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장군 일화집」 중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었을 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영결식준비사업을 돌보면서 특별히 관심하신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영결식에 모실 수령님의 초상화였다.

일꾼들에게 어버이수령님의 생애를 수록한 사진자료들을 가져오게 하신 그분께서는 눈물 속에 수령님의 초상사진을 하나하나 넘기시었다. 그러시다가 환히 웃으시는 사진에 눈길을 멈추시고 깊은 생각에 잠기시었다.

그분께서는 관례를 꼭 따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었다.

수령님은 언제나 승리를 낙관하시며 낙천적으로 살아오신 희세의 위인이시며 앞으로도 영원히 인민들의 마음 속에 살아계실 것이었다.

주체83(1994)년 7월10일 밤, 일꾼들과 자리를 같이 하신 장군님께서는 영결식에 모시고 나갈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준비정형을 물으시었다.

한 일꾼이 그전의 행사들에서 모셨던 초상화를 성의껏 수복하여 모시고 액틀에 검은 띠를 두르기로 협의하였다고 말씀드리었다.

그분께서는 머리를 저으시었다.

『내가 수령님의 사진들을 보았는데 영결식에 모시고 나갈 초상화는 환히 웃으시는 수령님의 영상으로 선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시고는 들고 오신 사진첩을 그들에게 펼쳐보이시었다.

사진의 장면장면 수령님의 모습들은 거의다 환히 웃으시는 태양의 영상이었다.

그분께서는 밝게 웃으시는 수령님의 한 사진을 가리키시었다.

『이 사진을 원본으로 하여 환히 웃으시는 수령님의 초상화를 잘 그리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되어 수령님의 태양상이 영결식날에 모셔졌으며 그토록 큰 충격을 일으켰다.

참으로 그것은 뜻이 깊고 거룩한 새로운 착상이었다.

온 나라가 눈물의 바다를 이룬 가운데 영결식이 거행되던 날이었다.

용흥거리로부터 시작하여 평양의 모든 거리들에는 수령님을 바래드리기 위해 새벽부터 연도에 나와있는 수백만명의 수도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아, 수령님, 우리를 두고 가시다니, 못 가십니다. 돌아오십시오.)

누구나 생각하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드디여 영구차가 나타났다.

그런데 뜻밖에도 영구차행렬에는 찬란한 미래를 바라보시듯 밝고 환하게 웃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대형초상화가 모셔져있었다.

음악도 추도곡이 아니라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였다.

그날 영결식이 이렇게 진행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 못했다.

수령님의 태양상이 나타나자 온 연도에는 일거에 커다란 충격의 파도가 일어났다.

검은 댕기를 드리운 초상화가 아니라 밝게 웃으시는 대형초상화를 보는 순간 사람들은 인민들 속에서 언제나 환하게 웃으시던 수령님을 생각하며 울음소리를 터치였다.

수령님의 그 태양상은 사람들을 더 울리었다.

아울러 그 밝은 웃음은 인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신심과 낙관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수령님의 그 웃음으로 하여 영결식과 함께 수령님은 떠나신 것이 아니라 인민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계심을 누구나 가슴 속깊이 새기게 되었다.

해빛같은 미소를 지으신 수령님의 영상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말했다.

『아니다. 수령님은 가지 않으시었다. 인민들과 함께 계시려고 환생하여오시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태양상이 가지는 의미를 다는 알지 못했다.

장군님께서 인민들의 소원을 담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구호를 내놓으시고 태양절과 주체연호를 제정해주시고 수령님을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모시는 수령영생 역사가 이 땅위에 펼쳐졌을 때에야 그 뜻이 얼마나 깊고 고결한 것인가를 깊이 깨닫고 탄복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