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과 병사생활!…

장군의 어깨위에 빛나는 금별도 병사생활의 땀에 절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범한 군사적천품과 예지를 지니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교정의 나날과 더불어 영장으로서의 자질과 품격을 원숙하게 갖추어 나가시었다.

끝없이 겸허하시고 소박하신 장군님께서는 몸소 군사야영지에서 평범한 병사생활에 몸을 잠그시고 미래의 영장으로 더욱 단련하며 준비해 나가시었다.

장군님께서 참가하신 김일성종합대학 학생군사야영이 시작된 것은 주체51(1962)년 8월 중순이었다.

이 무렵 멀리 북방의 창성, 삭주지구에서 위대한 수령님과 함께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장군님께서는 군사야영에 참가하시기 위해 대학에 돌아오시었다.

대학의 교원들과 일꾼들, 학생들은 장군님께서 군사야영에 참가하시지 말 것을 권고하였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군사야영에 참가하여 군사를 성실히 배우실 결심이었다.

이런 심정을 안으신 장군님께서는 8월 17일 야영소로 떠나는 학생들과 『군사를 성실히 배우자』라는 뜻깊은 담화를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미제침략자들과 남조선반동들의 모험적인 전쟁도발책동으로 우리 나라에서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정세를 분석하시고 이런 조건에서 우리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하시면서 이번 군사야영훈련을 통하여 이미 배운 군사지식을 공고히 하며 유능한 군사지휘관으로 준비하여야 하겠다고 강조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우리 당의 군사사상과 이론을 깊이 연구체득해야 하며 또한 군사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기본과업의 하나로 내세우고 여러가지 무기와 전투기술기재를 능숙히 다루고 사격술을 높이며 현대전에 필요한 전법과 전투지휘능력을 소유해야 한다고, 군사야영기간에는 규율생활, 당조직생활과 민청조직생활을 잘하며 혁명적 동지애를 높이 발양해야 한다고 하시었다.

김일성종합대학의 군사야영지는 평안남도 순안군 서리(오늘의 평양시 용성구역 어은동)였다.

높낮은 산봉우리들, 골짜기들과 어울려 이루어진 어은동은 그때까지만 하여도 인적이 드문 산간지대였다.

연연히 뻗은 수려한 산발들과 계곡들, 정답게 우짖는 새소리와 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맑은 물의 조잘거림소리가 산촌의 그윽한 정서를 자아 내는 유정한 고장이었다.

장군님께서 이곳에 도착하신 것은 8월 20일 오후였다.

하늘도 위인을 알아보는 듯 몇시간전까지 퍼붓던 댓줄기같은 소낙비도 멎고 시꺼먼 구름도 가뭇없이 사라져 영롱한 햇빛이 어은동의 산봉우리들과 골짜기마다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었다. 신기한 천기를 안고 오신 장군님을 온 야영소가 기쁨과 감격으로 맞이했다.

수수한 훈련복에 배낭을 메신 장군님께서는 대대장의 안내를 받으시며 병실과 식당, 상학실들을 돌아보시고 정치부에 들리시어 담화를 하시었다.

장군님을 정치부에 모시게 된 그들은 한없는 기쁨속에서도 아무런 준비없이 맞게 된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하였다.

법학부 3학년생인 자강도산골내기 대대민청위원장이 이렇게 기별도 없이 갑자기 나오시니 대접할 것이 없어 정말 미안하다고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웃으시며 그렇소? 그럼 미리 알렸다면 뭘 준비할 수 있었소? 라고 물으시었다.

자강도산골내기는 오늘 아침에만 알았어도 여기 농장에 가서 첫물로 따는 풋강냉이를 얻어다 푸짐하게 삶아놓았을 것이라고 대답올렸다.

『이것 보오. 이 자강도촌사람이 뭐라고 하는가. …실은 제가 풋강냉이생각이 나니까 나를 핑게대고 한번 톡톡히 맛볼 수 있었는데 그런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 아쉽다는 거요.』

장군님의 호방하신 이 말씀에 모두가 즐겁게 웃으며 그 산골내기에게 어서 솔직하게 말씀드리라고 몰아댔다. 그러자 그는 하긴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긴 하다고 하면서 그전에 집에 있을 때 이맘때면 저녁마다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온 식구가 모여 앉아 토장을 넣고 끓인 구수한 호박장에 뜨끈뜨끈한 풋강냉이를 후후 불면서 먹었는데 그 맛이 참 별맛이었다고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으시고 나서 말씀하시었다.

『풋강냉이에 호박장이라… 좋지, 말만 들어도 구미가 부쩍 동하누만. 그러니 오늘 우리 민청위원장이 「말대접」을 아주 멋들어지게 한셈이군. 앞으로 출출할 때면 정치부에 오겠으니 말연회를 계속 차리시오.』

장군님의 말씀에 그 산골내기는 아니, 다음번에 오시면 진짜연회를 차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하여 장내에는 또 즐거운 웃음판이 벌어졌다.

장군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정치부성원들은 장군님께 훈련 전기간 정치부에 계시면서 야영소의 전반사업을 지도해 주셨으면 하는 의향을 말씀드렸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한결같은 청을 사양하시었다.

『동무들이 나를 믿어주는 것은 고맙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번에 소대동무들과 같이 지내면서 병사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지휘부성원들은 펄쩍 뛰다싶이하며 만류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소대에서 생활하실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는 못하십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서시었다.

『이것은 수령님의 뜻이며 나의 확고한 결심입니다.』

나직하나 힘있는 말씀이었다.

『나는 이번에 여기로 떠나오면서 위대한 수령님께 군사야영지에 나가 병사생활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나의 결심에 절대찬성이라고 하시면서 군사를 알자면 병사생활부터 알아야 한다고 하시었습니다.

나는 소대동무들과 같이 생활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소대와 분대에 소속된 대원입니다.』

장군님께서 강조하신 「병사생활」이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병사생활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병사생활은 누구나 다 해보아야 한다고 하시며 이런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시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젊어서 고생은 금주고도 못 산다고 했는데 황금에도 비길 수 없는 청춘시절을 바쳐 찾아야 하는 것이 병사생활입니다.

백전노장에게도 잊을 수 없는 병사시절이 있고 무적장군의 첫 걸음도 병사생활로부터 시작됩니다.

병사생활체험이 없이는 병사들을 잘 알 수 없고 병사대중을 모르고서는 군사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병사들을 잘 알고 그 생활을 못 잊는 군사령관이라야 전사들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으며 그들을 일심일체의 강군으로 묶어 세워 전투승리에로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영장의 지혜와 용맹도 병사생활에서 움트고 장군의 어깨위에 빛나는 금별도 병사생활의 땀으로 빚어져야 합니다.』

새겨볼수록 뜻이 깊은 말씀이었다.

장군과 병사생활에 대한 심원한 철학을 안겨주는 가르치심이었다.

예로부터 명성을 떨친 장군들은 적지 않았다.

그 많은 명장들중에는 병사복을 입고 싸움의 앞장에서 용맹떨친 사람도 있고 전사의 계급장으로부터 명장의 금별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어느 군역사에도 병사생활을 스스로 원했거나 병사생활체험에 그렇듯 큰 의의를 부여했던 명장은 찾아볼 수 없다.

정치를 하려면 군사를 알아야 하고 군사를 알자면 병사생활부터 알아야 한다.영장의 지혜와 용맹도 병사생활에서 움트고 장군의 어깨위에 빛나는 금별도 병사생활의 땀으로 빚어져야 한다.…

실로 깊은 뜻이 담겨있는 장군님의 이 말씀은 그 어느 병서나 군역사책에도 없는 심오한 철학적 명언이었다.

정치부성원들은 야영생들과 한지붕아래에서 병사생활을 몸소 체험하시며 깊이 요해하시려는 장군님의 결심을 더는 돌려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장군님께 최종적인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것은 장군님께서 침실만은 따로 정하시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제의를 들으시고 가볍게 웃으시며 그렇게는 할 수 없다, 생활이란 백번 보고 들어서 다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진짜생활을 알자면 눈과 귀로가 아니라 온몸으로 직접 체험해보아야 한다, 제가 오래동안 굶어보아야 남의 하루 배고픔을 알고 제가 큰 고생을 겪어보아야 남의 별찮은 고통도 다 알아줄 수 있게 된다고 하시면서 조용히 말씀을 이으시었다.

『사실 나의 병사생활은 백두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몸에 덮은 것은  어머님의 군복이었고 내가 처음으로 손에 쥔 것도 어머님의 권총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유격대원들과 같이 굶고 같이 얼고 달콤한 쪽잠과 따스한 우등불의 귀중함도 간절하게 느끼며 자라났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전사들과 그들의 생활에 대하여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나는 동무들과 같이 일과생활에도 참가하고 험한 산발도 타보며 식당 취사병이 되어 칼도마질도 해보면서 병사생활을 더 깊이 알고 체험해보려고 합니다.』

그러시면서 이것은 결국 위대한 수령님의 군건설사상을 깊이 체득하고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총대로 더 잘 받들어 나가기 위한 준비를 튼튼히 갖추자는 것이라고, 그러니 동무들은 나의 의도를 알고 나를 잘 도와주어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나는 수령님께서 겪으신 천신만고의 준엄한 생활을 그대로 체험하고 싶다, 수령님께서 눈비를 맞으시며 걸으신 혁명의 천만리길을 다 걸어보고 싶고 수령님께서 대원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신 혁명군대의 생활도 그대로 겪어보고 싶다, 그래야 수령님을 알고 수령님을 따라배울 수 있으며 수령님의 뜻대로, 수령님의 식으로 혁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면에서 수령님을 닮으려고 한다, 이것이 나의 생활신조이고 좌우명이다, 그래서 나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의 첫 깃발을 들었고 이번에는 동무들과 같이 병사생활도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격정에 넘쳐 말씀하시었다.

굳이 병사생활을 택하시는 그분의 의지가 담겨진 심오한 생활철학이었다.

장군님의 숭고한 뜻을 가슴깊이 새기게 된 정치부성원들은 그분에 대한 끝없는 존경과 뜨거운 흠모의 정을 안고 충성을 다해 모실 심장의 맹세를 굳게 다지었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군사야영소에서는 훈련을 앞두고 대열검열이 진행되었다.

검열받는 대열속에 훈련복차림에 배낭을 메신 장군님께서 서 계시었다.

장군님의 「군적」은 제1중대 제1소대 제1분대 대원, 그저 평범한 한 병사의 위치였다.

장군님의 병사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바로 그 날부터 어은동군사야영지에서 장군님께서 혁명의 무기를 몸소 잡으시고 수수한 병사복차림으로 병사대중속에 들어가시어 그들과 고락을 같이하신 천출명장의 새 「전설」이 새겨지게 되었다.

그 「전설」을 말해주는 대형기념비가 어은동의 영군봉마루에 오늘도 높이 솟아있다. 그 기념비에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때 야영기간 병사생활을 실속있게 하여 문무를 겸비하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가시려는 철의 신념과 의지를 담아 친히 지어 읊으신 시 「백두의 행군길 이어 가리라」 전문이 아로새겨져 있다.
 

 

총창을 비껴들고 산정에 오르니

 멸적의 장수힘이 온몸에 넘친다

미래를 꽃피울 피끓는 가슴에

달려갈 앞길이 파도쳐 밀려온다

 

천만대군 이끌고 험산준령 넘고 넘어

백두의 행군길을 곧바로 이어가리

침략자 미제를 이 땅에서 내몰고

통일된 조국을 한품에 안으리라

 

3천리강산을 낙원으로 꽃피워

조선의 영광을 온 누리에 떨치리

그 어떤 원쑤도 다치지 못하게

내 조국 영원히 지켜가리라

 

 

 장군님의 병사생활은 보통군인의 병사생활이 아니었다. 그것은 병사대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들을 전투승리에로 불러 일으키는 천출명장의 지략과 담력, 기질과 풍모를 더욱 훌륭히 갖추어 나가시고 군사야영생들을 수령결사옹위 투사들로 키워 나가시는 숭고한 선군혁명의 군인생활이었다.

장군님께서는 모든 야영생들이 군사훈련과 야영생활을 통하여 정치군사적으로 튼튼히 준비해 나가도록 하는데 큰 힘을 넣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야영대대 정치부사업에 선차적 관심을 돌리시었다. 그분께서는 당이 요구하고 혁명에 필요한 인재는 수령님께 충성다하려는 높은 정치적 자각과  사상적 각오를  가지고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된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야영대대   정치부가  모든   야영생들을 위대한 수령님을 견결히 옹호보위하는 투사로 준비시키기 위한 여러가지 정치사업들을 활발히 벌이도록 이끌어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것은 곧 수령님을 목숨으로 보위하자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항일의 오중흡7련대를 수령결사옹위의 전형으로 내세우시었다. 그리고 병실과 훈련장주변의 큰 나무들에 『항일혁명투사들처럼 훈련하고 학습하며 생활하자!』라는 구호를 써붙이게 하시고 모든 야영생들이 수령결사옹위의 전통을 창조한 항일혁명투사들의 모범을 따라배워 훈련과 학습, 생활에서   전변을 일으켜  나가도록 이끄시었다.    오늘  인민군대에서   광범히  벌어지고  있는 「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은 바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대학시절 군사야영에서 이미 창조하신 것을 오늘의 조건에 맞게 발전시키신 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또한 수령님의 현지지도를 수록한 기록영화를 학습하는 새로운 영화문헌학습체계를 세우시었으며「군사야영의 노래」창작과 악기 「어은금」의 제작, 대열합창경기, 벽신문 및 창작품전시회와 예술소조경연, 다양한 직관선전사업 등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참신하고 흥미있는 정치사업들을 활발히 벌여 나가게 하시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군사훈련에 성실히 참가하시면서 모든 야영생들이 수령님의 군사사상과 주체전법을 깊이 체득하며 여러가지 무기들을 다룰 줄 아는 병사로 자라나도록 하는데도 큰 힘을 넣으시었다.

어은동에서 보내신 보람찬 군사야영은 경애하는 장군님께 있어서 참으로 귀중한 병사생활을 깊이 체험할 수 있게 한 잊지 못할 나날이었다.

 

   



만능병사란 저절로 갖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흘러가는 군사야영의 나날 장군님께서는 야영생들과 꼭같이 한지붕아래에서 한가마밥을 드시며 자신을 만능병사로 준비해 나가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전술과 사격, 병기학, 대열 등 군사훈련의 모든 분야에서 언제나 이채를 띠는 제일의 만능병사이시었다.

풍부한 군사지식과 군사지도능력을 지니신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야영생들의 수범이 되시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천에 적응한 교범적인 군사훈련에서 그분은 누구나 인정하는 스승으로, 귀감으로 되시었기 때문이다.

현대전에 필요한 전법과 전투지휘능력을 소유하는 것과 함께 여러가지 무기에 정통하고 사격술을 높이는 것은 군사야영기간 훈련에서 해결해야 할 기본과업의 하나였다.

하지만 야영생들속에는 군사복무를 하며 총을 다루어 본 학생들이 있었는가 하면 군사복무를 해보지 못한 학생들도 있었다. 군사복무를 못해본 야영생들의 경우 열병훈련 때 보병총을 좀 다루어 보았을 뿐 권총과 기관단총, 경기관총, 중기관총과 같은 무기는 다루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군사야영지에 와서 처음으로 각종 보병무기들을 다루어보기 때문에 무기다루는 솜씨가 서툴렀다. 여러가지 무기의 기술적 제원도 새로 배워야 했다.

이러한 실태를 요해하신 장군님께서는 유사시에 전투임무를 능숙하게 수행하자면 여러가지 무기에 정통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시면서 몸소 무기다루는 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었다.

주체51(1962)년 8월 어느날, 야영생들이 경기관총의 구조명칭과 작용원리, 그 분해결합방법을 배울 때였다.

경기관총에 대하여 처음 알게 된 야영생들은 강의가 끝나자 휴식시간에 저마다 무기를 잡고 분해결합을 해보았다. 그런데 강의 때 설명을 듣던 바와는 달리 분해결합동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들의 서툰 동작을 지켜보시던 장군님께서는 군사에 어두운 사람에게는 아무리 좋은 총을 주어도 부지깽이보다 못하다는 말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소리라고 하시며 크게 웃으시었다.

그러시고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분해결합동작을 계속 익혀보는 한 야영생에게 다가가시어 그가 어려워하는 분해결합개소들을 차근차근 가르쳐주시면서 그 묘리를 하나하나 일깨워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몇번 반복하여 분해결합방법을 배워주시고 나서 이제는 혼자서 해보라고 그에게 이르시었다.

야영생은 어지간히 신심을 가지고 총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동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쉽게 할 수 있는 동작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장군님께서는 덤비지 말고 침착하게 하라고 고무해주시며 부족점을 하나하나 바로잡아주시었다.

그분께서는 첫술에 배가 부르겠는가, 자꾸 해보면 된다고 신심도 주시며 다시 분해해보라고 하시었다.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그가 신심을 가지고 몇 번 반복해보니 점차 손에 익혀지며 분해결합동작이 순조롭게 되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만하면 제대로 된다고 만족해하시며 좀 쉬였다가 다음 휴식시간에 또 해보라고 이르시었다. 그러시고는 그와 함께 밖으로 나와 야영생들이 휴식하고 있는 바위위에 허물없이 자리를 같이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야영생과 이야기를 나누시며 마음먹고 달라붙어 군사야영기간에 여러가지 무기를 다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유사시에 전투임무를 능숙하게 수행하자면 여러가지 무기에 정통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예로부터 군사는 여러가지 무기를 잘 다룰 줄 알아야 싸움판에서 한몫 할 수 있다고 하였다고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칼과 창, 활이 기본전쟁수단으로 되었던 지난날과는 달리 과학기술이 발전한 오늘에는 여러가지 현대적무기와 전투기술기재가 전쟁수단으로 되는 조건에서 군인들이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많이 좌우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무기에 정통하는 것은 군인의 첫째가는 임무입니다. 군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무기에 정통하여야 하며 전투기술기재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지난날 항일혁명투사들이 무기에 정통하고  그것을 능숙하게 다룬데 대하여, 특히 김정숙어머님께서 권총뿐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 무기들에도 다 정통하시고 백발백중의 사격술로 솔방울도 떨구신데 대하여 들려주시었다.

야영생들에게는 그 이야기가 너무도 신기했다.

김정숙어머님께서 어쩌면 그런 명사격술을 지니시었는가고 하며 경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이어 군인은 자기의 무기에 정통할 뿐 아니라 적의 무기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무기에 정통하자면 병기학학습을 잘 하여야 합니다. 여러가지 무기에 정통하는데서 그 사명과 성능, 구조 특히 모든 무기의 일반적인 작용원리를 이론적으로 깊이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기는 종류가 다양하고 형태도 각이 하지만 작용원리는 다 비슷합니다. 무기의 작용원리를 잘 알아야 어떤 무기든지 원만히 다룰 수 있습니다.』

그러시면서 무기에 정통하자면 이론학습을 잘하는 것과 함께 여러가지 무기를 많이 다루어 손에 익혀야 한다고, 경기관총이나 중기관총과 같이 구조가 복잡한 무기일수록 실물을 가지고 실지동작을 하면서 분해결합법을 익히는 것이 좋다고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친히 자신의 실천행동으로 그 모범도 보여주시었다.

어느 날 보병무기가운데서도 제일 까다롭고 복잡한 중기관총의 분해결합법을 익힐 때였다.

한사람씩 차례로 분해결합을 하였다. 그런데 제대로 하는 야영생들이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광경을 지켜보시었다. 그러시다가 그분께서는 듣던 바대로 좀 복잡한데 어디 한번 해보자고 하시며 팔소매를 걷으시었다. 순서대로 분해결합을 하시였는데 그 능숙하고 조화로운 동작에 야영생들은 물론 군사교원도 입을 벌리고 말았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있었다.

군사교원이 눈을 감고 분해결합을 해볼 사람이 없는가고 했다.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장군님께서 중기관총앞에 다시 나오시었다. 그러시고는 총체를 총차에서 떼놓으시고 눈을 감으시었다.

긴장한 눈길들이 그분의 일거일동을 지켜보았다.

장군님께서는 침착하게 격발기를 떼놓으시었다. 이어 부분품을 차례로 분해하여 나란히 놓으시었다. 중기관총의 분해시간을 기준시간보다 훨씬 앞당겨 끝내시었던 것이다.

모두가 격동되는 심정을 누르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다시 눈을 감으시고 복잡한 장치들과 부분품들을 단 한번의 헛갈림도 없이 능숙하고 정확하게 결합해 나가시었다. 규정대로 안전장치까지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눈을 뜨시며 틀린 데가 없는가고 물으시었다.

『완전무결합니다.』

군사교원과 야영생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일제히 박수갈채를 터쳐 올렸다.

전쟁이란 무기의 대결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총을 떠난 전쟁이나 군사란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세계전쟁사상 그 어떤 명장이나 군사가도 흔히 단총애용무기만을 사용하였을 뿐 전쟁에 이용되는 다종다양한 무기들을 다 그렇듯 완벽하게 알고 다루지는 못했다.

그러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현대전쟁과 전투들에 활용되는 여러가지 무기들의 속내를 손금보듯 꿰뚫어보시고 그것들에 정통하고 계시었던 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병기학에서 뿐 아니라 전술훈련에서도 학생들의 귀감이 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전술훈련 때마다 주체의 군사전법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독창적인 전술방안을 내놓으시고 그 실천의 빛나는 모범을 창조하시었다.

어느 날 장군님을 모신 구분대는 훈련강령에 따라 아침 일찍 행군길에 올랐다.

구분대가 당골 서남쪽에 있는 「수림고지」 북쪽릉선에 이르렀을 때였다.

지휘관이 군용지도를 펼쳐놓고 정황을 알려주었다.

…○○지구에 증강한 한개 대대역량의 적항공육전대가 투하되었다. 적들은 우리의 강력한 대공화력과 노농적위대 구분대들의 작전으로 심대한 타격을 받고 「무명고지」일대로 패주하여 바다로부터 기어들어오게 되어있는 증원부대를 기다리고 있다. 구분대는 적들에게 숨돌릴 틈을 주지 말고 적항공육전대를 일거에 기습소멸해야 한다.…

지휘관은 지도에 구분대의 진출노정, 인접을 표시하고 나서 임무수행시간을 알려주었다.

구분대는 긴박한 정황하에서 전투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시간도 촉박하고 「적」아의 역량상 차이도 컸다.

「적」들은 수적으로 우세한데다 높은 고지에 틀고 앉아 여러 정의 기관총으로 아군이 차지한 인접의 낮은 고지와 능선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전투」에 진입하게 된 대원들은 못내 긴장하여 장군님의 명령을 기다리었다. 구분대지휘는 훈련에 참가한 야영생들이 번갈아 하였는데 이 날 그분께서 구분대를 지휘하시게 되었다.

장군님께서는 신심에 넘치시어 초급지휘성원들을 불러 요해정도를 확인하시고 정황판단에 따르는 자신의 결심을 알려주시었다.

…생소한 지대에 낙하하여 강력한 타격을 받은 「적」들은 지금 갈팡질팡하고 있다. 증원부대는 언제 올지 모르는데다 아군의 강력한 공격이 예견되기 때문에 「적」들은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다. 때문에 항공대의 엄호하에 바닷쪽으로 도망칠 구멍수만 찾고 있다. 「적」들은 아군의 공격역량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지 못하고 있다. 주도권을 확고히 틀어쥐고 공격속도를 높여 불의타격을 가하면 능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참으로 기민하고 과단성있고 세심하고 빈틈없는 명철한 정황판단이었다.

드디어 공격신호가 올랐다.

구분대가 개활지대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적」비행대의 폭격과 기관총사격으로 불의의 정황이 조성되었다.

장군님께서는 속도를 높여 「적」들이 차지한 고지계선으로 빨리 진출하도록 명령하시었다.

그런데 「적」비행대의 타격에서 벗어난 구분대가 미처 공격에 진입하기도 전에 「적」의 중기관총들이 맹렬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 앞서 나가던 구분대가 전진을 멈추게 되었다.

이 위급한 순간 장군님께서는 배속된 중기관총분대와 구분대의 경기관총 일제사격으로 「적」중기관총들을 제압하도록 하시고 좌우익측으로 진출한 구분대들로 하여금 측면으로 타격을 가하게 하시었다. 한편 전체 구분대의 보병총 일제사격으로 1참호의 「적」들을 답새기게 하시었다.

정황은 순식간에 변하였다.

「적」들은 불의적인 측면공격과 집중적인 화력타격에 기가 눌려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이 순간을 민감하게 포착하신 장군님께서는 구분대를 돌격에 진입시키시었다.

장군님의 힘찬 돌격구령에 따라 전체 구분대가 돌격전에 나섰다. 구분대는 돌격전으로 적의 1참호와 2참호를 연이어 점령하였다.

그때에 또다시 후방계선의 고지로 달아난 「적」패잔병들을 소멸할 데 대한 임무가 제시되었다.

이때에도 장군님께서는 정찰조를 파견하시어 「적정」을 판단하시고 기습적인 불의공격으로 「적」패잔병무리를 모조리 「소탕」하고 끝내 승리를 이룩하도록 하시었다.

그것은 신속한 정황판단, 정확한 결심채택, 영활하고 대담한 정황처리 등 능숙한 지휘로 구분대를 이끄신 장군님의 비범한 전술능력이 안아온 열매였다.

장군님께서는 대열훈련에서도 모범을 보이신 만능병사이시었다.

장군님께서 친히 조직하도록 하신 대열합창경기 때였다.

장군님께서는 이 날 전반적인 경기심사를 보아주실 것을 요구하는 지휘부성원들의 청을 마다하시고 자신께서 소속된 소대대열에 들어서시었다.

장군님을 모신 대오가 맨 선참으로 나섰다.

소대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신 장군님께서는 발을 높이 드시며 힘차게 정보로 행진하시었다.

땅이 질어서 발을 구를 때마다 흙탕물이 튕겨 올랐다. 하건만 장군님께서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으시었다.

장군님의 보무당당한 기세에 고무된 대원들이 그분의 뒤를 따라 힘차게 지축을 울리며 행진했다.

뒤이어 우렁차게 울리는 대열합창소리가 골안을 들었다 놓았다.

참으로 이 날 경기는 전례없는 열의속에서 전투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뿐이 아니었다.

장군님의 신묘한 사격술은 또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늘에 나는 새를 쏘아 떨구시고 먼 거리에 세워놓은 10개의 병모가지도 영낙없이 모두 날리셨다는 장군님의 신묘한 사격술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는 야영생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처럼 장군님께서는 병기학과 전술, 대열과 사격 등 군사훈련의 모든 부문에 다문박식하시고 명석하신 제일의 만능병사이시었다.

세상에는 유혈의 전쟁속에 단련된 백전노장들도 많았다. 하지만 장군님처럼 20대에 영활무쌍한 군사지략과 무예를 떨치며 군사만능의 혜성으로 나타난 명장이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 또 있었던가.

이제 그분께서 세상을 들었다 놓으실 것이다, 천하명장으로 온 세상을 쥐락펴락하실 것이다!

야영생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확신하면서 장군님을 높이 우러렀다.

 

   



군대의 생명은 규율이다. 군사에 능하신 만능병사로서의 장군님의 자질은 군사규율과 규정준수에서도 그대로 과시되었다. 그분께서는 늘 예외로 되지 않으시고 남다른 모범을 보이시면서 야영생들 모두를 군사규율강화에로 손잡아 이끌어 주시었다.

야영생들은 무엇보다도 언제나 보통병사의 자세에서 군사규정준수에 끝없이 성근하신 장군님앞에 머리를 수그렸다.

언제나 야영생들과 꼭같이 병사생활을 하시며 훈련에서 남들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시는 그분의 모습은 전체 야영생들을 크게 감동시켰다. 그분께서는 군사규정과 교범의 요구대로 다른 야영생들과 다름없이 위병근무도 서시고 무기청소도 하시고 이른 새벽에 남 먼저 일어나시어 병실아궁에 불도 지피시었으며 식당근무에도 나가시어 식사질을 높이기 위해 마음 쓰시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훈련이 갓 시작된 어느날이었다.

정치부에서는  사업토의를 하다가   제기된 문제에 대해  장군님께 보고  드리고 가르치심을 받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정치부의 한 성원이 장군님을 찾아 뵙게 되었다.

하루훈련이 방금 끝난 뒤였다.

정치부성원은 장군님께서 계시는 구분대로 찾아가 그분께 사연을 말씀 올렸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시더니 잠깐 기다리게 하시고 분대장을 찾아가시었다.

분대장은 장군님께서 무슨 과업을 주시려는 줄만 알고 몸가짐을 바로하고 그분앞에 나섰다.

그런데 뜻밖에도 장군님께서 거수경례를 하시며 규정대로 면회를 청하시는 것이었다.

『분대장동지, 대원 김정일, 만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면회를 청하신 장군님께서는 대대정치부일꾼이 찾아왔기 때문에 잠시 자리를 떠야겠다는 것을 보고 하시었다.

대대정치부성원은 그만 아연해지고 말았다. 그런데 더 바빠한 것은 분대장이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분대장을 지켜보시다가 분대장동무, 병사가 자기 위치를 떠날 때 분대장에게 보고하는 것은 군사규정의 요구가 아닌가고 하시며 미소를 지으시었다.

이런 사연을 알게 된 지휘부성원들은 모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정치부에서는 곧 장군님의 숭고한 모범을 따라배워 모든 야영생들이 군사규정의 요구를 자각적으로 지키도록 교양사업을 힘있게 벌여 나갈 것을 토의결정하였다.

그런데 그 날 밤 장군님의 거수경례를 받은 분대장이 정치부에 찾아왔다.

자기는 분대장을 못하겠으니 대책을 세워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영문을 몰라하는 지휘부성원들에게 자기가 그렇게 진땀을 흘려보기는 난생처음이라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 날 분대장은 기회를 타서 장군님께 자기가 땀을 빼던 일을 말씀 올리고 다시는 그런 거수경례를 하지 마시라고, 보고를 받지 못하겠다고 말씀드리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그 일 때문에 그러는가, 병사는 모든 행동을 자기의 직속상관에게 보고하고 움직이게 되어있지 않는가, 나는 오늘 군사규정의 요구대로 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분대장동무가 땀을 흘렸는가고 너그러이 말씀하시었다.

분대장은 용기를 내여 규정은 규정이고 우리들의 입장도 봐주어야 하시지 않는가고 애원하다싶이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시고 입장으로 보면 분대장과 대원의 입장이고 나는 대원으로서 군사규정을 어길 권리가 없지 않는가고 하시었다.

그러자 분대장은 말문이 막혀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그를 다정히 바라보시며 『군인의 모든 행동은 보고로부터 시작되고 보고로 끝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분대장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분께서 군사규정의 요구라 하시며 계속 거수경례를 하며 보고까지 하시겠는데 어떻게 그분의 거수경례를 받겠는가, 나는 분대장을 못하겠다고 하였다.

분대장을 겨우 설복하여 보낸 후 대대민청위원장은 장군님께 이런 사연을 말씀드리면서 그렇게 하시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정말 딱해서 그럽니다라고 정중히 말씀드리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민청위원장에게 신중하신 음성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정하여 주신 군사규정은 우리위에 있다, 누구도 그앞에서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은 바로 이런 분이시었다.

이렇듯 규정생활에서 솔선 수범하신 장군님께서는 야영생들에게 혁명군대의 군사규율의 본질과 중요성, 규율강화를 위한 방향과 방도를 비롯하여 군사규율강화에서 나서는 원칙적인 문제들에 대한 완벽한 해명을 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느날 군사규율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규율은 군대의 생명이며 전투력의 원천입니다. 군대가 규율이 없이는 대오를 유지할 수 없으며 적과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군대에서는 강한 규율을 세워야 행동의 통일성과 일치성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강철같은 규율을 가진 군대만이 전투력이 강할 수 있으며 백전백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군대와 같은 규율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것은 군대와 규율이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줍니다. 군대는 규율이고 규율은 군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군사규율에 대한 장군님의 견해와 입장이 집약적으로 함축되어 있는 말씀이었다.

군사규율의 중요성을 이렇게 깊이 헤아려보신 장군님께서는 군사야영기간 모든 야영생들이 높은 규율성과 조직성을 지닌 참된 군인의 풍모를 갖추어 나가도록 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었다.

야영지에 나오시어 며칠동안 야영대대의 규율상태를 요해하시는 과정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신 장군님께서는 어느 날 몸소 초급지휘성원들의 모임에 참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초급지휘성원들과 『군사야영생활을 군사규정의 요구대로 하자』라는 담화를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먼저 야영생들이 모든 생활을 군사규정의 요구에 맞게 진행하여야 야영소안에 혁명적인 제도와 질서를 세울 수 있고 군사훈련을 성과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보고제도가 무질서한데 대하여 지적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상관에게 보고하고 행동하는 것은 군인이 지켜야 할 초보적인 요구라고, 그렇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면 그 부대는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만다고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보고제도를 세우는데서 보고법을 군사규정의 요구대로 정확히 지키는 문제에 대하여서도 강조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보고는 큰소리로 절도있게 하여야 군인다운 면모도 나타나고 규율도 서게 된다고 하시며 규율생활에서는 적당히 어물쩍해 넘기는 현상이 허용될 수 없다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초급지휘성원들에게 일과생활을 군사규정의 요구대로 조직할 데 대하여서도 가르쳐주시었다.

그분께서는 초급지휘성원들이 야영생들에게 일과생활을 규정의 요구대로 시키지 않으면 규율에 대한 관념이 흐려지고 사상적으로 해이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규율을 강화하려면 제정된 일과를 정확히 집행해야 한다고 하시었다.

장군님께서 몸소 초급지휘성원들의 모임에 참석하시어 이처럼 현명한 가르치심을 주심으로 하여 군사야영대대의 규율생활 특히 보고제도를 철저히 세우고 일과생활을 강화하는 데서는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게 되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후 야영생들의 규율생활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소한 부족점들도 엄격히 총화하고 대책을 세워 나가도록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분대장의 명령을 잘 집행하지 않는 야영생들이 나타났을 때에는 명령, 지시를 떠난 군사행동, 군무생활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하시면서 잘못을 엄격히 총화하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내무생활로부터 예절과 옷차림에서 나타난 결함들에 대해서도 소홀히 대하지 않으시고 타일러주어 고쳐 나가도록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이처럼 규율생활의 모든 면에 대해 깊이 관심하시며 야영생들이 군사규정과 규율을 철저히 지켜나가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 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사야영훈련의 나날에 인민군대의 혁명적 본성을 구현한 군사규율강화의 방향과 방도도 명철하게 밝혀주시었다.

장군님께서 군사규율을 강화하는데서 중요한 방도로 보신 것은 무엇보다 야영생들의 자각성을 최대로 발양시키는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군사규율을 강화하자면 모든 군사야영생들이 규율을 자각적으로 지키도록 교양사업을 잘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군인들의 높은 자각성에 기초하고 있는 바로 여기에 우리 인민군대의 불패의 힘의 원천의 하나가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 군사규율을 강화하는데서 다음으로 중요하게 보신 것은 지휘성원들의 책임성과 역할을 높이는 문제였다.

그분께서는 군사규율을 강화하는데서 지휘성원들의 책임이 매우 크다고 하시면서 모든 군사야영생들이 군사규율을 엄격히 지키도록 요구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었다.

진정 장군님의 말씀 한마디한마디는 모두가 군사규율과 질서를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가장 정당하고 현명한 방침이었다.

야영생들은 물론 군무생활을 조직집행하는 교관들이나 지휘성원들도 그분의 가르치심을 심장속에 받아 안고 그것을 절대적인 교범으로 삼았다.

날을 따라 야영생들의 생활과 훈련에서는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규율과 훈련속에 단련된 절도있고 씩씩한 야영생들의 우렁찬 대열합창소리가 아침저녁으로 어은동골안을 뒤흔들었다.

장구한 세월의 군역사에서 군사규율과 규정은 무릇 전쟁의 승패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고 강조되어왔다.

그러나 그것이 한두 해도 아닌 짧은 기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었다.

하지만 어은동군사야영지에서는 단 40여일이라는 짧은 나날에 전사의 보고체계로부터 군사규율과 규정집행에서 전례없는 변혁이 창조되었으니 이 역시 천하명장의 품격을 갖추어 나가시는 김정일장군님께서만이 창조하실 수 있는 군사적 모범이었다.

 

   




끝없이 고결한 혁명적 풍모를 지니고 계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군사야영의 나날 어느 하루도 빠짐없이 훈련에 열중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어은동군사야영소에서 추석을 맞게 되시었다.

그 해의 추석날은 9월 14일이었다.

지휘부성원들과 야영생들은 추석날 그분께서 김정숙어머님의 산소에 다녀오시기를 한결같이 바라마지 않았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그 날 어머님의 산소에 가지 않으시었다.

어은동에서 어머님의 분묘가 있는 대성산은 반나절이면 갔다 오고도 남을 지척이었다.

여느 해 추석날 같으면 사랑하는 여동생을 앞세우시고 어김없이 어머님의 산소를 찾으셨을 장군님이시었건만 이날마저도 그분께서는 고스란히 훈련에 바치시었다.

그 날 저녁 야영생들은 어은동골안을 밝게 비치는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너무도 일찍이 세상을 떠나신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을 추모하며 장군님께서 어머님의 산소에 가시지 못한데 대한 아쉬운 마음을 금치 못해하였다.

야영생들의 이러한 심정을 헤아리신 장군님께서는 일부러 대대정치부성원들을 부르시어 옛날부터 8월추석보름달을 먼저 보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고 하였는데 우리도 오늘 추석보름달을 구경하고 다같이 복을 받아보자고 하시면서 그들과 자리를 같이하여 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추석보름달은 정말 멋쟁이달이라고 하시면서 우리 선조들이 추석명절을 잘 정하였다고, 한해 농사를 지어놓고 가을걷이를 하기 전에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하루를 즐겁게 지내는 것도 좋고, 그 해 첫 햇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가지고 가족, 친척들이 다같이 조상의 묘를 찾아보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하시며 추석에 대한 말씀을 하시었다.

이러는 사이에 어느덧 용골산마루에 쟁반같은 둥근달이 솟아올랐다.

대대정치부성원들은 산봉우리들과 골짜기마다에 신기할만 한 현란한 빛을 뿌리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장군님께 아쉬운 마음을 터놓았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시며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시었다.

이윽하여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이 오늘 내가 어머님의 산소에 가보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는데 오늘은 동무들과 함께 보내고 군사야영훈련이 끝난 다음에 가보겠다고 하시었다.

그러시고는 『오늘 이렇게 동무들과 같이 모여 앉아 유난히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추석이야기를 하게 되니 지난날의 잊지 못할 일이 떠오릅니다.』라고 하시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시었다.

어느 해인가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의 산소를 찾으시어 분묘앞에 진달래를 심어 놓으신 적이 있었다.

어머님께서 제일 사랑하시던 진달래꽃이었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조국진군의 길에 오르신 그 날 김정숙어머님께서 5호물동을 건너 조국땅에 첫걸음을 옮기셨을 때였다. 그 날 어머님께서 감격의 눈물지으시며 제일 먼저 품에 안으신 것이 바로 눈바람, 찬서리를 이겨내며 붉게 핀 조국의 진달래였다. 어머님께서는 수령님께 진달래꽃을 드리시며 기어이 조국광복의 새봄을 안아오실 뜨거운 맹세를 다지시었다.

어머님께서는 조국해방후에도 정원에 진달래를 곱게 피우시며 그때의 일을 두고두고 감회깊이 회고하군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어머님께서 생전에 그처럼 사랑하시던 것을 생각하시어 어머님의 분묘앞에 진달래를 옮겨심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해에 그분께서 가보시니 진달래꽃이 아주 곱게 피어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어머님께서 웃으시며 반겨 맞아주시는 것만 같은 그 진달래꽃을 잊을 수가 없으시었다.

그 날부터 장군님의 가슴속에는 그리운 어머님의 모습과 함께 소박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진달래가 영원히 지지 않는 꽃으로 소중히 간직되게 되었다. 그것은 언제나 마음속에 따뜻한 정과 그윽한 향취를 안겨주었다.

그래서 장군님께서는 얼마 전에 늘 가슴속깊이 간직되어있는 진달래에 대한 뜨거운 심정을 노래에 담으셨던 것이다.

추억의 말씀을 마치신 장군님께서는 어느덧 그 사연깊은 노래를 부르시었다.

 

 

햇빛이 따스해 그리도 곱나

봄소식을 전하며 피는 진달래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꽃송이

진달래야 진달래야 조선의 진달래

 

오가는 비바람 다 맞으며

산허리에 피어난 붉은 진달래

긴긴밤 찬서리에 피고 또 피어서

진달래야 진달래야 조선의 진달래

 

때늦은 봄에도 사연을 담아

햇빛밝은 강산에 피는 진달래

못 잊을 어머님의 그 모습이런가

진달래야 진달래야 조선의 진달래

 

 

 장군님께서 부르시는 은은하면서도 절절한 노래소리가 달빛어린 산촌의 유정한 밤의 유다른 정서를 불러일으키며 조용히 울려갔다.

대대정치부성원들과 야영생들은 노래의 깊은 뜻과 정서적 감흥에 심취되어 북받쳐 오르는 격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엄동설한 오가는  눈바람을 이겨내고 봄이 오면  산기슭에 열정의 붉은 꽃 곱게 피우는 진달래, 장군님께서는 이 꽃에서 조선혁명의 위대한 구감으로, 충성의 꽃으로 삶을 빛내이신 어머님의 모습을 찾아보신 것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크나큰 감동에 휩싸여 노래가 마음에 든다고 공감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이 노래가 마음에 든다니 기쁘다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진달래의 생리에는 혁명가의 인생철학이 있다, 자연이나 인간이나 미래에 대한 믿음과 지향이 강하면 철을 앞당겨 언땅위에서도 꽃을 피우며 모진 시련과 고난도 달게 여기고 이겨낸다, 우리는 진달래꽃을 사랑한 혁명선열들의 고상한 정서속에 담겨진 숭고한 뜻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시었다.

『오늘과 같은 명절이나 의의깊은 날에는 지난 시기 조국의 광복과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고귀한 청춘을 바친 혁명선열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남긴 빛나는 업적과 숭고한 염원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에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행복이 크면 클수록 이 날을 위해 피흘리며 싸우다 쓰러진 선열들을 잊어서는 안되며 그들처럼 위대한 수령님께 충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장군님의 말씀에 야영생들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숙연해졌다.

추석 날 어머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노래에만 담으시고 산소에 가지 않으신 장군님의 숭고한 뜻이 헤아려져 서였다.

이렇듯 장군님께서는 지척인 어머님산소에 가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시였지만 조선혁명을 책임진 주인으로서의 사명감과 혁명의 무기를 잡고 훈련장에 나선 전사의 본분을 앞세우시며 마다하신 것이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로부터 얼마 후 어머님의 서거 13돌이 되는 9월 22일에도 자리를 뜨지 않으시고 훈련에 여념이 없으시었다.

그 날은 야영소에서 실탄사격을 하는 날이었다.

추석날의 일이 몹시도 마음에 걸려있던 부소대장은 아침 일찍 장군님께 오늘만은 꼭 어머님의 묘소에 다녀오셨으면 하는 의향을 간절히 말씀드리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어머님묘지에는 후에 시간이 있을 때에 가보겠다고 하시며 받아들이지 않으시었다.

그러시면서 『오늘은 실탄사격을 하는 날입니다. 어머님께서 오늘 내가 실탄사격장에 있다는 것을 아시면 기뻐하시며 실탄사격을 잘 할 것을 바라실 것입니다.』라고 하시었다.

부소대장은 그만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무기에 누구보다도 정통하시고 백발백중의 명사격술을 지니고 계시는 장군님께서 실탄사격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바로 하루 전에 진행한 시험사격 때 몸소 시범을 보여주시었는데 오늘까지 실탄사격때문에 어머님의 묘소에 가지 않으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그였던 것이다.

그에게는 전날에 있었던 시험사격 때 일이 떠올랐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첫 사격을 하시었다. 총을 받아 쥐신 그분께서는 사격좌지로 나가시었다.

사격목표판을 바라보시는 그분의 안광에 근엄한 빛이 번뜩이었다.

모두들 형언할 수 없는 숭고한 감정에 휩싸였다.

장군님께서는 세련된 동작으로 총탄을 재우시었다.

모두 숨을 죽인 채 앞을 주시하는데 짧은 순간이 마치도 몇시간 맞잡이로 느껴졌다.

이윽하여 건너편 숲속에 목표판이 불쑥 나타났다.

그와 거의 동시에 《땅!》 하는 야무진 총성이 골짜기를 울렸다.

장군님께서는 10초 간격으로 목표판이 나타날 때마다 조금도 지체하지 않으시고 연속 사격하시었다.

불이 번쩍 나게 해제끼시는 사격솜씨였다.

사격이 끝나자 목표수가 목표판을 검열했다.

붉은색 신호깃발이 연이어 오르내렸다.

그것을 지켜보며 『하나… 둘… 셋…』 하고 세어 나가던 야영생들이 『야-』 하고 환성을 올리며 모두 명중이라고 떠들썩하였다.

열화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올랐다. 온 사격장이 기쁨과 경탄으로 설레었다.

탄착점을 확인해본 결과 명중도 보통명중이 아니었다. 장군님께서는 모두 목표의 중심에 명중하신 것이었다.

신묘하기 이를 데 없는 사격술이었다.

그 무렵 장군님께서 보여주신 사격술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가 돌아가 백발백중의 명사격술을 모르는바 아니었건만 야영생들은 저절로 눈굽이 뜨거워졌다.

병기학과 사격조법에 그토록  능통하시면서도  언제인가는 험한  돌밭에 오랜 시간 엎드려  팔굽에  피멍이  지도록 조준연습에  열중하시던 장군님이시었기 때문이다.

그러시면서 사격에서는 목표판을 맞혔다 해도 그 중심을 맞히지 못하면 명중이 아닌 것으로 그리고 사격에서 공인된 허용오차도 인정하지 않는 높은 요구성을 제기하시던 장군님이시었기 때문이었다.

신화적이라 할만큼 놀라운 경애하는 장군님의 신묘한 사격술에는 천재이기에 앞서 그분의 피와 땀의 노고가 스며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루 전에 있은 시험사격에서 우수한 사격술을 보여주신 장군님이시었으니 실탄사격에는 참가하지 않으셔도 탓할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소대장은 야영생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니 오늘만은 어머님의 묘소에 잠깐만이라도 다녀오셔야 하지 않겠는가고 다시금 간청하였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아닙니다, 동무들이 아직 내 마음을 모릅니다라고 하시면서 도리여 자신께서 그를 타이르시며 말씀하시었다.

『어머님께서는 조국통일이 이룩되지 못한 것을 제일 가슴 아파하시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우리 나라가 통일만 되면 다른 원이 더 없겠다고 하시면서 혁명의 길에 나서실 때 헤어진 친혈육들을 찾는 것도 뒤로 미루어오시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종시 그리운 고향땅을 다시 밟아보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시었습니다. 

나는 … 어머님의 뜻을 한시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실탄사격장을 떠날 권리가 없습니다. 나도 동무들과 같이 실탄사격에 참가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날도 장군님께서는 첫 사격을 하시어 다시금 명사격술을 보여주시었던 것이다.

잊지 못할 추석날과 어머님의 서거 13돌이 되는 날에도 훈련에 참가하여 수범을 보여주신 장군님의 풍모는 야영생들로 하여금 백두산가문의 대를 순결하게 이어받아 나가시는 위대한 인간, 어머님에 대한 경모심을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혁명의 윤리로 이어가시는 참다운 선군영장의 모습을 뜨겁게 새기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