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화]
 

    이북도서 「위인일화에 비낀 웃음의 세계」중에서  
 

『이다음에 커서 기념사진을 보면 잠을

자고있은 것을 후회할 것입니다.』

 

주체89(2000)년 8월31일이었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자강도현지지도의 길에 구봉령을 넘으시게 되었다.

구봉령은 강계―성간사이에 있는 영인데 이 영길에 남모르는 애국의 마음을 바쳐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성간군 도로시설대 공훈도로관리원인 김성녀와 그의 가족소대원들이었다.

김성녀가 도로관리원이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전의 일이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성간군을 현지지도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수령님께서 다녀가실 구봉령길을 지켜갈 심장의 맹세를 안고 도로관리원이 되었으며 자식들모두를 이 충성의 길에 내세우기로 했다.

이렇게 되어 구봉령의 험한 산골길을 소문없이 지켜가는 가족소대(작업반)가 무어지게 되었고 두 아들과 네 딸, 사위, 며느리모두가 이 길에 남모르는 수고를 바쳐가고 있었다.

그날도 그들은 자강도를 현지지도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구봉령을 넘으실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영길을 더욱 알뜰하게 손질하고 있었다.

차를 멈추고 그들을 만나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족소대원이 10명이라는데 이런 외진 산골에서 한생을 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자기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동무들과 같은 애국자가 많기 때문에 우리 당이 강하고 우리 민족이 번영한다고, 동무들의 정신세계는 참으로 고상하고 아름답다고 뜨겁게 고무해주시었다.

김성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영길을 오르내리며 마음 속에 안고 살던 소원을 담아 장군님께서 더는 이런 험한 길을 걷지 마시라고 삼가 말씀드리었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이제는 인민들이 잘살게 되었으니 더는 험한 길을 걷지 말라고 하는데 자신은 이런 도로라면 온 나라 어디에든지 다 가보겠다고, 도로가 아주 좋다고, 동무들의 애국적 소행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고는 영길에서 만난 기념으로 가족소대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시었다.

그리하여 장군님을 가운데 모시고 김성녀와 그의 일가가 나란히 줄지어섰다.

촬영가가 여기저기 위치를 바꾸어가며 촛점을 맞추고 샤터를 누르려는 순간 뜻밖의 일이 생겼다.

장군님곁에 선 셋째딸이 품에 안고있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몸을 자꾸 흔들었다.

자기 품에 얼굴을 묻고 쌔근쌔근 잠든 아기가 깨어나지 않아 그러는 것이었다.

촬영가는 아기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셋째딸은 아기이름을 부르며 깨웠으나 아기는 만사태평하게 머리를 뒤로 젖힌째 여전히 잠만 잤다.

한초 또 한초 시간이 흘렀다. 장군님의 현지지도의 길이 지체되었다. 가족소대원들은 안타깝고 옹색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가족소대원들의 마음을 헤아리신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울렸다.

『이다음에 커서 기념사진을 보면 잠을 자고있은 것을 후회할 것입니다.』

모두들 소리내어 웃었다. 그 웃음소리와 더불어 따분하고 옹색한 분위기는 일변했다.

이러한 순간을 기다렸다는듯이 「찰칵!」 하고 샤터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온 가족이 조국과 인민을 위해 복무하니 얼마나 좋은가, 앞으로도 대를 이어가면서 영길초소를 지키라고 뜨겁게 고무격려해주시고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