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에 대한 숭고한 사명감을 지니시고 정력적인 사상이론활동으로 조국통일운동의 지침이 될 통일대강을 마련하시었을 뿐아니라 민족의 통일운동을 거족적인 운동으로 가일층 강화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현명하게 영도하시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이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상실의 아픔에 휩싸어있던 주체83(1994)년에도 8.15범민족대회를 성대하게 열 수 있게 해주시었다.

범민족대회는 북과 남, 해외의 모든 통일애국역량의 마음과 뜻을 합치고 총의를 모은 전민족적인 회합으로서 주체79(1990)년 8월 15일부터 시작되었다.

주체78(1989)년 7월 7일 평양에서 재일동포들과 이전 소련, 중국, 미국, 유럽, 오스트랄리아 등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온 각계 동포 3,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북과 해외동포들의 조국통일촉진대회에서는 조국통일에 관한 선언과 해내외동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하여 조국광복 50돌이 되는 주체84(1995)년을 조국통일의 역사적 해로 맞이할데 대하여서와 이를 위하여 주체79(1990)년에 8.15범민족대회를 소집하여 온 민족의 통일의지를 과시하고 통일위업을 촉진하는 역사적인 전환의 계기로 되게 할데 대하여 호소하였다.

그후 아메리카주, 유럽, 일본 등의 해외통일애국단체들은 범민족대회 해외추진본부, 범민족대회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고 남조선의 「전민련」이 「전대협」, 「전노협」을 비롯한 통일민주단체들과 함께 8월 3일에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를 결성하였다. 이렇게 되어 북, 남, 해외는 3자예비접촉을 가지려고 하였으나 남조선당국자들의 부당한 탄압책동으로 말미암아 실현될 수 없었다. 결국 북과 해외동포대표들의 참가하에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가 판문점에서 진행되었던 것이다.

범민족대회는 북과 남, 해외의 각계각층 동포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민족민주단체들과 인사들의 역사적인 대회였으며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는데 기여한 민족대단결의 대회였다.

제1차 범민족대회에서는 첫 대회의 거대한 성과에 기초하여 북과 남, 해외의 통일애국세력의 연합체로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을 내오기로 결의하였다. 이 결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주체79(1990)년 11월 19일부터 21일까지 북과 남, 해외측 대표들의 참가하에 베를린에서 3자실무회담이 진행되었고 여기에서 범민련을 명실공히 전민족적인 통일운동기구로서 결성하기로 합의하였던 것이다.

범민련은 북과 남, 해외에서 광범한 통일애국역량을 굳게 묶어세우고 그들을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로 조직동원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통하여 온 겨레의 통일염원과 의지를 대변하는 전민족적인 통일운동연합체로, 민족의 자주적인 통일운동을 이끌어나가는 권위있는 민간통일운동의 조직체로 되었다.

범민련과 같은 범민족적 조직을 내온 것은 조국통일운동을 전민족적 운동으로 조직화하는 중대한 계기로 되었다.

제4차 범민족대회까지는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해마다 정례화되어 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서거하신 주체83(1994)년에 진행하게 된 제5차 범민족대회로 말하면 그에 대한 구체적 합의는 5월 26일 제2차 범민련 공동의장단회의에서 이루어졌다. 공동의장단회의에서는 제5차 범민족대회를 민족공동의 대축전으로 빛내이기 위하여 기본대회를 범민련 남측본부결성준비위원회의 주관밑에 서울에서 하면서도 평양과 도쿄에서도 각기 대회를 진행하며 서로 대표단을 교환, 파견하기로 합의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해 7월 너무도 뜻밖에 민족의 대국상을 당하여 온 강토가 피눈물의 바다로 변하게 되자 범민련 북측본부와 조국통일관계부문의 일꾼들은 이런 때 어떻게 범민족대회와 같은 행사를 벌여놓겠는가고 하면서 8.15범민족대회를 그만두는 것이 마땅한 도리로 된다는데로 생각을 모으게 되었다. 그리하여 범민련 북측본부에서는 제5차 범민족대회를 그만둘데 대하여 범민련 남측본부결성준비위원회와 해외공동사무국에 통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철석의 통일의지를 지니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범민족대회를 예정대로 진행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여 주저앉으려는 일꾼들을 안아일으키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 책임일꾼에게 이번에 진행하는 8.15범민족대회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이후 처음으로 진행하는 범민족대회인 것만큼 수령님의 생전의 뜻인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의 사상을 받들어 예년보다 더 의의있고 규모도 더 크게 잘 치르어야 한다고 거듭 말씀하시었다.

아직도 온 나라가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비분에 휩싸어있던 그런 때 제5차 범민족대회를 예정대로 진행할뿐아니라 특색있게 크게 조직할데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이야말로 어버이수령님의 통일유훈을 받드시어 기어이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시려는 그분의 통일의지가 얼마나 굳건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온 겨레를 거족적 통일운동에로 불러일으키신 거룩한 말씀이었다.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지켜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성취하고야 말려는 우리 민족의 굳센 통일의지와 통일애국세력의 위력을 내외에 널리 시위한 제5차 범민족대회는 이렇게 마련된 것이었다.

제5차 범민족대회는 마침내 8월 13일 만수대언덕에 모셔진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앞에서 수령님의 유훈을 받들어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앞당겨 실현할 것을 다짐하는 90년대통일실천결의대회가 큰 규모에서 특색있게 진행되는 것으로 막을 열었다.

이어 8월 15일 4.25문화회관에서 기본행사인 제5차 범민족대회가 성대히 진행되었다. 대회기간에 조국통일대토론회, 90년대 조국통일을 위한 청년학생연단, 결의모임형식의 「통일문화의 밤」등 다채로운 통일축전행사들이 벌어졌다.

한편 남조선당국이 범민련 북측본부대표단의 판문점통과와 제5차 범민족대회(서울)자체를 관권으로 탄압해 나선 조건에서 서울대회는 북측대표단의 참가없이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진행되었다.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은 서울대학교 정문앞에 바리케드를 쌓고 파쇼경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면서 제5차 범민족대회(서울)를 진행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일본 도쿄에서도 제5차 범민족대회가 성과적으로 진행되었다.

피눈물속에서도 예정대로 진행된 제5차 범민족대회는 어버이수령님의 생전의 염원대로 조국통일을 반드시 이룩하고야 말 7천만겨레의 확고부동한 신념과 의지를 내외에 과시하고 온 강토에 통일기운을 북돋아준 역사적 계기로 되었다.

이렇듯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커다란 관심속에 범민족대회는 중단됨이 없이 계속될 수 있었으며 시련에 부닥쳤던 조국통일운동이 굳건히 이어지고 자기의 궤도에서 힘차게 전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