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민보  10월 16일)

 

황장엽 방미와 미국의 속셈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이 글은 서울에서 발행되는 '인터넷 자주민보' (www.jajuminbo.net) 2003년 10월 16일자에 실린 기고문이다.

올해 가을 황장엽의 방미가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디펜스포럼재단(Defense Forum Foundation)의 초청으로 오는 10월 27일 미국에 올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황장엽의 방미문제에 관여하는 세력들은 연방의원들, 연방정부기관, 극우성향의 민간단체들, 그리고 극우성향의 언론기관들이다. 이 '4자 반북(조선)동맹'은 오래 전부터 황장엽을 미국에 불러오기 위해 힘써온 끝에 이번에 황장엽을 미국에 초청하게 되었다. 그 내막은 다음과 같다.

누가 황장엽 방미 추진하였는가

우선 워싱턴 정가에서 황장엽의 방미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연방의원들이 눈에 띈다. 그들은 반북(조선)정치인으로 분류된다. 연방상원의원들 가운데 황장엽의 방미문제에 관여한 사람은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위원장 크레이그 토머스(Craig Thomas)와 그 위원회 소속의 샘 브라운백(Sam Brownback), 그리고 법사위원회 소위원회 위원장 에드워드 케네디(Edward Kennedy)다. 연방상원의원들 가운데 황장엽의 방미문제에 가장 열을 냈던 사람은 얼마 전 정계를 은퇴한 제시 헬름즈(Jessie Helms)였다.

연방의원들이 황장엽의 방미문제에 처음으로 나섰던 때는 2000년 11월이었다. 당시 연방상원 외교위원장이었던 제시 헬름즈가 황장엽의 방미초청장을 워싱턴의 남(한국)대사관에게 전달했다. 제시 헬름즈가 황장엽의 방미문제에 나서기 2년 전인 1998년부터 그가 위원장으로 있는 연방상원 외교위원회는 이른바 '탈북자'들을 불러들여 청문회를 열었다. 1998년 2월 25일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산하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청문회는 처음으로 '탈북자'들을 출석시켜 북(조선)의 '인권문제'에 관하여 발언하게 하였으며, 그 위원회는 이듬해 4월 22일에도 '탈북자'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북(조선)의 '인권문제'에 관한 청문회를 열었다.

반북(조선)성향의 연방의원들이 황장엽 방미문제에 더욱 본격적으로 나선 때는 2001년이었다. 2001년 6월말, 연방하원 국제관계위원장 헨리 하이드(Henry J. Hyde)와 정책위원장 크리스토퍼 콕스(Christopher Cox)는 황장엽을 연방하원에 초청하는 초청장을 보냈다. 7월 11월에는 연방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산하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인 짐 리치(Jim A. Leach)의 측근이 김대중 정부가 황장엽 방미를 계속 가로막을 경우 전체 하원의원 명의로 결의안을 채택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황장엽의 방미문제를 외교문제로 비화시키려는 의도를 내비치기도 하였다. 9월 27일 제시 헬름즈는 또 다시 황장엽에게 초청장을 보냈고, 12월 19일 크리스토퍼 콕스와 헨리 하이드는 국무장관 콜린 파월(Colin L. Powell)에게 황장엽의 방미가 성사되도록 김대중 정부에게 압력을 가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2002년 5월 연방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산하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는 북(조선)의 '인권문제'에 관한 청문회를 열고 '탈북자'의 발언을 들었다. 6월 21일에는 연방상원 법사위원회 소위원회 위원장 에드워드 케네디가 북(조선)의 '인권문제'에 관한 청문회를 열고 '탈북자'의 발언을 들었다.

이처럼 연방의원들이 황장엽의 방미문제에 나서게 된 원인들 가운데 하나는, 의회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민간단체인 디펜스포럼재단으로부터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반북(조선)성향의 연방의원들과 극우성향의 디펜스포럼재단은 황장엽 방미문제와 관련하여 서로 결탁하였던 것이다.

황장엽의 방미문제에 끈질기게 매달리고 있는 디펜스포럼재단은 어떤 단체일까? 그 단체는 테러와 대량파괴무기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방위하는 문제와 국제사회의 인권문제를 다루는 극우성향의 민간단체다. 이 단체의 이사장은 해군사령관 출신인 윌리엄 미든돌프(J. William Middendorf) 2세이며, 부이사장은 공군사령관 출신인 타이들 맥코이(Tidal W. McCoy)다. 황장엽의 방미문제에 발벗고 나선 수잔 숄트(Suzanne Scholte)라는 여성은 그 단체의 회장이다. 디펜스포럼재단이 민간차원에서 정치공세를 집중하고 있는 나라는 북(조선), 중국, 러시아, 쿠바다. 그 단체는 두 달에 한 차례씩 연방의회에서 국가안보문제와 관련한 설명회를 개최하는 사업(Congressional Defense and Foreign Policy Forum)을 추진하고 있다.

그 단체는 1997년에 서울의 '북한인권시민연합'(이사장 윤현)과 연대하여 워싱턴에서 '탈북자' 문제를 선동하던 중, 5월에 황장엽의 방미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단체는 1999년 7월에 다시 황장엽의 방미를 추진하였으나, 통하지 않자 반북(조선)성향의 연방의원들을 동원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제시 헬름스, 헨리 하이드, 크리스토퍼 콕스 같은 연방의원들이 동원대상이었다. 2001년 6월 디펜스포럼재단은 회장인 수잔 숄트의 이름으로 된 초청장을 황장엽에게 보냈다. 올해 8월 15일에도 황장엽에게 초청장을 또 보냈다.

미국의 헛슨연구소(Hudson Institute)와 전국민주주의재단(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도 탈북자들을 초청하여 북(조선)의 '인권문제'를 부각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헛슨연구소에서는 지난 7월 23일에서 '국제종교자유문제 및 시민정의개혁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선임연구원 마이클 호로윗츠(Michael Horowitz)가 김덕홍의 방미초청장을 보냈다.

지난 6월 26일 워싱턴에서는 극우성향의 단체들 20여 개가 모여 '북(조선)자유연합'이라는 협의체를 결성하였다. 이 협의체를 주도하는 것은 디펜스포럼재단과 헛슨연구소다. 이 협의체는 북(조선)에 대한 경제지원문제와 북(조선)의 인권문제를 연계하는 내용의 '한(조선)반도 안보 및 민주법안'(가칭)을 연방의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 연방정부기관들 가운데 황장엽의 방미문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기관은 없을까?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 Commision on 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가 눈길을 끈다. 이 위원회는 1998년에 제정된 국제종교자유법에 의해서 창설된 연방정부기관으로서, 미국 대통령, 국무장관, 의회에 정책건의서를 제출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2000년 12월초 북(조선)에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한 클린턴의 평양방문을 반대한다는 건의서를 백악관에 제출하였다. 2002년 1월 24일 이 위원회의 부의장 마이클 영(Michael K. Young)은 연방하원 상임위원회 청문회에서 '탈북자'들의 발언을 듣고 북(조선)의 '인권문제'를 논의하였다.

지금까지 '탈북자'들을 워싱턴에서 직접 만나 북(조선)의 '인권문제'를 논의했던 미국 연방정부관리들은 국무부의 민주·인권·노동담당 차관보 론 크레이너(Lorne W. Craner)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코리아·일본담당 보좌관 마이클 그린(Michael J. Green)이다.

때에 따라 황장엽의 방미문제를 다루고 있는 미국언론은 월 스트릿 저널(Wall Street Journal), 워싱턴 타임스(Washington Times), 자유아시아 방송(Radio Free Asia), 프리덤 리뷰(Freedom Review), 생명과 인권(Life and Human Rights) 같은 극우성향의 언론매체들이다.

황장엽의 방미문제는 조·미 관계를 자극할 수 있는 예민한 정치문제이므로 한·미 정부차원에서 최종적인 해결을 보아야 하는데, 남(한국)정부는 황장엽의 방미문제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여왔을까? 주목할만한 것은 김대중 정부 시기에는 황장엽의 방미가 가로막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2002년 1월 김대중 정부의 한 당국자가 언론에게 말했던 것에서 확인된다. 그는 "이미 망명한지 오랜 시간이 지난 황씨가 알고 있는 정보는 모두 노출돼있는 상황에서 황씨의 방미는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고 하면서 "황씨의 방미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현 시점에서는 일부 미국 의원들의 방미초청에 응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당시에는 미국 국무부도 김대중 정부와 마찬가지로 황장엽의 방미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2002년 1월 10일 미국 국무부는 의회담당 차관보 폴 켈리(Paul V. Kelly)의 이름으로 된 서한을 크리스토퍼 콕스와 헨리 하이드에게 보내면서 황장엽의 미국여행에 요구되는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김대중 정부에게 권유(encourage)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국무부는 황장엽의 방미문제는 김대중 정부가 결정할 일이라고 보면서 그 문제에 개입하기를 꺼려하였다.

그런데 2003년에 들어오면서 황장엽의 방미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다. 한·미 두 정부기관들이 황장엽의 방미를 허락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것이다. 지난 4월말 국정원은 황장엽의 방미를 추진하고 있는 재미목사 유천종에게 보낸 서한에서 국정원이 황장엽을 미국에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통보하면서, 황의 방미에 앞서 미국 국무부의 신변안전담보서한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국정원은 지난 8월 1일 황장엽을 국정원이 관리하는 특별보호대상에서 경찰청이 관리하는 일반보호대상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황장엽이 지난 3월 7일에 신청하였던 여권을 6개월이 지난 9월 2일에 단수여권으로 발급하도록 관계기관에 조치하였다.

지난날 김대중 정부는 황장엽의 방미를 가로막았으나, 오늘 노무현 정부는 그의 방미를 허락하였다. 미국 국무부도 이전에는 황장엽의 방미를 허락하지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는 허락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왜 일어난 것일까?

황장엽 입 빌어 북 압살하려는 미국의 속셈

나는 한·미 정부기관들이 올해 이처럼 태도를 바꾼 원인을 조·미 관계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3년은 북(조선)이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고, 폐연료봉을 꺼내서 재처리하고, 영변 핵시설의 봉인을 뜯고 다시 가동하고, 미국과의 협상에서 핵무기 보유를 통보하는 등의 맹렬한 정치공세를 퍼붓고 있는 시기다. 그렇게 하는 사이에 베이징에서 시차를 두고 3자회담과 6자회담이 열리기도 했으나 문제해결의 돌파구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 북(조선)은 조·미 정치협상을 회피하면서 시간이나 끌어보려고 하는 부시 정부에게 강한 압박공세를 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형편이다. 내년으로 넘어가면 미국의 정치권이 대통령선거국면에 접어들기 때문에 조·미 정치협상을 추진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내년 상반기를 넘기지 말고 미국을 조·미 정치협상에 끌어내어 핵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 북(조선)의 생각이다.

요즈음 북(조선)이 핵억제력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가운데, 지하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한 것은 그러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북(조선)은 미국이 자의적으로 그어놓았던 '핵문제의 한계선'을 짓밟으면서 미국을 괴롭혔으며, 이제는 지하핵실험이라는 최후의 한계선을 무너뜨리려고 벼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부시 정부가 이제 더 이상 핵문제를 가지고서는 북(조선)과 대결하기 힘든 막다른 골목으로 밀려나고 말았음을 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시 정부가 맹공을 가하고 있는 북(조선)을 상대로 대응할 수 있는 책략은 무엇일까? 그것은 핵문제가 아니라 '인권문제'다. 북(조선)의 '인권문제'를 들고 나와서 대응공세를 가해보겠다는 것이 미국의 속셈이다.

황장엽은 바로 그러한 미국의 속셈에 잘 맞아떨어지는 인물이다. 제네바 기본합의가 완전히 파탄되고 북(조선)이 지하핵실험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워싱턴에 나타난 황장엽이 북(조선)의 핵문제에 관해서 떠들만한 것은 별로 없다. 사실 그는 핵문제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사람이다. 황장엽을 워싱턴에 불러들이고 있는 반북(조선)세력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은 북(조선)의 '인권문제'를 떠들어서 자기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달라는 것이다.

황장엽의 방미행각 시나리오는 워싱턴의 반북(조선)세력에 의해서 이미 작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말한 '4자 반북(조선)동맹'은 그 시나리오에 따라 북(조선)이 세계에서 가장 악질적인 인권탄압국이라는 조작된 정보를 워싱턴 정가와 미국 언론계에 퍼뜨리기 위해서 황장엽의 입을 실컷 이용할 것이다. 연방의회 청문회의 '증언'이라는 형식을 빌러 황장엽의 입을 열게 할 것이므로 황장엽의 발언내용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갈 것이다.

미국의 반북(조선)세력이 북(조선)의 '인권문제'를 가지고 반북(조선)공세를 취하기를 고대하고 있는 또 다른 세력은 일본의 반북(조선)세력이다. 일본 외무성 부상인 야노 테추로는 지난 7월 4일 황장엽의 일본방문을 위해 남(한국)정부에 협조를 요청하였다. 중의원 안전보장위원회와 초당파 의원회인 '납치의원연맹'이 황장엽의 일본방문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민간단체로서는 기업인들의 모임인 아시아태평양연구회가 지난 5월에 황장엽을 초청하였으며, '납북피해자가족회'도 적극적이다.

황장엽의 방미는 북(조선)을 '인권탄압국'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새로운 반북(조선)공세의 신호탄이다. 그 신호탄이 터지면 지금까지 북(조선)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던 미국의 다종다양한 극우세력들이 워싱턴의 반북(조선)세력과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덤벼듦으로써 조·미 대결은 '인권문제'까지 뒤엉킨 더욱 복잡한 국면으로 들어설 것이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새로운 반북(조선)공세의 신호탄을 터뜨림으로써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교란시키려는 워싱턴의 반북(조선)세력의 요구에 대해서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노예처럼 굴종하고 있다. (2003년 10월 9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