 싸워 결단을 내겠다는 굳은 각오를 가져야 하며 순간도 안일해이하지 말고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었다.

미제침략자들에게 철추를 내리고 기어이 조국통일의 역사적 성업을 이룩하여야 한다는 신념과 의지, 사명감을 새겨주시는 가르치심이었다.

비단 판문점초소에서만이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어디에 가시어서도 인민군군인들이 조국통일에 대해 단 한 순간이라도 잊을세라 깨우쳐주고 이끌어주시었다.

주체62(1973)년 8월 어느날 강원도안의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던 김정일장군님께서 금강산일대를 돌아보시던 때의 일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맞이한 금강산은 수수천년을 내려오면서 다듬고 가꾸어온 자기의 신묘한 자태와 절경을 한껏 자랑하는 듯 싶었다.

그분께서는 명소와 명폭포 등 이르는 곳마다에서 금강산은 조선의 명산이라고 하시며 이 좋은 경치를 잘 보존하며 인민의 휴양지로 더 잘 꾸릴 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그분께서 금강산의 어느 한 마루에 오르시었을 때였다.

눈앞에는 천만산악이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었다. 1만 2천봉우리가 기기묘묘한 제 모습을 뽐내려고 키돋움하는 듯 하였다.

옛날 선녀들이 하늘에서 무지개를 타고 내렸다는 팔담도 보이었다.

저 멀리 분계선너머 남녘땅도 한눈에 안겨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욱한 운무속에 묻혀있는 남녘땅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오늘 금강산을 돌아보면서 나는 어떻게 하면 이 좋은 경치를 저 남녘땅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형제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뜨거운 동포애의 정이 넘치는 말씀이었다.

기쁜 일이 있어도 좋은 것을 보아도 그것을 남녘겨레들과 나누고 싶어 하시는 그분의 심정을 잘 알고 있는 일꾼들의 가슴은 후더워 졌다.

이윽하여 그분께서는 금강산마루에 올라서서 원한에 사무친 분계선을 바라보니 증오의 피가 끓어 번진다고, 미국놈들이 아름다운 삼천리강토를 절반이나 가로 타고 앉아 나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제 집에 뛰어든 강도를 몰아내지 못한 주인이 편안할 수 없듯이 나라의 절반땅을 깔고 앉은 미국놈들을 몰아내지 못하고서는 그 누구도 발편잠을 잘 수 없다고 준절하게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수령님의 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것은 분열된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투쟁을 하시느라 상상도 할 수 없는 마음고생을 많이 하시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어떻게 하면 수령님대에 조국을 통일하여 수령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을가 하는 이 한가지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고 새날을 맞는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었다.

그분의 말씀은 일꾼들의 가슴에 세찬 충격을 안겨주었다.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던 그분께서는 일꾼들을 둘러보시며 혁명의 2세대들은 혁명의 계주봉을 대를 이어 틀어 잡고 수령님께서 한평생 로고를 기울여오신 조국통일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조국통일문제는 우리 젊은 사람들이 걸머지고 풀어 나가야 한다고, 나는 환갑을 맞으신 수령님께 조국통일문제는 우리들이 맡아보겠으니 더는 심려하시지 말아 달라고 하였다고, 조국을 통일하기 전에 편안하게 잘살아보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조국과 민족앞에 떳떳할 수 없다고 본다고 하시면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든지 양심이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혁명의 2세들로 하여금 혁명앞에, 조국과 민족앞에 지닌 자기의 숭고한 사명감을 깨닫게 하는 뜻깊은 말씀이었다.

계속하여 장군님께서는 조국을 기어이 통일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미제침략자들은 남조선에서 저절로 물러가지 않는다고, 어느 시대, 어느 역사의 갈피를 뒤져보아도 제국주의자들이 선량한 민족에게 스스로 침략을 포기하고 평화를 선사한적은 없었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미국놈들이 우리의 신성한 조국강토를 넘겨다 볼 수 없게 하여야 하며 그러자면 그들이 우리 공화국을 먹을 수 없게 힘을 키워야 하고 무적의 힘을 키우자면 군대를 강화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었다.

미제침략자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남녘땅을 지척에 바라보시며 하시는 장군님의 말씀은 일꾼들에게 유다른 충격을 안겨주었다.

특히 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하신 그분의 말씀은 일꾼들로 하여금 조금 전 이곳으로 올라올 때 옥류동근방에서 있었던 일을 되새기게 하였다.

장군님을 모신 일행이 금강문을 지나 옥류동이 한눈에 안겨오는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맑디맑은 담소에 푸른 하늘이 비껴있고 천태만상을 이룬 산봉우리며 바위들이 기기묘묘한 모습들을 비쳐 보이는 옥류동!…

일꾼들은 눈앞에 펼쳐진 황홀경에 심취되어 넋을 잃은 듯 서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었다.

안개속에 우렷이 키를 솟구며 솟아있는 기묘한 바위들에 시선을 보내시던 그분께서 문득 손길을 들어 가리키시며 저 바위는 탱크같고 그 앞에 있는 바위는 군함같고 뒤에 있는 바위는 군대가 사격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었다.

순간 일꾼들은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수천년을 두고 금강산을 다녀간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그 누구도 산정의 바위를 탱크와 군함, 사격하는 군대의 모습으로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혁명무력강화에 선차적 의의를 부여하시고 깊은 관심을 돌리시는 장군님이시기에 명산이 펼치는 천태만상의 화폭속에서도 무장장비와 군대의 모습을 먼저 찾아보시는 것이 아닌가.

사물을 하나 고찰하시어도 먼저 군사적 견지에서 보시고 평가하시며 그것을 주체혁명위업과 결부시키시는 그분을 일꾼들은 경모의 눈길로 우러렀던 것이다.

옥류동에서 받았던 감동이 되살아 날수록 일꾼들은 아름다운 조국강산에서 온갖 불행의 화근인 미제침략자들을 기어이 몰아낼 의지를 더더욱 가다듬으며 경애하는 장군님의 군건설구상과 위업을 한몸 바쳐 받들어 나가리라는 결의를 굳히었다.

일꾼들의 얼굴마다에 어린 결의를 읽으신 듯 장군님께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시었다.

『나는 인민군대를 사상의 강군, 무적의 강군으로 키우려고 합니다.』

열정에 넘치신 그분의 목소리는 산발을 울리며 저 멀리 남녘땅으로 메아리쳐 갔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러한 구상과 의도에 받들려 인민군대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며 미제침략자들을 내쫓고 나라의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위력한 역량으로 명실상부하게 강화발전되어 갔다.

그러한 막강한 군력에 받들려 자주통일시대가 개척되었으며 우리 민족끼리 통일하기 위한 역사의 새로운 장을 향해 나아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