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위 서울유경수105탱크사단에 새겨진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영도의 거룩한 첫 자욱은 뜻깊은 교정에서의 문무겸전의 체득과 더불어 영군의 길에 끝없이 이어졌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영도의 길에서 군사전략가적 자질과 실력을 쌓으시고 주체적인 군건설의 독창적인 길을 모색하고 창조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 시기 군영도에서 특별히 관심하신 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군사사상, 노선, 전법을 옹호고수하고 철저히 구현하여 군사력을 백방으로 강화하는 것이었다.

주체51(1962)년 10월말 어느날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선인민군 최광 총참모장을 만나주시었다.

총참모장은 이번에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배려로 중임을 맡고 보니 어깨가 무거워지고 근심이 앞선다고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총참모장동무의 심정이 이해된다고, 누구든지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신임을 받으면 근심부터 앞선다고 하시면서 어린 시절부터 수령님의 품에 안겨 간고한 혁명의 길을 걸어온 총참모장동무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이윽하여 서재에 있는 책들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그에게 나도 요즘 군사문제를 좀 연구하고 있다고, 군사를 모르고서는 혁명을 할 수 없고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충실히 받들어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었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세계적으로 이름 난 군사서적들을 많이 읽어보았지만 위대한 수령님처럼 독창적인 군사사상과 이론, 전법들을 소유한 그렇듯 탁월한 군사전략가는 보지 못하였다고, 수령님의 군사사상과 이론, 전법들은 군인대중, 인민대중이 전쟁수행의 주인이라는 원리로부터 출발한 것으로서 이것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군사전략사상이라고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는 일찍이 주체사상을 군사분야에 구현하시어 주체적인 군사사상과 군사이론, 군사전법을 창조하시었다, 이것은 인류군사학발전에 쌓아올리신 수령님의 위대한 업적이다, 우리는 이것을 똑똑히 알고 수령님의 주체적인 군사사상과 군사이론, 군사전법을 깊이 연구체득하여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를 감회깊이 돌이켜보시면서 나는 전쟁시기 최고사령부에 와있을 때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주체적인 군사학의 원리와 전법들을 많이 배웠다고, 지금도 나에게는 수령님께서 일부 군사지휘관들이 남의 나라 전법에 환상을 가지는데 대하여 되게 비판하시던 일이 기억된다고 하시었다.

총참모장은 문득 10년전 최고사령부 작전실에서 수령님의 곁에 계시던 그분의 모습이 우렷이 떠올랐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지가지 추억을 더듬는 그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군사사상과 전법은 우리 혁명무력건설의 생명이다, 우리 인민군대안에는 수령님의 군사사상과 전법을 떠난 그 어떤 사상, 그 어떤 전법도 있을 수 없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시었다.

그분의 안광에는 그 무엇으로써도 건드릴 수 없는 철의 신념, 의지가 빛발치고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는 오직 위대한 수령님의 군사사상과 전법으로 무장하고 싸워야만 미제침략자들을 이 땅에서 내쫓고 조국을 통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인민군대가 어떤 제국주의침략자도 물리치고 영원히 승승장구할 수 있다고, 위대한 수령님의 군사사상과 전법으로 튼튼히 무장하자는 것이 우리가 군사분야에서 높이 들고 나가야 할 혁명적 구호로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군사사상과 전법으로 튼튼히 무장하자! 총참모장은 이렇게 몇 번이나 외워보며 북받치는 열정과 흥분을 누를길이 없었다. 참으로 그것은 총참모부가 튼튼히 틀어쥐고 나가야 할 지상명령이었다.

이때만이 아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혁명영도에서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의 군사사상과 군사노선을 철저히 구현하도록 깊은 관심을 돌리시었다.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노선이 나왔을 때었다.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노선은 1960년대에 들어와 악화된 안팎의 정세에 대처하여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전원회의에서 채택된 새로운 전략적 방침이었다.

이 시기 미제는 남조선에서 5.16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영구강점을 꾀하면서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침략책동을 그 어느때 보다 강화하였다. 미제는 남조선을 저들의 원자 및 로케트기지로 전변시켰고 남조선강점 미군과 남조선군을 더욱 증강하고 여러가지 대량살륙무기를 계속 끌어들였다. 한편 미제는 「카리브해위기를 조성하였고 남부베트남에 대한 침략전쟁을 본격화하면서 국제정세를 극도로 긴장시켰다. 조성된 정세는 사회주의건설을 최대한 다그치면서 나라의 방위력을 철벽으로 다지며 원수들의 어떠한 불의의 침공도 쳐 부실수 있도록 만단의 준비를 갖출 것을 절박하게 요구하였다.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 방침은 이러한 요구를 헤아리시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가장 정당하고 현명한 노선이었다.

그런데 이 노선이 나왔을 때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이것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한데로부터 편향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들은 전쟁의 피해도 가셔내고 경제도 추서고 있는데 국방건설에 힘을 넣게 되면 경제건설이 지장을 받게 되고 인민생활이 떨어질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편향은 대학생들속에서도 나타났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편향을 바로잡기 위하여 주체51(1962)년 12월 17일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앞에서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나라의 방위력을 철벽으로 다질데 대하여라는 역사적인 담화를 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원회의에서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이라는 전투적 구호를 내놓으시고 경제건설과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 나갈 데 대하여 제시하신 혁명적 방침의 정당성에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경제건설을 힘있게 밀고 나가는 것과 함께 국방력을 더욱 강화하는 것은 적들의 침략책동을 짓부수고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성과적으로 건설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적극적이며 혁명적인 방침입니다. 원래 경제건설을 힘있게 밀고 나가며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은 정권을 잡은 노동자계급의 당이 튼튼히 틀어쥐고 나가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입니다.

그분의 이 말씀은 자체의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이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나라들, 혁명하는 나라들에서 얼마나 중대한 문제로 나서고 있는가 하는 것을 밝힌 것이었다.

당시의 정세는 지구상에 제국주의가 남아있는 한 침략과 전쟁위험은 절대로 사라질 수 없으며 사회주의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무력침공도 결코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제국주의의 침략적 본성을 보려 하지 않고 경제건설에만 치우치면서 국방력을 강화하지 않고 대국의 힘에 의존한다면 오히려 전쟁의 위험을 증대시키고 혁명과 건설도 망쳐 먹게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리브해위기가 이에 대한 좋은 대답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경제건설과 국방건설병진노선의 정당성에 대하여 강조하신 다음 전원회의 기본정신이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나라의 방위력을 철벽으로 다지고 전투준비를 빈틈없이 갖춤으로써 적들이 감히 덤벼들지 못하게 하며 만일 덤벼든다 하더라도 제때에 철저히 때려부실 수 있게 준비하자는 데 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전체 인민을 무장시키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다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 인민을 무장시키는 것은 오직 인민이 나라의 주인으로 되고 있는 사회주의사회에서만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계속하여 청년대학생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지 달려나갈 수 있도록 자신들을 정치군사적으로 튼튼히 준비시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수령님께서 전원회의에서 하신 교시를 관철하기 위한 과업과 구체적인 방도에 대하여서도 가르쳐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학생들을 튼튼히 무장시키시는 한편 인민군대를 경제와 국방건설의 병진노선관철에로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기계화부대의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면서 새로운 윤전기재를 자체로 만들어 인민군대를 무장시켜 무력강화에서 큰 전진을 이룩할 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는 한 군수공장을 찾으시어 윤전기재의 부속품생산정형도 알아보시고 자체의 힘으로 해 나가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좋은 기질을 높이 평가하시면서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하기 위하여서는 무장장비를 자체로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주체51(1962)년 12월 하순 어느날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총참모장을 만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미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전원회의에서도 교시하시었지만 「카리브해위기는 우리에게 심각한 교훈을 주고있다고, 「카리브해위기는 미제국주의침략자들에게 나약성을 보여서는 안되며 큰 나라에 기대를 가져서도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최근의 사태는 큰 나라가 작은 나라들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망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었다.

그분의 말씀은 천리혜안의 예지와 명석한 판단력으로 복잡한 정세추이를 제때에 정확히 꿰뚫어보시고 정세에 대처한 올바른 자세와 입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참으로 귀중한 가르치심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날 그를 통하여 일부 사람들속에서 큰 나라의 최신무기에 기대를 가지면서 무기만능주의경향이 나타나고 있는데 대하여 요해하시고 심중한 안색으로 미제침략자들과 싸워 이겨야 할 인민군대가 무기만능에 물젖으면 매우 위험하다고 하시면서 백해무익한 독소는 제때에 뽑아버려야 한다고 단호히 말씀하시었다.

이무렵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보위성에 자주 나오시어 부서들을 찾으시고 일꾼들도 만나주시었다.

주체52(1963)년 1월 중순 어느날에는 정찰부문 책임일꾼을 만나 전연에 배치된 미군의 일부 부대들이 남조선군과 배비변경을 할 기도가 보인다는 정보가 있는데 그에 대한 확실한 자료가 있는가 알아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싸움에서 이기자면 아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적에 대하여서도 잘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알고 적을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길수 있으나 자기를 모르고 적도 모르면 백번 싸워도 백번 다 질수 있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연과 종심에 대한 적정을 다 장악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알아보시고 그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조선인민혁명군이 적은 역량으로 강대한 일제침략군을 도처에서 쓸어 눕히고 승전고를 울린 비결의 하나는 적의 약점을 정확히 알아내고 답새긴 데 있다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승천입지하시고 축지법을 쓰신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적의 약점을 잘 알고 기묘한 전법을 쓰신데서 출발된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또한 고구려의 을지문덕장군이 담판을 구실로 적진속에 들어가 약점을 알아내고 거기에 맞는 유인전술과 청야수성전술을 썼기에 수백만의 수나라 군대를 쳐 이길 수 있었다고, 나폴레옹의 군대가 적의 배치정형은 물론 자기들의 전진도상에 영국군이 매복하여 있다는 것과 프로시아군대의 익측타격기도를 몰랐기에 와테를로전투에서 녹아 났던 것이라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그분께서는 우리의 군사지휘관들은 우리 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알려진 전투와 작전들의 경험과 교훈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전쟁시기 급변하는 정황조건에서도 전투지휘를 능숙하게 할수 있다고 가르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은 큰 충격을 주었다. 그분의 가르치심은 정찰사업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깊이 깨닫게 하고 자기반성도 하게 해주었다. 그분의 가르치심이 있은 후 인민군대의 정찰부문 사업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변화는 정찰부문만이 아니라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도의 손길이 미치는 모든 부문에서 일어났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영도는 그 걸음걸음이 빛나는 열매를 안아오고 인민군대의 전투력은 날을 따라 몰라보게 강화발전해 갔다.

 

  

하나가 백을 당한다는 말은 신화나 전설적인 말에 가깝다. 그러나 일당백이란 말은 오늘날 인민군대의 실질적인 군력의 징표로 되고 있다.

「일당백」구호가 세상에 태어나던 날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바로 그날「일당백」의 고향인 대덕산초소, 위대한 역사 현장에 수령님과 함께 계시었다.

장군님께서 위대한 수령님과 함께 대덕산초소를 찾으신 것은 주체52(1963)년 2월 6일이었다.

밤사이에 많은 눈이 내려 무릎을 쳤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앞장에서 생눈길을 헤치시며 걸으시었다.

이날 군인들의 전투정치훈련과 생활형편을 일일이 요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덕산진지를 돌아보시며 지휘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다.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며 모든 군인들을 일당백으로 준비시켜야 하겠습니다. 인민군대에서 들고나가야 할 구호는 일당백입니다. 옛날부터 싸움 잘하는 장수를 「일당백」이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하나가 백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군인들이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전투훈련과 방어공사를 잘하면 일당백이 될 수 있습니다.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일당백」구호, 참으로 이것은 당시 우리 나라에서 인민군대의 전투력강화를 위한 근본적인 혁신의 구호였다.

「카리브해위기후 우리 나라에는 긴장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었다. 미제우두머리들은 우리 공화국을 침략할 기도밑에 남조선강점 유엔군과 남조선군에 임전태세를 갖출 것을 명령하였다. 미제는 유엔군사령부와 미1기병사단을 남조선에 끌어들이고 남조선강점 미군을 원자사단으로 개편하였으며 70만에 달하는 남조선군도 현대적인 살인장비들로 무장시켰다. 이와 함께 1963년 1월말에는 F-86 전투기 2대를 우리측 상공에 침입시키고 1월말∼2월초에는 경호함 53호를 3차례나 우리측 동해에 침입시키면서 도발적인 적대행위를 연이어 감행하였다.

이러한 정세속에서 우리는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에 다같이 힘을 넣으면서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해야 하였는데 무작정 병력을 늘이는 방법만으로는 이에 대처할 수 없었다.

우리의 인민군대는 현존인원과 무기, 전투기술기재를 가지고 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게 준비되어있어야 하였다.

이 모든 것을 천리혜안의 예지로 꿰뚫어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동안 무르익혀 오신 일당백강군건설구상을 처음으로 밝히시었던 것이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의 사업을 현지에서 보좌해드리시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일당백」구호를 무한한 감격과 흥분속에서 받아들이시었다. 한것은 「일당백」구호야말로 강군건설에서 높이 치켜들고 나가야 할 전투적 강령, 가장 정당한 지도적 지침이라는 확신이 드셨기 때문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시는 군건설노선과 방침을 가장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무조건 철저히 관철해 나가는 것은 장군님께서 견지하고 계신 철칙이었으며 좌우명이었다.

하기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일당백」구호를 철저히 관철하실 의지로 가슴 불태우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 젊은 병사를 만나 담화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병사에게 나이를 물으시었다.

19살이라는 병사의 힘찬 대답을 들으신 그분께서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시었다.

19살이라면 갓 입대한 신입병사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전쟁을 겪었다고는 하지만 전화의 불길속을 헤쳐보지 못한 조건에서 혁명적 단련이 부족한 새 세대였다. 이러한 새 세대 병사들을 어떤 정황속에서도 맡겨진 임무를 척척 해내는 만능병사로 준비시키는 것이야말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일당백」구호관철에서 해결해야 할 관건적 고리의 하나였다.

이윽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휘관들을 둘러보시며 해방후 수령님의 품속에서 나서자란 젊은 세대들이 벌써 조국보위초소에 섰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었다.

새 세대인 젊은 병사들을 잘 교양하고 일당백으로 준비시켜 그들이 한몫하게 하여야 합니다.  새  세대들에  대한 수령님의 기대는 참으로 큽니다.

「일당백」구호의 의도와 요구를 깊이 새기게 하는 가르치심이었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부 지휘관들이 「일당백」구호의 진수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하여서도 바로잡아주시었다.

그분께서 고지의 어느 한 전투진지에 이르시었을 때었다. 「일당백」구호를 받아 안은 구분대의 한 지휘관은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대로 방어진지를 잘 꾸리고 그에 의거하여 훈련을 잘하면 고지방어전투에서 일당백은 문제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일당백」구호를 군건설전반에 구현하여야 할 새로운 건군방침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수행해야 할 당면한 전투임무, 방어전투임무를 더 잘 수행하기 위한 구호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시며 심각한 문제점을 포착하신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일당백」의 구호에는 우리 인민군대를 강력한 혁명무력으로 만들어 그 어떤 적들과의 싸움에서도 백전백승할 수 있게 하시려는 높은 요구가 담겨져 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일당백구호의 본질적 요구는 군인들이 방어에서 뿐 아니라 공격에서도 하나가 백을 당할 수 있게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당백에 대한 내용을 방어에만 국한시켜 이해하여서는 안됩니다. 인민군대는 방어뿐 아니라 공격에서도 일당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받아 안으며 부대지휘관들은 자기들의 짧은 생각을 깊이 뉘우치게 되었다. 그러면서 군인들을 공격과 방어에서 다같이 일당백이 되도록 준비시키자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방도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았다.

그들의 심중을 깊이 헤아리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군대는 얼마든지 일당백의 혁명군대가 될 수 있다고 하시면서 제국주의군대는 돈에 팔려온 고용병들이 모인 오합지졸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 인민군대는 고상한 목적을 지니고 있는 혁명군대라고, 우리에게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이룩된 일당백의 전통이 있다고, 우리 인민군군인들이 항일유격대원들이 지녔던 강의한 혁명정신과 백발백중의 사격술, 기묘한 전법, 튼튼한 체력을 가졌을 때 일당백이 될수 있다고 그 방도에 대해서 명백히 밝혀주시었다.

그분께서는 이처럼 이날 지휘관들과 군인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일당백」구호의 혁명적 본질과 요구를 깊이 인식시키시고 그 관철에서 지침으로 되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장군님께서 대덕산초소에서 돌아오신 다음날인 2월 9일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날 일당백은 인민군대를 불패의 혁명무력으로 강화할 수 있게 하는 전투적 구호이다라는 역사적인 담화를 발표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담화에서 「일당백」구호의 본질과 의의를 강조하시고 그 관철에서 나서는 과업과 방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선 무장투쟁의 직접적 담당자이며 무장력의 기본요소인 군인들을 잘 준비시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지적하시었다.

인민군대를 「일당백」으로 강화하는데서 기본은 군인들을 잘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군인의 준비는 본질에 있어서 정치사상적, 군사기술적 및 육체적 준비입니다.

그러시면서 그분께서는 정치사상적인 준비를 군인들을 일당백으로 키우는데서 첫째가는 요구로 제기하시고 중요한 것은 어떤 역경속에서도 군인들이 당과 수령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한목숨바쳐 싸우는 높은 헌신성과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혀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군사기술적으로, 육체적으로 준비하는 것도 군인들을 일당백으로 준비하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요구의 하나이라고 하시면서 군인들의 군사기술적 및 육체적 준비는 그들이 실제적으로 적을 때려눕힐 수 있는 군사적 지혜와 기술을 키우고 건장한 체력을 가지도록 하는 사업이라고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담화에서 또한 무장장비와 진지문제에 대하여 가르쳐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일당백」의 구호에는 인민군대의 무장장비를 더욱 현대화하고 진지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 데 대한 요구도 담겨져 있습니다.

무기와 진지는 군사활동의 필수적 조건입니다.

그분께서는 무기는 무장력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며 군대의 위력을 군사기술적으로 담보하는 물질기술적 수단이라고 하시면서 중요한 것은 무장장비를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끊임없이 개선하여 현대화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시었다.

또한 군사진지는 현대전에서 적의 기술적 우세가 맥을 추지 못하게 하고 아군의 군사적 위력을 높여 원수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족칠 수 있게 하는 군사력의 중요한 구성요소라고 하시면서 진지를 튼튼히 준비하는데서 나서는 과업에 대해서도 밝혀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담화에서 전군이 「일당백」의 혁명적 구호를 높이 치켜들고 그 관철에 적극 떨쳐나설데 대한 원칙적인 문제도 제시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발표하신 담화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일당백」의 군건설사상을 더욱 심화발전시키고 풍부화한 역사적인 문헌이었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의도를 구현하여 「일당백」의 혁명적 구호를 관철하기 위한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를 명백하게 제시하신 장군님께서는 3월 19일 인민군대의 한 책임일꾼을 만나주시고는 장령, 군관들과 군인들을 일당백의 무적의 싸움꾼으로 준비되도록 하게 하자면 조직정치사업을 짜고 들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었다.

그러시고 장군님께서는 구호관철을 위한 힘찬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부대들도 자주 찾으시어 모든 군인들을 일당백의 전투원으로 키우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시었다.

주체52(1963)년 7월 한 비행구분대를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전투준비를 완성할 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자기 비행기에 정통할 뿐 아니라 적비행기도 잘 알아야 적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전술적 우세로써 적들을 요정낼 수 있다고 가르쳐주시었다. 이해 11월에는 한 반항공구분대를 찾으시고는 훈련과 기술학습을 강화하여 모든 군인들이 현대적 기술기재에 정통하도록 이끌어주시었다. 그리고 군사과학영화들을 부대들에 광범히 보급하도록 조치도 취해주시었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영도에 의하여 「일당백」의 혁명적 구호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이 빠른 시일에 전군에 퍼져갔다. 그리하여 인민군병사들은 누구나 없이 펄펄 나는 싸움꾼, 하나가 백을 당해내는 무적의 용사들로 준비되어갔다.

대덕산의 군인들은 그후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도사적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초소의 바위벼랑에 「일당백」이라는 글을 크게 쪼아 새겼다.

대덕산은 역사의 그날로부터 일당백의 자랑높은 고향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스승이란 배워주는 지식있고 다정한분으로서 존대하여 부르는 말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현지지도의 나날에 언제나 인민군장병들의 둘도 없는 스승, 스승중의 스승으로 불리우시었다.

장군님께서 어느 한 중대의 정치사상교양사업을 지도하실 때었다.

주체52(1963)년 5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지방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시던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의 어느 한 독립경비중대를 찾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날 중대부일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시었다.

담화과정에 중대의 전투정치훈련과 군무생활전반에 대한 실태를 요해하신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중대를 강화하는데서 군인들의 정치사상교양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정치부중대장의 임무와 역할이 매우 큽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중대가 독립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조건에서 구체적인 환경과 실정에 맞게 중대군인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보다 실속있게 잘하자면 여러모로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중대에서 진행하는 당정책교양의 내용과 혁명교양, 계급교양의 형식과 방법에 대하여 하나하나 물어보시었다.

이때 정치부중대장은 장군님께 만족스러운 대답을 드릴 수가 없었다.

사실 그가 그때까지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란 많은 경우 전투정치훈련강령에 따르는 정치상학과 회상기학습, 신문독보, 실효모임을 조직하고 전투소보를 내게 하는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중대가 경비임무를 수행하는 조건에서 집체성을 보장하기도, 시간을 내기도 어렵다고 생각한데로부터 정치사상교양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잘못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중대가 항시적으로 경비임무를 수행하는 조건에서 일련의 제약성이 있을 수 있으나 그럴수록 군인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짜고 들어 더 실속있게 진행하여야 한다고 일깨워주시었다.

그러시면서 그분께서는 얼마전에 어느 한 중대에 가보니 거기에서는 군인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중대의 실정에 맞게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잘하고 있더라고 하시면서 그곳 중대에서 하고 있는 정치사상교양사업의 경험에 대해서 차근차근 알려주시었다.

다른 중대의 경험까지 들려주며 일깨워주시는 그분의 가르치심을 뜨겁게 받아 안으며 정치부중대장은 앞으로 군인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더 잘할 결심을 말씀드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결의를 긍정해주시며 화제를 돌리시었다.

속담에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장군님께서는 정치부중대장에게 문득 이렇게 물으시었다.

너무도 잘 알려진 속담의 뜻을 물으시는 장군님의 뜻밖의 질문에 정치부중대장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는 그에게 장군님께서는 동무는 서흥호에 가봤습니까?라고 다시 물으시었다.

정치부중대장은 아직 가보지 못했다고 말씀드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늘 서흥호에 갔댔는 데 서흥호가 대단하다고,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구상과 크나큰 은덕에 의하여 황해북도에 바다가 생겨났다고 하시었다. 그러시고는 내일은 정치부중대장동무도 함께 갑시다.라고 말씀하시었다.

순간 정치부중대장은 벅차오르는 기쁨을 금할 수 없었다.

사실 그로 말하면 서흥호의 덕을 크게 보게 된 재령벌 태생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고장에 서흥호가 완공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인가는 한번 꼭 서흥호에 가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분께서 그 소원을 풀어주시겠다니 정말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다음날 장군님께서는 그를 데리고 서흥호에 가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업을 보좌해드리시는 바쁘신 속에서도 그에게 서흥호의 건설유래와 규모, 그 거창한 창조물이 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들의 복리증진을 위하여 얼마나 큰 의의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었다.

정치부중대장은 바다같이 드넓은 푸른 호수를 바라보며 한껏 기쁨에 취했다. 하지만 그는 그분께서 어찌하여 자기를 몸소 데리고 오시어 서흥호를 보여주시는지 그 깊은 뜻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한 그에게 서흥호를 돌아본 감상이 어떤가고 물으시었다.

그는 서흥호에 대해 쓴 책도 많이 보고 소문도 많이 들었지만 오늘 이렇게 와서 직접 보니 많은것에 대해 새롭게 느끼게 된다고 하면서 느낀바 소감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래서 백번 듣는 것 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속담이 있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정치부중대장은 남보다 책도 많이 보아야 하지만 현실속에 들어가 사회주의조국의 변모되는 모습도 직접 보아야 합니다.

그러시고는 동무는 서흥호를 돌아보면서 책에서 보았거나 소문으로 들었을 때보다 더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동무만이 아니라 중대군인들 모두에게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정치부중대장은 전사들을 고정된 장소에 모여 앉혀놓고 이론강의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데리고 들끓는 건설장에도 가보고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답사도 하며 혁명박물관참관도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었다.

그래야 전사들이 우리 수령님의 위대성과 우리 당정책의 정당성을 원리적으로뿐아니라 생활적으로 더욱 깊이 체득할수 있습니다. 이것은 위대성교양의 중요한 형식이며 방법입니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고난 정치부중대장은 그때에야 비로소 전날 그분께서 속담의 뜻을 물으신 의도에 대하여 잘 알게 되었다.

문득 그에게는 이날 새벽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서흥호에 함께 가자고 하신 때로부터 그는 크나큰 흥분으로 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새벽에 보초근무수행정형을 알아보려고 순찰길을 돌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서 인기척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일가? 이런 생각을 하며 가까이 다가가보니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었다.

중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숙소를 정하고 계셨던 그분께서 어둠이 채 가셔지기 전인 이른새벽에 산책을 나오셨던 것이다.

그가 장군님께 인사를 올리자 그분께서는 동무도 새벽잠이 없는게로구만, 이렇게 말씀하시며 새벽공기도 마실겸 함께 성불사에 올라가보자고 하시었다.

그는 아침에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서흥호로 떠나시자면 그분께서 시간이 몹시 긴장하시겠는데 몇채의 옛 절간밖에 별로 볼 것이 없는 그곳에 왜 가자고 하시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성불사에 도착해서도 절간안팎을 대충대충 스쳐보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때 그분께서 동무는 성불사를 돌아보면서 무엇을 생각합니까?라고 물으시었다.

그는 이번에도 평소에 품고 있던 생각을 말씀드렸다.

그는 사람들이 발도 붙이기 힘든 외진 산골에 숱한 공력을 들여 요란한 절간을 지어놓고는 부처님을 믿고 착한 행동을 하면 죽어서 극락세계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불행과 고통에 순종할 것을 설교하고 그것을 믿어온 조상들의 무지와 몽매에 대한 불만의 감정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그의 말을 신중하게 듣고 계시던 그분께서는 동무가 이곳 절간을 돌아보면서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되는데 대해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민족문화유산을 대하는데서 부정적인 측면을 보기 전에 긍정적인 측면을 보아야 한다고 타이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민족문화유산은 후손들에게 조국에 대한 사랑의 정신을 키워줍니다. 후손들은 자기 선조들이 이룩해놓은 민족문화유산에서 민족의 넋과 슬기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하여 그분께서는 지난날 사대주의와 민족허무주의사상에 물젖은 사람들은 민족문화유산을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대하면서 보존관리하기 위한 대책조차 제대로 세우지 않았지만 우리 수령님께서는 민족문화유물과 유적들을 나라의 귀중한 재부로 영구히 보존하기 위한 국가적인 조치를 취하시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우리 수령님이시야말로 노래에도 있는 것처럼 절세의 애국자이십니다. 우리는 민족문화유산을 통하여 조국에 대한 사랑의 정신을 키울 뿐 아니라 수령님의 위대성에 대한 교양도 해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받아 안으며 그는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자기의 인식과 견해가 잘못된 것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민족문화유산 하나를 통해서도 민족의 슬기와 넋을 빛내어주시려는 수령님의 숭고한 민족애와 조국에 대한 사랑을 군인들에게 심어주시려는 그분의 숭고한 뜻이 안겨와 가슴이 뜨거웠다.

그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을 이날 성불사와 서흥호를 돌아볼 때에만 가슴뜨겁게 느낀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후에도 여러번 그분을 만나뵙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았다.

주체52(1963)년 12월초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이곳 중대를 찾아주시었다.

그날에도 그분께서는 정치부중대장을 몸가까이 부르시어 중대의 정치사업정형을 요해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정치부중대장에게 정치상학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하며 어떤 방법으로 진행하는 가고 물으시었다.

그는 전투정치훈련에 따르는 제강은 위에서 내려 보내주는대로 집행하고 나머지제강은 자체로 만들어 쓴다고 말씀드렸다.

그의 말을 들으시고 그분께서는 대단히 만족해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는 공산주의학교라고 교시하시었는데 정치부중대장들은 공산주의학교 선생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선생이란 말은 존대하여 부르는 말이지만 선생이 선생구실을 하기는 헐치 않다고 하시면서 정치부중대장들은 자신을 끊임없이 수양하고 단련하여 모든 면에서 명실공히 군인대중의 선생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었다.

그러시고는 오늘 시간만 있다면 제강을 봐주었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없다고 하시면서 다음에 와서는 꼭 봐주겠다고 약속하시었다.

그때로부터 얼마후인 주체53(1964)년 1월 어느날 깊은 밤에 정치부중대장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제강을 봐주시기 위해 자기를 부른다는 뜻밖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그는 부랴부랴 있는 제강들을 준비해가지고 그분께서 계시는 곳으로 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를 반갑게 맞으시며 책상위에 수북이 쌓여있던 자료들을 옆으로 밀어놓으시고 제강들부터 보아주시었다.

제강을 하나하나 보아주신 그분께서는 자체로 만든 제강이 그만하면 잘되었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제강이 잘되었는가 못되었는가를 스스로 판정할 수 있는 자막대기는 당정책입니다.

…신심을 가지고 제강도 많이 쓰고 선동문도 많이 써서 군인들을 교양하여야 합니다.

평범하고 미흡한 제강을 보시고도 잘되었다고 평가해주시며 군인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보다 진공적으로 벌여 나가도록 고무해주시는 그분의 크나큰 믿음과 기대에 그는 꼭 보답하리라 굳은 결의를 다졌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 정치부중대장의 사업을 위해 몸소 찾아도 가시고 불러도 주시며 깨우쳐주고 손잡아 따뜻이 이끌어주시었다.

예로부터 남을 위해주는 여러가지 일중에서 가장 크고 고마운 일의 하나가 남을 깨우쳐주고 이끌어주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을 선생으로, 스승으로 존경하고 따랐다.

한 평범한 정치부중대장을 여러차례 만나주시고 믿음과 사랑을 베풀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야말로 이 세상 가장 숭고한 교육자의 미덕을 지니신 스승중의 스승이시었다.

이러한 스승의 손길이 있어 그후 인민군대의 정치사상교양사업에서는 커다란 전환이 일어났다.

 

  

 

자기 사업에 대한 긍지와 영예감을 가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것이다. 더욱이 총쥔 병사들에게는 군인이 된 긍지와 영예감을 가지는 것 이상 중요한 문제가 없다.

군사복무에 대한 긍지와 영예감은 조국과 인민, 혁명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높은 사명감에 불탈 때만이 생겨나는 법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력적인 활동을 벌이시는 속에서도 군인들에게 군사복무에 대한 높은 긍지와 자부심, 영예감을 심어주시고 그들이 병사생활의 순간순간을 빛내어 나가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었다.

주체52(1963)년 9월초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한 인민군구분대를 찾으시었을 때었다.

이날 그분께서는 중대지휘관들을 만나시어 구분대의 전투준비정형과 군무생활형편에 대하여 알아보시다가 대원들속에 낯이 익은 동무가 있던 것 같던데 그를 한번 만나보자고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부르신 그 병사가 중대부에 들어서자 대번에 그를 알아보시고 아니, 이게 한 동무가 옳구만.라고 하시며 그의 두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었다.

그러시고는 옆에 서있는 일꾼들에게 이 동무가 전쟁때 어린 나이에 원수들에게 부모를 다 잃고 자기 누이집에 와서 자라더니 이제는 이렇게 커서 인민군대가 되었다고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었다.

이윽토록 군복입은 그의 모습을 대견스럽게 바라보시던 그분께서는 그동안 군대복무생활이 힘들지 않았는 가고 다정히 물으시었다.

군대복무생활이 힘들지 않았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왜 힘들지 않았겠소. 힘들지 않았다면 군사복무생활을 잘하지 못한거지.라고 하시며 소리내어 웃으시었다.

그러시고는 군사복무과정을 통하여 가장 크게 체험한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배웠는 가고 물으시었다.

그는 무장으로 당과 수령을 보위하고 조국과 인민의 안전을 지키는 병사의 사명감과 영예감을 느꼈다는것과 군사복무과정에 여러가지 전법과 사격술을 배우고 밥짓는 법과 집짓는 법도 배우고 강냉이농사와 남새농사를 하는 방법, 돼지와 토끼를 기르는 방법도 배웠다고 자랑삼아 말씀올렸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참, 좋은 것을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하시며 그래서 인민군대에 나갔다 오면 대학을 하나 나온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고, 앞으로 그것이 생활의 귀중한 밑천으로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의 이 말씀을 듣는 순간 그에게는 중학교졸업을 앞둔 때 있었던 일들이 삼삼히 떠올랐다.

누구나 중학교졸업시기에는 자기의 전망문제에 대하여 생각도 많이 하고 의논도 많이 하게 된다.

그도 역시 졸업을 앞두고 전망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처음에는 아버지, 어머니의 원수를 갚으려는 심정에서 군대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차츰 담임선생을 비롯한 일부 선생들과 몇몇 동무들의 권고에 따라 취미가 있는 자연과학을 전공하든가 아니면 체육무대에 나서서 조국의 영예를 떨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이길이냐 저길이냐 하는 생각을 하며 망설이고 있던 어느날 뜻밖에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의 집을 찾아주시었다.

집에 들어서시어 그의 학습정형과 생활에 대하여 일일이 알아보고 나신 그분께서는 이제 멀지 않아 중학교를 졸업하겠는데 졸업후 무엇을 할 생각인가고 물으시었다.

친부모와도 같은 다정한 물으심에 그는 자기의 속생각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그의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다 듣고 나신 장군님께서는 동무가 자기의 전망문제를 두고 그렇게까지 속을 썩이고 있는 줄 알았더라면 진작 찾아왔을걸 그랬다고 하시면서 그의 전망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결론부터 앞세운다면 동무의 경위에는 인민군대가 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시면서 물론 인민군대에 나가야만 조국을 지키고 부모들의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옳다, 그러나 모든 청년들이 다 그렇게만 생각하면서 자기의 포부와 취미에 맞는 부문에 돌아앉는다면 지금 당장 누가 무장으로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안전을 지키겠는 가고 절절히 말씀하시었다.

계속하여 그분께서는 대학에 가서 더 배워 자연과학자가 되는 것도 체육을 하는 것도 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시절에 총을 잡고 조국보위를 하는 것 보다 더 보람차며 중요한 일은 없다, 체육은 군대에 나가서도 할 수 있으며 대학공부는 제대되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군사복무는 때를 놓치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손에 총을 잡고 조국을 보위하는 것은 청년들의 가장 신성한 의무이고 최상의 영예이며 조국에 대한 사랑과 당과 혁명에 대한 충실성의 가장 높은 표현으로 된다는데 대해 간곡히 가르쳐주시었다.

그분의 가르치심을 받고서야 그는 너무나도 명백한 자신의 전망문제를 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온데 대해 깊이 뉘우치게 되었다.

그는 일생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방향을 찾지 못해 모대기고 있는 자기를 찾아주시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는 그분에 대한 다함 없는 감사의 정을 금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어떤 일이 있어도 군대에 나가겠다는 자기의 결심을 말씀드렸다.

그후 얼마 안 있어 그는 혁명의 군복을 입고 조국보위초소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군복을 입고 조국보위초소에 선 때로부터 2년밖에 안되었지만 그 2년동안에 10년을 두고도 배우지 못할 귀중한 인생체험을 하였다.

생각할수록 그는 인생의 방향타를 옳게 잡아주신 장군님의 웅심깊은 사랑에 가슴뜨거움을 금할 수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그에게 청년들은 누구나 군사복무를 해보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수령님, 우리 당, 자기 조국, 자기 인민을 더 잘, 더 깊이 알 수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보위는 청년들의 영예이며 자랑이며 신성한 의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청년시절에는 누구나 총을 잡고 군사복무를 해보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었다.

이처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망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그를 청년시절에는 총을 잡고 조국을 보위하는것보다 더 보람차고 영예로운 일은 없다시며 인민군대에 입대하도록 일깨워주시고 조국보위초소에 선 오늘에는 청년시절에는 누구나 군사복무를 해보아야 한다시며 병사의 긍지와 자부심을 한껏 안겨주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던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사랑, 그 믿음이 있어 그는 그후 혁명의 무기, 계급의 무기를 더욱 억세게 틀어잡고 군사정치훈련을 잘하여 인민군대의 초급지휘관으로, 정치일꾼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으며 짧지 않은 청년시절을 후회없이 보람있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병사들이 당과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 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을 지니고 군사복무의 순간순간을 빛내어 나가도록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었다.

주체51(1962)년 어느날이었다.

어느 한 인민군구분대의 한 병사는 경애하는 장군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아안는 영광을 지녔다.

이해 2월에 조선노동당에 입당한 그를 축하하여 그분께서 보내신 사랑의 친필편지었다.

그로 말하면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녔고 그분의 기대와 관심속에 군사복무를 성실히 하여 조선노동당에 입당하는 영광을 지닌 병사였다.

그가 훌륭한 병사로 자라날 수 있게 된데도 장군님께서 그를 위해 기울이신 커다란 노고와 심혈이 깃들어있었다.

그가 인민군대에 입대하게 된 몇해전 어느날이었다.

그에게 그토록 바라고바라던 인민군대입대가 승인되었다는 통지서가 전해왔다.

그는 이 기쁜 소식을 안고 제일먼저 경애하는 장군님께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사흘후에 출발하게 되는데 해군인 것 같다고 말씀올렸다.

그의 이 말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시간이 얼마 없구만, 동무의 입대를 축하해주어야겠는데. …정작 헤여지자니 섭섭하오.라고 하시며 진심으로의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하여 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날부터 이틀동안 그의 입대를 축하하시어 함께 시간을 보내시며 학급에서 축하모임도 마련해주시고 기념촬영도 조직해주시었다. 그리고 해군은 뽀트를 탈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학급동무들과 함께 교외의 저수지에 나가시어 뽀트놀이도 마련해주시었다.

그분께서는 작별을 앞두고 그에게 만년필과 수첩, 손수건을 입대기념으로 주시면서 지나간 학창시절을 감회깊이 회고하시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이제부터 동무는 학생이 아니라 총을 쥐고 조국보위의 초소에 선 혁명가가 되오.

혁명가라는 말을 하기는 쉬워도 혁명가의 임무를 다하기는 어렵소. 펜대를 총으로 바꾸어쥔다고 해서 저절로 혁명가가 되는 것은 아니요. 혁명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꾸준히 단련해야 하오.

시대와 혁명앞에 지닌 우리 청년들의 임무를 언제나 잊지 말고 군사복무에 충실해주기를 바라오.

그러시고는 아무쪼록 건강에 주의하라고, 어디 아픈데가 있으면 참느라고 하다가 병을 기르지 말고 인차 치료를 받도록 하라고 친어머니심정으로 따뜻이 당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기대와 관심속에 그는 다음날 평양을 떠나 어느 구분대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그곳은 그가 그처럼 그려보던 파도치는 항구나 어느 바닷가가 아니라 사방 산으로 둘러막힌 심심산골이었다.

그제야 그는 해병이 아니라 보병으로 배치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온밤 실망으로 모대기던 끝에 다음날 아침 경애하는 장군님께 편지로 사실을 알려드리었다.

그로부터 얼마후 그는 장군님의 회답편지를 받게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편지에서 그가 마음이 안착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 타이르시면서 이렇게 쓰시었다.

참다운 혁명가는 직위나 초소를 가릴 수 없습니다. 더욱이 초소가 달라지는데 따라 당과 조국을 위한 충성심이 조금이라도 흔들린다면 그러한 충성심은 어려운 시련을 이겨낼 수 없으며 때와 조건에 따라 변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총을 잡고 조국을 보위하겠다고 나선 전사는 땅도 바다도 하늘도 다 목숨바쳐 보위해야 할 사랑하는 조국의 신성한 한 부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머니조국은 당이 맡겨준 초소를 지켜선 전사들 한사람한사람의 가장 높은 혁명적 자각과 헌신적인 투쟁에 의해서만 참으로 믿음직하게 보위되는 것입니다. 우리 혁명의 수백수천만의 초소에서 매 전사가 가장 깨끗한 혁명적 양심을 가지고 자기 임무를 성실하게 책임적으로 수행할 때 그들은 바로 우리 조국과 우리 당을 진심으로 떠받들며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우리 혁명을 옹호하고 전진시키는데 가장 보람있게 이바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학교만 다니던 동무에게 있어서 군사복무는 처음에 힘겨울 수 있습니다.

군대란 눈보라칠 때에 행군할 수도 있고 비가 올 때에 보초를 설 수도 있으며 무더운 여름철에 산고지를 톺아 올라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의한 의지를 가지고 이악하게 달라붙기만 하면 그러한 난관은 반드시 극복되리라고 믿습니다.

훈련이 힘들어도 그 고비를 꼭 넘어서야 하며 절대로 나약한 마음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 과정이 바로 자신을 혁명적으로 단련하는 과정입니다.

군대란 앉아서 공부만 하는 학생과는 달리 훈련도 정치학습도 해야 하며 공사도 하고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부업도 해야 합니다.

이것은 동무에게 있어서 참으로 귀중한 체험으로 될 것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배워야 합니다.

지휘관들과 노대원들의 모범을 따라 꾸준히 배워야 합니다.

그는 장군님의 진정이 넘친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면서 그는 입대를 앞두고 해병이 되겠다고 졸라대던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그릇된 것이었는가를 깊이 뉘우치게 되었다. 그리고 총쥔 병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의 안녕을 지키는 성스러운 한 부분을 맡고 있다는 자각을 깊이 간직하고 군사복무의 순간순간을 충성과 위훈으로 빛내어가리라 굳은 결의를 다지고 또 다지었다.

그후에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편지를 보내시어 자신께서 입당하시던 날 받았던 커다란 격정에 대해 쓰시면서 그에게 당원의 영예를 지니기 위해 힘쓰라고,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 한목숨 서슴없이 바칠 각오를 가지고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며 수령님의 교시관철을 위해 몸바쳐 투쟁할 때 당원의 자격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고무해주시었다.

그분께서 보내신 여러차례의 편지에서 일생을 두고도 잊을 수 없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은 그는 전투정치훈련과 군무생활에서 남다른 모범을 보였다. 그래서 조선노동당의 당원이라는 고귀한 정치적 생명을 받아안았고 이 기쁜 소식을 경애하는 장군님께 제일먼저 보고 드리었던 것이다.

그의 입당소식을 아시고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신 분은 바로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었다. 총쥔 군인들, 조국보위초소에 선 병사들에 대한 남다른 믿음과 기대를 지니신 장군님께서는 즉시 그에게 축하의 편지를 보내주시었다. 그리고 학우들에게도 그의 입당소식을 알려주시어 그들이 군사복무야말로 가장 영예로운 일이라는 것을 옳게 인식하도록 해주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에 의해 훌륭한 군인들로 성장한 청년들이 어찌 이들뿐 만이랴. 수많은 청년들이 그러한 높은 정치적 신임을 간직하고 조국보위초소에서 혁명의 총을 잡고 혁명가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