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권) 중에서


제1장 통일적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의 길에서

1.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기발아래

 《서울신문》 기자들의 감격 

해방후 미제의 남조선강점으로 하여 빚어진 혼란된 남조선정세는 통일적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해 남조선인민들을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기발아래 하나로 굳게 묶어세우는데서 언론이 시대의 선구자, 정의와 진리의 전파자, 사회여론의 대변자로서의 본분을 다할것을 요구하고있었다.

바로 그무렵 서울에 있는 김일성장군환영준비위원회와 서울신문사에는 해방된 조선이 나아갈 길이 어떤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바라는 편지를 보내오거나 전화를 걸어오는 일이 수없이 많았다. 특히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사진을 신문에 모셔달라는 편지가 매일 수십, 수백통씩 날아들고있었고 새로운 소식이 없는가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있었다.

그런 속에 1945년 12월말 홍명희선생을 비롯한 김일성장군환영준비위원회성원들은 서울시인민위원회 2층회의실에 모여 당시의 남조선민심의 흐름에 해답을 줄수 있도록 김일성장군님께 기자들을 보내기로 락착지었다. 여기에 홍명희선생이 사장으로 있고 그의 큰아들인 홍기문이 주필 겸 편집국장직을 맡아보고있는 서울신문사의 정치부 기자 서병곤과 다른 한명이 뽑히였다.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기 위해 서울을 떠난 그들이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눈길을 헤치며 38°선을 넘어선것은 해방년의 마지막달도 저물어가던 12월 28일 새벽녘이였다.

눈보라치는 밤에 외투도 입지 못한 몸이였으나 그들은 추위를 느끼지 못하였다. 우리 민족이 낳은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오러 간다는 기쁨과 흥분으로 몸과 마음은 후덥기만 하였다.

다음날인 12월 29일 서병곤기자일행은 아침 일찌기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청사로 찾아갔다.

일군의 안내를 받으며 2층 복도를 지나 수령님께서 계시는 방을 향해가는 그들의 가슴은 무어라 형언할수 없는 흥분으로 하여 몹시도 높뛰였다.

환하게 웃으시며 마중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뵈옵는 순간 그들은 거대한 태양의 인력에 끌리는듯 한감을 느끼였다.

겨울바람에 차겁게 얼어든 그들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신 수령님께서는 38°선을 넘을 때 위험하지 않았는가, 숙소는 어데다 정했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먼길을 떠났던 자식들을 맞이하는 어버이의 목소리처럼 정답게 울려오는 수령님의 그 음성에 서병곤기자는 금시 어린 소년의 심정이 되여 마음속으로 수백번이고 외워본 인사의 말씀을 올리였다.

《장군님, 나라를 찾기 위해 일제와 싸우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장군님의 조국개선을 저희들, 남조선인민들은 진정으로 기뻐하고있습니다. 장군님! 남조선인민들의 뜨거운 인사를 전합니다.》

그러자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당신들은 내가 조선독립을 위하여 일제와 오래동안 싸우느라고 많은 고생을 하였겠다고 하였는데 별로 고생한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손에 무장을 잡고 일제와 싸운것은 조선의 아들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한것입니다. 나의 고생보다 악독한 일제의 학정밑에서 시달린 우리 동포들의 고생이 더 심하였습니다. 나는 일본제국주의자들과 싸우면서 언제나 동포들이 겪고있는 고통과 불행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보고 장군님이라고 하는데 그저 동무라고 불러주기 바랍니다.》

일찌기 항일의 길에 나서신 첫날부터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수십성상 눈보라만리, 혈전만리를 헤쳐오신 해방의 은인이신 김일성장군님의 이처럼 겸허하신 말씀은 진정 그들로 하여금 눈시울이 뜨거워지게 하였고 그이에 대한 매혹으로 가슴설레이게 하였다.

(진정 우리 민족이 운명을 맡길 위인이시구나.)

한없는 감동에 휩싸여있던 서병곤기자의 눈앞에는 서울을 떠나올 때 자기의 손을 꼭 잡으며 따라서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남조선인민들모두의 심정을 담아 위대한 수령님께 간절히 말씀올리였다.

《지금 남조선인민들은 장군님께서 개선하시였다는 소식을 듣고 무한한 기쁨에 휩싸여있으며 하루빨리 서울로 오실것을 몹시 기다리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 언제 서울에 오실수 있겠습니까?》

그의 말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참동안 묵묵히 창밖을 내다보시며 깊은 생각에 잠기시는것이였다. 이윽고 그들에게로 눈길을 돌리신 그이께서는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해방된 조국땅에서 그립던 동포형제자매들과 만난 나의 기쁨은 한량없습니다. 내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서울로 가서 남조선동포들을 만나보고싶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정세가 그것을 허락치 않습니다. 우리 조국은 남북으로 갈라져있으며 남북조선에는 판이한 정세가 조성되여있습니다. …

나라가 해방되였는데도 그리운 남조선동포들을 만나보지 못하는것이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남조선동포들과 만날수 없지만 남북의 겨레들이 서로 만나게 될 그날은 반드시 올것입니다.》

잠시 말씀을 끊으시고 연필 한끝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시던 그이께서는 이윽고 남조선정세며 인민들의 생활형편에 대하여 자세히 물으시였다.

그들은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남조선정계의 실태와 인민들의 동향에 대하여 알고있는대로 말씀드리였다. 박헌영이 미제를 《해방자》라고 하면서 남조선인민들속에 환상을 조성하고있는 사실을 말씀올렸을 때 수령님의 안광에서는 순간 섬광이 번쩍이는듯 하였다.

《남조선인민들은 해방된 조선이 어느 길로 나가야 할지 잘 알지 못하여 좌왕우왕하고있습니다. 남조선인민들은 조선혁명의 옳바른 로선을 밝혀주실분은 오직 장군님뿐이시라고 생각하고있습니다. 저희들은 이번에 서울을 떠날 때 장군님을 찾아뵈옵고 조선이 나아갈 길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가지고 오라는 인민들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장군님, 앞으로 조선은 어느 길로 나가야 하며 우리들은 어떻게 투쟁하여야 하겠습니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을 받으시고 일제의 식민지통치기반에서 해방된 우리 나라가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할것인가 하는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라고 하시였다. 그러신후 수령님께서는 민족반역자인 리승만은 해방된 우리 나라에 부르죠아공화국을 수립하려 하고있다, 이것은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비롯한 반동분자들을 비호하며 그들을 중심으로 하여 반인민적인 정부를 세우려는 미국의 야망을 드러내놓은것이다, 《부르죠아공화국로선》은 우리 인민에게 또다시 식민지노예의 멍에를 들씌우며 빈궁과 무권리를 가져다주는 암흑의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그 길을 걸을수 없다고 단호한 어조로 언명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렇다고 하여 지금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것처럼 사회주의혁명의 구호를 들고 당장 그 길로 나아갈수도 없다, 그들이 주장하는 사회주의혁명의 길은 우리 나라의 현실적조건을 고려함이 없이 혁명의 단계를 뛰여넘으려는 좌경적인 길이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하겠습니까? 우리 나라는 장기간 일제식민지통치하에 있었으며 오늘 조선사회는 일제잔재와 봉건잔재를 다분히 가지고있는 사회입니다. 그러므로 해방된 우리 인민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여야 하며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설하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먼저 각계각층의 모든 애국적민주력량을 망라하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굳게 형성하여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전체 인민이 굳게 뭉쳐 새 조선건설에 떨쳐나선다면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비롯한 모든 반동분자들을 숙청하고 민주주의 새 조선을 성과적으로 건설할수 있을것입니다.》

기자들은 그이의 현명하고 심오한 가르치심에 막혔던 가슴이 후련해지는감을 느꼈다. 실로 암흑속에서 헤매다가 밝은 해빛을 본듯 앞이 환히 트이는 격동적인 순간이였다. 정말이지 김일성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만 한다면 무슨 일이든지 거침없이 해낼것만 같았다.

이러는 사이에 퍼그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기자들은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장군님을 만나뵙겠는가고 생각하며 또다시 장군님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에 대하여 말씀해주실것을 간청하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별로 자랑할만 한것이 없다고, 그러나 오랜 기간에 걸친 항일무장투쟁행정에 우리는 수많은 전투도 하고 지하정치공작도 하면서 여러가지 일들을 체험하였다고, 그 이야기를 꼭 들어야 하겠다면 나와 함께 투쟁한 동무들을 만나도록 해주겠으니 그들에게서 듣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전체 조선인민이 항일의 전설적영웅으로 한결같이 숭앙하는 장군님의 그처럼 겸허하신 인품에 감동을 금치 못하던 그들은 돌아가서 장군님을 만나뵈온 진상을 사실그대로 신문에 쓰겠다고 말씀드리고는 《장군님의 사진을 한장 주실수 없겠습니까?》라고 청을 드렸다.

《사진은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내가 무슨 한 일이 있다고 신문에 사진을 다 내겠습니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좀체로 그들의 청을 들어주려 하지 않으시였다.

그들이 거듭 간청하자 그이께서는 《사진이 정 요구된다면 있는가 알아보고 주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고는 조용히 웃으시였다.

그들은 《장군님께서 남조선인민들에게 전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라고 다시 청을 올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신들이 남조선에 돌아가면 인민들에게 나의 열렬한 인사를 전하여주기 바란다고, 나의 몸은 비록 여기에 있으나 마음은 언제나 남조선인민들과 함께 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남조선동포형제자매들에게 통일적민주주의정부를 하루빨리 수립하기 위하여 힘차게 싸워달라는것을 전하여주기 바랍니다.》

이날 수령님께서는 해방된 새 조선의 기자들은 어디까지나 인민의 편에 서서 인민대중의 리익을 위하여 복무하여야 하며 국내외의 온갖 반동분자들을 반대하여 견결히 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당부하시였다.

《기자들은 방관자의 립장에서 글을 쓸것이 아니라 조국과 민족의 리익을 위하여 글을 써야 하며 허위와 과장을 배격하고 진실을 보도함으로써 대중을 정치적으로 각성시켜 혁명투쟁에로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실로 기자의 직분과 언론의 본분을 자각하게 하는 귀중한 가르치심이였다. 하기에 이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고귀한 말씀 한마디한마디를 놓칠세라 또박또박 적어나갔다.

담화가 끝나자 수령님께서는 몸소 계단까지 나오시여 그들을 바래주시였다.

그후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사진을 받았고 안길을 비롯한 여러 항일투사들을 만나서 항일무장투쟁을 승리에로 조직령도하신 김일성장군님의 천재적인 전략전술과 위대한 풍모에 대한 이야기를 감명깊게 들을수 있었다.

평양에 머무른지도 1주일이 되는 다음해 1월초 어느날 오후 한시가 좀 지나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객지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그들이 집생각이 나서 쓸쓸히 지낼것 같으시여 친히 그들을 댁으로 불러주시였다.

떠나기에 앞서 때마침 인사를 올리려던 서병곤일행은 너무나도 기뻐 어쩔줄 몰라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저택의 문밖에까지 나오시여 그들을 맞아주시였다. 그이의 손길에 이끌리여 방안에 들어선 기자들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키낮은 책상, 그옆에 나란히 놓여있는 책장과 신문걸개, 이것이 가구의 전부였기때문이였다.

그이께서는 《방이 추운데 이리 가까이 오시오. 더운데 있던분들이 어디 견딜만 합니까?》라고 하시며 그들을 방 한복판에 놓인 화로곁으로 안내하시였다.

기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자기 집에서처럼 스스럼없이 화로곁에 둘러앉았다.

잠시후 점심상이 들어왔다. 차려들여온 점심상이란 온반 한그릇에 동치미 한보시기가 전부였다. 기자들은 그 검소함에 가슴이 뜨거워올랐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그들이 떠나갈 시간이 왔다.

현관앞까지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울먹거리며 작별의 인사를 올리는 그들의 손을 굳게 잡아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아무래도 밤에 넘어야 할텐데 조심들 하시오. 요새 날씨도 찬데…》라고 말씀하시며 먼길을 떠나는 자식을 념려하시듯 그들을 한참이나 눈여겨보시였다.

그들과 헤여지신 후 수령님께서는 그들이 입고있던 옷차림이 마음에 걸리시여 털외투와 털신을 보내주시였다.

그들은 어버이의 크나큰 은정이 담긴 폭신한 털외투와 털신으로 몸을 감싸고 서울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며칠후인 1월 10일 《서울신문》은 위대한 장군님의 영상사진을 정중히 모시고 《우리의 영웅 김일성장군》이라는 표제아래 이렇게 전했다.

《해방의 해, 1945년도 저무는 12월 29일, 평양시 해방동 모처-아침해빛이 밝게 비치는 방, 지금 기자는 우리 민족이 낳은 군사적천재-청년영웅인 김일성장군과 대하고있다.

일찌기 일본제국주의의 압제아래 우리 민족이 암담하였던 경지에 빠져있을 때 김일성장군의 존재는 그 이름과 같이 민족의 태양이였고 희망이였다.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그 이름아래 용기를 얻었으며 위대한 투쟁에로 궐기하였던가!》

평양에 왔던 기자들은 이렇게 시작하여 그이를 만나뵈온 인상으로부터 그이의 혁명투쟁내용과 위인적풍모, 뜨거운 덕망에 대하여 격찬한 다음 이렇게 끝을 맺었다.

《전야의 천재, 김장군은 지금 하나의 시민으로서 민중의 품안에 있다.

젊은 예지와 용기가 앞으로 민족발전에 어떻게 표현될는지 조선의 관심이 아니면 안된다.》

신문이 인민들속에서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던 그날 서병곤기자는 김일성장군님에 대하여, 그이께서 밝혀주신 새 조국건설의 앞길에 대하여 다소나마 전해주었다는 기쁨에 온밤 잠을 이룰수 없었다.

그들의 회견기는 조선인민당기관지 《조선인민보》, 서울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월간잡지 《신천지》에도 실렸다.

그후 1947년 9월 서병곤기자는 사선을 헤치고 경애하는 수령님의 품을 찾아 북반부로 들어왔다.

평양을 찾아왔던 《서울신문》 기자들을 만나시여 하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가르치심은 남조선언론인들에게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기치하에 광범한 대중을 묶어세워 통일적자주독립국가건설에로 힘있게 추동해나가야 할 참다운 언론인의 사명을 깨우쳐주고 해방조선의 앞길을 밝혀줄것을 갈망하는 남조선인민들에게 새 조국건설의 앞길을 밝혀준 고귀한 지침이였다.

해방년의 마지막나날로부터 해방조선이 맞이한 첫 새해의 날들에 남조선인민들을 위해 육친의 사랑과 정을 바치시며 조국의 미래를 밝혀주시던 수령님의 모습은 세기를 이어 오늘도 퇴색을 모르는 하나의 력사적화폭으로 전해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