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장악하지 못하고 그에 대한 영도를 실현하지 못한 당은 혁명을 할 수 없다. 당의 영도는 군대의 생명선이며 당의 영도를 받지 못하는 군대 역시 자기 사명을 다할 수 없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찍이 당과 군대의 이러한 호상관계의 원리를 밝히신데 기초하여 혁명군대를 명실공히 조국과 인민에게 충실한 조선노동당의 군대, 위대한 수령님의 군대로 키워 나가시었다.

1960년대말의 현실은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을 전면에 내세우고 조선인민군을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더욱 강화발전시켜 나갈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군대내 정치사상교양사업은 이러한 요구에 따라서지 못하고 있었다.

인민군대에서는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기 위한 교양사업을 주선으로 틀어쥐기는 하였으나 아직 뚜렷한 방법론이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군대안의 당정치사상교양사업에서 근본적인 전환의 닻을 올리자면 무엇을 앞세우고 어디에 힘을 넣어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이 필요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58(1969)년 6월 어느날 당중앙위원회 집무실에서 인민군대안의 사상사업을 담당한 총정치국의 한 일꾼을 만나시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날 오랜 시간 그와 사업을 의논하시면서 사상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들을 상세히 가르쳐주시었다.

이날 그분께서 하신 말씀의 기본내용은 위대한 수령님의 군건설영도업적을 통한 교양사업을 진공적으로 벌여 나가는데 사상사업의 기본을 둘 데 대한 문제였다.

그분의 가르치심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상이 담겨져 있었다.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 것은 혁명무력건설에서 나서는 원칙적 요구이며 인민군대를 그 어떤 뇌성벽력에도 드놀지 않는 불패의 강군으로 만들기  위한 근본담보이다,  인민군대를 영원히 위대한 수령님과 우리 당에 무한히 충실한 불패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키자면 군인들속에 위대한 수령님의 군건설영도업적으로 교양하는 사업을 강화하여 경애하는 수령님은 천재적 군사전략가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이시며 우리 혁명무력의 최고사령관이시라는 것을 똑똑히 인식시켜야 한다, 인류역사를 놓고 보면 우리 수령님과 같으신 탁월한 군사전략가, 위대한 군사 실천가는 없었다, 세상에는 무관으로서의 풍모와 지략을 자랑하는 명장들이 많았지만 그들에게 『천재적 군사전략가』,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이라는 말을 붙이지는 않았다, 주체의 군사사상의 창시자이시며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시며 군사실천가이신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만이 천재적 군사전략가로,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으로 높이 칭송을 받고 계신다, 인민군군인들속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군건설영도업적교양사업을 강화해야 그들이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주체의 군사사상과 이론의 위대성, 영도의 현명성 그리고 고매한 덕성을 가슴깊이 체득할 수 있고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혁명무력의 창건자이시며 영도자이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 끝까지 충성다할 수 있다, 총정치국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군건설영도업적교양사업을 진공적으로 벌여 군대안에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튼튼히 세우기 위한 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이룩해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군건설영도업적교양사업을 통이 크고 폭이 넓게 벌여야 한다, 말하자면 인민군대안의 선전선동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총공세를 들이대야 한다 등의 내용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은 일꾼의 가슴은 형언할 수 없는 격동으로 설레었다.

그분의 가르치심에는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인민군대안의 사상사업에서 새로운 결정적전환을 안아올 수 있는 방향과 방도가 뚜렷이 밝혀져 있었다.

수령님께서 이룩하여 놓으신 군건설영도업적을 통한 교양사업을 인민군대당사상사업의 주선으로 틀어쥐고 나갈 데 대한 가르치심은 곧 수령님의 위대성교양의 기치를 전면에 높이 들고 인민군대를 수령님의 군대, 당의 군대로 강화발전시켜 나갈 데 대한 전혀 새로운 군건설전략의 제시었다.

물론 지난 시기에도 인민군대안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군건설영도업적을 통한 교양사업을 해오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를 사상사업에서 전면에 내세우지는 못하였으며 뚜렷한 곬을 가지고 목적지향성있게 벌이지 못하였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실태를 깊이 헤아리시어 위대성교양을 기본으로 하는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진로를 명시하여 주신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의 자자구구에 담겨져 있는 심원한 뜻이 깊이 헤아려질수록 일꾼의 가슴은 마치도 장님이 눈을 뜨고 밝은 세상을 바라보는 듯 한 환희로 끓어 번졌다.

장군님께서는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군건설영도업적을 통한 교양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방도문제에 대해서도 일일이 가르쳐주시었다.

그분께서는 우선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와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을 비롯한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참관을 통한 교양사업을 강화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혁명전적지와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군건설영도업적을 생동하게 보여주는 교과서와 같다고 하시면서 그 의의에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그리고 참관사업에서 유람식 현상을 없애고 교양이 되게 목적의식적으로 조직하며 특히 일꾼들이 모범적으로 참가해야 한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또한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군부대들을 현지지도하신 혁명사적내용을 통한 교양사업에도 응당한 관심을 돌려야 한다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1963년 2월 최전연 대덕산초소를 찾으시어 『일당백』의 구호를 제시하신 사적과 1965년 5월 철령을 넘으시어 인민군부대들을 현지지도하신 사적내용만 가지고 교양해도 커다란 감동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리고 군대에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군건설영도업적을 소개선전하는 기록영화와 예술영화도 만들고 소설, 시도 쓰며 노래도 지어야 한다고, 군대안의 문학예술단체들을 잘 발동시키며 창작가들을 위한 강습도 조직하여 그들에게 창작방향을 명확히 줄 데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지금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군건설영도업적에 대한 책이 얼마 없고 그나마도 변변치 않습니다, 책은 항일무장투쟁시기, 조국해방전쟁시기와 전후시기로 갈라서 쓸 수도 있고 종합적으로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과학토론회를 자주 벌여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군건설영도업적을 부문별로 그 내용을 더 풍부히 하여야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책의 집필방향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가르쳐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 안은 일꾼은 심한 자책감을 느꼈다.

인민군대안에 문학예술, 출판보도기관들을 비롯하여 강력한 선전선동기지들과 수단들이 그쯘히 갖추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사상사업의 방향을 똑바로 정하고 실천활동을 적극 벌여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책으로 하여 머리를 들지 못하는 일꾼에게 믿음에 넘친 어조로 위대한 수령님의 군건설영도업적교양사업을 주선으로 틀어쥐고 심화시키면 인민군대의 사상사업에서는 새로운 전진이 이룩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참으로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신 가르치심은 인민군대를 수령님의 군대, 당의 군대로 강화발전시켜 나가는 문제가 전면에 나서고 있던 역사적 시기의 정세적 요구에 맞게 당의 위대성교양의 새 지평을 펼쳐주신 강령적인 지침이었다.

당의 군대, 수령의 군대가 되는 것은 결코 명령과 복종이라는 일반적 군사규율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고 오로지 전군이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지닐 때 이루어질 수 있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탁월한 수령의 영도를 받는다고 하여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수령의 위대성을 알고 그로부터 진심으로 수령을 높이 우러르고 받들 때 형성된다. 결국 수령에 대한 위대성을 깊이 인식시키기 위한 교양사업이야말로 당의 군대, 수령의 군대로 강화발전되는 출발점으로 된다는 가르치심이었다.

바로 이때로부터 인민군대안에서는 수령의 위대성교양의 새로운 장이 펼쳐지게 되었으며 전군에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에서도 결정적인 전진이 이룩되게 되었다.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인민군대에서는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 혁명박물관과 기념관들에 대한 참관사업이 활발히 벌어졌고 수령님의 위대성을 칭송하는 수많은 문학예술작품들이 창작되어 군인교양에 적극 이용되었다.

또한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들을 새로 꾸리기 위한 사업도 활발히 벌어지게 되었으며 혁명사적물들을 통한 교양사업체계도 정연하게 서게 되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전군적으로 진행되는 이러한 위대성교양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었다.

주체60(1971)년 5월 7일이었다.

당시 인민군대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기념일을 계기로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가 있던 곳에 조국해방전쟁사적관을 정중히 꾸리고 개관식을 진행하였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날 새로 꾸린 사적관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입으셨던 원수복을 비롯한 여러가지 사적물들을 보내주시려고 한 일꾼을 부르시었다.

원래 자신께서 그 사적물들을 가지고 조국해방전쟁사적관에 가시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다른 일이 제기되어 가실 수 없게 되자 그 일꾼을 부르신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꾼을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일을 맞으며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가 자리잡고 있던 곳에 사적관을 꾸린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치하하시었다.

새로 꾸린 사적관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40(1951)년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시면서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조직영도하신 불멸의 혁명사적이 깃들어있었다.

그분께서는 수령님께서는 조국해방전쟁시기 그곳에서 제일 오래동안 사업하시었다고, 자신께서도 1952년 여름에 2개월 가까이 최고사령부에서 지냈다고 감명깊이 회고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그때 수령님께서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작전실에서 밤을 밝히시면서 정력적으로 사업하시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수령님께서 최고사령부에서 사업하시던 그때의 하루하루는 간고한 투쟁의 나날이었습니다. 당안에 기어들었던 박헌영, 이승엽도당은 당내비밀을 적들에게 넘겨주었으며 적비행기를 유도하여 최고사령부를 폭격하도록 하였습니다. 한편 사대주의자들과 교조주의자들은 우리 나라의 구체적 실정은 고려하지도 않고 소련식으로 싸워야 한다느니, 중국식으로 싸워야 한다느니 하면서 수령님께서 창조하신 독창적인 군사사상을 반대하고  그 관철을 방해하였습니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안팎의 원수들이 악랄하게 책동하는 어려운 조건에서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를 전쟁승리에로 조직영도하시었습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사적이 깃들어있는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잘 꾸리고 관리하며 참관사업조직도 잘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었다.

이윽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책상위에 나란히 진렬해 놓은 원수복과 외투, 원수모와 항일모를 가리키시며 사적내용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원수칭호를 받으시고 처음으로 입으셨던 진한 보위색원수복과 외투 그리고 정전협정조인문건을 검토하고 비준하실 때와 전승열병식을 사열하실 때에 입으시었던 미색원수복과 곤색바지, 서울을 비롯하여 전선을 현지지도하실 때에 입으시었던 캬바진으로 만든 군복, 수령님께서 최고사령부에서 사업하시며 쓰시던 원수모와 항일모!

사적물 하나하나를 짚어가시며 그에 깃든 사적내용을 말씀해주시는 그분의 안광에는 추연한 빛이 서려있었다.

얼마나 가열처절한 전화의 나날이었던가. 조국과 인민에 대한 가장 열렬한 사랑과 침략자들에 대한 가장 불타는 증오를 지니시고 어버이수령님께서 헤쳐 나가신 전선길은 얼마나 준엄하였던가.

수령님 걸으시는 전선길의 한치앞에서 비발쳐 쏟아져 내리던 그 독하고 역한 화약내와 불기둥의 내음이 아직도 풍겨나는것만 같고 원수격멸의 작전도앞에서 밤을 지새우실 때 군복자락의 갈피갈피에 슴배어 들던 석유등잔불의 그을음이 그대로 안겨오는 듯 한 사연깊은 군복과 군모, 전승광장의 주석단에 오르시어 보무당당히 행진해 나가는 영웅적 인민군장병들에게 열렬한 축하를 보내주시던 어버이수령님의 그토록 늠름하고 멋진 기품이 금시 눈앞에 서려오는 원수복…

뜻깊은 사적물들이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미제를 때려부시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이시며 천재적 군사전략가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뜨겁게 말해주는 귀중한 재보였다.

사적물에 깃든 사연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는 장군님을 우러르는 일꾼은 커다란 감동에 휩싸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랜 세월 소중히 보관해오신 그 귀중한 사적물까지 친히 보내주시며 군인들에 대한 위대성교양에 그토록 깊은 심혈을 기울이시는 그분의 숭고한 뜻이 헤아려져 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격정을 금치 못해하는 일꾼에게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잘 꾸리었으면 후에 한번 가보겠다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약속을 지키시어 그해 7월말에 몸소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찾아주시고 혁명사적교양에서 나서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무릇 역사와 전통은 계승해야 빛이 나고 더욱이 올바로 계승해 나갈 때만이 혁명의 재보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출중한 전통일지라도 후대가 그에 낯을 돌리지 않으면 묻혀 버리고 만다. 마찬가지로 자기의 훌륭한 역사와 전통을 외면한 혁명투쟁은 비바람에 무너지는 사상누각처럼 성공의 탑을 쌓기 힘든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비범한 정치가의 식견으로 벌써 20대에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해방전쟁승리영도사적을 항일의 혁명전통과 더불어 주체혁명과 조선인민군이 영원히 계승하고 빛내어 나가야 할 혁명의 역사적 뿌리로, 만년재보로 보시고 위대성교양의 출발점이 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해주신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꽃을 가꾸는 원예사의 심정으로 수령님의 군건설영도업적을 통한 교양을 시작으로 하여 위대성교양의 새로운 장을 펼치시고 가꾸어오시었다.

그것은 조선인민군을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건설하기 위한 역사의 장엄한 진군길이었다.

 

   

무릇 군영도는 무장력을 이루고 있는 사람과 무장장비에 대한 영도를 뜻한다. 여기에서 어느것을 기본으로 보는가에 따라 군건설과 관련한 노선과 정책이 달라지고 군력강화의 성패가 좌우되며 군대의 면모가 규제된다.

자본주의군사론은 물론 맑스-레닌주의군사론도 군건설에서 무장장비를 기본으로 하고 사람, 정신력보다도 무기를 중시했다.

예로부터 무기중심론에서는 군건설의 총적방향을 병기증강에 두었으며 군인대중을 움직이는것은 강권과 돈에 의거하였다. 돈과 점령지의 전리품으로 병사들을 유혹하여 전장에 내몰거나 군권과 명령으로 군대를 움직이는것이 그들의 용병술이었다.

주체의 군사론은 이와는 판판 다르다. 군인의 사상정신력을 무엇보다 중시하고 사상의 강군건설을 근본원칙으로 내세운다. 때문에 군인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첫자리에 내세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의 작전대곁에서 이러한 주체의 군건설원리를 체득하시었다. 그리고 1960년대 전반기에 그것을 군사이론으로 전면적으로 정립하시었다.

혁명군대의 위력은 본질에 있어서 사상의 위력이다, 그러므로 혁명군대를 무적필승의 강철의 대오로 강화발전시키려면 군인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잘하여야 한다, 이것이 장군님의 군건설에 대한 지론이었다.

그렇다면 군인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어떻게 할것인가, 그분께서는 늘 이 문제에 깊이 파고들면서 군인들의 정치학습에 관심을 돌리시었다.

주체62(1973)년 4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안의 사상사업을 맡아보는 총정치국의 한 책임일꾼을 당중앙위원회청사로 부르시었다.

이무렵 그분께서는 당사상사업을 유일적으로 틀어쥐시고 인민군대안의 사상사업에서 제기되는 크고작은 문제들에 대해 일일이 보고를 받으시며 구체적인 지도를 주시었다.

총정치국의 책임일꾼이 장군님께서 계시는 집무실에 이르렀을 때 이미 대기실에는 당과 국가의 여러 부문 일꾼들이 그분의 가르치심을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있었다.

장군님께서 매우 분망한 시간을 보내고계신다는것을 직감적으로 느낄수 있었다.

이윽고 출입문이 열리더니 장군님께서 집무실에서 나오시었다.

그분께서는 대기실에 있는 일꾼들속에서 총정치국의 책임일꾼을 알아보시고 미소를 지으시었다.

『군대동무부터 먼저 들어오시오.』

경애하는 장군님의 우렁우렁하신 목소리가 대기실을 울렸다. 순간 책임일꾼은 군인답게 힘차게 자리를 차고 일어났으나 가슴이 벅차올라 선뜻 발걸음을 떼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군대사업을 얼마나 중시하시었으면 맨 나중에 도착한 자기를 먼저 만나주시겠는가 하는 생각이 치밀어올랐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일꾼을 친히 집무실로 데리고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혀주시었다.

그분께서는 먼저 정치교양사업정형부터 물으시었다.

그의 보고를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이번에는 정치학습에서 취급된 문제들을 군인들이 어느 정도로 인식하고있는가 를 물으시었다.

책임일꾼은 인민군적인 교양망체계를 통하여 조직진행하는 정치학습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진행되며 그에 대한 군인들의 이해정도에서도 많은 성과가 있음을 말씀드리었다.

장군님께서는 만족하신 표정으로 그의 수고를 헤아려 주시었다.

정치교양사업에서 성과가 있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장군님께서 일찍부터 인민군군인들에 대한 사상교양을 강화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신 결과였다.

문득 일꾼의 뇌리에는 몇해전 어느날 그분으로부터 정치학습과 관련하여 가르치심을 받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정치학습은 인민군대사상교양사업의 기본수단이며 방법입니다, 정치학습만 잘 짜고들면 사상사업에서는 큰 문제를 해결할수 있습니다라고 하시며 그 진행에서 나서는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그분께서는 정치학습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고전적인 노작들과 최근시기 교시들, 그 구현인 당정책을 기본으로 취급하면서도 당면과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문제들도 포함시킬 데 대해 밝혀주시었다. 그리고 정치학습에서는 강의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토론지도를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그래야 한문제라도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당면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혁명역사도록』학습을 수령님의 군건설영도업적과 밀접히 결부하여 실속있게 진행하는데 힘을 넣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혁명역사도록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군건설영도업적을 혁명의 매 시기, 매 단계별로 기본사상으로만 취급하므로 이 부문에 대한 학습을 토론에서 더 심화시켜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었다.

장군님께서 이렇듯 세심히 가르쳐주시고 이끌어주시었기에 당시 인민군군인들의 정치학습은 정연한 체계안에서 조직진행되고 그 수준도 훨씬 높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치학습진행에서는 부분적으로 학습열의가 부족하거나 인식정도가 높지 못한 것을 비롯하여 일련의 결함들도 나타나고 있었다.

일꾼이 이에 대하여 보고드리자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의 인식정도가 높지 못한 것은 정치상학제강에 문제가 있기때문이라고 일깨워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정치상학제강을 구체적실정과 대상의 수준에 맞게 만들지 못하고 천편일률식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정치학습제강을 구체적 실정과상의 수준에 맞게 만들지 못한 자책감이 그대로 읽혀지는 일꾼의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며 장군님께서는 군대에서도 이런 방법으로 만드는 것이 어떤가고 하시며 하나의 학습제강을 보여주시었다.

그 제강은 당중앙위원회의 해당 부서에서 만든 것이었다. 내용자체가 강의에 편리하고 알기 쉬우면서도 생동한 실례들까지 안받침 되어있는 통속적이면서도 대상의 실정에 맞게 서술된 것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제강에 깊이 끌려든 일꾼을 바라보시며 그것을 가져다 참고하여 제강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군대에서도 제강을 군대실정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강을 하나 만들어오면 자신께서 보아주시겠다고 다정히 말씀하시었다.

그후 일꾼은 장군님으로부터 넘겨받은 제강을 본보기로 하여 정치상학제강을 군대실정에 맞게 새롭게 만드는 사업을 포치하고 군인들의 대중적인 의견까지 받아가며 완성하였다.

그리고는 어느날 완성된 학습제강을 경애하는 장군님께 보여드리기 위해 당중앙위원회청사에 찾아갔다.

장군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미루어놓으시고 친히 학습제강을 보아주시었다.

그분께서는 학습제강을 한장한장 넘기시면서 머리글로부터 내용, 맺는 말에 이르기까지의 매 문장, 매 문구를 보아주시고 제강작성의 형식과 방법, 시간배정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세심히 요해하시었다. 그러시고는 학습제강이 잘되었다고 만족해하시면서 또다시 제강작성에서 나서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군인들의 정치학습을 그리도 중시하시는 장군님의 의도를 깊이 새겨가는 일꾼의 가슴은 군인들을 사상의 강자들로 준비시킬 굳은 결의로 끓어번졌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친히 보아주신 학습제강을 본보기로 하여 전군적으로 군인교양에 이용될 강연, 학습, 담화자료와 제강작성에서 새로운 혁신이 일어나고 그에 안받침되어 사상교양사업은 눈에 띄게 개선되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그 일꾼을 통해 새롭게 만든 어느 한 강연제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요해하시고 강연제강을 잘 만든 다음에는 출연하는 강사들이 준비를 잘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강연을 알아듣기 쉬우면서도 실감있고 선동적으로, 군인들의 감정에 맞게 할 데 대하여 일일이 가르쳐주시었다.

장군님의 세심하신 가르치심은 마치도 한장, 두장 책장을 번져가며 제자들을 과학의 깊고도 높은 세계에로 이끌어가는 스승의 다심한 손길과도 같았다.

예로부터 군대는 총과 전쟁밖에 모르는 폭력집단으로 되어왔다.

하지만 우리의 인민군군인들은 하나의 혁명대학에서 군사와 정치사상지식을 다같이 겸비해 나가는 혁명가들이었다. 그야말로 손에 총을 잡고 사회주의와 주체혁명의 명맥을 지키고 인민의 운명을 수호하는 혁명가집단이다.

장군님께서는 바로 이들을 위해 하나의 정치학습제강에도 그렇듯 큰 품을 들이시는 것이었다.

그 하나하나의 학습제강이 군인들의 심장을 충성의 불덩어리로 이글거리게 하고 전군을 위대한 사상강군으로 키우는 양식이 되고 고임돌이 되게 하기 위해 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학습제강을 잘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그 학습제강을 가지고 군인들앞에 출연할 강사들, 사상교양일꾼들의 정치이론수준과 실무적자질을 높이기 위한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었다.

당시 인민군대내 사상교양일꾼들속에서는 사업의욕도 높고 열성도 있으나 정치이론수준이 높지 못하여 군인교양을 원리적으로 깊이있게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었다.

이것은 당시 그들이 체계적인 이론교육을 받지 못한 사정과 관련되어있었다. 그들의 수준문제는 사상교양사업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즉시에 간파하시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 주시었다.

선전일꾼들을 위한 강습소를 새로 내오고 거기에서 철학, 정치경제학 등 정치이론과목들을 집중적으로 배워주어 짧은 기간에 그들의 정치이론수준을 높여 나갈 수 있게 하시었다.

이리하여 강습소가 세워지고 첫 개강식이 진행되었으며 전군적으로 선전사업을 담당한 수많은 일꾼들이 철학과 정치경제학과목을 김일성종합대학 전문학부 다음가는 교육강령에 따라 공부하였다.

이리하여 상설적인 전문교육기관인 강습소의 운영으로 인민군대안의 선전일꾼들의 정치이론수준은 짧은 기간에 올라가게 되었다.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정치학습의 질도 크게 개선되었다.

인민군대의 사상교양사업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유일적 지도를 받으며 새로운 전환의 궤도에서 힘있게 진행되었다.

 

   

혁명군대는 사랑과 증오의 감정이 가장 명백한 집단이다. 조국과 인민에 대한 가장 열렬한 사랑만이 계급적 원수들에 대한 가장 불타는 증오를 낳는다.

그러면 조국과 인민에 대한 가장 열렬한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이것은 군인들에 대한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을 무엇을 핵으로 하여 진행하여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로 된다.

혁명군대의 첫째가는 사명은 조국수호에 있는 것 만큼 군인들에 대한 사상교양에서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시기 군인들속에서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을 어떤 내용을 가지고 심화시키는가 하는 문제가 절실한 시대적요구로 나섰다.

지난 시기 인민군대안의 사상교양사업에서는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을 주로 계급의식과 민족자주의식을 결합시키고 자기 계급과 제도에 대한 사랑을 자기 민족과 조국에 대한 사랑과 결합시켜 진행하였다.

그러다보니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은 인민정권과 사회주의제도, 자립적 민족경제가 있는 사회주의조국을 열렬히 사랑하며 그 융성번영을 위해 싸워 나가야 한다는 측면에서만 강조되었다.

이것은 군대안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기 위한 사업이 더욱 심화되고 사상교양사업의 질적개선이 성숙된 요구로 제기되고 있는 시대발전의 지향에 뒤떨어진 것이었다. 근본적인 혁신이 요구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시대적 요구를 헤아리시고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에 대한 독창적인 사상을 제시하시었다. 그것은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을 자기 수령과 결부시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말하여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을 모든 군인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혁명하는 크나큰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깊이 간직하도록 하는데 중심을 두고 진행하여야 한다는 사상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59(1970)년 6월 중순 어느날 인민군대안의 지휘성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인민군대에서 청년군인들속에서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을 할 때 그들이 수령님께서 계시기에 우리 조국이 세상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사회주의지상낙원으로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잘 알도록 하여야 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밝히신  새로운 사상에 따라  인민군대안에서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사업은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에 대한 교양과 밀접히 결부되어 진행되게 되었다. 그 과정에 군인들의 가슴마다에는 참다운 조국애는 곧 수령님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깊이 심어지게 되었다.

렇게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의 새로운 길을 밝혀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직접 교양자가 되시었다. 그리고 모든 군인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에 기초한 열렬한 조국애, 민족애의 감정을 뜨겁게 지니도록 따뜻이 이끌어주시었다.

장군님께서 주체62(1973)년 8월 어느날 금강산지구를 찾으시어 부대들의 전투준비상태를 요해하실 때였다. 그 일대의 방어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구상을 펼쳐가시던 장군님께서 구룡연을 찾으시었다.

그분을 모신 일행이 구룡연에 도착한 것은 낮 1시경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전망대가 아담하게 꾸려진 정각에 올라 폭포를 바라보시었다. 높이 74m, 너비 4m의 웅장한 구룡폭포가 마치나 푸른 하늘에서 드리워진 비단필의 휘날림인양 끊임없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폭포수의 장쾌한 메아리가 온 골안을 뒤흔들었다. 눈앞에는 수수천년 내려오며 비바람에 씻기고 다듬어진 절묘한 바위들과 문양을 수놓은 듯 한 갖가지 나무들과 온갖 꽃들이 한데 어우러져 그야말로 천하절승의 경개가 펼쳐져 있었다.

천하절경을 부감하는 지휘성원들의 가슴속에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구룡연으로 오르시면서 하신 말씀이 새삼스럽게 파고들었다.

장군님께서는 구룡연으로 오르시던 길에 옥류담을 지나고 연주폭포를 지나 무봉포휴식터에 이르시어 한동안 걸음을 멈추시었다.

잠시 절경을 부감하게 된 지휘성원들의 얼굴마다에는 걷잡을 수 없는 기쁨이 어려있었다.

평소의 진중한 기품의 무관들답지 않게 웃고 떠드는 그들을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금강산이 아름답기로 소문났지만 옛날에는 돈이 많은 사람들이나 와보았지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가난한 사람들은 와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누구나 다 금강산에 찾아와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금강산이 오늘과 같이 누구나 다 찾아와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명승지로 된 것은 수령님께서 조국을 찾아주시고 인민의 명승지로 꾸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장군님의 말씀을 되새겨보는 지휘성원들은 꽃을 보아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고 천하절승의 자연경개의 아름다움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 없었던 어제날의 불행한 인민들을 금강산과 같은 보물단지의 주인으로, 행복의 향유자로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에 대하여 진정 가슴뜨겁게 느끼었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라를 찾아주시고 인민의 세상을 만들어주시지 않으셨던들, 금강산이 아무리 천하절경이라 한들 어찌 오늘과 같은 기쁨과 행복의 명소로 될 수 있으랴!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날 구룡연에서 주둔지역 구분대의 군인들을 만나주시었다.

그들의 군무수행정형에 대하여 일일이 헤아려보신 그분께서는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군인들을 가까이에 부르시었다.

군인들이 메었던 총을 어떻게 하고 사진을 찍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자 그분께서는 밝게 웃으시며 말씀하시었다.

『총을 멘채로 사진을 찍읍시다. 군인들은 총을 메고 사진을 찍어야 기념이 됩니다. 오늘 비까지 맞으면서 찍으니 진짜 기념사진을 찍는 맛이 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 두리에 혁명의 총대를 억세게 틀어 잡고 성벽처럼 둘러선 병사들, 그들모두의 어깨너머로 펼쳐진 금강산 1만 2천봉우리의 절승경개…

정녕 당과 수령의 현명한 영도아래 마련된 사회주의조국의 선경을 혁명의 총대로 끝까지 지켜가려는 전사들의 신념의 맹세가 그대로 안겨오는 뜻깊은 화폭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사진촬영이 끝난 후에도 흩어질 줄 모르고 더욱 가까이 에워싸는 군인들과 이야기를 계속 나누시었다.

그분께서는 금강산을 장차 세계에서 으뜸가는 유원지로 꾸려야 한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었다.

『금강산을 지켜선 초병들은 조국산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하며 아름다운 조국이 어떻게 마련되고 오늘의 행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조국보위에 대한 각오도 더 굳게 가질 수 있고 맡겨진 혁명임무도 잘 수행할 수 있습니다. 초병들은 금강산을 지켜선 긍지를 가슴깊이 간직하고 군사복무를 성실하게 하며 사회주의조국을 목숨으로 지켜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어 아름다운 조국도, 인민의 행복도 있다는 고귀한 진리를 뜨겁게 받아 안게 하는 가르치심이었다.

그 말씀에서 군인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주시고 빛내어주시는 사회주의조국을 지키는 길에서 총대병사의 본분을 다해갈 굳은 결심을 다지고 또 다지었다.

그다음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금강산지구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시고 해병들과 함께 어뢰정에 오르시어 바닷길을 떠나시었다.

그분께서는 해도를 보시고 나서 정장에게 총석정쪽으로 붙어가자고 말씀하시었다.

얼마후 어뢰정은 바다위에 보기 좋게 은선을 그으며 총석정을 가까이하고 서서히 달렸다.

푸르른 바다와 육지의 계선을 의미하듯 가쯘한 돌기둥무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총석정의 경치 또한 절경이었다.

머리위에 푸른 소나무를 이고 높이 솟은 사선봉이며 서있는 듯 앉아있는 듯 누워있는 듯 한 천태만상의 돌기둥벽…

장군님께서는 어뢰정을 타고 바다에서 총석정을 바라보니 뭍에서 보는것보다 더 아름답고 웅장합니다, 동해안에는 총석정같은 경치좋은 곳이 많습니다, 우리 나라의 동해는 조국의 북단 서수라로부터 시작하여 그 어디에 가보나 아름답습니다, 정말 우리 나라는 맑은 아침의 나라, 명승의 나라입니다, 조국의 아름다운 경치를 늘 보는 해병들은 얼마나 좋겠습니까라고 깊은 감명을 담아 말씀하시었다.

그러시고는 해병들에게 동무들은 총석정을 그저 무심히 보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수령님께서 조국을 찾아 주시었기 때문에 우리가 총석정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수령님을 떠나서는 아름다운 총석정도, 조국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수령님과 조국은 하나로 이어져있습니다.』

그분의 가르치심에 귀기울이던 지휘성원들과 해병들은 한순간에 숭엄해지는 격정에 휩싸이었다.

수령님을 떠나서는 아름다운 총석정도 조국도 생각할 수 없다, 수령님과 조국은 하나로 이어져있다, 그것은 위대한 철학이고 생활의 진리었다.

수령님과 조국!

흔히 사람들은 조국이란 아득히 먼 옛날부터 조상들의 뼈가 묻혀있고 선조들의 넋이 어려있으며 어린시절의 추억이 서려있는 정다운 곳이라고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새겨져 있는 조국이란 개념과는 너무도 먼거리를 둔 것이다.

인민모두에게 참된 삶과 행복, 존엄과 영예를 안겨주고 휘황한 미래를 담보해주는 크나큰 요람, 그것 없이는 살수 없는 한없이 소중한 어머니품이 바로 조국이다.

그 품은 다름아닌 위대한 수령님의 품이다.

이 땅에 태를 묻고 살아가는 민족성원들의 존재와 발전, 운명은 모두 수령님과 연결되어있다.

반만년민족사에 처음으로 맞이한 운명의 태양 위대한 수령님을 모심으로 하여 조국산천에 생이 약동하고 인민의 행복이 꽃펴나는 것이다.

우리 조국은 곧 위대한 수령님이시고 수령님은 곧 조국이시라는 것,  이는 우리 인민이 자기 운명을 개척해오는 나날에 스스로 터득한 생활의 철리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역사의 진리로 군인들을 각성시키시고 그들스스로가 진정한 조국애, 사회주의애국주의는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심오한 혁명원리를 깨닫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전선동부, 금강산지구 구분대들에 대한 현지지도노정에는 이렇게 전투력강화와 더불어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심화발전시키신 빛나는 영도업적이 자국자국 아로새겨졌다.

 

   

 군인들에 대한 정치사업, 사상교양의 궁극적목적은 대오의 통일단결에 있다.

총대를 틀어 잡은 군인집단은 고도로 정예화되고 통일단결될 때 자기의 위력을 최상의 높이에서 발휘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단결은 곧 힘이다. 하나로 통일단결된 무장대오만이 제국주의자들의 그 어떤 정치적, 사상문화적, 군사적 공세에도 흔들림 없이 사회주의수호자로서의 자기의 사명을 다할 수 있다. 이것은 역사에 의해 검증된 철리이다.

그렇다면 총대집단의 통일단결은 어떻게 이루어 나가야 하는가. 강한 요구성과 명령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 시기 군건설에서 제기되는 이러한 시대적물음에 혁명적 동지애에 기초하여 전군이 수령의 두리에 하나로 통일단결될 때 해결된다는 사상을 제시하시고 혁명적 동지애의 산 모범을 보여주시었다.

주체62(1973)년 2월초 어느날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군대안의 지휘성원들앞에서 인민군대가 불패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될 수 있은 힘의 원천이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에 기초한 혁명대오의 통일단결에 있다는 뜻깊은 연설을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자신께서 15살까지 부모의 사랑을 받다가 그 이후부터는 계속 동지들의 사랑을 받아온데 대하여 감명깊이 회고하시면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동지들이 나를 받든 것은 그들이 조국이 해방되면 자신께서 국가수반이 되리라는 것을 생각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의 사상에 기초하여 혁명대오가 굳게 통일되어야 조선혁명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혁명의 철리로 확신하였기 때문이었다고 교시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는 오늘 혁명적 동지애의 전통적 미풍을 더욱 높이 발양하고 그에 기초하여 혁명대오의 통일단결을 강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날 저녁 인민군대안의 한 정치일꾼을 찾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동무는 수령님께서 오늘 왜 혁명적 동지애에 대하여 그토록 강조하시었는가를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우리 혁명대오안에서 높이 발휘되었던 혁명적 동지애의 전통적미풍을 더욱 높이 발양시켜 나갈 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그분께서는 혁명적 동지애의 미풍을 높이 발양시키며 그에 기초하여 대오의 통일단결을 이룩하자면 군인들속에서 사상교양과 사상투쟁을 힘있게 벌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혁명적 동지애에 기초한 단결을 강화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군인들을 수령님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 것입니다.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떠나서는 참다운 동지적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공고한 통일단결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모든 군인들이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그의 요구대로 한사람같이 사고하고 행동할 때에만 혁명적 동지애가 높이 발양 되고 통일단결이 더욱 강화될 수 있습니다.』

혁명적 동지애는 혁명의 길에서 사상과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사이에 맺어지는 사랑이다. 사람들사이의 관계를 동지적 관계로 되게 하는 공통분모가 사상과 뜻인 것 만큼 그것은 혁명적 동지애에서도 핵을 이룬다.

혁명가들은 누구나 수령의 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그 요구대로 행동할 때 참다운 동지적 관계를 맺을 수 있고 혁명대오의 통일단결도 훌륭히 실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누구든지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무장하고 그의 요구대로 사고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대오의 통일단결에 저애를 주고 혁명앞에 엄중한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을 실례를 들어가며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계속하여 혁명적 동지애에 기초한 단결을 강화하자면 사상교양과 함께 대오안에 원칙적인 비판의 분위기를 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혁명적 동지애는 원칙적 비판을 통하여서만 높이 발양될 수 있습니다. 혁명조직성원들은 비판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여야 결함을 제때에 고칠 수 있고 서로 돕고 이끌면서 혁명사업을 끝까지 잘해  나갈 수 있습니다.』

동지에 대한 사랑은 뜨겁고 진실할 뿐 아니라 원칙적인것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 장군님의 뜻이었다.

혁명의 원칙앞에서는 아무리 가까운 동지라 할지라도 타협도 양보도 몰라야 하며 바로 여기에 참된 동지애의 진가가 있다.

혁명투쟁에 나선 사람들은 이렇듯 진정한 동지적 사랑을 지닐 때만이 혁명의 길에서 사상과 뜻을 같이하고 사소한 과오를 범하여도 제때에 바로잡아주며 수령의 혁명위업실현에 한몸바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에 담겨진 이런 심오한 뜻을 새길수록 일꾼은 위대한 혁명동지이시고 스승이신 장군님에 대한 경모심을 금할 수 없었다.

어느덧 밤은 깊어갔으나 그분의 가르치심은 계속되었다.

그분께서는 혁명적 실천과정을 통하여 혁명적 동지애를 높이 발양해 나갈 데 대하여 가르쳐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혁명적 동지애는 당의 노선과 방침을 관철하는 실천투쟁속에서 맺어지고 공고발전됩니다. 당의 노선과 방침을 관철하는 투쟁은 모든 군인들을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혁명전사로 키울 뿐 아니라 인민군대안의 사상의지적 단합을 이룩해 나가는 과정으로 됩니다. 당의 노선과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통하여 부대안에 상하간, 동지호상간의 단결을 강화하며 군사일꾼들과 정치일꾼들이 합심하여 모든 사업을 힘있게 밀고 나가는 기풍을 세우도록 하여야 합니다.』

인민군대를 혁명적 동지애에 기초하여 굳게 통일단결된 불패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켜 나가시려는 장군님의 원대한 뜻과 숭고한 의지가 맥맥히 굽이치는 가르치심이었다.

그분의 가르치심의 자자구구를 천연바위돌에 쪼아박 듯 심장속깊이 새겨 넣으며 일꾼은 혁명적 동지애를 높이 발양하여 전군의 통일단결을 이룩해 나가는데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칠 결의를 다지고 또 다지었다.

사상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생사운명도 같이하여야 한다.

혁명적 동지애에 기초하여 전군을 생사운명을 같이하는 충성의 대오로 만들자, 이것이 김정일장군님의 뜻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숭고한 뜻을 지니시고  혁명동지들로부터 충성을 받으시기 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시어 그들 한사람한사람을 키우고 이끌어 혁명동지대오에 세워주시었다.

이무렵 인민군대의 정치사업을 맡아보는 한 책임일꾼이 외진 산골짜기에서 격리치료를 받고 있었다.

워낙 몸이 허약한 그는 심한 질병까지 겹치여 얼마전부터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일체 피하여 격리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기별도 없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그를 찾아오시었다.

『잘 있었습니까? 벌써 찾아온다는 것이 늦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이렇게 친근하게 말씀하시며 일꾼에게로 다가오시었다.

자신의 병상태를 금시 잊고 너무나 뜻밖에 찾아오신 그분을 향해 걸음을 옮겨짚던 일꾼은 다음순간 굳어지더니 그만 뒤걸음쳤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새로 생긴 병적 증상으로 가까이 모실 수 없으니 돌아가주십시오. 간절한 부탁이옵니다.』

『찾아온 손님을 대접을 못할망정 아버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아니, 정말 접촉해서는 안됩니다.』

그분께서 그러는 일꾼을 달래였으나 그는 돌아가시라는 손시늉만 하면서 계속 멀어지려고 애썼다.

한달음에 달려와 안기고싶은 마음을 눅잦히며 그냥 물러서는 일꾼을 측은한 눈매로 바라보시던 그분께서는 저으기 갈리신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나도 동무의 병적증상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설사 그렇다고 칩시다. 그래 나를 동지의 아픔보다 제 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 작정입니까.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자기를 위해서 바라는 것보다 남을 위해서 바치는 것이 더 많아야 하는 것이 혁명동지들 호상간의 관계인데 그것이 빈말로 끝나서야 되겠습니까. 너무 그러지 마시오.』

자신의 신상에 미칠 화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으시고 그냥 다가서시는 그분앞에서 일꾼은 더는 어찌할 수 없었다.

그는 금시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마음속의 격정을 애써 참으며 자기의 임무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데 장군님께서 이렇게 찾아까지 오시게 하여 정말 면목이 없다고 말씀드리었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도리여 자신께서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내가 찾아오는 것으로 동무의 병이 나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오겠습니다.

앞으로 할일은 많으니 건강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오랜 시간을 환자와 함께 보내시었다.

그분께서는 환자가 신병으로 하여 마음이 약해질세라 병에 포로되어 우울해하거나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운동도 하고 낙천적으로 생활하여야 한다고 깨우쳐주시면서 치료대책도 세워주시었다.

마주앉아 식사도 함께 하시고 외진 곳에서 적적하게 지낼 것을 염려하여 자신께서 애용하시던 녹음기도 남겨두시었다.

옹근 한나절을 병을 잊은채 행복의 무아경속에 보내다가 드디어 장군님께서 떠나셔야 할 시각을 맞게 되자 일꾼은 자신을 주체못한채 눈물을 쏟고 말았다.

병든 자식을 뒤에 두고 떠나지 않으면 안된 친부모의 아픈 마음이런듯 장군님께서는 위로의 말씀만 거듭할 뿐 쉬이 걸음을 떼지 못하시었다.

이젠 어서 들어가라고 차창밖으로 손저어 주시던 그분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지만 돌처럼 그냥 굳어져있는 그의 양뺨으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한생 저렇듯 위대한 분을 온 넋을 다해 따르고 받들리라. 오직 그분만을 가슴속깊이 간직하고 한생을 바쳐 충성다하리라!…)

이런 굳은 결심이 성벽마냥 굳어지는 속에 언제 어디서나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자기를 위해서 바라는 것보다 남을 위해서 바치는 것이 더 많아야 하는 것이 혁명동지들 호상간의 관계이라고 하신 장군님의 말씀의 뜻이 깊이 헤아려져 왔다.

심한 질병에 걸려 일체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외진 산골짜기에서 격리치료를 받고 있는 자기를 찾아주신 장군님의 사랑이야말로 동지를 위해서 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시는 무한한 헌신성, 희생성의 발현이었다.

병에 걸린 자식의 신상을 두고 애태우는 친부모의 심정인들 이에서 더하랴!

무릇 사랑은 아름답기 때문에 성스러운 것이 아니라 성스럽기때문에 아름답다고 한다.

이 세상에 성스럽다면 그분께서 베푸신 사랑보다 더 성스러운 사랑이 어데 있으며 그렇듯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또 어데 있으랴.

어버이장군님으로부터 받아 안은 불보다 뜨거운 그 사랑은 그의 작은 가슴에 통채로 안겨진 우주와 같이 무한 대한 것이었다.

생각할수록 그분의 위대한 사랑의 크기가 천만산악의 높이와 무게로 다가왔다.

혁명가는 동지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서슴없이 바칠 줄 알아야 한다는 철리의 의미를 행동으로 보여주시고 신념으로 새겨주신 장군님의 숭고한 동지애의 세계에 빠져들수록 일꾼의 뇌리에는 장군님의 영원한 총대동지로 참답게 살아나갈 신념이 깊이깊이 새겨졌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렇게 한사람 한사람의 총대동지를 얻으시고 키우시었다.

군영도는 명령으로 하기 전에 동지애로 하여야 한다는 것, 이 세상에 동지애로 뭉쳐진 힘보다 더 큰 힘은 없으며 혁명군대의 사상과 단결의 위력은 곧 혁명적 동지애의 위력이라는 것이 그분의 지론이었다.

사랑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다.

절세의 위인의 위대한 동지애에 고무되어 인민군대는 사상과 뜻을 같이하고 생사운명을 같이하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동지세계로 가꾸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