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34(1945)년 8월 15일, 일제는 항복하였다.

온 겨레가 일일천추로 갈망하던 조국해방의 역사적 위업은 마침내 성취되었다.

나라를 빼앗긴 때로부터 40여년의 기나 긴 세월, 참혹한 노예살이를 끝장 낸 민족의 환호는 삼천리를 진감하였다.

항일성전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끄시고 조국에 개선하신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34(1945)년 10월 10일 혁명의 참모부인 조선노동당을 창건하시고 나흘 후인 10월 14일 평양시환영군중집회에서 역사적인 개선연설을 하시었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개선연설에서 민주주의 새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건국사업에 적극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하시고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민주를 사랑하는 전민족이 굳게 단결하여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에 떨쳐 나설 것을 호소하시었다.

경애하는 수령님의 이 열렬한 호소는 온 나라를 애국애족의 열기로 들끓게 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인 그 해 11월 하순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어머님과 함께 원동의 훈련기지를 떠나 그립던 조국으로 향하시었다. 배를 타고 해방된 조국을 찾아오시는 장군님을 제일 먼저 반겨준 것은 등대의 밝은 불빛이었다. 쉬임없이 번쩍이는 조국의 등대는 어서 오라 부르는 듯 싶었다.

어느덧 배가 선봉항을 가까이하자 일행은 기쁨에 넘쳐 환성을 터치였다.

『 조국이다! 조국이 보인다!』

멀리 아침노을에 불타는 수려한 산봉우리들과 맑은 하늘, 그것은 정녕 백두광야에서 풍찬노숙하며 혈전수십만리를 헤쳐 되찾은 조국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처음으로 익히시는 그립던 조국의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었다.

어리신 장군님과 어머님, 항일혁명투사들 모두는 벅차 오르는 가슴을 붙안고 눈물속에 조국땅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조국에서의 뜻깊은 첫 밤을 선봉(당시 웅기)에서 지내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을 따라 청진에 나오시어 한달가까이 머무르시면서 함경북도일대의 공장, 기업소들과 당 및 경제, 문화기관, 학교들을 돌아보시며 들끓는 조국의 벅찬 현실을 목격하시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른 새벽이었다.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아드님을 앞세우시고 여성항일혁명투사들과 함께 바닷가를 찾으시었다. 동해의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 였다. 백두의 설한풍을 헤치는 그 간고한 시련속에서 여투사들이 조국땅을 얼마나 그리워했는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는 어머님께서 그들의 심정을 헤아리시고 해돋이구경을 조직하시었던 것이다.

이윽고 하늘과 바닷가 온통 붉은 빛으로 뒤덮였다. 온 수평선이 분출하는 용암과도 같이 끓어 번지더니 찬란한 태양이 솟아올랐다.

모두의 마음은 해솟는 바다처럼 설레었다.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 찾아주신 조국의 해돋이의 황홀한 정경은 새 조선의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막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보시며 여무진 목소리로 말씀하시었다.

『 어머니, 난 크면 조선을 태양의 나라로 만들겠어요.』

장군님께서는 해돋이를 보시면서 그것을 단순한 자연현상으로가 아니라 아버지장군님께서 찾아주신 조국의 벅찬 새 모습으로 보시며 조선을 아버지장군님의 나라, 태양의 나라로 빛내어 나갈 것을 다짐하시는 것이었다. 어리신 장군님의 그 포부와 결심이 정말 장하였다.

이 날 어리신 장군님의 웅지를 깊이 느끼시며 태양의 위업이 대를 이어 빛날 조선의 미래를 그려보시던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해솟는 조국의 동해바닷가에 다음과 같은 뜻깊은 시를 남기시었다.

 

동해의 해돋이 바라보니

내 가슴 바다처럼 설레이네

태양이 제일 먼저 솟아 빛나는 조선아

 

해방된 이 강산에 햇빛 찬란하니

내 20년세월 그리던 조국의 품

백두광명성 안고 돌아온 기쁨 끝없어

 

아, 조선아 영원히 떨치라

광명성 빛나는 태양의 나라로

 

동해의 장쾌한 해돋이를 맞으시며 가슴에 큰뜻을 품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머님과 함께 좌석도 없는 유개화차를 타시고 12월 22일 평양을 향해 청진을 떠나시었다.

12월 24일 김정숙어머님께서는 해방된 조국에서의 첫 생신날을 굼뜨게 달리는 열차에서 보내시었다. 덜커덩거리는 차바퀴소리, 난로가 연기를 피어 올리고 바닥의 노전과 몇장의 군용모포가 깔려있는 어스름한 차칸에서 어머님께서는 어리신 장군님과 동행한 여투사들과 함께 간소한 식사를 손수 지어 드시었다. 청진-평양행 유개화차는 29일에야 평양에 도착하였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평양에 도착하신지 3일만인 주체35(1946)년 1월 1일, 해방 후 처음으로 맞는 설날에 부모님을 모시고  「사향가」의 선율과 함께 늘 그려보던 만경대를 찾으시었다.

수십년세월 그리움과 기다림속에 열려져 있던 사립문, 조선독립의 뜻을 품고 여러 일가분들이 나서서는 돌아올 줄 모르던 만경대의 추녀 낮은 초가집의 그 사립문으로 김정일장군님께서 들어 서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증조할아버님 김보현선생님과 증조할머님 이보익여사 그리고 여러 친척분들과 동리노인들에게 차례로 인사를 드리시었다.

김보현선생님은 영채도는 눈빛, 백두의 기상이 차넘치는 증손자를 대견스럽게 바라보시며 목이 메이시었다. 그날밤 김보현선생님은 장손며느리에게 애국의 넋을 자랑으로 삼아온 이 집안의 혈통을 이어갈 증손자를 잘 키워 나라의 창창한 대를 잇게 하라고 간곡히 당부하시었다.

이튿날 김보현선생님께서는 장농에 고이 간수해 두시었던 벼루를 내놓으시면서 이것은 너의 할아버지때부터 쓰던 것이다, 너의 할아버지는 여기에다 먹을 갈아  『지원』이라는 글을 썼다, 나라찾을 큰뜻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었지, 다음은 너의 아버지가  『조선독립』이라고 썼다, 그래 우리 증손이는 무슨 글을 쓰겠는가고 물으시었다.

증조할아버님으로부터 붓을 받아드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잠시 생각을 고르시었다. 어린 가슴속에 간직해오신 생각을 불러내시는 듯 예지의 눈이 샛별처럼 빛났다.

이윽고 그분께서는 어머님께서 갈아주시는 먹즙을 붓에 듬뿍 묻히시더니 한자한자 정성담아 써 나가시었다.

『 김일성장군 만세!』

아버지 김일성장군님이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분이시라는 긍지와 자부심, 아버지장군님의 위업을 천세만세 길이 전하며 빛내어 나가겠다는 의지와 결심이 글자마다에 맥박치는 글발이었다.

동해의 해돋이를 보시며 우리 나라를 태양의 나라로 빛내겠다고 하신 역사의 맹세와 하나의 맥을 이루는 참으로 뜻깊은 글발이었다.

할아버님과 아버님께서 쓰신『지원』『조선독립』에 그분들의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사명감이  그대로  압축되어  있었다면 어리신 장군님께서 일필휘지하여 쓰신 『 김일성장군 만세!』에 역시 그렇듯 커다란 시대적, 역사적 무게가 담겨져 있었다.

만경대일가의 혁명정신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의 글발이었다.

그때 장군님의 나이는 네살도 채 못되시었다. 그 나이에 붓글씨를 쓰신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 글발에 그처럼 깊은 뜻을 담으신 것은 더욱 경탄할 일이었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지니신 아버지장군님에 대한 그분의 충성심의 무게와 남달리 뛰어난 천품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었다.

김보현선생님께서는 증손자분이 너무도 대견하고 기특하여 무릎을 치시며 『 옳다. 네가 만경대집의 혈통을 타고났구나.』 하고 말씀하시었다.

새 조국건설의 벅찬 숨결은 그대로 어리신 장군님의 심신을 키우는 자양분이었다.

어리신 그분께서는 새 조국건설이라는 장엄한 현실이 아버지 김일성장군님과 하나로 잇닿아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다.

언제나 바쁘신 아버님께서 잠시라도 편히 휴식하시고 기뻐하시게 하였으면 하는 것이 어리신 그분의 생각의 전부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자신이 부관이 되고 경위대원이 되기라도 하신 듯 아버님을 돌봐드리느라 마음 쓰시었고 그러한 일들에서 자신의 의사를 어떤 경우에도 굽히지 않고 관철시키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아버님께서 점심시간에 댁에 들어오시면 휴식을 보장해 드리기 위해 밖에 나가시어 경위대원들과 함께 스스로 보초병이 되시었다.

해방직후 추운 겨울 어느날 점심시간이었다. 평양에 와있던 소련군사령관인 스티코브장령이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오려고 댁에 찾아왔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정중한 자세로 그를 멈춰 세우시었다.

그분께서는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올수 없는가라는 스티코브의 물음에 지금 이 시간에는 만나뵈올수 없다고, 내가 누군지 아는가라는 물음에는 스티코브장령이라는 것을 안다고 대답하시었다.

허우대가 크고 위엄있게 생긴 스티코브장령과 어리신 장군님사이에 다시금 대화가 이어졌다.

『 정말 지금은 안되는가?』

『 절대로 안된다.』

『 내가 무섭지 않은가?』

『 난 겁쟁이가 아니다.』

『 그럼 어떻게 하라는가?』

『 기다리면 된다.』

『 좋다. 기다리겠다.』

때마침 밖에 나오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뵈온  소련군사령관은 수령님께  『 나는 작은 김일성동지에게 두손을 들었습니다. 내가 졌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이것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눈을 좀 붙이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시간을 지키시어 스티코브장령과  「대결」하신 어리신 장군님에 대한 일화이다.

그때 스티코브는 여느 아이들 같으면 기가 눌리워 고분고분 요구에 응할 어리신 나이에 대국의 지위 높은 장령앞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시고야마는 담력과 배짱 그리고 추운 날씨에 밖에 서있는 자기에게 친절히 예의를 표시하시는 따뜻한 인정미에서 지, 인, 용을 겸비하신 김정일장군님의 영장적인 기질을 보았다. 그는 그때부터 진정 어린 목소리로 장군님을 『어린 영웅』, 『소년장군』이라고 호칭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려서부터 남아다운 호방한 성품을 지니시고 순간도 멈춤이 없이 분방하게 활동하시었다.

해방직후 인민군대의 한 책임일군으로 사업하였던 항일혁명투사 안길동지 역시 늘 어리신 장군님을  「총사령」이라고 부르며 존대하여 마지 않았다. 그는 말 잘 타고 총 잘 쏘고 군사놀이에서도 언제나 대장이 되시어 묘한 작전으로 백전백승하시는 어리신 장군님의 비범한 군사적  천품에 경탄을 금치 못하며 그분이시야말로 장차 조선인민군의 「총사령」감이라고 확신하였다.

어린시절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군사놀이를 제일 좋아하시었다. 그분께서는 군사놀이 때마다 대장이 되시어 매번 이기군 하시었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세상에서 군대가 제일이라는 생각을 가지시었다.

언제인가 유치원에서 학부형회의 때 보여 줄 유희를 준비하면서 노래와 춤  「 나는 나는 될 터이다」를 연습하였는데 교육가, 의사, 과학자, 무용가, 노동자, 인민군대 순서로 나와 자기의 희망을 노래하게 하였다.

교양원은 김정일장군님께서 교육가가  될 터이다 라고  노래를  부르며  맨  선참으로  나오시게  한 후  연습을 시키었다.  연습이  끝나자 장군님께서는 매우 좋지 않은 안색으로 유희를 하지 않겠다고 하시었다. 교양원은 뜻밖이어서 왜 그러시느냐고 물었다.

이때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가 제일 좋은데 왜 나중에 나오는가고 반문하시었다.

교양원은 그분의 의견대로 인민군대가 될 터이다를 첫 순서에 놓고 그분께서 출연하도록 하였으며 다른 순서도 내용에 따라 바꾸어 놓았다. 출연구성을 고쳐놓으니 인민군대가 제일이라는 사상도 강해지고 노래와 춤의 전반흐름도 조화롭고 기백이 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려서부터 말타기를 즐겨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다섯살이 되어서는 혼자서 말을 타고 달리시었는데 한번도 말에서 떨어진 적이 없으시었다.

여느 아이들 같으면 나무막대기를 타고 장난에 취할 죽마시절에 장군님께서는 벌써 준마를 타고 채찍을 휘두르시며 경위대원들과 경주까지 하시었다. 일단 말안장에 올라앉으시면 처음에는 속보로, 다음에는 구보로, 그 다음에는 질풍같이 말을 몰아 습보로 달리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린 시절에 사격도 잘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드님에게 말 잘 타는  장수는  총도  잘 쏴야  한다고  하시며 총을  좋아하도록  이끌어주시었다.  백두산시절부터 아드님에게 총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어머님께서는 해방 후 「책책이」라고 부르는 공기총을 마련해 주시고 어리신 장군님의 사격훈련을 세심히 지도해 주시었다.

어느날 경위대사격장을  돌아보시고  사격좌지에  이르신  김정숙어머님께서는   권총을  들고  사격자세를  취하시었다.   권총을  보신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어머님께 권총을 한번 쏴보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었다.

권총에서 탄알을 꺼내신 다음 조준격발법을 배워주신 어머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과녁이 없이 아무데나 대고 첫 사격을 해서는 안된다. 큰뜻을 가지고 첫 사격을 해야 한다.

어머니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첫 사격날에 장군님을 모시고 끝까지 혁명할 결심을 다지면서 일제놈들을 몰살시켰다. 나는 그 날에 다진 맹세를 지켜 이 권총을 억세게 틀어 잡고 장군님을 목숨 바쳐 보위하여 왔다.

너도 어서 커서 이 권총으로 아버님을 보위하고 높이 받들어 모셔라. 나는 네가 아버님처럼 훌륭한 장군이 되기를 바란다.』

작은 가슴에 큰뜻을 받아 안으신 어리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후 날마다 권총을 잡고 사격법을 익히시었다.

이러한 나날이 흘러 마침내 장군님께서 사격솜씨를 보여 드리는 날이 왔다.

이날 모두가 긴장하여 지켜보는 가운데 목표를 조준하신 장군님께서는 방아쇠를 당기시었다.

『 땅, 땅, 땅.』 하고 야무진 총성이 세번 울렸다. 총탄 세발이 다 명중되었다.

당시 경위대원으로서 장군님의 말타기와 총쏘기솜씨를 목격한 항일혁명투사 이을설동지는 자기의 회상실기에 이렇게 썼다.

『 옛 병서에 이르기를 기마술과 검술, 궁술을 장수의 3대장기라고 하였다. 장수가 되자면 말을 잘 타고 칼을 잘 쓰고 활을 잘 쏘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칼이나 활은 옛날에는 군사들의 기본무기였지만 오늘날에는 총이 칼과 활을 대신하는 군사의 기본무기이다.

그러므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겨우 5∼7살의 어리신 나이에 말타기와 총 쏘기에서 그처럼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셨으니 그분께서는 이미 죽마시절에  「장수의 3대장기」에 도통하신 셈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 나날에 군사문제를 국사중의 국사로 여기시는 아버님의 심원한 뜻을 가슴깊이 새겨 안으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