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그날은 일요일이었다.그러나 「하느님의 사도」라고 하는 미국은 이승만역도를 부추겨 선전포고도 없이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을 일으켰다. 조선전쟁은 정규무력으로 강화발전된지 2년밖에 안되는 청소한 조선인민군이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미제침략군과 15개 추종국가 군대를 상대로 하는 준엄한 대결전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든 것을 전쟁승리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제시하시고 전당, 전군, 전민을 전쟁승리를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때 여덟살이시었다. 그분께서는 너무도 어리신 나이에 엄혹한 전쟁의 시련을 겪게 되시었다. 조국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가열한 전쟁의 불구름을 헤쳐 가시는 나날에 그분의 가슴속에는 조국과 인민을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원수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이 백배, 천배로 불타 올랐다.

포성이 울부짖고 적기의 폭격이 계속되는 가열처절한 전쟁마당에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미제의 야수적이고 악랄한 만행을 직접 목격하시었고 필승의 신념을 안고 싸우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불굴의 기상에서 커다란 충격과 감동을 받으시었다.

포연서린 전선길과 불타는 거리와 마을들을 지나시는 길에서 그리고 전략적 후퇴의 엄혹한 행군길에서, 잠간 머물렀다가 떠나시는 산간의 외진 고장들과 수없이 넘으신 고개와 영마루들에서, 온갖 시련과 난관을 박차고 영웅서사시적인 생활을 창조해 가는 우리 인민의 투쟁모습에서 장군님께서는 귀중한 혁명적 수양을 쌓으시었다.

미제는 전쟁벽두부터 저들의 강도적 본성을 드러내놓았다.

6월말 미제공중비적들은 평양시에 대규모적인 무차별폭격을 감행하였다.

폭탄이 터지는 폭음과 아군의 대공포소리가 하늘땅을 가득 채웠다.

이날 인민군고사총구분대전투원들이 싸우고 있는 내각사무국의 지붕에 위험을 무릅쓰고 남 먼저 뛰어 올라가신 장군님께서는 대공사격을 들이대고 있는 전사들 곁으로 서슴없이 다가가시어 빨리 미국놈비행기를 쏴 떨구라고 고무격려하시었다.

적의 폭격속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을 걱정하시며 적기를 쏴 떨굴 것을 바라시는 장군님의 그 뜨거운 마음에 고무된 전사들은 더욱 맹렬히 대공전투를 벌였다.

미제의 천인공노할 야만적인 첫 평양폭격만행은 장군님께 있어서 조국해방전쟁의 가열성을 온몸으로 느끼시게 하였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아침저녁으로 최고사령부의 보도를 들으시면서 해방된 남반부의 도시와 마을들을 찾아 조선지도에 오각별을 따 붙이시었다. 남진하는 인민군용사들을 따라 별을 붙여가면 원수놈들이 격멸소탕될 것이고 우리의 승리가 다가올 것이었다.

장군님께서 매일같이 별을 붙여 나가시는 조선지도는 전선형편과 전과를 그대로 보여주는 생동한 승리의「작전도」였다.

주체39(1950)년 8월  중순 어느 날  전선을 시찰하고 돌아오시던 길에 잠시 자제분들에게 들리신 수령님께서는 그 지도를 보시었다. 방안 벽을 절반이나 채운 조선지도에는 빨간 별과 여러가지 숫자, 화살표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남반부의 해방지역들과 해방된 날자, 인민군대의 진격로를 그린 그 표식들은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굳게 확신하시는 아드님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드님께 인민군대가 어디까지 해방하였는가고 물으시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책상 위에 있는 연필로 지도를 짚으시면서 대답하시었다.

『김천, 왜관까지 해방하였습니다.

지금 인민군연합부대들은 낙동강을 건느고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 대전이 어딘가고 물어보시었다.

『여기 평택이란 곳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대전이 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대전이 지난 7월 20일에 해방되었고 여기에서 우리 인민군대가 띤이라는 미군 사단장놈을 사로잡았다고 하시며 지도에 표시된 화살표들은 아버지장군님의 명령을 받은 인민군부대들이 부산으로 공격해가는 길입니다, 부산까지 밀고 나가면 띤보다 더 큰 놈을 잡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 드리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드님의 자신만만한 대답을 들으시고 호탕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시었다.

『이 방에 대단한 전선사령관이 있구만. 벌써 부산해방작전까지 준비하고 있단 말이지.』

장군님의 씩씩한 기상에 만족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떠나시면서 앞으로도 싸우는 조선의 아들답게 살며 배워야 한다고 당부하시었다.

전쟁의 준엄한 시기 소학교에 다니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원수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안고 학업에 열중하시었다.

9월 중순에 이르러 전선형편이 급변하였다. 미제는 증강된 역량으로 낙동강계선에서 반공격을 시도하는 한편 태평양방면의 육해공군을 총동원하고 지중해함대의 일부와 영국, 프랑스, 필리핀, 터키 등 추종국가군대를 조선전쟁에 들이밀어 대대적인 공세를 감행하였다. 인천에 대한 미제의 대규모적인 상륙작전이 감행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엄중한 정세에 대처하여 적에 대한 새로운 결정적 타격을 준비하며 전쟁의 형세를 유리하게 전변시키기 위하여 일시적 후퇴에 관한 새로운 전략적 방침을 제시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새 전략적 방침에 따라 인민군부대들은 적들을 족치면서 질서 정연하게 후퇴의 길에 올랐다.

이 준엄하고도 어려운 시기 장군님께서는 9월말 평양을 떠나시어 간고한 후퇴의 길에 오르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강도 장강군 장자산속에 들어앉은 설매골이라는 작은 농촌마을에 이르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이곳에 오시어 학습에 열중하시는 한편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데 큰 힘을 기울이시었다.

마을사람들은 험한 산발을 거침없이 누비시는 장군님의 기상에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 그분이시야말로 위대한 수령님의 대를 이어 새 조선의 걸출한 영장이 되실 분이라고 기쁨에 넘쳐 말하곤 하였다.

오늘 장자산혁명사적지에는 전쟁의 불길속에서 조국땅에 깊이 뿌리 내리고 어언 반세기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름드리 거목으로 자라서 설레이는 두 그루의 잣나무가 있다.

그 유서깊은 두 그루의 잣나무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사연과 장군님의 위인상을 뜻깊게 전하고 있다.

어리신 장군님께서 후퇴의 길을 걸으시던 어느 날이었다. 생나무를 찍는 운전사를 보신 그분께서는 성한 나무를 왜 찍는가, 미제원수놈들이 불태우는 것만도 가슴 아픈데 찍어서야 되겠는가, 나무 한그루라도 다치지 말아야 한다고 그를 나무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때의 일이 종시 마음에 걸리시어 당창건 5돌을 맞으면서 여동생과 함께 두 그루의 잣나무를 심으시었던 것이다.

두 그루의 잣나무야말로 후퇴의 길에서도 승리할 내일을 굳게 믿으시는 장군님의 필승의 신념과 모든 것이 불타는 가열한 전화속에서도 강산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시려는 그분의 열화같은 조국애를 말해주는 역사의 증견자이다.

그때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주체80(1991)년 9월 23일 그곳 장자산혁명사적지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제분들이 심은 두 그루의 잣나무가 아주 멋있다고, 1950년 10월 10일 당창건날을 기념하여 심었다는데 그동안 크게 자랐다고 하시며 두 그루의 잣나무앞에서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으시었다.

썩 훗날 한 일꾼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두 그루의 잣나무를 심으시던 그 나날에 받은 자기의 감동을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때 히틀러파쇼놈들이 무인로케트로 영국의 런던시가를 공격하여 어느 한 건물이 파괴되었던 일이 있습니다.

그때 영국의 한 화가가 앞으로 그 건물이 복구될 것을 상상해서 간단히 그림 한장을 그렸는데 그 그림이 여러 나라 신문들에 크게 실려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한창 전쟁을 하는 판에 그런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그 화가를 자기 도시를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벅적 떠들었습니다. 우리의 장군님께서는 모든 것이 마사져 페허가 되는 속에서도 그림으로가 아니라 실지로 나무를 심고 가꾸시었으니 만일 세계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신문마다 대서특필하였을 것입니다. 그때 그분의 나이는 10대에도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내가 받은 감동이 얼마나 컸겠는지 사람들은 아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체39(1950)년 10월 하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장자산을 떠나 다른 농촌마을로 옮겨가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이곳 마을에 오시자 아이들에게 일과를 제정해주시고 그 일과를 「미국놈 때려부시기 일과」라고 부르게 하시었다.

아침달리기와 체조로부터 시작되는 일과는 과외학습반, 마을사람들속에 최고사령부보도와 전선소식을 알려주는 일, 전선에 편지쓰기, 가창대활동, 군사놀이 등 다양하고도 전투적이었다.

마을사람들은 장군님께서 이끌고 다니시는 아이들을 「아동중대」라고 불렀다. 아이들도 전선에서 싸우는 군대와 다름없다는 뜻에서 붙여준 이름이었다.

봄이 왔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 봄철에 군사놀이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활동을 더욱 널리 벌여 나가시면서 천성적으로 지니신 비범한 군사적 예지와 슬기를 더욱 폭넓게 키우고 완성시켜 나가시었다.

이곳에 와서 장군님께서는 많은 시간을 학습과 함께 군사놀이에 바치시었다.

그분께서 진행하신 군사놀이는 단순한 어린이들의 군사놀이가 아니었다. 현대적 군사행동과 전투조법의 핵심적인 원리들을 반영한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의 군사놀이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강한 「군율」과 뛰어난 「영군술」로 어린이들을 강철같이 묶어 세우고 각종 기묘한「전법」 과 「전술」로 상대방의 의기와 「전투력」을 제압하며 군사놀이를 능숙히 조직지휘하시는 어리신 장군님을 커다란 경탄과 감격을 안고 우러러 보았다. 마을사람들은「아동중대」 를 지휘하시는 어리신 장군님의 「무훈담」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밤가는 줄 몰랐다.

이 무렵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장기도 두시었는데 수 높은 어른들도 상대하기 어려웠다.

예로부터 장기의 수는 용병술과 같다고 일러 왔고 명장들은 장기의 명수들이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장기의 수는 곧 군사적  예지와 슬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장기를 잘 두신다는 소문이 인근마을까지 퍼져 하루는 마을에 나들이를 왔던 한 노인이 어리신 장군님께 장기판에 마주 앉기를 청해왔다.

이렇게 되어 10살도 채 안되신 어리신 장군님과 「적수가 없다」고 자부해 오던 고령의 「장기명수」노인이 마주 앉아 장기수를 겨루게 되었다. 그런데 승부는 마을사람들의 예상을 뒤집어 엎고 노인의 패배로 판가름 났다.

만경대 증조할아버님께서도 증손자께서 장기를 두시는 것을 보시고 그 높은 장기수에 감탄하곤 하시었다.  증조할아버님께서는 장군님께서 위대한 수령님의 대를 이어가시는 조선의 빛나는 미래를 눈앞에 그려보시는 듯 늘 기쁜 마음을 금치 못해하시었다.

이러한 일화들은 장군님께서 일찍부터 천재적인 군사적 예지와 지략을 지니고 계시었다는 것을 말하여 주는 것이었다.

 

 


전쟁으로 인하여 위대한 수령님과 떨어져 있지 않으면 안되시었던 그 나날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언제나 아버님을 생각하며 그리워하시었다.  가을밤 유정한 감회를 불러일으키는 풀벌레소리를 들으시면서도 아버님을 그리워 하시었고 한겨울 소리없이 내리는 함박눈을   보시면서도 최고사령부로 마음을 달리신 장군님이시었다.

주체41(1952)년 6월 장군님께서는 신의주에서 평안북도를 현지지도하시는 위대한 수령님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시었다.

수령님께서는 근 2년동안에 몸도 마음도 몰라보게 숙성하여 의젓해지신 아드님을 한품에 안아주시었다.

수령님의 옷자락에 파묻히신 장군님께서는 그동안 가슴속에 품고 계시었던 속생각을 그대로 말씀 드리시었다.

『나도 이제는 최고사령부에 와있겠습니다.

나는 아버님께서 가시는 길이라면 그 어디이고 함께 가고 싶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잘 생각했다고 하시면서 최고사령부에 와서 아버지와 함께 있자, 그래서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의 영웅적인 투쟁모습을 더 똑똑히 보고 체험할 때 미국놈들이 불지른 이 전쟁으로 인하여 겪는 인민의 아픔을 진실로 느끼게 될 것이고 또 조국과 인민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준엄한 전쟁의 엄혹한 시련이었지만 불속에서 강철이 단련되듯이 정의의 조국해방전쟁의 불길은 아드님의 사상정신적 성장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시었다.

그날 신의주상공에서는 인민군 비행기 2대와 미제침략군 비행기 20대사이에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졌다.

2 대 20! 이것은 세계전쟁사에서 보기 드문 공중전이었다. 그러나 용맹무쌍한 인민군비행사들은 평소에 연마한 비행술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침략군비행기들을 통쾌하게 족쳐대고 있었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저 많은 미국놈비행기를 우리 인민군대가 이겨낼 것 같은가고 아드님께 물으시었다.

『예, 꼭 이깁니다.』

장군님께서는 미국놈들은 남의 집에 기어든 강도들이기 때문에 주인이 겁을 먹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면 우리 인민군 비행기가 꼭 이긴다고 확신에 넘쳐 대답하시었다.

아드님께서는 전화속을 헤쳐오면서 조국해방전쟁이 강도와 주인간의 판가리싸움이라는 전쟁의 성격을 분명히 인식하고 계시었다.   그래서 수령님께서는 정의의 전쟁을 하고 있는 우리 인민은 부정의의 전쟁을 강요한 미제침략자들을 반드시 타승할 수 있다는 침착하고  확신에 넘친 아드님의 대답에 만족해 하시었다.

곁에 있던 수원들과 군관들도 모두 어리신 장군님의 그 담력과 배짱에 경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숫적으로 십배나 우세한 미군비행기들의 무리속으로 뛰어든 용감한 인민군비행사들, 까마귀떼처럼 하늘을 뒤덮고 오만하게 날뛰다가 인민군 비행기의 기관포에 맞아 시뻘건 불길에 휩싸여 검은 연기를 토하며 곤두박히는 적기의 몰골, 이 통쾌한 광경이야말로 인민군대의 영웅적 기상과 불굴의 의지로 수놓아진 장엄한 화폭이었다.

신의주상공에서의 공중전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빛나는 인생역정에서 그분의 가슴에 승리의 신심과 억센 담력을 심어준 잊지 못할 또 하나의 현장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신념을 수령님을 따라 싸우는 후방과 전선의 현실을 목격하시면서 더욱 굳게 가다듬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을 따라 어느 한 공군부대를 찾으시어 비행사들의 비행훈련도 보시었고 후방도 전선이라고 하신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낮에 밤을 이어 전시생산을 다그치고 있는 여러 공장, 농촌들도 돌아보시었다.

장군님께서 수령님을 모시고 신의주를 떠나 평양으로 오시는 길에 어느 한 농촌마을을 지나실 때였다.  차창밖으로는 불타버린 마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위장망을 걸친 여인들이 소를 몰며 훗치질을 하고 있었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김매기를 하는 여인들이며 「소년단행진곡」을 부르며 학교로 가는 어린이들, 둔덕진 곳에 올라 하늘의 적기를 감시하는 여인의 모습도 보였다.

수령님께서는 그 광경을 바라보시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아드님에게 조용히 물으시었다.

『너는 저 사람들을 보고 무엇을 느끼느냐?』

『우리 인민들처럼 원수를 미워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인민은 세상에 없을 것 같습니다.』

『옳게 봤다. 저것이 바로 싸우는 우리 인민의 모습이다. 저런 인민을 굴복시킬 수 있는 힘은 이 세상에 없다.』

잠시 후 수령님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었다.

『어제 나는 낙원기계공장 노동자들을 만났다. 주물직장 당세포총회에 참가해 봤다.

내가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복구건설을 해야겠는데 그때에는 할 일이 산처럼 많다고 했더니 한 여성당원이 일어나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상님, 염려 마십시오. 우리가 싸워 이기기만 하면 복구건설은 문제로도 되지 않습니다. 일제놈들이 그렇게 마사 놓고 간 것도 우리는 2∼3년동안에 다 복구해가지고 잘 살지 않았습니까? 전쟁이 끝나면 또 복구해 가지고 잘 살수 있으니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

나는 그 여성동무의 말을 일생을 두고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그 동무에게서 참말로 커다란 힘을 받았다.

우리는 그처럼 강의하고 훌륭한 인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놈들과 싸워서 반드시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아버지장군님께 큰 고무의 말씀을 드린 낙원의 여당원에 대하여 생각하시면서 아버지장군님께서 계시고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억세게 싸우는 강의한 인민이 있는 한 우리는 반드시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신념을 더욱 굳게 간직하시었다.  이러한 신념은 아버지장군님의 안녕을 철저히 보장해 드리려는 충성의 한마음으로 가슴 불타게 하였다.

어느 날 장군님께서 신의주를 떠나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평안북도 삭주군 부평리의 갈림길에 이르시었을 때였다.

자동차앞으로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났다. 하나는 수풍쪽으로 가는 큰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판막령으로 가는 소로길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갈림길에 이르시어 잠시 주위를 살펴보시더니 처음에 가기로 예정하였던 큰길과는  다른  소로길로 가자고 하시었다.  뜻밖에 달라진 정황앞에서 부관은 당황해하며 잠시 망설이었다.

이때 장군님께서는 주저하는 부관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시었다.

『아버지장군님께서 말씀하신 길로 무조건 가야 합니다.

아버지장군님께서 가시는 길은 무조건 옳은 길입니다. 빨리 이 길로 차를 몰아야 하겠습니다.』

부관은 장군님의 신념에 찬 말씀에 감탄하면서 수령님께서 가리키신 길로 자동차를 몰게 하였다.

자동차가 소로길에 들어서서 얼마간 달렸을 때였다.  여러대의 적기가 날아들더니 원래 가기로 했던 큰길쪽에 폭탄을 마구 쏟아붓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부관도, 수원들도 갑자기 다른 길을 택하신 수령님의 깊은 뜻을 깨닫고 그분의 천리혜안의 예지와 비범한 통찰력에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열처절한 전화의 나날 전쟁승리를 위해 침식도 잊으시고 그런 예지와 담력으로 불비 쏟아지는 전선길을 헤쳐 가시는 수령님의 모습을 우러르며 승리의 신심과 낙관에 넘쳐 계시었다.

후에 판명된 바이지만 이 시기의 공습들은 미제가 고용간첩 박헌영, 이승엽도당의 「정보」를 받고 감행한 것이었다.

그날 밤이 깊어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강건군관학교에 당도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밤새도록 찬이슬을  맞으시며 아버님의 안녕을 지켜드리시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침공기도 맑은데 걸어보자고 하시며 아드님과 함께 뒷산에 오르시었다. 오래간만에 아버님을 모시고 산촌길을 걸으시는 장군님의 마음은 한량없이 즐거우시었다.

수령님께서는 아드님에게 인민군대의 정치도덕적 우월성과 제국주의군대의 취약성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고 나서 이제 크면 무엇을 할 생각이냐고 물으시었다.

『나도 아버님처럼 인민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이 되겠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주저없이 대답하는 아드님을 보시며 대견해 하시면서 슬기와 용맹을 다같이 겸비한 장군이 되어야 한다고 고무해 주시었다.

『아버님말씀대로 꼭 슬기와 용맹을 키워 훌륭한 장군이 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굳세게 성장하신 아드님의 모습에서 조국의 창창한 내일을 확신하시며 축복의 미소를 보내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처럼 준엄한 전화의 불바다를 수령님과 함께 헤쳐 나가시었다.

그때로부터 20여년이 흐른 뒤 장군님께서는 그 당시를 회고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시었다.

『그때 나는 전화의 불길속에서 사람들이 수십년을 두고도 간직할 수 없었던 가장 고귀한 것을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조국해방전쟁은 나의 생활에서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시기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회고하신 바와 같이 참으로 그분께서는 전화의 불길속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의 영웅적 기상과 투쟁에 대하여 가슴 뜨겁게 느끼시었으며 수령님께서 계시는 한 우리는 전쟁에서 반드시 이긴다는 철석의 신념을 깊이 간직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민족의 자주권을 짓밟으려는 침략자 미제에 대한 치솟는 적개심으로 가슴 불태우시며 이 땅에 미제가 있는 한 우리는 총대를 더욱 굳게 틀어 잡아야 한다는 불굴의 의지를 깊이 간직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최고사령부에서 생활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얼마나 가열처절한 싸움을 하고 계시는가를 직접 체험하시었다.

주체41(1952)년 8월의 어느 일요일이었다.그날 최고사령부회의실에서는 영화가 상영되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수령님께서 회의실에서 나오시어 집무실로 가시던 도중에 갑자기 적비행기들이 날아들었다. 적기들은  낮추어  덤벼들면서  폭탄을  떨구고  기총사격을 가하였다. 참으로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태연자약하시었다. 그분께서는 군인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살피시었다. 호위군관들이 대피호로 모시려고 하였지만 수령님께서는 자리를 뜨지 않으시었다.

장군님께서도  달려가 어서 피하시라고  하시었지만 수령님께서는 움직일념을 하지 않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위급한  정황속에서 자신의 한몸이 아니라 군인들의 안전부터 생각하시며 거인의 담력으로 정황을 처리해 나가시는 수령님의 모습을 우러르며 북받치는 격정을 금할 수 없으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6월 하순부터 8월 중순까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 계시었다. 이때 최고사령부는 평양교외의 건지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에 최고사령부가 자리잡게 되면서부터 한적하던 이 산골마을이 사람들로 붐비었다. 포연에 그슬린 군복을 입은 전선사령관이며 장령들과 군인들, 당과 국가의 책임일꾼들, 노동자와 농민들, 학자들이 밤낮으로 찾아왔다. 전선과 후방의 모든 중대사가 여기 최고사령부에서 설계되고 중대명령과 지시도 여기서 하달되었으며 그에 따라 전군, 전민, 전국이 전쟁승리를 위하여 들끓고 한결같이 떨쳐 일어났다.  최고사령부는 온 나라에 더운 피를 뿜어주는 심장이었고 싸우며 승리하는 영웅조선의 숨결이었다.  여기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원수를 격멸하고 승리한 조국땅위에 전후복구건설의 새 작전을 펼칠 휘황한 설계도도 구상하고 계시었다.

최고사령부에서의 나날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영장으로 성장하시는 길에 세워진 또 하나의 뜻깊은 이정표였다.

항일의 격전장에서 탄생하시어 빨치산세계에서 성장하시며 조국의 귀중함을 아시고 총대의 위력함을 아신 장군님께서는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을 직접 체험하시면서 몸도 마음도 더욱 억세여지시었고 사색도 식견도 더욱 깊고 넓어지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나이에 벌써 비범한 군사적 예지와 안목으로 총대의 사명과 귀중함을 깨닫고 군사에 달통했을 뿐 아니라 전쟁을 아는 영웅남아로 몰라보게 성장한 아드님이 참으로 대견스럽고 미더우시었다.

수령님께 있어서 예지와 지략이 뛰어나고 담력과 의지가 굳센 영장의 출중한 풍모를 갖추며 나날이 성장하는 아드님은 자제분이기 전에 주체혁명의 총대혈통을 이을 믿음직한 총대계승자이시었다. 그래서 수령님께서는 이무렵 주체혁명의 영광스러운 역사가 어려있고 나라와 민족, 혁명의 운명이 실려있는 권총을 아드님에게 넘겨주시었다.

그날은 주체41(1952)년 7월 10일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작전실로 가시었다.

수령님께서는 자애로운 눈길로 아드님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자못 신중하신 어조로 조용히 물으시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

장군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었다.

『오늘은 할아버님의 생신날입니다.』

『옳다. 너의 할아버지생일 쉰여덟돌이 되는 날이다.』

아버님의 말씀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할아버님께서는 왜놈들 때문에 너무도 일찍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라고 하시며 할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쳐올라 뒷말을 잇지 못하시었다.

수령님께서는 아버님을 추억하시며 너의 할아버지는 나라의 광복을 이룩하실 큰뜻을 품으시고 한생을 반일애국성업에 모든 것을 다 바쳐 싸우신 참된 애국자이시었다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할아버님께서 지으신 시  「남산의 푸른 소나무」를 잊지 않고 있는가고 물으시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시어 『알고 있습니다.…』라고 힘주어 대답하시며 대를 이어 혁명을 계속해 나가시려는 굳센 의지를 담아 맑고 청청한 목소리로 시를 격조높이 읊으시었다.

 

남산의 저 푸른 소나무가

눈서리에 파묻혀서

천신만고 괴롬받다가

양춘을 다시 만나 소생할 줄을

동무야 알겠느냐

 

수령님께서는 시랑송을 마치신 아드님의 상기된 얼굴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않으신 채 이 시에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는가고 물으시었다.

『예, 「지원」의 사상이 담겨져 있습니다. 「지원」이란 뜻을 멀리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리신 아드님의 대답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그것이 바로 너의 할아버지가 평생 신조로 삼으신 뜻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뜻을 안으시고 자기 대에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지 못하면 아들대에 하고 아들대에도 못하면 손자대에 가서라도 기어이 일제를 쳐부수고 조국의 광복을 이룩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시었다,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실 때 나에게 「지원」의 뜻이 담겨져 있는 권총 두 자루를 유산으로 넘겨 주시었다, 나는 그 권총 두 자루를 밑천으로 삼아 첫 무장대오를 조직하고 반일대전을 선포했으며 조국의 해방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우리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우리는 나라의 통일독립을 이룩할 때까지, 전세계에서 제국주의자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때까지 혁명을 계속해야 한다라고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는 붉은 천에 싸여있는 권총을 꺼내놓으시며 엄숙히 말씀하시었다.

『이 권총을 오늘 너에게 준다. 혁명의 계주봉으로 알고 받는 것이 좋겠다.

우리 만경대가문에서 3대를 내려오는 총이니 한평생 잘 간수하여라.』

수령님으로부터 사연깊은 혁명의 총대, 권총을 정중히 받아 안으신 장군님께서는 한없이 숭엄한 격정에 휩싸이시었다.

『알았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힘있게 대답하시는 아드님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며 말씀을 계속하시었다.

『혁명가는 일생동안 손에서 총을 놓지 말아야 한다.

총은 혁명의 승리를 담보해 주는 방조자이라는 것을 꼭 명심해라.』

장군님께서는 총과 혁명에 대한 아버님의 가르치심을 가슴속에 깊이 새기시며 챙챙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씀드리시었다.

『아버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한평생 이 총과 혁명을 같이하겠습니다.』

장군님의 이 말씀은 할아버님으로부터 부모님들에 이르기까지 만경대일가분들 모두가 총을 잡고 혁명의 길에 한몸을 바치신 것처럼 한생을 총과 더불어 싸워 나가실 신념의 맹세였다.

이것은 어리신 장군님의 마음속에 이미 총대관, 혁명관이 깊이 서있었음을 말하여 주는 것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어리신 나이에 벌써 총대를 알고 혁명을 아시었고 혁명에 대하여 생각하실 때면 총대를 먼저 떠올리곤 하시었다. 그분께 있어서 총은 곧 혁명이었고 나라의 운명, 민족의 생명선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총대와 혁명을 대하는 입장과 자세, 그 정신세계에서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아득한 높이에 이르고 계시었다.

장군님의 신념이 어린 맹세를 들으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없이 기쁘시었다.  어린시절에 벌써 총대혁명원리를 깨달으며 위대한 영장으로의 비범한 성장의 길에 들어선 아드님의 미래를 마음속으로 축복하고 계시었다.

훗날 장군님께서는 최고사령부에서 수령님으로부터 권총을 받아 안으시던 일을 감회깊이 회고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나는 곡절많은 혁명의 길을 걸어오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왜 어린 나에게 권총을 주시었으며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것을 가슴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권총을 받으신 뜻깊은 이날은 총대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이 총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날이었다.  아울러 만경대혁명일가, 백두산위인가문의 총대혈통의 대가 굳건히 이어지는 경사의 날이었다.

 

 




최고사령부 작전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쟁의 운명을 결정하는 작전을 구상하고 지휘하시는 총본산이었으며 주체적인 전략전술과 전법들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전쟁실천에 구현하시는 사령탑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바로 이곳에서 수령님과 함께 계시면서 작전지도를 마주하시고 전선정황도 요해하시고 여러가지 전법을 터득해 나가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가열했던 전화의 나날을 회고하시며 이런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나는 최고사령부에 와있는 기간 작전실에 자주 가서 작전지도를 보면서 전선정황도 알아 보았고 적을 공격하는 방법, 적을 포위소멸하는 방법, 적비행기와의 투쟁방법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전투방법을 하나하나 배웠습니다. 나는 수령님께서 전선부대를 현지지도하실 때마다 따라 다니면서 수령님의 탁월한 영군술을 가슴깊이 새기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전법과 전술을 체득하고 그 응용능력을 키워 나가시는데서 남다른 천품적 기질을 보여 주시었다.  장군님께서 지니신 군사적 예지에는 항일의 노투사들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주체41(1952)년 7월말의 어느 날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 긴급한 문제를 보고드리고 결론을 받기 위해 전선에 나가있던 항일혁명투사 최광동지가 최고사령부를 찾아왔다.  그가 작전실에 들어서니 수령님께서 작전도를 앞에 놓으시고 어리신 아드님과 담화를 나누고 계시었다. 담화의 중심내용은 1211고지방어전략문제였다.

1211고지는 강원도 인제와 양구로부터 각각 내금강 말휘리로 통하는 대도로의 교차점 맞은편에 솟아있는 고지로서 인민군대의 후방으로 통하는 전략적 의의가 큰 길목을 차지하고 있다.

적들은 이 고지를 점령하지 않고서는 전선동부에서 인민군대의 방어를 돌파할 수 없고 전선을 원산이북지역으로 확대해 나갈 수도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전대앞에서 몸소 지시봉을 드시고 작전도를 가리키시며 어리신 장군님께 1211고지의 지형과 전선정황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계시었다.

수령님께서는 1211고지는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고지이다, 1211고지를 중심으로 해서 그 양쪽에 도로들이 있다, 놈들은 이 도로를 거치지 않고는 금강산, 원산쪽으로 들어올 수 없다, 미국놈들은 지난해에 벌린  「하기 및 추기공세」때 이 도로가 있는 여기 두개 방향에서 우리의 방어를 돌파하고 여기 이포리에서 아군을  「포위소멸 」한 다음 그 북쪽으로 계속 쳐들어 오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통천쪽으로 상륙하려고 했다고 하시었다.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정황을 설명하시고 장군님과 일문일답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시는 것이었다.

 

위대한 수령님;

『놈들이 여기 금강계선까지 들어오면 어떻게 되겠느냐?』

경애하는 장군님;

『금강계선에서 올라온 적들과 통천쪽에서 상륙한 적들이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놈들이 힘을 합쳐 원산까지 밀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

『그렇다. 놈들은 바로 그렇게 할 것을 타산하였다. 그러니 놈들이 1211고지를 점령하지 않고 들어올 수 있겠느냐?』

경애하는 장군님;

『들어올 수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님;

『우리가 1211고지를 내어주면 어떻게 되겠느냐?』

경애하는 장군님;

『우리가 1211고지를 내어주면 적들에게 원산까지 내주게 됩니다.』

위대한 수령님;

『옳게 보았다.

군사에서는 이러한 곳을 방어에서 역량과 기재를 집중해야 할 주요방향이라고 한다.』

경애하는 장군님;

『잘 알겠습니다.

아버지장군님의 말씀을 들으니 1211고지가 얼마나 중요한 고지인가를 더 잘 알겠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장군님께서 1211고지에까지 나가시어 전투를 조직하고 지휘하시었지요.』

위대한 수령님;

『그래서 나는 인민군대동무들에게 1211고지가 전선의 운명을 좌우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고지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의 호소를 받들고 인민군장병들은 1211고지를 피로써 지켜내고 있으며 한치의 땅도 적에게 내어주지 않고 있다.』

경애하는 장군님;

『1211고지는 앞으로도 영원히 조국의 고지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군사작전가들사이에만 나눌 수 있는 대화였다.

두 분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최광동지는 어리신 김정일장군님의 비범한 통찰력과 높은 군사적 안목에 놀라움을  금치  못해  하였다. 그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어린시절부터 남달리 영특하시어 항일빨치산대원들속에서 「어린 장군」으로 불리우시었지만 이처럼 군사작전상 문제에서까지 수령님과 대화를 나누실 정도로 성장하시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였었다.

수령님께서도 만족해하시며 천하를 다스릴 무적의 장군으로 자라나는 아드님을 대견하게 바라보시면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었다.

두 분의 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광동지에게 제기된 문제와 관련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고 나서 아드님과 전법에 대한 담화를 계속하시었다.

수령님께서는 원래 전법이라고 할 때는 싸우는 전술과 방법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세가지 문제가 고려되어야 한다, 그 세가지 문제에서 첫째는 아군을 잘 아는 것이고 둘째는 적을 잘 아는 것이며 셋째는 시간과 장소를 잘 아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법을 세우자면 아군과 적군, 싸움이 벌어지는 시간과 지대를 잘 알고 그에 맞는 전술과 방법을 짜내야 하는 것이다, 전법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제일 중요한 비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싸움을 주관하는 장군들이나 군사지휘관들은 적을 이길 수 있는 전법을 만들어 내는데 많은 머리를 써왔고 누가 묘한 전법을 쓰는가에 따라 싸움의 승패가 결정되곤 하였다, 옛날 우리 나라의 을지문덕장군이나 중국의 제갈량같은 사람들이 유명한 것은 그들이 전법을 잘 써왔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는 아드님을 미덥게 바라보시며 전법을 잘 세우는데서 무엇이 제일 중요한 것 같은가고 물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잠시 생각을 더듬으시다가 아군을 잘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그전에 군사놀이할 때 우리 편에 속한 아이들 가운데서 누가 꾀가 있고 누가 겁이 없고 누가 몸을 아끼지 않는가 하는 것들을 미리 알아두었다가 정황에 맞게 쓰곤 했더니 군사놀이에서 늘 이기곤 했습니다라고 기운차게 대답하시었다.

아드님으로부터 명쾌한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지, 그래.』 하시며 만족한 미소를 지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세계 여러 나라의 명장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주로 자기 혼자머리로 전술을 짜내가지고 싸우느라고 하였는데 그것도 좋지만 결코 거기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고 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지난날 산에서 일본놈들과 싸울 때도 그랬고 지금 미국놈들과 싸우면서도 그렇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우리 전사들, 전쟁에 참가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선생으로 보고 그들의 힘과 지혜를 발동하여 전술도 짜내고 싸움도 벌여 나가야 한다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우리가 하는 이 방법이 제일 좋은 방법이고 바로 이렇게 하는데 우리의 전략전술이 백전백승하는 비결이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수령님께서는 지금 우리 인민군전사들이 미국놈비행기가 아무리 하늘을 덮고 날아 다녀도 절대로 무서워하지 않고 파리 잡듯이 쏴 떨구고 있는데 이러한 「비행기사냥꾼조운동」도 전사들이 생각해낸 방법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시었다.

수령님께서는 아드님에게 주체40(1951)년 7월 어느 날 사리원시내에 있는 어느 한 고지에 오르시었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었다.

당시 고지위에서는 적비행기를 쏴 떨구려고 중기관총을 회전식으로 된 틀위에 올려 놓았었다.

수령님께서는 친히 진지에 들어 가시어 중기관총손잡이를 잡으시고 조준해보시며 낮게 뜨는 적기는 얼마든지 쏴 떨굴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시었다.

그분께서는 진지를 떠나시며 기특한 생각을 한 군인들을 치하해주시었다. 그리고 그것을 모든 군인들속에서 일반화하여 비행기사냥꾼조운동의 불길을 지펴 올리시었다.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남이 만들어 놓은 병서나 교범을 그대로 본따지 않고 많은 군인들과 인민들 속에 들어가서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전법을 만들어 냈더니 미국놈들이 나어린 우리 인민군 꼬마병사한테도 꼼짝 못했다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인민군대가 이런 방법으로 비행기사냥꾼조운동뿐 아니라 탱크사냥꾼조운동, 습격조운동, 저격수운동 같은 것을 만들어내서 비행기나 탱크, 함선이 많다고 자랑하면서 우쭐대던 미국놈들의 거만한 콧대를 꺾어놓고 우리 식대로 싸움을 잘해 나가고 있는데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깊이 새기시며 알았습니다, 언제나 우리 인민을 믿고 제 머리를 잘 쓰는 것이 제일입니다라고 힘있게 대답하시었다.

수령님께서는 『그렇지, 그것이 말하자면 우리 식 전법이고 제일 가는 전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식 전법』, 『우리 식 전법』, 이렇게 거듭 되뇌이시면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 참뜻을 가슴속 깊이 새기시는 것이었다.

두분의 대화를 듣고 있던 최광동지는 가슴이 후더워 오름을 금할 수 없었다. 어리신 장군님께서 나이에 비해 너무도 뛰어난 군사적 식견과 비범한 지략을 지니고 계시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그에게는 전쟁전에 최현동지에게서 들었던 한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최현동지가 최전방에서 38경비여단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는 평양에 올라오면 수령님댁에 들리곤 하였다. 그때마다 제일 반겨 맞아주신 분은 바로 어리신 장군님이시었다.

한번은 남조선군에서도 악명높은 김석원부대가 38°선을 넘어 송악산에 기어든 일이 있었는데 그때에도 최f현동지는 전투를 마친 그 길로 평양에 와서 수령님댁에 잠간 들리었다.

그날 유치원에서 돌아오신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그를 보고 무척 기뻐하시며 송악산전투소식을 방송으로 들었는데 그 싸움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청하시었다.

최현동지는 불의에 쳐들어왔던 김석원을 잡겠다고  38°선을 넘어가 추격전을  벌이다가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엄한 추궁을 받고 되돌아 섰던 사실을 이야기해 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이야기를 다 들으신 후 김석원을 놓친 것을 못내 아쉬워하시면서 놈들이 들어왔을 때 제꺽 포위했더라면 기어든 놈들을 몽땅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시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들으시면서도 당시의 정황에 꼭 맞는 전술을 도출해내시는 어리신 장군님의 비범한 지략에 백전노장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쳤다.

최현동지가 들려준 이야기는 짧은 것이었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최광동지는 그때 어리신 장군님의 비범성에 탄복하였었다. 그런데 오늘은 세계의 그 어느 명장도 견줄 수 없는 탁월한 군사적 식견과 비범한 지략을 지니시고 작전대앞에 서시어 우리 식의 전법을 높은 수준에서 익혀가시니 놀랄수 밖에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비범성에 탄복한 역전의 노장들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포병사령관이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최고사령부 작전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그때에도 수령님께서는 어리신 장군님과 뜻깊은 담화를 나누고 계시었다.

수령님께서는 작전대위에 두 자루의 색연필을 따로따로 놓으시며 어리신 아드님에게 물으시었다.

『이쪽 연필은 사람이고 이쪽 연필은 총이라고 한다면 너는 어느 것을 가지겠느냐?』

장군님께서는 심중하게 생각하시었다.

그때 포병사령관은 장군님께서 아마도 총을 가지려 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며 은근히 주시하였다.

잠시 후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사람을 가지겠다고 하시며 『싸움에서 사람이 제일이 아닙니까.

사람만 있으면 총이란 건 생길 수 있지만 사람이 없이 총만 있어 가지고서는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님께서는 총을 쏘는 것도 사람이고 병법을 만들어 내는 것도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이라고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까.』라고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었다.

뚜렷한 논거와 신념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어리신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르며 포병사령관은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최고사령부 작전대 곁에 계신 나날은 두달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길지 않은 나날은 그분께서 비범한 예지로 수령님의 독창적인 전략과 전술, 전법을 배우고 익히시면서 앞날의 위대한 영장으로 성장하시는데서 참으로 의의깊은 나날이었다.

동시에 이 나날은 장군님으로 하여금 혁명적 낙관주의와 강의한 의지를 체현하신 뜻깊은 나날이었다.  그때를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회상하시었다.

『내가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에 가있으면서 수령님으로부터 배운 것이 혁명적 낙관주의와 맞받아 나가는 의지와 전술입니다.』

7월 어느 날이었다.  평양에 대한 미제의 야만적인 폭격이 있은 뒤였다.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용남산기슭을 에돌아 가루개고개를 넘어 전쟁으로 건설이 중단된 아동궁전쪽으로 하여 시내 곳곳을 돌아보시었다. 적들의 폭격으로 너무나도 참혹하게 파괴된 거리를 보니 가슴이 몹시 아프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 페허로 된 평양의 거리를 돌아보면서 미국놈들은 가장 악랄한 원수이고 야만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그리고 잿더미속에서도 신심을 잃지 않고 투쟁에 일떠선 인민들을 보며 이 세상에 우리 인민과 같이 강의한 인민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떤 원수들도 이 힘을 당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리시었다.

그날 밤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아버님의 부르심을 받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집무탁위에 큰 종이말이를 펼쳐  놓으시고  깊은  생각에  잠겨 계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작전도인 줄 알았는데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였다.

작전지도만 펼쳐지던 책상위에서 복구건설설계도를 보신 장군님께서는 놀라운 눈길로 수령님을 우러르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드님께 이것이 전쟁을 끝내고 일떠세울 평양의 모습이라고 하시면서 설계도를 짚어가시며 설명해 주시었다.

장군님께서 보통강주변이 어떻게 되는가고 물으시자 수령님께서는 유원지를 꾸리고 토성랑자리에는 큰 주택지구를 형성하려고 한다고 하시었다. 그리고 평양뿐 아니라 각 도 소재지들, 군소재지들, 산업지구들의 복구건설설계도도 준비되고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격동없이는 들을 수 없는 말씀이었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불타고 있는 때에 웅대한 복구건설설계도가 펼쳐지고 있다니 참으로 생각밖의 일이었다.

장군님께서는 혁명적 낙관주의와 철의 의지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기에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조선은 잿더미를 털고 일떠서서 끝없이 융성번영할 것이다, 이런 신심이 솟구쳐 오름을 금할 수 없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최고사령부의 작전대곁에서 참으로 아버지장군님이시자 조국이고 조국의 품이라는 것을 더욱 절감하시었다. 그것은 햇빛밝은 교실이나 안온한 서재에서가 아니라 혁명전쟁의 불길속에서, 전쟁의 승리를 마련해 가는 최고사령부의 작전대곁에서 심장으로 체득하신 신념이고 진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사상감정을 담아 가요 「조국의 품」을 창작하시었다.

아버지장군님의 품을 『햇빛처럼 밝고 밝은 조국의 품』으로 격조높이 노래한 불후의 고전적 명작 「조국의 품」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어 우리 조국은 빛나고 그 품속에 우리 민족의 운명이 있다는 것을 심장깊이 간직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신념의 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