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조국건설의 세기적 변혁속에서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로 미덥게 성장해가시던 장군님께서는 일곱살 되시던 해에 뜻밖에도 어머님을 잃는 절통한 국상을 겪게 되시었다.

어버이수령님의 가장 충직한 혁명전우이시며 항일의 여성영웅이신 김정숙여사께서 그처럼 바라시던 조국통일의 날을 보지 못하시고 너무도 일찍이 애석하게도 세상을 떠나시었던 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38(1949)년 9월 21일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시는  아버지장군님을  어머님과  함께  바래드리시었다. 아버님께서 타신 승용차가 멀리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시는 어머님의 신색을 살펴보는 순간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의 병환이 중하다는 것을 느끼시었다. 그래서 오늘만은 유치원에 가지 않고 어머님곁에 있겠다고 말씀하시었다.

아드님을 대견스럽게 바라보시며 어머니의 병은 네가 공부를 잘하면 저절로 나을 수 있으니 다른 생각말고 어서 유치원에 가라고 이르시는 어머님의 말씀에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시며 유치원에 가시었지만 종일토록 어머님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 놓지 못하시었다.

장군님께서 유치원에서 돌아오시었을 때 어머님께서는 몹시 괴로워하시었으나 손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감을 잡고 계시었다.

아버님께 드리려고 짬짬이 떠오시던 털내의를 마무리하시고 옷장에 소중히 간직해오신 수령님의 군복을 꺼내어 손질하시는 중이었다. 그 군복은 조국진군을 앞두고 어머님께서 숙영지의 등잔불밑에서 손수 지으시어 수령님께 드리신 뜻깊은 군복이었다.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아드님을 가까이 불러 앉히시고 이 옷은 아버님께서 조국을 해방하는 최후공격전에로 떠나실 때 입으셨던 군복이라고 하시며 그것을 아드님의 무릎위에 올려 놓으시었다.

이제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스스로 예감하신 어머님께서 사랑하는 아드님에게 물려주고 싶으신 것, 남기고 싶으신 말인들 얼마나 많으시며 아드님을 한번이라도 더 뜨겁게 껴안아주고 싶으신 마음 또한 얼마나 간절하시었으랴.

어머님께서는 그 뜨거운 심정을 이 한벌의 군복에 다 묻어놓으신 듯, 주체혁명위업수행에서 자신이 맡아 안으셨던 몫의 전부를 거기에 다 얹어놓으신 듯 그리도 정중히 어리신 아드님께 넘겨주시는 것이었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의 눈빛에서, 말씀의 마디마디와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무거운 심중을 읽고 계셨다.

정녕 그 군복은 민족의 태양을 우러러 바쳐오신 어머님의 티없이 맑고 깨끗한 충성심이 씨실, 날실이 되어 만들어진 귀중한 유산이었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의 정성이 뜨겁게 스며있고 백두의 넋이 깃들어있는 아버님의 군복을 가슴에 꼭 안으시었다.   아버지장군님과 어머님, 수많은 혁명선열들의 피와 땀으로 수놓아진 항일혁명의 역사를 통채로 받아 안은 듯 천만근의 무게가 장군님의 흉벽을 세차게 두드렸다.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아드님을 미덥게 바라보시며 말씀을 이으시었다.

『 아버님은 나라를 찾아주시고 우리 인민들이 다 잘 살수 있게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분이시다.

너희들은 아버지장군님을 잘 모셔야 한다.

아버님께서 건강하셔야 우리 나라가 튼튼해지고 인민들이 더 잘 살수 있게 된다.』

『 알겠습니다. 어머니!』

어머님의 말씀에는 아버님은 곧 인민의 운명이시고 행복이시며 미래이시라는 깊은 뜻과 아버님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성해 나갈 것을 바라시는 크나큰 기대와 염원이 담겨져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이렇게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사랑하는 아드님께 백두의 혁명정신을 깊이 새겨주시고 혁명적 수령관에 대한 좌우명을 가슴에 심어주시었으며 조선의 미래를 부탁하시었다.

그것이 어머님께서 남기신 마지막유언이었다.

훗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애끊는 심정으로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안으시고 잊을 수 없는 그 순간에 대하여 회고하시며 말씀하시었다.

『 우리 어머님께서는 내가 어렸을 때 …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계승해 나가야 한다는데 대하여 심오한 철학적인 논리로 일깨워주시며 뜨겁게 말씀하시군 하시였습니다.

우리 어머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3시간 전이었습니다.

그때 우리 어머님께서는 나에게 수령님을 잘 받들어 모시고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계승완성해 나가야 한다는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시고 비통하게도 3시간후에 돌아가시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 남기신 어머님의 당부는 곧 시대와 혁명의 요구였고 조국과 민족의 기대와 염원이었다.

9월 22일 새벽 2시 40분, 김정숙어머님의 고귀한 심장은 조용히 고동을 멈추었다.

간고한 항일혈전의 나날 한 몸이 그대로 성새가 되고 방패가 되시어 수령님을 결사옹위하신 김정숙어머님, 준엄한 항일혁명시기와 새 조국건설의 어렵고 복잡한 시기 주체혁명위업계승의 확고한 담보를 마련하신 김정숙어머님께서 수령결사옹위의 길에서 32살을 일기로 너무도 일찍이 애석하게 우리 곁을 떠나시었다.

항일의 여성영웅이신 김정숙어머님의 서거는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있어서 최대의 슬픔이었고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었다.

뜻밖의 비보에 접한 온 나라 인민들은 크나큰 슬픔에 잠겨 김정숙어머님께서 조국과 인민앞에 쌓으신 영원불멸할 고귀한 업적을 되새겨 보며 한없이 비통한 마음으로 어머님을 추모하였다.

22일 아침부터 김정숙어머님의 영구를 모신 당중앙위원회 회의실로 수많은 조객들이 전국도처에서 모여왔다. 「 빨치산추도가」의 비장한 선율이 울리는 조의식장에는 비애에 젖은 조기가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다.

어리신 장군님께서 아버지장군님과 함께 여기에 나오시었다. 생화속에 고요히 누워 계시는 어머님을 보신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시며 흐느껴 우시었다.

그때 항일의 전장을 함께 누비며 어머님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였던 여투사들이 북받치는 울음을 삼키며 어리신 장군님을 어머님곁에서 떼어 내려고 그분을 붙안았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갈리신 음성으로 『 놔 두시오. 오늘이 지나면 어머니품에서 울어볼 수도 없는 애가 아니요.』라고 하시며 조용히 손수건을 눈가에 가져가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동지를 오래도록 굽어보시다가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말씀하시었다.

『 김정숙동무는 조국의 광복과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싸운 열렬한 혁명가였습니다. 그는 이름 난 명사수였고 능숙한 지하공작원이었으며 모진 시련과 난관앞에서도 굴할 줄 모르는 강의한 공산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 동생을 다 잃고 친척들과도 생이별하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으며 자랐습니다. 그는 남달리 조국을 사랑하였고 동지들을 사랑하였으며 혁명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왔습니다. 그가 한 모든 일은 동지를 위한 것이었지 자기를 위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눈앞으로 여사의 고결한 생애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듯 목이 메어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다가 한동안 지나서 계속하시었다.

『 나는 그가 단 하루라도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하게 살았다면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일생동안 고생만 시키다가 먼저 보낸 것이 제일 가슴 아픕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눈물젖은 그 말씀에 어머님의 혁명전우들과 조객들 모두가 목놓아 통곡하였다.

9월 24일 오후 1시, 「빨치산추도가」가 비장하게 주악되는 가운데 항일의 혁명전우들과 당 및 국가지도간부들이 김정숙어머님의 영구를 발인하였다.

당중앙위원회 회의실앞마당을 떠난 어머님의 영구는 저택정문앞에 멈춰 섰다.

그 시간은 짧은 5분간이었다. 김정숙어머님께서 정든 가정과 사랑하는 자제분들과 마지막으로 작별하시는 순간이었다.

저택주변에 엄숙히 정렬해있던 경위대원들이 어머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쏟아지는 눈물속에 떠올리며 조포를 쏘아 올렸다. 눈물의 바다에 파도가 밀려온 듯 높아지는 울음소리와 더불어 조포소리는 하늘가로 메아리쳐 갔다.

어머님의 영구는 다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영구를 모신 마차는 연도에 빽빽이 늘어선 추모군중속을 지나 조객들의 세찬 흐느낌 소리를 뒤에 남기며 모란봉기슭으로 서서히 멀어져 갔다.

아, 어머니!

백두산밀영에서 전장의 땀에 절은 군복자락에 어리신 아드님을 감싸안고 고생속에 키우신 어머님이시었다. 배고파하는 아드님께 통강냉이죽을 먹이시고는 조국이 해방된 다음 옛말하면서 잘살아보자며 아픈 마음을 스스로 달래시던 어머님, 해방 후에는 아드님에게 옷과 양말을 기워 입히고 신기시면서 온 나라 아이들이 다 새 옷을 입고 새 양말을 신을 때 새 옷을 입고 새 양말을 신자고 하시던 어머님, 장차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이 나라, 이 민족을 부흥케 하라고 일찍이 어리신 장군님에게 빨치산군복을 입히시었고 총을 쥐어 주시었으며 달리는 군마위에 태워 지동치는 눈보라의 광풍속으로 서슴없이 떠밀어 주신 어머님이시었다.

그처럼 다정하시고 자애로우시며, 그처럼 굳세시고 열정과 낭만에 넘치시던 어머님과 가슴 미여지는  슬픔과  아픔속에  눈물로  영결하신 장군님께서는 어머님께서 계시던 방으로 달려가시었다.

언제나 환한 미소로 반겨 맞아주시던 어머님은 안 계시고 어머님께서 애용하시던 소형권총만이 소리없는 오열속에 장군님을 맞이하였다.

권총은 가슴이 젖어드는 숭엄한 추억을 불러왔다.

주체33(1944)년 3월 8일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조선인민혁명군의 이름난 명사수들이 사격경기대회를 할 때였다.

이 날 김정숙여사께서는 보병총과 권총사격에서 단 한발의 실수도 없이 모든 목표를 다 소멸하고 최고점수를 받으시어 단연 제1위의 영예를 쟁취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격경기를 총화하시면서 여사의 사격솜씨를 높이 평가하시고 표창으로 소형권총을 수여하시었던 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의 혁명정신이 어려있는 권총을 가슴에 안으시고 앞으로 이 권총을  마음의  억센  기둥으로  삼아  어머님의 유언대로 아버지장군님을 잘 받들어 모시고 혁명의 총대로 아버님의 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갈 굳은 맹세를 다지시었다.

역사의 그 날부터 그 권총은 그리운 어머님의 다정한 모습으로, 어머님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로, 어머님의 굳센 마음으로  안겨와  언제나 장군님곁에 함께 있었다.

어머님을 뜻밖에 여의신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며칠이 지난 어느날, 여동생과 함께 아버지장군님을 모시고 어머님의 묘소를 찾으시었다.

분묘앞에 꽃다발을 드리는 순간부터 자제분들은 슬픈 마음이 북받쳐 오열을 터뜨리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누이자제분들이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시며 말씀하시었다.

『 너희들은 어머니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어머니는 조선의 훌륭한 딸이었다. 그는 조선의 해방을 위하여 일찍이 손에 총을 잡고 10년세월 백두산에서 나와 함께 싸웠다. 아직도 백두산의 산발마다에는 너의 어머니의 피어린 자욱이 그대로 남아있다.

혁명의 길은 간고했지만 너의 어머니는 언제나 웃으며 싸웠다. 너의 어머니가 백두산줄기마다에 뿌려놓은 피와 땀은 헛되지 않았다. 오늘 우리 나라의 부강발전과 우리 인민의 행복한 생활속에는 수많은 혁명열사들과 함께 너의 어머니가 바친 수고가 깃들어 있다. 우리 인민은 그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은 어머니의 뒤를 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어머니처럼 조국의 훌륭한 아들딸이 되어야 한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아버님의 말씀과 당부를 가슴속에 깊이 새기시었다. 어머님의 유언을 언제나 잊지 않고 반드시 지켜 가리라 엄숙한 맹세를 다시금 굳게 다지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어리신 나이었지만 아버님께서 나라의 정사에 전심하실 수 있게 어머님을 대신하여 모든 일을 자신께서 스스로 다하시었다.

어린 동생을 보살펴 주시고 저녁마다 정원의 긴 의자에 앉아 돌아오시는 아버님을 마중하시었다. 새벽이면 어머님께서 쓰시던 장대를 드시고 정원에 나가 아버님께서 편히 쉬시옵기를 바라시어 지저귀는 새들을 날려보내군 하시었다.

어느날 새벽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드님이 길다란 장대를 힘겹게 휘저으며 참새떼를 쫓고 있는 것을 보시고 그 장대를 잡아드시며 저으기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었다.

『… 이제는 … 네가 이 장대를 쥐었구나.…』

정녕  어머님의  유언을  지켜  아버님을  충성으로  받들어  모시려는 높은   자각과   성실한  노력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일찍부터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내어 나갈 영도자적 자질과 풍모를 훌륭히 갖추어 나갈 수 있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