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6.15자주통일시대이다.

새 세기 자주통일시대는 6.15공동선언의 기치밑에 조국통일운동을 힘있게 추동해 가는  「우리 민족끼리 」의 시대이다.

바야흐로 통일의 새 시대의 문은 열렸다.

그것은 조국과 민족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화신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철석의 통일의지와 애국애족의 결단에 의하여 마련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 중엽 우리 조국과 인민앞에는 형언할 수 없는 엄혹한 시련과 난관이 닥쳐왔다.

너무나도 뜻밖에 당한 민족최대의 국상, 때를 만났다는 식으로 더욱더 가증되는 제국주의자들의 반공화국압살공세, 사회주의시장의 붕괴로 인한 경제적 난관에 자연피해까지 겹치었다.

제국주의반동들은 공화국의 그 무슨  「붕괴설」을 떠들면서 제나름의 억측들을 하고 있었고 세계는 그처럼 준엄한 시련속에서 조선의 사회주의가 과연 지탱해 낼 수 있겠는가에 대하여 우려하고 있었다.

금시 열려지는가 싶던 통일의 길에도 무거운 차단봉이 내려진 엄혹한 시기였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경애하는 장군님의 심중에 더욱 깊이 간직된 것은 어버이수령님의  유산인  사회주의제도를  수호하고   나라의  통일을  기어이  이룩하시려는  신념과  의지였다.   그것은   곧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시대적 사명감으로부터 출발한 애국애족의 결심이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심혈을 바치신 것도 조국통일문제였다.

조국이 통일되면 10년은 더 젊어질 것 같다고 하시고 통일이 되면 잠도 푹 자고 마음껏 휴식도 하겠다고 하신 수령님이시었다.

나라가 분열된 후 어버이수령님의 생애는 통일위업에 바치신 위대한 애국자의 한생이었다.

조국통일을 위해 그처럼 안타까워하시고 심혈을 기울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통일의 그 날을 보시지 못하고 너무도 일찍이 서거하시었다.

북남최고위급회담개최준비로 조국통일의 앞길에 여명이 밝아오는 때에 어버이수령님께서 갑자기 서거하시었으니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슴은 얼마나 쓰리고 아프셨으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최대의 국상으로 산천초목도 비분에 떨던 그 시각에 온 겨레를 어버이수령님의 통일유훈관철에 억척같이 일떠세우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선군정치로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승리에로 이끌어 나가시는 그 어려운 시련속에서도 자나깨나 잊지 않으신 것은 어버이수령님의 통일유훈이었고 거듭 다짐하시는 맹세도 통일유훈관철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우리는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필생의 뜻이었고 민족의 사활적 요구인 조국통일위업을 반드시 성취하여야 한다. 조국통일은 우리에게 있어서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최대의 민족적 과업이다. 만난을 무릅쓰고 조국을 통일하여 민족분열의 비극의 역사, 치욕의 역사를 끝장 내야 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곁을 떠나신 이후 불변의 신념과 의지로 조국통일의 새 국면을 열어 놓으시기 위하여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활동을 벌이시었다.

어버이수령님 서거 100일 중앙추모대회가 진행된 주체83(1994)년 10월 16일이었다.

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통일의지를 엄숙히 천명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위업을 계승완성하며 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는데서 조국통일을 이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조국통일을 이룩하는 것은 수령님의 유훈이며 온 민족이 통일된 조국에서 화목하게 잘 살도록 하시려는 것이 수령님의 뜻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수령님께서 그처럼 바라시던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기어이 성취하여 수령님의 생전의 뜻을 꽃피워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과업을 밝혀주시면서 조국통일의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나날에 지금단계에서는 잘 살겠다는 생각보다도 조국통일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앞세워야 하며 모든 것을 조국통일에로 지향시켜야 한다는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그리고 조국통일위업을 앞당겨 수행하기 위하여 더 긴장하게, 더 책임적으로 더 많이 일해야 할 비장한 결심을 가지고 그 준비를 철저히 갖추어야 하며 모든 고난과   시련도 뚫고 나가야 한다는 간곡한 가르치심도 주시었다.

만난을 무릅쓰고 모든 것을 다 바쳐 어버이수령님의 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결심과 의지는 이렇게 절절하고 확고부동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충성의 의지, 절대불변의 통일의지는 민족의 어버이를 잃고 몸부림치던 7천만겨레에게 새 힘과 용기를 안겨주고 온 강산에 통일의 열풍을 안아온 위대한 힘의 원천으로, 우리 겨레의 심장속깊이 뿌리 내린 억센 마음의 기둥으로 되었다.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억년 아물 수 없는 슬픔의 상처를 남긴 피눈물의 그 해에도 8.15범민족대회를 계속하게 하시어 온 겨레가 통일에 대한 희망과 신심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주신 분도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토록 바라시던 통일을 위해 김정일이 있다, 7천만에게 통일을 안겨주지 못하면 김정일이 아니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 당할 자 세상에 없다, 바로 이것이 혁명의 천만리길에서 억척같이 다지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의지이고 신념이며 배짱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지니시고 조국통일영도의 자욱자욱을 새겨오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철석의 통일신념과 의지는 역사의 땅 판문점에 어버이수령님의 통일친필비를 건립하도록 하신 사실에도, 친필비를 찾으시었던 그 잊지 못할 나날의 이야기에도 뜨겁게 어려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4(1995)년 5월 어느날 조국해방 50돌에 즈음하여 판문점에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각에   조국통일관계문건을 보아 주시고 그 문건에 남기신 어버이수령님의 친필을 천연화강석에 새겨 역사와 민족앞에 길이 전해갈 구상을 펼치시었다.

그것은 민족의 영원한 태양이신 어버이수령님의 조국통일영도업적을 길이 전하며 조국과 민족을 위한 그 위대한 영도가 계속되고 있음을 시대와 역사앞에 펼쳐 보이는 엄숙한 선언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엄혹했던 시련의 해 주체85(1996)년도 저물어가고 있던 11월 24일 어버이수령님의 친필비가 건립된 판문점에 대한 현지시찰의 길에 오르시었다.

이른 새벽 판문점차단소에 도착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은 우리 나라의 다른 전연지대들과 같지 않다고, 다른 전연지대는 4km의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적과 대치되어 있지만 여기 판문점은 중앙분리선을 사이에 두고 직접 맞붙어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판문점에 근무하는 군인들과 일꾼들은 최전연의 최전방에서 싸우는 전사들이라고 볼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여기를 찾아오는 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에만은 나가시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말씀드리는 일꾼들에게 나는  빨치산의  아들입니다,  나는 백두산에서 태어나 항일혁명의 총성을 들으며 자라났고 부모님을 따라 해방전의 불비속에서 혁명적 신념을 굳혔으며 조국해방전쟁의 포연탄우속에서 영장의 의지와 담력을 키웠습니다, 우리의 충실한 전사들이 있는 곳이라면 나는 어디에라도 가야 하고 또 가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분의 철의 의지와 비범한 담력에 접한 일꾼들은 끝없는 격정에 휩싸여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차단소를 떠나 판문점을 향하시자 방금전까지 청청하던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판문점주변이 한치도 가려볼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서서히 뒤덮였다.

하늘도 애국애족의 일념으로 판문점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신변을 보호하는 듯 한 참으로 신기한 자연현상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안개는 판문점일대를 더욱 짙게 감싸 안았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신 차는 어느덧 어버이수령님의 친필비앞에서 멈춰 섰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친필비앞으로 걸음을 옮기시었다.

친필비앞에 이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래도록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뜻깊은 친필비를 바라보시며  일꾼들에게  나는  지난해  조국해방  50돌을  계기로  진행한 민족통일대축전때  여기 판문점에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를 세우도록 하였다고 하시면서 친필비를 좋은 자리에 잘 세웠다고 만족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어버이수령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순간에 친필비준하여 주신 역사적 문건이 바로 조국통일과 관련된 전략문건이었다고, 수령님께서는 그때도 밤을 지새우시며 두툼한 그 문건을 다 보아 주시고 표지에 활달하신 필체로 친히 존함을  쓰시고 그 아래에 『1994. 7. 7.』이라는 날자를 써주시었다고 뜨겁게 회고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비에 새겨진 수령님의 친필은 불과 아홉글자밖에 되지 않지만 여기에 담겨진 뜻은 수천수만자의 비문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거룩하고 위대한 것이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었다.

판문각에서 일꾼들과 만나 담화를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친필비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어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슴배인 가슴 뜨거운 회억의 말씀을 또다시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친필비앞에 이렇게 서니 생각되는 것이 많다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필을 남기시던 때는 북남최고위급회담을 보름남짓하게 앞두고 있던 때였다고, 북남최고위급회담은 우리 수령님께서 친히 발기하시고 마련하신 중대한 회담이고 민족분단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역사적인 회담이었다고,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은 이 회담에 커다란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뜻깊은 그 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통일의 열기로 끓어 번졌으며 세계의 이목은 북남최고위급회담이  열리게  될  평양에로  집중되고  있었다고,   그러한  때에 어버이수령님께서 갑자기 서거하시었으니 그 애석함과 절통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고, 7천만겨레가 수령님을 조국통일의 구성으로, 온 민족의 위대한 영수로, 어버이로 그처럼 믿고 의지해 왔는데 수령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비통스럽고 애절한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고 추억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수령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이 역사적인 친필에는 수령님의 강의한 통일의지와 신념이 함축되어 있고 조국통일에 대한 수령님의 노고와 확신이 담겨 있다고 하시면서 수령님께서는 일찍이 자신의 대에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지 못하면 나의 대에는 꼭 조국통일위업을 완성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였다고, 나는 수령님의 유훈대로 우리 시대에 반드시 조국을 통일하려고 한다고, 수령님께서 우리 인민들에게 줄 가장 큰 선물은 조국통일이라고 하시었는데 나는 조국을 통일하고 통일된 조국을 우리 인민들에게 반드시 선물로 주려고 한다고 근엄하게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은 7천만겨레를 향하여 하신 엄숙한 통일선언이었다.

조국통일위업실현을 위하여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는 노고와 심혈을  숭엄한  감동속에  전해  주는   만년대계의   통일친필비가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충성심과 특출한 통일의지에 받들려 높이 솟아 빛남으로써 판문점은 분열의 상징으로부터 통일의 상징으로 되었다.

정녕 판문점에 세워진 친필비는 조국통일의 길에 한생을 바치신 어버이수령님의 위훈의 탑인 동시에 수령님의 통일유훈관철의 길에 쌓아 올리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업적 기념비이기도 하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판문점시찰은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필승의 신심과 의지를 안겨 주었다.

남조선의 신문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판문점시찰소식을 널리 보도하면서 남북지도자로서는 처음있는 일이라고 그 의의를 강조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조국통일운동은 침체상태에서 벗어나 점차 활발해 졌으며 1990년대말에 이르러서는 나라가 분열된 이후 처음 북과 남, 해외의 3자연대가 폭넓게 실현되어 통일운동의 범민족적 성격이 비상히 강화되었다. 통일애국세력과 반통일세력사이의 역량관계는 조국통일운동에 더욱 유리하게 전변되었다.

세기와 세기가 바뀌는 역사의 분기점인 주체89(2000)년에 들어서면서 우리 겨레의 조국통일운동과 내외정세에서는 새로운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밑에 공화국은 역사에 유례없이 엄혹했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승리적으로 이겨내고 민족자주의 기치, 사회주의기치를 빛나게 고수함으로써 조국통일의 보루가 더욱 굳건히 다져졌다.

새 세기에 어떻게 하나 조국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 놓으시기 위하여 끊임없는 사색의 낮과 밤을 이어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통이 큰 구상을 안으시고 그 해 초에 설한풍 사나운 백두산을 찾으시었다.

그 어떤 큰 구상을 하거나 통이 큰 작전을 펴실 때에는 늘 백두산을 찾으시는 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습관이기도 하다.

눈보라 몰아치는 백두산정에 오르실 때면 어버이수령님께서 걸어오신 피어린 항일대전의 기나 긴 노정이 눈앞에 어려오고 통일을 갈망하는 온 겨레의 목소리가 귓전에 쟁쟁히 들려오는 것만 같아 애국의 숭고한 사명감으로 가슴 불태우시는 장군님이시다.

나라와 민족을 한없이 사랑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색과 실천은 언제나 백두산과 잇닿아 있었다.

백두산의 장엄한 모습을 보느라면 언제나 통이 큰 작전과 구상이 떠오르고 그에 대한 신심과 용기가 솟아오르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수일간에 걸쳐 백두산바람을 맞으시며 생각하신 것은 민족의 운명, 나라의 통일문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온 겨레가 그토록 바라는 나라의 통일을 하루 빨리 실현하여 7천만 민족에게 통일조국을 안겨주시려는 철석의 신념과 확고한 의지를 지니시고 백두산에서 대결과 불신으로 얼룩진 북남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돌려 세우고 새 세기 민족통일의 이정표를 우뚝 세우실 중대한 결단을 내리시었다.

백두산과 같이 크고 넓은 도량으로 평양수뇌상봉의 역사적 화폭을 무르익히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불굴의 통일의지와 위대한  결단이야말로 위인적 천품과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을 지니신 그분께서만이 내리실 수 있는 강철의 배짱이며 대범한 용단이었다.

이 땅에 통일열풍을 안아온 역사적인 평양수뇌상봉은 이처럼 경애하는 장군님의 대용단에 의하여 마련되게 되었다.

6.15자주통일시대의 여명은 이렇게 밝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