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58(1969)년 12월 어느날이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 교향악을 주체적으로 발전시켜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음악예술로 발전시킬데 대한 문제를 가지고 음악예술부문의 한 책임일꾼과 이야기를 나누시었다.

그때 국립교향악단은 인민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있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듣고도 잘 알 수 없고 마음이 끌리지 않는 유럽의 고전교향곡이나 그것을 본따서 만든 교향곡을 가지고 출연했으므로 대중의 공감을 자아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은 교향곡이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군중의 문화수준이 낮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들의 교향곡감상능력을 키워준다는 그 무슨 「해설음악회」라는 것을 조직하는가 하면 관객을 확보한다고 하면서 미리 3개월분의 정기관람권을 예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관객은 줄어만 갔고 마침내 극장을 더는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분께서는 교향악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사대주의자들이 떠벌이는 것처럼 우리 인민이 무식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교향악을 하는가에 있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우리는 교향악을 우리 인민이 즐겨 부르는 민요와 인민들에게 널리 보급된 명곡을 편곡하는 원칙에서 발전시켜야 합니다. 다시 말하여 교향악도 우리 식으로 하여야 합니다. 』

그분께서는 그 일꾼에게 대담하게 3관 편성 교향악단을 꾸리기 위한 안을 만들 것과 민요 「그네 뛰는 처녀」, 전시가요 「내 고향의 정든 집」등 인민들 속에 널리 알려진 명곡들을 교향곡으로 편곡하여 형상하도록 가르치시었다.

국립교향악단의 일꾼들과 창작가, 연주가들은 그분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분발해 일어섰다.

그분께서는 기세 충천한 그들에게 세계 최상급의 악기도 일식으로 갖추어주시고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해야 할 그들에게 여러 가지 난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헤아리시고 자주 창작현장을 찾아 인민들의 정서에 맞게 편곡을 잘하고 그에 맞게 악기편성과 연주기법을 창조하도록 세심히 지도해 주시었다. 그러시고는 뭐니 뭐니 해도 인민들에게 합격되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광범한 대중의 의견을 받아 들일 수 있게 연습공연도 자주 조직하게 하시었다.

드디어 새로 만든 교향곡 「그네 뛰는 처녀」와 「내 고향의 정든 집」을 처음으로 무대에 올리는 날이 왔다.

이날 공연은 연주가들과 관중이 관현악의 선율 속에 하나로 어우러져 울고 웃는 격정의 도가니로 화했다. 연주가 채 끝나기도 전에 폭풍 같은 갈채가 터져 올랐다. 그것은 새 관현악의 탄생에 대한 인민대중의 환호었다.

이날 교향악단의 공연성과를 두고 누구보다도 기뻐하신 분은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었다.

그분께서는 이제는 새로 나온 교향악이 인민들에게 합격된 셈이라고 만족스럽게 말씀하시면서 그 기세로 밀고 나가 더욱 심오하고 다채로운 교향악과 협주곡 작품들을 계속 내놓으라고 격려하시었다.

국립교향악단에서는 그후 「사향가」, 「피바다가」, 「아리랑」, 「도라지」, 「조선은 하나다」,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등 인민들에게 합격된 수많은 작품들을 연이어 창작하여 무대에 올렸다.



주체59(1970)년 1월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문학예술부문의 창작가, 예술인들이 어느 한 모임에서 미학문제를 토론할 때었다.

연단에 나온 한 평론가는 거의 한마디 건너 「시투아치야」 (극적 국면)요, 「크라이막스」 (절정)요, 「멜로드라마」 (통속극)요 하고 외래어를 섞어가며 토론하였다.

이때 그분께서 그의 말을 제지시키더니 토론을 중단시켜 실례했다고 양해를 구하고 나서 청중을 향해 물으시었다.

『동무들은 꼭 크라이막스라고 해야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

그분의 물으심에 여기저기서『아닙니다. 』하는 대답이 울려 나왔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토론자를 돌아보시며 지적하시었다.

『보시오. 절정이라는 좋은 우리 말이 있는데 왜 하필 남의 나라 말을 쓰면서 그럽니까?』

그러시면서 유식을 자랑하느라고 남들이 알아듣기 힘든 말이나 외래어를 쓰는 것은 인민성이 없고 겸손치 못한 행동이므로 꼭 고쳐야 한다고 일깨워 주시었다.

그분께서 외래어는 물론 외국어나 한자어휘를 망탕 쓰지 않도록 하시면서 반면에 고유한 조선말사용을 극력 장려하고 발전시켜 나가도록 사람들을 교양하고 이끌어주신 이야기는 적지 않다.

오늘 공화국에는 그분의 언어생활에 대한 이러한 요구가 실현되어 어느 거리에 가보아도 외래어간판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외국어교육수준이 높고 여러 나라 말을 전문으로 하는 외국어소유자들도 많지만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없다.

출판물지면을 보아도 그런 현상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한자어휘도 극력 쓰지 않으면서 언어정화운동을 통하여 그것을 고유조선어로 고쳐 쓰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