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굴지의 연, 아연 생산지인 검덕광산은 북부산악지대의 깊은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64(1975)년 7월1일 험산준령을 넘고 넘어 이곳을 찾으시었다. 

그분께서는 열차에서 내리시는 길로 잠시의 휴식도 없이 제2 선광장을 돌아보신 다음 막장을 보자고 하시며 4.5갱으로 향하시었다.

4.5갱 막장은 수천척 지심 깊이에 있을 뿐아니라 그 무렵에 생산만 내미느라 잘 정비하지 않아 갱안이 복잡하고 곳곳에서 석수까지 흐르고 있었다. 

일꾼들은 그런 곳에 그분을 모실 수 없다고 단정하고 『막장에만은 들어가시지 못합니다. 막장이 험합니다.』라고 하면서 그분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광부들이 일하고 있는데 왜 나라고 못 들어가겠는가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갱안에 들어가지 않을 바에야 우리가 무엇때문에 여기에 오겠습니까. 

우리의 귀중한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이라면 아무리 멀고 험한 곳이라도 들어가 보아야 합니다.… 내 걱정은 말고 들어갑시다.』 

그토록 만류했지만 그분께서는 허물없이 광부들이 쓰는 안전모를 쓰고 인차에 오르시었다. 

인차는 굴속을 향해 떠났다. 그분을 모신 인차가 막장으로 들어간다는 소식에 접한 광부들이 저저마다 간데라불을 들고 달려와 약속이나 한듯이 인차길 양 옆에 줄지어 서 있었다. 

『그분을 막장에 모시다니?』,『이런 변이라구야.』 

온 갱도안이 술렁이는 가운데 경사지고 험한 20리 굴길을 달려 인차가 막장에 닿았다. 순간 온 막장이 환호로 들끓었다. 

그분께서는 밝은 미소를 머금으신채 인차에서 내려 광부들의 손을 허물없이 잡아주시었다. 

『전당, 전국이 검덕을 지원하고 있는데 나도 오고싶어서 왔습니다. 막장에서 일하는 광부들이 보고싶어서 왔습니다.』 

그분께서는 앓는 사람은 없는가, 일이 힘들지 않는가 일일이 물으시며 막장을 돌아보시었다. 

광부들이 모두 건강하며 사기도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없이 기뻐하시던 그분께서는 한장의 속보 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었다. 

그 속보에는 집에도 나가지 않고 막장에서 침식을 하며 일하는 광부들의 소행이 모범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신중한 안색으로 속보를 보고 나신 그분께서는 갱장에게 막장에서 침식을 하는 광부들이 많은가고 물으시었다. 

갱장은 막장에서 침식을 해가며 작업을 하는 광부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고 자랑스럽게 말씀드렸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곁에 있는 광산지도일꾼들을 나무라시는 것이었다. 

『갱안에서 자면서 일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막장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도 바로 노동계급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광부들을 아껴야 합니다. 공기가 나쁜 막장에서 재우지 말고 꼭 밖에 나가서 휴식하도록 하시오.』 

그분께서는 노동자들이 갱막장에 들어와 나가지 않고 일하는 것을 칭찬하고 선전까지 하는 것은 그것을 장려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니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단위시간에 능률을 내고 밖에 나가 충분히 휴식하도록 해야 한다고 거듭 깨우쳐 주시었다. 

광산일꾼들은 통풍장치가 잘 되어 있고 태양등까지 설치되어 있으며 식당, 영사실, 학습실까지 마련된 막장인만큼 광부들이 자진해서 침식을 하며 일하는 것을 그닥 잘못된 일로 생각지 못한 자기들의 관점을 두고 깊이 뉘우치게 되었다. 

이어 그분께서는 막장에 꾸려진 갱사무실에 들어가 광산지도일꾼들과 생산문제를 토의하시면서 운광문제를 풀기 위해 벨트콘베아를 놓자고 하시었다. 그분의 이 말씀에는 물론 광석운반이 몇배로 늘어나는데 대처한 것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힘들게 일하는 광부들을 생각하시는 그분의 각별한 사랑이 깃들어 있었다. 

이날 그분께서는 갱밖으로 나오시어 광부들의 건강이 마음에 걸리시는듯 다시금 일꾼들에게 광부들이 집에 나와 휴식하고 일하도록 하라고 당부하시었다.

『우리는 땅속의 보물이 아무리 귀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결코 당과 혁명의 가장 귀중한 보배들인 우리 노동계급의 건강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받아안은 광부들은 다함없는 감사의 정을 금할길 없었다.

험산준령의 깊은 산속에 자리잡고 있는 광산에 찾아오시어 석수가 흐르는 갱막장에까지 들어가시는 그분의 그 헌신성의 근저에는 무엇보다도 근로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놓여있었다.

사랑이 힘이었다.

그분께서 다녀가신 다음 검덕광산에서는 산악도 떠옮길 힘과 담력이 생겨났다.

검덕의 광부들은 당창건 30돌을 앞두고 총돌격전을 벌여 그처럼 아득히 보이던 6개년 계획의 광물고지를 앞당겨 점령했으며 용기백배, 기세충천하여 전국의 앞장에 서서 3대혁명의 깃발을 치켜들고 전진해 나가게 되었다.






 



 주체90(2001)년 9월 어느 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김책공업종합대학을 현지지도하실 때의 일이다.

마중나온 일꾼들 속에서 낯익은 교수, 박사들을 알아보신 그분께서는 매우 반가와하시며 정말 오래간만이라고, 그동안 잘 있었는가고 일일이 그들의 안부를 물어주시었다.

이어 그분께서는 새로 꾸린 교육과학전시관을 돌아보시었다.

전시관에는 최근년간 대학의 교직원, 학생들이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제기되는 과학기술적 문제들과 최첨단과학기술을 우리 식대로 연구개발한 수천 점의 연구자료와 기술설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처럼 어려운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 허리띠를 조이면서도 변함없이 당을 받들어 과학탐구의 길을 걸어온 이 대학 교직원, 학생들의 연구성과를 높이 평가하시면서 『그간 좋은 것을 많이 연구하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프로그램  도판 앞에서 새로 개발한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들을 요해하실 때였다.

대학의 한 학부장이 한걸음 나서더니 장군님, 제가 몇년전 프로그램전시회때 경애하는 장군님께 프로그램을 해설하여 드렸습니다라고 말씀드리었다.

『그렇지, 글쎄 어디서 꼭 본 사람같다 했다니까.』

그분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그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었다. 

수년전 얼핏 한번 보신적 있는 평범한 한 과학자의 모습까지도 기억하시는 그분 앞에서 일꾼들도 노학자들도 감동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있었다.

최첨단기술을 개발했다는 자신심에 넘친 그들의 해설을 주의깊게 들으시던 장군님께서는 『응용프로그램개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기술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컴퓨터기술분야에서 생명으로 되는 새로운 연구과제를 밝혀주시었다. 

순간 노교수, 박사들의 가슴은 감탄과 놀라움으로 가득찼다.

장군님께서 정보산업시대에 내재하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약점을 단번에 밝혀내시었을뿐 아니라 현시기 첨단과학기술분야의 가장 높은 목표를 제시하시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그 분야 기술체계는 어느 한 「패권국가」의 독점물로서 이 지구상의 모든 대소국가들이 그것을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순종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장군님께서는 「초대국의 독점」을 깨뜨리고 그들보다 훨씬 앞선 우리 식 컴퓨터기술을 개발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고 그 방도를 밝혀주시었던 것이다.

교수들은 그분께서 컴퓨터기술과 정보산업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을 소유하고 계신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정통하고 계시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장군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우리 식의 컴퓨터체계를 개발하기 위한 방향과 방도, 지어 연구집단을 꾸리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교수들과 과학자들은 컴퓨터의 능력과 망의 결합, 운영체계와 적용범위, 자료전송속도 문제와 각종 프로그램의 개발방도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심원한 과학의 세계를 펼쳐 놓으시는 그분께 완전히 매혹되었다. 

 



 

주체62(1973)년 12월도 다 간 어느 날이었다.

이날 아침 은천군 초교리 구석몰마을의 소학교 학생 몇명이 학교로 가던 도중 수정천이라는 크지 않은 냇가에 다달았을 때였다. 

갑자기 몇대의 승용차가 달려 왔다.

승용차들은 그 애들이 비켜서 인사드리는 곳으로 다리도 없는 냇 물을 건너갔다. 

산골 개울물은 아직도 얼지 않고 김을 뿜으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강을 건너간 승용차들이 갑자기 멎어서더니 거기서 웬 간부들이 내리었다.

그중에서도 유달리 환한 미소를 담으신분이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흔드시며 아이들을 부르시는 것이었다.

『얘들아, 이리 좀 오너라.』

아이들은 신이 나서 냇물을 건느려고 돌다리로 달려 갔다.

『덤비지들 말고 천천히 건너오너라.』

그분께서는 아이들이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질세라 이르시었다.

눈에 덮인 돌다리들은 몹시 미끄럽고 위태로와 보였으나 아이들은 익숙된 발디딤으로 닁큼닁큼 건너서 그분께로 달려가 인사를 올렸다.

『용케들 건너왔구나. 어데로 가는 길이냐?』

그분께서는 어린이들을 바라보시며 정답게 물으시었다.

『학교에 가는 길입니다.』

아이들은 씩씩하게 대답올렸다. 

『늦지들 않았느냐?』

『예, 늦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는 허리를 굽히시고 아이들 가까이로 다가 가시어 어느 학교에 다니며 몇학년이며 나이는 몇살인가고 일일이 물으시었다. 

그애들은 소학교 3학년생들이었다. 

『그럼 너희들은 매일 이 돌다리를 건너 학교에 다니겠구나…』

그분의 심중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들은 역시 힘있게 대답하였다.

『예, 그렇습니다.』

그분께서는 여름철에 물이 불어날 때에는 어떻게 건너다니느냐고 다시금 물으시었다.

『아버지나 어머니, 중등반 오빠, 언니들이 업어서 건너줍니다.』

『업어서 건너준다?』

그분께서는 멀리 바라보이는 진주고개를 에돌아 굽이굽이 흘러내리는 수정천줄기에 시선을 던지시었다.

어느새 내리기 시작했는지 흰눈이 그분의 어깨위에도 어린이들의 옷에도 내려 앉았다. 

그분께서는 어린이들의 어깨위에 내려 앉은 눈을 털어주시며 다정히 말씀하시었다. 

『얘들아, 그럼 이제는 학교에 가봐라.… 눈이 쌓여 돌이 미끄럽겠는데 조심해서 건너다녀라.』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였다.

갑자기 건설자재를 실은 자동차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건설자들도 달려 왔다.

한 겨울의 추위를 녹여내며 우등불이 타오르고 이름없던 수정천에 다리를 놓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지난 세월 숯이나 구워 팔면서 숨어살던 구석진 곳이라 하여 「구석몰」이라 이름붙은 이 작은 마을의 몇명 안되는 아이들을 위해 크고 훌륭한 콘크리트 다리가 번듯하게 일어서게 된 것이다.

그때에야 아이들과 마을사람들은 그날 아침 이곳 돌다리를 근심어린 눈길로 바라보시던 분이 다름아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이시며 그분의 말씀에 의해 바로 이 다리가 건설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신 그분께서는 해당부문 일꾼들에게 이곳 형편을 알아보신 다음 그애들이 다니는 개울에 다리를 놓아주자고 말씀하시었다.

여라문명이 아니라 한두 명이라도 다리를 놓아줍시다. 나라의 귀중한 보배들을 어떻게 머릿수로만 헤아려 보겠습니까.

빨리 아이들에게 넓고 환한 다리를 놓아주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돌다리는 없어지고 콘크리트무지개 다리가 번듯이 일어섰던 것이다.

마을사람들은 이 뜨거운 사연을 후세에 길이길이 전하려고 다리의 이름을 「사랑의 다리」라고 짓고 다리에 뚜렷이 새겨 놓았다. 

세상에 다리이름이 많고 많아도「사랑의 다리」라는 이름은 이 다리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