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108)

평화관, 전쟁관, 통일관은 변혁관과 통한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우리식 변혁관에 부합하는 평화관과 전쟁관
 
진보와 변혁을 논하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관점이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만일 잘못된 관점을 갖게 되면,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고, 결국 오류와 낭패를 겪게 되는 것이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과학적이고 올바른 변혁관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처럼, 과학적이고 올바른 평화관, 전쟁관, 통일관을 갖는 것도 당연히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변혁관과 상통하고 변혁관에 부합하는 평화관, 전쟁관, 통일관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만일 평화관, 전쟁관, 통일관이 변혁관과 각기 어긋난다면, 그것은 논리적 모순이며, 결국 실천에서 오류가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두 단계 사회변혁론의 바탕을 이루는 우리식 변혁관과 상통하고 우리식 변혁관에 부합하는 과학적이고 올바른 평화관과 전쟁관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평화와 전쟁이 서로 반대되는 개념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양자를 상호 반대개념으로 보는 것은 비과학적인 속설이지 과학적인 인식은 아니다. 명백하게도, 평화는 전쟁의 반대개념이 아니며, 전쟁은 평화의 반대개념이 아니다. 왜 그러한가? 그 까닭은, 전쟁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제국주의지배체제가 압도적인 지배력을 유지하여 반제전쟁이 일어날 수 없게 된 상태는 결코 평화가 아니라 제국주의지배에 대한 노예적 굴종이며 비참한 예속이다.
 
만일 비과학적인 속설에 따라서 평화가 전쟁의 반대개념이라면, 평화는 전쟁을 통해서 실현될 수 없는 것이고, 만일 전쟁이 평화의 반대개념이라면,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전쟁은 불가능하게 된다. 평화에 반대되는 전쟁이 있다면, 그것은 평화를 파괴하는 제국주의침략전쟁 뿐이다.
 
제국주의지배체제를 무너뜨리고 해방과 자주를 실현하기 위한 반제전쟁, 제국주의침략전쟁에 맞서 싸우며 평화와 자주를 수호하기 위한 반제전쟁을 평화에 반대되고 평화를 파괴하는 전쟁으로 보고 범죄시하는 것은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명백하게도, 반제전쟁은 평화와 반대되고 평화를 파괴하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와 자주를 실현하기 위한 전쟁이다. 반제전쟁에서, 전쟁과 평화는 이질적이고 상충되는 두 개의 현실이 아니라 동질적이고 합치되는 하나의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제국주의침략전쟁과 반제전쟁을 가려보지 못하고, 전쟁이라면 무조건 분별없이 거부하는 비과학적인 염전사상이야말로 제국주의세력의 지배와 침략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묵인, 동조해주는 일탈과 배반의 지름길이다. 만일 평화와 전쟁을 비과학적인 반대개념으로 이해하면, 지난날 항일독립운동시기에 항일선열들이 제국주의식민통치를 배격하고 제국주의침략전쟁을 반대하여 무기를 들고 무력항쟁을 전개한 위대한 역사를 부정하는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인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항일열사들이 폭탄을 던져 일제의 침략원흉들을 처단한 징벌을 일제의 시각에서 보면 테러범죄로 보이지만, 항일독립운동의 시각에서 보면 항일의거로 되는 것처럼, 오늘 우리식 변혁관에서 바라보면 반제전쟁은 정당하고 의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제국주의지배체제를 배격하고 제국주의침략전쟁을 반대하는 반제전쟁의 정당성을 올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제전쟁은 정당하며, 지구 위에 제국주의가 남아있는 한 어느 나라에서든지 반제전쟁은 필연적이다.
 
현실이 이러한 데도, 제국주의지배를 배격하고 민족자주화를 실현해야 할 진보정치활동가가 염전사상에 물들고 전쟁공포증에 사로잡혔다면, 그들에게 진보와 변혁은 한낱 공염불이지 실천과업은 아닌 것이다. 우리 민족사를 돌이켜보면, 사생결단의 각오로 일제침략자들에 맞서 항일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항일열사들을 반대한 세력은 민족개량주의자들이었고, 오늘도 민족개량주의자들의 후예들은 반제전쟁을 반대하며 공허한 평화주의에 매달려 있다.
 
그러나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낡아빠진 민족개량주의와 공허한 평화주의의 사상정신적 오류를 말끔히 청산하여야 한다. 진보정치활동가들이 견지하여야 할 과학적이고 올바른 평화관과 전쟁관은, 제국주의지배체제와 제국주의침략전쟁을 배격, 반대하는 우리식 변혁관과 상통하며 우리식 변혁관에 전적으로 부합된다.
 
평화적 통일과 정의의 전쟁은 모순되지 않는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자주적 평화통일 강령을 추구하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피땀 어린 노력을 바쳐왔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은 미국이 장악, 지배하는 분단체제 아래서 억눌려 살아오는 우리 민족을 자주적 평화통일로 이끌어 가는 불멸의 이정표로, 민족공동의 행동강령으로 제시된 것이다.
 
누구나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서 통일전쟁이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 민족끼리 서로 피 흘리는 전쟁을 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평화적인 방도로 통일위업을 성취하려는 뜨거운 열정과 확고한 결심이 거기에 돋보인다. 그래서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앞으로도 자주적 평화통일 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변함없이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들고 나가야 하며, 반통일세력의 방해에 맞서 그 두 선언을 옹호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힘써야 마땅하다.
 
그런데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은 우리 민족끼리 서로 피 흘리며 싸우는 동족상잔을 부정한 것이지, 한반도 통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하고 방해해오며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파괴하려고 날뛰는 제국주의세력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전쟁(just war)’까지 부정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두 선언은 반통일적이고 반평화적인 제국주의세력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전쟁에 대해 다만 언급하지 않은 것뿐이다. 실제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채택한 남북정상회담에서 반통일적이고 반평화적인 제국주의세력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전쟁에 대해 논할 수 없었고, 또 그런 민감한 의제를 논할 필요도 없었다.
 
정의의 전쟁이란 무엇일까? 서양 철학사에서 이른바 정의의 전쟁 이론(Bellum iustum)’은 중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인 힙포의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과 토머스 어콰이너스(Thomas Aquinas)에 의해 정립된 바 있다.
 
예컨대, 만일 일본이 독도강탈책동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서 자위대를 동원하여 독도를 무력으로 점령한 경우, 남과 북은 민족자주권을 수호하는 차원에서 독도 탈환을 위해 힘을 합해 일본과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도 수호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한반도 평화통일 실현에서도 마찬가지다. 남과 북이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전면적으로 이행하여 평화적 통일을 실현하게 된 결정적인 시기에, 만일 미국이 한반도 평화통일을 끝내 반대하고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경우, 남과 북은 민족자주권을 수호하는 차원에서 평화적 통일을 위해 힘을 합해 미국과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도를 수호하기 위한 대일전쟁이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대미전쟁이 정의의 전쟁 범주에 든다는 점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평화적 통일과 정의의 전쟁은 서로 모순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를 이루는 두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세력의 정체가 친미사상으로 가려져 시야에 보이지 않는, 사상적으로 낙후한 우리 사회에는, 평화적 통일과 정의의 전쟁을 서로 대치시키면서 전자를 찬성하지만 후자는 반대하는 식의 자가당착에 빠지거나 통일전쟁이라는 말만 들려도 공포부터 느끼며 벌벌 떠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진보정치활동가들 중에도 정의의 전쟁을 부정하는 궤변에 귀를 기울이거나 통일전쟁을 상상만 해도 겁을 집어먹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태도는 평화적 통일과 정의의 전쟁이 어떻게 일치되는지를 과학적으로 인식하지 못한 무지와 오해의 심리반응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진정한 평화가 반제전쟁과 모순되지 않는 것처럼, 평화적 통일도 정의의 전쟁과 모순되지 않는다. 지금 미국이 북한 붕괴를 망상하면서 평화파괴적인 북진작전계획을 준비해놓고 방대한 규모의 실전연습까지 해마다 실시해오고 있는 판인데, 평화적 통일과 정의의 전쟁을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현실과 동떨어진 착각이며 현실을 배반한 오류다.
 
명백하게도, 과학적이고 올바른 통일관은 정의의 전쟁 이론에 기초한 전쟁관과 모순되지 않는 것이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그런 과학적이고 올바른 통일관과 전쟁관을 견지하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분발하고 더욱 힘쓸 때, 최근 긴박하게 조성된 한반도 정세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2013128일 작성)