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산이며 민족의 명산인 금강산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의 길에서 7천만겨레와 언제나 보조를 함께 하여 온 6.15자주통일시대의 증견자이다.

오늘 금강산은 남녘동포들에게 있어서 가고 싶어도 갈수 없고 오르고 싶어도 오를 수 없던 어젯날의 금강산이 아니다.

주체93(2004)년 5월말 현재 금강산을 관광한 남녘동포들의 수는 무려 65만 2,019명에 이른다. 벌써 육로관광객수만도 9만 7,425명이나 된다.

이것은 6.15시대에 통일로 가는 길에서 이룩된 또 하나의 자랑찬 성과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녘동포들의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된 자그마한 소원까지 헤아리시어 남녘동포들이 눈으로만, 마음속으로만 오르던 금강산관광소망을 6.15자주통일시대의 자랑찬 현실로 꽃피워주시었다.

여기에는 금강산이 단순히 관광을 위한 금강산이 아니라 북과 남, 해외를 잇는 무지개다리로, 온 민족이 만나는 통일오작교로 되게 하여 민족의 명산, 세계의 명산으로서의 명성을 높이 떨치어 통일의 길을 더욱 넓혀 나가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뜻이 깃들어있다.

주체87(1998)년 11월   18일   826명의    관광객을  태운    남조선의  「현대금강」호가   동해항을  출항하면서   울린    뱃고동소리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열어주신 사랑의 뱃길을 따라 처음으로 금강산관광의 길에 오른 남녘겨레의 기쁨을 이 땅 삼천리에 알리는 환희의 뱃고동소리였으며 온 민족이 손을 잡고 금강산으로 오를 통일의 그 날은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희망의 뱃고동소리였다.

반세기이상이나 지속되어온 분열의 장벽을 허물고 북녘동포들과의 뜨거운 상봉을 바라는 남녘동포들의 마음과 마음은 동포애의 뜨거운 정으로 세차게 타올랐다.

민족적 향취가 짙은 「신고산의 노래」, 「금강산의 노래」가 금강산의 계곡마다 울려 퍼지는 속에 『금강산관광객들을 동포애의 정으로 환영한다』고 하면서 반갑게 맞이하는 북녘의 인민들, 북녘땅을 밟는다는 설레임으로 밤새 잠을 못 이루다가 부두에 배가 닿자마자 땅에 엎드려 절을 하는 남녘의 관광객들, 광복후 헤어진 혈육을 생각하며 금강산을 향해 『어머니, 제가 왔습니다. 아들이 48년만에 북녘땅을 밟았습니다.』고 심중토로를 하고 가슴에 품고 온 부모님들의 사진을 금강산자락에 세워놓고 술을 따르며 절을 올리는 관광객들, 이와 같은 광경은 역사적인 6.15이전 시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처럼 남녘동포들에게 있어서 한갖 소원으로만 되어오던 금강산관광은 바로 6.15공동선언이행조치에 따라 활성화되게 되었다.

하기에 금강산을 등산하는 남녘겨레들은 민족의 명산인 금강산관광의 길을 넓게 열어준 6.15공동선언에 대한 지지와 고마움의 정을 금치 못한다.

분열 반세기만에 금강산을 찾은 남녘의 관광객들에게 있어서 금강산은 듣던 대로 골짜기 하나, 바위하나, 폭포와 못, 그 어느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천하제일의 절경이었다.

고향을 북에 둔 사람들뿐 아니라 젊은 세대들조차도 언젠가는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금강산은 시인이라면 시로, 화가라면 그림으로, 종교인이라면 수련의 장으로 어떤 형태로든 그 맛을 한껏 음미해보고 싶은 명산중의 명산이었다.

제주도에서 온 한 관광객은 『금강산에 가더라도 「아」,「오」 같은 감탄사는 남발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눈에 안겨온 금강산은 나의 생각을 뛰어넘었다. 그것은 산이 아닌 거대한 영감덩어리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불덩어리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나는 한 순간에 금강산절경에 취해버렸다.』고 하면서 금강산의 천하절경에 감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남녘의 어느 한 소설가는 『금강산은 곳곳에서 수정같은 맑은 물을 수없이 쏟아내는 모습이 너무도 신기했다.

금강산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은 너무 맑아 생물의 서식에 필수요소인 질소, 린 등이 부족할 지경이었고 금강산관광 사흘동안 그 어느 곳을 가도 사람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를 볼 수 없었다.

북의 주민들이 금강산을 후대들에게 그대로 물려줄 수 있도록 환경보호에 힘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고 금강산관광의 소감을 토로했다.

이처럼 금강산관광은 남녘겨레의 마음속에 민족의 명산에 대한 소중함과 자부심을 한층 더 북돋아주었으며 통일의 절박감을 다시금 깊이 새겨 안도록 하였다.

금강산관광에 대한 남녘겨레의 기대와 관심이 이처럼 나날이 높아가는 속에 동해선 철도 및 도로연결사업이 진척됨으로써 금강산관광은 배길로만이 아니라 육로를 통하여 진행되면서 더욱더 활기를 띠게 되었다.

북과 남은 주체92(2003)년 2월 5일 군사분계선 10m너비의 2.4km구간에 걸쳐 동해선 임시도로를 완공함으로써 금강산육로관광을 위한 시험답사를 진행한데 기초하여 2월 14일에는 민족분열과 대결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을 꿰지르며 금강산에 대한 시범육로관광의 길에 오르는 극적인 사변을 맞이하였다.

반세기이상 분열상태에 머물러있던 북남사이에 임시도로가 연결되고 남녘의 동포형제들이 첫 시험답사와 시범관광을 진행한 것은 역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이 가져온 귀중한 열매이며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이 낳은 또 하나의 자랑찬 현실이다.

이와 같은 현실은 온 세계를 깜짝 놀래웠다.

미국의 「로스안젤레스타임즈」는 『남북한은 요새화된 비무장지대를 관통하는 금강산관광도로의 공식개통으로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보도하였으며 남조선의 「CBS」방송은 『금강산사전답사는 민간인이 판문점외의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첫번째 사례로 남북교류활성화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금강산육로관광을 위한 사전답사단 86명이 한꺼번에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

민간인이 판문점을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은 일은 있었지만 판문점외의 군사분계선통과는 이번이 처음이다.

판문점으로는 기껏해야 한두명씩 통과했지 이번처럼 대규모인원이 넘은 것은 역시 처음이다.』고 소개하였다.

금강산관광이 활기를 띠면서 북녘땅을 바라보는 남녘겨레들의 인식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주체92(2003)년 8월 금강산 해금강호텔에서 온정리까지 도보행진한 남녘의 어느 한 대학생은 그때의 소감에 대해 자기의 글에 이렇게 썼다.

『남쪽땅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북녘땅의 모습에 왜 우리가 이토록 힘들게 「경계」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비무장지대를 넘어야만 북녘땅을 밟을 수 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그곳을 밟으면 전염병에 걸리는것도 아니고 절대 넘어서는 안될 장애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군사분계선을 임의로 그어 남과 북을 분리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될뿐더러 지금의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몰려온다.

이번 평화캠프를 통해 얻은 것은 금강산관광이 재개된 것이나, 처음으로 많은 학생들이 북녘땅을 도보행진했다는 의의뿐만이 아니다.

우리들이 직접 눈으로 북쪽땅이 별반 남쪽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우리가 정말 하나라는 것을 느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여행이었다고 생각된다.

「남녘사람들을 모두 금강산에 보내면 정말 통일이 될 것 같아요.」 금강산을 다녀온 후배가 했던 말이 계속 귀에 맴돈다. 이 말은 이번 평화캠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도 진실이지 않을가.』

이처럼 금강산관광은 남녘동포들속에 우리 민족은 영원히 둘이 될 수 없는 하나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고 그들모두가 뜨거운 동포애의 정을 가지고 나라의 통일위업실현을 위해 더욱 분발하도록 하였다.

실로 반세기이상의 오랜 세월 「금단의 땅」으로 되어온 민족의 명산 금강산에 대한 수많은 남녘동포들의 관광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우리 겨레가 품고 있는 마음속 소원도 일일이 헤아려주시어 이 사업을 정력적으로 영도하여 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세심한 영도와 뜨거운 동포애가 낳은 위대한 결실이다.

우리 민족은 오늘도 내일도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금강산관광길을 걷고 또 걸으며 6.15북남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