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5(1996)년 11월 24일 이른 아침, 수령님의 친필비가 세워진 판문점을 찾으시었다.

판문점은 북과 남이 직접 첨예하게 대치하여있는 최전연, 최전방으로서 그 어디보다 긴장이 감도는 위험한 곳이다. 더욱이 이해 11월에 접어들면서 남조선당국의 극악한 「남북페쇄정책」과 광란적인 군사적 도발책동으로 말미암아 다치면 터질 듯 한 초긴장상태가 조성되고 있었다.

그런데다가 장군님께서는 그 전날 산악 같은 격랑을 헤치고 서해안의 초도방어대와 해군부대를 현지시찰하시는 과정에 겹쌓인 피로를 미처 푸시지도 못하시고 밤에는 밤대로 수많은 문건들을 보시느라 한밤을 뜬눈으로 새우시었기에 장군님을 보좌하는 일군들은 그분께서 판문점시찰을 고려하시었으면 하는 의향을 말씀 드리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시찰을 만류하는 일군들에게 판문점시찰은 꼭 해야 한다, 내가 그동안 동부전선, 중부전선을 다녀오고 어제는 또 서해의 군부대들을 돌아보았는데 판문점초병들이 나를 얼마나 기다리겠는가, 오늘 안 가면 그들이 섭섭해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정세가 긴장한데 우리 인민들과 인민군군인들에게 신심도 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나보다 동무들이 더 힘들겠지만 우리 함께 이겨내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장군님이시라고 어찌 피로하지 않으시고 판문점으로 가시는 길이 위험하다는 것을 왜 모르시겠는가.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민족의 운명과 조국통일위업을 위해 일신의 위험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판문점시찰을 단행하시었다.

사실 말이지 판문점은 우리 나라의 다른 전연지대들과 대비할 수 없는 고도의 위험성을 안고 있는 군사접경지대이다. 다른 전연지대는 4km의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여기 판문점은 교전쌍방이 가느다란 중앙분리선을 사이에 두고 직접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곳이다.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에 도착하시는 길로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를 찾으시었다.

조국통일친필비앞에 이르신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순간에 친필비준하신 역사적 문건이 조국통일과 관련한 전략문건이었다고 하시면서 수령님께서 그때도 밤을 지새우시며 두툼한 그 문건을 다 보아주시고 표지에 활달하신 필체로 친히 존함을 쓰시고 그 아래에 「1994. 7. 7」이라는 날자를 써주시었다고 뜨겁게 회고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을 위하여 쌓으신 수령님의 위대한 업적과 불멸의 로고를 조국통일운동사와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그리고 수령님의 조국통일유훈을 높이 받드시어 분열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일의 상징으로 바꾸어놓으시려는 철석의 의지로부터 조국광복 50돌을 계기로 민족통일대축전이 진행되기에 앞서 여기 판문점에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를 세우도록 하신 것이다.

 

*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조국통일친필비는 주체84 (1995)년 8월 11일에 제막되었다.

친필비는 기본주제부분인 비문판과 목란꽃장식부분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비돌의 총 너비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1994년을 의미하여 9.4m로, 비문판의 너비는 주석께서 생의 마지막친필존함을 남기신 역사의 날인 7월 7일을 상징하여 7.7m로 되어 있다.

비문판에는 위대한 주석께서 생을 마치시기 하루전날에 친히 조국통일관계문건에 마지막으로 쓰신 다음과 같은 글발이 수령님필체그대로 새겨져 있다.

『김 일 성

1994. 7. 7』

비문판아래 목란꽃장식부분 웃단에는 『민족분열의 비극을 가시고 조국통일성업을 이룩하기 위한 역사적 문건에 생애의 마지막친필존함을 남기신 경애하는 김일성주석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가리』라는 사적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문판의 아랫부분에는 수령님께서 탄생 82돌을 맞으시는 해에 불멸의 친필을 남기시었다는 것과 어버이수령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영원히 높이 우러러 모시고 따르려는 인민들의 티없이 맑고 깨끗한 충성심을 반영하여 82개의 목란꽃송이가 부각되어있다.

 

비에 새겨진 수령님의 친필은 불과 아홉 글자밖에 되지 않지만 거기에 담겨진 뜻은 실로 수천수만자의 비문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거룩하고 위대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김일성주석께서는 나라가 분열된 첫날부터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민족분열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시며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노고에 노고를 다하신 민족의 태양이시고 조국통일의 구성이시었다.

수령님께서 열네살 어리신 나이에 조국광복의 큰 뜻을 품고 압록강을 건느실 때 그 누군가가 지은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시면서 조선이 독립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 다지시며 새겨 안으신 조국은 허리 잘린 삼천리강산이 아니었다. 그분께서 가슴속 깊이 간직하신 겨레의 모습은 분열된 민족이 아니었다. 그래서 광복의 환희가 분열의 원한으로 바뀌던 그때 수령님께서는 너무도 가슴 아프시어 항일전의 피로도 푸실 사이 없이 백두산시절 그 모습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길을 줄곧 헤쳐나가시었던 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복잡한 정치정세하에서 민족단합의 기치를 높이 드시고 생애의 전기간 무려 수백차례 합리적인 조국통일방안을 몸소 제시하시어 통일의 진로를 개척하시고 조국통일의 한길로 온 민족을 이끌어오시었다.

북과 남이 합의하고 민족 앞에 엄숙히 선언한 조국통일3대원칙도,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도,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도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것이었다. 80고령의 몸으로 참기 어려운 피로도 무릅쓰시며 조국통일을 위한 문건에 생의 마지막친필을 남기시고 순직하시었으니 수령님께서는 진정 조국통일의 구성, 통일의 태양이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깊은 추억 속에 수령님께서 걷고 걸으신 통일의 거룩한 자국을 오래도록 더듬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이 역사적인 친필에는 수령님의 강의한 통일의지와 신념이 함축되어있고 조국통일에 대한 수령님의 로고와 확신이 담겨져 있습니다.』라고 하시며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를 보니 조국통일을 위하여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모든 것을 다 바치신 수령님에 대한 생각이 더 간절하여진다, 이 친필비는 우리 인민과 온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을 힘있게 고무하며 통일조국과 더불어 후손만대에 길이 빛날 것이라고 뜨겁게 말씀 하시었다.

친필비앞에서 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말씀에는 어버이수령님의 염원과 의지대로 기어이 통일된 조국을 후대들에게 물려주시려는 그분의 결심, 철석의 의지가 담겨져 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통일유훈을 받드시어 반드시 조국통일위업을 이룩하실 신심에 넘쳐 다음과 같이 단호히 선언하시었다.

『우리는 수령님의 염원과 의지대로 조국을 반드시 통일하여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일찍이 자신의 대에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지 못하면 나의 대에는 꼭 조국통일위업을 완성하여야 한다고 교시 하시였습니다. 나는 수령님의 유훈대로 우리 시대에 반드시 조국을 통일하려고 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말씀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대로 조국통일위업을 기어이 성취하여 후대들에게 통일된 조국을 넘겨주시려는 드팀없는 통일의지가 맥맥히 흐르고 있다.

진정 판문점친필비앞에서 근엄한 어조로 하신 그 말씀은 7천만 겨레를 향하여 하신 위대한 통일선언이었고 어버이수령님 앞에 다지시는 충성의 맹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