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현실은 새로운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다. 항일혁명의 깊고 억센 전통을 빛나게 이어가시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선군혁명영도는 1960년대말에 이르러 새로운 정치방식인 선군정치의 장을 펼쳐놓았다.

그것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위대한 선군정치를 펴시어 선군혁명의 새로운 발전단계를 열어놓으신 역사의 분수령이었다.

새로운 정치의 출현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과학적이고 혁명적인 정치이념이 있고 그것을 펴나갈 수 있는 조건이 충분히 성숙되었을 때 가능하다.

선군정치의 이념적 기초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창시하신 주체의 선군사상이다.

선군사상은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혁명투쟁은 총대를 가지고 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총대중시, 군사중시의 사상이다.

선군사상의 과학성과 혁명성, 정당성은 항일대전에서의 승리와 건당, 건국, 건군위업의 수행, 1950년대 조국해방전쟁에서의 승리와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책동과 미제의 새전쟁도발책동을 짓부수고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사회주의를 굳건히 고수하여 온 선군혁명역사가 실증해주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선군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투쟁에 자신의 모든 정력을 다 바쳐오시는 과정에 이미 오래  전부터 선군정치를 펴실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성숙시켜 오시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께서 인민군대를 확고히 틀어쥐신 것이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49(1960)년 8월 25일 조선인민군 근위 서울유경수105탱크사단을 현지지도하시어 선군혁명영도의 거룩한 첫 자국을 새기신 때로부터 근 10년간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수백차례의 끊임없는 정력적인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오시었다..

이 과정에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 대한 정치사상적 영도와 군사작전지휘의 기초를 튼튼히 쌓으시어 전군을 확고히 틀어쥐시었으며 인민군대의 정치사상적, 군사적 위력을 강화하시어 선군혁명의 핵심부대, 본보기를 마련하시었다..

이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특출한 정치군사적 실력이 가져온 열매였으며 선군정치실현의 결정적 조건으로 되었다.

공적이 크면 세인의 관심과 추앙이 따르기 마련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특출한 정치군사적 실력과 군건설에 쌓으신 위대한 업적으로 하여 조선노동당의 영도자로 공식추대되시기에 앞서 인민군대의 영도자로서 전체 인민군장병들의 절대적인 신뢰와 흠모를 받으시었다.. 인민군지휘성원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을 혁명의 지도자로서만이 아니라 최고사령관으로 대하고 받들어 모시었다..

인민군대와 장군님사이의 이러한 밀접한  관계발전에 대해 누구보다 기뻐하신 분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었다..

마침내 중대한 결단이 내려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비범한 군사적 자질과 특출한 업적에 탄복하시어 경애하는 장군님께 인민군대사업을 맡아 영도할 데 대한 과업을 주신 것이다.

1960년대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바로 이때부터 수령님의 선군사상과 선군혁명노선을 계승하여 인민군대를 강화하는 것을 선차적인 과제로 내세우시고 군영도의 새로운 장을 펼치시었다..

그것은 명실공히 총대중시,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인민군대를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강화하고 인민군대를 주력군으로, 본보기로 하여 혁명과 건설의 전반을 밀고 나가는 선군정치의 시작이었다.

1960년대말 인민군대의 정치군사적 위력을 강화하기 위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선군영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주체58(1969)년 1월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당위원회 제4기 제4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였다.

이 무렵 군대안의 책임적 위치에 있던 자들이 사상적으로 변질되어 당조직과 정치기관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전횡과 독단을 부리며 전투력강화에 저애를 주고 있었다. 지어 이자들은 군대안의 당조직과 정치기관을 좌우지하면서 인민군 총정치국이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서들과 연계를 가지지 못하게 하면서 당의 지도와 통제를 거부해 나섰다. 이것은 인민군대를 개인의 농락물로 만들고 당을 무장해제시키려는 엄중한 반당행위었다. 어떤 단위들에서는 자위적 군사노선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고 군사훈련도 실속있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민군대의 고상한 전통적 미풍인 관병일치, 군민일치를 심히 훼손시키는 엄중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것을 내버려둔다면 당의 군대, 수령의 군대로서의 조선인민군의 면모를 손상시키고 군력강화에 돌이킬 수 없는 훗과를 초래할 것이었다.

그런데도 군대안에서는 적지 않게 이러한 현상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군벌관료주의의 정체는 아직 짙은 안개속에 잠겨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복잡다단하게 엉켜진 현상속에서도 그 본질을 예리하게 꿰뚫어보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비상한 정치감각과 통찰력으로 사태의 진상을 헤아려보고 계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안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심화시켜 나가는 과정에 드러난 일부 일꾼들의 전횡과 독단이 다름 아닌 위험한 군벌관료주의라고 낙인하시었다..

군벌관료주의는 군대안에 정연하게 세워져 있는 정치사업체계가 제구실을 못하게 만들고 모든 것을 군사명령, 군권으로 해결하려는 군사독단주의, 군사만능주의였다. 그것은 군사의 주인인 군인대중의 창발성을 억제하여 혁명군대의 본질적 우월성인 정치사상적 위력을 강화할 수 없게 하는 매우 유해로운 사상독소였다. 그것이 깊이 뿌리 내리면 당의 영도가 마비되고 군대가 「비정치화」, 「비사상화」의 길에 떨어져 종당에는 혁명의 총대로 사회주의를 지켜낼 수 없게 될 것이었다.

바로 이러한 위험천만한 독소는 맹아단계에서 제거되어야만 하였다.

주체58(1969)년 1월에 진행된 조선인민군 당위원회 제4기 제4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는 군벌관료주의를 뿌리뽑는 역사적인 회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의를 지도하시었다..

시종 긴장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된 회의과정에 군벌관료주의가 어떻게 나타났고 어떤 해독적 훗과를 끼쳤는가 하는 것이 낱낱이 드러났다.

회의참가자들은 장군님의 예리한 정치적 통찰력에 의해 군벌관료주의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것을 뿌리뽑기 위한 역사적 회의가 마련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총정치국의 한 일꾼의 뇌리에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며 군벌관료주의자들의 움직임에 각성을 가지고 대하기 시작했던 지난날의 일들이 떠올랐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군벌관료주의적 경향의 첫 실머리를 잡으신 것은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노선과 4대 군사노선관철을 위해 인민군대의 실태를 깊이 파악하는데 힘을 넣고 계시던 무렵이었다.

어느날 당중앙위원회의 어느 한 부서에 가서 일을 보고 방을 나선 인민군 총정치국의 그 일꾼은 복도에서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바쁜 걸음으로 마주 오고 계시었던 것이다.

그분으로부터 자주 인민군대정치사업과 관련하여 가르치심을 받아오군 한 그는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장군님께서는 반가움을 금치 못하시며 그러지 않아도 찾으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다고 하시며 그를 방으로 이끄시었다..

그분께서는 대뜸 얼마 전에 어느 한 연합부대에서 시범방식상학을 했다는데 무슨 문제를 가지고 했는가고 물으시었다..

그 시범방식상학이란 민족보위성의 책임일꾼이 어느 한 단위에 숱한 지휘관들을 모여놓고 조직한 것이었다. 거기에서 취급된 문제의 하나가 정치사업을 강화할 데 대한 문제인데 실지는 군대안에서 당적 지도를 약화시키려는 불순한 목적을 담은 모임이었다.

일꾼은 그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

그러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요즘 뛰뛰한 소리가 들려오기에 웬걸 그러랴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뜬소문은 아니었다고 진중하게 말씀하시었다..

그분의 안광에는 근엄한 빛이 어리었다.

그분께서는 이번 시범방식상학은 군대안에서 당위원회의 영도적 역할을 강화하고 당정치사업을 더 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위원회를 약화시키고 군벌주의를 조장시키게 한 「시범방식상학」이었다고 하시면서 군대의 「특수성」을 내걸고 개별적인 지휘관을 내세우며 당위원회를 약화시키는 것은 아주 위험한 경향이라고 엄하게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었다..

『…방식상학에서 인민군대에서는 당위원회운영계획이 필요없고 군사지휘관이 제기하는 문제를 그때그때 토의하면 된다고 하였다는데 그것은 각급 지휘기관안에 당위원회를 내온 당의 의도와 맞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이것은 결국 당위원회를 무시하고 당위원회를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한개 부서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하면 절대로 안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었다..

대번에 현상속에 묻혀있는 본질을 끄집어내시는 장군님의 비범한 통찰력과 분석판단력앞에서 일꾼은 감탄과 함께 자책의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것은 당사업을 한다는 정치일꾼이 군대의 「특수성」을 내걸고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자들의 놀음을 보고도 그 본질과 위험성을 식별하지 못했으니 이런 자신이 무슨 정치일꾼인가 하는 죄송스러운 마음에서였다.

그 일꾼의 이런 심중을 헤아리시며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당일꾼이라면 누구나 흑백을 가려볼 줄 아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각급 당위원회의 영도적 역할을 높여 개별적 군사지휘관들이 독단을 부리는 현상을 철저히 없애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이때만이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그후 여러 차례나 그를 만나 군벌관료주의자들의 움직임을 각성을 가지고 대할 데 대하여 일깨워주시었다..

주체57(1968)년 6월초 어느날에도 그분께서는 인민군대의 한 책임일꾼이 어느 한 부대에 내려가 여러 명의 군관들을 처벌하고 제대시켰다는데 과오가 어떤 것인가를 물으시었다.. 그는 그들의 과오란 청소사업을 잘못했거나 후방사업을 좀 잘못한 것과 같은 것들이라고 말씀드렸다.

그의 대답을 들으시고 장군님께서는 책임일꾼이 별치 않은 문제를 트집잡아 비판하고 교양하여 고쳐줄 수 있는 지휘관들까지 무리로 처벌하고 제대시킨 것은 매우 잘못한 일이라고, 당에서 공들여 키운 지휘관들을 자기 비위에 거슬린다고 하여 제멋대로 처벌을 주고 군대에서 내쫓았다고, 지난 시기에도 그런 짓을 하기 때문에 당에서 비판을 주었는데 계속 나쁜 장난을 하고 있다고, 그의 행동은 우리 당이 내세운 전군간부화방침을 거역하는 반당행위라고밖에 달리 볼 수 없다고 준절히 말씀하시었다..

그 일꾼만이 아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주 군부대들에 나가시어 일꾼들을 만나시는 과정에 극심한 전횡과 독단을 부리면서 아첨분자들을 긁어모아 저들의 지반을 닦으려는 군벌관료주의자들의 책동의 위험성을 간파하시었으며 일꾼들이 그에 높은 각성을 가지고 대하며 원칙적으로 투쟁하도록 이끌어주시었다..

「푸에블로」호사건을 계기로 나라의 정세가 극도로 긴장해졌던 주체57(1968)년 여름 어느날 동해안일대의 방어임무를 수행하는 한 인민군부대를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부대의 책임일꾼으로부터 부대사업에 대하여 요해하시다가 군대안의 나쁜 놈들이 교활한 방법으로 친척들과 자기 비위에 맞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면서 종파적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나쁜 놈들이 하는 행동에 대하여 경각성을 높이고 원칙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엄하게 지적하시었다..

이것은 군대안에 나타난 군벌관료주의에 대하여 제때에 울리신 경종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특히 인민군대안에서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 문헌접수토의사업을 높은 정치사상적 수준에서 진행하도록 이끄시어 그 과정에 군벌관료주의의 정체가 드러나도록 하시었다..

주체56(1967)년 5월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인민군 총정치국의 한 책임일꾼을 통하여 인민군대안에서의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 문헌접수토의사업정형을 요해하시고 군대안의 일부 간부들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당의 유일사상체계와 어긋나는  부정적 현상들을 극복하고 인민군대를 위대한 수령님의 군대, 당의 혁명무력으로 더욱 강화하시려는 자신의 의도를 알기 쉽게 말씀해주시었다.. 그리고 문헌접수토의사업이 당의 의도대로 진행되도록 하기 위하여 이해 6월 한달사이에만도 무려 5차례나 인민군대안의 당정치사업을 지도하여 주시었다..

그것은 그대로 인민군대의 책임적 위치에 있던 자의 전횡과 독단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이었다.

사실 그자의 군벌관료주의적 전횡과 독단은 당의 군사노선과 정책에 도전해 나서는 위험한 행위였다.

그 무렵 그자는 군대에서 차지한 직위를 악용하여 자기 비위에 거슬리는 숱한 사람들을 제 마음대로 철직제대시키는가 하면 자기를 내세우는 기록영화도 만들고 개별적 사람들속에서 자기에 대한 환상과 아부아첨을 조성하고 군대안에서 「대왕」행세를 하려고 하였다. 지어 그자는 자위라는 말도 쓰지 못하게 하면서 인민군대를 당과 수령의 영도에서 떼내려고 꾀했다.

자룻속의 송곳은 감출 수 없다. 군벌관료주의자들의 정체는 드러나고야 말았던 것이다.

군벌관료주의자들의  반혁명적 정체를 전면적으로  까밝히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모든 사실을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 드리시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조선노동당의 강군건설역사에서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인민군당위원회 제4기 제4차 전원회의 확대회의가 소집되게 되었던 것이다.

심각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된 회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자료를 가지고 군벌관료주의자들의 죄행을 폭로단죄하였다. 정치적 각성이 없이 그에 맹종맹동했던 일꾼들은 자신을 깊이 뉘우쳤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를 결속하시면서 군벌관료주의자들이 뿌려놓은 사상여독을 뿌리빼며 인민군대를 불패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강령적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인민군당위원회 제4기 제4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는 주체의 군건설사에 역력한 자욱을 남긴 역사적 회의였다.

이 회의는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를 약화시키고 군대의 강화발전에 커다란 해독을 끼친 군벌관료주의를 폭로분쇄함으로써 인민군대안에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군체계를 확고히 세우고 선군혁명위업을 계승해 나가는 길에서 새로운 분수령으로, 인민군대를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강화발전시키는데서 역사적 전환의 계기로 되었다.

훗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뜻깊은 자리에서 이때의 일을 회고하시면서 군벌관료주의자들의 배신행위를 제때에 폭로분쇄하고 우리 인민군대를 당의 군대로 강화발전시켜 온 것은 전적으로 김정일동지의 공적이라고 높이 평가하시었다..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 인민군대앞에는 지난 시기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사업, 방대한 과제들이 제기되고 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군건설에서 절박하게 제기된 중대한 과제들을 자신께서 풀어 나갈 것을 결심하시었다..

이무렵 경애하는 장군님의 군영도의 총적 지향점은 수령의 유일적 영군체계확립에 있었다.

혁명군대에 있어서 영군은 철두철미 수령의 영도실현과정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지론이었다.

이것은 혁명군대는 수령에 의하여 창건되고 수령의 혁명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하여 강화발전되는 수령의 군대이며 수령의 혁명위업실현의 무기이라는 그 본성과 사명에 대한 독창적인 해명에 기초하여 제시된 군건설의 근본원리이고 원칙이었다.

유일적 영군체계를 확립하자면 군벌관료주의자들이 인민군대안에 끼친 사상여독을 철저히 뿌리빼고 인민군대안의 각급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의 기능과 역할을 최대한 높이고 군사사업전반에 대한 당적 지도를 강화해야만 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당위원회 제4기 제4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적발폭로된 군벌관료주의의 사상여독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을 전군적으로 실속있게 벌리도록 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인민군당위원회 제4기 제4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접수토의하는 전군적인 사상투쟁회의가 당의 의도대로 정확히 진행되도록 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었다.. 그분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와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일꾼들을 부르시어 군벌관료주의자들의 사상여독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에서 견지할 원칙적 문제들에 대하여 밝혀주시었다.. 그리고 그자들이 저지른 죄행을 군대간부들에게 똑똑히 알려주고 여독청산투쟁을 비판을 위주로 하여 진행하며 사상투쟁에서 총정치국일꾼들이 앞장에 설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전군적인 사상투쟁회의가 성과적으로 진행되도록 하기 위하여 강력한 지도역량을 파견하시고 회의의 전 과정을 세심히 보살펴주시었으며 사상투쟁의 성과가 전군의 일심단결을 더욱 강화하고 인민군대의 싸움준비를 완성하는데서 나타나도록 이끌어주시었다..

인민군대에 대한 수령의 유일적 영군체계확립에서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의 기능과 역할을 높이고 군사사업전반에 대한 당적지도를 강화하는 것은 특별히 중요한 문제로 나섰다. 그것은 군대에 대한 당과 수령의 영도가 바로 군대안에 꾸려져 있는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을 통하여 실현된다는 사정과 관련된다.

인민군대안의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은 결국 당과 수령의 영군실현의 무기인 것이다.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이 제구실을 못하면 그 결과는 인민군대에 대한 당과 수령의 영도를 약화시키는 엄중한 후과로 나타나게 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벌관료주의로 인한 역사적 교훈을 누구보다 깊이, 가슴아프게 통감하시였기에 결연히 수령의 유일적 영군체계확립의 기치를 추켜드시고 인민군대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을 강화하는 문제를 이 시기 가장 절박한 과업으로 제시하신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58(1969)년 1월 19일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및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일꾼들과 「인민군대 당조직과 정치기관들의 역할을 높일데 대하여」라는 역사적인 담화를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담화에서 먼저 인민군당위원회 제4기 제4차전원회의 확대회의가 인민군대안에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튼튼히 세우고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를 확고히 보장하며 군대의 전투력을 강화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는데 대하여 지적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지난 기간 군벌관료주의자들이 저지른 죄행가운데서 가장 엄중한 것은 인민군대안에서 당조직과 정치기관들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를 약화시킨 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지적 하시었다..

『당의 영도는 혁명무력건설에서 나서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혁명군대에 있어서 당의 영도는 생명과 같습니다. 우리 당의 영도를 떠나서는 인민군대를 혁명의 믿음직한 보위자로, 일당백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이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당은 조선혁명의 참모부이며 우리 인민을 승리의 한길로 인도하는 향도적 역량이라는 것,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사회정치조직들이 다 당의 영도밑에 활동하고 있고 당의 영도에 의하여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의 승리와 성과가 확고히 담보되고 있다는 것, 여기에서 인민군대라고 하여 예외로 될 수 없다는 것, 더욱이 인민군대는 수령님께서 개척하시고 영도하시는 우리 당의 혁명위업을 무력으로 옹호보위하며 당의 군사노선을 관철하여야 할 사명을 지닌 조선노동당의 혁명적 무장력이라는 것, 이렇게 당의 영도가 인민군대의 생명선이 되는 근거를 밝히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므로 인민군대는 당과 수령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나가야 하며 그렇게 할 때에만 자기의 숭고한 사명과 본분을 다할 수 있다고 하시었다..

이것은 혁명무력건설에서 핵으로 되는 가장 근본적 이고도 원칙적인 문제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해명이었다.

여기에는 혁명군대가 노동계급의 당과 수령의 영도에서 떨어져 나가면 혁명군대로서의 성격과 본질을 잃게 되며 나아가서 사회주의의 수호자, 혁명적 무장력으로서의 사명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는 참으로 깊은 뜻이 담겨져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는 군대안의 당조직과 정치기관을 통하여 실현된다고 하시면서 인민군대 각급 당위원회를 튼튼히 꾸리고 집체적 지도기능을 높일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하시었다..

『우리 당은 각급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를 통하여 혁명과 건설에 대한 영도를 실현합니다. 당중앙위원회로부터 기층당조직에 이르기까지 각급 당조직들은 예외없이 집체적 지도원칙에 따라 운영되며 모든 부문의 사업은 다 해당 단위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밑에 진행됩니다. 인민군대에서도 해당 당위원회에서 매 시기 제기되는 중요한 정치군사적 과업들을 집행하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집체적으로 토의결정하고 그에 따라 군사일꾼들은 군사적 과업을 맡아 집행하고 정치일꾼들은 정치적 과업을 맡아 집행하여야 하며 그 결과에 대하여 당위원회앞에 책임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인민군대안에 이러한 규율을 철저히 세워야 합니다.』

이 말씀은 당과 군대를 혼연일체로 만들고 군대가 당의 영도를 받으며 정치와 군사를 유기적으로 통일시키고 군사가 정치에 복무하는 원칙에서 고도로 정치화되고 사상화된 정치군사강군을 건설할 데 대한 주체적인 혁명적 군건설원리를 밝힌 귀중한 가르치심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또한 당조직, 정치기관들의 활동에서 당원들의 당생활에 대한 지도를 올바로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면서 그 방도에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당원들의 당생활을 강화하려면 모든 당원들이 당규약에 밝혀진 의무를 성실히 집행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당규약에는 당조직생활에 대한 원칙적인 요구가 다 밝혀져 있습니다. 직위에는 높고낮은 차이가 있지만 당생활에서는 그러한 차이가 있을 수 없으며 누구나 다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당생활에 참가하여야 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음으로 인민군대내 정치기관들의 역할을 높이고 정치사업을 결정적으로 강화할 데 대한 문제에 대하여서도 지적하시었다..

『혁명군대의 위력은 정치사상적 우월성에 있습니다. 혁명군대가 제국주의국가군대와 싸워 승리하는 것은 군사기술적으로 우세해서가 아니라 군인들이 높은 정치사상적 각오를 가지고 희생적으로 싸우기때문입니다. 군사사업에 정치사업을 앞세우고 군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시켜 전군을 당에 충실한 전투대오로 만드는 것은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혁명무력건설의 근본원칙입니다.』

정치사업을 앞세우면서 군사기술사업을 옳게 배합할 데 대한 군건설이론은 혁명무력건설의 근본원칙이다. 이 근본원칙을 틀어쥐고 나갈데 대한 강한 요구성을 제기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었다..

『인민군대를 정치사상적으로 강화하는데서 기본은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는 것입니다.

인민군대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 것은 최근년간 군벌관료주의자들이 당정치사업을 약화시키고 당의 유일사상체계에 어긋나는 행동을 적지 않게 한 조건에서 더욱 절실한 문제로 나섭니다.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튼튼히 세우자면 무엇보다도 모든 군인들을 우리 당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켜야 합니다. 우리 당의 혁명사상은 다름아닌 수령님의 혁명사상이며 그것은 조선혁명의 유일한 지도사상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속에서 유일사상교양을 강화하여 모든 군인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밖에는 그 어떤 다른 사상도 모른다는 관점을 확고히 가지도록 할 데 대하여, 군인들에게 수령님의 교시와 그 구현인 당정책을 제때에 알려주는 체계를 세워 군인들이 수령님의 교시와 당정책을 똑바로 알고 그것을 올바로 관철하며 당의 사상과 어긋나는 현상을 반대하여 투쟁하도록 할 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속에서 당정책교양과 혁명전통교양, 계급교양과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을 잘하여 모든 군인들이 혁명군대의 군인다운 풍모를 가지도록 하며 인민군대안에 혁명적 학습기풍을 세우고 모든 군인들 특히는 군관들이 학습을 더 많이 하여 당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할 뿐 아니라 군인들속에서 당정책의 선전자, 교양자로서의 역할을 바로 수행할 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었다..

그러시면서 부르죠아사상, 수정주의사상, 사대주의, 교조주의를 비롯한 나쁜 사상요소들과의 투쟁을 강화하여 인민군대안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와 어긋나는 현상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이렇게 당정치사상사업을 강화할 데 대한 구체적인 방도들을 제시하시면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시었다..

『당과 수령을 정치사상적으로, 목숨으로 옹호보위하는 것은 인민군대의 영예로운 임무입니다. 인민군대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구호를 높이 들고 전군을 당과 수령의 두리에 굳게 묶어세워야 하며 수령님의 유일적 영도밑에 전군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영군체계를 철저히 세워야 합니다.』

인민군대안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고히 세워 수령의 유일적 영도밑에 전군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영군체계를 세우는것, 바로 이것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하신 역사적인 가르치심의 사상적 알맹이이고 정치군사적 강군건설의 이정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렇듯 수령의 유일적 영도밑에 전군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영군체계확립에서 나서는 근본지침을 제시하신데 이어 군대내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의 기능과 역할을 높이기 위한 결정적 조치들을 취해주시었으며 그 실현을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이끄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각급 당위원회들을 충실하고 능력있는 일꾼들로 튼튼히 꾸리고 그 운영을 정상화하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정치기관의 권능을 높일 수 있게 각급 부대들에는 정치위원제를 내오고 구분대들의 정치부대대장, 정치부중대장직제를 정치지도원직제로 고치며 수많은 정치일꾼들을 정규교육기관에서 재교육하고 정치일꾼후비육성사업을 질적으로 하여 전반적 정치일꾼대열을 강화하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주체61(1972)년 10월 17일에는 어느 한 부대에 새로 파견되어가는 정치위원을 친히 만나시어 모든 군인들을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직한 혁명전사로 준비시켜야 한다시며 정치위원의 위치와 임무에 대하여 상세히 밝혀주기도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러한 세심한 지도를 받으며 군대내 각급 당조직과 정치기관들, 모든 정치일꾼들은 전군에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영도의 유일성을 확고히 보장하는 것을 주선으로 튼튼히 틀어쥐고 당정치사업을 활발히 벌여나갔다. 그것은 인민군대안에서 군벌관료주의자들의 사상여독을 철저히 뿌리빼고 전군을 수령님께 끝없이 충실한 충성의 전투대오로, 불패의 전투력을 지닌 일당백의 혁명무력으로 강화할 수 있게 한 중요한 요인으로 되었다.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위대한 선군정치의 주도적 역량으로서의 조선인민군의 정치군사적 위력강화의 명백한 방향은 바로 역사의 그날에 마련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비범한 정치적 안목과 탁월한 군사적 식견, 혁명무력건설에 대한 절대적인 책임감을 지니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로 전군에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서의 영군체계가 확립되어 나갈 수 있었고 오늘에로의 무적의 정치군사강군건설의 대로가 열려질 수 있었다.

 

   

사회주의위업의 수행은 제국주의자들의 항시적인 군사적 위협과 도전을 동반한다.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책동에 성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최선의 방도는 군사력의 강화에 있다.

이것은 역사의 진리이고 교훈이다.

군사력의 강화는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군사적 도발을 단호히 짓부셔 버리는 것을 통하여 더욱 촉진되며 공고화된다.

군사력을 사회주의위업수행의 생명선으로 틀어쥐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나라의 존엄을 건드리고 우롱하는 그 어떤 침해행위도 무자비한 타격으로 징벌하도록 하시었다..

그리하여 그 어떤 원쑤도 조국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도 감히 건드릴 수 없었고 조국의 하늘과 땅, 바다를 한치도 침범할 수 없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특출한 영장적 천품과 자질, 비범한 군사적 실력으로 1968년 1월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에 이어 1969년 4월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 「EC-121」격추사건을 통해 전쟁접경에로 치닫는 미제와의 군사적 대결전을 또다시 빛나는 승리에로 이끄시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인민군대의 정치사상적, 군사적 위력을 더한층 강화발전시키시었다..

1960년대말 미제는 「푸에블로」호사건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더욱 앙심을 품고 전쟁도발책동에 혈안이 되어날뛰였다.

대통령감투를 뒤집어쓴 닉슨은 아시아인들끼리 싸우게 하는 「새 아시아정책」이라는 것을 내놓고 일본반동들과의 아시아「반공」군사동맹조작에 열을 올리는 한편 조선반도에서 군사적 침략의 구실을 마련하기 위한 도발책동을 감행하게 하고있었다. 침략의 괴물마차를 움직일 어지러운 발동기소리가 남녘의 땅과 바다, 하늘에서 들려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격화되는 정세를 꿰뚫어보시며 인민군대가 적들의 어떤 침략에도 제때에 강력한 타격을 안길수 있도록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이끄시었다..

주체58(1969)년 4월 15일, 군대와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57돐을 경사롭게 기념하고 있었다. 바로 이날 「푸에블로」호사건에 못지 않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날 오후 1시 50분경에 조선인민군 공군의 영용한 추격기비행사들이 동해영공에 불법침입하여 정탐행위를 감행하던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을 형체도 남김이 없이 단호히 징벌한 것이다.

이 사실은 즉시에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보고되었다.

간첩비행기 격추경위를 보고 받으시는 그분의 안광은 금시 섬광처럼 빛났다.

도적고양이처럼 고공으로 날아드는 적기를 단방에 요정내고 자위적 무장력의 위력을 만천하에 과시하였으니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데 있으랴.

더욱이 뜻깊은 4월의 명절날에 침략자들을 단호히 징벌하고 조국의 푸른 하늘을 지켜냈으니 인민군대가 위대한 수령님께 가장 큰 생신선물을 올린 셈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이 사건을 빨리 수령님께 보고 드리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는 통일된 조국을 후대들에게 넘겨주며 북남의 모든 겨레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하여 생신날에도 쉬지 않으시고 사업하십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비행사들이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을 쏴떨구었다는 보고를 받으시면 대단히 기뻐하실 것입니다, 수령님의 탄생일에 우리 비행사들이 적대형간첩비행기를 쏴떨군 것은 수령님께 큰 선물을 드린 것으로 됩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계속하여 그분께서는 우리 비행사들이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하였다고 하시면서 공군비행사들이 대형간첩비행기를 격추한 그 의의에 대하여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영공을 침범한 간첩비행기를 쏴 떨군데 그치는 일이 아니었다. 반제반미투쟁의 전초선에서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들고 가장 견결히 싸우는 조선인민과 그 무장력이 세계제패를 꿈꾸며 어리석게 날뛰는 미제와 정면대결하여 일격에 거꾸러뜨린 빛나는 승리였다.

참으로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따라 일당백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된 영웅적 조선인민군이 또 한차례의 반미대결전에서 자기의 위력을 과시한 빛나는 승리였다.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를 일격에 바닷속에 수장해버린 이 충격적인 사실을 보고 받으신 수령님께서는 우리 비행사들이 정말 장하다고, 미국놈의 간첩비행기를 명중시켜 바다에 처박은 것이야말로 매우 통쾌한 일이라고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었다..

대형간첩비행기 「EC-121」격추소식이 내외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키고 있던 그날 오후 당중앙위원회 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미제의 간첩비행기가 격추된 사실을 이야기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강력한 무장은 생명과 같습니다. 강한 무장력이 없으면 사회주의조국을 지켜낼 수 없고 조국통일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요행수를 바라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적들이 땅위로 기어들건, 바다로 기어들건, 하늘로 기어들건 즉시에 모조리 요정낼 수 있도록 만단의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

우리는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적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하여야 합니다.』

사실상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의 격추는 인민군대가 경애하는 장군님의 의도를 받들고 땅으로 기어들건, 바다로 기어들건, 하늘로 기어들건 적들을 즉시에 요정낼 수 있게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준비하여 온 덫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통채로 걸린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미 이해에 들어서면서 나날이 정세를 긴장시키고 있는 미제의 있을 수 있는 침략책동을 제때에 짓부실수 있게 모든 부대들이 경상적인 전투동원준비를 철저히 갖추도록 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려오시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분께서는 한 군사일꾼으로부터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이 동해상공에 나타나 정탐행위를 감행하였다는 적정자료를 보고 받으시었다..

자료보고에 의하면 「EC-121」기는 이해에 들어와서 만도 두번이나 우리 나라 영공에 침입하였다.

「EC-121」기는 미제가 해외의 여러 지역에서 상대측의 국경선이나 군사분계선을 따라 비행하면서 전자지휘수단의 배치상태와 통화내용을 정탐하거나 마비시킬 목적으로 만든 전자정찰기였다. 조종사와 부조종사를 내놓고도 무려 30여명이나 탑승할 수 있는 「EC-121」전자정찰기는 350∼400km/h의 속도로 3,000m 고도에서 최대 24시간동안 비행하면서 정탐활동을 할 수 있다.

미제는 바로 이런 전자정찰기를 1964년부터 일본에 기지를 두게 하고 우리 나라 동해해상과 군사분계선상에서 정탐활동을 감행하게 하여왔던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미제의 이러한 파렴치한 적대행위에 대처하여 간첩비행기가 다시금 공화국영공에 날아들면 즉시 우리 비행기를 출동시켜 쏴 떨굴 데 대한 작전을 펼치시었다..

이날 그분께서는 우리 공화국의 신성한 자주권을 지킬 데 대하여 거듭 강조하시고 나서 우리는 이 작전을 잘하여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 침입사건으로 수치스러운 항복을 당한 미제침략자들에게 이번에는 하늘에서 또다시 된 타격을 가함으로써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 것이라는 우리의 입장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세계앞에 보여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미제의 간첩비행기를 일격에 요정내기 위한 전술적 대책까지 구체적으로 세워주시었다..

결국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제시하신 전술적 방안에 따라 전투동원태세를 유지하고 있던 미더운 조선인민군 공군의 덫에 걸려 찍소리 한마디 못하고 바다에 곤두박힌 것이다.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의 격추야말로 철천지 원쑤 미제에 대해서는 절대로 용서치 않으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견결한 반제자주의 입장과 무비의 담력, 정력적인 영도에 의해 마련된 위대한 승리였다.

수도 평양에서는 간첩비행기를 단발에 격추시킨 추격기비행사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는 모임이 성대히 진행되었다. 그때 대양건너 워싱턴에서는 시체도 없는 빈 관을 놓은 장례식장에서 아메리카장송곡이 울려 나오고 있었다.

미제는 「푸에블로」호사건에 잇달은 대형간첩비행기 「EC-121」격추사건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침략과 전쟁을 생리로 하는 그들은 이번에도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우리가 공해상에서 「합법」적인 정찰행동을 하고 있는 저들의 비행기를 격추했다고 생억지를 쓰며 대결소동을 피웠다.

미제는 전함과 항공모함들을 포함하여 숱한 함선들로 기동부대를 편성하여 조선근해의 작전수역에 집결시키는가 하면 일본공군기지에 있던 저들의 전투폭격기들을 남조선에 끌어들였다.

미국대통령 닉슨은 우리 나라에 대한 정찰행동이 응당한 것인 듯이 떠벌이며 앞으로도 정찰비행을 계속하겠다고, 그 정찰비행에는 무장보호기들을 붙일 것이라고 고아대며 금후 사태발전은 우리 공화국의 「반응여하」에 달려있다고 위협해 나섰다.

정세는 나날이 격화되어가고 있었다.

세계는 「푸에블로」호사건때에는 미제가 포로송환때문에 굽어 들었지만 이번에는 비행기가 통채로 바다에 처박혀 걷어갈것도 없으니 그야말로 「보복」할 것이라는 우려로 가슴을 조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전군, 전민을 반미대결전에로 불러일으키기 위한 일대 작전을 펼치시었다..

이에 따라 4월 23일 전쟁소동에 매달리는 미제의 침략성을 세계앞에 고발하고 조선인민의 철저한 반미입장을 엄숙히 선언하는 공화국정부 성명이 발표되었다.

『우리 인민은 그 누구를 먼저 다치려 하지 않지만 그 누가 우리를 모욕하며 건드리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전체 조선인민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끝까지 물리치고야 말 단호한 결의를 가지고 있다.』

사생결단의 의지로 자주권을 지켜내려는 이 단호한 결의는 그대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의지이고 입장이었다.

그날 밤 11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의 한 정치일꾼에게 인민군대에서는 만단의 전투동원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하며 모든 장병들이 미제침략자들이 덤벼들면 결사전을 벌여 침략자들을 우리 강토에서 내쫓고 조국을 통일하고야 말겠다는 높은 사상적 각오를 가지도록 하는데 모를 박고 당정치사업을 실속있게 진행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그분께서는 그후 민족보위성의 책임일꾼들에게 적들의 그 어떤 군사적 위협도 우리를 놀래울 수 없다고, 우리는 수령님께서 단호히 선언하신 것처럼 적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미제가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단다면 맞받아 나가 총결산을 지으려는 강인담대한 결단의 의지를 피력하신 것이다.

정치를 실시하는 과정에는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갈림길도 있고 일촉즉발의 첨예한 정세도 조성될 수 있다.

이러한 때 그 타개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바로 정치지도자의 결단성이다.

정치적 결단성은 그 어떤 환경속에서도 주저없이 용단을 내리며 일단 내린 용단은 끝까지 실천에 옮기는 완강한 기질이다. 정치지도자에게 그것이 부족하면 나라가 수세에 빠지게 되고 주도권을 쥐고 일을 전개해 나갈 수 없게 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가장 극적인 순간에 바로 전쟁도 불사한다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시고 미제국주의의 위협에 당당히 대결해 나서신 것은 다름 아닌 그분께서 지니고 계시는 특출한 군사적 실력의 과시였다..

군사적 실력은 군사분야의 그 어떤 과제도 막힘이 없이 훌륭하게 처리해 나가는 군사전략가의 자질과 창조적 능력이다. 군사적 실력은 책상머리에서가 아니라 준엄한 군사행동의 실천속에서 익히고 연마한 군영도력이기도 하다.

경애하는 장군님은 혁명의 총대와 함께 선군혁명의 폭풍우를 헤치시며 성장하여 오시는 과정에 특히는 1960년대의 선군혁명영도의 길에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군사적 자질과 비범한 실력을 쌓아오신 절세의 선군영장이시다.

장군님께서는 천만대적도 마음먹은대로 쥐락펴락하시는 희세의 군사적 실력으로 내리신 용단을 철저하고 강의하게 관철시켜 나가시었다..

전군, 전민이 장군님께서 펼치신 반미대결전에 떨쳐 일어나 적들의 도발에 연속 된 매를 안겼다.

1969년 8월 17일,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미제가 어리석게도 군용비행기 「OH-23G」를 군사분계선 너머 우리측 지역에 또다시 침입시키는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였다.

「OH-23G」는 미제가 상대측의 지상대상물에 대한 감시와 연락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만든 감시직승기이다.

미제의 군용직승비행기가 금천리상공에까지 깊숙이 침입해 들어왔을 때였다.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인민군군인들은 멸적의 기세로 그것을 파리 잡듯 요정내고 거기에 탔던 비행사 세놈을 사로잡았다.

너무나도 단호하고 응당한 징벌이었다. 우리의 강경한 대응에 더는 어쩔 수 없게 된 미제는 이해가 다 저물어가는 12월 3일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쌍방수석위원간의 회의에서 제놈들의 범죄행위를 인정하고 사죄문을 써서 우리에게 바쳤다.

사죄문에서 놈들은 『…군용비행기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반부영공깊이 침입시킴으로써 정전협정을 위반하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주권을 엄중히 침해한데 대하여 전적인 책임을 지고 이에 엄숙히 사죄하며 앞으로 이와 같은 범죄행위를 다시는 하지 않을 것과 정전협정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확고히 담보』한다고 밝혔다.

사죄문을 통하여 도발자, 범죄자로서의 미제의 더러운 정체가 또다시 온 세상에 드러났다.

근 8개월간 대형간첩비행기 「EC-121」격추사건으로 땅바닥에 떨어진 「초대국」의 체면을 세워보려고 「보복」이니, 전면전쟁이니 하면서 열을 올리던 미제는 결국 「OH-23G」군용비행기격추사건을 계기로 끝내 무릎을 꿇고 말았다.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 격침과 더불어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의 격추는 세계면전에서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은 어떻게 지켜야 하며 작은 나라들이 세계제국주의 우두머리 미제와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하는가를 생동하게 보여준 반미대결전의 산모범이 아닐 수 없었다.

세계는 이를 통하여 역사와 시대를 움직이는 힘이 조선에 있다는 것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역사와 시대를 움직이는 이 무적의 힘의 조종간을 바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틀어 잡고 계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