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유산에 대한 태도는 민족에 대한 입장을 가늠하는 척도로 된다.

슬기롭고 문명한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연면히 살아오면서 창조해온 문화유산들은 후세에 물려주어야 할 귀중한 정신적 및 물질적 재부이다. 거기에는 선조들의 넋과 슬기, 창조적 재능과 지혜가 깃들어있다.

그리하여 민족문화유산은 인민들에게 높은 민족적 자부심과 애국심을 심어주는 생동한 원천으로, 민족의 지향과 요구에 맞는 인민적인 문화를 건설할 수 있게 하는 바탕으로 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찍부터 민족문화유산이 민족성을 고수하는데서 차지하는 의의를 깊이 통찰하시고 우리 민족의 역사뿐 아니라 민족문화유산도 더없이 소중히 여기시며 그것을 잘 보존하고 옳게 계승발전시켜 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끌어 주시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의 문학예술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옳게 계승발전시켜 나가도록 하신 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의 문학예술이 철저히 민족의 고유한 문학예술유산을 옳게 계승해 나가도록 이끌어 주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옳게 계승할 때에만 문학예술을 자기 민족의 지향에 맞게 주체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으며 그 민족성을 견결히 지켜 나갈 수 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의 문학예술유산을 옳게 계승해 나가는 것을 문학예술발전의 생명으로, 민족성을 고수하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로 간주하시고 그것을 적극 장려해 나가도록 이끌어 주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민족적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는 것을 문학예술작품창작원칙으로 제시하시고 일관하게 견지해 나가도록 하신 사실이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매개 민족은 역사와 풍습, 습관과 성격이 다르며 그것으로 하여 생활감정도 정서도 다르다. 민족적 형식은 매개 민족의 생활감정과 정서를 표현하는 고유한 형상수단으로서 장구한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형성되고 굳어진다. 매개 나라 인민은 오랜 세월을 두고 창조되고 향유된 자기의 민족적인 것을 제일 좋아한다. 문학예술작품의 가치는 그 나라 인민의 민족성과 민족생활을 옳게 반영하였는가, 형상에 민족적인 맛이 있는가 하는 것과 많이 관계된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문학예술부문사업을 지도하시던 첫 시기부터 문학예술창작에서 민족적 형식을 구현하는것을 절대로 어길 수 없는 원칙으로 삼도록 이끌어 주시었다. 그이께서는 음악에서 우리 민족 고유의 장단을 살릴 데 대한 문제, 민요를 바탕으로 선율을 만들 데 대한 문제, 무용에서 고유한 조선춤가락을 살려 쓸 데 대한 문제, 관현악에서 민족악기와 양악기를 배합할 데 대한 문제, 조선화를 기본으로 하여 미술을 발전시켜 나갈 데 대한 문제 등 문학예술의 그 어느 분야에나 이 원칙을 일관하게 견지해 나가도록 하시었다.

문학예술에서 민족적 형식을 구현해 나가도록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손길은 음악을 조선적인 선율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 인민의 민족적 정서, 감정에 맞게 발전시켜 나가는데도 세심히 미치고 있다.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새로 형상한 노래들을 지도하실 때었다. 그이께서는 여성독창과 바이올린독주 「마음의 고향」은 선율을 꼬부라지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노래가 유럽고전음악의 현대판같은감을 준다고 지적하시고 나서 고향에 대한 노래는 어디까지나 고향맛이 나고 고향의 정취가 풍겨오게 민족적인 선율을 진하게 깔아야 한다고 깨우쳐 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남성합창 「우리의 행군 길」도 그 형상수법에서 민족적 선율이 뚜렷하지 못하고 첫 시작부터 트럼베트를 쓰면서 소고를 두드리는것이 어딘가 모르게 유럽음악과 비슷한 감을 준다고 지적하시었다. 또한 가야금병창 「꽃피는 묘향산」의 반주에 민족악기가 아닌 바스기타를 쓰지 말고 대해금이나 다른 민족악기를 써서 해결하라고 이르시었다. 그리고 민족기악중주 「해당화」에 소고를 넣은 것도 맞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민족기악중주에서는 소고를 가지고 장단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반고 같은 것을 가지고 조선장단맛을 내야 하며 민족적 선율의 노래반주는 단소나 저대 같은 민족악기를 가지고 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치시었다.

이처럼 한편의 노래를 짓고 형상해도 반드시 우리 인민이 좋아하고 즐겨 부를 수 있는 민족적인 선율을 바탕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뜻이었다.

민족문화유산을 계승발전시켜 나가도록 이끌어주시는 김정일장군님의 세심한 영도는 고전문학예술작품들에도 어려있다.

선조들이 이룩한 고전문학예술유산에는 그 나라 인민의 고유한 민족적 정서와 생활감정이 진하게 배어있으며 그 민족의 비위와 미감에 맞게 문학예술을 창조하고 발전시켜 나가는데서 이룩한 귀중한 성과와 풍부한 경험이 담겨져 있다.

민요 「옹헤야」를 놓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은 보리타작마당에서 서로 마주 서서 보리단에 도리깨질을 할 때 동작의 율동적조화를 보장하고 육체적 피로를 덜면서 일을 흥겹게 하기 위하여 노동민요 「옹헤야」를 부르군 하였다.

「옹헤야」는 도리깨를 힘 주어 내려칠 때 저절로 나오는 입소리를 모방형상한 것이다. 같은 동작을 힘을 주어 반복하는 작업과정의 특성을 반영하여 민요는 짤막한 대구들로 이루어졌고 선율형상 또한 2박자의 단순음조로 부르기 쉬우면서도 힘이 안겨지게 되어있다. 안땅장단의 박력있는 리듬을 타고 기백있게 흐르는 이 민요의 선율은 밝고 약동적이면서도 흥겹다.

이처럼 고전문학예술유산들은 우리 선조들의 정서와 생활을 다양한 예술형식으로 반영한 것으로 하여 민족문화건설의 귀중한 재보로 된다.

고전문학예술의 가치와 의의를 그 누구보다도 깊이 헤아리시는 분이 바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다.

여기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민족문학예술유산의 계승발전에 얼마나 큰 의의를 부여하시는가 하는데 대한 감동깊은 사실이 있다.

주체92(2003)년 6월 13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황해북도 봉산군 온정리농장원들의 봉산탈춤을 친히 보아주시었다.

예로부터 봉산군에는 탈춤이 유명하다.

탈을 쓴 춤꾼들이 등장하여 백성들의 등을 쳐 먹고 사는 양반통치배들을 골려대고 야유하는 것을 형상한 이 춤에는 착취와 압박에 대한 인민들의 항거정신과 자주적으로 행복하게 살려는 소박한 지향이 담겨져 있어 오늘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널리 추어지고있다. 특히 봉산사람들은 탈춤을 자기들의 자랑으로 여기며 민속명절이나 휴식일이 오면 자주 추군 한다.

이날 한여름의 뙤약볕밑에서 농장원들이 추는 탈춤을 마지막까지 보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우수한 문화적 재부를 옳게 계승발전시키는 것은 민족의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하시면서 민속무용을 적극 장려하고 있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시었다.

세상에는 민족을 위한다고 하는 정치가들도 많고 문학예술에 조예가 깊다고 하는 정치가들도 있다. 그러나 경애하는 장군님과 같이 하나의 고전민속무용의 계승을 위해 현지지도의 바쁘신 걸음을 멈추고 보아주신 그런 정치지도자가 과연 있었던가.

하나의 작은 고전작품도 민족의 재능과 넋이 깃든 귀중한 재부로 보시는 김정일장군님의 애국의 높은 뜻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화폭이다.

이렇게 민족문학예술유산이 민족성고수와 민족문화건설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깊이 헤아리시기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문학예술부문 사업을 지도하시는 전기간 고전문학예술작품을 적극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창작가들을 이끌어주시었다.

그 대표작들로서는 민족가극에서 「춘향전」과 「박씨부인전」, 예술영화에서 「춘향전」, 「임꺽정」, 「임진왜란」, 「양반전」, 「흥부전」, 「온달전」, 민속무용에서 「강강수월래」, 「쟁강춤」, 「3인무」, 「돈돌라리」, 「」, 민요에서 「아리랑」, 「옹헤야」, 「양산도」, 「도라지」, 「신고산타령」, 「용강기나리」, 「군밤타령」 등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고전문학작품을 발굴정리하는데도 세심한 지도와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주체68(1979)년 12월 어느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전 90권으로 된 「조선고전문학선집」을 출판할 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고전문학출판사업에 큰 의의를 부여하신 장군님께서는 「온달전」, 「장화홍련전」, 「홍길동전」과 같은 소설들도 현대조선말로 고쳐서 출판보급하여 인민들이 즐겨 읽도록 하시었으며 「조선사화전설집」도 많이 출판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었다.

여기에는 일제의 식민지민족말살정책으로 인하여 무참히 짓밟혀 점차 자취를 감추었던 고전문학작품들을 발굴정리함으로써 우리 인민이야말로 예로부터 가장 슬기롭고 문명한 민족문화의 창조자들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애국의 뜻이 어리어 있다.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와 관심속에 파란많은 역사의 흐름속에 빛을 잃고 사라져가던 우리 나라 고전문학작품들이 새로 수많이 발굴정리되어 인민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렇듯 크나큰 노고와 애국의 숭고한 뜻에 떠받들려 우리의 민족문학예술은 인민들의 사랑을 받고 그들의 애국심을 높여주는 참다운 문학예술로 빛을 뿌리고 있는 것이다.

민족의 자랑인 역사유적유물도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세심한 손길과 관심속에 민족의 재부로 빛나고 있다.

역사유적과 유물들은 선조들이 어떤 문화를 창조하고 어떻게 생활하였으며 어떠한 길을 걸어 발전하여 왔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실물자료이다. 고구려벽화무덤, 천상열차분야지도, 금속활자, 측우기 등은 세계에 널리 알려진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화유산들이다. 그것들은 우리 나라 역사의 유구성과 우리 인민의 재능에 대하여 절감하게 하는 나라의 재보들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찍부터 역사유적과 유물을 민족의 재보로 귀중히 여기시며 그 보존발굴사업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59(1970)년 3월 4일에 발표하신 고전적 노작 『민족문화유산을 옳은 관점과 입장을 가지고 바로 평가처리할 데 대하여』를 비롯한 많은 노작들을 통하여 그리고 여러 기회들에 민족문화유산을 발굴정리하고 보호하는데서 나서는 방향과 방도를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바쁘신 현지지도의 길에서도 문화유적들을 스쳐 지나지 않으시고 유적보존, 관리정형과 인민들의 참관정형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요해하시고 제기되는 문제들도 풀어 주시었으며 이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애국자들이라는 믿음과 사랑도 안겨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거리를 하나 형성하여도 역사유적유물을 보존하는 원칙을 확고히 견지하신다.

그것은 평양시중심에 위치한 숭인전을 보존하도록 하신 사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숭인전은 1325년에 지은 고려시기의 사당건물로서 임진조국전쟁때와 지난 조국해방전쟁때 피해를 입은것을 원상대로 복원한 것이다.

평양시중심에 위치한 만수대예술극장일대를 공원으로 꾸릴 때었다. 당시 건설을 책임진 관계부문 일군들은 계획된 공원부지내에 숭인전이 들어앉아 있다고 하여 헐어버리자고 하였다.

이 사실을 아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바쁜 시간을 내시어 몸소 건설현장에 나가시었다. 현장에서 실태를 요해하신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유적건물을 없애면 안된다고 일깨워주시면서 숭인전을 그 가까이에 있는 숭령전옆에 나란히 옮겨놓도록 하시었다.

숭령전은 고조선을 건국한 우리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과 고구려를 세운 동명왕을 제사지내던 이조시기의 사당집이다. 숭령전을 처음 세운 것은 1429년이며 현재의 것은 18세기에 다시 지은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건설자들은 숭인전을 통채로 숭령전옆에 옮겨놓았다. 그러고보니 고려시기의 사당건물인 숭인전이 이조시기의 사당건물인 숭령전과 합쳐져 서로 대조를 이루면서 고색창연한 옛 건축물의 풍치를 한껏 돋구어주게 되었다.

역사유적을 보존할 데 대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뜻에 따라 평양은 전후 재더미위에서도 대동문과 보통문, 연광정 등 조상대대로 내려오면서 창조된 유적들을 원상그대로 복원보존하는 원칙에서 도시를 건설함으로써 5천년 수도의 역사적인 도시로서 자기의 민족적 품격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

이와는 상반되게 우리 조국의 절반땅인 남조선에서는 정반대의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남조선 「문화재청」이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1987년초부터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창덕궁을 비롯한 조선왕궁안에 남조선군 「수도방위사령부」가 운영하고 있는 군사시설들이 틀고 앉아 있다고 한다. 또한 조선왕궁뿐 아니라 조선왕능구역안에도 12만평의 부지에 아직까지도 군사시설들이 남아있다. 창덕궁은 선조들의 창조적 지혜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귀중한 문화재부이고 역사의 증견자로서 후손만대에 물려주어야 할 역사유적이며 고귀한 민족문화유산이다. 더우기 창덕궁으로 말하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민족의 자랑이고 국보이다.

더욱이 한심한 것은 미제침략군이 자리잡은 경기도 파주시의 공순영능은 미군에 의해 문화유적이 여러 군데 파괴되고 환경오염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세계에 200여개의 나라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민족이 있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국보적인 민족문화유적지에 군사시설을 설치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으며 더구나 자기 민족의 역사유적지를 침략군의 군사기지로 내맡긴 예는 없다. 민족의 자랑이고 재보인 역사유적들에 침략군의 군사기지가 둥지를 틀고 있다는 사실자체가 민족에 대한 모독이고 우롱이며 더 없는 민족적 수치이다.

한 지맥으로 잇닿아 있는 우리 조국의 북과 남에 펼쳐진 판이한 현실이 우리 민족에게 시사하는 바는 참으로 크다. 민족의 문화적 재부가 아무리 가치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저절로 지켜지고 빛나는 것이 아니다. 비록 하나의 작은 유물이라 하더라도 민족의 재부로 귀중히 여기는 애국의 높은 뜻을 지닌 절세의 애국자를 영도자로 모실 때 비로소 민족의 역사, 선조들의 넋과 재능도 빛나게 된다는 것을 현실은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민족문화유산을 전면적으로 발굴정리하고 보호복원하는 사업을 국가적 사업으로 벌여 나가도록 현명하게 영도하심으로써 유구한 민족사를 빛내이고 민족의 우수성을 온 세상에 과시할 수 있게 하시었다.

주체83(1994)년 10월초 경애하는 장군님의 지도에 의해 단군릉은 위대한 수령님의 생전의 뜻대로 웅장하게 개건되었다.

단군릉은 우리 민족의 첫 국가였던 고조선의 시조왕인 단군왕검의 기상에 어울리게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기슭의 하늘이 툭 열린 명당자리에 9개의 기단으로 된 고조선의 돌무덤의 형태로 개건 되었다. 능의 무덤칸에는 단군과 그의 안해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고 능의 앞에는 고조선고유의 상징적무기인 비파형단검을 형상한 4개의 검탁, 단군의 네 아들과 신하들의 화강석입상들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단군릉의  입구에는  민족의  시조를  찾아주시고  빛내여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업적을 길이 전하게 될 「단군릉개건기념비」가 건립되고 단군의 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해 10월 29일 개건 된 단군릉을 돌아보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랜 세월 역사의 풍운속에 신화로만 전해오던 단군을 실재했던 민족의 원시조로 찾아주시고 시조능을 완벽하게 개건하여 유구한 조국의 역사와 민족의 슬기를 자자손손 긍지높이 전할 수 있게 해주시었다고, 이것은 우리 민족의 대 경사로, 일대 사변으로 된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리고 그이께서는 단군릉은 후손들에게 만년대계로 물려줄 국보인 만큼 자그마한 손상도 없어야 한다고 하시며 능 보존과 민족문화재 관리에 각별한 관심을 돌리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애국의 손길이 어려있는 단군릉앞에 서면 단일민족의 삶을 면면히 이어오면서 유구반만년의 역사를 창조하여 온 조선민족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이 가슴 뿌듯이 넘쳐 난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깊은 관심속에 단군릉외에도 주체82(1993)년에는 평양시 상원군에 천년강국 고구려 건국시조의 왕릉인 동명왕릉이 정릉사와 7층석탑과 함께 웅장하게 개건 되었다. 또한 주체83(1994)년 1월에는 고려의 시조왕 왕건의 능이 민족의 첫 통일국가를 일떠세운 걸출한 인물의 체모에 맞게 웅장하게 개건 되었다.

이렇듯 장군님의 유다른 애국심에 받들려 개건 확장된 고조선과 고구려, 고려의 시조왕들의 능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 민족적긍지와 자부심, 애국애족의 넋이 조수마냥 차오르게 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혁명영도의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칠보산의 개심사(1996년 6월), 정방산의 성불사(1997년 5월), 구월산의 월정사(1997년 9월), 고성군 설봉리에 위치한 석왕사(1998년 5월), 고원군 낙천리에 위치한 양천사(2002년 6월) 등을 찾으시어 민족의 자랑인 역사유적유물들과 명승고적들을 잘 꾸리고 영구히 보존관리할 데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었다.

민족문화유산의 계승발전을 위해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애국의 자욱은 비단 문학예술유산과 유적유물보존부문만이 아닌 민족이 창조한 모든 문화유산에 새겨져 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보살피심에 의해 민족적재보인 「이조실록」과 「팔만대장경」의 전권이 번역되었고 문집, 고전문학작품들 그리고 「동의보감」 등 많은 의학서적들이 수집, 정리, 번역되었다.

이렇듯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애국애족의 일념과 탁월한 영도, 심혈과 노고에 의하여 민족의 얼과 슬기인 우리의 민족문화유산은 훌륭히 계승발전되고 찬란히 빛을 뿌리고 있는 것이다.

하기에 우리 나라를 방문했던 한 외국인사는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하면서 하나의 민족문화의 보고를 발견했다. 수수천년 민족의 형성기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민족발전의 모든 역사적 단계들에서 창조된 각종 문화재들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민족문화유산의 대전시장이었다.』라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장군님의 한없이 뜨거운 애국심이 자양분으로 되어 내 나라 어딜 가나 민족의 넋과 정기가 살아 넘친다. 민족의 향취 넘치는 이 땅에 살며 민족의 넋을 키워왔기에 우리 인민은 그렇듯 떳떳하고 긍지에 넘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