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위대한 평민」중에서  

옮 기 신   숙 소

 

사람들의 생활에서 아랫사람이 웃사람에게 편리한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은 예의에 관한 문제이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아랫사람들이 웃어른들에게 편리한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사회에서는 아래일꾼들이 웃일꾼들에게 편리한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응당한 일로 되고 있다.

하지만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아래일꾼들이 생활조건이 좋은 숙소를 마련해드리면 다른 사람들부터 먼저 생각하시며 극력 사양하시고 자신께서는 불편한 숙소에 자리를 정하신다.

주체71(1982)년 8월, 함흥에서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6차 전원회의를 할 때였다.

현지지도의 길에서 당중앙위원회 한 책임일꾼을 전화로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회의참가자들의 숙소문제를 현지에 내려가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시고 그들의 숙소조건을 잘 보장하여줄데 대하여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어 회의를 이틀 앞둔 8월27일에 또다시 숙소문제를 알아보시고 함흥지방에 있는 생활조건이 좋은 숙소에는 노혁명가들과 몸이 불편한 일꾼들을 들게 하자고 이르시었다.

그러시면서『내 걱정은 하지 마시오. 나야 젊었는데 아무데 자리를 정하면 뭐랍니까.

전원회의기간에 나는 열차칸에서 숙식을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너무도 뜻밖의 말씀에 그 일꾼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어찌 장군님을 소란스럽고 불편한 역구내의 열차칸에 모실 수 있겠는가.

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열차칸은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말씀드리었다.

장군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열차칸이 어떻다고 그러는가, 세수물만 나오면 생활할 수 있으니 그런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었다.

장군님께서는 전화를 끊으시었다.

밤은 소리없이 깊어갔다. 어느덧 새벽이 다 된듯 선듯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이때 다시 전화종소리가 울리었다.

장군님께서 숙소문제 때문에 또다시 걸어주신 전화였다.

장군님께서는 현지에 먼저 내려간 회의참가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아보시면서 그들의 숙소를 어디에 정하였으며 생활조건은 어떤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었다.

전화를 받은 일꾼은 다른 일꾼들의 숙식조건은 다 나무랄데 없는데 장군님께서 쓰시려는 열차칸만은 여러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다고 다시금 안타깝게 말씀드리었다.

그의 말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열차칸에 전기가 있고 간단한 식사나 지으면 될 것이라고 하시며 화제를 돌리시어 노혁명가들의 숙식조건이 어떻겠는지 걱정된다고 하시었다.

그러시고는 노혁명가들을 호텔에 들게 하면 안된다고 거듭 말씀하시고 잠시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시다가 한 노혁명가의 이름을 찍으시며 그는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2층에 자리를 정하면 힘들어 할 것이니 다니기 쉬운 아래층에 꼭 들게 하라고 당부하시었다.

송수화기에서 뜨겁게 울려 나오는 장군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일꾼은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으시고 노혁명가들을 존중하시는
장군님의 겸손성에 가슴이 뜨거워짐을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일은 양강땅의 어느 한 깊은 산간마을에서도 있었다.

1963년 8월, 양강도일대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치령을 넘어 한 산간마을에서 첫밤을 보내시게 되었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을 보좌해드리기 위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도 동행하시었다.

수원들은 아담한 동기와집을 얻어 수령님의 숙소로 정해드리고 또 한채의 아늑한 집을 잡아 장군님께서 묵으시도록 하였다.

그 집은 바람벽에 회칠도 산뜻하게 하고 울바자도 네모나게 둘러친 동기와집이었는데 당시 양강도의 산골농가치고는 찾아보기 드물만큼 깨끗한 집이었다.

그 집을 보신 장군님께서는 노투사는 어떤 집에 들게 되는가고 물으시었다.

그때 한 노투사도 위대한 수령님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원들이 그닥 좋은 집에는 들지 못한다고 말씀드리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의 생각이 왜 그렇게도 짧은가, 그 노투사와 같이 나이든 투사들을 먼저 생각해야지 어째서 나와 같이 젊은 사람부터 생각하는가, 나는 동무들과 같이 지내겠으니 이 집에는 노투사가 유숙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었다.

그러시고는 이제 곧 그를 데려오라고, 그가 이 집에 드는 것을 보고야 자신께서도 마음놓고 자리를 뜨겠다고 하시며 사람을 띄우시었다.

얼마후 모든 사실을 전해들은 노투사가 몹시 상기된 얼굴로 달려와 자기가 이 집에 든다는건 말이 안된다고 하면서 이미 짜놓은 숙소배정안대로 해야 한다고 간절히 말씀드리었다.

그리하여 장군님과 노투사사이에는 하루밤 묵을 숙소 문제를 가지고 권하고 사양하는 눈물겨운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일은 좀처럼 결말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노투사가 장군님께 자기의 의향을 말씀드리었다.

그것은 함께 이 집에서 유숙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이 집을 내놓고 다른 수원들과 같이 지내자는것이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어떻게 그렇게야 하겠는가고, 이 집에는 나이 많은 노투사가 들어야 한다고, 꼭 자신의 말대로 해야 한다고 하시며 노투사가 더는 우기지 못하도록 아예 밤인사까지 하시고 자리를 뜨시었다.

노투사는 자기를 존중해주시는 장군님의 겸손성이 가슴뜨겁게 안겨와 점도록 서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존중해주시는 대상이 이런 사람들만인 것은 아니다. 1972년 6월, 혜산시에서 보천보전투승리 35돌 기념행사가 있을 때였다.

그때 행사참가자들은 모두 혜산여관에 들었다. 그런데 여관이 초만원이 되어 늦게 도착한 여러명의 비행사들은 여관에서 식사만 하고 숙소는 다른 곳에 정하였다.

다음날 저녁무렵이었다. 비행사들은 여관에서 식사를 하고 숙소로 가려고 뒷마당으로 나오다가 거기에서 뜻밖에도 장군님을 만나뵈옵게 되었다.

장군님께서도 혜산여관에 계셨던 것이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안부를 다정히 물으신 다음 어디로 가는 길인가고 물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혜산여관에 유숙하고 있는줄로만 알고 계셨던 것이다.

비행사들은 주춤거리며 인차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장군님께서 재차 물으실 때에야 하는수없이 사실을 말씀드리고 숙소로 가는 길이라고 대답을 올리었다.

장군님의 안색은 금시에 흐려지시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시던 장군님께서는 비행사들에게 급히 다녀올데가 있으니 꼭 기다려달라고 당부하시고 승용차에 오르시었다.

그러시고는 옆에 앉은 수행원을 돌아보시며『내가 쓰고 있는 방을 비행사동무들에게 내어줍시다.』라고 말씀하시었다.

수행원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장군님께서 쓰시는 방을 어찌 그들에게 내어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그것만은 안된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들어있는 방을 모두 내겠다고 말씀올리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시며『아니요. 동무들의 방을 내면 내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나는 일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고는 자신께서 쓰시던 방을 끝내 비행사들에게 내어주시고 자신께서는 그길로 혜산역으로 나가시어 번잡한 역구내에 있는 객차에 숙소를 잡으시었다.

얼마후 다시 혜산여관으로 돌아오신 장군님께서는 비행사들이 자신께서 계시던 방에 들도록 몸소 모든 조치를 다 취해주신 다음 비행사들을 만나시어 다른 숙소로 가지 말고 이 여관에서 푹 쉬라고 이르시고서야 그곳을 떠나시었다.

비행사들은 장군님께서 정해주신 방에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든방이 어떤 방이었던지 또 그 방을 내어주신 장군님께서 어떤 곳에 숙소를 옮기시었는지는 알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