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장군 일화집」중에서

 

주체56(1967)년 7월 무더운 어느 날이었다.

후치령기슭에 있는 덕성군의 한 협동농장의 책임기사는 화물차에 석탄을 가득 싣고 검은골 어구에 있는 외통길에 차를 세우고 석탄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외진 곳인데다가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차들이 다니지 않는 기회를 이용하여 담배건조장에 쓸 석탄을 제꺽 부리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산굽이를 돌아선 한대의 승용차가 이쪽을 향해 영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서로 어길 수 없는 좁은 외통길이어서 길을 내자면 한 차가 퍼그나 뒷걸음질을 쳐야만 했다.

뜻밖의 정황에 부닥친 책임기사는 석탄을 부리다말고 다가오는 승용차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승용차는 어느덧 그의 앞에 와서 조용히 멈춰섰다.

차안에는 젊으신분이 앉아계시었는데 차가 멎은줄도 모르고 문건을 보기에 여념이 없으시었다.

승용차운전수가 내리더니 중요한 일이 있어 가는데 길을 피해줄 수 없는가고 하였다.

책임기사는 쾌히 응하고 운전칸에 올라 발동을 걸었다.

이때 승용차에서 젊은 간부가 내리시며 어떻게 된 일인가고 물으시었다.

그러시고는 승용차운전수에게 아무리 길이 바쁘다 해도 짐을 실은 자동차더러 길을 비키라면 되겠는가, 길을 비켜야 한다면 작은 차가 비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어길만 한데까지 후진하자고 하시는 것이었다.

농장책임기사는 어쩔줄 몰라하였다.

승용차를 뒤로 뽑으려면 밭과 낭떠러지사이의 좁은 길로 상당한 거리를 후진시켜야 하는데 그것은 여간만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앞으로 나서면서 올림받이길로 승용차를 후진시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 안전하게 길을 어기려면 화물차를 뒤로 후진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고개를 저으시며 저렇게 큰 차를 짐까지 가득 싣고 이 좁은 길에서 후진시켜야 되겠는가고 하시면서 승용차운전수에게 길이 험할 수록 큰 차에 양보해야 한다고 다시금 말씀하시었다.

그러시고는 길섶으로 다가가시어 자동차길과 낭떠러지사이를 살펴보시더니 갑자기 환하게 웃으시며 길도 험한데 후진하느라 하지 말고 운동삼아 여기에다 돌림길을 제꺽 내는게 어떤가고 하시었다.

그곳에는 자동차폭이나 됨직한 풀밭이 있었는데 뿌리깊은 바위돌들이 듬성듬성 놓여있었다.

운전수와 책임기사는 그 풀밭으로 어떻게 길을 내려 하시는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었다.

이러한 심중을 헤아리신듯 그분께서는 삼복더위에 뜨끈뜨끈하게 달아오른 큼직한 돌을 닁큼 들어다가 이미 있는 바위돌 옆에 가지런히 놓으시며 여기에 돌이 많은데 이렇게 바위돌사이에 돌을 채워나가면 이 우로 차가 얼마든지 다니지 않겠는가고 말씀하시었다.

그때에야 그분의 의도를 깨닫게 된 두사람은 웃동을 벗어던지고 그분을 따라 큼직큼직한 돌들을 부지런히 날라다 바위돌사이에 채워넣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땀을 흘리시며 직심스럽게 돌을 나르시면서 이왕 손을 댄김에 돌림길을 내자고, 그러면 여기서 차를 어기지 못해 애를 먹는 일이 없지 않겠는가고 하시었다.

운전수와 책임기사가 만류하였지만 그분께서는 그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돌을 나르시었다.

퍼그나 시간이 흘러서야 돌림길이 만들어졌다.

그분께서는 새로 만든 돌림길을 한번 걸어보시더니 승용차운전수에게 차를 몰아보라고 이르시었다. 그러시고는 차 앞에서 바퀴를 주의깊이 살피며 방향을 잡아주시었다.

승용차는 서서히 움직이며 별일없이 바위부리를 타고 넘어 세워놓은 화물차곁을 스쳐지날 수 있었다.

승용차가 길위에 다시 가볍게 올라서자 그분께서는 책임기사에게 다가오시더니 시간이 없어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가니 널리 양해해 달라고 하시며 뜨겁게 손을 잡아주시었다.

책임기사는 승용차운전수와 작별할 때 그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저분이 어데 계시는 간부인가고.-

그러자 승용차운전수는 빙긋 웃음을 짓더니 친애하는 김정일동지이시라고 말해주고는 차로 달려 갔다.

승용차는 떠나갔다.

그러나 책임기사는 움직일줄 모르고 그 자리에 오랫동안 서있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곧 책임기사의 입을 통해 인근마을에 널리 전해졌다.

그리고 얼마후 이곳에서는 『외통길 잊었어?』하는 말이 유행되게 되었는데 그것은 겸손하지 못하거나 양보할줄 모르는 사람, 일을 적극적으로 할줄 모르는 사람을 타이르거나 꾸짖을 때 사람들 속에서 의례 쓰는 말로 되었다.

그러면 누구나 그 말뜻을 알고 친애하는 그분의 품성을 생각하며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고쳐나갔다.

그래서 외통길 잊지 않으면 다 통한다는 말이 생겨났다.

모든 사실이야기는 해빛을 받으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젖으면 전설이 된다는 말과 같이 달이 가고 해가 바뀌면서 이 마을 후손들 속에서는 그 이야기가 어느 날 하늘에서 천인이 후치령외통길에 내려 이곳 사람들에게 도덕을 가르쳐 사람마다의 마음을 열어놓고 막혔던 길도 환히 열어놓았다는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