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장군 일화집」중에서

주택입사증

  

어느 봄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 텔레비전촬영가를 댁으로 부르시었다.

그 촬영가로 말하면 일찍이 어렸을적에 양친을 다 잃은 고아였다. 그러나 그는 고아인 것으로 하여 누구보다도 나라의 혜택을 더 많이 받으며 성장해왔다. 부모를 대신하여 나라에서 모든 교육과정을 고스란히 수료하도록 해주었고 외국유학까지 다녀오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분께서는 중앙방송위원회 사업을 지도하시는 과정에 그를 아시게 되었는데 그가 고아이기때문에 늘 마음을 쓰시며 각별히 대해주시었다.

그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시고는 장가들 때에는 자신께 꼭 알리라고 여러번 당부까지 하시었다.

그런데 그 촬영가는 결혼식을 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사사로운 일로 그분께 부담을 끼쳐드릴가봐 일부러 알려드리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결혼식이 지난 다음에야 그것을 아시고 이날 그를 댁으로 부르신 것이다.

촬영가가 도착하자 그분께서는 옆에 있는 한 일꾼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이 동무가 부모가 없어서 내가 잔치를 해주려고 했는데 전번에 나가보니까 혼자서 했소. 무슨 일이 제기되면 알리라고 전화번호를 대주었는데 전화도 걸지 않고 혼자서 슬쩍 해버렸단 말이요.》

그러신 다음 아내는 어디에 있으며 부모들은 있는가고 물으시었다.

그의 아내는 평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살고 있으며 그 역시 고아였다.

아내가 고아란 말을 들으신 그분께서는 얼굴의 웃음을 거두시며 그를 눈여겨 보시었다. 부부가 다 고아라니 인생에서 가장 뜻깊은 날이라 할 수 있는 잔치날에 얼마나 부모생각들을 했으랴 하는 생각에서였다.

촬영가는 서둘러 직장과 동무들의 방조로 잔치상도 잘 차렸고 떠들썩하게 그날을 보냈다고 말씀드렸으나 그분께서는 여전히 안색을 흐리신째 침묵 속에 잠겨 계셨다.

『그래 부모없는 동무가 아내도 역시 부모없는 사람을 택했단 말이지. 부모들이 모두 네살때에 세상을 떠났다니 동무의 아내도 어려서부터 퍽 고생했겠구만.』

그분께서는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그 여성을 알게 된 경위와 결혼식을 전후하여 있었던 일들을 알아보신 다음 새 살림을 꾸릴 집은 받았느냐고 물으시었다.

촬영가가 결혼식을 한지 얼마 안되었으므로 아직 집을 받지 못하였음을 아뢰자 그분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수첩에 무엇인가 적어넣으시었다.

『잔치를 혼자서 해서 섭섭했는데 도와줄 일감이 생겨서 마음이 좀 풀리오. 내가 잔치도 못해주었는데 집이나 구해주어야지.』

촬영가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은 다시 쾌활한 생기를 띠였다.

그후 어느 날이었다.

그분께서는 중앙방송위원회에 나오셨다가 돌아가시는 길에 그를 찾아『…오늘은 나하고 같이 어디 좀 가보자구.》 하시며 승용차의 옆좌석에 태우시었다.

새로 지은 고층아파트 앞에 차를 멈추게 하신 그분께서는 앞장서 층계를 오르시어 2층 3호실이라는 표지가 붙어있는 집 앞에 멈춰서시었다.

『자, 입사증을 받소. 동무들은 새 가정인데 쓰던 집에 들일 수 없어서 새 집을 구하느라고 좀 지체되었소.

어디 집이 마음에 드는가 들어가보오.』

그분께서는 그의 손에 입사증을 쥐어주시고는 손수 새 집의 문을 열어주시었다.

촬영가는 눈굽이 젖어왔다. 집을 구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실 때도 그랬지만 이렇게 새 집 문앞까지 오시어 친히 주택입사증을 쥐어주고 문까지 열어주시는 그분 앞에서 그는 말을 찾지 못하고 뜨거운 것을 삼킬뿐이었다.

그분께서는 이제는 한가지 시름을 놓게 된듯 밝은 미소를 짓고 계시었다.

진정 그 모습은 결혼한 자식에게 행복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기뻐하는 친어버이모습이었다.

집안에는 윤택한 빛을 뿌리는 새 가구들과 함께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방마다에는 해빛이 비쳐들고 그 해빛은 유달리 밝고 눈부시었다.

어디를 보나 집안 구석구석까지 그분의 따뜻한 손길이 닿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