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한(조선)반도 정세를 움직인 자주권투쟁과 생존권투쟁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 례>

1. 글을 시작하며

2. 민족의 자주권투쟁에서 북(조선)이 쟁취하려는 세 가지 목표

3. 쫓겨난 프릿처드, 손발 묶인 켈리

4. 미·일 대결파의 공모와 결탁

5. 미국의 반테러전쟁전략과 사회주의말살정책

6. 반테러전쟁전략과 한(조선)반도 군사상황

7. 미2사단과 주한미군사령부는 신속기동군 개편에 따라 해체되는가?

8. 남(한국) 민중의 생존권투쟁, 친미예속세력의 동요와 혼란

9. 글을 마치며

 

1. 글을 시작하며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2003년이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2003년은 한(조선)민족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난 해였다. 크고 적은 변화를 일으키며 저물어간 2003년도의 한(조선)반도 정세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나는 한(조선)민족의 지향과 요구, 남(한국) 민중의 지향과 요구를 중심으로 하여 정세를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조선)민족과 남(한국) 민중의 지향과 요구를 중심으로 하여 정세를 인식해야 하는 까닭은,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한(조선)민족이 정세를 변화시키는 주체이고, 남(한국)사회에서는 민중이 정세를 변화시키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조선)민족의 지향과 요구, 남(한국) 민중의 지향과 요구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한(조선)민족의 지향과 요구는 민족의 자주권을 쟁취하는 것이며, 남(한국) 민중의 지향과 요구는 민중의 생존권을 쟁취하는 것이다.

사회의 진보와 역사의 발전은 자기의 지향에 따른 주체의 노력, 자기의 요구를 실현하려는 주체의 투쟁에 의해서 가능하다. 나라의 대외관계에서 그 주체는 민족이며, 나라의 대내관계에서 그 주체는 민중이다.

민족과 민중의 지향과 요구를 중심에 두고 정세를 인식하는 것은, 한(조선)민족의 자주권투쟁과 남(한국) 민중의 생존권투쟁을 기준으로 세우고 한(조선)반도 정세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체적 관점에서 한(조선)반도 정세를 인식하는 것이다. 민족과 민중의 지향과 요구를 중심에 두지 않는 정세인식은 비주체적이고 비과학적일 뿐 아니라 사회가 진보하고 역사가 발전한다는 진리가 부정되는 오류에 빠진다.

해결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6자회담, 더욱 강하게 추진되는 부시 정부의 반테러전쟁전략, 논란과 의문에 쌓인 주한미군의 장래문제 등이 뒤엉킨 2003년도의 정세는, 한(조선)민족의 자주권투쟁이라는 기준에서 그 본질이 인식되어야 한다. 또한 남(한국)사회에서 실업, 빈곤, 부채가 날로 늘어나면서 민중에게 가중되는 고통, 천문학적 규모의 불법대선자금을 조성·탕진한 범죄가 폭로되면서 타격을 입은 친미예속세력의 동요와 혼란 등이 뒤엉킨 2003년도의 정세는 남(한국) 민중의 생존권투쟁이라는 기준에서 그 본질이 인식되어야 한다.

나는 이 글에서 2003년도 한(조선)반도 정세를 자주권투쟁과 생존권투쟁이라는 두 개의 기준을 가지고 분석한다. 그리고 그 투쟁현장의 깊은 곳에서 거대한 힘으로 꿈틀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 새로운 가능성은, 아직 지표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나, 2004년 새해를 맞이한 민족과 민중에게 밝아오는 내일의 또 다른 이름이다. 혼란스럽고 복잡한 정세 속에서도 2004년을 희망의 해라고 부르는 까닭은, 자주권투쟁과 생존권투쟁에서 그 내일이 밝아오기 때문이다.
 

2. 민족의 자주권투쟁에서 북(조선)이 쟁취하려는 세 가지 목표
 

1994년 10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채택된 조·미 기본합의는 영변 핵시설 동결, 경수로 건설,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기로 약정한 외교문서다. 당시 조·미 두 나라는 그 외교문서에서 약정한 대로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경수로 건설과 영변 핵시설 동결을 추진하였다. 클린턴 정부가 경수로를 2003년까지 책임적으로 건설한다고 확약함에 따라 북(조선)은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였던 것이다.

주목할 것은, 경수로 건설과 영변 핵시설 동결은 조·미 기본합의의 목표가 아니었고, 더 높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일종의 선행조치였다는 사실이다. 더 높은 목표란 조·미 기본합의에 명시된 조·미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다. 클린턴 정부가 경수로를 건설하고 그에 상응하여 북(조선)이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는 것은,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선행조치로서 의의를 가진 것이었다.

경수로가 완공되는 2003년 이전에 북(조선)이 붕괴할 것으로 예상하였던 클린턴 정부는 핵확산금지체제(NPT Regime)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영변 핵시설 동결에만 관심을 쏟았다. 반면에 북(조선)은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것, 다시 말해서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클린턴 정부와 정치회담을 추진하였다.

조·미 기본합의가 채택된 때로부터 8년 뒤인 2002년 10월 부시 정부는 느닷없이 북(조선)이 은밀히 우라늄농축사업을 추진하며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정보를 조작·유포하면서 북(조선)이 조·미 기본합의를 위반하였다고 비난하였고, 결국 조·미 기본합의를 깨버렸다. 부시 정부의 파기행동 이후, 경수로 건설은 중단되었고 영변 핵시설은 재가동되었다. 부시 정부가 경수로 건설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것은, 핵문제가 단순히 영변의 흑연감속로를 미국산 경수로로 바꾸는 에너지문제가 아니라,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문제라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부시 정부의 파기행동에 의해 경수로 건설이 중단되고 영변 핵시설이 재가동된 현재 조건에서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목표마저 사라져버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조·미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삼은 '아미티지 프로세스(Armitage Process)'를 부시 정부가 폐기하지 않는 한,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목표는 살아있다.

그런데 문제는 2003년을 지나면서 조·미 관계가 정상화될 가능성이 보이기는커녕 6자회담의 계속적인 추진마저 난관에 빠진 것이다. 이러한 교착국면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조·미 기본합의가 깨지고 6자회담 추진마저 난관에 빠져 한층 복잡하게 뒤엉킨 교착국면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운데는 정세를 비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교착국면에 실망하는 사람들은 클린턴 정부 말기에 어렵사리 이루진 조·미 관계 개선의 분위기마저 실종되어 모든 것이 10년 전의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판단하면서,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목표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복잡하게 뒤엉킨 교착국면만 보고 정세를 비관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행동이다. 정세를 비관하기 전에 먼저 생각할 것은, 6자회담이 난관에 빠진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다시 말해서, '아미티지 프로세스'가 폐기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목표가 살아있는 데도 6자회담이 난관에 빠진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다. 원인분석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북(조선)이 수행하는 대미정책의 내용과 부시 정부가 취하는 대응조치의 내용을 각각 파악하는 것이다.

먼저, 북(조선)이 수행하는 대미정책의 내용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내용은 미국에 대한 요구사항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북(조선)이 미국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적대정책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1) 6자회담 문제는 한(조선)민족의 자주권투쟁이라는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런데 분석가들과 언론들은 6자회담 문제를 미국이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에 대해 안전을 보장하는 관점, 또는 북(조선)에게 경제를 지원하는 관점에서 해석한다. 저들의 '안전보장요구설', '경제지원요구설'이 명백한 오류라는 점은 이전에 발표된 나의 논문들에서 여러 차례 지적하였으므로 이 글에서는 논하지 않는다. 다시 강조하는 것은, 한(조선)민족이 자기의 자주권을 쟁취하려는 투쟁의 관점에서 6자회담 문제를 해석해야 북(조선)의 의도와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2) 적대정책이란, 북(조선)의 표현을 빌리면, '대조선적대시정책',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적대정책을 뜻한다. 북(조선)의 민족국가론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조선)반도 전체를 포괄하는 국가이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적대정책은 곧 한(조선)민족에 대한 적대정책이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는 북(조선) 대 미국의 관계에서 발생한 근본문제가 아니라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관계에서 발생한 근본문제, 곧 한(조선)민족의 자주권을 쟁취하는 문제를 뜻한다. 이를테면, 한(조선)반도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북(조선) 대 미국의 전쟁이 아니라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전쟁으로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조선)민족이 자주권을 쟁취하여 한(조선)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므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한(조선)민족의 지향과 요구로 된다.

3)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문제를 논할 때, '포기'라는 개념은 완전하게(complete), 검증할 수 있게(verifiable), 되돌릴 수 없게(irreversible)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적대정책을 완전하게, 검증할 수 있게, 되돌릴 수 없게 포기하는 것은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것, 다시 말해서 조·미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북(조선)이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목적이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조선)민족의 자주권을 쟁취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문제가 왜 한(조선)민족의 자주권을 쟁취하는 문제에 직결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4) 미국산 경수로와 영변의 흑연감속로를 맞바꾸는 것이 아니라, 핵문제 해결과 군사·정치·경제문제의 해결을 맞바꾸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일괄타결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괄타결원칙이라고 부른다.

5) 군사·정치·경제문제를 해결하는 요구를 더 구체화하면,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 조·미 관계 정상화, 대북(조선) 경제봉쇄조치 해제로 표현된다. 이것이 북(조선)이 미국에게 제기한 군사·정치·경제부문의 요구사항이며, 북(조선)이 대미정책에서 성취하려는 3대 쟁취목표다. 또한 3대 쟁취목표는 미국이 앞으로 6자회담과 조·미 정치회담을 진행하면서 군사, 정치, 경제 부문에서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6) 불가침을 합의하는 문제는 '안전보장요구설'로 해석할 수 없다. 북(조선)이 미국으로부터 불가침을 확약 받으려는 것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요구되는 것이지, 미국에게 체제안전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대북(조선) 경제봉쇄조치를 해제하는 문제도 '경제지원요구설'로 해석할 수 없다. 사회주의민족자립경제노선을 추진하는 북(조선)이 미국으로부터 경제지원을 받아서 자기의 경제를 건설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사회주의민족자립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미국의 경제봉쇄조치를 해제하라는 것이다.

7) 3대 쟁취목표에서 군사부문의 쟁취목표를 앞세웠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는 군사선행원칙에 따라 대미정책을 추진한다.

다음으로, 부시 정부가 북(조선)의 세 가지 요구사항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에 알려진 대로, 부시 정부는 북(조선)이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핵무기개발을 포기하라고 요구한다. 부시 정부는 북(조선)이 먼저 핵무기개발을 포기해야 북(조선)의 요구사항에 대해서 협상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동시행동원칙을 반대한다. 제2차 6자회담을 개최하는 문제는 부시 정부가 동시행동원칙을 반대함으로써 난관에 빠졌다.

부시 정부가 동시행동원칙을 반대하고 6자회담을 난관에 빠뜨린 원인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에서 협상파와 대결파가 갈등을 벌인다는 데 있다. 제2차 6자회담을 개최하는 문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결론이 나야하는데, 국가안보회의 결정과정에서 협상파와 대결파가 계속하여 갈등을 빚는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주도권을 틀어쥔 대결파는 동시행동원칙과 제2차 6자회담 개최를 반대한다. 반면에, 협상파는 북(조선)이 제기한 동시행동원칙에 대해 절충·타협하여 제2차 6자회담을 개최할 것을 주장한다.

협상파와 대결파의 갈등을 논할 때, 다음과 같은 사실이 먼저 지적되어야 한다. 즉 협상파와 대결파의 차이는 한(조선)반도 정책을 수행하는 양식의 차이일 뿐이지, 그 정책의 본질적 내용의 차이는 아니다. 협상파는 북(조선)과 회담을 갖고 필요한 경우에는 협상도 벌이는 행동양식을 취한다. 반면에, 대결파는 기본적으로 회담 자체를 반대하며, 혹시 여론에 밀려 회담을 하더라도 협상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행동양식을 취한다. 국무장관 콜린 파월(Colin L. Powell)이 이끄는 국무부가 중심이 된 협상파는 미군을 동원하는 권한이 없으므로 언제나 협상방식으로 목표에 접근한다. 반면에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가 이끄는 국방부와 군부가 중심이 된 대결파는 미군을 동원하는 권한이 있으므로 언제나 대결방식으로 목표에 접근한다.

이처럼 행동양식이 상반되는 것과는 달리, 한(조선)반도 정책의 본질적 내용에서는 협상파와 대결파가 완전히 일치한다. 협상파와 대결파가 일치하는 본질적 내용이란 북(조선)사회주의체제를 말살함으로써 한(조선)반도 전체를 지배하고 동아시아의 지배권을 더욱 든든히 틀어쥐는 것이다. 협상파와 대결파는 북(조선)사회주의체제를 어떻게 말살하는가 하는 말살방법에서 간격을 좁힐 수 없는 차이를 드러내 보인다. 그 차이는 전략의 차이다.

협상파는 미국이 북(조선)과 관계를 정상화한 뒤에 북(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면 사회주의체제를 말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협상파는 지난 날 미국이 중국과 수교하여 중국의 문호를 개방시켰고, 개방이 전면화, 심화되면서 사회주의체제가 말살되었다는 점을 중시한다. 그러므로 협상파의 전략은 관계 정상화를 통한 문호개방과 사회주의체제말살로 요약된다.

반면에, 대결파는 북(조선)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문제와 북(조선)사회주의체제를 말살하는 문제가 별개의 문제라고 판단한다. 대결파는 관계 정상화와 문호개방으로는 사회주의체제를 말살할 수 없고, 군사·정치·경제부문에서 북(조선)을 철저하게 고립·압살함으로써 말살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대결파는 "정치적, 경제적 압력을 가하여 평양 정부를 항복시키거나(capitulate) 붕괴시키기(collapse)를 바란다." (『워싱턴포스트』 2003년 12월 7일자)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조·미 관계 정상화가 아니라 북(조선)의 항복과 붕괴다. 그들은 조·미 관계가 정상화되면, 북(조선)사회주의체제를 말살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한·미 동맹관계가 해체됨으로써 남(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생각한다.
 

3. 쫓겨난 프릿처드, 손발 묶인 켈리
 

2003년 4월초 협상파가 조·중·미 3자회담에 응하려고 하자 대결파는 강한 제동을 걸었다. 대결파에게는 그 회담을 저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로써 협상파와 대결파 사이의 갈등은 더 심각해졌다.

그러나 대결파는 3자회담 자체를 저지하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조·중·미 3자회담을 개최하라는 북(조선)의 강한 압박공세, 핵문제를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거센 여론을 감히 정면으로 반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3자회담 자체를 저지하지 못하게 된 대결파는 비상조치를 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비상조치란 3자회담에 참석하는 협상파에게 압력을 가하고, 미국 측 회담대표 제임스 켈리(James A. Kelly)의 손발을 묶어버리는 일이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주도권을 틀어쥔 대결파가 국가안보회의 결정으로 켈리의 손발을 묶어놓으면 켈리는 3자회담에 나가서도 북(조선) 대표와 만날 수 없는 것은 물론 아무런 협상도 하지 못하게 된다.

『워싱턴포스트』 2003년 12월 7일자 보도는, 협상파의 발목을 붙잡은 대결파가 3자회담과 6자회담을 방해하고, 다자구도 틀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이 진행되는 것을 얼마나 집요하게 반대하는지 밝혀주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임스 켈리는 2002년 평양에서 열린 조·미 정치회담에, 그리고 2003년에 베이징에서 열린 3자회담과 6자회담에 미국 정부를 대표하여 참석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회담에 정부 대표로 참석한 켈리가 상대방과 의견을 교환하고 협상한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는 행동을 되풀이하였다는 데 있다. 회담장에 나타난 그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결정된 지침에 따라서 고위관리들이 미리 꼼꼼하게 작성한 원고를 읽었다. 그는 세 차례의 회담에서 언제나 준비된 원고를 읽는 행동만을 되풀이하였을 뿐 아니라, 때로는 서울과 도쿄에서 남(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의 관리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그와 같이 행동하였다.

2003년 4월 베이징에서 조·중·미 3자회담이 열리기 얼마 전, 럼스펠드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들에게 보낸 비망록에서 지금까지의 외교로 충분하므로 이제부터는 북(조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럼스펠드는 두 번째로 보낸 비망록에서 중국이 중재한 3자회담은 미국을 조·미 양자회담으로 유인하는 함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조·중·미 3자회담이 임박하자 그는 세 번째 비망록을 보내면서 제임스 켈리를 정부 대표로 3자회담에 보내지 말고 존 볼튼(John R. Bolton)이나 로벗 조셉(Robert Josheph)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무부 군축담당차관보 존 볼튼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비확산담당 고위보좌관 로벗 조셉은 국방부 밖에서 일하면서 럼스펠드를 추종하는 대결파의 중심인물들이다.

베이징에서 조·중·미 3자회담이 열렸을 때, 정부 대표로 참석한 제임스 켈리는 조·미 양자접촉을 절대로 하지 말라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지침에 따라서 행동하였으며, 대결파가 매우 강경한 논조로 작성해준 원고를 읽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본 대북(조선)교섭담당특사 잭 프릿처드(Charles L. Pritchard)는 국무부 동료관리들에게 보낸 전자편지에서 이런 식으로는 사흘로 예정된 회담일정을 다 채우지 못할 것이며, 북(조선) 대표들은 회담장에서 나가버릴 것이라고 탄식하였다.

3자회담 개막연설이 끝난 직후, 북(조선) 대표는 제임스 켈리에게 조·미 대화를 하지 않는 한 3자회담에는 더 이상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급해진 켈리는 조·미 접촉을 허락해달라는 긴급요청을 백악관에 몇 차례 보냈고, 중국 정부 대표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에게 직접 요청하였다. 그러나 백악관으로부터 전달된 긴급훈령은 조·미 접촉을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3자회담이 진행되는 가운데 조·미 대표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만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북(조선) 대표는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핵실험을 할 수도 있다고 발언하였으나, 켈리는 그러한 발언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하라는 지침을 받지 못했으므로 말 한 마디 하지 못했다.

2003년 7월, 대결파가 이라크 침략전쟁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에 협상파는 부시(George W. Bush)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공작에 들어갔다. 협상파를 대표하는 콜린 파월은 아프리카로 날아가는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콘돌리자 라이스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부시를 설득하였으며, 8월초 텍사스 목장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부시에게 자기들의 협상안을 보여주고 추진허락을 받는 데 성공했다. 협상파는 이런 절차를 밟아 8월말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에 켈리를 대표로 한 정부대표단을 참석시킬 수 있었다.

6자회담이 진행되는 가운데 조·미 대표단의 접촉이 이루어졌다. 그 양자접촉에서 북(조선) 대표들은 켈리가 6자회담 개막연설에서 읽은 연설원고내용과 관련하여 네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켈리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엄격한 지침에 따라 행동해야 했으므로, 자기가 6자회담 개막연설에서 읽었던 원고를 자세히 검토해보라는 답변 아닌 답변 밖에 내놓지 못했다.

제임스 켈리와 함께 조·미 정치회담 현장에서 일했던 대표적인 협상파는 대북(조선)교섭담당특사 잭 프릿처드다. 그는 클린턴 정부 시기부터 조·미 정치회담에 참석한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2000년 10월 당시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K. Albright)의 평양방문을 수행하였으며, 같은 해에 있었던 클린턴(William J. Clinton)의 하노이방문을 성사시킨 주역이었다. 그런데 그는 3자회담이 열리기 직전인 2003년 4월 18일 사직서를 제출하더니, 급기야 8월 22일 6자회담이 열리기 직전에 갑자기 사직하였다. 그가 4월 18일에 제출한 사직서는 협상파의 대표자들인 콜린 파월과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L. Armitage)에 의해서 넉달 동안 수리되지 않고 있었다.

프릿처드는 사직하기 직전, 유엔주재 북(조선)대표부 외교관리들과 만난 자리에서 2003년 7월 31일에 볼튼이 북(조선)을 맹렬히 비난한 발언과 관련하여 말하면서 그의 비난은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라고 해명하였다. 이러한 해명사실이 알려지자 대결파는 프릿처드가 마치 이적행위를 한 것처럼 그를 몰아 부치면서 집중공세를 퍼부었다. 프릿처드가 물러난 대북(조선)교섭담당특사에는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인 조셉 디트라니(Joseph Ditrani)가 임명되었다.

대결파의 집중공세 속에서 대북(조선)교섭담당특사가 교체된 것은 협상파와 대결파의 갈등에서 협상파가 수세에 밀렸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백악관 부대변인 필립 리커(Philip T. Reeker)는 프릿처드가 사퇴압력을 받아서 물러난 것은 아니라고 말했으나(『뉴욕타임스』 2003년 8월 26일자), 켈리를 회담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대결파의 중심인물을 내세우려고 책동한 대결파가 프릿처드에게 사퇴압력을 가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주도권을 틀어쥔 대결파는 제임스 켈리가 회담에 나가서 아무런 발언도 하지 못하게 손발을 묶어놓고, 잭 프리처드를 쫓아냄으로써 6자회담을 집요하게 반대·방해하고 있다. 대통령이 특별대사를 임명하여 교착상태에 빠진 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미국의 여론이 대결파의 책동에 의해서 묵살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대결파가 6자회담을 반대·방해하는 것은 일시적인 전술이 아니라 조·미 관계 정상화를 거부하는 전략이다. 대결파는 6자회담이 진척되면 조·미 정치회담으로 이어지고, 결국 조·미 관계가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6자회담을 저지함으로써 조·미 관계가 정상화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것이다. 대결파는 부시 정부가 동시행동원칙을 받아들이고 6자회담을 진척시키면, 조·미 군사문제에 관한 협상이 불가피하게 되리라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무적 회담인 6자회담이 어떻게 되어 조·미 군사문제에 관한 협상과 결부되는 것일까? 그 까닭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예상하는 대로, 머지 않아 열리게 될 제2차 6자회담에서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북(조선)에 대한 불가침을 확약하는 것과 동시에 북(조선)은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핵무기개발 포기를 확약할 것이다. 그 확약은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풀어 가는 제1단계 해법절차이다. 불가침을 확약하는 형식과 핵무기개발 포기를 확약하는 형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므로, 조·미 두 나라가 협상을 통해 그 형식을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조·미 두 나라가 6자회담에서 불가침과 핵무기개발 포기를 각각 확약하고 나머지 참가자들이 그 확약을 보증하면, 6자회담은 그것으로 사실상 자기 임무를 끝내게 된다. 왜냐하면 미국이 북(조선)에 대해 확약한 불가침의 이행은 북(조선)이 검증할 문제로, 북(조선)이 미국에게 확약한 핵무기개발 포기의 이행은 미국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을 앞세워 검증할 문제로 되기 때문이다. 6자회담에 참가한 남(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은 조·미 양측이 6자회담에서 확약한 것을 다자적으로 보장하면 그것으로 자기들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며, 6자회담에서 조·미 두 나라가 확약한 것이 이행되는지를 검증하는 것은 남(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권한과 임무밖에 있는 일이다.

6자회담이 막을 내리면, 조·미 두 나라는 자기들이 확약한 것이 실제로 이행되는지를 검증하는 절차를 밟으면서 다음 단계의 회담으로 접어들게 된다. 6자회담의 뒤를 이을 다음 단계의 회담이 조·미 정치회담으로 된다는 점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

그 정치회담은 어떤 조건에서 진행되는 것일까? 그 정치회담은 북(조선)에 대한 불가침을 확약하고 불가침 의무를 이행하는 미국과 핵무기개발 포기를 확약하고 포기 의무를 이행하는 북(조선)이 진행하는 새로운 차원의 회담이다. 그 회담은 두 나라가 팽팽하게 맞섰던 대결요인이 일정하게 해소됨으로써 성사되는 회담이다.

그 정치회담에서는 어떤 의제가 다루어질 것인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근본문제가 의제로 다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 정치회담은 조·미 국교수립을 위한 수교회담이다. 북(조선)이 조·미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제1차 6자회담에 참석했던 러시아 소식통에 의해서도 밝혀진 바 있다. (『연합뉴스』 2003년 12월 7일자) 북(조선)은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회담에서 미국의 대북(조선) 경제봉쇄조치를 완전히 해제하는 문제와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관철시키려 할 것이다. 북(조선)이 조·미 정치회담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관철시키면, 대결파는 한(조선)반도에서 군사력을 동원하는 자기의 고유한 권한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것이 대결파가 조·미 정치회담을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이다.
 

4. 미·일 대결파의 공모와 결탁
 

미국과 일본이 공모·결탁하여 한(조선)민족의 존엄과 자주성을 해치고 있음을 말해주는 한 가지 역사적 사실을 소개한다.

한(조선)민족과 다른 아시아민족들에게 침략, 약탈, 살육, 파괴를 자행하며 광분하였던 일제침략자들이 패전하기 직전인 1945년 6월 어느 날, 필리핀 루손섬 험준한 산악지대 67m 땅속에서는 폭발음과 함께 '동굴(tunnel)-8'이라는 지하창고가 파괴되었다. 그 지하창고에서 열린 송별잔치가 채 끝나기 전, 일제침략군 지휘관이었던 야마시다와 일본왕 히로히도의 동생 치치부가 슬며시 밖으로 빠져나가, 폭파명령을 내린 것이다. 지하창고건설공사에 동원된 기술자 175명은 그 죽음의 송별잔치에서 아무도 살아 나오지 못했다.

그 지하창고에는 일제가 1894년 민비시해사건 이후 조선에서, 그리고 일제가 침략한 아시아 12개 나라에서 약탈한 엄청난 양의 금괴가 보관되어 있었다. 패전이 가까워지자 다급해진 일제침략자들은 그 지하창고를 폭파함으로써 약탈금괴를 땅속 깊숙이 감추었고, 지하창고건설에 동원된 것으로 하여 지하창고의 비밀을 알고 있는 기술자들도 죽여버렸다. 이것이 최근 미국 언론인들에 의해서 세상에 밝혀진 '야마시다 약탈금괴'에 관한 비사다.

주목할 것은, '야마시다 약탈금괴'의 비사가 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일제는 패전 직후 전후처리과정에서 약탈금괴에 관한 극비정보를 미국에게 넘겨주었고, 미국은 패전국 일본의 전쟁범죄를 너무도 관대하게 처리하였다. 1945년 8월 이후, 미·일 상호결탁은 '야마시다 약탈금괴'에 관한 극비정보를 넘겨받은 미국이 그 금괴를 찾아내어 미국의 아시아 지배정책을 추진하는 데 소모하는 것으로 본격화되었다. 미·일 상호결탁으로 미국의 손에 넘어간 약탈금괴의 상당한 분량이 남(한국)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틀어쥐는 데 사용되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야마시다 약탈금괴'의 비사를 세상에 폭로한 미국 언론인들에 따르면, 한국(조선)전쟁에 등장한 미군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와 대통령들인 트루먼(Harry S. Truman)과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는 말할 것도 없고, 20세기말에서 21세기초에 이르는 전환기에 대통령을 지낸 부시(George H. W. Bush)와 클린턴, 그리고 현직 대통령 부시도 '야마시다 약탈금괴'에 연루되었다고 한다.

조선에서 약탈한 막대한 양의 금괴를 넘겨받으면서 몇 일 전까지만 해도 교전상대였던 일제와 손을 잡고, 그 약탈금괴로 다시 남(한국)에 대한 지배정책을 추진한 미·일 사이의 공모와 결탁의 역사는, 1905년 10월 당시 미국 대통령특사이었다가 나중에 대통령이 된 태프트(William H. Taft)와 일본 총리대신 가츠라가 한(조선)민족의 자주권을 짓밟기 위해서 맺은 밀약에서 시작되었으며, 1951년 9월 미국 국무부 특별고문 존 덜레스(John F. Dulles)와 일본 총리 겸 외상 요시다 시게루가 한(조선)민족의 자주권을 침해하기 위해서 맺은 밀약을 거쳐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한(조선)민족의 자주권을 침해하기 위해서 미국과 일본이 자행한 공모와 결탁의 역사는 오늘날 6자회담과 관련해서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03년 11월 도쿄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그것을 증명한다.

2003년 11월 16일 도쿄를 방문한 제임스 켈리가 6자회담 문제와 관련하여 만난 사람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담당 국장 야부나카 미토지와 방위청 장관 이시바 시게루였다. 일본 엔에이취케이(NHK) 텔레비전방송 보도에 따르면, 켈리-야부나카 회담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그 회담에서 미·일 두 나라는 북(조선)의 요구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미·일 두 나라의 공동관심사는 켈리-야부나카 회담이 아니라 켈리-이시바 회담에서 더 선명하게 표출되었다는 사실이다. 미국 국무부 차관보와 일본 외무성 국장의 회담에서 논의된 공동관심사가 언론의 관심을 끌어야 자연스러운데, 미국 국무부 차관보와 일본 방위청 장관의 회담에서 논의된 것이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켈리-이시바 회담은 연이어 베이징에서 열렸던 켈리-왕이(중국 외교부 부부장) 회담이나 서울에서 열렸던 켈리-이수혁(외교통상부 차관보) 회담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켈리는 베이징과 서울에서 군사관계 고위관리를 만나지 않고 외교관계 고위관리들만 만났는데, 도쿄에서는 특이하게도 방위청 장관과 만났다.

켈리-이시바 회담이 언론의 관심을 끌었던 까닭은 그 회담에서 군사문제를 논했기 때문이다. 이시바는 켈리와 회담하고 나서 "일본과 미국은 북(조선)에 대해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일·미 상호방위조약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시바의 그 발언 뒤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거의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시바의 발언에 담겨있는 일본 정부의 우려를 지적하면서, 조·미 불가침이 합의되면 조·일 사이에 무력충돌이 일어났을 때 미국이 미·일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일본과 함께 북(조선)을 공격하지 않게 될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뜻으로 분석하였다. 그러나 이시바의 발언 뒤에 숨겨져 있는 것은 그런 '우려'가 아니다. 이시바로 대표되는 일본의 대결파는 조·미 합의가 미·일 군사동맹체제를 약화시킨다는 것을 구실로 삼으면서 실제로는 6자회담을 반대하는 것이다.

켈리가 도쿄에서 이시바를 만나기 하루 전인 11월 15일에 이시바를 만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다. 미국 대결파의 대표자인 그가 켈리보다 한 걸음 먼저 이시바를 만난 것은, 6자회담과 관련하여 미·일 대결파의 공모·결탁이 재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입증한다. 럼스펠드는 미국이 다른 나라와 어떤 합의를 채택한다고 해서 지난 43년 동안 일본에 대한 무력공격을 미국에 대한 무력공격으로 여겨온 미·일 상호방위조약이 훼손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2003년 11월 17일자) 럼스펠드의 이 발언은 그가 이시바를 만나 1시간 동안 회담을 한 뒤에 나온 것이다. 그의 발언을 보면, 럼스펠드-이시바 회담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럼스펠드-이시바 회담은 럼스펠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대결파와 이시바로 대표되는 일본의 대결파가 6자회담 문제와 관련하여 공모·결탁을 자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 공모·결탁이 6자회담 자체를 반대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남(한국)의 한 언론은 도쿄와 서울을 방문하고 워싱턴에 돌아간 럼스펠드는 6자회담 자체를 반대하는 더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고 지적하였다. (『시사저널』 제738호, 2003년 12월 18일자) 북(조선)이 『조선중앙통신』에서 일본은 6자회담에 참가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밝혔던 때는 럼스펠드-이시바 회담이 있은 때로부터 14일 뒤인 11월 29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럼스펠드-이시바 회담 이후, 6자회담에 관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결정은 워싱턴과 도쿄에 포진한 대결파의 의도대로 되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2003년 12월 12일 제2차 6자회담에서 채택할 공동문안 초안에 관한 중국 정부의 제안을 거부했으며, 이튿날에는 부시 정부가 중국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12월 17일에 제2차 6자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중국 정부의 통보를 받고서도 이를 외면하였다. (『연합뉴스』 2003년 12월 18일자)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문제가 있다. 2000년 10월에 워싱턴에서 조·미 공동성명이 채택될 때 미국의 대결파와 일본의 대결파는 조·미 관계 정상화가 미·일 군사동맹체제를 약화시킨다는 것을 빌미로 조·미 정치회담 자체를 반대·방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미 공동성명이 채택된 뒤로 3년이 지난 2003년에 미국과 일본의 대결파가 공모·결탁하면서까지 6자회담을 반대·방해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위에서 지적한 대로, 6자회담을 반대·방해하는 데서 이해관계가 일치한 럼스펠드와 이시바는 조·미 불가침합의가 미·일 군사동맹체제를 약화시킨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조·미 두 나라가 불가침을 합의하더라도 그것이 미·일 상호방위조약보다 더 강력한 효력을 발생할 수 없으며, 따라서 조·미 불가침합의가 미·일 군사동맹체제를 약화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세상이 다 알고 있는 그 사실을 럼스펠드와 이시바가 모를 리 없다.

럼스펠드와 이시바의 발언은 조·미 불가침합의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제2차 6자회담에서 조·미 불가침이 합의되면 그에 따라 워싱턴 정치권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여론이 조성될 가능성, 그리고 북(조선)과 남(한국) 반미자주세력으로부터 강한 철수압력이 제기될 가능성을 반대한 것이다. 럼스펠드와 이시바는 주한미군에 대한 철수여론과 철수압력이 제기되면, 미·일 군사동맹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고 예견한다. 미국과 일본의 대결파가 6자회담을 반대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5. 미국의 반테러전쟁전략과 사회주의말살정책
 

미국이 추진하는 반테러전쟁전략과 사회주의말살정책은 다른 것이다. 현재 반테러전쟁전략은 중동에서 저강도전쟁으로 추진되며, 사회주의말살정책은 동아시아에서 사회주의체제를 붕괴시키는 여러 가지 책동으로 추진된다.

1)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추진하는 사회주의말살정책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추진하는 사회주의말살정책의 목적은 동아시아에서 강한 지배력을 틀어쥐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동방에서 유일한 사회주의국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넘어뜨리고 중국에서 진행 중인 탈사회주의화를 가속적으로 완성하려고 한다. 동아시아에서 사회주의를 말살하고 강한 지배력을 틀어쥐려는 세력은 미국의 행정부와 연방의회를 망라한 정치권 전체다.

미국의 사회주의말살정책이 가장 난폭하게 추진되는 곳은 한(조선)반도다. 북(조선)은 미국의 사회주의말살정책을 저지·파탄시키고 한(조선)반도 전역에서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기 위한 반미자주화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조·미 대결은 북(조선)의 반미자주화전략과 미국의 사회주의말살정책의 대결이다.

북(조선)은 한(조선)반도 전역에서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반미자주화전략을 추진하고, 미국은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를 고립·압살하는 사회주의말살정책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볼 때, 조·미 두 나라는 피차 국운을 걸고 치열하게 투쟁하는 것이다.

앞으로 조·미 대결은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결국 북(조선)의 정치적 승리로 막을 내릴 것으로 나는 전망한다. 이 전망에 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나의 논문들에서 몇 차례 해설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른 한편, 중국에서 진행 중인 탈사회주의화를 완성하기 위한 미국의 사회주의말살정책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을까? 미국과 추종국가들이 추진하는 중국의 탈사회주의화에 대해서 중국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저항감을 느끼기는커녕 도리어 자발적으로 협력·추진하고 있다. 2004년 3월 제10기 전국인민대표자대회 2차 전체회의에서 개정될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에는 생산수단의 사유화, 자본가의 중국공산당 입당 허용 등이 명시됨으로써 탈사회주의화 작업이 완성단계에 이른다.

장차 탈사회주의화를 완성한 중국은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력에 도전하는 새로운 경쟁자로 떠오르면서 중·미 관계를 갈등으로 몰아갈 것이다. 최근 중국 언론은 미국이 중국의 숙적인 일본, 인도와 손잡고 해상에서 '공동안전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고 보도했으며, 일본 언론은 미해군 태평양함대가 중국의 잠수함 전력 증강에 대처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미 관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가장 예민한 도화선은 대만의 분리독립운동이다. 미국을 크게 자극하는 요인은,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력에 도전하는 새로운 경쟁자인 중국이 분리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대만을 무력으로 통합하려는 행동이다. 미국은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통합하는 시도를 자기의 동아시아 지배력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여긴다.

그런데 부시의 '악의 축' 발언에서 드러났듯이, 부시 정부는 반테러전쟁전략과 사회주의말살정책이라는 두 종류의 개념을 의도적으로 혼용한다. 부시 정부는 대외선전에서 그 두 개념을 구분하지 않고 혼용함으로써 사람들의 인식을 어지럽히고 있다.

두 개념을 혼용할 수 있게 만든 연결고리는 대량파괴무기(WMD)다. 부시 정부는 반테러전쟁에서도 대량파괴무기를 제거하는 목적을 내걸었고, 사회주의말살책동에서도 대량파괴무기를 제거하는 목적을 내걸었다.

부시 정부가 대외선전에서 반테러전쟁전략과 사회주의말살정책을 의도적으로 혼용하는 까닭은, 미국이 자행하는 사회주의말살책동을 대량파괴무기를 제거하는 반테러전쟁인 것처럼 위장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부시 정부가 한(조선)반도에서 반테러전쟁전략이 아니라 사회주의말살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2) 미국의 반테러전쟁전략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미국이 중동에서 추진하는 반테러전쟁전략의 목적은, 세상이 다 아는 대로, 그 지역에서 지배력을 틀어쥐고 막대한 이윤을 쏟아내는 석유자원을 약탈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반테러전쟁은 침략전쟁이며 약탈전쟁이다. 부시 정부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상대로 도발한 반테러전쟁은 제국주의자들이 자행하는 야만적 침략과 약탈이 어떠한 것인지를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부시 정부의 반테러전쟁은 제국주의자들이 자유와 인권과 평화라는 거짓명분을 내걸고 얼마나 잔인하고 교활하게 침략과 약탈을 자행하는지를 현실로 입증한다. 새 천년의 희망을 안고 막을 올렸던 21세기는 시작되자마자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포성과 약탈전쟁의 핏물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석유자원 약탈에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미국의 석유자본과 유태인 정치세력과 중동의 지배력 장악에 이해관계가 있는 미국 정치권이 상호결탁하여 중동에서 반테러전쟁전략을 추진한다. 반테러전쟁전략이 중동에 집중되는 까닭은, 미국이 반미성향을 가진 이슬람민족주의정권들을 제거하는 저강도전쟁을 그 지역에서 도발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무력침공을 자행하면서 반미성향을 가진 이슬람민족주의정권들을 차례로 제거하는 저강도전쟁의 목적은, 이슬람민족주의정권이 장악한 석유자원을 빼앗으려는 데 있다. 미국은 저강도전쟁으로 중동의 석유자원을 약탈하고 있으며, 이슬람민족주의정권들은 필사적인 반미테러공격으로 미국의 침략과 약탈에 저항하고 있다. 지금 중동정세는 미국과 이슬람민족주의정권들이 석유자원 소유권을 놓고 격돌하는 전쟁으로 혼미하다.

미국의 에너지산업이 중동산 석유자원에 결정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에서 볼 때, 중동산 석유자원을 약탈하기 위한 반테러전쟁과 관련하여 미국은 적대세력들과 타협할 여지를 전혀 가지지 못한다. 만약 미국이 중동에서 석유공급원을 안정적으로 독점하지 못하면 미국 경제는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받게 되므로, 미국이 중동에서 반테러전쟁을 지연·회피할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앞으로 세계경제의 석유수요량이 급증하고 석유의존도가 심화되는 추세와 더불어 석유자원을 약탈하기 위한 반테러전쟁은 장기화될 것이다.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벌이는 반테러전쟁에는 영국과 일본을 비롯한 미국 추종국가들이 적극 합세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세계 최대의 석유수입국으로 등장한 중국은 현재 미국의 반테러전쟁에 대해서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국의 이익 때문에 결국 미국의 반테러전쟁을 동조·지지하게 될 것이다.
 

6. 반테러전쟁전략과 한(조선)반도 군사상황
 

부시 정부의 반테러전쟁전략은 이른바 '군사혁신(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에 의해서 추진되는 군사전략이다. '군사혁신'은 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여 반테러전쟁전략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부시 정부가 추진하는 '군사혁신'이란, 미국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세계적 범위에서의 미군과 미군기지의 재조정(global realignment of American troops and bases)이다. (『뉴욕타임스』 2003년 11월 25일자)

미군합동참모본부 부의장 피터 페이스(Peter Pace)는, 작전유효성(Operational Availability)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전쟁계획 연구사업을 지휘한 인물이다. 그가 지휘한 전쟁계획 연구사업에서는 군사장비의 기술적 진보에 따라 바뀐 전쟁계획이 검토되었고, 지금은 해외주둔 미군병력을 재배치하는 문제가 검토되고 있다. 피터 페이스가 지휘하는 전쟁계획 연구사업단이 다루는 문제는 두 가지인데, 중무장한 병력을 해외기지에 고정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경무장한 병력을 일상적으로 교체하면서 해외기지에서 훈련하는 문제, 그리고 전투장비를 해외에 사전에 배치해두는 문제다. (『워싱턴포스트』 2003년 11월 18일자)

미국 국방부의 전쟁계획 검토사업은 2001년에 럼스펠드가 국방장관이 된 직후에 착수되었는데, 2002년에 럼스펠드에게 제출된 검토보고서에는 미군의 전투력을 향상하기 위한 60가지 이상의 방안이 포함되었다. 거기에는 미국 안에 있는 중앙지휘부가 전투지휘책임을 수행하는 작전지휘체계의 변화도 포함되었다. 기존의 작전지휘체계는 해외 각지에 파견된 야전군사령관(대장)이 해당지역에 지상군, 해군, 공군을 배치하고 작전을 지휘하는 체계로 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수정한 것이다.

2003년 11월 25일 부시는 "오늘부터 미국은 새로운 안보상황에 맞춰 가장 적절한 지역에 적정 규모의 미군이 배치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동맹국들과 협의하겠다."고 발표했다. 언론보도를 통해서 알려진 대로, 부시 정부는 유럽과 중동에 배치한 미군 15만 명을 재배치하는 문제에 관해 이미 결정을 내리고 실행단계에 들어갔다. 사우디 아라비아에 배치하였던 미군병력은 이미 철수하였고, 독일에 배치한 미군병력도 감축하려고 한다. 그 대신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에 미군을 새로 배치하여 러시아와 중동에 대처하려고 한다.

부시 정부가 사우디 아라비아에 배치한 미군을 철수한 것은 중동에 대한 정치·군사적 지배를 포기한 것이 결코 아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 고정적으로 배치한 미군을 가지고서는 아랍민족의 격렬한 반미테러공격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음은 물론이고, 사우디 아라비아에 배치한 미군기지들이 반미테러공격의 고정표적으로 되어 아랍민족의 반미투쟁을 자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철수한 것이다.

부시 정부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미군을 철수하는 대신 중동과 러시아에 가까운 동유럽에 미군을 배치하였다. 동유럽에 배치한 미군의 작전범위는 중동과 러시아를 포함한다. 부시 정부가 동유럽에 미군을 배치한 것은 주독미군의 전략적 가치가 감소되었음을 뜻한다. 동유럽의 미군 배치는 주독미군의 감축으로 이어진다. 주독미군의 감축추세는 1990년도에 24만4천2백 명이었던 것이 2002년도에는 6만8천9백50 명으로 감축되었고, 2003년도 이후에는 2만6천 명 정도로 감축될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2003년 6월 9일자 보도에 따르면, 부시 정부가 세계적 범위에서 미군과 미군기지를 재조정하는 계획은 다음과 같은 모습을 드러낸다. 재조정계획에 따르면, 영구적으로 고착된 미군기지를 배치하는 곳은 전략거점 세 군데로 지목되는데, 미국의 영토인 괌, 동아시아의 전략거점인 일본열도, 유럽의 전략거점인 영국이다. 이 세 군데 전략거점을 이른바 '중추기지(hubs)'라고 부른다.

『니혼게이자이신붕』 2003년 11월 15일자 보도에 따르면, 부시 정부는 동아시아에 주둔하는 미군병력을 10만 명으로 유지하는 기존의 방침을 폐기하였다고 한다. 동아시아에 미군병력 10만 명을 유지하는 방침은 클린턴 정부가 결정했던 것이다. 동아시아에 주둔하는 미군병력을 10만 명으로 유지하는 기존 방침을 폐기하였다는 말은, '중추기지'인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병력에는 큰 변동이 없으나 남(한국)에 주둔하는 미군병력에 큰 변동이 있다는 뜻이다.

재조정계획에 따르면, 남(한국), 독일, 사우디 아라비아, 터키에 있는 기존의 미군기지들은 '전진작전기지(forward operating bases)'로 전환된다. '전진작전기지'에는 이전처럼 대규모 미군기지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소규모 지원기지만 잔류하게 된다. 주한미군은 '전진작전기지'에 주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철수하여 신속기동군으로 개편되고, 6개월에 한 번씩 남(한국)에 들어가서 일정기간 동안 기동훈련을 진행한 뒤에 다시 돌아간다. 따라서 남(한국)에 잔류하는 소규모 지원기지는 주둔기지가 아니라 기동훈련기지다.

재조정계획에 따르면, '중추기지'와 '전진작전기지' 이외에 '전진작전지역(forward operating locations)'과 '대기지대(staging areas)'가 있는데, 거기에는 소규모 잔류기지마저 배치하지 않는 대신 무기를 실은 해군선박을 배치해 두며, 유사시에는 신속기동군을 배치하고 해군선박에 있는 무기로 무장한 증원군을 추가로 투입한다.

'향후 3년 동안의 주한미군 전력강화계획'에 따르면, 부시 정부는 1개 여단을 무장할 무기를 상시적으로 한(조선)반도 주변해상에 배비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경상북도 왜관에는 1개 여단을 무장할 무기가 오래 전에 육상에 배비되었는데, 그것에 더하여 해군선박에도 무기를 배비하는 것이다. '매우 저속으로 움직이는 항공모함'이라고 부르는 사전집적선이 그러한 무기를 실은 해군선박이다. 사전집적선은 남해에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경무장한 신속기동군은 고강도전쟁에 동원하는 무력이 아니라 고강도전쟁 이후에 저항세력을 진압하고 군사점령정책을 수행하는 데 동원되는 무력이다. 미국 국방부는 그러한 군사점령정책을 '전후안정화작전(postwar stability operation)'이라고 부른다. 현재 미국 국방부의 전략가들은 '전후안정화작전'에 요구되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 비밀문서인 이른바 '전략기획지침(Strategic Planning Guidance)'을 작성하는 중이다. 이 비밀문서를 작성하는 실무작업을 주로 맡은 단위는 미국 국방부의 '미군변환담당실(Office of Force Transformation)'과 '안정화작전담당실(Office of Stability Operations)'이다.

'안전화작전담당실'은 2003년 9월 연구보고서에서 신속기동군을 1개 여단 규모의 약 5천명 병력으로 구성한다는 방안을 내놓았고, '미군변환담당실'은 국방대학교(National Defense University) 연구진과 합동으로 2003년 11월에 완성한 연구보고서에서 신속기동군을 현역과 예비역이 혼합된 2개 사단 규모의 약 3만명 병력으로 구성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워싱턴포스트』 2003년 11월 24일자)

미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경량·기동화된 이른바 '원정군(expeditionary force)'으로 개편된다고 한다. '원정군'이 경량화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장거리를 항공기나 고속함정으로 신속하게 이동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것과 함께 한(조선)반도에 배치되는 새로운 무기들은 시속 60마일로 달리는 고속경장갑차, 고고도 및 전천후 폭탄(smart bomb), 지하관통 정밀유도폭탄(bunker buster) 등이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2003년 12월 21일자)

위에서 말한 정도의 병력규모나 무장을 갖춘 신속기동군은 독자적으로 전면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전투력을 갖지 못한다. 신속기동군이 전면전에 투입되려면 보병사단과 공군력과 결합하여야 한다.

그런데 만일 한(조선)반도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나면, 그것은 이슬람민족주의세력들의 반미테러공격이 아니라 엄청난 규모의 전략전술무력이 총동원되는 전면전으로 될 것이다. 조·미 전쟁은 부시 정부가 말하는 반테러전쟁의 한 유형이 될 수 없는 대규모 전면전이다. 한(조선)반도 전쟁은, 미군의 용어를 빌려 표현하면, '주요전구전쟁(Main Theater War)'이다.

미국이 한(조선)반도에서 신속기동군을 동원하는 저강도전쟁과 대규모 중무장 무력을 동원하는 고강도전쟁은 작전계획부터 다르다. 신속기동군의 작전계획은 '작전계획 5030(OPLAN 5030)'이고, 중무장 무력의 작전계획은 '작전계획 5027(OPLAN 5027)'이다.

한(조선)반도에서 미군이 상대해야 하는 조선인민군은 고강도전쟁전략(high-intensity warfare strategy)에 따라서 편성·배치된 강력한 대군이다. 만일 저강도전쟁전략(low-intensity warfare strategy)에 따라 경량·기동화된 신속기동군과 고강도전쟁전략에 따라 중량·기동화된 조선인민군이 전투를 벌인다면, 그것은 초등학생과 대학생의 싸움과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온다. 주한미군이 신속기동군으로 개편되는 경우, 그 군대는 한(조선)반도에서 일어나는 고강도전쟁에서는 쓸모가 없다.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 저강도전쟁을 도발하는 반테러전쟁전략을 수행할 수 없으며 수행할 필요도 없다. 반테러전쟁전략이 통하지 않는 한(조선)반도에서 주한미군을 그 전략수행에 동원되는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부시 정부의 발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부시 정부가 저강도전쟁전략에 따라서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것은, 한(조선)반도에서 고강도전쟁전략을 폐기한다는 뜻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미국이 조선인민군에 맞서서 고강도전쟁전략을 수행할 별도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신속기동군으로 개편된 주한미군이 고강도전쟁전략을 수행할 전투력이 아니라면, 한(조선)반도에서 고강도전쟁전략을 수행할 전투력은 어디에 배치되어 있는 것일까? 나의 판단으로는, 일본열도에 배치된 미·일 동맹군이 한(조선)반도에서 조선인민군을 상대로 고강도전쟁전략을 수행할 전투력인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몇 차례 수정·보완되어온 '작전계획 5027'은 미·일 동맹군이 한(조선)반도에서 고강도전쟁을 도발하기 위하여 작성된 것이다. 고강도전쟁은 전략사령부가 지휘한다.

『워싱턴포스트』 2003년 11월 18일자 기사가 보도한 미군합동참모본부 고위관리의 말에 따르면, 북(조선)이 남(한국)을 공격하는 경우 미국은 지상군을 전선에 들이밀지 않고 공군력과 첨단무기만 가지고 전쟁을 속전속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다. 이슬람민족주의세력의 반미테러공격도 막아내지 못해서 이라크전선과 아프가니스탄전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미국이 군사강국인 북(조선)과 고강도전쟁을 벌이면서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는다는 말은 허풍을 떠는 소리로 들린다.

현재 부시 정부가 해외주둔 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반테러전쟁전략을 추진하고 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2003년 11월 25일 해외주둔 미군에 대한 감축과 재배치를 검토한다는 부시의 발표가 나오자마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고위관리는 워싱턴에 주재하는 남(한국) 언론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그 고위관리는 주한미군의 감축과 재배치는 전 세계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해외주둔 미군의 재조정 계획에 맞춰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일보』 2003년 11월 26일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고위관리의 그 말을 액면 그대로 인정하면, 신속기동군은 반테러전쟁전략에 따라서 배치되는 것이므로, 주한미군도 반테러전쟁전략에 따라서 신속기동군으로 개편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논법에 따르면,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목적이 한(조선)반도에서 반테러전쟁전략을 수행하려는데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전략은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반테러전쟁전략만으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문제점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주한미군은 반테러전쟁전략이 아니라 사회주의말살정책에 따라 신속기동군으로 개편되는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 힘들다. 사회주의말살정책은 북(조선)에 대한 전쟁도발위협으로 전개되는 것이므로, 부시 정부가 군사부문에서 사회주의말살정책을 추진하려면, 주한미군을 한(조선)반도 이외의 지역으로 출동시키는 '원정군'으로 개편할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의 무력을 더 증강하고 공격형으로 배치해두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부시 정부가 주한미군을 북(조선)의 장거리포 사정권에서 벗어난 후방에 배치함으로써 더 강화된 군사력으로 사회주의말살정책을 추진하게 된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종류의 주장은 주한미군을 한(조선)반도 이외의 지역으로 출동시키는 '원정군'으로 개편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한다. 부시 정부가 더 강화된 군사력으로 사회주의말살정책을 추진한다면, 주한미군을 북(조선)의 장거리포 사정권에서 벗어난 지역에 배치하고 무력을 더욱 증강해야 이치에 맞는다. 그런데 부시 정부는 거꾸로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면서 감축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얼마 전 미국 국방부가 앞으로 4년 동안에 1백10억 달러를 들여 공격용 아파치 헬리콥터, 패트리엇 요격미사일, 정밀유도폭탄을 남(한국)과 주변지역에 배치한다고 발표한 것(『유에스에이투데이』 2003년 12월 23일자)을 지적하면서, 미국이 주한미군을 북(조선)의 장거리포 사정권 밖에 배치하면 더 강화된 군사력으로 사회주의말살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공격용 헬리콥터, 요격미사일, 정밀유도폭탄 같은 신형무기를 추가로 배치하는 것은 미2사단이 신속기동군으로 개편됨으로써 전투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보완조치이지, 사회주의말살정책을 더 강하게 추진하려는 공세조치라고 볼 수 없다. 더욱이 그러한 신형무기들이 배치되는 범위가 남(한국)에 국한되지 않고 남(한국) 이외의 주변지역까지 확대되는 것은, 신형무기의 추가배치가 일종의 보완조치임을 말해준다.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전략에서 중심내용은, 주한미군을 동아시아에서 일어나는 분쟁에 급파하는 '원정군'으로 개편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일어나는 분쟁이란 무력충돌 곧 전쟁을 뜻하는데,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은 두 군데 밖에 없다. 한(조선)반도와 대만해협이다. 그런데 이 두 지역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전쟁은 대량파괴무기를 장착한 미사일이 쏟아지고 대규모 병력이 투입되는 고강도전쟁이다. 경무장한 신속기동군이 동아시아에서 일어나는 고강도전쟁에서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신속기동군을 고강도전쟁에 투입하는 것은 궤멸을 자초하는 행위다. 동아시아의 고강도전쟁에는 '원정군'이 쓸모가 없다. 따라서 미국은 동아시아의 고강도전쟁에 쓸모가 없는 '원정군'을 조선인민군의 군사력과 남(한국)대중의 반미자주화투쟁으로부터 커다란 위협을 받고 있는 남(한국)에 배치할 필요도 없게 된다.

그렇다면 부시 정부는 동아시아의 고강도전쟁에 쓸모가 없는 '원정군'을 어느 지역에 배치하려는 것일까? 이 문제에 해답을 얻으려면, 부시 정부가 주한미군을 '원정군'으로 개편하는 작업을 살펴보아야 한다. 현재 부시 정부가 추진하는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전략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1)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전략은 부시 정부의 대결파가 추진한다. 미국 국방부와 군부에 포진한 대결파는 6자회담의 진전을 가로막으면서, 다른 한편에서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부시 정부의 협상파가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전략에 대해서 동의한 것은 물론이다. 2003년 11월 13일 극동을 순방하던 국방장관 럼스펠드와 그의 수행원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내용을 언론에 밝혔다.

(1) 부시 정부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획기적으로 개편하는 문제'에 관련하여 곧 협의를 시작할 것이다.

(2) 주일미군 개편에 관한 협의는 2003년 12월 중순에 시작될 것이며, 주한미군 개편에 관한 협의도 6개월 안에 시작될 것이다.

(3) 부시 정부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개편에 관한 협의를 2-3년 안에 마무리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3년 11월 14일자)

11월 19일 주한미국대사 토머스 허바드(Thomas Hubbard)는 서울기독교청년회가 주최한 비공개간담회에서 미국은 주한미군을 재배치하고, 주한미군사령부를 이전하는 문제를 3년 안에 해결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03년 11월 19일자)

주한미군사령부를 오산기지로 옮기는 방침은 럼스펠드가 2003년 11월 17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밝힌 것이다. 럼스펠드가 주한미군사령부 이전방침을 그 협의회에서 밝혔다는 것은 부시 정부가 이전방침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이미 집행단계에 들어갔음을 뜻한다.

미군 전문지인 『성조지』 2003년 12월 12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 연방의회는 용산에 있는 주한미군사령부를 오는 2006년까지 오산기지(Camp Humphrey)로 옮기기 위한 군사시설 신축예산안을 승인했으며, 2003년 12월 10일에는 오산기지에서 2005년 6월 완공을 목표로 690만달러 규모의 영내 편의시설 건축공사와 400명을 수용하는 군인막사건축이 착공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드러난다.

첫째 문제는, 주한미군사령부를 오산기지로 옮긴다고 하면서, 지휘부건물 건축공사는 하지 않고 편의시설 건축공사만 한다는 사실이다. 주한미군사령부를 오산기지로 옮길 시한이 3년도 채 남지 않은 조건에서, 오산기지에서 사령부건물을 건축하는 공사에 착수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둘째 문제는, 미2사단을 오산기지에 재배치한다고 하면서, 오산기지에 400명을 수용하는 군인막사를 건축한다는 사실이다. 미2사단 병력은 2만8천3백 명인데, 그 많은 병력이 주둔할 새로운 기지를 건설하는 공사는 방대하므로 지금 착수한다고 해도, 2006년까지 완공되지 못한다. 새로 건축되는 군인막사의 규모를 보면, 오산기지에 추가로 주둔할 미군은 미2사단이 아니라 용산기지의 경계임무를 맡은 미해병대 병력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미2사단 병력 2만8천3백 명이 2006년 이후에 갈 곳은 어디일까?
 

7. 미2사단과 주한미군사령부는 신속기동군 개편에 따라 해체되는가?
 

부시 정부는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문제를 지금까지 다섯 차례 진행된 이른바 '한·미 동맹정책구상협의회'에서 거론하였다. 그런데 그 회의는 대등한 지위에서 상호협의로 진행하는 동맹회의가 아니다. 그 회의는 겉으로는 동맹국 사이의 군사문제를 협의하는 듯한 외관과 형태를 갖추고, '미래의 주한미군 청사진 공동연구 약정서(TOR)'라는 외교문서를 채택함으로써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문제에 대하여 협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시 정부가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전략을 남(한국) 정부에게 강요하는 목적에서 진행된다.

2003년으로 50년이 된 한·미 군사관계는 미·일 군사관계처럼 정상적인 군사동맹관계가 아니라 군사적 지배·예속관계이므로, 남(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전략문제를 미국 정부와 대등한 지위에서 상호협의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한·미 군사관계에서는, 예전이나 오늘이나 마찬가지로, 미국의 강요와 남(한국) 정부의 복종만이 성립될 뿐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한·미 관계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와 남(한국)의 친미예속의 관계가 아니라 약간 불평등한 관계일 것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한·미 관계가 지배와 예속을 본질로 한다는 사실은 최근에 자주 드러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 추가파병을 결정한 과정에서도 한·미 관계가 지배와 예속의 관계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라크 추가파병과 관련하여 노무현 정부와 부시 정부는 협의형식을 취하였지만, 그것은 기만적인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라크 추가파병문제는 부시 정부의 강요와 노무현 정부의 복종에 의해서 결말을 지었다. 터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같은 미국의 동맹국들은 미국의 파병요구를 거절하고 자기 군대를 보내지 않으려고 버티는 데, 노무현 정부는 미군과 영국군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죽음의 골짜기'로 변한 이라크전선에 보내는 것이다.

한·미 군사관계에서 미국의 강요와 남(한국) 정부의 복종만이 성립된다는 사실은, 얼마 전 일본 오키나와현 지사가 보여준 태도와 남(한국) 대통령이 보여준 태도에서도 드러났다. 2003년 11월 16일 국방장관 럼스펠드가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도착하였을 때, 오키나와현 지사 이나미네 게이치는 럼스펠드를 만나서 40분 동안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이 저지르는 범죄와 환경파괴를 낱낱이 지적하면서 오키나와 미군을 감축하거나 미군기지를 이전하라고 요구하였다. (『뉴욕타임스』 2003년 11월 17일자)

그런데 이튿날 서울에 도착한 럼스펠드를 만난 남(한국) 대통령 노무현은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미군기지를 이전하라고 요구하기는커녕, 주한미군의 범죄와 환경파괴에 대해서도 말 한 마디 하지 못했다. 이것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남(한국)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이 오키나와현 지사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으로서, 남(한국)이 미국의 지배 아래 있음을 입증한 사건이었다.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전략개념에는 용산에 있는 주한미군사령부를 오산기지로 옮기는 문제, 의정부와 동두천에 배치된 미2사단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문제, 그리고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문제가 모두 포괄된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부시 정부는 용산에 있는 주한미군사령부를 오산기지로 옮기는 작업에 이미 착수하였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용산기지는 오래 전부터 외래침략군의 군사적 강점과 지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실물로 존재해왔다. 13세기 고려시대에는 몽골침략군이 그곳에 주둔하였고, 16세기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그곳에 주둔하였다. 예로부터 용산이 외래침략군의 주둔지로 되어왔다는 사실은, 용산기지 안에 있는 야산의 이름이 '둔지산'이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4년 러·일 전쟁을 도발한 일제는 이른바 '한·일 의정서'라는 식민지지배문서를 들이대면서 용산땅 3백만 평을 강탈·점령하였고 그곳에 조선주둔 일본군사령부, 조선총독부 관저, 20사단 사령부를 두었다. 일제는 강탈·점령한 용산땅 가운데 1백15만 평에 1904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침략군 2만 명을 주둔시켰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자, 이번에는 미7사단 병력 1만5천명이 용산기지를 점령했다. 용산기지 안에 있는 벽돌건물 메인포스트(Main Post)는 원래 일제침략군이 군마를 관리했던 건물인데, 미군이 개조하여 50년 동안 주한미군사령부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이미 1990년도에 용산기지를 이전하는 문제에 관하여 이른바 '합의각서(MOA)'와 '양해각서(MOU)'라는 굴욕적인 외교문서를 남(한국) 정부당국과 체결한 바 있다. 그런데 미국의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그 각서에 서명한 뒤에도, 그처럼 굴욕적인 외교문서는 인정할 수 없다는 반발이 남(한국) 정부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이런 정보를 파악한 주한미군사령부는 1991년 5월 13일 주한미군사령부 부사령관 포글먼(Ronald R. Fogleman)을 남(한국) 외무부에 보내서 '합의각서'와 '양해각서'의 합법성을 인정한다는 또 하나의 굴욕문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하였다. 결국 남(한국) 정부는 5월 20일에 열린 이른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하기 위한 합동위원회에서 그 굴욕문서에 서명함으로써 미국에게 다시 무릎을 꿇었다. (『연합뉴스』 2003년 10월 20일자)

부시 정부가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려고 하자, 노무현 정권과 남(한국)의 친미세력은 부시 정부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2003년 11월 19일 남(한국)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한·미 양국이 내년 여름까지 주한미군 감축문제를 논의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 대선을 감안하면 물리적으로 내년 말까지는 주한미군 감축논의가 유보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1-2년간은 주한미군 감축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다만 1-2년 동안만이라도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희망사항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그런 희망이 미국에게 통할 리 없음은 자명하다. 결국 '희망'은 '간청'으로 바뀌었다. 주한미군 소식통에 따르면, 한·미 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신일순은 2003년 12월 1일 주한미군사령관 리언 라포트(Leon J. LaPorte)를 만난 자리에서 주한미군사령부를 계속 서울에 남게 해달라고 간청하였으나 거절당했으며,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12월 8일 남(한국) 국방부는 미8군사령관 찰스 캠벨(Charles C. Campbell)에게 부지면적 20만평을 무상으로 제공하겠으니 주한미군사령부를 옮기지 말아달라고 간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연합뉴스』 2003년 12월 14일자)

남(한국) 국방장관 조영길은 2003년 11월 21일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당소속 국회 국방위원, 통일외교통상위원 연석회의에 참석하여 "현재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와 용산기지 이전 문제, 미2사단 재배치 문제 등 현안에 대해 한·미 양측이 신경전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3년 11월 21일자) 그는 노무현 정부가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전략을 철회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을 한·미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로 왜곡·표현했다.

부시 정부가 해외주둔 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이미 추진하는 조건에서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고 주한미군사령부를 후방으로 옮기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노무현 정권과 남(한국)의 친미예속세력이 주한미군사령부를 계속 서울에 남게 해달라고 부시 정부에게 아무리 간청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주한미군사령부 이전방침을 철회해달라고 간청하는 굴욕적인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부가 오산기지로 옮겨가면 서울에 집중된 북(조선)의 공격목표가 분산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북(조선)은 서울보다는 주한미군사령부가 있는 오산기지를 더 집중적으로 공격하게 될 것이다. 주한미군사령부의 이전은 서울에 대한 집중공격위험을 상대적으로 감소시키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권과 남(한국)의 친미예속세력이 주한미군사령부를 옮기지 말아달라고 간청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그들이 주한미군사령부가 이전하면 주한미군이 감축된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친미예속세력이 주한미군감축을 무조건 반대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이 요구되지 않는다.

남(한국)의 한 언론은 주한미군을 2만 명 정도 감축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사저널』 2003년 11월 27일자) 주한미군 3만7천명 가운데 미2사단 병력은 2만8천3백 명인데, 2만 명을 감축한다면 미2사단 병력은 8천3백 명밖에 남지 않는다. 이것은 사실상 미2사단의 해체를 뜻한다. 따라서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것은 미육군 제2사단(U.S. Army's 2nd Infantry Division)을 해체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신속기동군으로 개편되면서 미2사단이 해체되면, 주한미군기지는 '전진작전기지'라는 이름의 소규모 지원기지로 잔류하게 된다. 미2사단을 개편하여 재구성한 신속기동군은 6개월에 한 차례 남(한국)에 출동하여 기동훈련을 전개하고 돌아가게 된다. 신속기동군은 남(한국)에 배치되는 '주둔군'이 아니라, 명령이 떨어지면 장거리에 출동하기 위해서 남(한국) 이외의 지역에서 대기하는 '원정군'이다. 조선인민군의 군사적 위협과 남(한국)의 반미자주화투쟁의 위협이 날로 커지고 있는 남(한국)에 미국이 '원정군'을 항상 대기시킬 필요는 없으며, 소규모 지원기지와 기동훈련을 지휘하려고 주한미군사령부를 유지할 필요도 없다. 더욱이 신속기동군은 해외주둔 야전사령부의 지휘를 받는 군대가 아니라 미군중앙지휘부의 지휘를 받는 '원정군'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2사단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것은 주한미군사령부의 해체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미2사단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것은 사실상 주한미군 감축과 주한미군사령부의 해체라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된다.

부시 정부가 해외주둔 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한다고 발표하면서 특별히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 신경을 썼던 까닭은, 노무현 정부와 친미예속세력이 그 전략발표를 미2사단과 주한미군사령부를 해체하는 작업에 착수하는 것임을 알아채고 크게 동요할까봐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런 우려는 부시가 해외주둔 미군의 재배치 검토(GPR)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11월 25일에 두 가지 특이한 행동, 예민한 반응으로 나타났다.

1)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관계자들이 워싱턴에 주재하는 남(한국) 언론특파원들을 불러 배경설명을 하였다. 남(한국) 언론은 "미 행정부는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각별히 신경을 썼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관계자들이 한국의 워싱턴 특파원들에게 부시 대통령의 발표와 거의 동시에 배경설명을 한 것도 이례적이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2003년 11월 26일자)

2) 거의 같은 시각, 백악관 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가 청와대 안보보좌관 라종일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설명하였다. 라이스는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에 관한 부시의 공식발표는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에 새로운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였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3년 11월 26일자)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에 관한 부시의 공식발표가 나간 직후,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국방부 언론설명회에서 주한미군 재배치에 관한 내외신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그는 그 질문에 대해서 답변하지 않은 채 부시가 발표한 내용대로만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대결파는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문제에 관해서 말을 매우 아끼고 있다.

부시 정부가 '군사혁신'이라는 전략에 따라서 미2사단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여 남(한국) 이외의 지역에 재배치하고 주한미군사령부를 해체한다고 해도 한(조선)반도 군사상황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주한미군 감축과 주한미군사령부 해체의 가능성에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다음과 같다.

1) 미국은 신속기동군 개편에 따라서 주한미군을 전면적으로 철수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군을 감축하는 것이다. 지상군감축과 전면철수는 전혀 다른 문제다. 지상군감축은 변화되는 정세에 대해 미국이 대처능력을 갖추는 것이고, 전면철수는 미국이 남(한국)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2) 미국이 지상군을 감축하고 주한미군사령부를 해체한 뒤에도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따라서 미국은 각종 군사협의기구를 통하여 한·미 군사동맹체제를 틀어쥐고 남(한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여전히 행사할 것이며, 지배력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3) 미국은 주한미군을 감축하더라도 미·일 동맹군 무력을 증강함으로써 북(조선)에게 계속적으로 전쟁위협을 가할 것이다.
 

8. 남(한국) 민중의 생존권투쟁, 친미예속세력의 동요와 혼란
 

남(한국)에서 자주적 민주정권이 수립되는 과정은, 한·미 사이의 지배·예속관계를 철폐하고 자주권을 확보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민족·계급적 모순이 격화되는 가운데 대중적 지지를 받는 반미자주세력과 민중운동세력이 오랫동안 남(한국)사회를 장악해왔던 친미예속세력과 반민중세력을 약화시키면서 집권하는 과정이다.

반미자주세력과 민중운동세력 대 친미예속세력과 반민중세력의 투쟁이 격렬하게 전개될 때, 미국은 친미예속세력과 반민중세력을 배후에서 조종하면서 기존의 낡은 체제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반미자주세력과 민중운동세력 대 친미예속세력과 반민중세력의 투쟁은, 미국과 친미예속세력의 지배 아래서 자기의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절대다수의 민중이 반미자주화투쟁을 지지함으로써 결국 반미자주세력과 민중운동세력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된다.

최근 천문학적 규모의 불법대선자금을 조성·탕진한 범죄가 드러나고 관련범행자들이 줄이어 구속되는 사태가 일어나면서 한나라당은 부정부패의 소굴로, 청와대는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규탄 받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곤경에 처했고, 한나라당은 위기에 빠졌다. 이것은 한나라당과 청와대로 대표되는 양대 친미예속세력이 동요와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동반추락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이것은 지난 50년 동안 친미예속세력이 독점적으로 장악해온 남(한국) 정치권에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을 예고한다.

친미예속세력이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면서 추잡한 당파싸움에만 매달릴 수록 민중은 그들에게 절망과 분노를 느끼게 되며, 반미자주세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반미자주화투쟁을 동조·지지하게 된다. 미국과 친미예속세력의 지배 아래서 생존권을 위협받는 민중이 반미자주화투쟁을 동조·지지하게 되고 결국 민중 자신이 투쟁의 주체로 나서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것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남(한국)에서 미국 독점자본의 이익과 민중의 이익이 전면적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미국 독점자본이 남(한국)에서 이익을 더 많이 걷어갈수록 노동자와 농민을 포함한 전체 민중은 생존을 위협받게 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생활수준이 나빠진 원인은 실직 25.9%, 매출감소 16.4%, 급여삭감 또는 동결 16.2%, 사업실패 16.2%, 기타 25.3%로 파악되었다. (『연합뉴스』 2003년 12월 5일자) 미국 독점자본과 남(한국) 민중 사이의 민족·계급적 모순은 날로 격화되고 있으며, 양측이 절충·타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의 거대독점자본이 남(한국)에서 자행하는 것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기간산업을 장악·점유하여 천문학적 규모의 이윤을 가져가는 것이다. 아래의 몇 가지 통계자료가 이러한 현실을 말해준다.

남(한국) 경제를 주도하는 10대 그룹의 주식에 대한 외국인 보유액은 2003년 1월 2일에 53조7천573억 원에서 12월 12일 현재 80조9천35억 원으로 늘어났다. 이것은 불과 1년 사이에 50.5%가 늘어난 것이다. 10대 그룹의 시가총액 가운데 외국인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44.4%다. 삼성그룹 54.1%, 현대자동차그룹 44.0%, 롯데그룹 35.1%, 에스케이(SK)그룹 34.7%, 엘지(LG)그룹 27.6%, 한진그룹 27.1%, 현대중공업 20.8%, 한화그룹 17.4%, 현대그룹 12.2%, 금호그룹 1.2%다. (『연합뉴스』 2003년 12월 15일자)

남(한국) 은행권에 대한 외국 금융자본의 지배는 1998년 말 11.7%이었던 지분율이 2003년에는 28.6%로 가파르게 올라간 것만 봐도 심각한 지경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일은행, 외환은행, 한미은행은 이미 외국계은행으로 되었고, 그 밖의 은행들도 외래금융자본이 잠식하는 중이다. 남(한국)은행의 총자산을 기준으로 한 외래금융자본의 은행지배율은 30%인데, 이것은 아시아나라들 가운데 최고로 높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 가운데는 말레이시아가 19%, 필리핀 15%, 태국 7%, 중국 2%를 기록하였다. 남(한국) 금융권에 대한 외래자본의 직접투자액은 1996년도에 19억 달러였는데, 2002년도에는 104억 달러로 크게 늘었다. 2003년 6월말 현재 남(한국) 금융권에 대한 외래자본의 지배율은 은행 26.7%, 증권 30.7%, 생명보험 10.5%, 손해보험 2.0%다. 남(한국)에는 모두 8천335개나 되는 외래독점자본의 직접투자기업이 있는데, 총투자액은 417억 달러다. 재정경제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남(한국)의 국가채무는 2002년 말 현재 236조1천억 원으로 1997년 말에 73조3천억 원이었던 것이 3.2배나 늘었다.

이처럼 미국의 거대독점자본들이 남(한국)에서 막대한 이윤을 가져간 결과, 노동자들에게 남는 것은 대량실업과 절대빈곤밖에 없다. 최근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2년 현재 임시·일용직에 종사하는 불안정 취업자는 912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41%를 차지한다. 도시 가구의 10.1%가 최저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절대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다른 한편, 미국의 거대독점자본은 남(한국)의 농축산물시장을 개방·점유하고 있다. 그 결과 남(한국) 농민들에게는 개방농정의 완전한 파탄과 절대빈곤밖에 주어지는 것이 없다.

실업, 빈곤, 부채에 시달리며 생활고에 짓눌린 민중에게 주어지는 선택권은 범죄, 자살, 이민, 투쟁이다. 남(한국) 사회에서 강도, 절도, 사기, 횡령, 살인, 성폭행, 마약 같은 온갖 흉악한 사회범죄가 극에 달하고 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남(한국) 사회에서는 생활고에 짓눌린 끝에 자기의 삶을 자살로 마감하는 죽음의 행렬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2002년 한 해 동안 자살사망자는 1만3천55명이었다. '한국자살예방협회'에 따르면, 2000년도부터 2003년까지 의정부시 인구에 해당하는 30만-40만 명이 자살을 기도하였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3년 12월 16일자) 남(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29개 나라들 가운데 자살사망 증가율이 가장 높으며, 특히 가장 활기차게 일할 30대와 40대의 자살사망자 수가 전체의 40%를 차지한다. 자살사망자 수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사태로 크게 늘어났고, 2000년까지 다소 줄어드는 듯하다가 2001년부터 다시 늘어났다. (『연합뉴스』 2003년 10월 16일자)

다른 나라로 이민하려는 사람의 수가 크게 늘면서, 이민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되었다. 얼마 전 캐나다 이민정보를 알려주는 텔레비전 방송이 나간 지 20분만에 신청자가 1천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 중에 30대와 4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90%가 되었다. 유학과 연수라는 명목으로 남(한국)을 떠난 젊은이들은 2002년 한 해 동안 34만3천842명이었다. 이처럼 남(한국)에서 살 수 없어서 이탈하는 주민이 너무 많아져서 '탈남자'라는 신조어가 나올만한 지경이다.

최근 남(한국) 민중운동세력의 반미·계급투쟁이 차츰 고조되고 있다는 사실은 노동자대회나 농민대회에 참가하는 대중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데서 입증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03년 1월부터 11월까지 경찰이 민중운동세력의 투쟁현장에서 검거한 사람은 모두 8천260명인데, 그 가운데서 343명이 구속되었고 4천825명이 불구속 입건되었다. 2002년도와 비교하여 검거인원은 7.9%, 구속인원은 13.9%가 늘어났다. (『연합뉴스』 2003년 12월 14일자)

자기의 생존권을 위협받는 민중은 자기에게 고통과 시련을 강요하는 낡고 썩은 사회를 뒤집어엎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투쟁에 나서게 된다. 남(한국) 민중이 반미자주세력과 민중운동세력의 투쟁을 동조·지지하다가 결국 그 자신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투쟁에 나설 때, 미국과 친미예속세력은 패할 것이며, 그 결과 반미자주세력과 민중운동세력이 집권하여 자주적 민주정권을 수립하게 될 것이다. 자주적 민주정권은 반미자주세력과 민중운동세력의 전략적 승리로 수립된다. 남(한국)에서 자주적 민주정권이 수립되는 것은, 민중의 생존권을 짓눌러온 반민중적인 정권이 자주적 민주정권에 의해서 대체된다는 뜻이며, 동시에 한·미 관계를 지배·예속관계로 유지시켜온 한·미 동맹체제가 자주적 민주정권에 의해서 해체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남(한국)에서 반미자주화투쟁이 확산될 가능성에 대해서 미국은 아무 것도 대비하지 않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남(한국)에서 반미자주세력이 반미자주화투쟁을 확산시키는 것은 주한미군철수운동에 대한 대중적 지지기반이 확대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미국이 남(한국)에서 반미자주화투쟁이 확산될 가능성에 대해서 대비하는 것은 곧 주한미군철수운동의 확산에 대비한다는 뜻이다.

조·미 정치회담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워싱턴에서는 주한미군 철수여론이 조성되고, 북(조선)은 철수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점은 위에서 논한 바 있는데, 남(한국)에서 확산되는 주한미군철수운동은 그러한 철수여론과 철수압력과 만나면서 동반상승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 세 가지 흐름의 동반상승력은 주한미군에 대한 강력한 철수압력이다. 그와 같은 강력한 철수압력이 가해질 때, 미국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게 된다.

철수압력이 발생할 상황에 대비하여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할 준비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고 주한미군사령부를 오산기지로 이동·배치하는 것은 그러한 준비태세가 된다.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고 주한미군사령부를 오산기지로 이동·배치하는 것은 원래 '군사혁신'이라는 전략에 따라서 추진되는 것이지만, 철수압력에 대한 준비태세를 갖추는 의미도 포함한다.

중무장한 주한미군은 철수하는 작업이 복잡하고 힘들어서 미국 대통령의 철수명령이 떨어져도 2년에 걸쳐 철수해야 한다. 철수기간이 2년이나 되면, 그 기간에 철수압력이 가중될 경우 미국은 어떤 곤경에 빠질지 모른다. 기계화여단과 보병여단으로 구성된 미2사단이 남(한국)에서 철수하는 시간은 2년 정도지만, 신속기동여단은 남(한국) 이외의 지역에 대기하고 있으므로 철수문제를 해결해야 할 부담이 없으며, 남(한국)에서 기동훈련을 실시하는 신속기동여단에 철수명령이 떨어지는 경우, 몇 일 안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함으로써 미국은 한(조선)반도 정세의 근본적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미국이 대처하는 한(조선)반도 정세의 근본적 변화라는 것은 한(조선)반도 통일의 실현이다.

그렇다면 한(조선)반도 통일을 실현하는 문제와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문제는 어떻게 연관되는 것일까? 얼른 생각하면 관련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분석해보면, 겉에서 보이지 않은 내적 연관성이 드러난다. 그 내적 연관성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한(조선)반도 통일이 실현되려면 두 가지 선결문제가 풀려야 한다. 두 가지 선결문제란, 조·미 관계가 정상화되는 것과 남(한국)에 자주적 민주정권이 수립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선결문제는 상호연동되면서 해결되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나의 글에서 논했으므로 설명을 생략한다. 남(한국)에 자주적 민주정권이 수립되는 문제에 관해서는 앞에서 논했으므로, 여기서는 조·미 관계가 정상화되는 문제를 논한다.

예상하는 대로, 조·미 관계가 정상화되는 것과 더불어 워싱턴, 평양, 서울에서는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요구와 압력이 크게 가중될 것이다. 미국 정부가 워싱턴, 평양, 서울에서 한꺼번에 발생하는 철수여론과 철수압력에 버티면서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조·미 관계가 정상화되기 이전에 미2사단은 이미 신속기동군으로 개편되어 남(한국) 이외의 지역에 대기할 것이므로, 철수여론과 철수압력은 남(한국)에 잔류하는 미군에 집중될 것이다. 그것은 잔류미군의 완전철수를 뜻한다. 잔류미군의 완전철수는 곧 한·미 연합군사령부의 해체를 뜻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조·미 관계 정상화의 실현은 주한미군의 완전철수와 한·미 연합군사령부의 해체를 촉진할 것이다.

잔류미군이 완전히 철수하고 한·미 연합군사령부가 해체되는 것은 미국이 남(한국)에 대한 지배력을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미국의 지배력 상실은 곧 남(한국)에서 친미예속세력이 약화되면서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한(조선)반도 통일의 역사적 임무는 자주적 민주정부에 의해서 완수된다.

주목할 것은, 미국이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것이 한(조선)반도 통일을 실현하는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조선)반도 통일을 실현하는 것은 한(조선)민족이 주체역량을 발휘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것은, 한(조선)민족의 주체역량이 실현하는 한(조선)반도 정세의 근본적 변화, 곧 한(조선)반도의 통일실현에 대해 미국이 대처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것은 미국이 한(조선)민족의 자주화와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예견하면서 대처능력을 준비하는 조치다.
 

9. 글을 마치며
 

주체적 정세관은 제국주의세력의 지배와 침탈로부터 자기의 존엄과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한(조선)민족의 눈으로 정세를 읽는 정세관이며,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남(한국) 민중의 눈으로 정세를 읽는 정세관이다.

남(한국) 민중이 자기의 생존권을 쟁취하는 투쟁은 제국주의세력의 지배와 침탈을 반대하는 한(조선)민족의 자주권투쟁과 결합되는 하나의 통일된 투쟁이다. 그 두 가지 투쟁이 하나의 통일된 투쟁으로 결합되는 까닭은, 남(한국) 민중이 제국주의세력의 지배와 침탈에서 벗어나서 자주적으로 살아갈 때, 한(조선)민족의 자주권이 완전히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민중의 투쟁은 곧 자주권을 쟁취하기 위한 민족의 투쟁이다.

이 글에서 나는 부시 정부의 반테러전쟁전략과 사회주의말살정책이 어떻게 작동하며, 주한미군사령부를 옮기고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는 저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짚어보면서, 자주권을 쟁취하기 위한 한(조선)민족의 투쟁이 전개되는 현실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날로 강화되는 남(한국) 민중의 생존권투쟁을 보면서, 그 생존권투쟁이 한(조선)민족의 자주권투쟁과 결부되어 있음을 논했다.

주체적 정세관을 세우지 못하면, 미국의 반테러전쟁전략과 사회주의말살정책의 추진, 친미예속세력의 동요와 혼란 따위들만 크게 확대되어 보일 뿐, 한(조선)민족의 자주권투쟁과 남(한국) 민중의 생존권투쟁은 하찮은 것으로 축소되어 보인다. 한(조선)민족의 자주권투쟁과 남(한국) 민중의 생존권투쟁이 정세를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세를 움직이는 주체가 누구인지 모르는 무지몽매함에 의해서 발생되는 몰이해다. 정세에 대한 몰이해는 언론에 의해서 확대재생산되어 이른바 '정설'로 굳어진다.

그러나 한(조선)민족의 자주권투쟁과 남(한국) 민중의 생존권투쟁을 중심에 놓고 정세를 인식해야 정세의 본질이 파악되고 사회역사발전의 미래가 보인다. 주체적 정세관은 한(조선)민족의 자주권투쟁과 남(한국) 민중의 생존권투쟁이 2004년 새해에 더욱 힘있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한다.

민족의 힘과 민중의 힘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그 힘의 작용은 정세를 움직이고, 그 힘의 분출은 역사를 진보의 길로 떠밀고 간다. 7천만 겨레는 그 진보의 길에서 통일된 자주강국의 미래를 만난다. (2003년 12월 3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