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의 인생에는 애국의 흔적이 남기마련이다.

목표가 위대하고 정열이 불타는 위인의 생의 자국자국은 영원히 빛난다.

한평생 조국과 민족, 인민의 운명과 행복을 위하여 헌신분투하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애국, 애족, 애민의 성스러운 자국자국을 끝없이 수놓아가신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숭고한 정치이념을 내세우시고 인민을 위한 헌신의 길, 사랑의 길을 걷고 걸으신다.

주체79(1990)년 1월 1일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우리 인민은 설사 통강냉이밥에 소금국을 먹고 산다 해도 오직 우리 당만을 굳게 믿고 끝까지 따라올 변함없는 좋은 인민이라고 하시면서 사회주의를 하던 수많은 나라의 공산당, 노동당들이 혁명을 포기하고 인민을 배반하였지만 우리 당은 인민을 절대로 배반할 수 없다, 우리는 하늘이 무너진대도 우리 인민들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인민군대에는 「조국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구호가 있는데 우리 당일꾼들의 구호는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으로 되어야 한다는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장군님께서 이 구호를 제시하신 당시로 말하면 이전 소련과 동유럽의 여러 사회주의나라들에서 미국의 「평화적 이행전략」에 발을 맞춘 사회주의배신자들의 「개혁」, 「개편」바람으로 사회주의와 인민의 운명이 바람앞의 등불과도 같은 신세에 처하게 된 때었다.

사회주의는 자주이며 인민대중의 생명이고 생활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를 잃는다는 것은 곧 인민대중이 자기의 존엄,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노예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러한 엄중한 사태가 몰아올 동유럽사회주의나라 인민들의 불행한 운명을 천리혜안의 예지로 환히 꿰뚫어 보시고 그럴수록 인민대중중심의 주체사회주의를 튼튼히 지키고 자주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신념과 의지를 더욱 굳히시었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구호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세상이 어떻게 변한다 해도 드팀없이 높이 추켜들고 나아가시는 애국, 애민의 기치이며 사회주의와 인민의 운명을 책임진 조선노동당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시대와 역사앞에 확언하는 엄숙한 선언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추켜드신 이 구호에는 모든 일꾼들이 인민의 이익을 사업과 생활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인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할데 대한 요구가 담겨져 있다.

언제인가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인민을 위하여 일을 잘하자는 결의를 다시한번 굳게 다지자고 하시며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구호는 우리의 신념이고 철학이다, 더하지도 덜지도 말고 이 구호대로 일해야 한다, 인민이 있고 우리가 있지 우리가 있고 인민이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이것을 잊지 말자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었다.

인민위에 군림하는 세도꾼, 관료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인민정치는 흥하고 특권정치는 망한다는 참뜻을 새겨주는 의미심장한 말씀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자신을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심부름꾼으로 생각하시며 모든 사색과 활동을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데로 지향시키신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언제인가 일꾼들에게 당과 인민의 충복답게 일을 잘해야 한다고 하시며 이런 내용의 가르치심을 주신적이 있다.

지금 우리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은 일을 잘하는 일꾼들을 부를 때 직무앞에 「우리」라는 말을 붙여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중대장」, 「우리 정치지도원」, 「우리 책임비서」라는 부름이 얼마나 좋습니까, 나를 부를 때에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이라고 하는것 보다 「우리 최고사령관」이라고 하는 것이 더 듣기 좋습니다, 「우리」라는 두 글자에 정말 깊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군중은 진심으로 자기들을 위하여 애써 일하는 일꾼들에게만 「우리」라는 고귀한 칭호를 붙여줍니다.…

군인들과 인민들을 위한 지휘관,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헌신의 세계가 집약되어있는 말씀이었다. 여기에는 인민들을 위하여 일하는 지휘성원, 일꾼들의 인생의 궤도와 삶의 보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철의 진리가 있다.

인민들은 「우리」라는 평범한 두 글자에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충성과 신뢰의 마음을 담고있다.

「우리 장군님」, 이 땅에 생을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절절한 경모의 정과 가장 뜨거운 친근감을 안고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리 장군님」, 「우리 최고사령관동지」라고 부른다.

금수산기념궁전 개관을 하루 앞둔 그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타신 전동차를 보자 이 세상 끝까지라도 따라가려는 일념을 안고 장군님을 우러러 만세의 환호를 터치며 달리고 또 달리던 인민들의 모습과 눈빛,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의 그 모습, 그 눈빛에 비낀 한없는 믿음과 진정에서 커다란 감동을 받으시며 우리 당과 인민사이에는 0.001mm의 간격도 없다고 하시었다.

그 사랑, 그 믿음의 말씀을 인민들은 영원히 잊지 못한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인민의 영도자에게 있어서 인민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것보다 더 큰 영예와 자랑은 없다.

정녕 그 어느 시대, 그 어느 나라에 온 나라 전체 인민들로부터 「우리」라는 고귀한 존칭으로 불리우며 인민들의 다함없는 사랑과 신뢰, 그리움을 한데 모은 그런 인민의 수령, 영도자가 있었던가.

김정일장군님처럼 인민에 대한 한없는 사랑, 인민에 대한 헌신적 복무정신을 지니신 영도자, 인민과 단 한치의 간격도 없고 인민의 다함없는 존경과 신뢰만을 받으시는 영도자는 세상에 없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렇듯 겸허하신 애국, 애민적 풍모는 그 무엇으로써도 다 표현할 수 없이 위대한 것이다.

역사에는 조국과 인민을 위해 헌신한 위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우리 장군님처럼 애국애민의 한길에 그토록 자신을 깡그리 바치시는 그런 위인, 그런 전설적 애국자는 없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언제나 「인민행열차」에 오르시어 궂은날, 마른날을 가리지 않으시고 현지지도의 길을 걷고걸으시며 인민의 가슴마다에 사랑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며 영광을 안겨주신다.

언제나 낯익은 그 수수한 잠바옷차림으로 「인민행열차」를 타시고 이 나라의 방방곡곡을 찾아 애국의 길을 끝없이 이어가시는 장군님의 한없이 친근하고 숭고한 모습은 절세의 애국자의 불멸의 영상으로 겨레의 기억속에 영원히 지울 수 없게 새겨져 있다.

장군님께서 눈비내리는 밤이나 진창길,  험한 산길과 바다길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낮이나 밤이나 쉬임없이 이어가신 그 수백수천만리의 로정에 수놓아진 인민에 대한 사랑과 애국적 헌신의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그 얼마인지 사람들은 다는 모른다.

장군님의 「인민행열차」에는 심심산골을 찾아가실 때 고개길에서 함박눈을 맞으시며 오르지 못하는 차를 미시며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신 이야기도 있고 현지지도의 길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소문없이 산정의 영길을 관리해가는 구봉령가족소대원들을 만나시여 애국자들이라는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신 이야기도 있다. 노동자들의 기름묻은 손도 허물없이 잡아주시며 함께 기대도 다루어 보시고 농민들과 마주앉으시고는 농사이야기를 나누시며 허물없이 식사도 함께 하신 이야기도 있다. 천길지하막장에도 찾아 들어가시고 달리는 열차안에서 밤새도록 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대책들을 하나하나 세워주신 이야기들도 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꾼들이 자신의 건강에 대하여 걱정할 때면 인민들속으로 들어가는것보다 좋은 휴식이 어디 있느냐고 하시며 나는 우리 군인들, 인민들과 함께 있을 때가 제일 기쁘다고 흔연히 말씀하신다. 인민의 행복을 위한 헌신에서 최대의 보람과 낙을 찾으시는 장군님이시기에 괴로움과 아픔은 자신께서 묵새기시면서 인민에게는 기쁨과 웃음만을 주시었고 인민들의 행복이 커가는것을 보시면 그리도 기쁘시여 만면에 가득 웃음을 담으신다.

김정일장군님께서 걸으시는 수천수만리 현지지도의 길은 조국과 민족의 부강번영, 인민의 행복을 위한 애국적 헌신의 장정이다.

장군님께서는 이런 길을 어느 하루도 아닌 1년 365일, 일요일과 명절날 지어 자신의 생신날까지 바쳐 걸으신다. 요란한 환영속에 화려한 행장으로 인민을 찾으시는것이 아니라 조용히 그리고 검소한 옷차림새로 찾아가신다.

주체85(1996)년 1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자신께서는 지난 수십년동안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후대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것을 다하였다고, 자신께서는 수십년동안 하루에 2∼3시간밖에 자지 않고 정력적으로 활동하면서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쳤다고.

조국과 인민에게 바치는 삶을 그토록 귀중히 여기시는  장군님의 숭고한 인생관, 애국관이 우주의 무게로 실려있는 뜻깊은 말씀이었다.

장군님처럼 자신과 가정을 생각하기에 앞서 조국과 인민을 먼저 생각하며 온넋을 쏟아붓는 그런 애국자, 그런 정치지도자가 세상 그 어디에 있었던가.

다른 사람들이 몇시간동안 자는 잠을 쪽잠으로 대신하시는 것, 그나마도 현지지도길의 자동차나 열차안에서 잠간 눈을 붙이시는 것, 줴기밥을 드시거나 식사를 건늬고 설치시는 것 등은 평생 고치지 못할 그분의 습관으로 굳어졌다. 사람마다 공통적인 생활습관이 있지만 장군님의 습관은 그 어느 사람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다른 습관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체88(1999)년 설날에 일꾼들에게 자신께서도 인간이라고, 그렇지만 자신께서는 모든 일꾼들과 전체 인민이 자신을 믿고 자신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고있기때문에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 가정생활도 다 희생시키고 집을 떠나 온 한해를 차안에서 쪽잠으로 새날을 맞으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일년 내내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었다고 말씀하시었다. 애국으로 용솟음치는 위인의 열정어린 모습을 가슴깊이 새기게 하는 뜨거운 말씀이었다.

또 언제인가는 일꾼들이 인민의 간절한 부탁을 담아 식사를 많이 드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을 때에도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아무리 바빠도 식사를 건늬거나 설치지 말아달라고 하는데 그렇게 될것 같지 못합니다. 식사를 간단히 하는것뿐아니라 딴딴한 침대우에서 자는 습관도 고치지 못하겠습니다. 푹신한 침대에 누우면 허리가 아프고 잠이 오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야전식이 제일입니다. 야전식은 나의 몸에 완전히 배었습니다.』

이 말씀을 되새기느라면 1990년대 중반기 준엄한 시련 속에서 조국을 안고 거연히 일떠서신 장군님의 그 위대한 모습이 어려와 눈굽이 뜨거워진다.

어려울 때 위인을 더 잘 안다고 했다. 애국자의 진가, 애국자의 진면모는 엄혹한 시련 속에서 검증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시련과 고난을 앞장에서 헤치시며 위대한 사랑의 힘으로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지켜주신다.

주체89(2000)년 6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 문필가를 만나주시고 우리 인민이 헤쳐온 시련의 나날을 돌이켜보게 하는 참으로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문필가가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는 제목으로 「고난의 행군」의 역사를 추억하는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는 조용한 음성으로 제목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우리 인민이 「고난의 행군」시기에 겪은 피눈물나는 역사를 영원히 잊을 수 없다고, 그래서 지난해 인민군대에서 노래 「우리는 잊지 않으리」를 만들도록 하였다고,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고난의 행군」의 어려운 시련을 헤치며 선군혁명영도의 영웅서사시를 엮어온 나날들이 떠오르고 배를 곯고 추위에 떨면서도 나를 따라 끝까지 붉은기를 지켜온 우리 인민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나고 격정이 북받쳐오름을 금할 수 없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고난의 행군」, 이 엄혹한 시련 속에서 그분께서 겪으신 고생은 그 얼마나 컸으랴.

수령님께서 맡겨주신 조국, 사랑하는 인민의 운명을 위해 지새우신 밤, 걸으신 길, 마음속 고충은 그 얼마이랴.

인민을 위해 겪으신 천만가지 고생도 낙으로 여기시는 절세의 애국자이시기에 장군님께서는 자신보다 인민의 고생, 아픔을 먼저 생각하시는 이렇듯 가슴뜨거운 말씀을 하신것이다.

돌이켜보면 「고난의 행군」, 강행군은 주체혁명의 역사에서 일찌기 없은 준엄한 시련이었다. 민족사상 처음으로 당한 최대의 국상, 주체의 사회주의를 고립압살하기 위해 사면팔방에서 달려드는 제국주의자들의 책동, 몇년째 계속되는 자연재해…

이것을 보고 서방에서는 「북조선의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떠들어댔다.

사느냐 죽느냐, 자주적 인민이 되느냐 노예가 되느냐 하는 운명의 갈림길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간직하신것은 자기 영도자와 끝까지 생사를 같이하려는 인민에 대한 신념이었다. 먼발치에서나마 자기 영도자의 모습을 뵈오면 눈물을 흘리며 달려오는 인민, 강냉이밥에 된장국을 먹어도 혁명만 하면 그만이라는 것이 우리 인민의 강의한 신념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런 인민을 믿고 인민의 운명을 지켜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앞장에서 헤쳐나가시었다.

이 위대한 헌신의 노고속에 「달리는 열차집무실」, 「이동하는 집무실」, 「나날이 커가는 가방」과도 같은 전설같은 혁명일화들이 생겨났다.

철령과 오성산, 강계의 눈보라길만이 아닌 조국의 모든 길들과 산발들에 새겨진 사연은 그 얼마인가.

주체85(1996)년 초겨울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오후 2시가 지나서야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하시었다. 식탁에 오른 것은 매 사람마다 각기 강냉이죽 한공기와 무우오가리가 전부였다.

그분께서는 어서들 들자고, 배고프면 세상에 맛이 없는것이 없다고 하시며 항일무장투쟁시기 유격대원들이 통강냉이를 세여 몇알씩 끼니를 에우다가 그것마저 떨어지면 눈을 끓여 그것으로 끼니를 에우면서도 누구 하나 비관하거나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우리도 그런 정신으로 이 죽을 진수성찬으로 생각하고 먹자고 타일러주시었다.

식사가 끝난 후 그분께서는 한 일꾼에게 우리는 지금 가장 어려운 「고난의 행군」을 하고있는데 이 길에서 승리하자면 끼니를 몇끼씩 넘길 각오도 가져야 하며 필요하다면 생명을 바칠 각오도 가져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별의별 고생을 하여서라도 기어이 위기에 처한 조국을 수호하고 최악의 조건에서 생활하는 우리 인민들에게 하루빨리 낙원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애국의 열정, 헌신의 세계는 이렇듯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것이다.

고난이 크면 클수록 장군님의 애국의 열정은 더더욱 뜨거워만 졌다.

「고난의 행군」길에 허리띠를 조이는 인민들생각으로 마음 괴로와 하시던 장군님께서 맞고 보내신 피눈물의 날과 달들, 달리던 야전차를 인적드문 영길에 문득 멈추시고 애민의 눈물을 흘리신 이야기는 그 얼마인가.

한창 돋아나는 이름모를 풀을 눈여겨보시다가 동무들은 이것이 무슨 풀인지 아마 잘 모를 것이라고, 지금 사람들이 고난을 이겨내느라고 이 풀로 죽을 쑤어먹을지도 모른다고 하시며 격정으로 솟구쳐 오르는 눈물을 참기 어려워 손수건을 꺼내드셨던 이야기.

어느 한 여성중대를 찾으신 날 고난의 길에서 성장하여 조국보위초소에 달려나온 애젊은 처녀들의 얼굴빛에서 고난의 흔적을 찾아보신듯 너희들 죽을 많이 먹었지, … 하고 갈리신 목소리로 조용히 외우시었다는 사랑의 이야기.

한창나이에 잘 먹이지 못하여 키도 제대로 크지 못했다고 하시며 그분께서 가슴아파 눈시울을 적시실 때 여병사들도, 왕별을 단 장령들도 울었다.

정녕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나날 장군님처럼 조국의 어려운 난관과 인민이 겪는 모진 고통과 아픔을 뼈저리게 체험한 영도자는 없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난관앞에서 절대로 비관하지 않으시었다.

그 누가 몰라준대도, 아는이 없어도 희망안고 찬바람, 눈서리를 헤쳐나갈 때 만물소생의 봄, 낙원의 봄은 오고야만다는 필승의 신념과 낙관, 강의한 의지로 고난을 헤쳐나가시었다.

불타는 애국의 열정을 안고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체86(1997)년 9월 어느날 구월산을 찾으시었을 때었다.

인공폭포인 「지원」폭포의 폭포벽과 바닥사이의 콘크리트이음띠에 새겨진 한토막의 글발이 그분의 눈길을 끌었다.

『미래를 위하여

고난의 마지막 해 1997』

얼핏 보아서는 눈에 잘 띄우지 않는 작은 글발이었다. 누가 보라고 새겨넣은 글이 아니었다. 군인들이 명승지에 흔적을 남기고싶은 소박한 마음으로부터 누가 볼세라 자그마하게 써놓은 글발이었다.

계곡에 물이 흐르면 오랜 세월속에 묻혀 버릴  수도 있는 짤막한 글발.

수행일꾼들도 미처 보지 못한 그 글발이 장군님의 시야에 보석처럼 비쳐든것이다.

예로부터 위인은 큰일에 전념하여 사소한것은 개의치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경애하는 장군님께 있어서 그 사소한것이 바로 스쳐버릴수 없는 큰것이었다. 글줄은 짧아도 그것은 병사들이 피끓는 심장을 바쳐 조국땅위에 세운 「고난의 행군」대기념비었다. 우리는 「고난의 행군」에서 승리하였다, 광명한 미래가 우리를 부른다, 이런 심장의 웨침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이 자그마한 글발에서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사는 인민군병사들의 참된 인생관, 애국으로 불타는 혁명적낭만의 세계를 헤아려보시었고 부강번영할 조국의 내일을 내다보시었다. 고난의 천리를 걸으면 행복의 만리가 온다는 병사들의 낙관적인 신념을 읽으시었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이 글발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며 이 글을 쓴 콘크리트띠를 돌로 잘 만들어 이곳을 찾아오는 근로자들이 구월산유원지를 건설한 우리 군인들의 영웅적 투쟁을 길이 전하도록 해야 한다고 뜨겁게 당부하시었다.

이렇게 되어 군인들의 애국의 마음이 어린 『미래를 위하여 고난의 마지막 해 1997』이라는 신념의 글발은 혁명적 군인정신을 상징하고 군대와 인민의 신념을 상징하는 기념비로 길이 전해지게 되었다.

고난속에서 이렇듯 용암처럼 분출하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열렬한 조국애는 그대로 인민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주는 애국의 불이었다. 시련은 겹쌓였지만 애국의 불길은 인민에게로 더욱 세차게 타번져갔다.

예로부터 사랑은 묻는것이 아니라 느끼는것이라고 하였다.

반만년민족사의 가장 성스럽고 위대한 혁명실록의 증견자들인 이 땅의 군대와 인민은 그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오늘에 와서 스스로 절감하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제시해주신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구호의 참뜻이 무엇인가를, 장군님께서 어찌하여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앞장에 서시었는가를, 어찌하여 수령님의 한생이 어린 「인민행열차」를 타시고 오늘도 변함없이 선군궤도로 달리시는가를.

그것은 인민에게 뜨거운 사랑만을 주시기 위해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조국, 사회주의조국을 지키고 빛내이며 우리 민족, 우리 인민의 자주적 존엄, 후손만대의 행복을 영원토록 담보해주시기 위해서였다.

역사에 애국자로 불리운 사람은 많았어도 인민숭배, 인민중심의 관점에서 나라와 민족, 인민을 위해 온넋을 바쳐온 위인, 진정한 애국자는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위대한 헌신으로 새겨가시는 조국사랑, 인민사랑의 성스러운 자국자국에 시대가 바라고 우리 인민과 온 인류가 우러르는 절세의 애국자의 숭고한 인간상이 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