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적 군사노선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속에서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 철벽의 방어진이 구축되었다. 온 나라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전변되어 가고 있었다.

온 나라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는 것은 완벽한 방위태세를 갖추게 하여 적들이 감히 덤벼들지 못하게 하자는 데 목적이 있었다.

동서고금의 군건설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나라들이 외적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방어시설을 구축해놓았다. 프랑스의 「마지노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방어시설물이었다. 프랑스는 히틀러의 파쇼독일군이 쳐들어와도 문제없다고 장담하면서 그것을 「난공불락」이라고 자랑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프랑스가 나라의 동북부지대를 방위할 목적으로 독일과의 국경지대 군사적 요충지역에 구축해놓은 방위시설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더욱이 그것은 「난공불락」이 아니었다. 프랑스방어군은 독일의 탱크승조원들이 일제히 흰기를 휘두르며 『정전! 투항!』을 외치면서 다가오자 그것이 파쇼놈들의 깜찍한 기만인줄도 모르고 진짜 투항으로만 믿고 쳐다보다가 불의의 타격을 받고 돌파 당하는 수치를 당했던 것이다.

역사가 일찍이 알지 못한 난공불락의 요새를 온 나라에 구축하려는 것이 자위적 국방력강화의 중요한 목표였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확고한 의지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 전대미문의 자위적 국방력강화를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끌어 나가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나라의 방어진을 철통같이 다지는데 있어서 동서해안을 금성철벽으로 꾸리는 사업을 중시하시었다.

동서 양안에 수백, 수천여km에 달하는 해안선을 가진 우리 나라에서 해안방어는 매우 중요한 군사적 문제었다.

일찍이 온 나라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드는 데서 해안방어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깊이 통찰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문제를 국방에서 자위를 실현하는 사업의 중요한 분야로 내세우시었다.

1960년대 중엽에 적들은 공화국의 해안방어상태를 탐지하기 위한 정탐행위를 노골적으로 감행하고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적들의 침략기도를 예리하게 주시하시며 그 어떤 도발도 무자비하게 짓부술수 있는 전략적 구상을 무르익히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나라의 해안방어를 더욱 물샐틈없이 완성하실 결심을 안으시고 서해안의 인민군방어구분대들에 대한 현지시찰의 길에 오르시었다.

그 날은 주체55(1966)년 6월 어느 날이었다.

한 해안포구분대를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해안포진지들과 구분대의 여러 초소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돌아보시었다.

그분께서는 구분대의 전투준비상태가 잘되어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이어 구분대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이곳을 잘 지키면 적들이 이 일대로 기어들지 못할 것이라고, 그러므로 동무들은 이곳을 잘 지켜야 한다고, 동무들이 적들을 조금이라도 우리 땅에 들여놓는다면 해안포병으로서의 면목이 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지휘관들에게 서해안방어가 가지는 군사적 의의를 밝혀주시면서 특히 자연지리적으로 평양이 가까운 것으로 하여 전략전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곳 해안방어를 잘 할 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후에도 이곳 해안포구분대를 자주 찾으시어 현대적인 전투기술기재들과 물질문화생활조건을 더 훌륭히 갖추도록 하여 주시었다. 그리하여 해안포구분대는 짧은 기간에 전투력이 강한 구분대로 자라날 수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이 구분대 뿐 아니라 서해안일대의 모든 해안포구분대들에서도 현대전의 특성에 맞게 각종 최신해안방어무기들에 의한 화력체계를 확립하도록 하시고 진지들을 튼튼히 다지는 데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다 풀어주시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서해안에 있는 어느 한 기업소에서 해안방어에 전략전술적 의의가 자못 큰 고지를 화강석채석장으로 쓰고 있었다.

이 사실을 요해하신 장군님께서는 그곳의 채석장을 없애고 고지를 군사적 목적에 쓰도록 할 데 대하여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참으로 장군님의 이렇듯 세심하고 정력적인 영도로 하여 서해안은 적들이 한치도 발붙일 수 없는 철벽의 요새로 전변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적인 해안방어사상이 동해안방어에서도 철저히 구현되도록 하기 위해 끊임없는 현지시찰의 길을 걸으시었다.

주체56(1967)년 7월의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동해안을 방어하고 있는 군부대에 대한 현지시찰의 길에 오르시었다.

그분께서 동해안방어부대를 현지시찰 하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두해전 5월 초순에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동해안일대를 시찰하시었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동해안방어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동해안선의 지형적 특성과 수문기상상태, 방어역량의 조성 등을 상세하게 알아보시었다. 그러시고는 해안선이 긴 실정에 맞게 방어부대들을 배치하고 그 위력을 증대시키는 문제, 부대들사이에 협동과 빠른 기동을 보장하는 문제, 군대와 민간무력과의 협동문제, 방어시설물의 증대와 관리문제, 적항공육전대의 투하가 예견되는 지역에 대한 감시조직과 적을 소멸하기 위한 방도문제 등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주시었던 것이다.

여름의 무더위를 무릅쓰시고 수백리길을 달려 부대에 이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며칠간에 걸쳐 방어지역부터 돌아보시면서 부대의 해안방어상태를 요해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비범한 군사적 예지로 나라의 중요한 공장, 기업소들이 집중되어있는 이 지역의 해안방어가 가지는 중요성을 대번에 헤아려보시며 해안선의 특성도 구체적으로 요해하시었다.

서해안에 비해볼 때 해안선의 굴곡이 완만하고 수심이 깊은 이 지역은 해안방어에서 일련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분께서는 해안방어상태를 요해하시고 해안방어조직에서 나서는 원칙적인 문제들을 환히 밝혀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해안상륙작전과 배합한 항공육전대작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적들의 기도를 분석하여 주시면서 해안방어의 화력밀도를 더욱 조성해야 할 지점들과 적들의 항공육전대투하지점들을 명철하게 지적해주시었다. 그리고 동해안의 성격에 맞게 해안방어를 강화하며 적들을 효과적으로 소멸할 수 있는 전술적 방안들과 전법들을 가르쳐주시었다.

그것들은 미제침략자들이 적용하는 상륙작전의 규모와 형태, 전술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세워진 주체적인 전략이고 전술이었다. 거기에는 적들을 바다에서, 하늘에서 소멸할 수 있는 기본담보가 정확히 명시되어있었다.

이곳 해안방어부대가 지침으로 삼을 전략전술적 문제들과 그 관철방도들을 밝혀주신 다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술적 의의가 큰 한 해안포중대로 가시었다.

중대는 파도세찬 도래굽이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환호하며 달려나온 군인들을 사랑의 한 품에 뜨겁게 안아주시고 중대병실과 식당상태를 알아보시었다.

이윽고 그분께서는 바다에 나가 포진지를 보시기 위해 군인들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그들이 만든 수수한 매생이에 올라 바다로 나가시었다.

소금기배인 배위에 허물없이 앉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파도가 심하게 오르내리는 바다 한가운데서 바다가 풍경을 바라보시었다. 우뚝 솟아있는 공장, 바다기슭에 오붓이 들어앉은 마을, 훈풍에 설레이는 풍요한 논벌과 트랙터의 동음 그리고 만선의 자랑안고 귀항하는 고깃배들, 그것은 한 폭의 아름다운 화폭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사회주의조국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감탄을 금치 못해하시면서 군인들이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며 신성한 조국땅에 원수들이 더러운 발길을 한치도 들여놓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중대의 전투임무에서 기본이 내륙으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는 것이라는 부대의 한 일꾼의 설명을 들으시고 나서 뜻 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내륙으로 통하는 길들은 다 평양과 잇닿아 있습니다. 평양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고 우리 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고 있는 조국의 심장입니다. 물론 여기서 평양까지는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이 순간에도 조국의 영해를 지켜선 바다가 초병들을 잊지 않고 계십니다.

장군님의 우렁우렁한 음성은 군인들의 심장을 쾅쾅 울려주었다.

장군님께서는 포진지를 바라보시고는 저으기 만족해하시며 더 잘 꾸리는 데서 나서는 강령적 지침을 주시었다. 그리고 날로 격화되는 정세에 대하여 말씀해주시면서 언제나 긴장되고 동원된 태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었다.

바다에서 돌아오신 장군님께서는 군인들과 허물없이 식사도 나누시고 그들의 저격무기실탄사격도 지도해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해질 무렵에야 중대를 떠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오늘은 바다가 초소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늘 여기에 와서 군인들이 중대를 잘 꾸리고 해안경계근무를 잘 서고 있는 것을 보니 기쁩니다. 모든 중대들이 이 중대처럼 꾸리면 괜찮겠습니다.

동무들에게 있어서 하루하루는 전투준비에서 매우 귀중한 시간입니다.…

평범한 군인들의 성스러운 조국보위의 하루하루를 그토록 소중히 여겨주시는 장군님이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8월 초순에도 이곳 군부대를 찾으시어 동해안방어에서 나서는 중요한 원칙적 문제들을 밝혀주시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군부대참모장으로부터 동해안부대들의 전투임무와 전투준비상태를 다시금 요해하신 다음 앞에 놓인 지도에서 몇 곳을 짚으시고 동해안방어에서 매우 중요한 방향이라고, 적들이 해상상륙작전과 항공육전대작전을 배합하여 쳐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고 하시면서 적은 역량으로 넓은 전선을 방어하기 위한 방도들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며 참모장은 그분의 비범한 군사적 예지와 지략에 탄복을 금할 수 없었다. 탁월한 군사적 방안을 밝혀주시는 그분을 우러르는 그에게는 어느해 가을날에 있었던 일이 되새겨졌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군사지휘관들의 중요한 회의가 열리었다. 적들의 전쟁도발책동과 관련하여 일단 유사시 적들을 어떻게 제압하겠는가 하는 작전문제들이 토의되었다. 군사지휘관들과 작전전문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전방안들을 놓고 토론이 벌어졌는데 새롭고 기발한 문제들이 적지 않게 제기되었다.

하지만 작전적 방안에서 핵이라 할 수 있는 주타격방향에 대한 방안은 누구도 내놓지 못하였다. 토론이 거듭되고 몇가지 방안들이 제출되었으나 완전무결한 것이 못되었다.

군사지휘관들, 작전전문가들의 마음은 조급했다. 송구스럽고 안타 까왔다.

바로 그때 『내가 한가지 방안을 제기하겠습니다.』라고 하시며 장군님께서 작전대앞으로 나서시었다.

장내의 시선들이 장군님께로 쏠리었다.

기대에 찬 눈길들이 집중되는 가운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먼저 적들의 배치와 아군부대들의 임무, 그 구성상태에 대하여 설명하시었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얼마전 배비변경된 전선서부의 어느 한 적부대의 실태를 자료적으로 설명하시고 나서 지시봉으로 한 지점을 찍으시면서 여기가 바로 인민군대의 주타격방향이라고 명백히 말씀하시었다.

장군님의 비범한 군사적 안목과 비상한 영장의 지략에 모든 일꾼들이 경탄해마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방안을 울리었다.

김정일동지방안이 아주 좋소.아주 좋은 방안이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 안으며 일꾼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야 말로 시대가 낳은 가장 걸출한 군사전략가이심을 느끼며 격동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그때의 격동된 심정을 간직하고 있는 참모장은 그날처럼 비범한 예지로 동해안방어에서 나서는 군사작전상 문제들을 환히 밝혀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그분의 가르치심을 심장으로 받들어 동해안방어작전에서 만전을 기할 결의를 다졌다.

파도 사나운 분계선주변의 바다가 초소로부터 북쪽해안의 방어진지들에 이르기까지 어디라 없이 어려있는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의 손길에 의해 동서의 해안방어는 빈틈없이 더욱 완벽을 기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진행된 경애하는 장군님의 동서해안방어부대들에 대한 현지시찰은 당시의 군사정치정세로 볼 때 가열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쟁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서 하나의 분수령이었던 1211고지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와도 같은 거대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었다.

장군님의 역사적인 현지지도의 빛나는 결과로 우리 나라의 동서해안은 강력한 보루로 튼튼히 꾸려졌고 적들의 그 어떤 도발책동도 일격에 쳐 물리칠 수 있게 준비되었다.

역사와 시대는 그것을 곧 실증하였다.

주체56(1967)년 1월 19일이었다.

이날 적들은 우리의 해안방어무력상태를 탐지할 목적으로 「경호함 56」호를 우리측 영해깊이 들이밀었다.

북위 38°40.7', 동경 128°26.3' 즉 군사분계선 연장선으로부터 우리측 영해깊이 침입한 적함은 악랄한 적대행위를 감행하였다.

그러나 적들은 오산하였다.

천하무적의 백두영장이신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영도밑에 철벽의 방어진을 치고 조국의 바다를 경각성있게 지켜선 영웅적 조선인민군 해안포병구분대는 즉시 자위적인 군사행동으로 넘어갔다.

보복의 명중탄을 얻어맞은 적함은 바다속깊이 수장되고 말았다. 이것은 침략자들에게 차례진 응당한 징벌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바다로 둘러싸여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해군을 강화하여야 넓고 긴 해안선을 튼튼히 지킬 수 있다고 보시고 이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주체적인 해군무력건설방침을 확고히 틀어쥐고 우리 식으로 발전시키도록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어뢰정에 큰 관심을 돌리시었다.

어뢰정은 오래전에 나온 작은 전투함선으로서 지난 조국해방전쟁과 두차례의 세계대전에서 그 위력이 검증되었다. 어뢰정은 현대전에서도 자기의 특성을 상실하지 않고 끊임없이 개선되어 큰 함선들을 상대로 해상전도 치를 수 있는 나무랄 데 없는 해군무장장비로 완성되었다.

어뢰정의 이러한 우월성을 통찰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해군부대들을 현지지도하실 때마다 어뢰정대부터 찾아주시었다.

주체54(1965)년 5월 어느 날이었다.

동해안에 자리잡고 있는 한 어뢰정구분대를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해병들과 함께 어뢰정을 타시고 항해길에 오르시었다. 그분을 모신 함정은 다른 어뢰정들과 함께 대형을 짓고 흰 물갈기를 구름처럼 말아 올리며 쏜살같이 내달렸다.

어뢰정의 동음이 귀청을 때리고 물기어린 바닷바람이 윙윙거렸다. 이따금 물새들이 끼륵끼륵 소리를 내며 머리위로 날아갔다.

장군님께서는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시며 장쾌하고 아름다운 바다를 살피시며 서 계시었다.

장군님의 숭고한 모습을 우러르며 동행한 일꾼들은 가슴이 벅찼다.  해군건립의 초창기에 어버이수령님께서 어뢰정에 올라 여신 첫 항해길을 오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어 가고 계시는 것이었다.

장군님께서는 함정의 각 전투초소들에서 해병들의 전투조법습득정도를 요해하시고 그들이 전문기술수준을 더욱 높여 나가도록 고무해주시었다.

그리고 지휘관들에게 함정의 속도조절, 항해방향변동 등 각이한 전투정황을 제시하시고 항해를 몸소 지휘하시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정대의 전투력을 요해하신 장군님께서는 해병들이 높은 항해술을 발휘한데 대하여 만족을 표시하시었다. 그러시면서 그들이 훈련을 강화하여 용감성과 높은 군사기술로 무장한다면 작은 어뢰정을 가지고도 적들의 그 어떤 대형함선들과 능히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굳게 확신하시었다.

동해의 어뢰정대들을 찾으시어 조국의 동해초소를 지켜선 바다의 결사대로 싸울 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서해의 어뢰정대들도 찾으시었다.

서해의 백영도주변 해상에서는 적들의 잦은 도발행위로 말미암아 정세가 긴장되어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일신의 위험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주체55(1966)년 8월 비오는 어느날 한 어뢰정구분대를 현지에서 지도하시었다.

그분께서는 궂은 날씨도 무릅쓰시고 친히 어뢰정에 오르시어 해병들과 함께 파도 사나운 항해길을 헤쳐 나가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어뢰정은 「바다의 제비」, 「바다의 비행기」라고 하시면서 해병들을 고무격려해주시고 서해의 해상조건에 맞는 주체적인 전법과 전술들도 일깨워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와 보살피심 속에서 동서해 해병들은 펄펄 나는 바다의 싸움꾼으로 튼튼히 준비되어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해군무력의 현대화를 실현하는 사업에도 큰 힘을 넣도록 하시었다.

그 무렵 장군님께서는 민족보위성의 책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해군의 함선들과 무장장비가 낙후하다고 하면서 폐선 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시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해군함선들을 망탕 없애 버리는 것은 해군무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해독행위이며 범죄행위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문제시하고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항일유격대원들이 <무적황군>이라고 떠들던 일제의 100만관동군과 싸워 이긴 것이나 우리 인민군대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국주의자들을 때려 부신 것은 결코 적들보다 무기가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혁명군대는 정치사상적 우월성과 전략전술적 우세로써 최신무기로 무장한 제국주의침략군대와 싸워 승리하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해군의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책동을 즉시에 저지시키고 해군의 싸움준비를 강화할 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우리 나라는 세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해군을 강화하여야 합니다. 해군을 강화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해병들을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장군님께서는 이어 우리는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해군의 무장장비를 계속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었다.

이 시기 경애하는 장군님에 의하여 주체적인 해군무력건설의 뚜렷한 전도와 구체적 과업들이 밝혀져 있었다.

그것들은 당시의 우리 나라 해군무장력의 실태와 함선들의 구성상태를 정확히 분석하신 데 기초하여 밝히신 독창적이고도 정당한 방침이었다.

이 방침에 따라 모든 함선설비들과 무장장비들을 우리 자체의 힘과 기술로 새로 장비할 뿐 아니라 빠른 기간안에 해군의 현대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졌다.

주체57(1968)년 8월 어느 날이었다.

함경남도의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던 장군님께서는 한 장령을 데리고 어느 한 해군기지를 찾아 떠나시었다.

가시는 길에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경험은 자체의 국방공업을 발전시키지 않고서는 인민군대의 현대화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현지에 도착하신 장군님께서는 전투함선들을 요해하시고 앞으로 이런 함선도 다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하겠다고, 아직은 기술적으로나 실무적으로 걸리는 문제들이 있겠지만 우리 노동계급과 기술자들은 하자고 마음먹고 달라붙으면 얼마든지 해낼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체의 힘으로 이런 전투함선을 무어 내야 한다고, 지난날 항일유격대원들은 맨손으로 연길폭탄을 만들어냈는데 지금 우리 나라의 자립적 경제토대를 가지고 이런 배 하나 무어 내지 못하겠는 가고, 지금부터 이런 전투함선을 자체로 무어 내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고 힘 주어 말씀하시었다.

그리고 해병들이 전문학습을 더욱 강화하며 함선에 빨리 정통하고 빠른 시간안에 자체로 운영하며 함선을 아끼고 잘 관리하도록 교양사업을 잘할 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곳 해군기지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시고 돌아오시는 길에서도 오늘 보니 그 전투함선이란 것도 별것이 아니라고, 우리 힘으로 얼마든지 무어 낼 수 있다고, 물론 지금은 이런저런 것이 걸리지만 달라붙어 연구하면 된다고, 위대한 수령님의 구상대로 해군현대화를 다그치자면 현대적인 전투함선들을 우리 힘으로 무어 내는 길밖에 없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우리 나라에서 만드는 어뢰정이 지금 큰 나라에서 만드는 어뢰정보다 못하지 않다고, 우리 노동계급이 하자고 결심하면 그런 전투함선도 무어 낼 수 있다고 신심을 안겨주시었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확신에 넘치신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이제 몇해 지나면 우리 노동계급이 무어 낸 전투함선들이 군항들을 채우게 될 것입니다.』

이 날에 하신 장군님의 말씀은 멀지 않아 실현되었다.

참으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정력적이고도 현명한 영도가 있어 조선인민군 해군은 바다에서 펄펄 나는 싸움꾼들의 집단으로, 일당백해병의 강력한 전투대오로 억세게 자라났다.

 

   

이른바 「공중우세」에 기초한 항공타격은 미제의 침략전쟁전법의 하나이다. 이로부터 미제는 남조선강점 미공군의 전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는 한편 남조선군에 현대적인 전투기들을 수많이 넘겨주면서 전쟁열을 고취하고 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미제의 속심을 꿰뚫어보시고 자위적 공군무력강화를 위하여 크나큰 노고와 심혈을 기울이시었다.

당시 세계적으로 공군무력은 현대전에서 전략적 및 전술적 주요대상물에 대한 위력한 타격수단으로 더욱 발전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공군무력발전의 이러한 세계적 추세는 우리의 공군무력앞에도 높은 요구성을 제기하고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공군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완벽한 자위적인 무력으로 강화발전시켜 나가실 웅지를 품으시고 주체53(1964)년 상반년에만 하여도 무려 10여차례에 걸쳐 공군부대들을 현지지도하시었다. 그리고 하반년에도 지칠 줄 모르는 정력으로 거룩한 영도의 자국을 새겨가시었다.

장군님께서 10월 18일 어느 한 공군부대를 현지지도하시었을 때였다.

자기들과 스스럼없이 자리를 같이하신 그분께 한 비행지휘관이 복잡한 일기조건에서와 야간에서의 비행훈련에서 거둔 성과에 대해 말씀드리었다.

마치 아버지앞에서 제 자랑을 늘어놓는 철부지 어린애의 심정이런 듯 싶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다 들어주시고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말씀하시었다.

『비행사들이 흐린 날과 밤에도 사고 없이 비행훈련을 하면 비행기를 잘 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조선사람들은 재간이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믿음직한 공군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비행훈련을 강화하여 모든 비행사들을 어떤 불리한 조건에서도 전투임무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게 준비시켜야 하겠습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때 적비행기들은 흐린 날과 밤에도 폭격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흐린 날과 밤에 비행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데 힘을 넣어야 합니다. 비행사들이 흐린 날과 밤에도 공중전을 할 수 있다고 하여 절대로 자만하여서는 안됩니다. 비행사들은 야간공중전은 물론, 낮이나 밤에도 지상목표에 대한 타격도 잘할 수 있게 준비되어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적들의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육무기로부터의 방위대책을 철저히 세우며 미국놈들 뿐 아니라 일본놈들의 비행기와도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대해 연구하고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비행사들은 싸움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적을 맞받아 나아가 싸워야 할 기본전투성원들이므로 그들속에서 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며 특히 비행사들이 혁명적 신념을 가지도록 교양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하늘에는 국경경비초소도 없고 군사분계선표식도 없다, 비행사들은 싸움하는 과정에 적진에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비행사들이 어떤 역경속에서도 혁명적 신념과 지조를 굽히지 않도록 교양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부대일꾼들에게 비행사들속에서 당생활을 강화하고 군민일치의 미풍을 높이 발양하며 그들이 언제나 생활을 낙천적으로 할 수 있게 문화생활조직을 잘해주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일일이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또한 장군님께서는 정치일꾼들은 분초를 아껴가며 수령님의 노작을 깊이 연구하고 정치사업경험자료도 많이 읽으며 수령님께서 지니신 사업방법과 작풍을 따라 배우기 위해 적극 노력하여 자신이 먼저 참다운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는데 대하여 일깨워주시었다.

공군무력을 세계에 자랑떨칠 1등급의 비행대로 키우시려는 장군님의 의지는 언제나 확고부동하였다.

언제인가는 이미 다녀가신적 있는 어느 한 부대가 최신형비행기들로 새로 장비되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또다시 그 부대를 찾으시었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새 비행기에 친히 오르시어 내부설비들과 계기류들을 자세히 살펴보시었다. 그리고 비행기를 잘 관리하며 비행훈련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 강조하시고 시험비행날자를 알아보신 다음 부대를 떠나시었다.

부대일꾼들과 비행사들은 그분께서 시험비행날자를 알아보신 의도를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다.

새 비행기의 첫 비행시험을 하게 되어있는 바로 그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또다시 부대를 찾아주신 것이었다.

그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분께서 모두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몹시 나쁜 기상조건에서 진행되는 시험비행에 직접 참가하신 것이었다.

시험비행이란 말 그대로 비행기의 조종성과 기술상태를 검열하는 첫 비행이다. 그런 것 만큼 그 누구도 새 비행기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 또 비행과정에 어떤 돌발적인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이날 기상조건도 시험비행하는데 불리하였다.

그래서 일꾼들과 비행사들이 앞을 막아 서며 시험비행에는 절대로 참가하실 수 없다고, 시험비행이 끝난 다음에 따로 모시겠다고 절절하게 말씀올렸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타이르시듯 말씀하시었다.

『일없습니다.

비행사들은 이런 날에도 비행하는데 나라고 왜 못하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격동으로 눈물짓는 비행사들을 한팔로 껴안으시고 비행기에 올라 조종실에 자리를 잡으시었다.

비행기는 대공을 향해 이륙하였다. 구름을 뚫고 쏜살같이 날아오르는가 싶더니 옆으로 비껴 내리꼰지기도 하고 하늘중천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날았다. 비행사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신 막중한 책임감과 함께 크나큰 영광과 행복감으로 하여 온몸에서 무한한 지혜와 용기, 담력이 솟구쳐올라 그 어느때보다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다.

장군님께서는 태연한 자세로 비행기의 복잡한 계기들을 살펴보기도 하시고 정겨운 눈길로 비행사들의 능란한 조종솜씨도 여겨보시었다.

시험비행은 한초한초가 10년, 100년 맞잡이로 긴장한 속에서 진행되었다. 비행장에서 사람들은 모두 손에 땀을 쥐고 시험비행을 지켜보았다. 그런 가운데 시험비행이 성과적으로 끝났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시험비행결과에 만족을 표시하시었다.

이날 시험비행을 지도하시면서 장군님께서는 비행사들에게 기존방법과는 전혀 다른 독창적인 훈련방법을 가르쳐주시었다.

그것은 우리 나라의 실정에 알맞는 가장 과학적인 우리 식의 독창적인 훈련방법의 제시었다.

긴장한 정세속에서 당과 국가의 크고 많은 일감들이 시간을 다투며 기다리건만 장군님께서는 이처럼 비행사들속에 계시면서 그들에게 무적의 힘과 필승의 지략을 안겨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가르치심에 따라 비행사들의 훈련방법이 개선되고 주체적인 훈련교범과 훈련강령이 완성되어 비행사들을 키우는 데서 커다란 성과가 이룩되었다.

우리 비행사들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육체적으로 튼튼히 준비시켜 미제의 그 어떤 「기술적 우세」에도 당당하게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하늘의 방패로 키워 나가시려는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에는 정녕 끝이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하늘에서 전투임무를 수행하거나 훈련과제를 수행하는 비행사들을 잊지 않으시고 세심히 돌봐주시었다. 때로는 비행장에 나가 몸소 지휘를 하시었다.

주체57(1968)년 9월초 어느 날이었다. 한 비행장에서는 불리한 기상조건을 극복하면서 비행사들이 전투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비행장에 전화를 걸어 전투임무수행중의 비행기들이 착륙하는데 지장이 없는가를 알아보시었다. 지장이 없다는 보고를 받으시었다. 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어 그분께서는 곧 비행장으로 향하시었다.

비행장에 이르신 장군님께서는 심려의 말씀을 거듭하시며 근심어린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시었다. 바람이 지휘소창문을 세차게 흔들며 불어댔다.

장군님께서는 비행지휘용마이크를 손에 드시었다. 하늘끝 그 어데 있는지 모르는 비행사들을 찾으시었다. 수신기에서 비행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군님께서는 다소 마음이 놓이시는 듯 미소를 지으시며 물으시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겠습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비행사의 뒷말은 젖어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비행사들의 대답을 다 들으시고 못내 반가워 하시면서 그들의 건강도 물으시고 비행장에는 지금 바람이 세차니 주의하여 착륙해야 한다고 이르시었다.

자애깊은 사랑이 어린 그 말씀을 받은 비행사들은 감격의 눈물로 양볼을 적시며 조종간을 힘있게 틀어쥐었다. 그분께서 비행장에까지 나오시어 몸소 지휘하고 계시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들은 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훈련과제를 여느때 없이 훌륭히 수행하였다.

비행기의 착륙상태를 긴장하게 지켜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만시름이 놓이신 듯 환하게 웃으시며 비행기에서 내리는 비행사들을 향하여 걸어가시었다. 어푸러지듯 달려와 보고를 드리는 비행사들의 손을 하나하나 뜨겁게 잡아주시며 그분께서는 믿음에 찬 목소리로 바람이 세게 부는 조건에서도 착륙을 잘하였다고, 기술수준이 괜찮다고 높이 평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만족의 미소를 지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환하신 미소를 우러르며 비행사들과 지휘일꾼들은 벅찬 심정에 휩싸였다.

장군님의 환하신 미소!

그것은 사람들을 대번에 매혹시키고 끌어당기는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웃음이다. 그 웃음이 풍기는 특유한 향취에 매혹되어 사람들은 「위인인격의 발산」, 「심장을 불태우는 인덕의 열애」, 「천만대적도 내려다보시는 명장의 기개」, 「이 세상 최고의 웃음미」로 격찬해마지 않는다. 이것은 백두산영장의 천품이 그대로 비껴있는 장군님의 숭고한 위인적 품격이 다 담겨져 있는 미소에 대한 격찬이다.

이날 비행사들과 지휘일꾼들은 만족과 대견함, 믿음과 사랑의 희열이 넘치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환하신 미소를 우러르며 비행기술을 더욱 높이 쌓아 더 큰 기쁨을 드릴 결의를 가다듬었다.

장군님께서는 결의에 불타는 그들의 얼굴을 정겨웁게 바라보시며 절대로 자만하지 말고 앞으로 계속 기술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뜨겁게 고무해주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공군부대들에 대한 끊임없는 현지지도와 비행사들에 대한 크나큰 믿음과 뜨거운 사랑속에서 인민군 공군무력은 급속히 강화되고 적들의 그 어떤 침략에도 대처할 수 있는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군인들의 사격술을 높이는 것은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강화하는 데서 중요한 근본문제의 하나로 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군영도의 나날들에 전군을 백발백중의 사격술을 소유한 명사수들의 전투집단으로 키우는데 큰 관심을 돌리시었다.

무릇 군인들이 백발백중의 사격술을 지닌 명사수가 되는가 못 되는가 하는 것은 그 어떤 군인적 기질이나 재능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 총대를 억세게 틀어 잡은 병사의 사상정신상태와 멸적의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이다.

일찍이 백두산총대가문의 뛰어난 사격술을 천품으로 이어받으신 장군님께서 인민군군인들을 만나주실 때마다 새겨주군 하시는 총대의 진리가 있다. 그것은 병사가 틀어 잡은 혁명의 무기는 언제나 원수의 심장만을 꿰뚫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기에 장군님께서는 군현지지도를 하실 때면 군인들에게 이 귀중한 진리를 가르쳐 주군 하시었다.

주체56(1967)년 1월 동해안의 우리 영해에 「경호함56」호를 침입시켰다가 응당한 징벌을 받은 적들은 그 후에도 교훈을 찾지 못하고 무모한 군사적 도발을 일삼으면서 정세를 첨예한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놈들의 끊임없는 도발에 대처하여 인민군대의 전투동원준비를 더욱 완성해 나가실 결심을 안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해 8월 초순 어느 한 군부대산하 중대를 찾으시었다.

중대에서는 실탄사격훈련이 한창이었다. 그분께서는 중대장의 보고를 받으시고 나서 동무들의 사격솜씨를 보러 왔다고 말씀하시었다.

뜻밖에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실탄사격을 하게 된 군인들은 기쁨과 감격에 겨워 한껏 가슴이 부풀었다.

그런데 너무도 긴장한 탓인지 아니면 훈련부족인지 일부 군인들의 명중률은 좋지 못했다.

그들의 사격동작과 목표판들을 번갈아 유심히 살펴보신 장군님께서는 사격이 끝나자 그만하면 군인들의 사격술이 괜찮다고 오히려 과분한 치하를 주시었다.

그리고 실탄사격과정에 일부 군인들속에서 나타난 결함들과 원인에 대하여 지적하시면서 명사격술의 방법을 가르쳐주시었다.

그러신 후 장군님께서는 동행한 항일혁명투사출신의 군부대책임일꾼과 함께 항일의 여성영웅이신 김정숙어머님께서 백발백중의 사격술로 어버이수령님께 기쁨을 드리시던 일을 회억하시면서 정말 우리 어머님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명사수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백두산밀영시절 어머님으로부터 수령보위, 혁명수호의 정신을 백발백중의 가장 중요한 묘리로 체득하신 데 대해서도 감회깊이 돌이켜보시었다. 그러시고 나서 자신께서도 한번 쏴보겠다고 하시면서 사격좌지에 나서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오른손과 왼손으로 권총을 번갈아 바꿔 잡으시며 별로 겨냥도 하지 않으시고 10개나 되는 목표들을 눈깜짝할 사이에 전부 소멸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신묘한 사격솜씨에 환성을 올리는 군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군인은 총을 잘 쏘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사격훈련을 많이 하여야 합니다.』

군인들의 실탄사격성적이 그리 높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신 듯 그분께서는 그날 밤에도 군부대책임일꾼을 부르시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총을 오래 조준하고 쏜다고 하여 잘 맞히는 것이 아닙니다. 숙련하고 또 숙련하여 총을 척 들면 조성조문이 일치되게 하여야 합니다. 조성조문이 목표에 일치되는 순간에 사격하면 영낙없이 목표를 명중할 수 있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모든 인민군군인들이 저격무기 뿐 아니라 군종과 병종의 특성에 맞게 자기 무기에 완전히 정통하고 높은 사격술을 연마하도록 이끌어주시었다. 해안포병들은 조국의 바다에, 고사포병들은 조국의 하늘에 단 한놈의 적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 그분의 숭고한 뜻이었다.

장군님께서 그토록 중시하시는 대공방어와 반항공무력을 강화하실 구상을 안으시고 동해기슭의 어느 한 사격장을 찾으신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이른 아침 일꾼들과 함께 사격장에 도착하신 그분께서는 각종 구경에 따르는 고사무기들의 사격목표들을 구체적으로 요해하시었다.

그리고 나서 포사격장을 앞으로 고사포병들의 사격술을 연마하는 훈련장으로, 본보기로 될 수 있게 더 잘 꾸릴 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지금 적들이 <공중우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조건에서 대공방어를 잘하여야 합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우리에게 고사무기들이 적었고 대공방어가 약하였기 때문에 적비행기들이 도시와 마을을 마음대로 폭격하였습니다. 전쟁시기에 적비행기들의 폭격으로 도시와 마을들이 잿더미로 된 것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국해방전쟁시기의 교훈을 잊지 말고 현대적인 고사무기들을 많이 만들어 이르는 곳마다에 배치해놓았다가 적비행기들이 날아들면 모조리 박산내야 합니다.

고사포병들은 현대적인 고사무기에 정통하고 사격원리를 깊이 체득하여 포사격술을 결정적으로 높여야 합니다.

고사포사격장에서는 고사포병구분대들이 포사격훈련과 실탄사격을 규정과 교범의 요구대로 하도록 요구성을 높여야 합니다. 그래야 고사포병들의 포사격술을 높일 수 있으며 귀중한 포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사격장지휘관들에게 고사포사격의 명중률을 높이기 위한 투쟁에서 자기의 임무와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하시고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한번 와서 고사포실탄사격을 직접 보시겠다고 약속하시었다.

적들의 공중습격과 항공육전대작전을 짓부수는데 큰 몫을 맡고 있는 고사포병구분대에 대한 장군님의 현지지도는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분께서는 정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던 주체57(1968)년 8월 어느날 또다시 동해안지구의 어느 한 고사포중대를 찾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이 중대의 전투임무와 자기 무기에 정통하고 있는가를 요해하신 후 포병들의 화력복무훈련을 몸소 지도해주시었다.

지휘관의 구령에 따라 민첩하게 움직이는 포병들의 화력복무동작은 마치 유기체의 활동마냥 빈틈이 없었다.

이에 만족하신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군인들이 포사격동작을 잘합니다. 포의 모든 성원들이 동작이 빠르고 전투적 기백이 있습니다. 일당백의 군대 맛이 납니다.』

중대장이 사격훈련을 끝냈다고 보고 올리자 그분께서는 군인들의 준비상태가 그만하면 괜찮다고 하시며 동무들은 자만하지 말고 싸움준비를 더 잘하여 한대의 적비행기도 얼씬하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러자면 포병들이 어느때 어느 방향으로 날아드는 적기도 단방에 쏘아잡을수 있게 백발백중의 사격술을 소유해야 한다고 하시었다.

그리고 적기들이 어느때 덤벼들지 모르는 조건에서 근무를 경각성있게 수행하며 어느 순간에 어떤 정황이 발생하여도 제때에 동원될 수 있게 포의 전투동원준비를 잘 갖추어 놓을 데 대하여 강조하시고 동무들은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다가 적비행기가 달려들면 단방에 쏴떨구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포진지에서 내려오시는 길로 병실과 식당을 돌아보신 그분께서는 음료수문제와 식생활조건을 풀기 위한 대책도 몸소 세워주시었다.

오매에도 그리던 장군님을 중대에 모시고 귀중한 가르치심과 한없는 은정까지 받아 안은 군인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너도 나도 그분의 현지지도말씀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발벗고 떨쳐 나섰다. 그리하여 중대는 백발백중의 사격술을 갖춘 우수한 구분대로 되었다. 이들만이 아니라 모든 고사포구분대들이 일당백의 대오로 되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영도의 손길아래 온 나라에 숲을 이룬 고사무기들과 그분의 품속에서 억세게 자라난 명포수, 명사수들의 대오앞에서 적들은 전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