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장군 선군정치이론」중에서

 

 

 

 총대에도 사상이 있으며 총대의 위력은 사상과 신념의 위력이라는 것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의 총대혁명원리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총대의 위력은 사상과 신념의 위력입니다. 사상이 없는 총대는 막대기만도 못하며 사회주의위업에 충실하지 못한 군대는 사회주의를 수호할 수 없습니다.』

총대의 역할을 높이는 데서 사상을 기본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사상론의 제시라 할 수 있다.

무릇 무장력은 무장장비와 그것을 다루는 군인들을 구성요소로 한다. 이로부터 총대가 얼마나 위력한가 하는 것은 총의 물리적 타격력과 군인들의 사상정신력을 기초로 한다.

여기에서 기본을 이루는 것은 총잡은 군인들의 사상정신력이다.

아무리 고도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총일지라도 그것을 다루는 군인들이 사상정신적으로 준비되어있지 못하면 자기의 위력을 다 발휘할 수 없다.

정신적 취약성이 무장력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하여 오래전부터 여러 나라의 군대들에서는 병사들의 정신력배양에 관심을 돌여왔다.

제2차세계대전시기 히틀러는 독일군사병들에게 『전 세계가 두려워하는 청년』으로 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나에게는 강한 주동성, 주인의 기개, 두려움을 모르는 잔인한 군인들이 필요하다. 절대로 연약하고 온순하지 말아야 하며 눈에서는 거만한 정기와 맹수같은 빛이 차넘쳐야 한다.』고 설교하였다. 그는 게르만족은 『세상에서 가장 고급한 인종』이므로 응당 다른 민족을 지배하여야 한다는 사상을 주입하는 것과 함께 독일의 「인구과잉」을 해결할 방도는 오직 한가지 즉 「생존공간」을 넓히는 것이며 그러자면 무력으로 다른 민족의 땅을 타고 앉아야 한다는 「우승열패, 약육강식」의 군국주의를 집요하게 고창하였다.

미국군대내에서의 사병들에 대한 정신배양에서도 이와 유사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미국군대에서는 군에 징집된 사병들이 군기 앞에서 선서를 하기전에 「당신들을 환영합니다」라는 소책자를 주는데 그 첫폐이지에는 『미군사병들은 무자비하고 능숙한 살인자가 되어야 한다.』는 등의 내용들이 있으며 「사병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란에는『국가는 너를 위해 수만달러를 지불하고 있다. 때문에 너는 국가를 위하여 너에게 차례진 인간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것으로 이를 보상해야 한다.』고 씌여져 있다고 한다.

제국주의군대내에서의 정신배양이란 잔인성으로 길들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국주의군대가 인간을 야수화하는 잔인성을 정신배양의 기본내용으로 하는 것은 제국주의군대의 침략적 본성과 관련된다.

잔인성으로 길들여진 제국주의군대는 야만의 무리이지 거기에는 무적강군의 전투정신이나 전투력이 배양될터가 없다.

제국주의군대는 물론이고 자기 위업의 정당성을 갖지 못한 어떤 군대도 비록 현대적 장비로 무장되어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상정신적으로 취약하기 마련이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의 옹호실현을 위해 조직된 혁명군대도 사상적으로 변질되면 총대의 과녁을 잃게 되고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기울어지는 시각에조차 총소리 한번 울리지 못하는 그야말로 나무막대기와 같은 신세가 되고 만다.

총대의 위력은 사상과 신념의 위력이기 때문에 혁명군대가 사상을 틀어쥐면 승리하지만 사상을 놓치면 망한다는 것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의 총대사상론의 기본이다.

사상을 틀어쥐면 승리하고 사상을 놓치면 망한다는 것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간고한 혁명투쟁에서 확증된 진리이며 주체사상이 밝힌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서 견지해야 할 근본원칙이다.

인민대중의 혁명사상, 사회주의사상을 생명선으로 틀어쥔 총대,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의 정당성을 신념으로 간직하고 있는 총대는 제국주의자들의 그 어떤 물리적 타격수단도 제압하는 사상강군, 무적필승의 강군이 될 수 있지만 사회주의사상을 버린 총대는 반혁명의 무기로 전락되고 만다.

혁명군대가 사상을 놓치면 무엇보다도 계급적 성격에서의 변질을 가져온다. 어떤 군대이건 그 계급적 성격은 그가 지도이념으로 내세우는 사상에 의해 규제된다. 사회주의사상에 기초한 군대는 혁명군대가 되고 자본주의사상에 기초한 군대는 침략군대가 되는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혁명군대의 위력은 다름아닌 사회주의사상의 위력에 있는 것이다. 혁명군대는 사회주의사상을 생명으로 하는 군대이다.

혁명군대가 이러한 생리에서 이탈되어 사상을 홀시하면 단순히 전투력이 약화되는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근본뿌리가 흔들리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원래 사상은 계급과 집단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나온 의식의 한 형태로서 중간이나 공백이란 있을 수 없다.

사회가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으로 갈라지고 대립되어있듯이 사상도 그러한 반영으로서 착취계급의 반인민적 사상과 피착취계급의 혁명사상이 있을뿐이다.

자기의 사상에서 변질과정이 이루어지면 반드시 상대의 사상이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기마련이다.

모든 혁명투쟁, 계급투쟁은 이 두 사상간의 대결이며 총대는 이러한 자기 계급의 사상의 정당성을 관철시키는 무기이다.

때문에 혁명군대의 총대는 오직 혁명사상, 사회주의사상으로 만장약되고 신념화되어야 계급의 총대로서의 사명과 책임감을 다하는 위력을 지닐 수 있다.

혁명군대에 있어서 「비정치화」, 「비사상화」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며 어떠한 정당성도 갖지 못한다. 원래 비정치화, 비사상화는 자본주의정치체제가 내세우는 구조적 기능이다. 자본주의하에서 군대는 그 어떤 정치집단과도 무관하여 오직 국가의 군대로 조직되는 것이다.

사회주의사회는 어떤 정당이나 집단도 그 요구와 이해관계에서 일치하기때문에 비정치화, 비사상화문제가 제기될 수 없고 사회주의군대의 비정치화, 비사상화는 결국 사회주의사상에 대한 거부, 부인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는 각이한 요구와 이해관계를 가진 정치집단들로 되어있기때문에 군대가 사상화를 주장한다는 것은 곧 어느 특정집단의 사상만을 주창하는 것으로 되기때문에 비사상화, 비정치화의 구호로 그것을 막는 것이다.

사회주의사회에서 군대의 「비정치화」, 「비사상화」는 곧 사회주의사상, 혁명사상의 거부, 자본주의사상의 수용을 뜻하며 총대가 자기의 계급적 성격에서 이탈할 수 있는 조건을 지어준다.

때문에 혁명군대는 사회주의사상을 생명으로 삼고 사상의 위력을 강화하는데 1차적 관심을 돌리며 사상의 위력강화로 총대의 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된다.

다음으로 혁명군대가 사상을 놓치면 적아식별의 능력을 잃게 되어 반혁명의 도구로 전락되고 만다.

군대는 손에 총을 잡고 있기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적아가 명백히 구별되어있어야 한다.

적아식별의 기준이 되는 것이 다름아닌 사상이다.

혁명군대가 사상적으로 변질와해되면 이 적아식별기준을 잃게 된다. 자기가 쏘아잡아야 할 과녁을 잃게 되는 것이다.

제국주의와의 대결은 본질에 있어서 자본주의사상과 사회주의사상의 대결이며 그 최종승부는 총대의 위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데 총대가 과녁을 잃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지는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께서 계급적 자각, 혁명적 각오가 없이 맹목적으로 잡은 총은 사실상 막대기만도 못하다고 가르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전 소련을 비롯하여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좌절은 군대가 개인이기주의와 자유주의, 염전사상을 비롯한 비사회주의사상에 오염되어 적아식별의 능력을 상실한데 그 출발점을 두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 나라들에서는 서방과의 공보-사상전쟁에서 패하여 「개혁」, 「개편」에로 정책변화함으로써 군대가 크게는 미제국주의를 비롯한 제국주의를 적이 아닌 동반자로 규제함으로써 자기의 과녁을 잃은 것에 뒷이어 국내에서는 누가 계급적 원수이고 아닌지를 가려보지 못하고 「인민」임을 자처해나선 반동들의 반정부소요, 반사회주의책동을 견제하지 못했거나 오히려 도와주기까지 하였다.

계급적 각성이 투철하지 못하고 사상적으로 견실하지 못한 총대는 가장 준엄한 시기에 누가 계급적 원수이고 아닌가를 갈라보지 못하는 막대기에 불과한 것이다.

계급적 원수는 출신성분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어떤 경력을 가졌든 출신성분이 어떠하든 사회주의사상을 가지고 사회주의제도를 진심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동력으로 될 수 있다.

계급적 원수는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모든 자들이다. 출신성분이 어떠하든 과거에 어떤 공로를 세웠든지에 관계없이 사회주의사상을 반대하는 자들은 예외없이 계급적 원수들이며 무자비한 계급투쟁의 대상이다.

인민의 고혈을 짜내며 살아가던 옛 처지를 잊지 않고 사회주의제도에 반감을 품고 있는 자들,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책동에 놀아나며 부르조아생활양식을 내부에 끌어들이는 자들, 돈에 눈이 어두워 사회주의원칙을 저버리는 자들을 비롯하여 사회주의를 내부로부터 좀먹는 자들은 모두 사회주의의 적이며 인민의 계급적 원수이다.

이런 자들은 정세가 복잡해지거나 난관이 조성되면 인민의 원수로서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게 된다.

「인민」의 탈을 쓴 인민의 원수들의 정체를 똑바로 가려보아야 한다. 계급적 원수들은 언제나 「인민」의 탈을 쓰고「애국」이라는 말로 저들의 반역행위를 가리운다.

사회주의제도를 반대하는 자들은 절대로 인민이라는 성스러운 이름을 지닐 수 없다. 이런 자들은 모두 인민의 원수들이다. 「인민」의 탈을 쓴 인민의 원수들의 반혁명적 정체를 똑바로 가려보지 못할 때 인민의 운명이 농락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혁명군대는 계급적 각오, 계급적 자각을 높여 누가 혁명의 원수이고 아닌지를 명백히 구별하며 사회주의사회의 계급진지를 총대로 지키며 안팎의 정세가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계급적 원수들의 준동에 단호하게 대처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