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님께서 어리신 나이에 비해 정신적으로 조숙하시었던 것은 빨치산의 물을 마시며 자라시었기 때문이었다. 백두산투사들이 지니고 있던 고결한 정서가 풍만한 자양분이 되어 그분의 넋속에 그대로 흘러 들었고 백두산의 멧부리처럼 억센 그들의 기질은 장군님의 남아다운 성격에 피와 살을 보태주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도 우주의 생명을 느낀다는 말이 있다.

어리신 장군님과 늘 함께 생활하던 항일혁명투사들은 그분의 웃고 뛰노시는 몸가짐 하나하나에서 남달리 일찍이 싹튼 백두산장부다운 기질과 기개, 백두산장군다운 기품을 피부로 느끼며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보통아이들 같으면 철이 없을 유년시절부터 장군님께서는 군복입은 투사들과 꼭같이 생활하시는 어린 군인이시었다.

언제인가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자신은 3살때부터 군인이었으며 자신의 병사생활은 백두산에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시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몸에 덮은 것은 어머님의 군복이었고 처음으로 손에 쥔 것도 어머님의 권총이었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었다.

빨치산대원들의 사격소리를 귀에 익도록 들으며 자라신 장군님께서는 총포성에도 놀램을 모르시었다. 빨치산대원들의 용맹한 모습을 매일 눈에 새기며 자라신 그분께서는 그들처럼 담이 크시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훈련기지에서 진행되는 빨치산대원들의 용맹한 군사훈련모습도 목격하시고 지휘관들의 멸적의 돌격구령소리도 들으면서 군사를 익히시었고 총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시었다. 그분께서 본을 따신 것도 군대동작이고 군사규율이었다.

어리신 장군님께서 훈련기지에서 생활하신지 얼마 안되던 어느날,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던 빨치산대원들은 병영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집채같은 바위에 오르려고 애쓰시는 어리신 장군님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뵈옵게 되었다. 그 바위는 물매가 급한데다가 경사면이 매끄러워 그 나이에서는 타고 오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바위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바위를 얼마쯤 오르다가는 미끄러져 내려오시고   또  얼마쯤 톺아  오르다가는  아래로   굴러   내려오시었다.   하지만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물러서지 않고 몇번이나 다시 오르던 끝에 마침내 그 바위를 정복하시었다.

어리신 그 시절에 벌써 사람들을 감탄시킨 장군님의 특유의 투지와 용기, 그 불굴의 의지와 피나는 노력에는 백두산영장의 기개가 어려있었다.

그러한 장군님을 빨치산대원들은 백두산의 호걸이라고 칭송하며 안아도 주고 목마도 태워주었다.

그 무렵이었다. 하루는 빨치산대원들이 사령관동지께서 거처하시는 귀틀집앞을 지나다가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귀틀집마당에 사격훈련용조준틀과 목표판이 갖추어져 있었는데 어리신 장군님께서 땅에 엎디시어 조준틀에 설치되어있는 조성, 조문을 들여다보시며 조준연습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 연습동작이 어찌나 익숙 되었던지 모두 탄복했다.

빨치산대원들이 장군님을 안아 일으키고 조성, 조문을 들여다보니 신통히도 목표판의 동그라미안에 정확히 겨냥되어 있었다.

흙장난이나 할 애어린 나이에 장군님께서 조준연습을 하시었으니 놀랍다 못해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세상에 이름 난 명장의 전기를 다 뒤져보아도 두 세살의 나이에 사격조준연습을 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이야말로 역사에 없는 일이 아닌가!』

『과연 우리 나라 장군감이 다르다!』

항일혁명투사들은 너나없이 이렇게 감탄하며 더없이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오늘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백발백중의 신묘한 사격술을 지니신 영장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분께서 지니신 사격술은 날아가는 새도 좌우양손연발사격으로 명중시키시는 비범한 사격술이다. 「명궁」위에 「신궁」이 있는 것처럼 「명사수」의 경지를 초월한 장군님의 신묘한 사격술은 그분께서 유년시절부터 항일의 전장에서 꾸준히 익혀오신 것이다.

그분께서는 「낙하훈련」도 하시었으며 어른들도 힘들어하는 스키타는 연습도 열심히 하시었다.

어느 해 겨울이었다.

빨치산대원들이 훈련하는 것처럼 스키타는 법을 배워 달라는 어리신 장군님의 청을 받으신 어머님께서는 스키는 위험해서 어른들도 타기 힘드니 좀 더 큰 다음에 배워주겠다고 타이르시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기어코 당장 배우시겠다면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시었다. 물러설 줄 모르는 아드님의 성미를 잘 아시는 어머님께서는 그 청을 받아들이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처음 얼마동안은 어머님께 이끌리어 동작을 익히시었는데 며칠후부터는 혼자서 스키를 타게 되시었다. 스키를 타고 경사진 산판을 속도있게 지쳐 내려오시는 어리신 장군님의 대담무쌍한 모습을 빨치산대원들은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았다.

당시 어리신 장군님의 그와 같은 담력과 대담성에 큰 감동을 받았던 한 항일혁명투사부부는 훗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탄생 50돌을 맞으며 김정숙여사와 함께 스키를 타시는 어리신 장군님을 형상한 조선화 「백두의 정기를 안으시고」를 창작하게 하였다.

주체81(1992)년 2월 어느날 인민무력부혁명사적관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전시된 그 그림앞에서 오래도록 발길을 떼지 못하시며 유년시절을 감회깊이 회고하시었다.

백두산의 품에서 생의 첫걸음을 떼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항일의 폭풍우속에서 강인담대한 영웅남아로, 장군다운 예지와 담력, 호방한 성격을 지닌 어린 장군으로 성장하시었다.

빨치산의 아들이신 장군님의 성장과정은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었다.

하기에 항일혁명투사 김책동지는 백두의 기상을 그대로 닮으신 장군님을 늘 「어린 장군」이라고 하였다.

이 호칭에는 김정일장군님께서 항일의 전설적 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처럼 백두의 슬기와 기상을 지니신 천출명장이 되어주시기를 바라는 주체혁명의 첫 세대들의 염원과 기대가 뜨겁게 담겨져 있었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항일의 여성영웅이신 김정숙여사의 염원이었고 기대였다. 여사께서는 아드님께서 백두산장군이신 아버님께 충직한 참다운 빨치산의 아들이 되기를 바라시었다.

여사께서는 아버님의 존함에는 어둠을 밝히는 태양이 되어주실 것을 바라는 혁명동지들과 우리 인민의 염원이 담겨져 있다고 하시면서 달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밝게 보이며 하늘의 수많은 별들도 다 태양의 빛을 받아서 반짝이는 것이라고, 저 하늘에 별이 아무리 많아도 태양을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아버지장군님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고 가르쳐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아버님은 이 세상 만물에 빛과 열을 주는 하늘의 태양과 같이 인민들에게 광명을 주고 앞길을 밝혀주는 만민의 태양이시라는 철리를 가슴에 깊이 새겨 넣으시었다.

여사께서는 늘 아드님에게 『어서 커서 아버님을 잘 모시고 아버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조국과 인민을 위해 몸 바쳐 일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경애하는 수령님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심을 지니도록 일깨워주시었다.

그리하여 장군님께서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장군님에 대한 충성의 마음을 가슴깊이 간직하시었다.

주체34(1945)년 2월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는 어느날이었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방비를 들고 나가 마당에 쌓이는 눈을 쓸기 시작하시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한 여성유격대원이 눈이 멎은 다음에 자기가 쓸겠으니 어서 방으로 들어가시자고 하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아버지장군님께서 오실 길인데 자신께서 쓸어야 한다고 하시며 일손을 멈추지 않으시었다.

이때 마당비를 들고 다가오신 어머님께서는 여대원들에게 벌써 아버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어떤 땐 자신께서도 미처 따르지 못하겠다고 하시며 아드님과 함께 눈을 쓰시었다.

얼마 후 마당가에 들어서신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이 사연을 들으시고 아드님을 번쩍 들어올리시며 『우리 정일이가 참 용한데?! 벌써 아버지를 생각할 줄 알구.』 하시며 못내 만족해 하시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날의 모습은 그대로 백두산을 닮아 늠름하게 성장하신 「어린 장군」, 백두산장군의 참 모습이었다.

조국해방의   대사변이  다가오고   있던   역사적 시기 항일대전승리의   포성이   울리는   백두산에서    빨치산의   아들로   탄생하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처럼 혁명적 성장의 빛나는 자욱을 새기시며 조국과 민족의 아들, 백두산의 아들로 억세게 자라나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