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누리려는 것은 인민들의 세기적 염원이며 이상이다.

인민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문명하게 잘살도록 하는 것은 나라와 민족을 이끄는 영도자의 숭고한 의무이다. 인민생활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는가 하는데서 영도자의 고결한 풍모, 인민의 어버이로서의 위대한 덕망이 집중적으로 발현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은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바쳐가시는 절세의 애국자, 인민적 영도자의 빛나는 귀감이시다.

인민들에게 세상에 부럼없는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련해주는 것은 김정일장군님의 필생의 목표이고 확고한 이념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부강조국건설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일하는 것, 이것이 나의 삶의 목표이고 보람입니다.』

절세의 애국자의 숭고한 인생관을 보여주는 참으로 뜻깊은 말씀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구상하시고 실천해 나가시는 강성대국건설의 목적도 바로 인민들을 잘살게 하자는 데 있다.

일찍이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것을 투쟁의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생활향상을 혁명활동의 최고원칙으로 내세우시며 오로지 인민을 위한 영도의 머나먼 길을 걸어오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  절세의 애국자가 바로 경애하는 장군님이시다.

장군님의 혁명활동의 전 역사가 다 그러하지만 특히 준엄한 고난과 시련으로 가득찼던 1990년대 중엽부터 오늘에 이르는 기간은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바치신 장군님의 친어버이의 뜨거운 사랑과 불면불휴의 노고가 우리 민족사에 눈물겹도록 수놓아진 애민헌신의 나날이었다.

인민생활향상에 기울이신 김정일장군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노고는 우리 조국과 인민이 유례없이 간고한 시련을 이겨낼 수 있게 한 근본원천으로 되었다.

「고난의 행군」시기 가장 심각한 문제로 제기된 것은 식량난이었다. 사회주의시장의 붕괴와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책동으로 인한 경제난은 농기계와 화학비료생산을 비롯하여 농업분야에도 막대한 피해를 가져다 주었다. 더욱이 1990년대 중반기에 몇해째 계속된 혹심한 자연피해는 일찍이 있어본 적이 없는 식량난을 초래하였다.

긴장한 식량사정으로 하여 겪는 인민들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가슴아파하신 분은 김정일장군님이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자신은 지금 우리 인민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것이 제일 가슴아프다고, 요즘은 앉으나 서나 누우나 어떻게 하면 우리 인민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더 잘살게 하겠는가 하는 생각뿐이라고 하시면서 어느 하루, 한 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하시고 심려에 심려를 거듭하시었다.

자식의 배고픔을 제일로 가슴아파하며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기를 아낌없이 희생하는 것이 친어버이의 심정이고 헌신이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인민들의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한시 바삐 해결하시기 위하여 친부모의 심정으로 마음을 쓰시며 최선을 다하시었다.

농사문제를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기 위한 기본열쇠로 규정하신 장군님께서는 전당, 전군, 전민이 『농사제일주의』구호를 들고 농업생산에 총 집중하도록 하시었다. 특히 조국수호의 전초선을 지켜선 인민군대가 협동농장들에 나가 한해농사를 맡아 수행하도록 하는 조치까지 취해주시었다. 이것은 농업전선을 사회주의수호의 기본전선으로 보신데로부터 내리신 중대결단이었다.

하기에 그분께서는 자신께서 직접 농업전선을 틀어쥐시고 농업부문 사업을 진두에서 지휘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난 시기 농사방법을 일률적으로 내리먹이던 편향을 없애고 농사를 농민이 주인이 되어 주체농법의 요구대로 지을 수 있도록 일련의 해당한 조치도 취해주시었다.

농업생산을 치켜세우고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울이신 장군님의 노고와 심혈은 특히 감자농사에서 일대 전변을 안아오신데서 뜨겁게 발현되었다.

감자는 식용적 가치뿐아니라 장수식품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되면서 대대적으로 재배생산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로 되어있다.

알곡작물생산조건이 불리한 북부산간지대의 경우 강냉이는 정보당 1~2t밖에 낼 수 없지만 감자는 20~30t씩 낼 수 있으며 최고 60~80t까지도 낼 수 있다. 감자를 30t만 내도 알곡으로 환산하면 7~8t, 60t을 내면 알곡은 15t 생산하는 것으로 되는데 이것은 식량문제해결에서 큰 고리를 풀 수 있는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하여도 농업부문 일꾼들속에서는 감자를 부식물로 취급하면서 논벼나 강냉이농사에 비해 감자농사를 소홀히 하는 편향이 남아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감자농사만 잘해도 식량문제도 풀 수 있고 고기문제도 풀 수 있다고, 감자는 흰쌀과 같다고 하시면서 감자농사에 대한 종전의 관념을 타파하고 우리 나라 감자농사에서 혁명적인 전환을 일으킬 결심을 하시었다.

감자농사에서 식량문제해결의 확고한 전망을 내다보신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를 아시아의  「감자왕국 」으로 만드실 대담한 목표를 내걸고 백두대지에 자리잡은 대홍단군을 본보기로 감자농사혁명의 불길을 지펴 올리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7(1998)년 10월과 주체 88(1999)년 8월, 주체89(2000)년 3월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대홍단군을 현지지도하시면서 감자종자문제로부터 감자의 바이러스감염방지문제, 땅의 지력문제, 감자농사의 종합적 기계화와 노력문제 그리고 감자저장과 수송, 감자가공에 이르기까지 감자혁명을 일으키는데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고 해당한 대책을 취해주시었다.

자신께서 친히 감자농사사령관이 되겠다고 하신 장군님께서는 나는 감자농사에 힘을 넣어 끝장을 보려고 한다, 감자농사에 대하여서는 흐지부지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하시면서 감자농사를 잘해서 식량문제를 반드시 해결하실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시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대홍단군의 실무일꾼들을 외국에도 내보내어 견문을 넓히도록 하시었고 세계적으로 이름있는 다수확감자종자도 내려보내주시었다. 그리고 대홍단군에 수천t의 감자전분생산능력을 가진 현대적인 감자전분가공공장도 세우도록 하시고 수백t 능력의 돼지목장들을 분장마다 일떠세워 물거름문제도 풀고 고기문제도 풀도록 하시는 한편 대홍단군의 감자농사경험을 전국에 일반화하도록 하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었다.

삼복의 무더위도 북방의 사나운 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때로는   군감자  한알로   끼니를   에우시며 대홍단군을   찾고  또 찾으신 분도 장군님이시다. 그분께서는 감자꽃바다를 펼쳐놓은 포전에 들리시어 감자농사작황을 일일이 요해하시고 여러가지 농기계들의 가동상태까지 하나하나 보아주시며 감자농사의 종합적 기계화의 방향도 밝혀주시었다. 평범한 제대군인가정에도 들리시어 친부모의 심정으로 살림살이형편을 알아보시고 앞으로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지어주셨으면 하는 제대군인 아내의 소청도 받아주시며 아들을 낳으면 대홍이, 딸을 낳으면 홍단이로 이름짓게 하신 가슴 뜨거운 이야기도 장군님 이어가신 대홍단현지지도의 나날에 꽃펴난 사랑의 전설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헌신의 노고가 있어 백두대지에서 타오른 감자농사의 불길은 온 나라에 세차게 타 번져 이 땅에서는 감자농사의 새로운 전변이 일어났다.

대홍단군에서만도 주체89(2000)년에 군이 생겨 처음으로 ha당 평균 30여t을 생산하였고 전국적으로 감자재배면적이 훨씬 늘어나 감자생산에서 경이적인 성과들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알곡생산을 늘이기 위하여 두벌농사방침을 제시하시어 식량문제해결의 확고한 전망을 열어 놓으시었다.

국토의 80%가 산이고 부침땅면적이 제한되어 있는 우리 나라의 현실적 조건에서 식량문제를 자체로 풀기 위한 방도의 하나는 땅의 이용률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본방도로 제시된 것이 두벌농사였다. 두벌농사는 어버이수령님의 간곡한 유훈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높으신 뜻을 이으시어 『알곡생산을 늘이자면 결정적으로 두벌농사를 하여야 합니다. 우리 나라 조건에서 식량문제를 푸는 길은 그 길밖에 없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여러 단위들에서 거둔 두벌농사경험을 전국에 일반화하는 한편 두벌농사를 할 수 있는 종자를 확보하고 두벌농사면적을 대담하게 늘이는 것을 비롯하여 제기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해당한 대책을 세워주시었다.

주체87(1998)년 10월 장군님께서는 두벌농사방침을 관철하는데서 훌륭한 성과를 이룩한 황해남도 연안군 읍협동농장 일꾼들에게 국가적인 표창도 하여 주시고 그들모두를 평양으로 불러 금수산기념궁전에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영전앞에 세워주시고 평양참관의 즐거운 나날을 보내도록 은정어린 배려를 돌려주시었다.

두벌농사를 잘할 데 대한 장군님의 기대와 믿음, 사랑은 농업근로자들을 드높은 생산의욕으로 끓어 번지게 하였다. 하여 장군님의 의도대로 정주 이남지역은 물론 북부산간지대에서도 알곡 대 알곡을 기본으로 하는 두벌, 세벌농사가 대대적으로 벌어지게 되었다.

선군영도의 그 바쁘신 나날에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러 협동농장들을 친히 찾아주시어 두벌농사정형을 세심히 요해하시었으며 수많은 사랑의 전설들을 꽃피우시었다.

두벌농사를 지어 크게 성공한 자강도의 어느 한 협동농장을 주체88(1999)년 한해동안에만도 두차례씩이나 찾아주신 장군님께서는 대단하다고 그들의 성과를 치하해주시고 그곳 관리일꾼을 시대의 영웅으로 내세워주시는 영광을 안겨주시었다.

주체89(2000)년 8월 어느날 이른새벽 함경남도 함주군의 한 협동농장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지만 2모작 논벼작황에 그리도 만족하시어 동행한 일꾼들에게 이런걸 보고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고 기쁨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었다. 그러시고는 우산을 사양하신채 빗물에 옷을 흠뻑 적시시며 진탕밭이 되어버린 논두렁길을 걷고 또 걸으시었다.

인민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일이라면 새벽의 찬비를 맞으며 진창길을 걸으시는 것도 낙으로 여기시는 분이 경애하는 장군님이시다.

장군님의 이렇듯 뜨거운 헌신의 노고가 그대로 햇빛이 되고 자양분이 되어 협동벌 그 어디에서나 두벌농사의 좋은 결실이 펼쳐지게 되었고 오랜 세월 단작경리에 머물러있던 이 땅에 두벌농사의 전성기가 펼쳐져 식량문제해결의 밝은 전망을 내다보게 되었다.

농업생산을 늘여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시려는 장군님의 노고와 심혈은 토지정리의 새 역사를 열어놓으시어 알곡증산의 튼튼한 물질적  토대를 마련하신 불멸의 업적에도 뜨겁게 어려있으며 종자혁명방침을 제시하시고 우리 나라의 기후풍토에 맞으면서도 수확고가 높은 종자들을 많이 육종, 재배하도록 하시기 위해 마음써오신 그 나날에도 자욱자욱 새겨져 있다.

인민생활향상에 기울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애민헌신의 세계는 비단 식량문제 하나에만 국한되어있지 않다.

농사를 잘 지어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고기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여 우리  인민들에게  흰쌀밥에 고기국을 배불리 먹이시려는  것이 장군님의 확고한 결심이었다.

이를 위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풀먹는 집짐승을 많이 길러 인민들이 그 덕을 보도록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산이 많은 우리 나라에서는 어디에서나 소, 염소, 토끼를 비롯한 풀먹는 집짐승을 많이 기를 수 있다고 하시며 결심하고 달라붙으면 축산업을 얼마든지 발전시켜 우리 인민들을 잘살게 할 수 있다고 일꾼들을 깨우쳐 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미 제시되어있는 풀과 고기를 바꿀 데 대한 방침을 일관하게 견지하시고  소, 염소, 토끼를 비롯한 풀먹는 집짐승기르기에서 전환을 가져올 대담한 작전을 펼치시었다.

장군님의 의도에 따라 함경남도를 비롯한 전국각지에서 풀판조성사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덩지 큰 전문축산기지들이 일떠서게 되었으며 염소를 비롯한 풀먹는 집짐승들을 기르는 된바람이 일어번지게 되었다.

축산업발전의 전성기를 마련하시는 그 나날 장군님께서는 친히 축산전문가가 되시어 풀판조성으로부터 토종집짐승의 보존과 개량, 우량품종확보와 먹이문제해결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세심한 지도를 주시었으며 이 사업을 중도반단함이 없이 끝장을 볼 때까지 근기있게 밀고 나가도록 이끌어주시었다.

그리하여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3년어간에만도 염소마리수는 4배로 늘어났으며 주체88(1999)년 한해만 놓고 보아도 연초에 비해 연말에는 토끼마리수가 5배나 늘어나는 성과가 이룩되었다.

함흥청년염소목장과 계남목장을 비롯한 큰 규모의 전문목장들과 은정농장, 구빈농장과 같은 축산전문협동농장들이 도처에 일떠서 고기와 젖생산을 정상화함으로써 인민들이 실지로 그 덕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인민들의 먹는 문제해결에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친어버이사랑은 그처럼 어려웠던 시기 많은 자금을 들여 현대적인 소목장, 닭공장, 메기공장들을 일떠세워 우리 인민들에게 고기와 알이 더 많이 차례지도록 하여 주신데도 뜨겁게 어리어있다.

우리 나라 굴지의 현대적인 소고기생산기지로 일떠선 송암명기소목장과 가금업발전의 새 전성기를 열어놓은 황주닭공장을 비롯한 최신식현대적닭공장들, 메기떼 욱실거리는 희한한 메기공장들은 다 그처럼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시기 경애하는 장군님의 직접적인 발기와 통이 큰 작전에 의해 일떠선 고귀한 창조물들이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현대과학기술에 기초한 속성비육방법으로 소고기를 생산하는 송암명기소목장을 건설하도록 하시었을뿐아니라 목장이 완공되었을 때에는 친히 현지에 나오시어 목장의 능력을 2배로 확장할 데 대하여 가르쳐주시고 필요한 건설자재와 경영용설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해결해 주시었다.

우리 나라 가금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대담한 목표를 제시하신 장군님께서는 황주닭공장을 비롯한 최신식닭공장들을 자금을 아끼지 말고 대대적으로 건설하도록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설비를 하나 들여와도 세계적으로 제일 좋은 설비들로 골라 들여오도록 하시고 공장에서 기를 병아리문제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대책을 세워주시었다.

새로 일떠선 현대적인 닭공장들을 찾으실 때마다 인민들에게 고기와 알을 더 많이 생산하여 보내주자고 말씀하시는 장군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우러를 때면 인민들은 한없는 고마움으로 눈굽을 적시군 한다.

인민들에게 이 세상 좋은 것은 다 안겨주시려는 장군님의 아낌없는 사랑은 이 땅에 타조가금업의 새 역사도 펼쳐놓았다.

타조가금업은 그 생산성과 경제적 수익성으로 하여 21세기의 이상적인 가금업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초기투자가 방대한 것으로 하여 발전된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업종이다.

더욱이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당시의 우리 나라 실정에서 방대한 투자를 요구하는 타조가금업을 개척한다는 것은 누구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물며 나라가 어려운 때 타조고기를 못 먹는다고 섭섭해할 사람은 더구나 없었다.

하지만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닭만이 아니라 오리, 거위는 물론 타조까지 길러 인민들의 식생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대규모타조목장건설을 발기하시었다.

목장건설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신 장군님께서는 해외동포상공인이 보내온 2백여마리의 타조도 친히 목장에 보내주시고 타조사양관리에 필요한 최신과학기술자료와 설비들도 해결해 주시었다.

주체89(2000)년 12월 어느날 초겨울의 찬바람을 맞으시며 완공된 타조목장을 찾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날개를 활짝 펴고 춤추듯 뛰노는 타조들을 정겹게 바라보시며 인민들에게 타조고기를 먹이게 된데 대하여 더없이 만족해 하시었다.

이렇듯 인민을 위해서라면 돌위에 꽃을 피우고 하늘의 별이라도 따오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친어버이사랑에 떠받들려 현대적인 메기공장과 기초식품공장, 즉석국수공장, 정제소금공장, 대동강맥주공장을 비롯하여 인민들의 식생활향상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다 주는 창조물들이 전국도처에 수많이 일떠서게 되었다.

그 창조물들마다에서 쏟아져 나오는 갖가지 생산물들은 인민의 식탁위에서 고난의 흔적을 가셔내고 있다.

닭고기쟁반국수, 닭발쪽튀기, 메기탕, 타조불고기, 염소젖치즈와 버터, 대동강맥주…

「고난의 행군」, 강행군과 더불어 새롭게 생겨난 이 모든 것들은 다   인민에 대한   끝없는   헌신으로  뜨거운 사랑의 세계를 펼쳐오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애국업적의 소중한 결정체들이다.

인민들의 먹는 문제는 물론 입고 쓰고 사는 데서도 남부럽지 않게 하시려고 마음을 써오신 장군님의 헌신의 세계는 또 얼마나 뜨거운 것이랴.

이 세상에서 제일 좋고 훌륭한 것은 다 인민들에게 차례져야 하고 인민들의 생활조건도 최상으로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장군님의 지론이다.

인민을 제일로 위하시는 김정일장군님이시기에 어느해인가 신의주화장품공장을 찾으시어서는 수출전용 고급화장품을 생산전량 다 인민들에게 공급하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었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이제 우리 인민들이 지금과 같이 어려울 때 이런 좋은 제품이 나오고 그것을 자기들이 쓰게 된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자신께서는 형언하기 어려운 고난속에서도 오직 당만을 믿고 따르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다 주고 싶다고, 지금 조건이 허락치 않아 그렇지만 강성대국을 건설한 다음에는 인민모두를 고급화장품으로 단장시켜 세상에 「선녀」, 「선남」으로 내세우겠다고 진정어린 말씀을 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또 언제인가는 외국방문의 길에 쌓이신 피로도 푸실새 없이 그길로 신의주시내 경공업공장들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었다. 그리고 온 나라 인민들이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으로 가슴끓이던 몇해전 7월의 어느날에는 평양시내의 경공업공장들을 현지지도하시며 인민들이 쓸 치약과 치솔, 세수비누의 질까지 헤아려 주시었다. 언제인가 영변견직공장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나는 비단천을 많이 생산하여 인민들에게 마음대로 팔아주며 신랑신부들과 자식을 거느린 부모들이 상점에 가서 마음대로 골라 사가는 것을 보면 원이 없겠다고, 비단천을 수출하지 말고 우리 인민들에게 공급하도록 하자고 말씀하실 때 절세의 위인의 인민사랑이 너무도 고맙고 뜨거워 일꾼들과 노동자들은 솟구치는 격정을 금할 수 없었다.

인민들이 입고 쓰는 것이라면 옷감으로부터 신발과 화장품, 세수비누와 치약, 치솔은 물론 숟가락과 젓가락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관심하시며 하나라도 더 많이, 하나라도 더 좋게 만들어 안겨주시려는 인민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은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는 무한대의 사랑이다.

아직까지 우리 인민의 생활에서는 부족되는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탓하거나 비관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오히려 우리 인민의 가슴속마다에는 남다른 자부심이 있다.

그것은 애민헌신의 자애로운 김정일장군님을 친어버이로 모신 긍지, 그분의 태양과도 같은 사랑을 마음껏 받으며 사는 인민된 자부심이다.

이 땅의 수천만 자식들을 위하는 그분의 열렬한 사랑과 헌신이 있었기에 인민들은 배고픔과 고통, 죽음과 파멸의 무서운 고비에서 구원될 수 있었고 오늘처럼 고난의 흔적을 털어버리고 승리의 노래를 소리높이 부를 수 있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남들이 제아무리 금의옥식과 부귀영화를 자랑해도 우리 인민은 하나도 부러울 것이 없다.

힘있고 존엄있고 행복한 자주적 삶이 강국의 중요한 징표이다.

세계에는 경제력으로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나라가 적지 않다. 「국민총생산액」으로 물질적 풍요를 떠드는 나라도 있다.

그러나 인민대중의 자주적 삶이 꽃피는 나라, 인민의 행복한 웃음이 만발하는 나라는 이 행성위에 오직 사회주의 내 조국뿐이다.

인민들은 주체의 강성대국, 행복의 낙원을 가꾸시며 걸으시는 장군님의 현지지도의 발자욱소리를 아침마다, 저녁마다 신문에서, 방송에서 들으며 격정에 목메인다.

조국과 민족, 인민은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인민을 얼마나 열렬히 사랑하시었는가를, 자신을 다 바쳐 얼마나 뜨겁게 보살펴 주시었는가를.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장군님의 한없이 뜨거운 사랑속에 인민들 모두가 세상에 부럼없이 행복하게 살 강성대국의 휘황한 내일, 그것은 미래가 아니라 오늘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