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되찾자

 

11월3일은 광주학생투쟁이 있은 때로부터 74돌이 되는 날이다.

1929년 10월30일 아침 광주발나주행 열차안에서는 한무리의 일본남학생들이 조선여학생을 희롱하고 모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분격한 광주의 애국학생들은 11월3일 일제히 투쟁에 분기했다.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거리로 나온 학생들로『일제를 타도하자!』,『조선독립만세!』,『식민지노예교육제도를 철폐하라!』, 『조선민족이여! 반일에 궐기하라』등의 구호를 들고 대중적인 반일시위투쟁을 벌였다.

일제는 경찰과 소방대, 재향군인까지 동원시켜 탄압에 나섰으나 투쟁의 불길로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서울, 부산, 대구, 청주, 평양, 신의주 등 각지에서 「광주학생운동옹호동맹」이 결성되고 반일시위와 동맹휴학들이 잇따랐다.

이 투쟁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노동자, 농민, 시민들도 적극 참가했다.

일제의 야만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투쟁은 이듬해 4월까지 계속 되었다.

광주학생투쟁은 일제의 식민지통치와 대륙침략준비에 커다란 타격을 안겼으며 우리 민족의 불굴의 기개와 애국정신을 세계 만방에 과시했다.

광주학생투쟁이 있은 때로부터 74년이 흘렀지만 일제를 대신한 미제에 의해 우리의 존엄과 자주권은 여지없이 짓밟히고 있다.

살인과 약탈을 업으로 삼는 미제침략군에 의해 이 땅 곳곳에서는 우리 민중의 피가 흐르지 않는 날이 없다.

이 땅을 강점한 첫날부터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강요한 미제는 지금 전 한반도를 지배할 야망밑에 북침전쟁준비에 광분하고 있다.

미제의 비호밑에 되살아난 일본군국주의도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실현하기 위한 재침책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나라와 민족 앞에 엄중한 위험이 닥쳐온 지금 시대와 역사 앞에 지닌 학생청년들과 각계민중의 사명과 의무는 매우 크다.

현실은 학생청년들이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귀중히 여기는 각계 민중과 굳게 단결하여 외세의 지배와 예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싸움에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학생청년들과 각계 애국민중은 74년 전 그날의 열렬한 애국정신과 불굴의 기개를 되살려 민족적 존엄과 자주권을 되찾기 위한 반외세투쟁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