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장군 선군정치이론」중에서


총은 계급의 무기, 혁명의 무기, 정의의 무기

 

 

인류의 흥망성쇠사는 총대의 역사이기도 하다.

어느 민족, 어느 나라의 역사를 되돌아 짚어보아도 그것은 총대와 연관되어있음을 보게 된다.

총대가 강할 때는 국력이 강하여 그 위상과 존엄이 널리 떨쳐졌지만 총대가 약할 때는 나라모양이 걷잡을 수 없이 흉해지고 명맥마저 끊기웠다.

어떤 경우에도 총대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은 정비례관계를 형성했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국가지도자들이 이러한 세상이치를 판단하여 총대강화로 나라를 이끌어나간 것은 아니었다.

동서고금의 역사는 정치지도자들이 총에 대해 어떤 관점과 입장을 가지는가에 따라 국력의 강약이 따르고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18세기초에 이르기까지 낙후한 농업국으로 주변나라들의 침략의 대상으로만 되어오던 프로시아가 유럽강국으로 될 수 있은 것은 프리드리히일세의 상무정책과 관련된다.

프리드리히일세는 상비무력을 갖추는 것을 국가건설의 기본목표로 삼고 3만 8,000명에 불과하던 군대를 8만명으로 늘였으며 모든 국가체계와 수단이 군대를 위한 것으로 되게 하였다. 그리고 군율을 강화하고 훈련으로 프로시아군대를 강군으로 다지었다. 그리하여 프로시아군대는 프리드리히이세대에 와서 7년전쟁(1756―1763)에서 역량상 우세한 오스트리아군과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유럽의 최정예무력으로 되었으며 1871년 독일의 통일을 이룩했다. 그리고 그 이후 독일제국으로 일떠섰다.

우리 민족사에서도 고조선이 시조국으로 뚜렷한 자취를 남기고 고구려가 강성의 대국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고 고려가 첫 통일국가로서의 의미를 오늘도 빛내이는 것은 단군, 고주몽, 왕건 등 당대 권력자들의 상무정책과 주요하게 관련된다.

역사는 또한 이성계와 같이 총대를 휘둘러 권력을 빼앗아 내고는 총대에 의한 권력전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군사를 의도적으로 약화시켜 국력을 쇠퇴시켰거나 나폴레옹, 징기스칸, 히틀러, 무쏠리니와 같이 군대, 군력강화를 중시했으되 그것을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 대한 침략과 지배에 깡그리 소모하다가 패망한 폭군들도 많이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총대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지금까지 총대를 써먹은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어떤 정치지도자도 총대에 관한 과학적인 견해를 제시하지 못하였으며 총대와 관련한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지 못했다.

과학적인 총관을 제기하시고 그것을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 구현하신분은 희세의 군사가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이시다.

침략과 전쟁으로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진 미국의 막강한 군력강세를 누르고 오늘의 복잡한 국제정치흐름을 주도해 가는 조선의 총대는 다름아닌 김정일장군의 총대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역사에 출몰했던 어느 군사가나 정치가들도 제시하지 못한 주체적 총관을 지니시고 나라와 민족의 운명개척에서 총대의 사명과 역할을 최상의 높이에 올려 세우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우리의 총은 계급의 무기, 혁명의 무기, 정의의 무기입니다.』

총은 인민대중의 계급적 요구, 혁명의 요구, 정의의 요구실현의 수단이라는 것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의 총에 관한 지론이시다.

인민대중의 계급적 요구, 혁명의 요구, 정의의 요구는 본질에 있어서 자주성의 옹호실현이며 총은 이 인민대중의 자주성옹호실현의 수단이라는 것이 김정일장군의 주체적 총관이다.

이것은 총에 관한 견해에서 그 이전의 모든 총관과는 본질적 차이를 갖는 새로운 견해이다.

총의 역사는 오래다.

기록에 의하면 유럽나라들에서는 15세기말에 처음으로 「핸드캐논」이라는 손총을 만들기 시작했고 우리 나라에서는 그보다 썩 앞서 10세기 이전부터 총을 만들었다고 한다.

오늘에 와서는 총구에 적외선조준발성장치를 설치하여 눈으로가 아니라 귀로 조준하는 자동보총, 핵탄두까지 장약하여 단 한발로 지도에 표시되어있는 섬도 통째로 날려보낼 수 있는 위력한 자동총, 특정한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지문권총이 연구개발되는 등 총은 그 질적인 면에서 크게 발전해왔다.

역사가 길건 짧건 또 어떠한 형태의 총이건 그것은 전쟁수단으로 개발되었고 인식에서도 총은 전쟁수단이라는 것으로 굳어져 왔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는 무장력을 자본의 지배를 전복하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지배권을 전취하며 승리한 혁명을 보위하기 위한 수단으로 규정하였다.

총을 전쟁수단이나 혁명적 폭력 그리고 국가방위의 수단으로만 규제한 것은 사회적 현상 그자체에 대한 피상적인 분석에 기초한 것이지 역사의 주체인 인민대중을 중심에 놓고 그 본의를 규제한 것은 아니었다.

총을 단순히 전쟁수단으로 규제한 것은 단편적인 견해이며 총을 계급혁명의 수단으로 본 것은 계급투쟁절대화의 견지에서 규제한 것으로써 인민대중의 자주성실현을 근본목적으로 하는 혁명적 입장에서 올바르게 규정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은 한 제도를 다른 사회제도로 바꾸는 혁명적 변혁이나 적대계급의 반혁명적 공격을 진압하는 혁명전쟁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인민대중의 자주적 요구와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전면적으로 벌여나갈 때에만 완전히 실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총의 본질, 그 혁명적 성격은 마땅히 인민대중의 자주성실현을 완전히 담보하기 위한 입장에서 규제되어야 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께서는 바로 이러한 주체적 시각으로부터 출발하여 총대의 본질과 그 성격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정립하시었다.

김정일장군의 총관은 총은 계급적 성격을 띤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쟁수단으로 만들어진 총은 그것이 누구의 손에 쥐여지는가에 따라 그 계급적 성격이 규제된다.

자본주의, 제국주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착취사회에서 지배계급의 수중에 장악된 총은 인민탄압의 수단으로, 다른 나라와 민족들에 대한 침략과 지배의 수단이 되었으며 반대로 피착취근로대중의 수중에 장악된 총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옹호실현, 민족해방, 계급해방투쟁의 무기가 되었다. 이를테면 꼭같은 총일지라도 정의를 위해 복무하면 정의의 무기가 되지만 부정의를 위해 복무하면 부정의의 무기가 된다는 지론이다.

이것은 총에도 사상이 있고 이념이 있으며 원칙이 있다는 논리이기도 하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의 총관은 총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옹호실현의 최고형태의 무기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총이 계급의 무기, 혁명의 무기, 정의의 무기라 할 때 총은 계급, 혁명, 정의의 상징으로써 인민대중의 계급적 요구와 이익, 혁명의 요구와 이익, 정의의 요구와 이익은 오직 총대에 의해서만 완벽하게 최선으로 담보된다는 의미이다.

계급투쟁, 혁명투쟁은 적대세력과의 힘의 대결전으로써 그 최고의 형태는 폭력투쟁으로 된다. 폭력투쟁은 총대와 총대가 맞서는 총대전이다.

『폭력에는 폭력으로 맞서지 말고 원한에는 덕으로 대립』해야 한다면서 비폭력항쟁주의를 제창한 인도의 간디주의가 인도의 자주독립을 가져다주지 못한 것처럼 무장한 적과 맨손으로 맞서며 구호나 외쳐서는 승리할 수 없다.

총이 인민대중의 자주성옹호실현의 최고형태의 무기이기 때문에 총대를 기본으로 내세우지 않는 계급투쟁, 혁명투쟁, 정의의 투쟁은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은 불변의 혁명원리이고 공식이다.

역사에는 총대를 근본무기로 내세우지 않은 것으로 하여 반혁명세력의 도전 앞에 혁명의 전취물을 지켜내지 못하고 좌절당한 혁명의 예가 허다하다.

1970년대에 칠레에서 정권을 잡은 알옌데가 지도하는 사회주의운동세력은 군부를 장악한 일부 반동세력이 군대가 모든 무기를 장악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게 하겠다는 허튼 소리에 속아 자기의 지지세력이 가지고 있던 무기들마저 모두 내놓게 하고 군상층부에 대한 특혜 등의 물질적 지원을 약속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이로써 칠레의 총대는 미국의 후원을 받는 반혁명분자들의 수중에 전부 장악되게 되었으며 군부의 쿠테타로 칠레혁명은 비참하게 좌절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알옌데대통령은 뒤늦게야 모네다궁안에서 자동총을 잡았지만 호위대외에 무장지원을 받을 어떠한 군 또는 민간무장부대도 없었다.

총대를 틀어쥐여야 정치적 지배권을 장악하고 유지할 수 있다는 세계정치사의 교훈은 총대는 곧 힘이며 총대에서 발산되는 위력은 그 어떤 힘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총이 계급의 무기, 혁명의 무기, 정의의 무기라는 주체적 총관은 총의 성질을 혁명원리로 파악한데 기초하고 있다.

혁명과 반혁명, 자주역량과 지배주의세력,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사이의 대결은 본질에 있어서 혁명적 폭력과 반혁명적 폭력의 대결이다. 여기서는 오직 총대의 위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혁명에 있어서 총대의 직접적이며 결정적 작용은 군사적 타격수단으로서의 총대의 성질과 관련된다.

총대의 성질은 무엇보다도 무자비성에 있다. 총대는 자비를 모른다. 단호하고도 무자비한 타격력은 총대의 근본속성이다. 총대 앞에서는 어떤 이유와 구실도 통하지 않는다. 총대 앞에서는 생사의 양자택일이지 중립이나 우유부단이 있을 자리가 없다.

생사를 판가리하는 계급투쟁, 혁명투쟁에서는 총대의 이같은 단호하고도 무자비한 징벌의 성질이 그대로 원칙이 되고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것이다.

총대의 성질은 또한 타협과 양보를 모르는 원칙성에 있다. 타협과 양보는 근본원칙에서의 이탈을 의미한다.

총대는 방아쇠를 당기면 목표판을 향해 곧바로 나가기마련이다. 앞에 가시덤불이 있다고 하여 에돌거나 자기보다 더 위력한 타격수단이 있다고 하여 수그러들지 않는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후퇴나 양보를 모르는 총대의 비타협성은 그대로 혁명의 원칙이 되는 것이다. 혁명은 그 자체가 원칙이어서 단 한걸음의 후퇴와 양보도 백걸음, 천걸음의 후퇴와 양보로 이어지며 그 과정에 혁명의 순결성이 흐려지고 혁명적 지조가 굽혀지며 적에게 농락당하는 비극을 초래한다. 총대와 같은 비타협적인 원칙성만이 혁명의 우여곡절을 막고 승리적 전진을 담보해준다.

총대의 성질은 다음으로 불변성에 있다. 총대의 움직임에는 변함이 없다. 단 한발을 쏘건 백발, 천발을 쏘건 한본새이다. 주인의 결심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이다. 조건과 환경이 달라졌다고 하여 변하는 일도 없다.

혁명투쟁은 총대의 이러한 불변성을 생리로 한다. 불변성을 잃은 혁명가는 벌써 혁명가이기를 그만둔 배신자, 변절자이며 불변성을 잃은 혁명은 제국주의에 아부하는 수정주의, 개량주의로 변신된 「혁명」임을 뜻한다.

총대의 이러한 원칙성, 무자비성, 불변성은 그대로 혁명의 생리로 되는 것이다.

총대가 혁명의 무기, 계급의 무기, 정의의 무기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원칙성, 무자비성, 불변성으로 인민대중의 요구와 이익,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추호의 어긋남이 없이 지키고 실현해가는 가장 위력한 수단이기 때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