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력과 지략은 영장에게 있어서 필승의 기질이다. 군대와 인민을 이끌어 치열한 반제대결전을 치르어야 하는 영도자에게는 장군다운 담력과 무비의 지략이 있어야 한다.

담력이 신념과 의지, 각오와 결단으로 발현되는 것이라면 지략은 방법과 술법으로 발현되는 영장의 풍모와 자질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영웅남아다운 담력과 천변만화하는 지략으로 1960년대의 복잡다단한 반제투쟁을 승리의 한길로 이끄시었다.

천만대적앞에서도 끄떡하지 않으시는 그분의 태연자약한 담력, 적들의 도전을 맞받아 타격하여 분쇄하시는 단호한 결단과 담대한 기백, 영활무쌍한 임기응변으로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쥐시고 적들을 쥐락펴락하시는 백전백승의 지략앞에 적들은 전율하였다. 세인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무적의 담력과 지략은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을 계기로 세계만방에 과시되었다.

주체57(1968)년 1월 23일 우리 나라에서는 「카리브해 위기」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태가 벌어졌다. 용감한 조선인민군 해병들이 조선동해의 우리 영해를 침범한 미제의 무장간첩선을 나포했다.

이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간첩선을 나포하게 된 경위와 과정을 구체적으로 요해하시었다.

아직 갈매기도 깃을 펴지 않은 1월 23일 새벽이었다. 정상적인 해상순찰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우리 해군함정들은 원산앞 영해(동조선만 북위 39°17.4', 동경 127°46.9')에서 한 정체불명의 함선을 발견하게 되었다.

배에 국적표식이 없으므로 우리 해병들은 그것을 밝힐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함선은 황급히 공해쪽으로 뱃머리를 돌리더니 기관총사격을 가해왔다. 우리 해병들은 재빨리 위협사격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면서 함선에 뛰어 올랐다. 저항하던 두놈중 한놈은 즉사하고 다른 한놈은 부상당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80여명은 전원 포로되었다. 조사해본데 의하면 함선은 그 전해 5월에 취역한 후 일본의 요꼬스까와 사세보를 기지로 하여 우리 영해에 기어들어 정보수집을 일삼던 미제의 1,000t급 최신형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였다. 수색한 결과 배에서 고사기관총과 수십정의 저격무기들을 비롯한 각종 무기들과 각종 탄약과 수류탄, 무선도청기, 송신기, 암호기 등 여러가지 정탐기재들 그리고 해도, 항해일지, 난수표 등 수많은 간첩활동문건들이 나왔다.

「푸에블로」호사건의 경위를 요해하신 장군님께서는 잘했다고, 정말 잘했다고, 우리 해병동무들이 용감하다고 높이 치하하시면서 말씀하시었다.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킬 사건입니다. 이른바 세계의 「최강」을 떠드는 미제의 무장간첩선을 나포한 것은 역사상 있은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조선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언명하신 장군님께서는 정말 통쾌하다고, 미국놈들이 또다시 조선인민앞에 수치스러운 참패를 당하였다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었다.

사실 「푸에블로」호는 우리 나라만이 아니라 태평양지역의 여러 나라 영해에 기어들어 각종 군사 및 국가정보자료들을 계통적으로 수집해갔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도 그것이 문제시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우리 해병들이 그 간첩선을 나포하였으니 이것은 세계앞에서 미제의 면상을 후려갈긴 것이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먼저 미제의 침략적 죄행을 폭로하는 언론전을 펼치시었다.

이것은 간첩선나포 못지 않게 미제를 세계의 면전에서 다시한번 호되게 답새기기 위한 강력한 타격전이었다.

장군님께서는 간첩선나포와 관련한 중앙통신사보도를 제목을 크게 달아 신문 1면에 편집하며 신문, 방송들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할 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그리고 간첩선에 대한 현지촬영과 포로한 간첩들의 몰골을 역사에 화면기록으로 남기는 사업도 직접 포치하시었다.

그리하여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인 1월 24일 조선중앙통신과 중앙방송은 물론 모든 신문, 방송들이 일제히 「푸에블로」호 나포에 대한 중대소식을 보도하였다. 보도가 나가자마자 세계각국의 통신사, 방송국, 신문사들이 특보로 전하였다.

미국은 온 나라가 통채로 발칵 뒤집혀졌다. 국무장관, 국방장관, 합동참모본부의장 등을 백악관에 불러들인 미국대통령 죤슨은 「푸에블로」호사건과 관련한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이라는 것을 확정했다. 그에 따라 미국은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과 일본 요꼬스까에 기지를 둔 미제7함대, 남조선군으로 하여금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공격태세를 갖추게 하였다. 한편 「푸에블로」호가 공해상에서 납치되었다고 세계여론을 오도하는 적반하장격의 모략공세를 벌였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제격이라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강도적 논리와 궤변으로 저들이 저지른 침략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도리여 역공해 나오는 미제에 대하여 강력한 타격을 가하도록 하시었다.

주체57(1968)년 1월 24일 한낮경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보위성청사를 찾으시었다.

해당 부서일꾼으로부터 죤슨이 미국역사에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하면서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푸에블로」호를 찾아오라고 졸개놈들에게 호통쳤다는 보고를 받으신 그분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미국놈들이 제아무리 고아대야 함정에 빠진 승냥이신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었다.

일꾼이 올리는 종합된 적정자료를 요해하신 장군님께서는 단호한 어조로 우리는 「푸에블로」호를 미국 앞바다에서 붙들어온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 영해인 원산 앞바다에서 나포하였다고, 이것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공화국의 응당한 자위적 조치라고 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물론 피를 즐기는 미제침략자들이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을 구실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그렇다고 하여 절대로 놀랄 것은 없다고, 우리는 이 기회에 미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적이며 날강도적인 죄행을 세계면전에 발가 놓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사건처리를 위한 방향과 방도들을 밝혀주시었다.

이것은 그대로 미제침략자들을 세계의 심판대위에 내세우고 범죄행위를 다불려 조선인민앞에 무릎을 꿇게 하기 위한 영활무쌍한 대미투쟁전략의 제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앞으로 우리 나라 정세가 극도로 긴장하여 질 수 있으므로 놈들의 일거일동을 예리하게 살피며 그에 대처할 준비도 빈틈없이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시고 청사를 떠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연이어 미제에게 된 매를 안기기 위한 정치외교전을 펼쳐 나가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에 따라 간첩선사건과 관련한 중앙통신사성명이 발표되었다. 미제의 죄행이 자료적으로 밝혀지자 온 세계가 미국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벼룩이도 낯짝이 있다고 하는데 미제의 철면피성은 짐승도 낯을 붉힐 일이었다.

미제는 「푸에블로」호가 공해상에 있었다고 계속 생억지를 쓰면서 나포는 국제법위반이기 때문에 조선측이 「사죄」하고 선원들을 「석방」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 사건을 유엔에까지 끌고 갔다.

이에 대처하여 1월 27일에 즉시 공화국정부성명이 통신과 방송으로 발표되었다.

정부성명은 영웅적 조선인민군대와 전체 조선인민은 미제국주의자들의 어떠한 도발이나 침공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만단의 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원수들이 감히 덤벼 든다면 섬멸적 타격을 가할 것임을 밝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는 유엔안전보장리사회가 미제의 비법적「제소」를 토의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하며 미제의 침략을 엄페하여 조작되는 그 어떠한 결정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그를 무효로 선언할 것이다.』라고 언명했다.

성명이 발표되자 세계 진보적 인민들은 공화국의 정당한 입장에 대하여 전폭적인 지지와 연대성을 표시하였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미제의 「제소」를 부결해버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미제의 교활한 외교적 책동에 대해서도 조금도 타협하지 않으시었다.

미제는 저들의 압력이 통하지 않게 되자 현대수정주의자들을 꼬드겨 우회적으로 「압력」을 가하려 들었다.

이미 신념과 원칙을 줴버린 현대수정주의자들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나포한 간첩선을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하는 추태를 부리었다.

어느날 우리 나라 외무성을 통하여 어느 한 나라 대사가 위대한 수령님과의 면담을 요청해왔을 때였다.

그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시었다.

『모름지기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놓아주도록 조선에 압력을 가해 달라는 미국의 청탁을 받고 만나자고 할 것입니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장군님께 최고사령관이라는 입장에 서서 「푸에블로」호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는지 한번 결심채택을 해보라고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 말씀드리시었다.

『수령님, 저는 미국놈들이 항복서를 내기 전에는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절대로 석방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푸에블로」호는 우리의 전리품이므로 놈들이 항복서를 낸다 해도 돌려주지 않겠습니다. 우리 인민군대가 나포한 미제무장간첩선을 먼 훗날 박물관에 전시해 놓고 후대들에게 이것은 우리가 미국놈들에게서 빼앗은 간첩선이라고 말해주겠습니다.』

백두영장의 신념과 기상이 역력히 차넘치는 말씀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훗날 그때 김정일동지의 결심을 들으면서 그 배짱이 마음에 푹 들었다고, 그 배짱에서 큰 고무를 받았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었다.

 

   



최신형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 조미대결전은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와의 운명을 건 치열한 싸움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철의 신념과 담력, 천재적 지략에 기초한 초강경대응으로 적들의 군사적 침략기도를 물거품으로 만드시고 사회주의조국의 존엄과 인민의 운명을 수호하시었다.

역경은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고 전쟁은 영장의 가치를 시험한다고 한다.

그 어떤 위협공갈과 우회적 압력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미제는 전쟁을 해서라도 공화국을 기어이 굴복시켜 보려고 발악하였다.

간첩선이 나포된 초시기부터 매일과 같이 군부우두머리들을 들볶으며 전쟁도발음모를 꾸미고 있던 미제는 1월말에 이어 2월에 접어들기 바쁘게 조선반도주변에 침략무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전투비상이 내려진 남조선강점 미군과 남조선군의 전반적 부대들은 전연진지들을 차지한 상태였다. 미국본토에 있는 전략적 기동예비대인 미제침략군 제1, 2장갑탱크사단들과 5개의 기계화보병사단, 82항공육전여단, 일본주둔 미제침략군에 조선침략을 위한 동원태세를 갖출 데 대한 명령이 내려졌다.

일본의 요꼬스까에 사령부를 둔 미제7함대 주력기동부대가 조선해역에 파견된데 이어 남해상으로 기동하고 있던 함선들과 미국본토 서해안에 있던 일부 함선들도 모여들었다. 구축함, 원자력잠수함, 보급함을 거느린 원자력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 항공모함 「레인저」호, 대잠수함 항공모함 「요크타운」호 등 항공모함 3척과 무려 22척에 달하는 함선들이 울릉도부근에 집결하였다.

미제는 또한 일본에 있는 여러 기지들에서 미제5공군소속의 각종 전투기 150여대를 남조선의 오산, 수원, 김포 등에 배치하였다. 그 가운데는 핵탄을 탑재할 수 있는 「B-52」전략폭격기, 「F-4」를 비롯한 전투폭격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외에도 연 200여대의 비행기를 동원하여 일본에 있는 전쟁물자들을 남조선에 끌어들인 것까지 계산하면 옹근 하나의 전쟁을 치르고도 남을 무력이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셈이었다.

미제는 그것으로도 모자랐던지 나중에는 「나토각료이사회」와 지난 조선전쟁참가국들의 모임까지 열고 그 무슨 「대책토의」를 한다고 떠들었다. 그리고 미국의 정계와 어용출판보도망, 하수인들의 입까지 동원하여 우리에 대한 모종의 「폭격」, 「보복」, 「최후통첩」설을 유포시켰다.

어찌보면 적들은 아마 우리 공화국을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처럼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놈들의 망상을 뒤집어엎고 미제를 하룻강아지로, 조선을 범으로 만든 분은 희세의 영장이신 김정일장군님이시었다.

언제나 싸움에서 피동이 아니라 주동을 쥐고 방어가 아니라 공격으로 넘어가 역경을 순경으로, 화를 복으로 역전시키시는 것은 장군님의 군사적 기질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천리혜안의 예지로 미제의 군사적 기도를 환히 꿰뚫어 보시고 그것을 철저히 짓부숴 버릴 전략전술적 방안들을 밝혀주시었다.

조성된 사태의 결말과 조선반도에서의 새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초조속에 세계의 이목이 우리 공화국에 집중되고 있던 주체57(1968)년 2월 5일 저녁무렵이었다.

민족보위성청사를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총참모부 책임일꾼으로부터 적정보고를 받으시었다.

보고가 끝나자 그분께서는 미국놈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전 후 최대규모의 무력을 우리 나라에 동원하였다고, 미제가 우리 나라에 많은 무력을 끌어들이는 목적은 위협공갈의 방법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놈들이 떠들어대는 것처럼 「보복」을 하거나 전면전쟁을 일으키려는데 있다고, 놈들이 말하는 「보복」이라는 것은 우리가 제놈들의 요구대로 「푸에블로」호와 그 선원들을 돌려주지 않으면 그 댓가로 공화국북반부의 그 어디를 치겠다는 것이라고 명철하게 가르쳐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지시봉을 드시고 지도를 가리키시며 말하자면 여기 원산이나 공업도시들인 함흥, 청진, 남포 지어 평양까지 포함하여 우리의 주요도시들을 타격하겠다는 수작이라고, 우리는 놈들의 이러한 「보복」조치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주동적으로 짓부숴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이어 그분께서는 그러자면 민족보위성에서 놈들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살피는 것과 함께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적들의 「보복」조치를 짓부숴 버릴 탁월한 작전적 방안들을 명시해 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끓어오르는 흥분을 진정하지 못하는 책임일꾼에게 우리가 수행하게 되는 전쟁은 조국땅에서 미제를 몰아내고 조국을 자주적으로 통일하는 정의의 전쟁이며 반대로 미제가 조선에서 감행하는 전쟁은 침략적이며 약탈적인 부정의의 전쟁이라고, 정의의 전쟁은 반드시 승리하며 부정의의 전쟁은 반드시 패한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진리라고 확언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또한 우리에게는 정규적인 혁명무력도 국가적 후방도 지원도 없이 일제의 100만 대군과 맞서 싸워 이겼으며 청소한 무력으로 세계「최강」을 떠벌이던 미제를 역사상 처음으로 타승한 귀중한 투쟁업적과 풍부한 경험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 인민은 수령님의 두리에 굳게 뭉친 영웅적 인민입니다, 미제침략자들은 우리 인민의 힘을 얕보지 말아야 하며 분별있게 행동하여야 합니다, 만약 미제침략자들이 우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우리 나라에서 전쟁을 일으킨다면 우리는 적들과 싸워 단연 결판을 내야 합니다라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힘을 주어 말씀하시었다.

장군님의 근엄하신 모습에서는 진정 천만대적앞에서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태연자약하게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완성하실 구상을 무르익히시는 만고의 영장다운 기상과 의지가 넘쳐나고 있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시간이 퍼그나 지나도록 조성된 정세에 대처한 인민군대의 과업과 구체적인 작전방안들을 일일이 제시해주시었다.

이러한 속에서 주체57(1968)년 2월 8일 평양에서는 조선인민군이 정규무력으로 강화발전된 20돌을 경축하는 성대한 연회가 진행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회에서 하신 역사적인 연설에서 만일 미제국주의자들이 계속 무력을 동원하여 위협공갈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그들은 이로부터 얻을 것이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있다면 오직 시체와 죽음뿐일 것이라고 엄숙히 선언하시었다. 그리고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결코 전쟁을 두려워 하지는 않는다고,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미제국주의자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 것이라고 강경하게 언명하시었다. 그것은 미제의 무분별한 전쟁책동에 대처한 공화국의 단호한 입장을 천명한 것이었다.

이날 연회에 참석하신 장군님께서는 총정치국의 한 책임일꾼에게 수령님께서 내리신 선언은 미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에게는 폭탄과 같은 선언이라고, 미제는 「푸에블로」호사건에서 쓰디쓴 참패외에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겠지만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아주 큰 것을 얻게 될 것이라고, 이제 두고 보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신념과 배짱이 실제로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조치들을 연이어 취하시었다.

인민군대와 노농적위대 전체 부대들이 완전전투태세에 들어갔다. 각종 현대적인 무장장비들이 방수포들을 벗어던지고 전투위치를 차지했다. 완전무장한 군종, 병종 예비구분대들도 지정된 계선으로 진출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군대와 함께 인민들도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 들고 내일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오늘 밤까지는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도록 이끄시었다.

그러시는 한편 장군님께서는 온 나라에 평화시기의 정상적인 생활이 그대로 흐르도록 하시었다. 전국의 극장, 영화관들과 체육관, 경기장들에서는 예술공연과 영화상영, 체육경기들이 이전이나 다름없이 진행되었다. 인민대표단들도 여느 해처럼 인민군부대들을 찾아가 장병들을 축하해 주었고 예정했던 전국농업대회도 성대히 열리었다.

장군님자신께서도 이 무렵 몸소 평양대극장에 나가시어 조선인민군협주단이 창조한 음악무용서사시 「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를 지도하시었다. 그후 어느날에는 안주군 상서리를 돌아보시면서 학교를 잘 건설하고 교구비품을 충분히 갖출 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한 일꾼이 장군님의 집무실에 찾아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께서 작전도가 아니라 여성들의 옷도안을 들여다보고 계시었다.

미소를 지으시고 『좋구만, 좋아!』 하시며 한장 또 한장 펼쳐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어디엔가 전화로 우리 여성들이 입을 옷인데 꼭 도안대로 만들어 선녀가 되게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시는 것이었다.

우리는 벌써 이겼구나! 일꾼은 이런 환희에 휩싸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 일꾼에게 「푸에블로」호사건과 관련한 외교적 대응책을 세워주시면서 결연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미국호전광들에게 버릇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큰 나라라고 하여 작은 나라를 업수이 여기는 오만한 자세를 꺾어 놓아야 합니다.

미국이 조선을 똑바로 알았어야 했습니다. 조선을 아직도 잘 모르는데 미국의 비극이 있습니다.

이번에 미국놈들이 허장성세하면서 우리 나라에 기어들지만 돌아갈 때에는 우리 인민과 세계인민들앞에서 적대적인 정탐행위를 인정하고 항복서라도 내야 제 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올 때에는 제 마음대로 왔지만 돌아갈 때에는 절대로 제 마음대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이제 교활하기 그지없는 미국놈들이 무모하게도 모험적인 책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덫에 걸린 도적고양이신세이므로 우리 인민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의 항복서를 반드시 쓰게 될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우리가 미국놈들로부터 항복서를 어떻게 받아내는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장군님의 여유작작하고 배포유연하신 모습은 어떤 정황속에서도 드놀지 않는 무비의 담력과 배짱으로 적들을 한손에 거머쥐고 쥐락펴락하는 전설적 영장의 거인적 모습이었다.

그 위대한 모습을 우러르며 인민군장병들과 인민은 물론 세계 진보적 인류는 벌써 조선의 승리를 낙관하였다.

외국의 한 출판물은 이렇게 썼다.

『평양은 매우 낭만적이다. 민족의 관심하에 체육대회와 예술축전이 성황리에 개막되고 올해농사를 의논하게 될 농업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농민대표들이 평양으로 들어서고 있다.

「워싱톤은 과연 평양을 굴복시킬 수 있는가?」

정견이 서로 다른 100명의 인사를 대상하여 이런 질문을 하였는데 그들은 하나처럼 대답하였다.

「전쟁은 벌써 끝났다. 평양은 이겼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대와 인민이 미제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맞서 과감히 싸울 태세를 갖추도록 이끄시는 한편 궁지에 빠진 미제에게 숨돌릴 틈을 주지 말고 연속타격을 안기도록 하시었다.

주체57(1968)년 2월 12일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의 한 책임일꾼을 부르시었다.

그분께서는 「푸에블로」호 함장의 두번째 자백서를 신문에 내면서 그놈이 저들의 범죄행위를 더 상세히 자백하고 공화국의 법에 의하여 처벌되어야 하나 관대히 용서해줄 것을 청원한 내용을 신문들에 그대로 주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이것은 무장간첩선을 파견한 미제의 전쟁두목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으로 될 것이며 원수들에 대한 우리 인민들과 세계인민들의 적개심을 더욱 높이게 할 것입니다.

앞으로 놈들의 함선위치, 일일기록부와 항해도, 작전문건 등도 연이어 공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장간첩선 장교들과의 기자회견준비를 잘 하여가지고 진행하여 새 전쟁도발책동에 날뛰고 있는 미제의 날강도적인 침략행위를 다시금 확인시켜 놈들의 죄행을 못박아 놓아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푸에블로」호 선원들이 제놈들의 죄과를 인정한 후에 기자회견을 요청하고 공화국정부에 공동사죄문을 제출하였을 때에는 이것을 가지고 미제에게 연속타격을 안기도록 이끄시었다.

「푸에블로」호 선원들은 2월 16일에 제출한 공동사죄문에서 상전의 명령에 따라 우리 나라 영해에 몰래 기어들어 정탐행위를 하다가 우리의 자위적 조치에 의해 붙잡힌 사실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공화국정부와 인민앞에 정식으로 사죄하였다.

사죄문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사죄가 충분한 것이 못되며 자기들을 정탐활동에로 내몬 미국정부가 세계의 공정한 여론앞에 범죄의 진상을 밝히고 공화국정부에 공식 사죄할 것을 요구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공동사죄문을 낸 그날 그 공동사죄문의 전문을 사진과 함께 편집하여 통신과 방송들에서 즉시로 내보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이 공동사죄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대내외적으로 커다란 파문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미제침략자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이자들처럼 우리 인민앞에 반드시 무릎을 꿇고야 말 것입니다.』

장군님의 이 예언과 확신은 천하무적의 영장으로서의 지략과 선견지명에 의해 담보된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이제는 『「푸에블로」호 선원들의 자백과 사죄문을 가지고 미제의 코를 단단히 꿰어놓은 조건에서 미제의 두목 죤슨에게 주공방향을 돌리도록 하시었다.

그 무렵 미국에서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치열한 선거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선거에서 갖은 모략책동을 다해서라도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다시 대통령감투를 뒤집어쓰려는 것이 죤슨의 꿈이었다. 그래서  월남전쟁을 계단식으로 확대하였는데 막대한 군사비의 지출이 통화팽창과 심각한 경제위기를 초래하여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러한 그에게 있어서 「푸에블로」호사건은 골치거리정도가 아니라 목에 찔린 가시었다.

이런 때 미국정부가 제놈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를 솔직히 인정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앞에 진심으로 사죄하고 그러한 일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데 대하여 보증할 것을 요구한 「푸에블로」호 선원들의 공개서한이 죤슨에게 보내졌다.

그리고 잔꾀를 부리며 사죄하려 하지 않고 저들의 새 전쟁도발책동을 은페해 보려고 교활하게 행동하는 미제를 되게 다불리는 논평들이 연이어 발표되었다.

「푸에블로」호 선원들의 공개서한이나 논평은 죤슨의 숨통을 조이는 올가미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펼치신 영활무쌍한 지략과 작전에 의해 정신을 차릴사이없이 연속 강타에 얻어맞은 미제는 완전히 녹초가 되고 말았다. 사면초가의 처지에 빠진 미국대통령 죤슨은 마침내「푸에블로」호사건을 구실로 남조선에 끌어들였던 침략무력을 철수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놈들은 우리 나라 동남해에 집결시켰던 미제7함대소속 71기동분함대 항공모함 3척과 각종 함선 22척을 3월 22일부터 일본 오끼나와 근해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24일부터는 전연진지를 차지하였던 일부 역량을 철수하기 시작하였으며 해외로부터 남조선지역에 반입하였던 250여대의 미군전투기들중에서 84대를 다시 해외기지로 내가고 말았다.

이러한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통쾌하게 웃으시면서 미제국주의자들이 이번에 우리 당과 인민의 단호한 입장에 겁을 먹고 다시한번 우리 인민앞에 굴복한 셈이라고 말씀하시었다.

 

   



「항복서」라는 말은 군사관계 전문용어이다. 항복서를 받는 자는 승자가 되고 반대로 바친 자는 패자가 된다.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을 둘러싼 미국과의 싸움에서 연전연승을 이룩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최후승리를 위한 작전을 준비하시었다.

싸움에서는 마지막결속이 중요하다. 아무리 싸움을 잘 하였다고 해도 마무리를 잘하지 못하면 걷어 쥘 것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졌다는 말도 생겨난 것이다.

결심에서 단호하고 타격에서 무자비하며 일단 맞다 든 적과는 마지막까지 싸워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지니고 계시는 영장의 기질이다.

이제는 미제의 마지막숨통을 조일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신 장군님께서는 미제로 하여금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를 우리 나라 영해에 침입시킨 것이 저들의 계획적인 침략행위라는 것을 인정하고 조선인민앞에 무릎을 꿇고 공식 사죄하도록 하기 위한 작전을 무르익히시었다.

그리하여 포로들을 내세워 그들의 말과 글, 자료를 가지고 국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일대 공세를 취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었다. 이것은 뛰어난 정치군사적 예지로 적들의 기도를 통찰하신 장군님께서 언론전의 위력을 이용하여 다시한번 미제의 뒤통수에 위력한 강타를 안기도록 하신 것이었다.

주체57(1968)년 7월초 어느날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책임일꾼을 전화로 찾으시었다.

그분께서는 「푸에블로」호 사건을 가지고 8.15전으로 국내기자회견을 하고 9.9절을 계기로는 국내외기자회견을 크게 벌여야 하겠다고 가르쳐주시었다.

그러시면서 9.9절행사때에 수십개 나라 외교대표들이 올 것이 예견되므로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국내외기자회견을 크게 해보자고 하시며 미국놈들이 풀이 죽어서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다시한번 놈들의 뺨을 후려갈겨야 하겠다고, 미국놈들이 우리 인민앞에 머리를 숙이고 자기의 죄과를 사죄하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총참모부의 책임일꾼과 오래도록 자리를 같이하시고 국내외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목적과 의도, 그 성과적 보장을 위한 사업방향과 방도들을 일일이 가르쳐주시었다. 그분께서는 국내외기자회견은 미제의 침략행위를 국제적으로 완전히 인식시키는 중요하고도 책임적인 사업이므로 그 준비사업을 빈틈없이 해야 한다고, 준비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놈들의 정탐행위를 정확히 논증할 수 있는 자료들을 잘 준비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시었다. 그러시고는 외국기자들이 포로들의 생활을 보자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의 요구대로 포로들의 침식상태와 건강상태까지 다 보여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시었다.

국내외기자회견을 하루 앞둔 날 깊은 밤이었다.

총참모부 책임일꾼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기자회견장소를 꾸린 정형을 요해하시고 기자회견이 끝난 후 기자들의 감상문을 「노동신문」에 내도록 가르쳐주시었다.

이렇게 준비된 국내외기자회견은 주체57(1968)년 9월 12일 평양에서 열리었다.

세계 30여개 나라에서 온 수많은 외국기자들과 국내기자들이 참가한 기자회견장에는 「푸에블로」호를 건조한 목적과 날자, 건조지, 배에 설치된 기구와 선원들의 구성, 그들의 임무와 지휘체계 등과 관련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간첩선이 우리 나라와 사회주의나라들을 대상으로 하여 감행한 정탐행위건수와 관련한 역사적 자료, 놈들이 사용한 기재들과 문건, 무장장비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다른 나라들에 대한 정탐을 목적으로 건조되어 미해군 태평양함대에 소속되어 있던 간첩선으로서 미중앙정보국의 지시에 따라 1968년 1월초 일본주둔 미해군사령관으로부터 조선인민군 해군활동을 확인하고 조선인민군이 송신하는 일체 전자신호들을 도청하며 연해에 침범한 미국의 간첩선에 대한 공화국의 반응을 판정하고 군사적 관심사로 될 수 있는 모든 자료들을 정탐할 데 대한 특수임무를 받고 교활하게도 「해양전파연구함선」으로 가장하여 우리 나라 영해에 침입하였다는 것이 세계면전에 적나라하게 폭로되었다.

이날 기자회견이 끝나고 거기에 참가했던 국내외기자들이 돌아가려고 할 때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간첩선의 함장이 갑자기 의자위에 올라선 것이었다. 그는 외국기자들에게 기자회견에서 제기된 자료들을 가지고 미행정부에 항의를 들이대어 자기들이 하루빨리 부모처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애걸하였다.

기자회견진행과정을 요해하시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신 장군님께서는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이제는 미제가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를 우리 나라 영해에 불법침입시켜 정탐행위를 감행한 사실이 국제적으로 완전히 인정된 셈이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포로들의 숙소를 돌아본 여러 나라 기자들의 반영을 보아도 미제가 이제는 「푸에블로」호사건에 대하여 더는 왜곡하여 선전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시며 통쾌함을 금치 못해하시었다.

이날 깊은 밤이었다. 당중앙위원회의 한 책임일꾼은 뜻밖에도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푸에블로」호 함장과 선원들이 국내외기자회견에서 자기들의 범죄행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빈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주시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원래 미국놈들은 약자에게는 허장성세하지만 자기에게 조금만 불리하여도 비굴하게 행동하는 놈들입니다. 이번에 미국놈들이 우리한테 단단히 코를 꿰었기 때문에 그렇게 나올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정부가 「푸에블로」호가 우리 나라를 침범한 행위를 인정하고 우리 인민에게 정식으로 사죄하기 전에는 그들을 돌려보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번 기자회견을 통하여 세계인민들을 기만하려고 책동한 미제의 파렴치성과 교활성을 폭로하고 놈들의 범죄행위를 다시금 만천하에 고발하였습니다.』

장군님의 말씀에는 제국주의원흉인 미제의 콧대를 꺾어버리고 무릎을 꿇게 하시려는 의지가 도도히 굽이치고 있었다.

장군님께서 예견하신대로 세계여론의 강력한 항의와 규탄앞에서 미제는 만신창이 되었다.

그러나 철면피한 미제는 공화국정부에 저들의 범죄행위를 인정하고 사죄하며 다시는 그런 죄행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것을 담보하는 사죄문을 제출하는 것만은 회피해보려고 계속 잔꾀를 부리었다.

사태발전과정을 예리하게 주시하고 계시던 장군님께서는 이제는 말로서가 아니라 초강경으로 미제를 완전히 굴복시킬 결단을 내리시고 미제가 사죄하지 않겠다면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모두 군사재판에 회부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놈들에게 들이대도록 하시었다.

마지막 절망에 빠진 포로들은 또다시 우리 공화국정부에 목숨만 살려줄 것을 애걸하는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우리의 최후통첩과 포로들의 청원서가 「노동신문」을 비롯한 신문과 방송들에서 연일 보도되자 미제는 더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미제는 드디어 흰기를 들었다. 사죄문을 제출하겠다는 통고를 해왔다.

이 사실을 보고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의 한 책임일꾼과 함께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후부터 근 1년간에 걸치는 첨예한 투쟁과정에 대하여 돌이켜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놈들은 우리 공화국정부에 저들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우리 나라 영해에 여러 차례 침입하여 정탐과 적대행위를 한데 대하여 사죄하고 앞으로 어떠한 미국함선도 우리의 영해를 침입하지 않겠다는 것을 담보하면서 우리에게 포로된 「푸에블로」호선원들을 관대히 처분하여 줄 것을 서명한 사죄문을 제출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번에 미국정부가 저들의 범죄행위를 인정하고 우리 공화국정부에 사죄문을 내기로 한 것은 미제침략자들이 우리 인민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한 것이나 같습니다. 우리는 미국정부로부터 사죄문을 받아냄으로써 또다시 세계의 면전에서 미제의 거만한 콧대를 꺾어놓고 영웅적 조선인민의 기개를 다시한번 온 세상에 떨치었으며 반제반미투쟁에 일떠선 세계 혁명적 인민들을 크게 고무하였습니다.』

주체57(1968)년 12월 23일 오전 9시 판문점에서 미국정부대표인 미군장성이 미합중국정부의 명의로 된 사죄문에 서명하고 그것을 우리 공화국정부에 제출하였다.

15년전 제놈들이 지른 침략전쟁의 불길속에서 만신창이 된 채 우리 인민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서에 도장을 찍을 때의 몰골과 신통히도 같았다.

포로들은 우리 공화국정부의 인도주의적 조치에 따라 공화국경외로 추방되었다.

이렇게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킨 「푸에블로」호사건은 우리 인민의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미제는 다시한번 군사, 정치, 도덕적인 참패를 당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 승리의 요인과 역사적 의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저들이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한 응당한 징벌을 받고 조선인민앞에 무릎을 꿇었으며 세계의 면전에서 톡톡히 망신하였습니다.

이번의 역사적 승리는 전적으로 수령님의 탁월한 영도의 빛나는 결과이며 우리 당의 자위적 군사노선의 정당성과 적들의 「보복 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맞설 데 대한 수령님의 백전백승의 강철의 의지를 높이 받든 영웅적 조선인민군대와 인민들의 위력의 시위였습니다.』

해외에서 출판된 어느 한 도서에서는 「푸에블로」호사건을 통한 조미대결 결과에 대하여 이렇게 평했다.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에서는 도대체 누가 사죄했고 누가 승리하였는가, 굴복한 것은 미국이었다.

「푸에블로」호가 나포되고 승무원이 북조선에 억류되었는데도 제7함대는 조용히 조선해협을 떠나버렸다. 미국병사들의 포로생활은 336일 동안의 긴 세월이었고 같은 해 12월 23일 미국정부가 영해침범을 인정, 사죄문을 발표하고서야 겨우 석방되었다.

조선에서 패배한 죤슨대통령은 재선되지 못했었다.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장군의 북조선은 미국과의 군사대결에서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역사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케네디의 쿠바위기는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다큐멘터리로 거듭 방송되고 있지만 이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을 둘러싼 조미군사대결과 미국의 굴복은 그 이상의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이것은 참으로 크나큰 역사적 승리였다.

세상을 들썩하게 한 이 승리는 미제의 숨통을 한 손에 거머쥐시고 놈들을 쥐락펴락하시는 강철의 영장이신 김정일장군님께서만이 안아오실 수 있는 위대한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