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85(1996)년 11월24일, 이날은 판문점을 시찰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안개가 감싸준 유명한 일화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날이었다.

판문점은 가느다란 중앙분리선을 사이에 두고 교전쌍방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가장 위험한 최전연이다.

그분께서 이런 위험한 곳에 나오신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날 판문점일대에 때아닌 짙은 안개가 끼어 장군님을 감싸준 이야기 또한 신기하기 이를데 없는 이야기이다.

그 안개는 참으로 지척을 분간키 어려운 짙은 안개였다. 계절로 보아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때아닌 안개가 나타난 것이다.

이 천지조화를 두고 사람들 속에서는 항일대전에 나서신 위대한 수령님을 적들로부터 가리워주고 감싸주던 백두산의 안개가 이날 이곳에 자욱히 내렸다는 말도 생겨나고 백두산용마구름이 몰아온 눈보라가 삽시에 흰 안개로 변하여 판문점일대를 덮어 버렸다는 이야기도 생겨났다.

그날 새벽 판문점을 향해 떠나실 때 그곳만은 나가시지 말아달라고 만류하는 일꾼들에게 나는 빨치산의 아들이라고 하시면서 우리의 충실한 전사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라도 가야 한다고 하신 장군님의 말씀이 후일 알려졌을 때는 그 말씀이 바로 그분께서 백두산의 안개를 불러오신 말씀이라고 모두들 이야기했다.

사실 그 짙은 안개 때문에 적들이 지척에서도 장군님께서 판문점 판문각노대에까지 나서신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적측이 우리측 구내에 대한 감시 및 정보수집을 위한 최신기술수단들을 다 갖추어 놓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장군님께서는 판문점 여러곳을 유유히 다 돌아보시었을뿐아니라 가는 곳마다에서 뜻깊은 말씀도 많이 하시었다.

판문점대표부에 도착하신 그분께서는 처음으로 어버이수령님의 친필비를 찾으시었는데 그 앞에서 하신 말씀중에는 이런 말씀도 있다.

『조국통일을 위하여 쌓으신 수령님의 위대한 업적과 크나큰 노고를 우리 인민의 조국통일운동사와 후세에 길이 전하려고 그 친필사적을 화강석에 그대로 새겨 여기 판문점에 비로 세웠습니다. 판문점은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가 세계전쟁사상 처음으로 미제를 타승한 역사적인 장소이면서도 민족의 분열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나는 분열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일의 상징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염원에서 해마다 해내외의 수많은 통일운동자들이 모여 통일행사를 벌이는 이곳 판문점에 조국통일의 구성이신 수령님의 통일친필비를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비에 새겨진 수령님의 친필은 불과 아홉글자밖에 되지 않지만 여기에 담겨진 뜻은 수천수만자의 비문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거룩하고 위대한 것입니다.』

판문각에 오르시어서는 군사분계선 남쪽을 바라보시며 여기서 서울까지는 불과 40km밖에 안된다고 하시면서 서울, 부산, 제주도에도 나가보아야 하겠는데 조국통일이 안되다보니 지금은 여기서 부득이 멈춰서게 된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판문각을 내리시어서는 다시금 어버이수령님의 친필비를 찾으시었는데 오랫동안 그 앞에 서시어 수령님께서 나라의 통일을 위해 기울여오신 노고의 낮과 밤을 감회깊이 돌이켜보시었다.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조국통일3대원칙,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이 조국통일의 3대기둥, 3대헌장이라고 하신 말씀도 여기서 처음으로 하시었다.

그분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일꾼들을 둘러보시며 선언하듯 말씀하시었다.

『우리는 수령님의 염원과 의지대로 조국을 반드시 통일하여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일찍이 자신의 대에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지 못하면 나의 대에는 꼭 조국통일위업을 완성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었습니다. 나는 수령님의 유훈대로 우리 시대에 반드시 조국을 통일하려고 합니다.』

그분께서는 이어서 판문점 통일각을 찾으시었다.

그 다음에는 정전담판회의장과 정전협정조인장을 돌아보시면서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판문점대표부 군인들의 훈련모습도 보아주시고 기관총과 자동보총, 쌍안경을 기념으로 주시고 대표부군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시었다.

이처럼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의 여러곳을 장시간에 걸쳐 일일이 돌아보시었으나 그때까지 남측에서는 눈뜬 소경처럼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분께서 판문점을 시찰하시는 그때 주위에는 온통 안개가 가득히 끼어 한치도 내다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남측에서는 결국 3일후 우리의 보도가 나간 후에야 이 소식을 알고 아연실색하였다. 남측내부는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북의 최고당국자가 나타난지 3일이 지나도록 모르고 있었다면 대북정보수집에 구멍이 난 것이 아니냐.』 하는 추궁과 비난이 쏟아져 나오자 남조선 「국방부」는 『당시 안개가 끼어 10m앞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파악할 수 없었다. 녹화확인이 불가능했다.』고 발뺌하였으며 「통일부」는 『녹화화면을 검토했는데도 안개때문에 파악하지 못했다.』고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아마도 북에서 보도가 나가지 않았더라면 남에서는 3일이 아니라 300년이 가도 눈뜬 소경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당시 이 사실을 보도한 남조선 「경향신문」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