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의 뒤에는 위대한 가문이 있다. 애국의 가문에서 애국자가 나오고 명장의 가문에서 명장이 배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천출명장, 선군태양으로 높이 솟아오르신 것은 총대중시, 군사중시의 위대한 가문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위대한 장군님의 가문은 총대를 귀중히 여기시고 총대에 의거하여 애국을 하시고 혁명을 하여 오신 총대중시, 군사중시의 가장 애국적이고 혁명적인 가문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안아 올린 백두산가문은 총대로 혁명을 개척하고 총대에 의거하여 조국해방을 이룩한 현대조선의 위대한 선군총대가문이다. 총대를 중시하는 것은 김정일장군님을 선군태양으로 받들어 올린 백두산가문의 선군전통이며 장군님께서 백두산장군들이신 아버님과 어머님으로부터 이어받은 고귀한 선군혈통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아버님이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선군사상의 창시자, 선군혁명의 개척자이시었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망국의 비운에 처한 우리 민족사의 심각한 교훈과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을 비롯한 만경대일가분들의 뜻 그리고 당시 조성된 정세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기초하여 항일혁명투쟁시기 주체사상을 구현한 선군사상을 내놓으시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유구한 세월 자기의 존엄과 슬기를 만방에 떨쳐왔다. 그런데 근대에 와서 조선반도가 세력권확장을 위한 열강들의 각축전마당으로 되고 종당에는 바다건너 섬오랑캐의 식민지로 전락되는 민족적 치욕을 강요당한 것은 나라를 지킬 참다운 민족의 군대, 애국의 총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패무능한 봉건통치배들의 망국통치가 빚어낸 이 비극적 현실은 우리 겨레에게 강력한 민족의 군대, 애국의 총대를 가지고 그에 의거해 광복성전을 벌여 나갈 것을 절박하게 요구하였다.

민족사의 이 절절한 요청을 깊이 헤아리신 만경대일가분들은 나라찾는 애국의 길에 결연히 나서시었다. 대대로 정의에 살고 애국에 투철해온 만경대일가분들은 망국의 비운에 가슴을 치며 모두가 총을 잡고 구국장정의 길에 나서시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할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지원」의 높은 뜻을 내놓으시고 『조선독립달성의 총요원은 무기를 잡고 민족자력으로 일제와 싸워 나가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무장항일의 길을 열어 나가시었다. 선생님께서는 무성한 수수밭을 보시면서도 우리 나라 군대가 저렇게 열을 지어 그쯘하게 꾸려져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시며 몸소 무으신 「조선국민회」를 반일독립을 위한 반일지하혁명조직으로 강화발전시켜 나가시었다. 선생님께서는 일제의 탄압에 의해 생긴 병환으로 민족해방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시면서 무장항전의 밑천으로 삼으셨던 두자루의 권총을 강반석여사에게 넘겨주시며 아드님이 커서 반일투쟁의 길에 나설 때 주라고 당부하시었다. 그 당부에는 대를 이어 무장으로 민족해방을 달성하기를 바라시는 절절한 염원과 기대가 담겨져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할머님이신 강반석여사께서는 김형직선생님의 무장항일의 뜻을 받드시어 「조선국민회」활동을 적극 도와 나서시었으며 여성들을 조직동원하시어 아드님이신 수령님의 항일무장투쟁노선을 실현하기 위하여 몸 바쳐 투쟁하시었다. 여사께서는 아드님께서 항일대전을 위한 무장획득투쟁을 벌이게 되시던 때에 김형직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두자루의 권총을 아드님께 넘겨주시었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강반석어머님으로부터 그 두자루의 권총을 받으신 역사의 그날 동지들에게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자, 이것이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물려준 유산이다. 아버지는 의병도 아니고 독립군도 아니었지만 세상을 떠나시는 날까지 이 총을 가지고 있었다. 왜? 무장투쟁이야말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 수 있는 최고의 투쟁형태라고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총적인 지향은 무장투쟁을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이 두자루의 권총을 물려받을 때 아버지가 지향했던 것을 내가 대신하여 실현시키고야 말리라는 결심을 굳게 다지었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 이 두자루를 밑천으로 삼아 독립행군을 시작해보자. 지금은 이 두자루가 전부이지만 이것이 새끼를 치고 또 쳐서 200자루, 2,000자루, 2만자루로 될 날을 생각해보라. 총 2,000자루만 있으면 능히 나라를 해방할 수 있다. 밑천이 있으니 이것을 자꾸 굴려 2,000자루, 2만자루가 되게 하자!』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당시 일제의 야수적 폭압통치로 하여 적수공권으로 벌이는 조선인민의 독립운동이 무참히 탄압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김형직선생님께서 지향하셨던 무장투쟁을 실현할 결심을 더욱 굳게 다지시었다. 그러시고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혁명투쟁은 총대를 가지고 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으로부터 군대건설을 다른 모든 사업에 앞세울 데 대한 사상, 혁명군대에 의거하여 민족해방투쟁을 벌여 나갈 데 대한 사상을 내놓으시었다. 수령님의 선군사상은 김형직선생님께서 유산으로 물려주신 「지원」의 원대한 뜻이 담긴 두자루의 권총과 함께 수령님께서 반제, 독립, 자주의 이념밑에 결성하신 「ㅌ.ㄷ」의 강령에 시원을 두고 있는 총대중시, 군사중시사상이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주체19(1930)년 여름에 진행된 역사적인 카륜회의에서 항일무장투쟁노선을 제시하심으로써 선군사상의 노선화를 실현하시었다. 그리고 이듬해 12월 역사적인 명월구회의를 계기로 반일인민유격대창건방침을 제시하시고 『무장에는 무장으로, 반혁명적 폭력에는 혁명적 폭력으로!』라는 구호밑에 항일대전을 선포하시어 그것을 더욱 구체화하고 심화발전시키시었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주체의 선군사상, 선군혁명노선을 빛나게 구현하시어 주체21(1932)년 4월 25일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시고 항일무장투쟁을 벌여 나가시면서 그 불길속에서 당창건준비사업, 반일민족통일전선실현을 위한 투쟁을 조직전개하시었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혁명군대부터 창건하시고 그 총대에 의거하여 전반적 혁명투쟁을 벌여 나가신 선군혁명영도방식은 선행한 혁명이론이나 혁명투쟁실천에서 있어보지 못한 새로운 독창적인 혁명영도방식이었다.

선행한 노동계급의 수령들은 먼저 당을 조직하고 그 다음에 군대를 내오는 방식으로 주권전취를 위한 투쟁을 진행하였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이와는 달리 혁명은 총대에 의하여 개척되고 전진하며 완성된다는 사상에 기초하여 총대중시, 군사중시의 선군사상과 선군혁명노선을 일관하게 견지하시어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전반적 조선혁명을 힘있게 이끄시었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당창건에 앞서 조선인민혁명군(반일인민유격대)을 먼저 창건하시고 그에 의거하여 전반적 조선혁명운동을 추진하신 것은 혁명투쟁에서 총대가 기본이라는 총대중시의 사상에서 출발한 것이며 수령님의 혁명투쟁역사가 선군사상과 선군혁명노선을 구현한 선군혁명영도의 역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경애하는 수령님의 선군혁명위업을 가장 충직하게 받드신 분은 위대한 장군님의 어머님이신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이시었다.
여사께서는 수령님의 선군혁명영도의 제일지지자, 제일옹호자, 제일관철자이시었다.

회령 오산덕의 애국적 가정에서 탄생하시어 어린시절 일찍이 반일투쟁의 길에 나서신 여사께서는 주체24(1935)년 9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시어 수많은 전투들과 지하투쟁에 참가하여 뛰어난 용맹을 떨치시며 유격대의 전설적 명사수, 유능한 지하공작원, 백두산의 여장군으로 존경과 사랑을 모으시었다.

여사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총을 수여받는 자리에서  그 총을 억세게 틀어 잡으시고 김일성장군님께서 가리키시는 길을 따라 조국광복의 그날까지 한몸을 바쳐 싸울 굳은 결의를 다지시었다. 여사께서는 이날의 맹세대로 사령부의 친위전사가 되시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수령님을 결사옹위하시었다. 비범한 예지와 담력, 희생성과 헌신성으로 전투의 어려운 모퉁이를 스스로 맡아 돌파구를 여시고 백발백중의 사격술로 적들을 격멸소탕하는 위훈을 세우시었다. 여사께서는 총탄이 우박치듯 하는 싸움마당에서 수령님의 신변에 위험이 닥쳐올 때마다 서슴없이 몸을 던져 방패가 되시었다.

정녕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는 수령님의  선군혁명영도를 한몸 바쳐 받드신 백두산의 여장군이시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어받으신 총대혈통에는 만경대친가와 회령외가의 총대중시, 총대사랑의 정신과 지향도 깃들어 있다.

장군님의 증조할아버님이신 김보현선생님께서와 증조할머님이신 이보익여사께서는 자제분들을 혁명의 길에 내세우시고 아드님의 무장항일의 의지와 손자분의 항일무장투쟁을 애국지성을 다해 적극 지지하고 떠밀어주시었다.

장군님의 작은할아버님이신 김형권선생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항일무장투쟁노선을 받들고 조선혁명군의 한 무장소조를 거느리시고 국내에 들어와 왜놈순사부장을 쏴죽이며 맹렬히 활동하시다가 적들에게 체포되어 서울 마포형무소에서 옥중투쟁을 계속하시었으며 교형리들의 야만적 고문으로 옥중에서 희생되시었다. 장군님의 삼촌이신 김철주선생님께서는 항일유격대에 입대하여 영용하게 싸우시다가 전투현장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할아버님과 할머님, 작은할아버님과 삼촌을 비롯한 일가분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조국광복의 성전을 벌이시다 순국하시었다.

장군님의 회령외가의 김기준, 김기송 두 외삼촌도 만경대친가분들과 마찬가지로 수령님의 선군혁명위업을 받들고 싸우시다가 젊은 나이에 장렬하게 희생되시었다.

열사들은 너무도 일찍이 해방의 날을 보지 못하고 서거하시었지만 나라와 혁명을 위한 그분들의 고귀한 생은 경애하는 수령님의 선군혁명역사와 더불어 길이 빛나고 있다.

이처럼 위대한 장군님의 가문은 대를 이어 조국의 광복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총대를 잡고 싸우신 역사가 알지 못하는 위대한 선군애국의 가문, 선군혁명의 가문이다.

만고에  없는  이  위대한  가문의  총대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서  격변하는  시대의  태동을  안으시고 탄생하신 김정일장군님이시기에 그이의 탄생에 접한 민족의 환희는 그처럼 뜨거웠고 그이에 대한 민족의 기대 또한 그처럼 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