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업에서나 그에 대한 옳은 관점과 입장부터 바로 가지는 문제는 자못 중요하다. 군사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일찍이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문무를 겸비해야 한다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자신의 수범과 행동으로 대학생들 모두를 군사에 대한 옳은 관점으로 무장시키기 위해 심혈을 바치시었다.

장군님께서 거룩한 자욱을 남기시며 대학생들과 교원들속에 군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심어주신 곳의 하나가 평양시에 있는 장산이다.

해발 백수십m의 나지막한 산인 장산은 평양시의 북서쪽에 솟아있다. 옛날 어느 한 장수가 들어와 무예를 연마했다는 데로부터 혹은 북서방향으로 길게 뻗어있는 산이라는 데로부터 장산이라 불리여지기 시작한 이 산은 오랜 세월 사람들속에 알려지지 않은 우리 나라의 한 평범한 야산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바로 이곳을 찾으신 것은 주체50(1961)년 3월 17일, 아직은 이른 봄이었다.

이 날 장산에서는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의 산지사격훈련이 진행되었다.

당시 대학들에서는 조성된 정세와 관련하여 군사학을 과정안에 넣고 교육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론적으로 배운 것을 실천적으로 익히기 위한 현지훈련을 배합하고 있었다.

장산에서의 산지사격훈련도 그런 과정안의 하나였던 것이다.

전호가에서 내리사격훈련이 한창일 때었다. 일부 대학생들이 사격좌지에 선뜻 엎디기를 꺼려했다. 전날 내린 비에 전호가 질벅하게 젖어 있었던 것이다.

어떤 대학생들은 전호벽에 배를 붙이지 않고 선자세로 조준훈련을 했다.

훈련에 열중하고 계시던 장군님께서는 이런 현상을 보시고 그들에게로 다가가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누구에게라 없이 땅이 질다고 하여 제대로 엎드리지 않고 훈련을 형식적으로 해서야 되겠는 가고 타이르신 다음 자신께서 몸소 그 진땅위에 엎드리시었다.

그러시면서 보병총의 격발기를 힘주어 당기시는 것이었다.

대학생들은 당황하여 어쩔 바를 모르다가 급히 젖은 땅에 배를 붙이고 조준훈련을 다시 시작했다. 그들은 장군님앞에서 죄송감으로 하여 몸둘바를 몰라했다.

사격훈련을 끝내고 장산을 내려올 때였다. 장군님의 옷자락에는 어디라 없이 진흙탕물로 질벅하게 젖어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대학생들의 가슴은 자책감으로 하여 더욱 무거워졌다.

이때 군사교원이 장군님께 옷에 흙탕이 묻어 안됐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없습니다. 산지에서 군사훈련을 한 병사의 옷이 깨끗해서야 되겠습니까.』라고 하시며 군사교원의 마음을 눅잦혀 주시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군사훈련을 마른 땅을 골라가며 할 수야 없지 않는가, 오늘 훈련을 통해 많은 것을 숙련하였다, 젊어서 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 산다는데 학생시절에 군사훈련을 하면서 단련하니 얼마나 좋은가고 말씀하시었다.

그지없이 겸허하고 소탈하신 장군님의 말씀의 깊은 뜻을 새겨 안은 군사교원은 불쑥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그분 곁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리고는 그분께 앞으로 대학을 졸업하시면 정치일군이 되셔야 하겠는데 남들과 꼭같이 군사학강의나 군사훈련에 참가하지 않아도 되시지 않겠는가고 말씀 올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사교원의 이 말에 심중한 표정을 지으시며 말씀하시었다.

『앞으로 정치일군이 될 사람도 군사를 성실히 배워야 합니다.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군사를 알아야 합니다.』

군사중시의 깊은 뜻이 담긴 말씀이었다.

정치는 군사활동과 떼여놓고 생각할 수 없다.

영도자의 투철한 신념과 영도적 자질은 정치와 함께 군사를 통해 나타난다.

그러므로 위대한 정치가가 되려면 걸출한 군사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군사를 알아야 한다고 하신 장군님의 말씀은 실로 현대사회의 정치가들, 노동계급의 수령이 완전무결하게 갖추어야 할 영도적 자질문제와 관련한 가르치심 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혁명을 하자면 누구나 다 군사를 중시하고 군사를 성실히 배워야 한다는 사상을 새롭게 밝혀주는 귀중한 명언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부 대학생들속에서 군사훈련을 형식적으로 대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게 된 원인도 바로 그들이 군사를 중시하지 않고 소홀히 대한데 있다고 일깨워주시었다.

그때 군사를 중시하지 않는 현상은 일부 군사교원들속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그들은 인민군대안에 군사간부들을 키워내는 학교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대학들에서는 대학생들에게 일반군사지식을 소유하도록 하고 그들이 무기나 다룰 줄 알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나니 군사훈련에 대한 대학생들의 형식적인 태도와 관점을 문제시하지 않는 경향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것은 일반사회대학들에서 진행되는 군사교육의 근본목적을 바로 인식하지 못한데서 나온 편향들이었다.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군사를 알아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간직하고 있었더라면 그들속에서 이러한 그릇된 견해와 행동들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군사교원은 이 날 심한 자책감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군사교육의 참목적을 모르고 대학생들의 군사훈련을 실무적으로만 대해오던 자신을 따뜻이 일깨워주시는 장군님을 경건한 마음으로 우러르고 또 우러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윽하여 미제가 우리 나라에서 또다시 전쟁의 불을 지른다면 우리는 손에 무장을 들고 떨쳐 일어나 놈들을 족칠 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원쑤를 격멸하는 전인민적인 항전을 승리에로 이끌어 나가자면 유능한 군사지휘관들이 많아야 하며 혁명의 지휘성원인 간부들이 누구보다도 군사에 밝고 능숙한 군사지휘관이 되어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이어 혁명의 지휘성원들은 군사훈련에 성실히 참가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신 다음 지난날 항일유격대원들은 전투에서는 유능한 군사일군이었으며 군중공작에서는 믿음직한 정치일군이었다는데 대하여 실례를 들어 상세히 말씀해주시었다.

장군님의 말씀 한마디한마디는 군사교원의 가슴속에 깊은 뜻을 새겨주었고 새로운 의지를 가다듬게 하였다.

그만이 아니었다. 장군님과 함께 종합대학교정에서 군사를 배워가는 대학생들의 가슴속에도 군사중시의 사상, 정치가가 되려면 군사를 알아야 한다는 심오한 사상이 깊이 뿌리 내려졌다.

어느 해 가을에 있은 일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야영훈련을 함께 받고 있는 학우들과 같이 아침운동을 하시다가 질문을 받으시었다. 한 학생이 군사훈련에 열심히 참가하시는 장군님께서 앞으로 무관이 되시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불쑥 대학을 마치시고 군사분야로 나가시려는 것이 아닌가고 물었다.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크게 소리내어 웃으시었다.

『그래, 내가 장차 문인이 되겠는가, 무관이 되겠는가 알고 싶단 말이지. 동무들의 생각은 어떻소?』

그러자 어떤 대학생은 장군님께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하시니 정치계통으로 나가실 것이라고 했고 어떤 대학생은 그분께서 군사에 각별한 관심을 돌리시는 것으로 보아 무력부문에 뜻을 두신 것 같다고 하였다.

학생들의 생각을 다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문과 무를 다 중시합니다.

어느 한쪽도 과소하지 않고 다같이 겸비하려고 합니다. 그것도 어느 정도가 아니라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다 알고 그것을 초월하여 더 깊이 파고들어보자고 합니다.』

그러시면서 정치가는 문무를 겸비하여야 한다고, 이 말의 참뜻은 정치가가 군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금 제국주의자들이 사회주의나라들을 압살하려고 끊임없이 무력을 증강하고 있고 또 기회가 있으면 전쟁을 일으키려고 책동하고 있는 조건에서 정치가는 반드시 문무를 겸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리고 군사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에 와서는 군사를 알아도 깊이 알고 그에 완전히 정통해야 한다시며 말씀을 이으시었다.

『군사를 모르는 정치가는 진짜 정치가가 아닙니다. 

현대정치가의 권위와 역할, 그의 실력은 비상한 군사적지략과 담력, 뛰어난 영군술에 있습니다.』

잠시 동안을 두시었던 장군님께서는 결연한 어조로 말씀하시었다.

『나는 군사제일주의를 주장합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총대를 중시하고 언제나 총대를 제일시한다는 것을 숨기지 않습니다. 

나는 결코 평화주의자가 아니며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무모한 칼부림에 끝까지 총대로 맞설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가 아니며 백두산의 아들이 아닙니다.』

순간 대학생들은 모두가 장군님께서 앞으로 문무를 겸비한 장군형의 정치가가 되실 것이라는 확신에 넘치었다.

한 세대에 포악한 두 제국주의를 타승하며 간고하고 시련에 찬 길을 걸어온 우리 혁명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정치와 군사를 겸비한 지휘성원들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혁명과 우리 시대의 이 절박한 요구를 깊이 헤아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누구나 군사를 중시하고 군사를 성실히 배워 문무를 겸비하며 또 그렇게 준비된 주체적인 혁명역량만이 조선혁명의 승리를 앞당길 수 있다는 드팀없는 신념과 철의 의지를 교원, 대학생들의 가슴마다에 깊이 심어주셨다.

 


 군사학분야에 능통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군사과학분야에서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이 다박다식하시다.

마르크스와 함께 노동계급의 혁명위업의 시원을 열어놓은 엥겔스도 군사학연구에 커다란 관심을 돌려왔다. 그는 군사와 관련한 많은 논문도 발표했다. 그래서 마르크스와 그의 전우들은 군사에 조예가 깊고 군사논문을 많이 쓴 엥겔스에게 「장군」이라는 별명까지 달아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있다.

동서고금에 군사와 군사학에 견식이 있는 정치가, 군사가가 적지 않았다. 그들은 대개가 성인이 되어 군사에 종사하던 시기에, 그것도 군사의 어느 한 분야에 정통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군사의 모든 부문에서 모르시는 것이 없이 달통하셨고 군사과학의 원리로부터 그 응용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군사지성과 군사실천의 최정상에 오르시었다.

군사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사격술에 대한그분의 해박한 견식과 응용능력을 놓고 보자.

주체50(1961)년 2월 어느날 대학에서 있은 군사학강의시간에 명중사격의 기본요소에 대하여 취급할 때였다.

강의가 끝나자 한 학생이 문득 총을 쏠 때 언제 명중사격의 기본요소에 대해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쏘겠는가, 그런 것을 몰라도 과녁을 맞히면 된다고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학생의 말을 들으시고 신중한 안색을 지으시며 말씀하시었다.

『사격은 과학입니다. 우리가 다루는 무기들은 과학적 원리에 기초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격을 잘하자면 과학적인 사격이론과 방법에 기초하여 사격을 하여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머리를 떼시고 저격무기사격에서 명중사격의 기본요소를 잘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에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저격무기사격은 포무기사격과는 달리 사수가 직접 총을 잡고 쏘기 때문에 사격할 때 몸가짐과 동작 하나하나가 사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아무리 사격제원을 정확히 구하고 목표를 겨누었다 하더라도 사수가 무기유지나 격발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발사순간에 총이 움직이면 목표를 명중시킬 수 없습니다.』

계속하여 그분께서는 백발백중의 사격술을 가지자면 명중사격동작과 조법에 완전히 정통해야 하며 명중사격동작과 조법에 정통하려면 명중사격의 기본요소에 대하여 원리적으로 파악할 뿐 아니라 거기에 숙련되어야 한다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정확한 자세, 무기유지, 조준, 숨조절, 격발은 명중사격의 기본요소라고 가르치시었다.

참으로 사격을 잘하기 위한 과학적 이치와 사격수의 절대적인 행동순차를 밝힌 이를 데 없이 현명한 말씀이었다.

그래서 장군님의 이 유명한 명제는 훗날 인민군대의 사격교범에서 명중사격의 기본요소에 대한 정의로 정식화되어 한페이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어 명중사격의 기본요소를 지키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었다.

명중사격을 하자면 먼저 사격자세를 정확히 가져야 하며 무기유지를 잘하여야 한다, 사격자세와 무기유지에서 기본은 몸가짐을 안정하게 하며 발사순간까지 총이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명중사격을 하자면 또한 조준을 정확히 하여야 한다, 조준에서 기본은 시준이다, 시준에서 약간의 오차가 생겨도 탄알은 조준점으로부터 크게 편차된다, 조준은 먼저 시준을 정확히 하고 그것을 조준점과 일치시키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 좋다, 명중사격에서 숨조절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숨조절을 잘하지 못하면 무기의 움직임이 심해지고 육체적긴장성이 조성되어 방아쇠를 원활하게 당길 수 없다, 숨조절에서 기본은 큰 숨을 잘 조절하는 것이다, 명중사격의 기본요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격발을 잘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격자세가 좋고 조준과 숨조절을 잘하였다 하더라도 방아쇠를 제대로 당기지 못하면 목표를 명중시킬 수 없다, 격발은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을 균등하게 주면서 슬며시 당기는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 방아쇠를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격철이 떨어질 수 있도록 슬며시 당겨야 총이 움직이지 않는다, 방아쇠를 고르롭게 슬며시 당기자면 방아쇠에 건 손가락을 일정한 속도로 자기앞으로 곧게 당겨야 한다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는 학생들은 시종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학생들은 물론 군사교원들도 사격에 대한 장군님의 해박한 지식과 과학적 묘리, 실전적인 경험앞에서 거듭 경탄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시기 조국해방전쟁에 참가하였던 제대군인 대학생들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그분께서 언제 그렇듯 깊은 과학적인 사격원리와 묘리를 터득하실 수 있었겠는가?

수수께끼와 같은 이런 의문은 후일 한 항일혁명투사의 이야기를 통해서야 풀릴 수 있었다.

『항일의 혈전장에서 탄생하신 그분은 인생의 첫출발도, 성장도 놀이감이 아니라 백두산총대와 함께 하신 세상에 드문 분이십니다. 총을 떼여놓고야 어떻게 그분의 군사적천재성과 명석함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허두를 뗀 투사는 장군님께서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익히신 것이 총다루기와 총쏘는 법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빨치산의 명사수이신 김정숙어머님으로부터 사격조법과 사격동작을 배우시던 이야기며 전쟁시기 최고사령부에 계실 때 작전대곁에서 무기분해결합과 사격에 완전히 정통하신 이야기까지 곁들이었다.

이로써 대학생들의 의문이 풀렸던 것이다.

참으로 장군님이시야말로 군사과학과 군사이론의 비범한 대가이심을 누구나 절감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 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 사격에 대한 과학적 원리는그분께서 지니신 무한대한 군사지식과 묘리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다.

장군님의 군사지식과 예지가 무수한 성좌처럼 온 우주에 빛을 뿌릴 그 날은 바야흐로 다가오고 있었다.

 

   




화창한 봄날, 혁명의 무기를 잡으신 장군님의 모습은 청년영장의 모습그대로 이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몸소 열병식대오에도 참가하시어 혁명의 총대를 억세게 틀어쥔 청년장군으로서의 품격을 남김없이 보여주시었다.

주체51(1962)년이었다.

이해는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인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탄생 50돌과 함께 조선인민혁명군창건 30돌을 맞는 뜻깊은 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형의 혁명무력을 창건하신 때로부터 30돌이 되는 뜻깊은 4월 25일을 기념하여 평양에서는 성대한 열병식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 열병식은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이룩하신 혁명전통을 빛나게 계승발전시키며 그분의 두리에 굳게 뭉친 당과 군대, 인민의 통일단결과 불패의 힘을 내외에 널리 시위하는 중요한 정치행사였다.

장군님께서 바로 이 열병식행사에 참가하시었던  것이다.

그 무렵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매우 분망한 나날을 보내고 계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미제와 현대수정주의자들의 책동으로 긴장해지는 정세의 요구에 맞게 인민군대를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 깊은 주목을 돌리시고 위대한 선군영도에 심혈을 기울이시었다.

그분께서는 정초부터 숫눈길을 헤치시고 인민군부대들을 연이어 찾으시었다. 그런가 하면 대학생들속에서 미제와 현대수정주의자들의 책동을 낱낱이 까밝히고 조선노동당의 원칙적 입장을 천명하는 담화들을 연이어 발표하시었다.

그리고 한편의 군사교육영화를 보시고도 항일무장투쟁과 조국해방전쟁의 경험에 기초하여 군사교육영화를 더 많이 만들 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기도 하시었다.

다른 한편 대학생들을 당의 혁명전통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며 그들이 조국해방전쟁시기 인민군용사들이 발휘한 불굴의 혁명정신을 따라 배우도록 하기 위한 사업도 정력적으로 진행하시었다.

바로 이러한 시기 조선인민혁명군창건 30돌기념 열병식이 진행되게 된 것은 군대와 인민의 견결한 반제반미적 입장과 사회주의전취물을 철옹성같이 보위하려는 혁명적 각오와 의지를 시위하는데서 큰 의의를 가지는 것이었다.

훈련생들은 언제나 바쁘신 그분을 염려하여 마감단계에 진행될 종합훈련에만 참가해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렸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동무들과 함께 처음부터 대열훈련을 하겠다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처음부터 훈련에 참가하여 대열동작을 잘 익혀야 열병행진을 성과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고, 일상적으로 훈련하지 않고 종합훈련에만 참가하여서는 대열동작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동무들과 대열훈련을 같이하면 내가 동무들을 도와줄 수도 있고 동무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고, 우리모두 서로 도와 대열훈련을 잘하여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조선인민혁명군창건 30돌기념 열병행진을 성과적으로 보장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었다.

언제나 자신을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는 전사의 위치에 세우시고 혁명대오의 제1열에서 수령님의 사열을 받는 것을 혁명전사의 가장 큰 영광과 행복으로 여기시는 장군님이시었다.

열병행진훈련은 처음부터 강도가 높았다. 점차 훈련생들속에서는 힘들다고 하면서 대열동작을 규정대로 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훈련지도성원들이 요구성을 높이도록 하시는 한편 훈련생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고 자신의 실천적모범으로 난관을 극복하도록 이끄시었다.

어느날 점심때였다.

한 훈련생이 오후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운동장에 나와 혼자 행진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로 말하면 훈련총화에서 개별동작이 서툴다고 지적을 받은 동무였다.

장군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훈련생에게로 다가가시었다.

『열성이 대단하구만. 어디 한번 해보시오.』

장군님께서는 훈련생의 등을 가볍게 밀어주시었다.

그는 온몸에 긴장을 느끼며 앞으로 나섰다.

『앞으로 갓. 하나 둘, 하나 둘…』

장군님께서 박력있게 구령을 치셨다. 훈련생은 그 구령소리에 맞추어 발걸음을 힘있게 내디디었다.

넓은 운동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구령을 주시던 장군님께서는 문득 그를 멈춰 세우시었다. 그러시고는 총을 메고 행진할 때에는 가슴을 쭉 펴고 기운차게 활개를 저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친히 모범동작까지 보여주시었다.

몇번씩이나 그렇게 하시는 장군님의 이마에는 어느덧 땀이 방울방울 맺혔다.

훈련생이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어 쉬실 것을 간절히 말씀드렸다.그분께서는 일없다고, 동무가 땀을 흘리며 훈련하는 것을 보니 힘이 솟는다고 하시면서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시고 하나하나 개별동작을 완성시켜 나가시었다.

운동장으로 나오던 훈련생들은 모두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뜨거워지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장군님의 우렁우렁하신 구령에 맞추어 대열동작을 해 나가는 훈련생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후훈련시간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퍼그나 있었다. 하지만 장군님의 구령소리에 맞추어 나가는 훈련대열이 온 운동장을 메꾸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종합훈련이 한창인 어느날에는 열병행진에서 맨 앞줄에 선 동무들의 책임이 매우 크다고 하시면서 그들이 어떻게 행진하여 나가는가 하는데 따라 종대의 행진이 좌우된다고, 맨 앞줄에 선 동무들은 발걸음을 잘 조절하여 씩씩하게 나가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었다.

열병행진훈련의 나날 훈련생들과 대학의 교직원, 학생들은 언제나 대오의 앞장에 서시어 수범으로 총쥔 병사들을 충성의 한길로 이끌어가시는 장군님의 모습에서 천만병사들을 키우시는 청년장군의 늠름한 모습과 기질을 똑똑히 보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열병행진훈련의 나날 혁명의 무기인 총을 더없이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모범도 보여주시었다.

마침내 열병식훈련생들에게 무기가 수여되었다.

총가목을 가슴에 틀어쥔 훈련생들의 기쁨은 이를 데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훈련생들이 수여받은 총을 쓸어보시며 깊은 생각에 잠기시었다.

한자루한자루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깃들어있는 혁명의 총대인가!

수령님께서 아버님의 유산인 두 자루의 권총으로 항일대전을 시작하신 이래 수많은 투사들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치면서 마련한 혁명의 무기였다. 총 한자루한자루에는 혁명선열들의 뜨거운 피가 스며있었고 그들의 불타는 애국심이 깃들어있었다.

항일혁명투사들은 바로 그런 총을 틀어쥐고 강도 일제를 쳐부숴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다. 그 총대에서 정권도 나왔고 전쟁이라는 준엄한 시련을 이겨낸 승리도 가져왔다. 그리고 인민들의 행복의 요람인 사회주의조국도 일떠세웠다.

실로 당과 혁명, 조국과 민족, 인민의 운명이 실려있는 혁명의 귀중한 무기였다.

그러기에 장군님께서는 열병행진훈련기간 훈련생들 누구나가 총을 자기의 눈동자처럼 애호관리하도록 따뜻이 일깨워주고 이끌어주시었다.

어느날 훈련의 휴식참이었다.

종대지휘관이 『눕혀 총』 구령을 주고 휴식을 선포하자 한 훈련생이 부주의로 총을 맥없이 콘크리트바닥에 놓는 바람에 그만 총가목에 흠집이 생기게 되었다.

훈련생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이때 그에게로 다가가신 장군님께서는 흠집이 생긴 총가목을 쓸어보시며 무기를 그렇게 다루어서야 되겠는가고 타이르시었다.

훈련생은 자책감에 머리를 수그린 채 아무 말도 못했다.

언젠가도 장군님께서는 한 훈련생이 걸어총자세로 행진훈련을 하다가 총탁을 땅바닥에 부딪치게 한적이 있어 무기를 규정과 교범의 요구대로 관리할 데 대하여 간곡히 말씀하신바 있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이런 현상이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가. 그것은 자기 손에 틀어쥔 무기가 어떤 총인가 하는 인식을 바로 가지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고 그분께서는 보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주변에 둘러앉은 훈련생들에게 항일혁명투사들은 혁명동지들의 피와 생명으로 바꾼 무기를 자기의 눈동자와 같이 애호하고 알뜰히 거두었다고 하시면서 모든 동무들이 혁명의 무기, 계급의 무기에 대하여 인식을 바로 가지고 항일혁명선열들의 모범을 본받아 무기를 애호하고 소중히 다룰 데 대하여 간곡히 당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하루열병훈련을 마치고 무기소제를 할 때에도 늘 무기관리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었다.

장군님께서는 항일혁명투사들이 무기애호관리에서 발휘한 모범을 따라 배우는 교양사업을 잘 조직하도록 하시는 한편 자신의 실천적 모범으로 훈련생들을 이끄시었다.

어느날 아침, 훈련생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을 뵙는 순간 큰 충격속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장군님께서 메고 나오신 총끈에 『항일유격대원들처럼 무기를 애호하자!』라고 쓴 구호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첫눈에 잘 안겨오도록 붉은색바탕에 흰색으로 쓴 이 구호와 함께 총탁판에는 보위색천으로 만든 씌우개까지 씌워져 있었다.

훈련생들은 저마다 장군님께로 달려와 총끈에 써붙여놓은 구호며 총가목씌우개를 쓸어보며 감탄하였다.

하루종일 훈련을 끝내고 돌아가시어 밤깊도록 장군님께서 손수 쓰시고 만드신 구호와 총가목씌우개였던 것이다.

장군님께서는 훈련생들에게 별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닌데 동무들의 마음에 든다면 오늘중으로 총끈에 구호도 써붙이고 총가목씌우개도 만들자고 하시면서 열병행진훈련기간에 무기를 아끼고 사랑하는 기풍이 온 집단안에 차 넘치게 하자고 뜨겁게 호소하시었다.

이때로부터 장군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숭고한 모범은 전체 열병종대에 널리 일반화되게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과 귀중한 모범을 가슴에 새긴 훈련생들은 총대를 자기 생명처럼 아끼고 귀중히 여기면서 그것을 더욱 억세게 틀어 잡고 마감훈련을 다그쳐 나갔다.

주체51(1962)년 4월 25일, 혁명무력의 불패의 위력을 떨치게 될 역사의 날이 밝아왔다.

이른 새벽 모임장소에 나오신 장군님께서는 열병식참가성원들의 도착정형도 알아보시며 그쯘하게 차려 입은 대원들의 차림새를 대견하게 둘러보시었다.

잠시 후이면 이들의 늠름한 모습을 위대한 수령님께 보여드릴 수 있다, 수령님께서 혁명의 무기를 억세게 틀어 잡고 보무당당히 행진해 나가는 열병대오의 씩씩한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바로 이런 흥분속에 지난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신 장군님이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설레이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있는 대원들앞에서 열병식이 가지는 의의에 대하여 다시금 강조하시었다. 그러시고는 그들의 무기상태며 복장상태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보살펴주시었다.

그 자애깊으신 모습은 안도의 수림속에서 갓 탄생한 항일유격대의 첫 대오를 강반석어머님께 보여드리시던 30년전의 20대 젊으신 수령님의 영상을 그대로 방불케 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열병행진의 시각이 다가왔다.

이 엄숙한 시각, 장군님께서는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열병종대 대원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열을 받는 것은 우리 혁명전사들의 최대의 영광이며 가장 큰 행복입니다. 우리가 수령님의 사열을 받는 것은 조선혁명을 떠메고 나갈 혁명의 계승자로서의 영예를 빛내이며 수령님앞에서 혁명의 무기, 계급의 무기를 튼튼히 틀어쥐고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한 목숨 다 바쳐 투쟁할 충성의 맹세를 엄숙히 다지는 것으로 됩니다.』

총대를 억세게 틀어쥔 혁명의 계승자들을 충성의 열병행진에로 부르시는 장군님의 말씀은 대원들의 심장을 세차게 두드렸다.

장중한 주악에 맞추어 열병대오가 지축을 울리며 나아갈 때었다.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을 우러러 목청껏 만세를 부르시며 받들어 총으로 경건히 경례를 드리시었다.

받들어 총!

그것은 수령님의 선군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 청년장군이 드리는 역사의 경례였다.

수령님께서는 열병대열을 향해 손을 드시며 답례를 보내고 또 보내시었다.

장군님께서도 수령님의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었다. 섬광처럼 번쩍이는 그분의 안광, 그 눈굽에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함께 뜨거운 이슬이 맺혔다.

장군님의 온몸에 무적장군의 멸적의 맹세가 흘러 넘쳤다. 수령님,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은 염려마십시오라는 의지와 기백이 약동하는 듯 했다.

『처억, 처억…』 장군님께서는 광장을 들었다 놓을 듯이 발구름을 울리시며 앞으로 나아가시었다.…

바로 그 날, 장군님께서는 20대의 첫 봄을 맞으신 의기양양한 청춘이시었다.

20대!…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시절이 청춘시절이라면 그중에서도 20대는 제일 귀중한 시절이다. 청춘이 꽃이라면 20대는 꽃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호함진 꽃이며 청춘이 파도라면 20대는 집채같은 바위도 삼켜버리는 장엄한 노도이다.

장군님께서는 가장 아름답고 힘있는 낱말들로써도 다 형언할 수 없는 20대 청춘기의 늠름하신 청년장군이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