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에서 6.15자주통일시대가 안아 온 또 하나의 자랑 찬 성과는 북과 남사이에 내왕과 접촉이 활발히 진행된 것이다.

민족의 화해와 단합은 온 민족이 공동의 목적을 위하여 마음을 합치고 힘을 합쳐 나갈 때라야 비로소 실현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과 남의 동포들사이에 접촉과 내왕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요구로 나선다.

자유로운 접촉과 내왕은 오랜 세월을 서로 갈라져 남남처럼 지내며 살아 오던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필수적인 과제이다.

그러나 6.15공동선언이 채택되기 이전 시기 남조선에서는 북을 방문하였거나 해외에서 북녘사람들과 마주 앉아 통일논의를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보안법」에 걸어 처형하는 것과 같은 만행이 서슴없이 감행되어 왔다. 70고령의 문익환목사를 비롯한 「방북인사」들과 수많은 통일운동가들이 바로 그 희생물이 되어 감옥에 갇히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는 데서 실로 막대한 저애로 되었으며 통일로 향한 온 겨레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엄중한 훗과를 초래하였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동포들사이의 내왕과 접촉, 대화와 연대연합을 널리 실현하는 것은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기 위한 중요한 방도의 하나입니다. 우리 민족내부에 비록 사상과 이념, 정견과 신앙에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동포들이 자유로이 내왕하고 접촉하며 대화를 하고 연대연합을 강화해 나가면 서로의 이해와 신뢰를 두터이 하고 민족공동의 목적을 위하여 뜻과 힘을 합칠 수 있습니다.』

6.15시대에 와서 북과 남사이에는 자유로운 내왕과 접촉을 실현할 수 있는 넓은 길이 열리었다.

지난 시기의 내왕과 접촉은 어디까지나 소수 특정한 계급계층에 국한되어 있었고 극히 드물게 진행되군 하였다.

그러나 6.15자주통일시대에 들어와 북과 남사이에는 당국자들만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 지식인, 예술인, 종교인을 비롯한 각계각층이 서로 오고 가며 자유롭게 접촉함으로써 민족내부에 존재하는 오해와 불신을 가시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6.15시대의 내왕과 접촉은 지난 시기와는 다른 일련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선 북은 남으로, 남은 북으로 서로 찾아오고 찾아가며 자유롭게 이루어진 것이다.

금강산에서의 조선직업총동맹대표들과 남조선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대표들사이의 실무협의, 북남노동자대표들의 평양상봉, 남조선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대표단과 남조선의 제주도민방문단의 평양방문, 남조선의 민간단체인 「남북어린이 어깨동무」방문단의 평양방문, 「이웃사랑회」방문단의 평양방문, 북남대학생들의 상봉모임, 북과 남의 종교인들의 상봉 등을 비롯한 수많은 접촉과 내왕이 평양과 서울, 금강산 등에서 자유롭게 이루어 졌다.

6.15이후 주체93(2004)년 5월말까지의 기간에 북녘에서 남녘을 방문한 인원은 3,089명에 이른다.

6.15전까지의 10년간 그 수가 637명인 데 비해보면 근 5배나 늘어난 셈이다. 같은 기간에 남쪽에서 북쪽을 다녀간 인원수는 금강산관광객(65만여명)을 빼고 5만 514명으로서 4.5배 늘어난 것으로 된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북과 남사이의 내왕과 접촉이 얼마나 활발하게 진행되었는가를 충분히 실감하게 한다.

다음으로 6.15자주통일시대의 내왕과 접촉은 적은 인원으로 제한되어 있던 지난 시기와는 달리 대규모의 인원이 한꺼번에 오고 가며 이루어 졌다는 데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이전 같으면 북과 남의 각계층을 포함한 인원이 대규모로 서로 북과 남을 내왕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열어 주신 6.15자주통일시대는 북과 남, 해외의 우리 겨레모두가 한꺼번에 수십, 수백명씩 내왕하면서 서로 접촉하는 화해와 단합의 새로운 장을 펼쳐 놓았다.

오늘 북과 남을 오가는 사람은 한해에만도 10만여명에 달하고 있다.

6.15공동선언의 채택발표를 기념하는 민족통일대축전들과 8.15범민족대회를 비롯한 여러 대회들, 상봉모임들과 토론회 등은 모두 대규모의 인원이 북과 남을 오가며 공동으로 진행한 통일행사들이었다.

오랜 세월 격페상태에 있던 북남관계에서 일어난 이와 같은 획기적 사변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힘있게 추동하였다.

이것은 6.15시대에 이룩된 가장 중요한 성과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북과 남사이의 내왕과 접촉이 전민족적 범위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그것이 사회전반분야에로 널리 확대됨으로써 민족내부에는 서로 이해하고 신뢰하는 분위기가 서서히 자리잡게 되었고 우리 민족끼리 공조를 이룩하기 위한 투쟁은 보다 활력있게 진척될 수 있었다.

특히 각계각층의 남녘동포들의 여러 차례에 걸친 평양방문은 남녘겨레들로 하여금 민족의 우수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개화발전시키고 6.15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하기 위하여 힘차게 투쟁해 나가고 있는 공화국북반부인민들의 성의있는 노력에 대하여 더 잘 알게 하였다.

실례로 주체89(2000)년 8월 5일부터 12일까지의 기간에 진행된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의 평양방문은 남조선의 언론인들에게 6.15북남공동선언을 이행하는 데서 언론인들의 임무와 역할을 더욱 높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깊이 심어주는 계기로 되었다.  방문기간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은 민족의 성산 백두산과 백두산밀영고향집,  삼지연의 혁명전적지, 사적지들을 참관하였으며 묘향산과 단군릉, 동명왕릉 등 북녘의 여러 명승지들을 돌아 보았고 주요출판보도기관들도 방문하였다.

그리고 북의 출판보도부문의 대표들과 마주 앉아 6.15북남공동선언의 채택이야말로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이룩하는 데서 획기적인 계기로 되었다고 하면서 북과 남이 민족의 단합에 장애가 되는 비방중상을 중지하며 서로 이해와 협력을 강화하면서 신뢰를 두터이 쌓아 가자는 굳은 결의를 공동합의문에 담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을 몸소 만나 주시고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는 데서 언론이 수행하여야 할 사명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평양방문을 통하여 남조선의 언론사대표단은 통일을 갈망하는 온 겨레의 마음은 하나임을 다시금 절감하였고 6.15북남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해 나가는 데서 언론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 나갈 의지를 가다듬었다.

이와 같이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유로운 내왕과 접촉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활로가 열린 6.15자주통일시대의 자랑찬 현실이다. 하기에 남조선의  「연합뉴스」,  「KBS」,  「MBC」, 「CBS 」 등 주요통신방송들은 나날이 활발해 지는 북과 남의 자유로운 내왕과 접촉을 널리 소개하면서 이것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는 데서 획기적인 사변으로 된다고 보도하였다.

6.15자주통일시대에 이르러 북과 남의 자유로운 내왕과 접촉을 통하여 이룩된 이와 같은 성과들은 전적으로 6.15공동선언의 성과적 이행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불면불휴의 노고와 탁월하고 세련된 영도가 낳은 고귀한 결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