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들에 대한 사랑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주체의 군인관에서 흘러나온다. 무기에 앞서 군인들, 병사들을 귀중히 여기라, 군인이 있어 군대가 있고 군인이야말로 제일무장력이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보시기에 군인들, 병사들을 제일로 믿고 사랑하신다.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은 조건이 없는 절대적인 믿음이고 헌신적인 사랑이다. 나폴레옹은 병사들을 향해 그대들이 나를 믿노니 나도 그대들을 믿노라라는 일화를 남겼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언제인가 이 일화에 대하여 이야기하시면서 나는 그대들을 믿는다, 그대들도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시었다. 믿음과 사랑에 관한 참다운 윤리관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부대를 현지시찰하실 때마다 병사들을 친어버이심정으로 보살펴주시었다.

주체54(1965)년 5월 중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기계화구분대를 현지지도하시었다.

이날 그분께서는 싸움준비완성에서 나서는 과업들을 밝혀주시면서 많은 시간을 군인들의 생활을 보살피는데 돌리시었다. 그분께서는 군인들의 병실과 식당, 목욕탕과 양식창고까지 일일이 돌아보시었다.

병실에 들어서신 장군님께서는 방안이 춥지 않는가 알아보시고 방안온도를 정상적으로 보장해줄 데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식당에 들리시어서는 늘 같은 음식만 해주지 말고 군인들이 궁금해하지 않게 국수, 떡, 지짐을 비롯한 색다른 음식도 해주고 반찬도 여러가지로 해주라고 하시었다. 목욕탕과 양식창고에 들리시어서도 군인들의 생활을 잘 돌봐줄 데 대하여 간곡하게 말씀하시었다.

군인들에 대한 그분의 따뜻한 보살피심과 세심한 은정은 그 나날 이름없는 한 통신초소에도 깃들어 있다.

이 부대를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통신병들이 근무하는 교환근무실을 돌아보시었다.

방안에 들어서신 장군님께서는 문을 닫으시다가 문턱을 넘어 들어온 통신선때문에 문이 채 닫기지 안는 것을 알아보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재차 문을 여닫아 보시고 근무수행중에 있는 한 통신병에게 지금은 봄철이 되어 날씨가 덥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밤에는 날씨가 추운데 문을 꼭 닫게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통신선을 교환근무실 문턱우로 늘여놓아 문이 제대로 닫기지 않습니다.

밤에 문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오면 교환수들이 감기에 걸릴 수 있습니다.

문이 꼭 닫기게 문턱을 도려내고 거기로 통신선을 뽑아야 합니다. 통신선을 뽑은 다음 도려낸 나무쪼각을 그 자리에 넣고 칠감을 먹이면 문턱이 본래모양대로 될 것입니다.』

그런데 장군님의 이 말씀속에는 통신선늘이기를 규정의 요구대로 해야 한다는데 앞서 군인들의 건강부터 걱정하시는 다심한 심정이 담겨져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통신을 잘 보장할 데 대한 귀중한 말씀을 남기시고 방을 나서시려다가 마음이 놓이지 않으신 듯 걸음을 멈추시고 지휘관을 부르시어 통신병을 아껴야 한다고 하시면서 목수를 데려다가 문턱을 도려내어 통신선을 넣고 문을 꼭 닫게 해야 하겠다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문이 잘 닫기지 않아 교환수들이 감기에 걸릴 수 있다고 재삼 말씀하시었다.

부대지휘관과 통신병은 친어버이 그 사랑에 목이 메였다.

조국을 지켜가는 병사들을 위해주시는 장군님의 사랑은 이렇듯 남달리 극진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56(1967)년 7월 어느날 동해바닷가의 외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어느 한 해안포병중대를 찾으시었다.

장군님께서 이 중대를 찾아주신 것은 조건이 불리한 외진 곳에서 조국의 한 초소를 지켜가는 군인들의 전투준비정형과 생활을 보살펴주시기 위해서였다.

구분대의 포진지를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이어 중대 부식물창고와 식당을 차례로 돌아보시었다.

중대의 부식물창고는 크지 않았지만 거기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갖가지 절임단지들과 절인 물고기, 마른 미역과 명태, 낙지도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득히 쌓여있는 말린 물고기를 보시며 이것이면 얼마동안이나 먹을 수 있는가고 물으시었다.

3개월은 먹을 수 있다는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부식물창고 하나만 보아도 군인들이 잘 먹는가 못 먹는가를 잘 알 수 있다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부식물을 잘 준비해두면 오랫동안 전투를 하여도 먹는 것은 문제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여러가지 물고기를 절임한 단지와 독들도 살펴보시었다.

독들에는 청어와 가재미 등 여러가지 물고기들이 절임되어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며 절임독에서 청어 한마리를 꺼내 드시고 수원들을 둘러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중대부식물창고가 평양식료품상점에 못지 않습니다.…

청어절임을 아주 잘 하였습니다. 조밥에 구운 청어를 먹으면 별맛입니다.』

그분께서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절인 고등어가 은을 냈다고 하시면서 군인들이 절임한 청어를 좋아하는가, 부식물창고가 늘 이렇게 풍년인가고 물으시고 나서 말씀을 계속하시었다.

『해안포병중대군인들이 자체로 물고기를 잡아 부식물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군인들의 생활이 괜찮습니다. 나는 오늘 수령님께서 늘 심려하시는 전사들의 생활문제가 풀린 것을 보니 매우 기쁩니다.』

장군님께서는 이어 곁에 있는 정치부중대장에게 중대가 붉은기중대인가, 영화는 자주 보고 신문도 제때에 오는가를 하나하나 알아보시고 그 개선대책을 세워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중대에 악기가 얼마나 있는가 하는 것까지도 요해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중대에서는 예술소조공연을 전문화하지 말고 모든 군인들이 다 악기를 다루고 노래를 부르게 하여야 합니다. 중대일과에 군중문화시간을 설정한 것은 군인들이 정서적이며 낙천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군인들이 낙천적으로 생활하게 하여야 유사시에 비관을 모르고 용감하게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군중문화시간을 절대로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이어 부엌간에 들리시어 부엌세간들과 점심식사로 준비한 반찬들을 살펴보시고 나서 끓는 국가마도 손수 열어보시고 만족하신 미소를 지으시었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초소에 왔는데 점심식사는 이 동무들과 함께 하자고 하시며 중대군인들이 식사하는 밥상의자에 허물없이 앉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전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며 국을 맛있게 끓였다고, 국맛이 구수하다고 하시며 달게 드시었다.

이 이야기는 후일 「바닷가초소에서의 하루」란 제목으로 그분의 빛나는 군영도사에 남게 되었다.

언제나 병사들과 함께 계시면서 은정깊은 사랑과 배려를 돌려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은 인민군전사들에게 일당백의 장수힘을 키워주시며 이끌어주시는 자애로운 친어버이이시다.

 

   

 

어머니는 다심함과 자애로움의 상징이라 한다. 어머니의 이 다심하고 자애로운 성품을 천품으로 지니신 분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인민군장병 한사람한사람의 건강을 다심하고 자애에 넘친 심정으로 보살펴주신다. 그분께서는 건강을 돌보지 않고 일하는 지휘일꾼들을 보시고는 이렇게 타이르시군 하신다.

『혁명이란 하루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혁명을 계속하자면 몸이 건강해야 합니다.』

주체54(1965)년 8월 어느날 오후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보위성의 한 책임일꾼의 방에 들어서시었다.

무슨 글을 쓰고 있던 일꾼은 소식없이 찾아오신 그분께 너무도 기뻐 인사조차 변변히 올리지 못했다.

『요즘 정세가 긴장하여 몹시 바쁘겠습니다.』

이렇게 친절하게 이야기를 건네신 장군님께서는 권하는 자리도 마다하시고 『건강상태는 어떻습니까?』라고 물으시며 그의 안색을 살펴보시는 것이었다.

일꾼은 아무 일도 없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그의 얼굴에 비껴있는 피로한 기색을 알아보시며 걱정어린 음성으로 진찰을 정상적으로 받는가고 물으시었다.

일꾼은 얼마 전에 진찰받았는데 별로 다르게 나타난 것이 없었다고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신 듯  간부들이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얼마 전에도 수령님께서 간부들의 건강문제에 대하여 걱정하시다가 늘 자리를 뜨지 못하고 사업하고 있는 동무의 건강에 대하여 걱정하시었다고 말씀하시었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대원들에게 조국을 해방한 다음에 푹 쉬자고 하였는데 해방 후 새 조국건설과 3년간의 전쟁, 전후의 사회주의건설투쟁과 미제의 끊임없는 새 전쟁도발책동으로 정세가 긴장하여 쉬우지 못하고 있다고 매우 가슴아파 하시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자신보다 전사들의 건강에 더 마음을 쓰시는 수령님의 어버이사랑에 감동된 일꾼은 격해 오르는 심정을 억제하지 못하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너무 무리하게 사업하고 계시는 것이 걱정될 뿐이라고 말씀드렸다.

그의 뜨거운 심정의 토로를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정말 그렇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수령님께 잠시라도 휴식하실 것을 말씀 올리면 나는 일없으니 간부들의 건강을 잘 돌봐주라고 당부하군 하신다고 하시었다.

영도자는 전사들의 건강을 보살펴주고 전사들은 영도자의 안녕을 절절히 소원하는 이런 뜨거운 혈육의 유대가 있기에 나라가 튼튼하고 군대가 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중요한 군사문제에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다음 이야기는 그만하고 나와 함께 거리에 나가 바람이나 쏘이자고 하시며 일꾼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오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몸소 승용차를 모시었다. 승용차는 수도의 중심부를 꿰질러 모란봉 을밀대쪽으로 올라갔다. 차창밖으로 내다보니 녹음짙은 모란봉의 경치가 한눈에 안겨왔다. 한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예로부터 「을밀대의 봄맞이」가 「평양팔경」의 하나로 꼽혔지만 녹음우거진 8월의 경치도 그대로 독특한 정서와 운치를 풍기었다. 일꾼은 방안에만 못박혀있다가 경치좋고 공기좋은 모란봉에 올라와보니 머리가 시원하고 온몸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장군님께서는 차를 몰아 김일성종합대학청사가 한눈에 안겨오는 용남산마루에 이르러 차에서 내려 대학교사를 바라보시며 김일성종합대학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 인민의 크나큰 자랑이라는데 대해 그리고 자신께서 대학시절에 자주 이 용남산마루에 올라 조선혁명을 책임진 주인이 되어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완성해 나가리라 굳게 맹세를 다지신데 대해 감회깊이 말씀하시었다.

일꾼은 숭엄한 마음으로 평소에 항일혁명투사들이 품어오던 심정을 담아 주체혁명위업을 계승할 후계자를 모시었으니 이제는 우리 마음이 더 든든해진다고 말씀드렸다.

그는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많은 시간을 내여 손수 운전까지 하시며 조국의 숨결과 시대의 정신, 전사의 신념과 자각을 군인의 뜨거운 심장속에 새겨주시며 건강까지 보살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숭고한 뜻에 감복하였다.

그는 오래간만에 이렇게 나오니 머리가 거뜬한게 새 힘이 솟는다고 말씀 올렸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렇다면 좋습니다, 수령님께 보고 드리면 매우 기뻐하실 것입니다, 앞으로도 휴식을 적절히 하면서 일하여야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예,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일꾼은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항일혁명투사들뿐 아니라 해방 후 수령님의 품속에서 자라난 새 세대 지휘관들도 건강한 몸으로 혁명임무를 훌륭히 수행해 나가도록 보살펴주시었다.

주체56(1967)년 8월 중순 어느 요양소에서 공군부대의 한 정치일꾼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해방 22돌을 하루 앞둔 날 저녁 바쁜 시간을 내시어 그를 찾아주시었다.

장군님을 뜻밖에 뵈옵게 된 그 정치일꾼은 너무도 꿈같은 일이어서 몸둘 바를 몰라했다.

인사도 변변히 올리지 못하는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신 장군님께서는 요새 건강은 어떤가, 건강이 좋아진다니 마음이 놓인다고 하시었다. 그리고 그와 같이 치료를 받고 있는 한 지휘일꾼과도 인사를 나누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정치일꾼에게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가, 병에 사로잡혀 호실에 누워있을 생각만 해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운동을 적당히 하고 문화정서생활도 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내일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을 해방해주신지 스물두해가 되는 날이라고 하시면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에 대하여 말씀해주시고 나서 그들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시었다. 그리고 떠나시면서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정치일꾼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며 내일은 함께 명절을 보내자고 하시었다.

다음날 장군님께서는 약속하신대로 그들을 자신의 차에 태우시고 어느 한 호숫가에 이르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경치수려한 호수를 바라보는 정치일꾼의 마음은 마냥 부풀어 올랐다.

그는 무엇보다도 명절날이나 생신날의 휴식마저 미루시고 군력강화를 위해 크나큰 노고를 바쳐오시는 그분께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런 곳에서 잠시나마 쉬실 수 있게 된 것이 기뻤다.

장군님께서는 잠시 호숫가를 돌아보시고 나서 그 정치일꾼에게 낚싯대를 넘겨주시며 동무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니 여기에서 낚시질을 하시오, 여기 낚시터가 조용합니다라고 말씀하시고는 자신은 급히 알아보고 포치할 일이 있어 잠깐 갔다와야 하겠다고 하시며 자리를 뜨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명절의 하루마저도 편히 휴식할 수 없으신 것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얼마 후에야 호숫가에 다시 오시었다. 그분께서는 낚싯줄을 늘여놓고 앉아있는 그에게로 다가가시며 고기를 잡았는가고 물으시었다.

그가 큼직한 농어를 잡았다가 후리채를 잘못 대여 그만 놓쳐버렸다고 말씀드리자 장군님께서는 매우 서운해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큼직한 농어를 잡았다가 놓쳤다니 정말 아쉽겠습니다.』

그러시고는 여기에는 농어가 많기 때문에 섭섭해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며 우리 함께 놓친 것보다 더 큰 농어를 잡자고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낚싯대를 들고 있는 그의 곁에 나란히 앉으시었다. 고기가 물리는 동안 그분께서는 인민군대의 강화발전에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을 놓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시었다.

그때 그의 낚싯대 끝초리가 가볍게 흔들렸다. 이것을 보신 장군님께서는 고기가 물린 것이 분명하니 낚싯대를 옆으로 나꾸어 채라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지금은 쏘가리가 오지 않는 때이니 농어가 틀림없다고 하시었다.

장군님의 말씀대로 큼직한 농어가 걸렸다. 그것을 후리채에 받아내신 장군님께서는 놓친 봉창을 했다고 못내 기뻐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낚싯줄을 드리우시고 그에게 군인교양에 힘을 넣어 군인들 모두가 조국을 철벽으로 지키도록 하여야 한다고, 특히 비행사들이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지니고 맡겨진 비행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러는데 한 일꾼이 달려와 장군님께 문건이 도착했다고 하며 문건을 드리었다.

장군님께서는 가까이에 있는 나무밑에 가시어 문건을 보시었다. 이때 또 한 일꾼이 와서 전화가 왔다고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전화받으러 가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명절날 휴식의 한때에도 분망하게 일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전사들의 건강회복을 위해 마음 쓰시니 그 자애에 넘친 사랑이 너무도 고맙고 황송하여 그는 북받쳐 오르는 감동의 격정을 누를길 없었다.

예로부터 「신로군일」이라 하여 신하는 힘들여 일하고 임금은 편하게 지낸다고 하였건만 장군님은 일하시고 전사들은 낚시질을 하며 휴식을 즐긴 이 하루의 모습은 진정 사랑과 정이 강물처럼 흐르는 「군로신일」의 숭고한 화폭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날 베푸신 사랑에 대하여 사람들은 『고귀한 은정을 베풀어주신 위대한 사랑의 하루』라고 칭송하였다.

정녕 경애하는 장군님의 한생에는 그 「위대한 사랑의 하루」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어져 모든 인민군장병들의 건강이 담보되고 인민군대가 혈기넘친 강군으로 될 수 있었다.

 

 

인정미는 남을 생각하고 위하는 뜨거운 마음, 남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포근한 정이다. 인간미덕인 인정미는 열렬한 인간애, 혁명적 동지애의 향기이다. 그것은 혁명가, 혁명의 영도자가 지녀야 할 참다운 인간적 풍모이다. 뜨거운 인간애, 혁명적동지애의 향기가 넘쳐 나는 인간적풍모는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따르게 하며 단합시켜 혁명투쟁에로 힘있게 이끌어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군부대현지시찰의 길에서 인정미의 뜨거운 향기로 군인들을 각성시키고 초병의 막중한 본분을 다해 나가도록 이끌어주시었다.

장군님의 극진한 보살피심을 받은 사람들속에는 나어린 병사도 있고 노병도 있고 그들의 가족들도 있었다.

주체56(1967)년 8월 장군님께서는 동해안의 어느 한 군부대를 현지시찰하고 계시었다. 그분께서는 며칠간에 걸쳐 이 연합부대의 여러 곳을 돌아보시고 부대의 전투준비상태를 요해하시었다.

그 나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항일혁명투사인 연합부대 참모장에게 각별한 은정을 베풀어주시었다.

부대에 도착하신 날 밤 장군님께서는 그를 숙소로 부르시어 반갑게 맞아주시며 며칠동안 한침실에서 같이 생활하자고 하시었다.

너무나 뜻밖의 말씀이었다. 존귀하신 그분과 한침실에서 생활하다니!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외람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이런 생각으로 그는 대답을 주저하였다.

더구나 침실에는 두개의 침대가 있었는데 하나는 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은 것이었다. 참모장은 큰 침대를 장군님께 드리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작은 침대에 가 앉으시며 큰 침대에서는 나이 많은 참모장동무가 자야 한다고 하시었다. 참모장은 절대로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야단났다고 하시며 잠시 생각을 고르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침대는 다 밀어 제끼고 우리 맨바닥에서 잡시다. 조선식으로 말입니다.』

『아니, 그렇게야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참모장은 그분의 말씀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유정한 달밤이었다.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와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시었다. 많은 이야기가운데서도 어린 나이에 항일유격대에 입대한 그가 위대한 수령님과 더불어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의 극진한 사랑속에서 어엿한 혁명가로 성장한 이야기는 애틋한 추억을 불러왔다. 참모장은 가슴속에 격정이 솟구쳐 눈시울을 적시었다.

장군님께서도 오늘 밤은 어머님생각이 더 난다고, 정말 우리 어머님은 한생을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살아오셨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일주일동안이나 그와 함께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시며 그에게 일생 두고 잊지 못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어느날 그를 데리고 바닷가로 나가시었다.

바닷가기슭의 바위에 앉아 그와 이야기를 나누시던 그분께서는 문득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그 말은 같은 옷을 입어도 몸매에 꼭 맞게 정히 다려 입고 깨끗이 빨아 입으면 그만큼 인품이 돋보이는데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특히 군복을 입은 장령들의 경우에는 옷차림을 잘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군대는 옷차림을 웬만큼 해도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지 않는다고 하여 등한시하면 절대로 안된다고, 속옷차림 역시 마찬가지라고, 여름에 군관들은 속옷을 자주 빨아 입어야 한다고, 그래야 땀내도 나지 않는다고 하시었다.

그제서야 참모장은 생각되는 것이 있어 자기의 옷차림을 훑어보았다. 그때 그는 볼품없는 셔츠에다가 색깔이 희끄무레하게 바랜 속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이 뜨거웠다.

장군님께서는 그를 바라보시며 인자하게 웃으시었다. 그분께서는 가방에서 정히 싼 물건을 꺼내시더니 참모장동무는 이걸 입어 보라고 말씀하시었다. 그것은 눈처럼 하얀 색깔의 셔츠와 속옷 한벌이었다.

참모장은 깜짝 놀라 엉거주춤 일어났다.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그날 그분께서는 키가 얼마인가, 어떤 형의 옷을 좋아하는가 물어보시었다. 그의 옷차림이 변변치 못한 것을 보시고 마음 쓰신 것이었다.

참모장은 장군님께 나는 옷이 많습니다, 나야 군인인데 옷이 낡았으면 뭐랍니까라고 말씀드리며 사양하였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이 남방셔츠는 내가 입으려고 만든 것인데 몸에 맞을 수 있으니 어서 갈아입으라고 이르시었다.

참으로 딱한 일이었다. 참모장은 젖어드는 목소리로 다시금 사양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며 말씀하시었다.

『그러지 말고 입으시오. 나의 성의인데 받아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남방셔츠를 입혀주시었다. 그분께서는 뒤로 둬서너걸음 물러서서 옷매무시를 살펴보시고 다가와 단추도 채워주시고 옷깃도 반듯이 펴주기도 하시었다.

『잘 어울립니다.

됐습니다. 이젠 사진을 찍읍시다.』

자신께서 입으셔야 할 셔츠까지 입혀주신 그 은정만도 더없이 큰데 사진까지 찍자고 하시니 참모장은 참고 참아오던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그를 바라보시며 왜 그러고 있는가, 어서 사진을 찍자고, 그래야 훗날에 그 사진을 보면서 나를 생각할게 아닌가고 하시며 그의 손을 다정히 이끌어 주시었다.

왕년의 연합부대참모장은 수십년이 지난 후 자기 회상실기에 이렇게 썼다.

『오늘도 나는 매일 그 날에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군 한다.

그럴 때면 나에게 새로 지은 남방셔츠를 입혀주시고 옷이 맞는다고 그처럼 기뻐하시던 경애하는 장군님의 자애로운 어버이모습이 선히 떠올라 뜨거워지는 마음을 누를 수가 없다.』

이러한 회고는 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아내에게도 있다. 아내는 강원도 철원에서 살다가 해방직후 결혼하여 평양에 올라왔다. 남편이 수령님의 부관이어서 그는 김정숙어머님과 같이 있은 적이 많았다. 어느 해 가을에는 집이 불타서 김정숙어머님께서 수령님께 말씀드려 그들 부부를 댁에 데려다 같이 살도록 해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번에 연합부대에 오셨다가 그를 만나 회포를 나누시었다. 그분께서는 그와 함께 부대의 항일혁명투사가족들도 만나주시고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그들이 공장, 기업소 하나 견학하지 못한 것을 알게 되시었다. 그래서 이번에 왔던 김에 항일혁명투사들과 가족들과 같이 도안의 중요 공장, 기업소들과 농촌, 어촌을 돌아보자고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이번 기회에 아이들도 데리고 가서 시원한 바닷바람도 맞고 해수욕도 하면서 휴식도 좀 해야 하겠다고, 항일혁명투사가족들은 남편을 따라 동서남북으로 늘 이사만 다니다보니 언제 한번 휴식이나 제대로 해 보았겠는가고, 공장, 기업소들을 다 돌아본 다음 감상토론도 하자고 하는데 어떤가고 묻기도 하시었다.

이렇게 되어 조국의 현실을 배우기 위한 「남녀노소 수학여행」이 진행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바쁘신 나날에도 그들의 「수학여행」을 보살펴주시었다. 어느날에는 바닷가에서 해수욕도 조직하시고 점심까지 차려주시었다.

그분께서는 가족단위로 자리를 정해주시고 한끝에 앉으시었다. 그때 참모장의 아내가 일어나더니 부대에 오신 그분께 우리 가족들이 준비한 것을 대접해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이렇게 진수성찬을 받고 보니 죄송스럽기 그지없다고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그러지 말라고, 오늘 이렇게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오랫동안 혁명을 해온 노혁명투사들과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앉으니 기쁘기도 하고 생각되는 것도 많다고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뜻깊은 이 기회에 말씀을 해주시었으면 한다는 만장의 요청을 받으시고 일어나 바닷가 저 멀리에 눈길을 주시었다가 생각 깊으신 어조로 말씀하시었다.

『여기 모인 동지들도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나는 너무나도 일찍이 어머님을 잃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님을 잃고 보니 어머님을 잃은 슬픔도 슬픔이지만 어머님께서 계시지 않으니 수령님의 사업을 누가 가까이에서 보좌해드리겠는가 하는 근심이 더 컸습니다.』

항일혁명투사들, 그 가족들은 김정숙어머님을 생각하며 저저마다 수건으로 눈굽을 닦았다.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은 일찍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수령님의 사업을 항일혁명투사들과 그 가족들이 진심으로 도와드렸다고, 수령님께서는 혁명동지들의 그 사랑에 받들려 오늘까지 건강하신 몸으로 당과 국가, 군대사업을 정력적으로 영도하고 계신다고, 나는 수령님을 따라 우리 혁명의 여러 단계를 겪어보면서 이에 대하여 더욱 깊이 느끼게 되였고 마음의 상처를 보다 큰 힘과 용기로 바꿀 수 있었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항일혁명투사들의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에 대하여, 수령님께서 노혁명투사들을 존경하고 건강을 보살펴줄 것을 당부하신데 대하여, 자신께서 수령님께 노혁명투사들과 새 세대 일꾼들을 믿고 우리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성해 나가겠다고 말씀 올린데 대하여 이야기하시었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신 다음에 사진기를 몸소 드시고 사진을 찍어주시었다. 먼저 집체사진을 찍어 주시고 그 다음에 가족단위사진과 독사진을 찍어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참모장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신 다음에도 참모장과는 둘이서 또다시 사진을 찍으시었다.

그의 아내는 그때 일을 지금도 잊지 않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편은 너무 감격하여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자동샤타를 조절해 놓으시고 남편의 곁에 와 서시었습니다.

지금 그 사진은 우리 집의 가보로 정중히 모셔져 있습니다.』

연합부대참모장부부의 소박한 술회는 장군님과 항일혁명투사들사이에 맺어진 인정의 세계를 아름다운 화폭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장군님은 항일혁명투사들을 철저히 믿고 아끼고  사랑하시며   혁명의    원로로   존경하고   내세워 주시었으며  항일혁명투사들은 그분을 어버이수령님과 꼭같으신 장군님으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로 높이 칭송하며 열렬히 존경하고 받들었다.

김정일장군님!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이 칭송의 말에는 이 나라 천만군민의 뜨거운 흠모와 신뢰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