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김정일장군일화집」 중에서

 

 

광복직후의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

모란봉의 울밀대에서 수염발 허연 한 노인이 여기저기서 모여든 어른, 아이들한테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임진왜란때 평양성을 지켜 싸운 의기 계월향과 무관 김응서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계월향이 적들 속에 들어가 놈들의 시중을 들어주는 척 하다가 적 괴수놈을 처단케 한 대목까지 이야기했을 때었다.

옛말책을 읽듯 신이 나서 술술 엮어나가던 노인은 갑자기 적 괴수놈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말을 중지한째 멍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벌인 입을 다물지 못하고 머리만 흔들었다.

그럴 때 중모자를 쓰고 앞에 앉아있던 웬 사람이 그 괴수놈의 이름이 「풍신수길」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노인은 눈을 감으며 머리를 크게 가로저었다.

『아니요.』

『「풍신수길」이 맞습니다.』

『아하, 아니라는데… 이거 참.』

노인은 그 사람의 말을 부정하여 소리라도 지를 것처럼 눈을 떴다가 다시눈을 감고 생각에 골똘하였다.

하지만 그 이름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아 이야기판의 흥은 깨여져갔다.

바로 이때였다. 노인의 등뒤에서 『소서비, 소서비』하고 일러주는 목소리가 들리었다.

노인은 그만 눈을 번쩍 뜨며 무릎을 탁 쳤다.

『아, 그렇지! 왜장의 이름이 소서비, 소서비였소.』

그리고는 누가 귀띔했는지 찾으려고 뒤를 돌아보았는데 뜻밖에도 사람들이 저만치 걸아가는 예닐곱살 되는 소년을 가리켰다.

『음?』

노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그 소년이 귀뜀해주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술렁이고 이날의 화제는 그 소년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날이 갈수록 나무숲사이로 유유히 사라진 그 소년의 모습은 사람들 속에 신비감을 자아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모란봉에 내려온 귀인이 신동으로 변신하여 왜적과 싸우던 노인을 곤경에서 구원해 주었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생각나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는 「소서비」를 아는 그 사람이 절대로 어린 소년일 수 없다는 뜻이 강조되어있다.

그러나 후일에 알게 되었지만 그 소년이 바로 어린시절의 김정일장군님이시었다.

자주 부모님들로부터 우리 나라 역사이야기를 들어 그것을 알고 계시던 어린시절의 그분께서는 이날 친척분들과 함께 모란봉에 오르셨다가 노인의 안타까움을 풀어주셨던 것이다.

애국자의 가문에서는 일찍부터 외적을 알고 잊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