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1970년대) 사람들 속에서는 나날이 커지면서도 나날이 작아지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수수께끼와 같은 말이 생겨나 돌아갔다.

누구나 처음 그 물음 앞에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나날이 커지면서 또 나날이 작아지는 것이 있을 수 있느냐 하고 반문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곧 그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방이라는 것을 알고 감동을 금치 못해했다.

그분께서는 모임에 가실 때나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실 때마다 늘 가방에 문건을 한가득 넣고 다니시었다.

날이 감에 따라 그 가방에는 문건이 차고 넘치어 어떤 문건은 가방위에 겹쳐들고 다니지 않으면 안되시었다.

어느 날 한 일꾼은 그분의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생각으로 본래의 가방보다 훨씬 더 큰 가방을 만들어 그분께 드리었다.

새로 만든 그 가방을 보신 그분께서는 매우 기뻐하시었다.

『마음에 듭니다. 큼직해서 좋습니다. 잘 만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분께서는 새 가방에 문건을 넣어보시고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시며 거듭 치하하시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달이 지난 후였다.

그 일꾼은 또다시 그 가방위에 문건을 겹쳐들고 다니시는 경애하는 그분을 뵈옵게 되었다.

한번은 그분을 모시고 어느 청사의 계단을 내리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그분의 손에서 몇건의 문건이 흘러내리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그분의 노고를 덜어드리자면 보시는 문건이 적어져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그분의 결론을 기다리는 새로운 문제들이 나날이 많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문건들을 조금 천천히 처리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날 제기된 문건은 반드시 그날로 처리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계시었다.

조금이나마 그분의 불편을 덜어드리는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 일꾼은 작아진 가방을 대신하여 다시 더 크게 가방을 만들어 그분께 올리었다.

그분께서는 새 가방을 받으시자 이번에도 그것을 열어보고 문건들을 넣어보시면서 지금 쓰는 가방보다 두배의 문건은 더 넣을 수 있겠다고 여간만 기뻐하시지 않았다.

한참동안 굳어진듯 서있던 그 일꾼은 그분께 간절한 심정을 담아 말씀드리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건강을 좀 돌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온 나라 인민의 소원입니다.』

그러자 경애하는 그분께서는 그 일꾼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고맙습니다. 내가 왜 동무들의 심정을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수령님께서 한평생을 조국과 인민을 위해 바쳐오시며 편히 쉬지 못하시는데 내가 어떻게 잠시라도 쉴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저 하루가 24시간밖에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후 그분의 가방은 또 작아졌다.

그분의 가방은 아무리 크게 만들어도 나날이 작아지는 가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