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우수한 민족으로 세계에 명성을 떨쳐왔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우리 인민이 남다른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바탕은 오래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은 인류역사발전의 여명기로부터 훌륭한 민족문화를 창조하여왔습니다.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한 핏줄을 잇고 하나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한 강토에서 살아온 단일민족이며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우수한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슬기로운 민족입니다.』

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은 하나의 핏줄과 언어, 문화를 가지고 한 강토에서 수천년동안 살아온 단일민족이다.

민족의 단일성, 국토의 통일성은 우리 민족이 우수한 민족으로 될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 되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근면하고 성실하며 정의감이 강하고 용감하며 의리를 귀중히 여기고 예의도덕이 밝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이러한 우수한 민족성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 겨레는 일찍부터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창조하여왔다.

단군을 원시조로 하는 우리 민족의 역사는 5천여년을 헤아린다.

B. C. 30세기초에 벌써 우리 민족은 이 땅위에 발전된 정치제도와 자기의 독특하고 우월한 경제, 문화를 가진 동방의 강국 고조선을 세웠다.

이자체가 우리 민족의 큰 자랑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외래침략자들을 용감히 물리치고 민족의 존엄을 지켜온 애국적 투쟁의 역사이다.

우리 나라에 대한 외래침략자들의 침공은 고대로부터 그칠새 없었으며 특히 19세기말부터 더욱 강화되었다.

외래침략자들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우리 나라를 침공하여 왔으나 한번도 우리 인민의 애국충정과 용감성을 꺾지 못하였으며 굴복시킬 수 없었다.

고구려사람들은 슬기롭고 용맹하였을 뿐 아니라 조국의 방위를 위하여 충성다하는 것을 가장 영예로운 일로 생각하였다.

이로부터 그들은 무술을 배우는 것을 남자들의 의무로 여기고 어려서부터 달리기와 말타기, 활쏘기와 칼쓰기를 배웠으며 민간오락과 경기들도 모두 무술을 기본으로 하였다.

미천한 온달이 사냥경기에서 우승하고 등용되어 조국방위에서 큰 공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잘 말해 주고 있는바와 같이 고구려에서는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도 무술에 능하고 지혜와 용맹성이 있는가를 중요하게 보았다.

고구려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조국을 사랑하는 정신으로 교양되고 무술을 배웠으며 용감성으로 단련되었기때문에 높은 민족적 긍지와 씩씩한 기상을 지닐 수 있었으며 외세의 침공을 물리치고 나라의 영예와 민족의 존엄을 지킬 수 있었다.

고려사람들은 수십만의 거란군이 쳐들어왔을 때에 명장 강감찬장군의 지휘밑에 압록강과 구성에서 적들에게 섬멸적 타격을 주고 나라를 수호하였다.

이조시기에 와서도 우리 인민들은 외적을 반대하여 용감하게 싸웠다.

특히 임진조국전쟁시기에 슬기롭고 용감한 우리 인민들은 남해와 진주, 평양 등 이르는 곳마다에서 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영웅적으로 싸웠다.

이순신장군은 약한 수군병력을 가지고도 전라도 물목을 지켜 왜적이 건너오지 못하게 하였으며 한산도에서 일본수군을 전멸시키는 커다란 전과를 이룩하였다.

곽재우를 비롯한 애국자들은 의병을 일으켜 도처에서 왜적을 격멸하였다.

농민들과 하급관리, 심지어 산중에 은거하는 중들도 의병을 일으켰고 여성들도 이르는 곳마다에서 왜적을 반대하여 싸웠다.

인민들은 잔인무도하고 흉악한 일본사무라이들과 7년간이나 결사적으로 싸워 마침내 왜적을 조국땅에서 몰아내고 조선민족의 영예와 존엄을 지켰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우리 나라가 유미자본주의열강의 침략을 받게 되었을 때에도 무능하고 고루한 봉건통치배들은 나라와 인민을 돌보지 않고 개인의 권세와 향락만 탐내어 당쟁을 일삼았으나 인민들은 굴함없이 외래제국주의침략자들과의 싸움을 벌였다.

1866년 평양인민들은 대동강에 침입한 미국해적선 「셔먼」호를 물속에 처박아넣었으며 인민들과 군인들은 폴란드침략선을 쳐물리쳤다.

1894년에는 전라도농민들이 봉건통치배들의 악정을 반대하여 농민전쟁을 일으켰다.

이때에도 농민들을 비롯하여 애국적 군인, 선비들은 통치배들을 반대하여 투쟁하였을 뿐 아니라 국내의 혼란된 기회를 이용하여 기어들어온 일본침략군을 맞받아 피어린 투쟁을 벌였다.

나라가 일제에게 강점된 후에도 인민들은 의병운동, 독립운동을 힘차게 벌였다.

해와 달도 어둡던 망국의 그 세월에 저 멀리 헤그의 「만국평화회의」장을 붉은 피로 물들인 이준열사의 원통한 죽음과 할빈역두에서 조선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을 통쾌하게 처단한 안중근열사의 애국적 소행은 온 겨레의 피를 끓게 하였었다.

조선독립 만세소리가 빼앗긴 강산의 방방곡곡을 뒤흔들었던 3.1인민봉기는 일제의 식민지통치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특히 일제통치의 가장 암담한 시기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조직영도하신 항일혁명투쟁에 의해 민족해방의 역사적 위업이 실현된 것은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빛나는 한 장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이 자랑스러운 역사전통은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키워준 자양분이었다.

우리 민족은 또한 우수한 창조적 능력으로 문화를 발전시켜온 슬기로운 민족이다. 우리 겨레는 일찍이 「대동강문화」를 창조한 긍지높은 민족이다.

세계적으로 볼 때 고대선진문명은 산천이 수려하고 땅이 비옥한 강류역에서 형성되었으며 그것은 일반적으로 강이름과 결부된 「문화」로 불리워왔다.

세계적으로 인류문명이 처음으로 창조된 지역들로는 우리 나라의 대동강류역과 함께 중국의 황하류역, 인디아의 인다스강류역, 에짚트의 닐강류역, 서남아시아의 량강류역이 속한다.

이 지역들을 인류문화의 5대발상지라고 하며 이 지역들에서 발전한 문화를 세계 5대문명으로 일러오고 있다.

수정같이 맑은 강줄기와 넓고 비옥한 평야, 풍요한 자원과 따뜻한 기온으로 하여 예로부터 대동강류역은 인류고대문명의 발상지, 중심지로서 이 지역에서 발전한 「대동강문화」는 세계 5대문명의 하나로 당당히 꼽히고 있다.

「대동강문화」는 단군릉과 비파형단검문화를 대표하는 고인돌무덤, 단군조선의 국가적 성격을 실증해 주는 고대성곽들과 고대부락터들, 문명사회의 발전면모를 보여주는 청동제유물들과 고대천문도유적(별자리가 새겨져있는 고인돌무덤) 등 대동강류역에서 드러난 고조선시기의 유적유물과 그를 계승하여 발전한 문화를 기본내용으로 하고 있다.

「대동강문화」는 이전시기 모든 단계의 문화가 순차적으로 련면히 발생발전한 유구한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는 문화로서 단일성과 독자성, 계승성이 뚜렷한 우수한 문화이다.

대동강류역에서는 이를 실증해 주는 고고학적 자료들이 많이 발굴되었다.

100여만년전 원인들이 남긴 평양시 상원군 검은모루유적을 비롯한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의 유적들은 바로 대동강류역이 인류발상지의 하나, 인류의 초기문화가 싹튼 유서깊은 역사의 성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대동강류역은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동시에 고대문화의 중심지였다.

대동강류역이 고대문화의 중심지였다는 것은 우선 단군조선시기의 문화를 대표하는 고인돌무덤과 돌관무덤이 이 강류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있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고인돌무덤은 함경남북도, 양강도, 강원도, 중국의 요동지방에서는 각각 100~500여기가 알려졌지만 대동강류역에는 초보적인 자료에 의하더라도 1만 4,000여기가 분포되어있다. 그것도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초기형으로부터 말기형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시기의 것이 다 있으며 특대형고인돌무덤도 다른 지역들에 비할바없이 많다.

대동강류역에서 도시를 방불케 하는 큰 부락터유적들이 많이 발견된 것도 고대문명의 중심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발전된 청동주조기술과 가공기술에 의해서만 만들 수 있는 비파형창끝을 비롯한 세련된 청동제유물들의 발견은 대동강류역이 비파형단검문화의 중심지라는 것을 보여준다.

단군조선시기 평양의 밤하늘에서 볼 수 있었던 40여개의 별자리가 새겨져있는 고인돌무덤들은 당시 대동강류역이 인류고대천문학의 발원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대동강문화」의 발전수준을 엿보게 하는 또 하나의 실례이다.

대동강류역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이른시기에 선진경작법을 도입한 오곡농사가 발전하였다는 것도 알려졌다.

모든 사실은 대동강류역이 인류의 발상지, 고대문화의 중심지의 하나로서 일찍이 고대문명이 싹트고 꽃펴난 곳이라는 것을 실증해 주고 있다.

참으로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은 우리 민족문화의 발상지, 반만년전부터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인류문화의 보물고를 빛나게 장식해 주는 문화적 재부가 가득차있는 자랑스러운 역사의 고장이다.

「대동강문화」를 창조한 것은 우리 겨레의 크나큰 자랑이며 긍지이다.

우리 겨레는 일찍부터 선진문명을 슬기롭게 창조하고 발전시켜왔다.

우리 선조들은 아득히 먼 옛날부터 철을 생산하기 시작하여 세나라시기에 와서는 철재로 생활도구를 만들어 광범히 이용하였으며 7세기 전반기에 벌써 세계에서 가장 이른 천문대인 첨성대를 건설하여 기상학과 천문학발전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으며 건축술도 대단하였다.

7세기에 건설했다는 황룡사 9층탑,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은 당시 우리 민족의 건축술발전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수천년이 지나도 그 색이 변하지 않는 고구려고분의 벽화들과 신라의 석굴암의 조각상들은 우리 나라 고대 미술의 높은 발전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대로부터 음악과 무용도 발전하였다.

우리 나라의 발전된 문화와 야금술, 도자기술 등은 세나라시기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며 주변나라들의 문화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우리 선조들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였으며 세계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과 비행기의 조상인 비차를 만들어내어 명성을 떨치었다.

참으로 우리 민족은 역사의 유구성과 혈통의 단일성에 있어서나 인류문명발전에 이바지한 공적과 지혜로 보나 정신도덕적 면으로 보나 세계 어느 민족도 따를 수 없는 우수한 민족이다.

우리 민족의 이러한 남다른 우수성은 우리 민족제일주의의 기초로, 원천으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