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새벽이었다.

그날 청산벌에는 유달리 안개가 짙었다.

논뚝길을 걷고 계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멀지 않는 곳에서 논배미의 물고를 손질하는 한 노인의 모습을 보시고 그에게로 다가가며 말씀하시었다.

『논물관리공입니까?』

『예.』

『논갈이는 다 끝냈습니까?』

『다 끝내고 써레질이 한창이지요.』

논물관리공은 지나가던 어느 이웃 농장의 사람인줄로 알고 고개도 들지 않은째 무심히 대답했다.

『올해는 얼마나 깊이 갈았습니까?』

『35cm는 보장했지요.』

『35cm라, 지난해보다 5cm는 더 깊이 갈았군. 거름은 얼마나 냈습니까?』

『정당 20t씩은 내야겠는데 겨우 15t밖에 못냈지요.』

『지난해 보다는 많이 냈구만. 수고들 했겠습니다.』

『수고가 없습니다. 수령님교시대루 내지 못했는데 무슨 수고겠습니까?』

서슴없이 대답을 하다가 논물관리공은 주춤거렸다.

(뉘시길래 이처럼 우리 농장사정을 잘 알까? 군의 책임일꾼일까?…)

그러나 짙은안개 때문에 모습을 가려볼 수 없었다.

그가 알기로는 이른새벽에 논뚝길을 걸어와 이렇게 농사일을 소상히 알아보는 간부는 아직 없었다.

그는 안개속에서도 말을 건네 어디서 오는분이신가고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안개때문에 모습은 가려볼 수 없어도 논갈이나 퇴비수자까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청산리농사경험을 알아보러 온 타곳 농장의 기술일꾼이 분명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담화는 계속되었다.

『모는 실하게 자래웠습니까?』

『여부가 있습니까. 바늘모를 키워 우리 수령님께 걱정을 끼쳐드린 다음부터는 모두가 정신을 버쩍 차렸지요.』

『지금 몇잎이나 자랐습니까?』

『대여섯잎은 되지요.』

『맞춤하구만. 그래 모내는 기계는 얼마나 들어왔습니까?』

논물관리공은 말이 막혔다.

(참 깐깐도 한분이로군.)

그는 농장 전체 실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모내는 기계가 얼마나 들어왔는지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씀드리고 하던 삽질을 계속하였다.

자욱했던 안개가 점차 가셔지기 시작했다.

그분께서는 물대는 것을 좀 구경하자고 하시면서 보도랑을 뛰어넘어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시었다.

고개를 쳐들던 논물관리공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가 아니신가?)

그제야 그는 농립모를 벗으며 어쩔줄 몰라했다.

방금 그분께 무랍없이 대답한 것이 죄송스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경애하는 그분께서는 다정하게 미소를 지으시며

『새벽부터 수고합니다. 청산벌이 보고 싶어 나왔습니다.』라고 하시며 손을 내미시었다.

흙탕물이 묻은 손을 어쩌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있는 그에게 한걸음 더 다가서신 그분께서는 덥석 그 손을 잡으시었다.

『일하는 사람의 손이 그렇지요. 무슨 허물이 있습니까.』

그분께서는 다시 다정하게 말씀을 건네시었다.

『그래 모는 언제부터 냅니까?』

『3~4일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내려고 일손을 다그칩니다.』

그분께서는 허리에 손을 얹으시고 안개 걷히는 청산벌을 둘러보시었다.

새벽부터 모내기를 앞두고 들끓는 벌을 만족한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그분께서는 힘주어 말씀하시었다.

『청산리는 모내기도 제철에 잘하여 전국에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올해에도 날씨가 좋지 않을 것이 예견되니 모내기 때부터 단단히 잡도리를 하고 농사일을 잘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논물관리공과 함께 논뚝길을 걸으시었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그분의 신발과 바지가랭이를 축축히 적시었다. 두렁길은 여간만 질벅하지 않았다.

『길이 험합니다.』

논물관리공은 송구스러웠다.

그러나 경애하는 그분께서는 주저없이 진창길을 걸으시며 유쾌하게 말씀하시었다.

『수령님께서 늘 걸으시는 길이 아닙니까. 이런 길을 매일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신발에 진흙이 두텁게 묻어오르는데는 아랑곳하지 않으시며 논물관리공을 보고 조심히 걸으라고 이르시었다.

인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려고 고심하시는 그분의 하루일과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분을 우러르며 논물관리공은 생각하였다.

(우리가 농사꾼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다나니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이른새벽 농장원들보다 먼저 질벅한 논뚝길을 걸으시게 하는구나.

우리 같은 백성들을 하늘처럼 믿고 인민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시는 그분 앞에 정말 면목이 없구나 면목이 없어.)

논물관리공은 안개짙은 이 새벽에 논뚝에서 하신 잊지 못할 그분의 귀중한 말씀들을 다시금 하나하나 가슴 깊이 새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